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지맥 1차(분기점~금단이고개) : 뜻밖의 눈(雪) 산행
산 행 지 : 천마지맥 1차(분기점/명덕삼거리~금단이고개) (경기도 포천시, 남양주시, 가평군)
산 행 일 : 2025. 01. 21.(화)
산행코스 : 명덕삼거리/천마지맥 분기점 ~ 서파교차로(47번국도) ~ 폐헬기장 ~ 벙커봉 ~ 안부 ~ 539봉(녹슨안테나) ~ 583봉(삼각점) ~ 641봉 ~ 개주산갈림길 ~ 사기막길 갈림길 ~ 베어스타운 갈림길 ~ 주금산(813.6m) ~ 축령단맥분기점 ~ 팔각정 ~ 775봉 ~ 665봉 ~ 안암절갈림길 ~ 605봉 ~ 송전탑 ~ 시루봉(650m) ~ 헬기장 ~ 금단이 고개 ~ 팔야리 (기맥 13.5km + 어프로치 3.5km = 17km, 8시간 소요)
산행참석 : 2명.
<산행지도>
◆ 천마지맥(天馬支脈) (한북)
▶개요
조종천과 양수리 북한강 서쪽, 남양주 왕숙천 동쪽 분수령인 천마지맥은 한북정맥 운악산(934.5m)과 수원산(711m) 사이의 424.7봉에서 동남쪽으로 분기해서 주금산(813.6m), 철마산(709.5m), 천마산(812m), 백봉(587m), 갑산(547m), 적갑산(561m), 예봉산(683.2m)을 거쳐 북한강과 남한강 합수점인 팔당호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9.4m의 산줄기이다. 수계로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왕숙천의 우측 산줄기라 하여 왕숙지맥이라 부른다.
천마지맥은 북한강 북쪽의 마지막 물막이 역할을 하며, 제일 높은 봉우리인 천마산(812m)의 이름을 따서 천마지맥이라고 명명했다. 천마지맥의 주금산(813.6m)에서 동쪽으로 분기한 축령분맥(祝靈分脈)은 조종천 서쪽 벽을 이루며 서리산, 축령산을 거쳐 깃대봉 직전에서 청평대교로 내려선다.
▶ 코스
명덕삼거리 분기점 ~ 서파교차로 ~ 539봉/안테나 ~ 583봉(삼각점) ~ 개주산(675m) 갈림길 ~ 사기막길 갈림길 ~ 주금산(813.6m) ~ 축령단맥 분기점 ~ 775봉H ~ 안암절갈림길 ~ 시루봉(650m) ~ 금단이고개 ~ 775봉 ~ 철마산 북봉(내마산, 786.8m) ~ 765봉 H ~ 길재 ~ 철마산(711m) ~ 쇠푸니고개 ~ 복두산갈림길 ~ 과라리고개 ~ 676봉 ~ 괄라리고개 ~ 천마산(812m) ~ 천마산스키장 ~ 403봉 ~ 마치고개 ~ 암봉(돌탑) ~ 백봉산(590m) ~묘적사 갈림길 ~ 341봉 ~ 수레넘어고개 ~ 339봉 ~ 해비치C.C입구 ~ 고래산(532m) 갈림길 ~ 먹치고개 ~ 갑산(546m) ~ 새재고개 ~ 새우젓고개 ~ 미덕고개 ~ 적갑산(564m) ~ 철문봉(630m) ~ 예봉산(679m) ~ 율리봉(597m) ~ 예빈산(직녀봉, 590m) ~ 견우봉(590m) ~ 승원봉(474m) ~ 능내천주교 공원묘지 ~ 능내리 ~ 팔당댐
▶ 개념도
지난해 산악회에서 9기맥 산행을 끝으로 마루금 산행을 마감하고 둘레길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코로나19 기간 동안 진행하였던 한북정맥의 지맥 산행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제반 여건과 교통편 미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2024년 마지막날 수락지맥 산행을 먼저 시작했다. 그 후 천마지맥 출발지점인 서파검문소까지 가는 교통편을 궁리해 보았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결국 자동차를 서파검문소 인근에 주차해 놓고 산행 후에 회수하기로 한다.
자차로 서파검문소로 가서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는 천마지맥 산행을 시작하여 철마산을 지나 쇠푸니고개까지 진행하려 했으나, 지맥 능선에 눈이 많이 쌓여 시간이 지체됨에 따라 금단이고개에서 팔야리로 탈출하여 택시로 서파검문소 앞 해장국집에 세워 두었던 차량을 회수하였는데, 진접 택시 기사의 예기로는 겨울철에 눈이 내리면 잘 녹지 않아 봄까지 쌓여 있게 된다고 한다. 겨울철에 서울 이북으로 산행을 간다면 배낭에 아이젠은 챙겨서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서울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 별다른 준비도 없이 서파검문소 해장국집에 도착하니 마당과 주변이 온통 눈이다. 아이젠도 가져오지 않았다며 걱정을 하고 있으려니 식당 쥔장이 어제도 눈이 내렸고 산에는 겨울 내내 눈이 쌓여 있다고 한다. 예까지 와서 아이젠이 없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라 가는 데까지 가 보기로 하고, 쥔장의 양해를 구해 차량을 주차장에 두고선 배낭을 메고 식당문을 나서서,
서파고가로 우측으로 내려가 좌틀하여 고가교 아래를 통과하여 직진의 56번 지방도를 잠시 오르니,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고 산꾼들만 아는 명덕삼거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명덕 삼거리>
서파교차로 지하차도를 지나 56번 지방도를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삼거리 갈림길로, 직진은 포천으로 넘어가는 길이며 우측은 화현면소재지 방향이다. 한북정맥 수원산 방향 들머리가 있는 곳으로 천마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는 사거리인 명덕삼거리에서 남쪽 한북정맥 수원산 방향 능선 들머리가 천마지맥 분기점으로,
천마지맥은 반대편 능선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천마지맥 들머리 능선이 온통 파헤쳐져 있다.
공사장 흙더미로 변한 능선을 치고 오르니 앞쪽으로 숲과 눈으로 덮인 지맥 능선이 나타나며,
그옛날 한북정맥 산행에서 올랐던 수원산 방향도 되돌아 보고는,
굉음을 내며 능선을 파헤치고 있는 굴삭기를 피해 눈 덮인 절개지를 올라,
오늘 지난 발자국도 있는 뚜렷한 능선 등로가 이어지는 지맥 능선에 접속하여,
철망 울타리가 이어진 좌측 능선 등로를 따라 진행한다.
여러 기의 묘비가 줄지어 있는 가족묘지를 지나니,
여름철에는 산꾼을 많이 괴롭혔을 잡초지대가 나오며 우측으로 포천시 내촌면 신팔리 윗마실쯤이 내려다 보이고,
좌.우로 밭이 보이는 야트막한 능선 안부를 지나 오르니,
주변 잡목들 사이에서 유독 한그루의 노송이 눈에 띄고,
잡목이 빼곡하여 지나기가 어려운 능선을 피해 우측으로 우회하여 인가로 내려서서,
골목길을 따라 나가니 서파검문소를 지나는 47번 국도가 나오고,
우측 내촌면 신팔리 서파검문소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바로 산으로 진입하게 된다.
<서파(西坡) 검문소>
경기도 포천 내촌면 신팔리에 있는 고개 지점이다. 남양주와 이동갈비로 유명한 이동과 일동을 연결하는 47번 국도가 지나며, 예전에 이곳 언덕에 섶나무가 많으므로 '섶'자와 '고개 파(坡)'자를 따서 '섶파'로 불리다가 구전되면서 서파(西坡)로 되어 한자표기인 서파(西坡)라고 불리고 있다. 또한 이곳의 지리적 위치가 수원산과 운악산의 산줄기가 만나는 곳으로 왕숙천, 조종천, 명덕천 등 세 갈래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이어서 坡(파)는 물결이 갈라진다는 의미로 波(파)로 써야 하며, 서는 닭의 둥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소(巢)의 한자표기가 잘못된 것이라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멧돼지 방제 철망울타리 문을 통과하여 다시 잠가 놓고는,
짐승조차 다닌 흔적이 없는 흰눈으로 덮인 등로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찍으며,
흰 이불을 덮고 있는 광산김공 묘지를 지나 뚜렷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빼곡히 식재된 잣나무숲으로 들어서고,
연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를 지나며 차츰 고도를 높이다가,
잠시 내려오니 넓은 공터가 나오면서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의 벙커봉으로 오르는 능선 오름길을 두고 좌측 사면길로 진행해도,
이내 다시 지맥 능선에 접속하게 되고,
다시 작은 봉우리를 오르면,
능선 우측이 벌목되어 시야가 트이지만,
연무로 우측 건너편의 한북정맥 수원산 능선조차 희미하다.
오름길인 북사면에는 많은 눈이 쌓여 있어서 오르기가 어렵고,
햇볕이 드는 남사면은 눈이 녹아 드러난 낙엽 속에 얼음을 감추고 있어서 조심조심 내려가,
한때 왕래가 많았던 듯 깊게 파인 옛고개를 지나,
다소 평탄해진 능선길을 따르다가,
능선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임도로 들어서게 된다.
평탄하고 널찍한 방화선 능선길을 따르는데,
능선 임도 우측 사면이 벌목되어 시야가 트이더니,
언뜻 보면 지맥이 우측 능선으로 이어질 듯 보이지만 임도가 이어지는 좌측 능선으로 들어서야 하고,
이내 따르던 편안한 임도를 두고 우측 능선 숲길로 들어서야 한다.
벙커가 있는 헬기장을 지나,
고도가 높아지며 더욱 깊게 쌓인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백발이 성성한 바위에게 인사도 건네며 오르니,
녹슨 군 안테나가 방치된 539봉(일명 안테나봉) 정상을 지나게 된다.
539봉을 지나며 다소 거칠어진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좌측 율길리 방향 등로 갈림길을 지나는데 최근에 여러 사람이 지난 흔적이 역력하고,
"그 많던 발자국은 어디로 갔을까?" 어느새 발자국이 자취를 감춰버린 눈길을 따라,
삼각점이 있는 583봉에 도착하여 산행 시작 2시간여 만에 처음으로 coffee Break를 가진다.
눈 덮인 바위들이 불거진 능선길을 따라,
바위 암릉을 내려서고,
잡풀이 자라난 방치된 헬기장도 지나,
안개가 옅어지며 드러난 햇살의 따스한 기운을 받으며 눈 덮힌 능선길을 따르는데,
고도가 오르면서 쌓인 눈의 깊이가 깊어지며 걷기에 부담을 주지만,
그나마 두텁게 쌓인 눈길을 지난 단 한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641봉을 지나니,
수많은 새들의 발자국이 어지러운 등로가 이어지다가,
좌측 개주산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는데,
주금산 방향 천마지맥 능선은 우측으로 약간 휘어져 1시 방향으로 이어진다.
<개주산(介胄山, 675m)>
경기도 가평군 상면 원흥리와 율길리와 상동리에 걸쳐져 있는 산으로, 산의 모양이 투구와 비슷하여 개주(介胄)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전해지는데, 개주는 갑주(甲胄)와 같은 말로 갑옷과 투구를 뜻한다.
앞쪽 나뭇가지 위로 어슴프레 보이는 주금산을 향하는데,
기러기와 같은 철새들의 발자국으로 눈덮인 등로가 어지러울 정도이고,
완만하던 등로가 제법 가팔라지며 가이드 로프도 설치된 오름길을 올라서면,
다시 완만한 능선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또다시 등로에 어지러이 찍힌 발자국의 정체가 몹시도 궁금하고,
선답자의 표지기가 걸린 작은 봉우리를 넘으니,
커다란 바위암릉을 만나서 좌회하여 지나게 되고,
이내 다시 능선길로 복귀하여 완만해진 능선길을 따르게 된다.
능선에 불뚝 솟은 바위를 힘차게 지나니,
연무를 뚫고 주금산이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지만,
작은 봉우리를 연이어 넘으로 800m 거리의 주금산 정상을 향해 차츰 고도를 높여간다.
눈길에 작은 봉우리가 연이어져 주금산과의 거리가 쉬이 좁혀지지 않지만,
짐승들 족적조차 찍히지 않은 눈덮인 능선길을 따라,
눈덮인 암릉에서 길찾기에 많은 시간을 쏟기도 하고,
어떤 봉우리는 높지도 않지만 뚜렷한 우회길을 따라 쉬이 지나기도 하다가,
제법 긴 오르막을 올라서니,
많은 발자국이 이어진 우측 베어스타운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 뚜렷한 족적을 따라 주금산 정상 방향으로 진행하면,
두 개의 정상석과 등산안내도, 이정표가 있는 주금산 정상에 도착하여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한다.
<주금산(鑄錦山, 813.6m)>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소학리와 가평군 상면 상동리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여지도서』에 "주금산(鑄金山)은 포천현(抱川縣)의 남쪽 35리에 있고 가평 운악산에서 뻗어온 산줄기이다."라고 되어 있다. 심산유곡에 울창한 천연수림, 계곡마다 옥수가 흐르고 덩굴식물들이 얽혀 헤어날 수 없는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 하고 있으며, 그 밀림 속에 만발한 기화요초의 봄 경치와 만수홍엽의 단풍으로 수놓은 절경을 헤치고 험한 길을 타고 오르면 주봉에 오른다.
주금산은 운악산 내맥으로 주봉은 속칭 '독바위'라고 부르는데 높이 100여 m의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그 정상에 서면 남으로 금단산 연봉이 이어져 있고, 포천시· 남양주시 일대는 물론 가평군 상면과 하면 일대와 멀리 도봉산 · 삼각산 · 서울특별시와 한강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망원경과도 같다. 『청구도』 등에는 주금산(鑄金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조선지형도』에는 주금산(鑄錦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비단산으로 불리는 주금산은 옛적엔 불기산(佛岐山)으로도 불렸다. 지금도 가평 상동리에 불기골, 불기마을, 불기고개가 있다. 불기고개는 불귀고개(돌아오지 못하는 고개)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불기고개를 혼자 넘어선 안 된다고 할 만큼 여우나 늑대가 많은 첩첩산중이었다. 가평군지를 보면, 상면 상동리의‘돌아우마을’은 혼자 고개를 넘는 선비를 “돌아오우, 돌아오우”하고 애타게 불렀으나 그냥 넘었다가 ‘짐승 밥’이 됐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증보문헌비고>에 주금산은 '鑄金山'(주금산)이라고 표기되었으나 일제 침략 이후부터 '鑄錦山'(주금산)이 되었다. 주금산에는 '배바위'가 있었다. '배바위가 있는 후미진 곳'이라는 뜻의 '배구미'와 '배그미'를 거쳐 한자로 표기할 때 '舟金山'(주금산)으로 되었다가 그 후 다시 '鑄金山'(주금산)이 되고 일본인들에 의해 '鑄錦山'(주금산)으로 정착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주금산의 뜻을 '칼이 달리는, 또는 달리는 칼...'등에 비유하거나 '비단'과 연관 지어서 해석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한자로만 뜻풀이를 한 결과로써 원래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일본인들이 이름 붙인 '鑄(쇠 부어 만들 주) 錦(비단 금) 山'에서 그 뜻을 쉽게 해석하기가 어렵다.
풍수지리학으로 볼 때 내촌면의 주산(主山)이 되며 내촌면 대부분의 지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주금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정상(頂上)부의 모습이 장군의 투구같기도 하며, 독(항아리) 같기도 하다 하여 독바위라고도 불린다. 현재 쓰이고 있는 주금산의 한자표기는 비단과 주물이라는 말로 이것은 앞뒤가 서로 어울리는 말이라 볼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을 달리 해석을 하면 칼이 달린다는 말인 走劍(주검)의 한자표기가 잘못된 것인데, 이러한 일은 실제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이것은 그러한 뜻이 아니라 칼을 휘두른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해석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이름이 생긴 이유는 이 산자락에 보검출갑형(寶劍出匣形)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며, 보검출갑이란 칼을 칼집에서 뽑은 형상을 말하는 것이며 칼을 뽑은 이유는 휘두르기 위함이며, 휘두른다는 말을 한자로 쓰다보니 달리 확실하게 표현할 말이 없어 가장 비슷한 의미를 찾은 것이 칼이 달린다는 의미의 글자를 쓴 것이라 하겠다.(펌)
주금상 정상 남측 사면에서 따스한 햇살을 쬐며 간단히 점심까지 때우고서,
철마산 방향 지맥능선을 따르다가 전망이 좋을 듯한 암릉을 올라보기도 하며,
까칠한 바위 절벽길을 조심조심 지나서,
등로 좌측에 우뚝 솟은 전망봉우리에 오르면,
주금산 정상부가 숲으로 둘러싸여 아쉬웠던 부분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트이는데,
오늘은 옅은 안개구름이 끼여 있어서 조망이 시원치 않음이 아쉽기만 하다.
전망봉을 돌아나와 잠시 능선길을 따르면,
주금산 등산 안내판과 이정표가 있는 축령단맥 분기점을 지나게 되는데,
축령단맥은 좌틀하여 이어지고 천마지맥은 직진으로 진행하여,
<축령단맥(祝靈短脈)이란?>
한북정맥이 운악산을 지나 수원산 어깨에서 한줄기를 내어 천마지맥을 만들고 천마지맥 주금산 독바위 직전의 795봉(암봉)에서 한줄기를 만들어 서리산, 축령산, 은두봉, 깃대봉을 지나 46번 국도상 은고개를 통과하여 115봉을 올랐다 내려서서 조종천변 안말에서 끝이 나는 산줄기를 말한다. 조종천과 수동천을 가르는 산줄기로 북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예외 없이 조종천으로 흘러들고, 남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대부분 수동천으로 합류하여 두 강 모두 북한강으로 합쳐진다. 도상거리 약 23.1㎞ (접근 약 4㎞, 단맥 19.1㎞)
<축령산(879m)>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외방리, 가평군 상면 행현리에 있는 산으로 일명 비룡산이라고도 한다. 축령산은 한북정맥이 가평의 화악산, 명지산, 운악산 등으로 이어지며 뻗어 나오다가, 남양주 땅에 접어들면서 한강을 앞에 두고 주춤하면서 일군 암산이다. 산 정상에는 누에가 뽕을 먹는 형상의 30m 높이의 누에머리 바위가 있어 등산객들로부터 큰 각광을 받고 있다.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나뉘어 있다. 즉 이성계 관련설과 세조 관련설이다.
고려말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사냥 왔다가 유독 축령산에서만 짐승이 잘 잡히지 않아 한 마리의 짐승도 잡지 못하고 돌아온 몰이꾼들의 말이 이산은 신령하니 산제를 올려야 한다고 하여 이튿날 산 정상에서 제를 지낸 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재빠른 동작으로 사냥을 하게 되는데, 이 빠른 동작이 마치 용이 나는 듯하다는 의미에서 비룡산이라 했다.
일명 비룡산(飛龍山)이라고 부르는 이 산은 해발 879m의 높은 산으로 비룡골에서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비룡산이라고도 한다. 일찍이 조선조 제7대 왕인 세조(世祖)가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나, 천도(天道)를 어겼다는 양심적 뉘우침이 못된 병으로 발산되어 고생하다가 급기야는 비룡산에 빌어 쾌유했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인 듯싶다.
좌측 축령지맥 분기점 이정표에 이어 우측 독바위 방향 이정표를 지나면 나무 기동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까칠한 절벽길을 밧줄을 잡고 내려서면,
우측 능골(내4리) 마을 방향 갈림길이 있는 팔각정을 지나,
상당히 넓은 헬기장이 있는 775봉에 올라서게 되는데,
지나온 주금산 방향으로 거대한 바위암봉인 독바위(좌)와 점시 전에 올랐던 전망봉(우)이 멋지게 조망된다.
<독바위(790m)>
옛사람들이 덕(德)의 상징이라 하여 德岩(덕암/덕바위)이라 불렀다고 한다. 근처에서 보면 기이하면서도 웅장하게 생겼지만, 친근감을 주어 무엇인가 의지하고 싶은 심정이 생긴다고 하여 덕(德)이 있는 바위라고 지어졌다고 하며, 달리 독바위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바위의 형상이 먼 곳에서 보면 흡사 독(甕)과 같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주금산은 본래 내촌면 주민들이 ‘비단산’ 또는 독바위산으로 불렀던 산으로, 1980년대에 이 산을 찾았을 때만 해도 토박이 주민들 중 수대째 살아온 분들은 주금산을 문의하면 대부분 ‘그런 이름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월간 山)
비단산이라는 이름은 내촌에서 올려다 보이는 산릉들이 마치 펄럭이는 비단 천처럼 보인다고 해서, 독바위산 이름은 정상 남쪽에 우뚝 솟은 암봉에서 유래되었다. 이 암봉은 마치 큰 독(일명 옹기·瓮器)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이라 전해진다.
775봉 헬기장을 가로질러 내리막길을 내려서다가 넓은 안부에 벤치가 자리한 곳에서 좌측 사면으로 진행하여,
바위 암릉을 좌회하여 지나고,
다시 능선길에 접속하여 잠시 진행하다가,
앞을 막아서는 바위를 피해 좌측으로 진행하면,
바위절벽을 내려서는 밧줄이 메여 있고,
다시 완만해진 능선길을 따르다가,
등로 좌측의 멋진 소나무 쉼터를 지나면,
우측 음현리 방향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 산림 안내판이 있는 쉼터봉을 넘게 되는데,
음현리 등산로 입구 옆에 안양절터가 있어서 안양절 갈림길이라고도 한다.
<안양절 터>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로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향적산(香積山)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견성지(堅城志)』와 『범우고(梵宇攷)』에 폐사되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8세기 후반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내촌면사무소로부터 남쪽으로 약 2리(里) 떨어져 있는 내리(內里)에 있다. 지역 안에는 기와 파편, 사기편 등이 흩어져 있다. 그 밖에 초석(礎石) 일부가 잔존한다. 그곳 사람들은 안양사라고 불러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국립공원을 제외한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송전탑(No87)을 지나,
잣나무쯤을 심어 놓은 예전 송전탑 설치를 위해 닦았던 임도를 따르면,
이내 좌측 불기고개와 하산길(비금리 몽골문화촌)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 좌측으로도 무심코 널찍한 등로를 따르다가는 알바하기 좋은 곳이다.(독도주의)
<불기고개>
가평군 상면과 남양주시 수동면을 이어주는 387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다. 불기고개는 불귀고개(돌아오지 못하는 고개)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불기고개를 혼자 넘어선 안 된다고 할 만큼 여우나 늑대가 많은 첩첩산중이었다. 가평군지를 보면, 상면 상동리의 ‘돌아우마을’은 혼자 고개를 넘는 선비를 “돌아오우, 돌아오우”하고 애타게 불렀으나 그냥 넘었다가 ‘짐승 밥’이 됐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능선 가운데를 차지한 그늘이 좋을 듯한 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 쉼터를 없는 듯이 지나서,
물푸레나무 군락지 안내판이 있는 능선 봉우리도 넘고,
<물푸레나무 군락지>
물푸레나무과(―科 Oleaceae)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꽃말은 겸손과 열심이다. 키는 10m까지 자라지만, 가지가 많이 나오며 이들이 모여 자라기 때문에 관목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회색빛이 도는 갈색이다. 잎은 마주나고 날개깃처럼 갈라져 5~7장의 잔잎으로 이루어졌으며 잔잎은 긴 난형(卵形)이다.
잎의 앞쪽은 초록색이며 털이 없으나 뒤쪽은 회색빛이 도는 초록색이고 주맥(主脈)에 털이 있다. 꽃은 5월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총상(總狀)꽃차례를 이루어 피는데, 때때로 암술과 수술이 모두 한 꽃에 피는 양성화(兩性花)로 피기도 한다. 꽃차례는 올해 만들어진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다. 꽃받침은 4갈래로 갈라졌으며, 수꽃은 2갈래로 나뉜 수술과 꽃받침으로, 암꽃은 꽃잎 2~4장과 수술 및 암술로 되어 있다. 열매는 시과(翅果)로서 9월에 익으며, 염증을 없애거나, 경기(驚氣)를 다스리거나, 또는 눈을 맑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
물푸레나무와 비슷한 들메나무와 함께 나무가 단단하고 무거우며 질기고 탄력이 좋아 건축재, 농구(農具) 자루, 악기 재료로도 쓰이는데, 이전에는 도리깨를 만드는 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요즈음에는 야구방망이 재료로 흔히 쓰고 있다. 나무를 말리지 않아도 쉽게 타므로 땔감으로도 널리 쓰였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물건리에 있는 물푸레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8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닥 도움도 안 되는 이정표를 지나서,
많은 적설 때문으로 보이는 가이드 로프가 설치된 봉우리를 넘고,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오름길을 오르면,
이정표와 벤치가 설치되어 있는 시루봉(650m)에 도착하게 되는데,
어떤 지도에는 비금산 시루봉으로, 또 어떤 지도에는 철마산 시루봉으로 표시되어 있다.
<시루봉(630m)>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과 포천시 내촌면의 경계의 시루봉은 떡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 시루봉이라 한다.
시루봉을 뒤로하고 작은 봉우리가 연이어지기는 하지만 완만하게 고도를 낮추어 가는 능선길을 따라,
지난번 폭설로 부러져 등로에 누워버린 소나무를 피하며 능선길을 이어가다가,
"나무들의 약속 / 김명수"라는 시판이 걸린 다산길 이정표를 지나면,
< 나무들의 약속 -김명수- >
숲 속 나무들의 봄날 약속은
다 같이 초록 잎을 피워 내는 것
숲 속 나무들의 여름 약속은
다 같이 우쭐우쭐 키가 크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가을 약속은
다 같이 곱게 곱게 단풍 드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겨울 약속은
다 같이 눈보라를 견뎌 내는 것
방화선을 만들어 놓은 능선 등로가 이어진다.
방화선이 설치되었어도 작은 봉우리는 연속되고,
아래로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수동터널이 지나는 안부를 지나서 오르면,
조금 더 덩치가 커진 봉우리들이 나타나며 눈길에 지친 산꾼을 힘겹게 하고,
잡목과 잡초로 덮인 헬기장을 지나서 잠시 오르면,
좌측 내방리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게 되는데,
철마산까지는 4km 이상이 남았음에도 다산길 이정표에 1.7km로 표시된 철마산은 내마산을 가리키는 듯하고,
<다산길>
경기도 남양주에서 개설한 13개 코스의 트레일이다. 다산길은 남양주에서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정약용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산책길이다. 정약용은 강진에서 고향인 남양주로 돌아와 환갑이 되기 전까지 ‘열수(洌水)’라는 별호를 사용했다. 열수는 조선 시대에 한강을 이르는 말로 한강을 품은 풍경을 사랑했던 정약용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경기옛길(평해길)과 전반적인 코스는 비슷해 보이지만 마재마을을 거쳐 정약용유적지와 다산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을 통해 정약용선생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벤치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며, 오늘은 눈 때문에 지체되어 목표 지점인 쇠푸니고개까지 진행하면 힘도 달리거니와 시간도 너무 늦어질 듯하여 금단이고개에서 우측 팔야리로 탈출하기로 한다.
벤치 쉼터에서 쉬면서 금단이고개에서 탈출하기로 결정하자 갑자기 다리에 힘이 솟아 벤치 쉼터를 뒤로하고,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따라,
꽤 널찍한 헬기장을 지나서 작은 봉우리도 넘으며 완만하게 내려가면,
좌.우로 수레길 수준의 뚜렷한 갈림길이 나 있는 금단이/검단이 고개에 도착하여,
<금단이고개>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리 수동계곡과 대경대학교가 위치한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팔야리 검단마을 사이의 고개이다. 진접읍 팔야리(八夜里)는 이태조가 함흥에 있다가 귀환하는 도중 이곳에서 여덟 밤을 묵고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수동계곡 상류는 비금계곡으로 연결되고 몽골문화촌이 위치해 있다.
<비금(秘琴)계곡>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수동계곡 상단 비금리에 있는 계곡으로, 비금리(秘琴里)라는 마을은 '배그미'에서 변한 '비그미'를 한자로 옮긴 말이다. 비금계곡은 옛날에 선비들이 주금산에 놀러왔다가 거문고를 감춰 놓았다고 해서 비금계곡이라 불린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또다른 설은 인접한 포천과 가평 쪽에서 금을 찾으러 이곳까지 찾아들었으나 금맥이 숨어버렸다'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천마지맥 잇기는 멈추고 우측 팔야리로 하산키로 하는데,
비금이고개 다산길 이정표에는 정약용의 "하피첩" 글귀가 보인다.
<정약용 필적 하피첩(丁若鏞 筆蹟 霞帔帖)>
『정약용 필적 하피첩』은 정약용(호는 다산(茶山), 1762~1836)이 강진에 유배되고 얼마 후 아내 홍씨부인이 바래고 해진 치맛감 여러 폭을 부쳐온 것을 잘라서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구절을 직접 짓고 써준 것이다. 제작연대는 경오년 즉 1810년(순조 10) 7월과 9월로 그의 나이 49세 때였다.
이 서첩의 수량은 원래 네 첩이었으나 현재 세 첩만 알려져 있다. 현재의 《하피첩》3첩은 그 하나가 결락된 셈인데, 각첩 표지에 ‘하피첩’이란 제목은 좀 남아 있으나 그 아래의 ‘첩 순서’[帖次]는 탈락되어 몇 번째 첩이 없는지를 알 수 있다. 《하피첩》3첩은 그중 두 첩에 각각 1810년 7월[首秋]과 1810년 9월[菊秋]의 서문이 있어 강진 유배시절인 1810년 기년작이란 점에 의미가 있다. 또 원래의 네 첩 모두가 전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세 첩 중에는 "두 아들에게 경계하는 구절을 지어 써주다[作戒語以遺二子”ㆍ“寫戒子句]"라는 서문이 있어 정약용이 직접 짓고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강진 유배 이후 정약용의 전형적인 행초서풍을 보여주며, 특히 세번째 첩에 실린 전서(篆書)와 예서(隸書)는 다른 서첩에서 좀처럼 볼 수 없다.
<하피첩(霞陂帖)에 부쳐>
病妻寄敞裙(병처기산군) 병든 아내가 해진 치마를 보내왔네
千里託心素(천리탁심소) 천리 먼 길 애틋한 정을 담았네.
歲久紅己褪(세구홍기퇴) 흘러간 세월에 붉은빛 다 바래서
恨然念哀暮(한연염쇠모) 만년에 슬픔을 가눌 수가 없구나.
栽成小書帖(재위소서첩) 마름질로 작은 서첩을 만들어
聊寫戒子句(요사계자구) 아들을 일깨우는 글을 적는다.
庶幾念二親(서기염이친) 부디 어버이 마음을 잘 헤아려
終身鐫肺腑(종신호폐부)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려무나.
팔야리 방향 하산길 들어서면 흰 눈에 덮여 있지만 뚜렷한 길흔적이 좌측 사면으로 이어지다가,
천마지맥 능선에서 서쪽 팔야리로 이어진 지능선에 접속하여,
지능선으로 이어진 뚜렷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게 되고,
잠시 암릉지대도 지나게 되더니,
다산길 거문고길 구간 이정표도 보이고,
떨어진 다산길 이정표도 보이는 뚜렷한 길흔적을 따라 내려서다가,
급경사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면,
쓰러진 나무들로 거칠어진 낙엽송 조림지대를 지나게 된다.
능선 우측으로 뚜렷한 임도의 흔적이 이어진 지점에서 계속 직진의 등로를 따라,
다소 완만해진 낙엽송 조림지대를 내려가면,
임도에 접속하게 되고,
광릉CC 내 카트 도로 아래 통로를 통과하여 우측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택시로 접근하면 회차 가능 장소쯤을 지나고,
팔야로 대승인터컴 입구 사거리에서 스틱을 접고,
카카오택시로 서파검문소 앞 해장국집으로 이동하여 세워뒀던 차량을 회수하여 귀갓길에 올라,
차량을 주차시키고서야 족발집에서 소맥으로 뜻하지 않은 눈산행의 피로를 잊는다.
돌이켜 보면 천마지맥 산행의 교통편을 어떻게 할 것인지.
코스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을 가지고 차일피일 미뤘던 날들이 길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작을 하면 "시작이 반"이라고 계속 진행하는데 최선을 다하게 된다.
매사에 심사숙고도 필요하지만
모호함이나 불확실한 부분은 직접 부딪혀 보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