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남정맥 02(두창리고개~하고개) : 의미를 생각하며 걸은 용인의 한남정맥 y

재희다 2016. 1. 28. 23:43

 

산 행 지 : 한남정맥 02차(두창리고개~하고개) 용인시

산 행 일 : 2016. 01. 09.(토)

산행코스 : 두창리고개 ~ 57번 지방도 ~ 문수봉 ~ 망덕고개 ~ 바래기산 ~ 292봉 ~ 용인승마장 ~ 무너미고개 ~ 함박산 ~ 하고개 (거리 23.7km)

산행참가 : 18명.

 

<산행코스>

 

이번 산행은 326번 지방도가 지나는 두창리 고개에서 시작하여 57번 지방도를 걷고, 삼성국제경영연구소와 중소기업개발원이 있는 문수봉과 바래기산, 재주봉과 무너미재가 있는 45번 국도를 통과하고, 함박산에서 하고개로 내려서는 도상거리 24km의 결코 짧지 않은 구간이다. 더욱이 아침에 해가 늦잠을 자는 계절인 겨울이고, 산행 초반 두창리 고개에서 문수봉 들머리까지 6km 정도의 구릉과 들판, 마을과 도로가 얽혀있는 구간을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여러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정독하며 지도에서 꼼꼼이 체크해 보았지만, 읽는 산행기마다 조금씩 다른 경로를 따라서 이동한 것으로 보여, 어느 경로가 한남정맥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나마 인터넷지도의 스트리트뷰 기능을 이용하여 산행 사진과 대조를 하고 나서야 대충의 노정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경기도 일원에 대한 개발 속도가 워낙 빨라서, 과거 사진만 가지고서는 뭔가 부족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억눌리며 양재에서 두창리고개로 가는 애마에 올랐다.

일찌감치 도착한 버스에서 쪽잠을 청하다가 싸늘한 냉기에 더 이상 잠을 청하지 못하고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여 차가운 밤공기에 몸을 맏기니, 잠깐 사이에 한기가 두텁게 껴입은 겨울옷을 뚫고 들어온다. 준비운동을 하는 사이에 체온이 더 떨어질새라 서둘로 산행길에 나선다.


04:03 새해 첫 산행의 출발지인 두창리 고개에서 한남정맥 잇기 두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04:09 두창리 고개에서 이어지는 포장도를 잠시 따라가니, 기상연구소 담벼락이 앞을 가로 막아,

기상연구소가 차지한 한남정맥 능선을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 우틀하여 진행한다.

 

 

04:18 극동기상연구소 정문으로 통하는 도로를 지하통로로 통과하여, 담벼락을 따라 계속 진행하면,

 

 

04:20 기상연구소 초소가 있는 모퉁이에서 연구소 담벼락과 이별하게 되고,

 

 

04:24 잠시 후, 알바를 많이 한다는 오거리 갈림길에서 거침없이 우틀하여 도로를 따라간다.

 

오거리 모퉁이에 설치된 아정표의 방향 표시가 대충 비슷하게는 그려졌지만, 문수봉 방향이 애매하다. 바로 우틀하여야 하는데, 직진 후 우틀처럼 그려저 있다.

 

 

04:29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다가 원삼면 독성리에서 가재월리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만나면,

도로를 가로질러 직진 방향으로 도로를 계속 따른다.

 

도로를 가로질러 원삼제일교회 팻말 옆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04:33 잠시 후 좌측 숲으로 들어오라는 표지기가 한두개 보인다.

 

주의하여 살피지 않으면 놓치기 쉽겠다. 숲길처럼 보이지만 이내 임도 정도의 수레길이 이어지며, 정맥길은 우측 능선 위로 이어지지만, 길이 없는 가시덤불 숲이라 다시 아랫쪽 임도를 따라서 진행한다.

 

 

04:38 우측으로 수정산(344m)이 들판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카메라 사진으로는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04:39 잠시 후 용인시 원삼면 가재월리에서 독성리로 이어지는 도로에 내려서게 되고,

 

길을 따라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여, 우측 들머리로 들어서면,

 

 

04:47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길이 훨씬 뚜렷하지만 정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아마 우측 독성리 쪽에 있는 캠핑장에서 만든 산책로인 듯한데,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없었다면 알바의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04:59 다시 도로에 내려서면 좌측 건너편에 삼환테크가 자리하고 있고, 도로를 건너 삼환테크 진입로 우측 언덕으로 오른다.

 

 

05:05 모두들 한겨울의 한기를 이기려 발길을 빠르게 하는데, 모처럼 참가한 손점장은 너무 빠르다고 투덜거린다.

 

사방 분간이 어려운 밤길에 만나는 이정표는 더욱이나 반가운데,

매봉재와의 거리는 멀어지고 문수봉은 가까워지니 더더욱 반갑기 그지없다.

 

 

05:08 다시 도로로 내려서고,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하다가,

 

 

05:10 갈림길에서 우측의 도로를 두고 좌측의 임도로 들어서면,

 

연안김씨 합동제단이라는 커다란 비석이 있는 가족묘지를 지나,

 

 

05:13 다시 57번 지방도에 내려서게 되고, 아직까지 알바 없이 난해한 한남길을 잘 찾아오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잠시 쉼을 한다.

 

 

길 건너 장수농원 표지석이 우리가 한남정맥길 위에 있음을 말해주고, 잠시의 쉼을 뒤로하고 표지석이 있는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지금은 장수농원이 없어지고 '만텍'이라는 공장이 들어서 있다.

 

 

05:18 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니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 도로를 따르면 공장을 우회하는 길이고, 좌측 길은 공장을 통과하는 한남길이다.

백두들은 우측의 도로를 따라 우회길로 들어서고, 나는 좌측 길을 따라 공장으로 들어선다.

 

 

05:20 공장으로 들어서면 공장내 주택이 있는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게 되는데, 잠도 없는 개들이 엄청나게 짖어댄다.

 

몇몇 분은 나를 따라 공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05:26 공장을 빠져나와 농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내동마을 앞 도로가 나온다.

한남정맥은 녹색의 화살표 방향으로 이어지지만, 잠시 후 다시 도로로 내려서야 하기에 하늘색 화살표를 따라 농업기술센타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른다.

 

 

05:32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자 용인시 농업기술센터 앞을 지나게 되고,

 

 

5:36 잠시 후 57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문수봉 들머리로 들어선다.

 

두창리고개에서 근 6km 이상 이어온 난맥구간을 어렵사리 지나고, 이제부터는 뚜렷한 능선 산길로 접어들게 되니 그동안의 긴장감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문수봉 오름길을 시작한다.

 

 

05:40 잠시 후 법륜사 갈림길에서 반가운 이정표를 다시 접하고,

 

 

05:49 가파른 오름길을 이어가다가 다시 원삼면소재지 갈림길을 지난다.

 

안골(내동마을)안부 능선에서 문수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꾀나 가파르게 이어지는데,

돌아본 용인시 원삼면 방향의 불빛이 포근히 내려앉아 있다.

 

용인시(龍仁市)는 본래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치고, 용구(龍駒)에서 용(龍) 자와 처인(處仁)의 인(仁) 자가 합쳐 용인현(龍仁縣)이라고 칭하다가, 후에 양지군(陽智郡)을 합쳐 오늘의 용인시(龍仁市)가 되었다.

 

 

06:02 약수터 갈림길에서 우측 문수봉 방향으로 들어서고,

 

 

06:06 다시 약수터 갈림길을 만나 잠시 고민에 빠진다. 약수를 먹을까, 말까?

 

 

06:07 가파른 오름길을 오른 때문인지 문수 약수터의 물줄기를 보자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한모금 들이키니,

추운 날씨에도 얼지 않고 흐르는 물은 차갑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따뜻하다는 느낌이다.

 

<문수 약수터>

문수봉 마애불 아래 약수터가 있다. 바위 사이 옻나무 밑으로 흐르는 샘물이 불교식으로 말하면 감로수다. 주위에 고산 식물인 산죽(조릿대)이 많은 곳이 문수사지다. 샘터 주위는 공원으로 꾸며 놓았으며, 이곳 약수터가 청미천(백암으로 흐르는 한강지류)의 발원지라고 한다.

 

약수터 앞 전망대에 훌라후프가 놓여 있다. 내게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물건이다!

 

 

06:13 잠시 후 다시 마애보살상 갈림길에 선다.

 

이곳까지 와서 문수산 마애보살상을 보지 않고 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문수봉으로 바로 진행한 백두들을 두고 마애보살님을 뵈러 문수사지로 향한다. 그런데 정맥길에서 20m 정도 벗어나 있다는 문수사지까지의 실제 거리는 20m가 아니고 200m쯤 된다. 아마도 이정표를 만들 때 소수점 아래를 헛갈렸나 보다.


06:16 문수산 마애보살상 도착.

 

<문수산 마애보살상>

용인시 원삼면 문촌리 내동 뒷산 문수봉도 문수사지에서 연유된 산이다. 문수봉 팔부능선에 문수사지 마애불이 있다. 문수보살은 불교 화엄경에 선재동자가 처음으로 만나는 보살이며, 신라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를 받았다는 보살로, 조선 세조대왕이 오대산에서 문수동자를 만났다는 이야기 속의 보살이다. 불교에서는 지혜를 상징하며 왼손에 연꽃을 들고 사자를 탄 모습의 보살이 문수보살이다.


어둠 속에서 플래시를 사용해 찍은 마애보살상은 그 형체가 뚜렷하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06:24 문수봉 정상에 도착하니 이정표의 곱든고개라는 지명이 눈길을 끈다.

 

<곱든고개>

곱든고개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삼암리에 있는 고개로 57번 도로가 지난다. 곱사의 등처럼 굽은 고개라는 뜻으로 곱등고개라고 하다가 변음되어 곱든고개가 되었을 듯하다. 주로 원삼면 사암리와 고등리 독성리 일대의 주민들이 용인장으로 갈 때 이용하던 고개라고 하며, 임꺽정이 평생 스승으로 모셨던 칠장사의 병해대사를 뵙기 위해 고개를 지나다가, 가짜 임꺽정을 만났다는 곳이 곱든고개였다고 한다.


내가 문수 약수를 마시고, 마애보살상 뵈러 가고 하는 사이에 먼저 오른 백두들이 추위와 싸우며 문수봉 정상에서 쉼을 하고 있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문수봉(403.2m)>

용인시 원삼면 문촌리 내동 뒷산 문수봉은 예전에 있던 문수사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문수봉에는 문촌리 산25번지에 위치했던 문수사지에서 50m 떨어진 곳에,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수산 마애보살상이 있다. 높이 약 3.5m 정도의 두 바위를 편평하게 다듬어 보살입상 2구를 양쪽으로 대칭되게 새겼는데, 얕은 부조와 선각을 함께 사용하였다. 문수봉을 오르는 등산코스는 원삼면 내동에서 오르기와, 곱든고개 정상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앵자지맥>

앵자지맥이란 한남정맥상에 있는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곱든고개, 칠봉산(447m), 갈미봉, 용실산, 배미실고개, 마수고개, 봉도리고개, 성황당고개, 해룡산, 국소봉, 정개산, 천덕봉, 앵자봉(667m)을 거쳐 염치고개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해협산과 정암산을 빚어놓고, 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63.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06:28 추위와 싸우던 백두들을 돌려세워 문수봉 정상 인증을 남긴다.

 

문수봉은 불교의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산이다. 원삼면에서 북서쪽 끝에 있는 용인팔경 곱든고개와 접해 있는 산으로, 산에서 용인팔경인 사암저수지 주위를 볼 수 있다. 우리 생활이 불교문화권이던 신라,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국내 산 이름도 불교에서 유래된 곳이 많다. 금강산 비로봉, 지리산 반야봉, 천왕봉, 관음봉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06:39 문수봉을 뒤로하고 내리막의 평탄한 길로 들어서니, 우측에 거대한 원형의 유류저장 시설이 보이고,

 

이제부터의 한남길 유류저장고를 우측에 두고, 말발굽 모양으로 이어가게 된다.

 

 

06:49 고초골낙시터 갈림길봉을 지난다. 이정표의 고초골을 문수봉 남쪽 기슭에 있다.

 

미리내성지는 이곳에서 남남서쪽 안성시 양성면에 소재하는데, 미리내성지로 이어지는 길은 다음 봉우리인 쌍령지맥 분기봉에서 쌍령산 방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06:53 안부에서 직전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과 다시 합쳐지고,

 

 

07:02 문수봉에서 석유비축기지를 U자 형태를 빙 돌아 안부를 지나 오르니, 정자가 있는 쌍령지맥 분기봉에 도착한다.

 

<한남 쌍령지맥(漢南雙嶺枝脈)>

칠장산에서 김포 보수곶리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은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앵자지맥과 독조지맥을 분기하고, 서쪽으로 1.7Km 가다가 또 하나의 산줄기가 남쪽으로 분기하여 쌍령산(502m), 금병산(244m), 봉황산(259m), 천덕산(322m), 백련봉(235m), 덕암산(164m), 불악산(149m)을 거처 평택 진위천과 안성천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쌍령지맥이다.


'삼덕의 길'과 '은이성지'가 표시된 이정목이 있는데,

이곳은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운구했던 '삼덕의길'이라는 순레길 코스다.


07:09 동쪽 하늘은 밝아오는데, 지나온 문수봉 사이의 계곡에 자리한 유류비축기지의 불빛은 아직도 경계 중이다.

 

 

07:12 낙엽 쌓인 등로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데,

 

작은 나무에 "망덕산"이란 코팅지가 걸려 있다.

 

 

07:24 낙엽 쌓인 능선길을 따르니 기상관측시설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게 되고,

네이버 지도에는 이곳을 바래기산(370m)로 표기하고 있는데, 우리가 가진 지도의 바래기산은 망덕고개를 지나서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편안한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

 

 

07:29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난다.

오늘 함께 산행에 나섰던 보성씨가 이 임도를 따라 먼저 하산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아마도 집안일 때문에 부인이 직접 차로 묵리까지 차를 운전해서 모시러 오기로 한 듯하다.

 

임도에서 본 가야할 해실이고개(망덕고개) 방향.

 

돌아본 임도. 보성씨는 임도를 따라 하산하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잘 찾아 내려 갈지 살짝 걱정이 된다.

 

 

삼덕의길 애덕고개. 김대건 신부 생전의 사목활동지였고, 사후의 유해운구 길인 '삼덕의길'에 있는 세 고개 중 하나로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순례길이기도 하다.

 

망덕고개/해실이고개. 김대건 신부 관련 비석들과 쉼터가 만들어져 있는데, 아마도 순례객들을 위한 것인 듯하다.

 

<김대건 신부의 碑文에 적힌 글귀>
이제 죽는 것도 천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니 바야흐로 나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이 시작하려 합니다. 망덕이란 천주 태워주신 초성덕행(超性德行)이다. 천주 예수의 공로를 보사 허락하신 천당 영복을 바라고 그 복을 얻기에 모든 성충을 천주의 성실하심과 자비하심을 인하여 굳이 바라는 덕이니라.

 

<김대건 신부>
1845년부터 1946년 중반까지 페레올 주교, 안다불뤼 신부, 김대건 신부 등 세 분의 성직자가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846년(헌종 12년) 5월 14일 김대건 신부는 주교로부터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사 영입 방도를 개척하라는 지시를 받고, 만주에서 기다리고 있는 메스트르 신부와 동료인 최양업 토마의 입국을 위해서 주교님의 편지와 입국할 때 사용할 해상지도를 가지고 백령도 해역 순위도로 갔다. 고기잡이 나온 중국 어선에게 편지와 지도를 전달하고 돌아오다가, 6월 5일 관헌들에게 체포되었다. 체포된지 10일이 되던 날 김대건 신부는 해주 감옥을 거쳐 6월 21일 서울로 압송되었다.
"사학죄인(邪學罪人) 김대건은 효수(梟首)토록 하라." 헌종실록 제13권은 김대건 신부에 대한 1846년 7월 25일의 최종판결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리고 사형집행을 미루다가 그해 9월 15일 헌종은 집행명령을 내려, 다음날 9월 16일 서울 한강 백사장인 새남터에서 집행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순교 직후 새남터 모래톱에 매장되었다. 순교한지 40여일 지난 10월 26일에 8명의 신자들이 김 신부님의 시신을 운구하여 미리내에 정식으로 매장하였다.

 

망덕고개(해실이고개) 비석.

 

<삼덕의길 망덕고개>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과 양지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해실이고개라고도 부른다. 삼덕의길은 천주교인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신 김대건(앙드레이) 신부의 시신을 서울 새남터에서 수습하여 양지 배미실(골배마을, 미리내성지)로 모시고 올 때 숨어 걸었던 일부 구간으로, 삼덕이란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필요한 믿음, 소망, 사랑의 세가지 덕목을 말한다. 배매실은 신부가 어려서 자라난 곳으로, 지금은 양지골프장 안에 한복에 갓을 쓴 입상이 세워져 있다.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 양지면 남곡리에 숨어 포교하던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 은이공소를 열었던 곳으로, 숨은 곳을 은리(隱理)로 부른다. 공소에서 형제봉 골짜기 해곡동에 신덕고개, 용해곡에는 망덕고개, 거문정에 애덕고개를 통하게 하였으며, 비석도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미리내성지로 통하는 삼덕고개를 잇는 성지순례길이다.

 

'차차차'라는 노래가 있나 보다. 아마도 천주교에서 부르는 찬송가쯤일까?

 

고개 이정표. 아마도 이곳이 호동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인가 보다.

 

<호동의 유래>

옛날 범안굴(호동)에 사는 호랑이가 국사봉(학 모양의 산)의 학을 잡아먹으려다 어둔이(운학동)에 용이 되려는 물고기를 잡아 신이 나서 물고기를 물고 먹거리(운학동)에서 먹으려는데, 별안간 하늘에서 벼락(운학동)을 치는 바람에 지레 놀래 혼비백산하여 장재미(운학동)에서 안심하고 맛있게 먹었는데 그 맛이 별미(해곡동)였다. 호랑이는 개울을 건너 용해곡(호동)에서 용을 만나, 용이 되려는 물고기를 잡아먹은 것을 후회하고, 문수봉(문수사지 마애불이 있음)을 향해 예직(호동)에서 예의를 갖추고 기도하니, 길업(호동) 좋은 업을 얻었다는 마을 이름으로 꾸며진 민담이 존재한다고 한다. <펌>


07:33 돌아본 망덕고개 전경.

 

 

07:34 장갑을 벗으면 금방 손이 아려 오는데, 시간이 되었다고 이곳에서 아침밥을 먹고 가잔다.

보성씨도 아침밥은 먹여서 이별해야 하니, 찬바람 잦아든 곳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07:49 식사를 마치고 보성씨를 보내는 아쉬움을 담는다.

어두운 새벽산행 3시간 참가를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던 보성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07:52 아침식사를 하느라 식어버린 몸을 덮이기 위해 오름길도 속보로 진행하여,

 

 

07:55 우리가 가진 지도 상 바레기산쯤을 지난다.

 

<바래기산(366.2m)>

용인시의 이동면과 호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지나온 기상관측 시설이 있던 봉우리와

이 봉우리 중 어느 쪽이 바래기산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08:00 우측 능선을 따라 그물망이 쳐진 곳도 지나며,

 

낙엽 쌓인 편안한 능선길을 이어가노라면,

 

 

08:04 삼각점이 있고 쇠 말목에 재주봉이라 표시된 봉우리에 도착한다.

아마도 지도 상 이곳이 굴암산쯤인 듯한데, 어느 게 맞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08:17 제주봉을 급하게 내려섰다가 다시 급경사를 오르는 사이에,

 

이제서야 지나온 봉우리 위로 아침햇살이 비친다. 이곳이 산중이라 해가 늦게 비춰드나 보다.

 

 

08:18 다시 봉우리 위로 올라서고,

 

 

08:31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넘는 와중에 좌측 아래로 신원CC가 내려다 보이고,

 

 

08:32 묘지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여,

 

가야 할 북쪽 방향으로 조망이 트인 묘지에서 잠시 쉼을 한다.

 

북쪽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방향.

 

 

08:40 좌측 아래로 신원CC의 클럽하우스도 내려다 보이고,

 

 

08:44 우전방으로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에 위치한 건설용 석재 채굴산업 현장도 가늠된다.

 

이제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편안한 능선길을 이어 가면,

 

 

08:50 우전방으로 은이산(363m)도 보인다.

 

은이산 방향.

 

 

09:01 편안한 능선길에 갑자기 나타나는 봉우리를 오르는 백두들.

 

 

09:02 송전탑이 자리한 374봉을 힘겹게 오르면,

 

 

09:06 북동 방향으로 이어진 송전탑들이 이어지는 가야 할 한남정맥 능선이 가늠된다.

 

따스한 햇살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추위와 싸우며 한남길을 가는 백두들.

 

 

09:07 한남정맥 능선이 분기하는 지점에서 잠시 쉼을 하고,

 

 

09:20 주변 한남정맥 능선에서는 한강수변구역이라 표시된 말뚝이 자주 눈에 띈다.

능선 우측에 떨어진 빗방울은 경안천으로 흘러 한강으로 유입되어서 그리 표시해 놓았나 추정한다.

 

 

09:20 잘 단장된 묘지를 지나는데, 우전방으로 시야가 트이며 위성용 접시안테나가 보인다.

 

당겨본 위성용 접시안테나.

 

에고 이 힘든 산행을 왜 따라와서는, 그래도 가야지여!

 

 

09:24 한남길은 다시 편안한 능선길로 이어지더니,

 

우측 아래로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이 내려다 보이고,

 

 

09:27 이내 염치고개에 도착한다.

 

<염치고개(鹽峙, 170m)>

용인시 이동면 염치마을과 호동마을을 잇는 고개다.

옛날 소금장수가 지게에 소금을 지고 고개를 넘다가 힘도 빠지고 배도 고파서 지게를 받치고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데, 멀리서 바가지 긁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숲속 묘지에 하얀 여우가 사람의 해골을 긁다 머리에 쓰면 사람으로 변하고, 벗으면 여우로 다시 변하고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그곳만을 보고 있는데, 여우는 사람으로 변장하고 마을로 내려 가는 것이 아닌가, 소금장수는 변장한 여우를 따라가 보니, 아랫마을에 결혼식을 올리는 집으로 들어 가는 게 아닌가, 소금장수는 이 집에 무슨 변고가 있을 것을 예감하고, 집 근처에서 집안을 시하는데, 밤이 으슥해 지자 신부가 기절하였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소금장수는 그러면 그렇지 하고 지게작대기를 들고 신부방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작대기로 때려잡으니 백여우로 변해 죽었다. 주인은 소금장수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많은 선물을 주어 즐겁게 고개를 넘었다는 전설이 있고, 소금장수가 넘었던 고개라 하여 염치(소금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염치고개 절개지에는 높다란 콘크리트 장벽이 있다.

 

 

09:31 염치고개를 지나서도 능선길은 편안하게 이어지다가,

 

 

09:45 잠시 후 소나무 그늘에 체육시설이 설치된 봉우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지나온 한남정맥 능선을 돌아보며,

 

아침 햇살에 제법 기온이 올라서 한결 여유로운 쉼을 한다.

 

 

09:46 성당입구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데, 천리의 요셉교회를 이르는 듯하다.

 

 

10:07 다시 낙엽 쌓인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지며,

 

 

10:09 파묘된 묘지터를 지나고,

 

 

10:14 빼곡히 자란 소나무 숲으로 들더니,

 

 

10:15 은화삼CC에서 우회길을 만들어 놓고, 골프장으로 진입을 말아 달라는 문구를 걸어 놓은 이정표를 만난다.

정맥길은 직진의 은화삼골프장으로 이어지지만, 좌측의 하늘색 화살표 방향 우회로를 따른다.

 

능선 위로 올라서면 우측 아래로 은화삼 골프장이 내려다 보인다.

 

한남길은 골프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동쪽 운학동의 형제봉 방향.

 

 

10:19 이곳에서 한남정맥은 녹색의 화살표 방향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좌측 방향의 우회길로 접어든다.

 

우회길을 따르다가 잠시 골프장에 들어가 돌아본 한남정맥 방향의 능선을 가늠해 본다.

 

골프장 안으로 이어진 한남능선과 계속 멀어지는 게 아쉬워서,

 

자꾸만 골프장 안쪽의 한남능선을 담아 본다.

 

 

10:31 골프장 우회길 마지막 봉우리쯤을 넘으면,

 

 

102:32 갈림길을 만나 좌측 뚜렷한 길은 능선 좌측으로 내려가고, 우측의 흔적이 희미한 길이 한남길이다.

 

 

10:35 잠시 후 우회길은 농로로 내려서게 되고,

 

 

10:38 좌측 농로를 따라 진행하면,

 

좌측 옹벽에 연화사라는 사찰 간판이 걸려 있고,

 

 

10:40 무너미고개로 이어지는 도로와 만나 우측 무너미고개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도로 옆 양지바른 건물 앞에서 잠시 배낭털이를 하며 알바 가신 분들이 있는지를 살피고,

 

 

102:49 무너미고개를 향한다.

 

한남정맥 능선을 품은 은화삼 골프장 정문을 지나고,

 

 

10:52 한남길은 성진철강 우측으로 진입하여 숲길로 들어서야 하지만,

잠시 더 도를 따라가서 좌측 지하통로 방향으로 진입해도 된다.

 

성진철강 뒤편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 능선을 더듬어 찾아 들어,

 

 

10:56 능선 위로 올라서면 45번 국도가 지나는 무네미고개가 내려다 보인다.

 

<무네미고개(水踰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과 이동면 천리 원촌마을의 경계 능선을 잇는 고개다. 비로 떨어진 물이 용인 쪽에 떨어지면 경안천을 통해 한강으로 흐르고, 송전 쪽에 떨어지면 안성천을 통해 서해로 들어가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무네미고개는 분수령(分水嶺)이 되어 물을 양쪽으로 나눈다는 뜻인데, 무네미 또는 무내미라고 하는 말은 '물넘이' 또는 '물이 넘어가는 곳'이란 뜻이 된다. 무네미를 한자로 적을 때 수여(水餘)가 되는데, 이는 물이 남는다는 뜻으로 이해해 붙인 표기이고, 현(峴)은 야트막한 고개에 주로 붙이는 고개 이름이다.

 

 

 

10:58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서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편한 우회길을 마다하고 정맥 능선을 따라오는 손지점장.

 

 

10:59 도로를 따라온 우회길과 만나,

 

57번 국도를 건너는 지하통로로 들어간다.

 

 

11:00 지하통로를 나오면 경남여객 용인 차고지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45번 국도를 끼고 평택 쪽으로 500m 정도 내려가다가 등로로 접어든다.

 

 

11:02 절개지 사면을 따라 능선으로 오르게 된다.

 

돌아본 무너미고개 용인 방향.

 

우측으로 신설 중인 도로공사 현장도 보인다.

 

 

11:07 절개지에서 돌아본 은화삼CC 방향으로 한남능선을 가늠해 본다.

 

용인 방향.

 

 

11:11 등로에 접어들어 조금 올라가니 전주유씨 종중묘지가 나타나는데,

 

큰 벼슬을 하신 분들의 비석이 즐비한데,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하신 분을 비롯하여 최소한 통덕랑을 지내신 분들이의 비석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명문가인 모양이다.

 

 

11:14 다시 전원주택단지 공사장 절개지로 오르고,

 

 

11:15 절개지 상단에서 바라본 북동(용인시 처인구) 방향.

 

 

11:19 절개지를 내려서니 차량들이 다닐 만큼 넓은 도로가 나타나고,

 

 

11:21 실향민들이 잠들어 있는 망향의 대성동산이 나타난다.

 

<망향의 대성동산>
함박산 아래에는 공동묘지 주차장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이북 실향민이 조성한 망향의 대성동산인, 공동묘지 주차장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시족면민회 망향의 대성동산이란 비석이 있다. 분단의 아픔은 이곳에도 있다. 가고 싶은 고향에 가지 못해 한을 남기고 간 이들의 안식처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시족면의 이선생께서 12,000평을 면민에게 기증하여, 실향민들이 죽어서라도 함께 살자는 아름다운 동산이다. 실향민의 아픔을 되새기며 통일을 기원해본다.

 


본격적인 함박산 오름길에 돌아본 은화삼CC 방향의 한남능선.

 

오늘 지나온 한남능선을 멀리까지 가늠해 보고,

 

은화삼CC 좌측의 전원주택단지도 조망한다.

 

 

11:30 함박산 오름길 송전탑 아래서 또 쉼을 하며 후미를 기다리며,

 

다시한번 지나온 한남능선을 가늠해 본다.

 

 

11:41 함박산 정상 도착.

 

<함박산(咸朴山, 434.6m)>

용인시 남동과 이동면 서리에 접해 있는 산으로, 명지대학 뒷산 구실을 하고 있다. 주위의 표고가 높은 지형 때문에 높아 보이지 않지만, 용인의 산 중에서는 높은 편의 산이다. 시내에 가까우면서도 독특함이나 개성이 없는 산이어서 찾는 이가 적고, 등산로가 확실치 않아 접하기가 쉽지 않다.

무너미고개까지 물이 넘쳐 이 일대 봉우리가 모두 물에 잠기고, 이 산 봉우리만 함지박만큼 남았다 하여 함박산이라 명명했다 한다. 물매가 사방으로 흐르는 함박산은 용인시의 정수리산 같다.


함박산 정상 증명을 남기고,

 

함박산을 뒤로한다.

 

 

11:54 함박산 능선 좌측 아래로 해솔리아CC가 내려다 보이고,

 

 

11:58 우측 아래로는 명지대 용인캠퍼스도 내려다 보인다.

 

 

12:06 명지대 방향 갈림길을 지나면,

 

 

12:17 가야 할 능선 좌측 사면을 차지한 서울공원묘원 너머로 용인대 캠퍼스 건물과 부아산이 보인다.

 

 

12:19 지적삼각점이 있는 338봉에 오르니 우측으로 조망이 시원스레 트이는데,

 

용인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너머 다음구간 가야 할 용인의 진산인 석성산도 보인다.

 

 

12:23 한남길은 서울공원묘원 가장자리 능선으로 이어지고,

 

 

12:30 공원묘원이 끝나는 지점쯤에 부아산 정상은 좌틀이라 표시된 이정표가 나온다.

 

 

12:35 용인대학교 교정과 골프 연습장 뒤로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부아산이 보인다.

 

<부아산(403.6m)>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애틋한 정과 슬픈 사연을 간직한 부아산을 오늘 마지막 길에서야 만나다. 부아산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시조 온조편에서 주몽(고구려 시조)의 곁을 떠난 비류와 온조가 오간 등 열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부아악에 올라 도읍이 될 만한 곳을 찾았다는 기록이 있는 산이다. 남쪽 서리 쪽에서 보면 산 모습이 산복사면이 둥글고 돌출되어 그 모습이 어린이를 업고 있는 형상에서 이름 지어진 산으로, 부아산(업을 부(負), 아이 아(兒))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고개를 지나는 321번 지방도 위에 놓인 생태통로 위로 내려선다.

 

남쪽 이동면 방향.

 

 

12:38 생태통로 위의 이정표.

한남길은 부아산 정상으로 이어지지만, 오늘 산행은 여기서 마치고 용인대 방향으로 내려선다.

 

용인대 방향 생태통로 위의 모습.

 

 

12:41 생태통로를 내려서며 바라본 용인대 방향.

 

321번 지방도에 내려서니 '학고개터널'이라는 명문석이 설치되어 있다.

 

<하고개>

하고개/학고개(삼거리 아래 고개라 하여 하고개로 더 알려져 있다)는 100여년 전의 '지명지지'에는 학(鶴)고개로 표시되어 있다. 학고개 또는 학터로도 불리는 하고개는, 고약한 양반에게 복수하려던 상놈의 꼬임에 넘어간 양반이 조상의 묘를 파내자 묘에서 학이 날아 올라가고, 그 후 양반집은 망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지금은 하고개 아래로 321번 도로가 지나는 터널이 뚫려있다. 이 고개는 생태통로 터널공사를 하면서 학고개로 명명했지만 실제는 삼가리 아래 있는 하고개로 알려진 고개다.

 

 

12:43 용인대 방향으로 잠시 내려서니 '부아산 등산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주차공간이 없어 용인대 정문 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향한다.

 

 

12:47 용인대 정문 옆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12:59 이곳에서 추위로 움츠려 든 몸을 녹이고,

 

 

13:51 점심 식사 장소인 본수원갈비로 이동한다.

 

오늘 산행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뒤풀이 참석을 위해 먼길을 달려오신 교화 형님을 만나,

 

 

14:04 푸짐한 갈비상을 거덜 낸다!

 

익고 있는 갈비들. 내 기억으로 수원갈비는 양념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생갈비를 준다.

 

 

15:37 본수원갈비로 긴 산행의 허기를 완전 해갈하고, 서울로 향한다.

 

새해 첫 산행을 마쳤다.

 

누가 그랬다.

산에 올라 본들 무슨 의미가 있냐?

 

그래서 물었다.

지금까지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내일은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