산 행 지 : 영산기맥 3차(들독재/수량동고개~암치재) 전북 고창군, 전남 장성군.
산 행 일 : 2020. 1. 11.(토)
산행코스 : 들독재 ~ 문수산(축령산) ~ 서우치 ~ 두루봉 ~ 살우치 ~ 소두량봉 ~ 구황산 ~ 암치재
(15km, 8시간 소요)
산행참가 : 18백두.
<산행지도>
신년 첫 산행에서는 멋진 일출을 보며 새로운 꿈에 대한 다짐을 굳건히 하는 게 보통인데, 경자년 첫 산행의 일출은 축령산(문수산) 정상에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별도의 산행지를 알아보지 않고 이어가던 영산기맥 세번째 산행을 신년맞이 첫 산행지로 정했다. 올해와 내년까지는 현재 진행중인 한강기맥과 영산기맥, 진양기맥, 팔공기맥을 마무리하고 지리산태극유람도 마무리 했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대간이나 정맥길에 비해서는 등로가 거칠어서 어렵고 위험한 구간도 많을 터인즉, 아무쪼록 무탈하게 백두들의 산행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영산기맥 세번째 산행을 위해 들독재로 향한다.
지난 산행의 종착지였던 들독재에서 고창 은사리 쪽 도로가 최근에 전 구간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고, 고개 바로 아래에 있는 축령산휴림(세심원) 앞에서 버스의 회차도 가능함을 확인해 둔 터라, 이번에 버스로 들독재까지 진입하려고 하다가 그리되면 축령산에서의 일출시간에 맞추어 산행 출발시간을 늦추어야 하기에 그냥 장성 금곡영화마을 주차장에서 걸어서 들독재로 오르기로 했다. 금곡영화마을 주차장이 널찍하고 깨끗한 화장실도 있어서 여러모로 산행준비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장성의 금곡영화마을 주차장에 도착하니 새벽 3시도 안 된 시각이다. 총무님의 에너지 절감 노력으로 한기가 도는 버스에서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기상시간이 되었고, 대충의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문을 나서니 바깥공기가 예상외로 푸근하게 느껴진다.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버스 안이나 바깥이나 기온을 동일하게 맞춘 덕분이리라.. 총무님 감사해요~~ㅉㅉ
엊그제가 보름이었던 터라 쟁반처럼 둥그런 달이 구름 사이를 들락거리는
금곡영화마을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영산기맥 새번째 구간 잇기를 위해 들독재를 향해 금곡 영화마을로 들어선다.
금곡마을 주차장에서 들독재까지는 1.5km 정도로,
마을을 통과하는 완만한 오름길이라 준비운동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오른다.
<금곡 영화마을>
장성군 축령산 자락의 오지마을인 금곡 영화마을은 장성군 남면이 고향인 거장 임권택 감독이 이곳에서 영화 '태백산맥'을 찍었다. 태양광이 좋고 소음이 차단되는 최적의 촬영 조건을 갖추어 영화 이영재 감독의 「내 마음의 풍금(1998년 제작), 김수용 감독의 「침향」을 비롯한 '만남의 광장' 그리고 드라마 '왕초' 등이 금곡마을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들독재/수량동고개에 도착하여 좌측 축령산 방향으로 들어서며 영산기맥 세번째 마루금 잇기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고개를 넘어 내려서면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로, 고개 바로 아래에 세심원이 있고 은사리 신기마을 뒤편 축령산 기슭에는 문수사가 자리하고 있다.
수량동 고개에서 문수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직전 구간의 검곡치~들독재 구간과는 극명하게 대비될 정도로 백두대간 등로 못지않은 널찍하고 편만한 등로가 이어지는 곳이라..
편안한 숲길을 따라 산림욕 하는 기분으로 걸으며,
좌측으로 숲 관리소쯤으로 보이는 불 켜진 건물을 지나 오르면..,
그리 급하지 않은 오름길에 가드 로프를 설치해 놓았고,
잠시 오르막을 오르니 우측 고창 쪽은 은사시나무 조림지가 나오고,
좌측 장성 쪽은 멋진 편백나무 숲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서
언제 밝은 날에 숲길 걸으려 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벤치가 있는 375봉 쉼터에서,
버스에서 한기를 느껴서 껴입었던 옷을 벗어 배낭에 갈무리한다.
주변을 가득 메운 어둠조차 편안히 느끼며 조림숲과 천연숲을 번갈아 지나는 등로를 이어가노라면,
가끔씩 원시숲의 느낌을 주는 곳도 지나게 되고,
완만한 오름길로 이어지던 등로가 제법 가팔라지며,
제법 큰 봉우리를 올라서는데 어느새 주변이 밝아지며,
별다른 표식이 없는 무래봉을 지나게 된다.
무래봉(564.7m)은 삼면봉(전북 고창군 고수면, 전남 장성군 북일면, 서삼면)으로 별다른 표식은 없고, 등로 옆 나뭇가지에 '영산기맥 564.7m'라는 표지목만 걸려 있다. 무래봉의 유래는 찾을 수가 없고, 삼면봉인 무래봉에서 좌측이 전남 장성군 북일면에서 서삼면으로 바뀐다.
무래봉을 뒤로하니 이내 버섯 모양의 차양시설이 있고,
좌측으로 금곡마을 방향 등로가 있는 갈림길 쉼터가 나온다.
옛날 이정표.
최신 이정표.
능선 우측은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 숲" 문화재 구역이라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도 세워져 있다.
<문수사(文殊寺)>
문수사 사적기에 의하면 643년에 중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던 자장율사가 잠시 이곳에 머물렀던 것을 인연으로 절을 짓고 그 이름을 문수사라 하였다고 한다.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 숲은 문수산/축령산 입구에서부터 중턱에 자리한 문수사 입구까지의 진입도로 약 80m 좌우측 일대에 수령 100년에서 400년으로 추정되는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숲이다. 이 숲의 단풍나무 크기는 직경 30~80cm, 수고 10~15m 정도이며, 특히 흉고둘레 2m 이상 2.96m에 이르는 단풍나무 노거수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문화재 지정구역 내에는 단풍나무 노거수 외에도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의 노거수들이 혼재하고 있으며, 아교목층과 관목층에는 사람주나무, 산딸나무, 물푸레나무, 쪽동백, 쇠물푸레나무, 박쥐나무, 작살나무, 초피나무, 고추나무, 쥐똥나무 등이 나타나고, 아울러 조릿대 군락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짧은 쉼을 뒤로하고 축령산을 향하는데, 육산 능선에 커다란 바위도 나타나고,
이내 좌측으로 "고 임종국선생 수목장 0.6m"표시가 있는 쉼터를 지난다.
갈림길 이정표.
그렇게 완만한 능선길을 편안히 진행하는데 짧은 바위 오름길이 나타나는데도,
워낙 널널한 오름길이라 그런지, 백두들의 속삭이는 이야기 소리가 편안히 울려퍼진다.
능선 오름길에 돌아본 들독재 방향.
작은 돌탑이 자리한 자그마한 봉우리를 지나면,
무인산불감시탑과 2층 팔각정이 있는 축령산/문수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축령산(鷲靈山, 621m)>
전북 고창군 고수면과 전남 장성군 북일면, 서삼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장성 사람들은 축령산으로 고창 사람들은 문수산으로 부르는데, 지리지에는 취령산 등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고창)에 "취령산(鷲嶺山)은 현의 남쪽 13리에 있는데 우리산(牛利山)이라고도 일컫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취령은 석가여래가 불경을 강하였다는 인도의 영취산(靈鷲山)과 같은 말로, 『산경표』에도 영취라는 이명을 기록하고 있다. 『여지도서』(고창)에는 "취령산은 현 남쪽 13리에 있는데 우리산이라고도 부른다. 장성 입암산성으로부터 시작해 반등산(현 방장산)이 되고 그 한줄기가 용이 움직이는 것처럼 구불구불 뻗어 나와 이 산을 이루는데 바로 현의 주맥이다."라고 하여 진산으로 기록한 방장산과 구분하여 고창현 읍치의 주산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에도 취령산(鷲嶺山)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취령산을 축령산으로 바뀌게 된 연유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취령산(鷲灵山=鷲靈山)의 鷲(독수리 취)를 축으로 읽는 것은, 양산 통도사 영취산(靈鷲山)을 영축산으로 읽는 것과 같다. 또한 고창에서는 축령산을 문수산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 산 아래에 있는 문수사가 자리하고 있어서 인 듯하다. 창건(644년) 당시 신라의 자장율사가 이곳에서 문수보살이 나오는 꿈을 꾸고 그곳을 파보니 문수보살 입상이 나와 문수사를 창건하여 문수사로 부른다고 한다. 또 하나는 문수사 일주문 편액에 “청량산 문수사(淸凉山 文殊寺)”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아마 중국 청량산에서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고 해서 이곳도 그곳에서 본뜬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하나의 산에 세가지 이름을 가졌으니 상당히 헷갈린다.
축령산은 울창한 편백나무 숲으로 유명하다. 축령산의 편백나무 숲은 삼림욕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의 조림왕이라고 불리는 춘원 임종국(林種國, 1915~87) 선생이 1956년부터 1987년까지 사재를 털어 가꾼 숲이다. 축령산 남서쪽 산록에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조성면적은 약 2.9㎢에 이른다. 이 숲은 산림청과 유한킴벌리(주), 생명의숲국민운동이 주최한 제1회 아름다운숲 전국대회(2000년)의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숲'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숲을 가로지르며 조성된 약 6km의 길은 국토해양부에 의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
축령산 정상 도착시간이 예정보다 10여분 늦어졌다.
아마도 흐린 날씨로 일출 조망에 대한 기대를 접으며 너무 느긋하게 여유를 부렸던 탓이다.
영산기맥은 축령산 정상석 뒤쪽으로 이어진다.
장성 치유숲 안내판
<축령산 편백나무 숲 / 장성 8경 중 제2경인 축령산 자연휴양림>
장성 축령산은 세계적 조림지로 평가받는다. 허허벌판이었던 민둥산이 불과 40~50년 만에 늠름한 편백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사계절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곧고 길게 뻗은 편백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로 넘실대는 축령산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치유의 숲으로 국내.외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식목철이 되면 축령산은 식목 성공사례로 인정받아 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해외 관계자들의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민둥산 축령산이 푸른 옷으로 갈아입은 데에는 독림가 춘원 임종국(1915~1987)선생이 있었다. 춘원 임종국 선생은 1915년 전북 순창군 복흥면 조동에서 태어나, 순창중학교 3년 중퇴 후 농촌 일을 돕다가 25세 때인 1940년 전남 장성군 장재 마을로 이주, 양잠과 특용작물을 재배하며 제법 짭짤한 농가소득을 올려 어렵지 않게 생활했다. 그는 농사일을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돈도 벌면서 영농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6.25 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6년 어느 날 우연히 장성군 덕진리의 인촌 김성수 선생 소유 야산에 쭉쭉 뻗어 자라고 있는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보고, '아! 우리 강산에도 이런 나무가 성장할 수 있구나'를 느끼며 한눈에 반해버렸다. 임종국 선생은 그 해 봄부터 본격 조림을 시작하여, 일단 사재를 털어 자기 소유 임야 1a에 삼나무 5,000주를 시험 조성하여 성공하자, 용기와 자신감을 더욱 얻게 되었다.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 심는 임종국 선생은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서삼면 모암리, 북하면 월성리 일대 등 100ha를 추가 매입하고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어나갔다. 먹을거리도 제대로 없던 시절 대단위 조림사업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였다. 이곳을 본 주위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기도 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68년엔 전국에 몰아닥친 극심한 가뭄으로 밭작물뿐만 아니라 그가 조림한 나무들이 전부 말라죽을 위기에 처해, 하나둘씩 말라비틀어져 갔다. 그러나 그는 물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렸다. 그의 어깨는 피투성이였다. 그의 정성에 감복한 나무들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해를 거듭할수록 조림면적도 크게 늘어났으며, 그의 조림사업은 76년까지 계속됐다. 꼬박 20여 년간을 헐벗은 산 570ha에 280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으로 가꾼 것이다. 72년 5·16 민족상을 수상했을 때 71년까지 그의 투자비용은 총 7,370만원으로 평가되었는데, 10년 자란 나무 한그루가 1,000원 하던 시절이니 엄청난 투자를 한 셈이었다. 그의 조림사업은 가뭄 수해 돈 문제 등으로 몇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우직할 정도의 끈기와 검소한 생활로 잘 넘어갔지만, 마지막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그 소유의 임야들은 그가 돈을 끌어다 쓴 사채업자와 채권자들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이때가 79년 말 상황이고, 80년에 임종국 선생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후 임종국 선생은 7년간을 투병하다 세상을 하직했다. '한국의 조림왕은 그렇게 쓸쓸히 간 것이다. 장남 임씨가 전하는 그의 유언은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 나무를 심는 게 나라 사랑하는 길이다.” 역시 조림왕 다운 유언이다. 산림청은 지난 2001년 그의 공로를 기려 국립수목원 내 '숲의 명예전당'에 업적을 새겨 헌정했다.
축령산 휴양림 '임종국 숲'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한번 걸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그분의 엄청난 노력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또한 편백나무와 삼나무의 용도를 상상해보라!! 편백나무와 삼나무는 각종 가구와 인테리어에 최고로 좋은 목제이다. 각종 침대, 책상, 의자, 서랍장, 식탁, 발판, 옷장 등 가구와 욕조탕(희노키탕), 베개, 도마, 어린이 놀이기구, 안마기구, 화장품, 오일, 천연 염색, 목공예, 새집증후균 제거 피톤치드, 무궁무진하게 소요되고 있다. 또 편백나무와 삼나무의 피톤치드(phytoncide)는 항암작용이 있고, 이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 스트레스를 받은 실험용 쥐에 소나무, 잣나무, 편백, 화백 등의 4종류 나뭇잎에서 추출한 정유(나무 생장호르몬)를 쏘인 결과,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코르티솔(Cortisol) 치수가 20~50%가량 급감했다. 축령산 숲속에서 자연 치유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임종국 선생의 은덕이 사후에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팔각정자에 올라서 돌아본 방장산이 연무로 희미하다.
보이지는 않지만 동쪽 장성호와 추월산 방향.
불태산 방향.
광주 무등산 방향.
축령산 정상 전경.
영산기맥 축령산 정상 인증.
본디 축령산 정상에서는 지나온 방장산은 물론 내장산과 추월산, 병풍산, 불태산이 한눈에 조망되며, 멀리로 광주의 무등산도 뚜렷이 가늠되는 곳이라, 일출을 맞이하며 아침식사를 예정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연무가 잔뜩 끼여 있어서 별다른 조망이 없고, 아직은 공기가 차가워서 잠시 더 진행하다가 식사를 하기로 하고는, 축령산 정상을 뒤로한다.
축령산 내림길은 가드 로프가 매여져 있는 제법 가파른 내림길이 이어진다.
돌아본 축령산 정상.
마치 칼로 잘라놓은 듯한 입석이 눈길을 끌고,
축령산휴양림으로 유명해진 추암마을과 추암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바위를 지나서.
커다란 바위가 듬성듬성 솟아있는 암릉길을 내려서면,
앞쪽으로 능선 분기봉인 551봉이 보이고,
아래로 고창담양고속도로 문수산터널이 지나는 느티나무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겨울에도 도시락을 싸오는 분들이 많아서 정답게 오손도손 둘러앉아 식사를 했는데, 최근에는 빵이나 떡이 대세로 자리를 잡아서 각자 가져온 먹거리를 알아서 먹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도시락과 간편식이 각각 장단점이 있겠지만, 왠지 올봄부터는 도시락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금 서늘해진 몸을 덮이려 산행길에 나서는데,
주변의 나무들이 익히 보던 나무가 아니다. 뭔 나무일까?
511봉 오름길에 돌아본 축령산 방향.
551봉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담양고창간고속도로가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삼면봉인 551봉에서 좌측이 장성군 서삼면에서 황룡면으로 바뀌고, 영산길은 우틀하여 내려서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다. 직진의 망월재 방향 능선으로 뚜렷한 등로가 나 있어서 알바를 많이 하는 곳이란다.
551봉에서 우틀하여 서우치 방향으로 들어서면 빼곡한 산축밭이 잠시 이어지다가,
이내 낙엽이 수북한 완만한 능선 내림길로 바뀌었다가는,
다시 산죽지대가 이어진다.
우측 은사리 방향.
좌측 망월재 방향.
가야 할 두루봉 방향.
잡목이 빼곡한 거친 능선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추암마을에서 망월재를 지나 이어온 임도가 지나는 서우치(西友峙)가 나오고,
서우치(西友峙, 350m)에서 능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도 되지만 좌측 능선길로 들어서면,
잘 단장된 풍천임씨 묘역을 지나게 되고,
희미한 족적은 능선이 아닌 좌측 사면으로 어이지더니,
오히려 능선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우회하여 다시 능선 위로 오르게 되고,
이내 다시 임도에 내려서게 되는데,
서우치에서 그냥 임도를 따라왔어야 했는데 쓸데없이 헛짓거리를 했나 보다.
잠시 편안히 임도를 따르면 임도삼거리가 나오고,
임도 건너편 숲으로 들어 두루봉을 향한 오름길을 시작한다.
등로의 흔적이 희미한 거친 오름길을 잠시 치고 오르면,
능선인지 봉우리인지 구분이 모호한 두루봉(441.5봉)에 올라서며 영산길은 좌틀하여 이어진다.
삼각점과 '영산기맥' 코팅지가 걸려있으나 잡목들이 빼곡한 두루봉 정상 인증을 남긴다.
두루봉을 잠시 내려서서 평퍼짐한 능선 안부에서 과일 파티를 즐기며 여유로운 쉼을 한다.
이어지는 능선이 펑퍼짐하고 따스한 햇살도 비치며 산행이 한결 편안해진다.
작은 봉우리를 넘고,
낙엽이 수북이 덮인 수레길의 희미한 흔적을 쫓아,
능선길을 가로막은 쓰러진 나무도 우회하여 지나고,
415봉쯤도 거친 능선을 두고 우측 희미한 수레길 흔적을 따라 우회하여 지난다.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 할 소두랑봉이 가늠되고,
그 아래로는 고창군 고수면 두평리의 조산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남쪽 통안리 방향 지능선이 분기되는 380봉에서,
직진의 능선을 두고 우틀하여 사면을 따라 살우치로 향한다.
380봉에서 돌아본 축령산 방향.
380봉에서 우틀하여 살우치로 내려서는데, 뒤에서 두 분의 산꾼이 우리를 추월해 간다.
영산기맥을 걷는 산꾼이 아니면 이곳에 올 일은 없을 터인데, 인근의 주민인가 했는데 스틱까지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영산기맥을 타는 산꾼이 분명하고, 잠시 후 살우치를 지나며 이들이 걸어 놓은 표지기를 보았더니 'J3클럽'이다. 모습부터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 하였더니 역시나다.
군부대 초소가 있는 살우치에 도착한다.
<살우치(殺牛時, 310.6m>
전남 장성군 삼계면 통만리와 전북 고창군 고수면 두평리에 걸쳐있는 고개로, '소를 죽인다'는 섬뜩한 표현을 쓴 고개이지만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918년 발행 지도에 사니치로 표기되어 있다고 하는 걸 보면 아마도 고개 이름으로 흔한 싸리치가 변음되어 살우치가 된 게 아닐는지 짐작할 뿐이다.
군부대 초소와 임도차단기가 있는 살우치 전경.
살우치로 내려서는 백두들.
지금까지는 등로 상태가 예상보다 양호하고 날씨도 좋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과일을 나누며 쉼을 하고는,
살우치를 뒤로하고 소두랑봉을 향한다.
희미한 족적을 쫓아 거친 오름길을 올라서면,
덩굴이 빼곡하여 등로 구분이 안 되는 능선마루에 올라서게 되고,
축령산에서 이어온 영산기맥 능선이 뒤돌아 보인다.
표지기만 몇개 걸려있는 소두랑봉(470봉)에 도착한다.
돌아본 두루봉과 축령산 방향.
이제 다음구간 영산기맥길에 고향마을을 지나게 되는 영규형 내외분이 소두랑봉 정상 인증은 한다.
수두랑봉에서 남쪽 장군봉 방향 능선으로 내려서니 빼곡한 덩굴이 영산기맥 능선을 뒤덮고 있어서 등로의 흔적은 보이지를 않는데, 선답자가 지나며 만들어 놓은 흔적을 조심스레 더듬으며 진행한다. 이래서 하절기에 영산기맥에 오면 개고생 한다는 예기가 생겼나 보다 추측된다.
좌전방으로 수련산과 평림호가 살짝 보이고,
남동쪽 홍길동테마파크가 있는 장성군 황룡면 방향 조망이 아련하다.
소두랑봉을 내려서는 백두들.
드러난 퇴적암층 사이에 작은 굴이 있는데,
지나다니는 영산기맥 산꾼들이 하도 기웃거려서 이곳에 살던 동물이 떠나고 없는 듯하다.
덤불이 뒤덮고 있는 완만한 영산기맥 능선을 따르는데,
우전방으로 가야 할 구황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돌아본 소두랑봉 좌측으로 조산저수지도 조망된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가야 할 구황산의 모습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짧은 산죽밭도 지나고,
편평한 능선에서 또 과일을 나누며 잠시 여유를 갖는다.
모든 분들이 배낭에 각종 과일을 한바구니씩 가져와서 먹어도 먹어도 다함이 없다.
그렇게 쉬엄쉬엄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장군봉 방향 능선 분기점인 515.5봉에 도착하여,
'515.5m봉(개념도상 513.5m)'에 올라서서 영산기맥길은 직진의 장군봉 방향 능선을 두고,
우틀하여 사면을 따라 내려서게 된다.
이 봉에서 직진의 장군봉 방향으로 수련분맥이 분기하는데,
수련분맥(水蓮分脈)은 영산기맥 상의 소두랑봉(469.7m)과 구왕산(499.8m) 사이의 삼면봉 (515.5m)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장군봉(507.3m)을 지나 수련산(543.0m)-동구산(297.7m)-비네봉(214.5m)-쓰래산(195.9m)-와우산(58.7m)-독배산(39.5m)을 거쳐 광주시 광산구 송산동 죽산교 부근 평림천과 황룡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27.2km의 능선을 말한다.
이제 이곳에서 우틀하여 건너다 보이는 구황산을 향하게 된다.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서 안부를 지난 414봉을 올라서며 돌아본 515봉 방향.
414봉을 지나며 바라본 가야 할 구황산 방향.
414봉에서 잠시 내려서니, 우측 고창군 고수면 두평리 방향으로 조망이 훤히 트이는 벌목지대가 나오는데, 벌목 후 작은 묘목을 심어 놓았는데, 가시가 있는 묘목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없다.
두평리의 조산저수지도 연무 속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가야 할 구황산 정상부 주변의 드러난 바위 절벽이 구황산 오름길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준다.
안부 직전에 있는 양지바른 묘지에서 잠시 다리를 쉬게 하고,
개념도에는 임도로 표시된 옛고개를 지나며 본격적인 구황산 오름길을 시작하는데,
희미한 등로는 가시나무와 잡목으로 빼곡하여 진행이 만만치 않고,
등로는 커다란 바위가 나뒹구는 능선을 만나 힘든 암릉 오름길 구간이 이어진다.
구황산을 향해 암릉 오름길을 오르는 영규형.
우후방으로 새벽에 올랐던 축령산도 가늠된다.
소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조망바위가,
힘든 오름길에 지친 산객들에게 쉬어가라 속삭인다.
조망바위에서 돌아본 축령산 방향.
구황산 오름길은 암릉과 잡목이 뒤엉켜서 진행에 무척이나 애를 먹는다.
조망바위에서 돌아본 515.5봉과 장군봉 방향.
축령산 방향의 지나온 영산기맥 조망.
좌측으로 구황산 정상의 남쪽 봉우리도 보이고,
이제 조금만 더 오르면 구황산 정상이다.
잡목과 암릉의 방어를 뚫고 구황산 정상에 도착한다.
<구황산(九皇山, 500m)>
구왕산(九王山)이라고도 하며, 전북 고창군 고수면과 성송면 그리고 전남 장성군 삼계면의 3개 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동북쪽 축령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살우치를 거쳐 구황산과 연결되며 다시 서쪽의 고산과 이어진다. 정상 서쪽에는 1894년 동학농민군이 전투에서 패하자 장성과 함평으로 퇴각하던 암치재가 있다. 북쪽 사면에서 고수천이 발원하여 부곡의 조산저수지를 통해 추진천(인천강)에 합류하여 줄포만(곰소만)의 서해로 흘러가고, 남쪽 사면에서는 평림천이 발원해 평림호를 이루고 영산강을 통해 목포 앞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여지도서』(고창), 「해동지도」(고창), 「대동여지도」 (18첩 5면) 등에 고사면(지금의 고수면) 남쪽이자 문수산 서편에 구황산(九皇山)이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구왕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등의 조선 시대 지리지에 “고창 남쪽 25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1872년 지방지도」에는 '구황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구황산의 명당에 묘를 쓰면 9대에 걸쳐 임금이 나온다는 속설 때문에 지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이다. 구황산 서쪽 성송면 하고리 삼태마을 뒤에 있는 삼태봉도 신라시대에 윤씨, 유씨, 하씨 성을 가진 삼정승이 태어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계당리 선동(仙洞) 마을은 구황산의 신선이 놀았다는 곳으로 가뭄이 들면 마을사람들이 구황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영산기맥에 암봉으로 이루어진 구황산 정상에 서면, 고창 일대와 장성 쪽은 지나온 문수산과 멀리 무등산이 아련히 보인다. 정상의 암봉에는 5~6명이 들어갈 수 있는 삼각굴이 있다고 하지만 확인은 못했다. 구황산은 네개의 산출기로 나뉘는 요충지로, 북쪽은 2.4km 거리의 추산봉 (273m)과 11.3km 거리에 있는 태봉(110.9m)이 있고, 남쪽으로는 광주로 뻗어있는 수련산, 동구산, 용진산의 산줄기가 있고, 구황산을 조금 지나면 선운지맥(경수지맥)을 나누어 놓고 영산기맥은 남서쪽의 목포 유달산으로 향한다. 고창에는 또다른 구황봉(299m)이 있어 혼돈되기도 하는데, 이는 선운산도립공원 내에 있다.
암봉인 구황산 정상에는 작은 나뭇가지에 구황산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있을 뿐이고,
장소가 협소하여 여러 명이 함께 있기가 어렵다.
구황산 정상 옆 조망바위에 서니, 지나온 축령산 방향의 영산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군봉 능선 너머로 보이는 봉우리는 불태산쯤이지 않을까 싶다.
남쪽 평림호 방향.
지나온 영산기맥을 배경으로.
구황산 정상 인증.
구황산 정상을 뒤로하고 급경사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면,
儒人晉州姜氏之基(유인진주강씨지묘)를 지난다.
구황산에서 급경사로 내려오니 관리가 되지 않은 진주강씨 묘지 1기가 나온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유인(儒人)'이란 말은 생전에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그리고 비석의 갓은 생전에 벼슬을 한 사람에게만 사후에 비석 위에 갓을 씌우는데, 이 묘지는 남자도 아닌 여자의 비석에다가 갓을 씌운 것이 참으로 독특하다. 뒷면의 내력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역시 진보적인 호남인들의 기질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완만한 내림길에 이어 희미한 족적을 따라 둥그런 안부를 지나서,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최근에 설치한듯한 통신탑이 있고,
오래된 묵묘가 자리하고 있는 구황산 서봉에 도착한다.
<구황산 서봉(450m)
영산기맥꾼들 사이에서 구황산 서봉이라 불리는 봉우리에 올라서면, 오래되어 보이는 묘지 1기가 있다. 지도상에는 450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서봉에서 내려다보면, 고창군 고수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며 경수지맥이 연결되는 능선이 보이지만 능선이 워낙 낮아 구분이 쉽지 않다.
다음 구간에 가게 될 고산과 고성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가늠되고,
서쪽으로는 고창군 성송면의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구황산 서봉에 도착하는 백두들.
고창군 성송면 들판을 배경으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빼곡한 편평한 능선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경수지맥/선운지맥 분기점을 표시하는 작은 표시판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경수지맥(鏡水枝脈) 개념도>
경수지맥(鏡水枝脈)은 영산기맥 구황산 서봉(445m)에서 남서쪽으로 250m쯤 내려선 표고 약 395m 되는 곳에서 서북 방향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서, 23번 국도와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너 비산비야지대의 태봉산(95.3m), 삼태봉(三?泰峰,197m), 왕제산(王帝山, 151.1m) 등 얕은 산줄기를 이루며 무장배수지가 있는 106m봉에 이른다. 106m봉에서는 서북으로 송림산(松林山, 295.3m), 장사산(269m), 덕림산(德林山, 141.5m), 망덕산(望德山, 104m), 봉대산(284m), 금정산(金井山, 263.7m)으로 이어지는 길이 약 21km쯤 되는 큰 산줄기 하나를 떨궈놓고, 선운사가 있는 경수산을 향하여 북진하며 한제산(漢?山, 211m), 지장제산(152m)을 일구고 선운산도립공원으로 들어서서는 국기봉(國旗,336m), 청룡산(靑龍山, 314m), 개이빨산(345.1m), 천왕봉(327m), 경수산(鏡水山, 444.3m)을 일구고 고막재와 206m봉을 거쳐 용기마을 옆 바닷가에 잠긴다. 이 산줄기에서 제일 높은 경수산(鏡水山. 444.3m)에서 이름을 빌려와 경수지맥(鏡水枝脈)이라 부르며, 도상거리는 약 35km쯤 되고 추진천(길이 29km, 면적 228.68㎢)의 우측 물막이가 된다.
마주오는 영산기맥꾼으로 보이는 산객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구황산 서봉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지는 영산길은 편평하고 둥그런 능선으로 이어지며 능선과 등로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영산길이 우측으로 휘어지며 불개미재로 이어지는 갈림길 지점인데, 직진의 능선을 따라 알바를 많이 하는 곳을 지난다.
그저 밋밋한 능선에 옛고개의 흔적이 희미한 불개미재쯤을 지나는데,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겠다. 예전에 전남 장성군 죽림리 마을에서 전북 고창군 암치리로 가는 재로, 옛사람들이 널리 이용하였던 재라고 한다.
불개미재를 지나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고,
작은 봉우리 오름길에 돌아본 구황산과 구황산 서봉 능선이 언제 저곳을 지나왔나 싶다.
바위 암봉을 지나자,
바위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는 능선길이 이어지고,
커다란 바위를 우회하여 지나 전망바위에 오르면,
좌후방으로 구황산과 지나온 영산기맥이 나뭇가지 사이로 가늠되고,
우전방으로는 다음 구간 오르게 될 고산이 우뚝하다.
가야 할 영산기맥 능선 모습.
390봉쯤을 지나고,
돌아본 영산기맥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
우측 아래로 암치제와 채석장이 내려다 보인다.
우리와 같은 날 대기리에서 출발한 산객의 표기기가 반갑다.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는 너럭바위가 나오고,
오늘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범넝굴봉도 내려다 보인다.
살짝 당겨본 고산과 고성산 모습.
남쪽 삼계면 죽림리와 생촌리 조망.
희미한 족적을 쫓아 범넝굴봉을 향하는데,
우측 아래로 암치제와 흉물스런 채석장이 내려다 보이고,
좌측 사면의 편백나무 조림지를 지나면,
등로 구분이 희미한 범넝굴봉(324.9m)에 서게 되는데,
이곳에서 영산기맥은 우측으로 휘어진다.
범넝굴봉에서 희미한 등로를 찾아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다가,
우측으로 잠시 진행하면 진주강씨 가족묘역이 나오고,
영산길은 진주강씨 가족묘역에서 좌측 아래로 이어지는 수레길을 따라 암치재로 향한다.
진주강씨 가족묘지로 이어진 널찍한 수레길을 따라 암치재로 향하는데,
갈림길이 나오면 어느 쪽으로 가도 이내 다시 합쳐지고,
좀 더 뚜렷해 보이는 우측 길로 들어서면 우측에 뭔가 중요한 게 있는지 출입금지 현수막이 걸려 있고,
전주이씨 가족묘지를 지나서 내려서면,
등로는 편백나무숲 사이로 이어지는데,
노오란 낙엽이 덮인 편백나무 숲이 멋지다.
2차선의 893번 지방도가 지나는 암치치에 내려서며,
영산기맥 세번째 산행을 마무리한다.
<암치(岩峙, 200m)>
전남 장성군 삼계면과 전북 고창군 성송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893번 지방도가 지난다. 암치재, 암치고개라고 부르며 지명은 북쪽에 있는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실은 암치라는 고개이름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고 보는게 타당해 보인다. 암치리에는 꽤나 큰 암치제(저수지)가 있으며, 장성군 삼계면에서는 바위가 많은 재라고 해서 암치(岩峙)라 부른다고 한다. 1894년 동학혁명이 발생했을 당시 전북에서 패한 농민군이 전남 장성과 함평으로 퇴각할때 넘었던 재라고 한다.
돌아본 암치재 날머리 모습.
영산기맥 고산 방향 들머리.
암치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암치재 고창 방면으로 넘어서면,
북극곰이 왜 넘어질까!
고산 정상으로 향하는 들머리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고창읍의 목감탕으로 가서 고단한 땀냄새를 씻어낸다.
한 달 전에 왔던 목욕탕이 이 목욕탕인지 아닌지를 두고 한참 동안 실랑이가 오갔다. 단지 건망증 정도 일까!
지난 산행에서 들렀던 식당을 다시 찾아,
풍성한 뒤풀이 시간을 가진다.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양재에서 전원이 하차하여!
경자년에는 경자씨랑 함께 하고픈데..!!!
설 명절 편안히 보내시고,
또 새해에 뵙겠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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