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남파랑길 3,4코스(영도대교입구~감천사거리~ 신평동교차로), 부산시.
산 행 일 : 2025. 01. 11.(토)
산행코스 : 남파랑길 3코스(14.9km) + 4코스( 21.8km) = 36.7km, 11시간 예상)
- 시점 : 영도대교입구/중구관광안내소 (부산 중구 태종로 8)
- 3.4코스 분기점 : 감천사거리/감천나누리파크입구 (부산 사하구 감천동 447-6)
- 종점 : 신평동교차 (부산 사하구 신평동 642-17)
산행참석 : 20백두.
<남파랑길 3코스(14.9km)>
▶ 영도대교입구~6.3Km~송도해수욕장~2.1Km~암남공원~6.5Km~감천사거리
: 영도대교 입구 ~ 용두산공원 ~ 깡통시장 ~ 국제시장 ~ 자갈치시장 ~ 충무동 새벽시장 ~ 송도 케이블카 ~ 송도 구름산책로 ~ 송도해수욕장 ~ 현인광장 ~ 송도해안볼레길입구(폐쇄) ~ 뉴질랜드 참전기념석 ~ 암남공원 정문 ~ 포구나무 쉼터 ~ 두도 전망대 ~ 암남공원 후문 ~ 암남공원로 ~ 감천초교 ~ 감천 사거리(3코스 종점)
▶ 개요
- 부산의 가장 떠오르는 관광명소인 송도해상케이블카와 송도해수욕장, 암남공원, 감천항까지 이어지는 코스.
- 부산의 유명 관광지들을 둘러볼 수 있는 다채로운 코스이자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바다와 자연을 어우르는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구간.
- 부산 갈맷길 4-1코스가 포함되어 있는 코스.
▶ 볼거리
- 부산의 유명한 관광지인 용두산공원, 국제시장, 활기찬 '자갈치 수산시장' 등.
- 우리나라 제1호 해수욕장으로 동양의 나폴리라고 칭송받을 만큼 아름다운 해안선이 유명한 '송도해수욕장'.
- 두도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숲과 해안절경이 어우러진 '암남공원’
- 단층면의 윗부분이 아래로 떨어진 정단층을 만날 수 있는 '지질생태탐방로'
<남파랑길 4코스( 21.8km)>
▶ 감천사거리~6.8Km~다대포항~4.8Km~다대포해수욕장~7.6Km~장림포구~2.6Km~신평동교차로
: 감천 사거리 ~ 감천항 ~ 구평동 당산목·당집 ~ 두송로 ~ 두송반도 전망대 갈림길 ~ 두송중학교 ~ 다대포 낫개항 ~ 다대포 재래시장 ~ 몰운대 입구 ~ 화손대 갈림길 ~ 몰운대 ~ 다대포 동헌(회원관) ~ 다대포 해변공원 ~ 고우니 생태길 ~ 아미산 노을 마루길 ~ 아미산 전망대 ~ 아미산 둘레길 ~ 장림2교 ~ 장림항/부네치아 ~ 을숙도대교 아래 ~ 신평동 교차로(4코스 종점)
▶ 개요
- 몰운대, 다대포 해변공원, 아미산 전망대를 거쳐 사하구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주요 자원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코스
- 기암괴석과 해송으로 우거진 숲, 수려한 모래해안으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국가지질공원에 포함된 몰운대와 일몰 명소 아미산 전망대가 포함된 부산의 각광받는 관광명소
- 다대포항을 지나면서 어촌 골목 곳곳을 구경할 수 있으며 해송이 우거진 숲길이 있는 몰운대가 있어 걷기 좋은 최고의 코스
- 부산의 갈맷길 4-1, 4-2코스가 포함된 코스
▶ 볼거리
- 확 트인 바다 경치를 볼 수 있는 '두송반도전망대'와 멸치 떼를 볼 수 있는 '야망대'
- 화려한 조명과 음악과 함께 작동되는 꿈의 낙조 분수가 있어 낭만적인 야간관광 명소 '다대포 해수욕장'
- 낙동강 하구를 조망할 수 있는 일몰 명소 '아미산 전망대'
<산행지도>
지난해 12월 둘째 주에 시작한 남파랑길 1~2구간 트레킹이 예상보다 훨씬 다채롭고 흥미진진했었기에 금번 3~4코스 트레킹에 대한 기대를 키우며 기다리다가, 사실 매년 첫 산행은 해맞이 특별 산행을 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5년 1월 첫 산행으로 남파랑길 3~4코스 트레킹을 진행하기로 한다. 다만 지난 남파랑길 1~2코스 트레킹에서 시간상의 제약으로 트레킹이 주마간산 격으로 진행되었던 아쉬움이 있었기에, 좀 더 장거리이기인 금번 남파랑길 부산구간 3~4코스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고 산행 버스에 오른다.
부산의 최고 번화가와 영도를 왕래하는 차량과 인파로 넘쳐나던 영도대교였지만,
한겨울 새벽시간이라 그런지 가로등 불빛만이 사라진 인적을 찾아 헤매는 영도대교 입구에 도착하여,
'굶어 죽는 거지는 있어도 얼어 죽는 거지는 없다'는 부산임에도 한겨울 추위를 고려한 복장을 갖추고,
영도대교 입구 남파랑길 3코스 출발지점 안내판이 자리한 중구관광안내소 앞에서,
38km라는 기~인 트레킹에 대한 우려보다 커진 남파랑길 3, 4코스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리며 트레킹에 나선다.
남포동, 중앙동, 광복동이 만나는 옛시청교차로 횡단보도를 건너 Coffee Bean 좌측 도로로 들어서는데,
우측으로 옛 부산시청 터에 자리한 불꺼진 '롯데몰 광복점'이 도로 건너로 커다랗게 보이며,
좌측으로는 부산의 명동이라 일컬어지는 광복동 거리가 펼쳐지고,
남파랑길은 용두산 공원을 향해 광복로97번길로 이어진다.
인적은 간곳없고 네온싸인 불빛만이 훤히 밝혀진 '광복로 97번길'을 따라 들어가다가,
'이마트 24' 편의점 앞 사거리에서 좌틀하여 용두산공원(부산타워)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면,
부산타워로 오르는 계단길이 나오는데,
계단길 입구 좌측에는 '약조제찰비'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약조제찰비(約條製札碑)>
약조제찰비는 조선 숙종 9년(1683)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윤지완이 쓰시마섬주와 왜관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처리를 놓고 5개 조항에 달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돌아와,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초량왜관(1678년~1876년)은 조선과 일본의 외교 무역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양국 산인의 접촉이 많아지고 밀무역과 거래가 금지된 품목의 거래가 늘어나면서 조선과 일본 양국이 약조를 맺은 뒤 그 내용을 간추려 한문과 일본어로 새긴 뒤 왜관 수문(守門) 앞에 세웠던 것이 약조제찰비다. 비석에는 가로로 ‘약조제찰(約條制札)’이라고 큰 글씨로 적혀 있고, 그 아래에 세로로 5개 조항과 약조 제찰 내용 및 건립 연월이 적혀 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1. 대소사를 막론하고 금표한 정계 밖으로 뛰쳐나와 침범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1. 노부세(路浮稅: 통행 수수료)[倭債]는 현장에서 잡은 후에는 준 자와 받은 자 모두 사형에 처한다. 1. 개시(開市) 때 각방에 숨어 들어가 몰래 서로 매매한 자는 피차 사형에 처한다. 1. 5일 잡물을 들여보낼 때 색리(色吏)·고자(庫子)·소통사(小通事) 등을 일본인들이 일체 끌어내어 구타하지 못하도록 한다. 1. 피차의 범죄인은 모두 왜관 밖에서 형을 집행한다. 왜관에 있는 모든 자는 만약 용무가 있으면 관수에게 보고한 후에 통찰[통행증]을 직접 소지하여야 훈도·별차가 있는 곳에 왕래할 수 있다. 각 조의 제찰을 써서 왜관에 세워 이로써 준수할 규정으로 삼는다. 계해 팔월 일.』
이 비는 숙종 9년(1683) 8월에 세운 비로, 원래 초량 왜관이 있던 용두산 공원에 있었는데, 1978년 부산광역시립 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
계단을 올라 용두산공원으로 들어서면 캄캄한 하늘을 배경으로 조명 빛을 받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이고,
<용두산(龍頭山, 51.3m) 공원>
용두산은 부산 시내에 있는 구릉으로서 부산 3명산 중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하여 송현산(松峴山)이라 하였다가, 그 후 산세가 흡사 용(龍) 모양이어서 일본에서 건너오는 왜구들을 삼켜버릴 기상이라 하여 용두산(龍頭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8·15광복 전에는 일본인들이 신사(神社)를 세웠던 산이며, 지금은 척화비 · 충혼탑 · 4.19의거 기념탑 · 이충무공 동상 등이 있고, 부산타워가 세워졌다. 6·25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산꼭대기까지 판잣집을 짓고 살았는데 대화재가 발생, 피난민 판자촌 약 1,093채를 불태우고 8,000여 이재민을 낸 뒤 이 산은 헐벗은 상태로 방치되었다.[일제 때 신사참배를 거부해 두 번이나 옥살이를 한 민영석이란 사람이 해방 후 옥살이에 대한 보복으로 신사에 불을 질렀는데, 때마침 불어 온 강풍으로 인해 판자촌 일대가 몽땅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1955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공원(雩南公園)'이라 명명하고 지금 공원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 제막식을 거행하였는데, 4.19혁명 이후 다시 용두산공원으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일명 부산탑이라 불리는 용두산공원 부산타워는 용두산 정상에 높이 120m로 1973년 말에 준공되었다. 또한 1997년 12월 시민들의 모금운동을 통해 '부산 시민의 종'을 건립하였으며, 매년 제야의 종 타종 등 3회에 걸쳐 타종을 한다. (안내판)
'이순신 장군 동상'과 '부산시민의 종' 좌측으로 휘돌아 나가다가 부산타워를 돌아보고,
<부산타워>
용두산 부산타워는 진로그룹의 도원관광에서 설립해 1973년 부산시에 기부채납으로 기증한 전망대이다. 설립 당시 이름은 부산탑(釜山㗳)이며, 전망대는 경주 다보탑의 건축미를 참고하였고 전망대에 올라가는 탑 부분은 항구도시 부산을 상징하는 등대 형상으로 지어졌다. 설계는 홍익대 나상기 교수가 했으며, 1976년에는 국내 최대 규모 수족관도 설치되었다.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2가 용두산공원에 위치해 있는 관광 탑이자 20세기 항도 부산을 대외에 나타내는 핵심 시설이었다. 지금은 공원을 비롯해 탑이 노후화되었고 광안대교나 해운대 도심 등의 다른 화려한 랜드마크가 많이 생겨 주로 광안리나 해운대 일대 풍경이 21세기의 부산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더 많이 쓰이는데다 전망대로서도 이젠 그리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줄어들었고, 현지인들도 부산타워를 딱히 자랑거리로 내세우지는 않는 편이다. 부산 지역 명물 중 하나로서 1973년 완성되었으며 남산서울타워(일명 남산타워)보다 2년 앞서 준공되었다.
탑의 높이는 120m이며 용두산(51.3m)이라는 작은 산 꼭대기에서 120m가 시작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좀 더 높아 보인다. 부산타워 전망대에서 부산항과 영도, 남포동과 자갈치 시장 등 부산시 중구 일대를 바라보는 전망이 뛰어나며 특히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날씨가 좋은 날에는 대마도까지 조망된다고 한다.
용두산공원 꽃시계는 1973년 10월 만들어졌으며 2000년 6월에 재단장하였다. 직경은 5m이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침이 있는 꽃시계로 용두산공원의 상징적인 장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용두산 공원 남쪽에서 서쪽 아래로 내려서는데,
커다란 나무들이 환송을 나온 듯 도열하여 지키고 있고,
용두산공원 안내도가 자리한 북서편 출입구로 나서게 된다.
대청로 용두산어귀삼거리에서 좌틀하여 예전에 미 문화원이었던 '부산근대역사관'을 지나,
<부산근대역사관(釜山近代歷史館)>
부산 근대 역사관은 부산의 근현대 역사와 관련한 유물을 보관·전시·연구하는 부산광역시립 박물관 산하 박물관으로, 부산 지역에 현존하는 대표적인 일제 강점기 서양식 건물이다. 2001년 5월 16일에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구(舊)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건물로 건립되어, 미 군정 이후 미국 문화원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999년 대한민국에 반환되었다. 이후 부산시는 일제 식민 기구로서의 건립 과정과 미 군정 등 외세를 상징하는 건물의 역사성에 주목하여, 2001년에 부산 근대 역사관 조성 사업을 결정하고, 개보수 공사 및 꾸미기 공사를 거쳐 2003년 7월에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별전 · 근현대 자료 발굴 · 문화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식민 통치와 미 군정 등 외세로 점철된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 교육 기관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좌측으로 '광복로 패션거리'로 이어지는 '광복중앙로'를 지나고 직진의 책방 골목 방향으로 진행하여,
'대청 사거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길을 건너 책방거리인 '보수서점' 우측 골목으로 들어서니,
한밤중이라 문을 닫은 중고책 서점들이 연이어지고,
<보수동 책방 골목>
보수동 책방 골목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함경북도에서 피난 온 한 부부가 최초로 헌 잡지 등을 팔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보문서점(현 글방 쉼터)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70여 점포가 들어서 있었다. 피난 왔던 예술인들은 용두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일과였고 보수동 책방 골목을 단골로 드나들었다. 보수동 책방 골목은 문화의 거리, 추억의 거리로 기억되어 왔으며 헌 책이 새 주인을 만나 새롭게 태어나는 재탄생의 창조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안내판)
인적 없는 헌책방 골목길을 지나 사거리에서 좌측 중앙 화단이 있는 길로 좌틀하여,
'대청로'를 다시 건너 '깡통시장' 방향으로 진행하려는데 맞은편에서 뒤따라 오던 즐산팀이 기다리고(왜?) 있다.
대청로를 건너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기다리던 즐산팀에게 "어디로 가시게요?"라는 인사를 건네며,
어두컴컴한 '깡통시장' 입구로 들어서서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모습을 연상하며 횡~한 '부평 깡통시장'을 통과하여,
<부평 깡통시장>
부평 깡통시장은 부산의 중심에 자리한 전통시장으로 국제시장, 자갈치시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이다. 용두산공원 주변의 부평동, 광복동, 남포동, 신창동 등 오늘날의 부산 중구에 해당되는 지역은 개항되기 전까지 강의 입구에 위치해 갈대밭과 풀밭이 많은 지역으로 '샛디'라고 불렸다. '부평'이라는 말은 부산의 옛 지명인 부산(富山)과 하구의 갈대밭과 풀밭을 의미하는 평(平)이 합쳐진 말인데, 1876년 강화도조약에 의한 개항 이후에 일본인들이 대거 중구 지역에 이주하면서 시가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곳은 일본 문화와 일본인들이 도입한 서양 문화가 활발하게 유입된 지역으로 그 그 대표적인 사례가 극장이다.
부평동에는 원래 '사거리시장'이 열리고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그곳에서 장을 보게 되면서 '일한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사설시장이 개설되었다. 이 사설시장이 1915년 일제가 정한 시장규칙에 따라 부산부에서 운영하는 공설시장으로 바뀌었고, 장옥도 새롭게 정비해서 '부평정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국내 최초의 공설시장으로 1920년대 들어 시장의 규모를 넓혀가며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해방으로 일본인들이 물러간 이후에는 '부평시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과 과자를 비롯해 다양한 물품들을 팔면서 '깡통시장'이라는 별칭을 얻어 장세를 키웠다.
부평 시장은 1970년대 베트남전쟁 특수로 크게 성장했는데, 당시 미군의 전투식량인 시레이션(C-ration)을 비롯한 다양한 외국 물품들을 판매하면서 깡통시장의 이름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또 1970년대 이후에는 일본을 통해 세계 각국의 물자를 들여와 판매해 큰 인기를 끌었다. 2013년에는 국내 최초로 야시장을 개설해 세계의 전통음식들과 먹을거리를 팔면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부평 2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다가,
'국제시장 사거리'에서 좌틀하여 다른 도로와는 달리 아직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광복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좌측으로 '국제시장 거리'가 길게 이어져 있고,
'조명의 거리'와 '만물의 거리' 등의 아치형 입구 조형물을 차례로 지나,
<국제시장 '아리랑 거리'>
6·25 전쟁 시기인 1950년에 피난민들이 중구 신창동 3가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하여 국제시장이 형성되었다. 당시 미군의 군용 물자와 함께 밀수입된 온갖 상품들이 거래되었기 때문에 국제시장은 일명 ‘도떼기시장’으로 불린다. 국제시장 주변으로 특정 품목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밀집되었는데, 이 중 전통 공예품 및 특산품을 비롯하여 의류, 신발, 연예인 상품 등 특색 있는 점포 104곳이 밀집되어 특히 해외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거리가 바로 ‘아리랑 거리’이다.
'아리랑 거리'라는 아치 조형물이 있는 광복동 먹자골목에서 우틀하여,
'BIFF 광장' 방향으로 우틀하여 아치형 루미나리에가 설치된 'BIFF 거리'를 지나는데,
거리 좌측에는 롯데시네마 대영관이, 우측에는 부산극장이 자리하고 있고,
<남포동 BIFF 거리(남포동 6가 74-1)>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이 깃든 장소이며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심지 남포동에 조성된 영화 문화거리로, 이 부근에만 4개의 상영관이 자리한다. 보도블록 위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제작자 춘사 나운규에 대한 기록이나 영화계 거장들의 핸드프린팅이 길게 이어져 있는 모습에서 영화의 거리임을 실감할 수 있다.
부산 중구 남포동 일대는 일제 강점기부터 영화의 거리였다. 1914년에 영화 상설관 ‘욱관(旭館)’이 경영을 개시한 이후에 보래관(寶來館), 초량좌(草梁座), 행좌(幸座), 부산극장 등이 들어섰다. 특히 이곳은 1924년에 한국 최초의 영화 제작사였던 조선 키네마 주식회사가 설립되는 등 한국 영화의 시발점이라는 의미가 있다. 8·15 광복 이후에도 이곳에는 극장들이 자리를 잡아 1960년대에는 20여 개소의 극장이 밀집되었다. 1996년부터 부산 국제 영화제[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가 개최되면서 극장가를 새롭게 단장하고 그 일대를 자연스럽게 부산국제영화제의 이니셜을 따 'PIFF 광장'으로 부르게 되었고, 2010년에 부산의 영어 표기가 ‘Pusan’에서 ‘Busan’으로 바뀜에 따라 PIFF 광장의 명칭도 BIFF 광장으로 변경되었다. 처음에는 조형물 등이 많지 않았으나 중구청이 BIFF 광장을 재정비하여 상징 조형물, 핸드프린팅, 원형 스타 문양 등이 들어서게 되었다. 2006년에 영화제 기간 중 야외무대가 해운대로 이전하였고, 2011년부터는 해운대 센텀 시티에 전용 극장인 ‘두레라움’이 건립됨으로써 중구 남포동에서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고, 다만 BIFF 전야제 행사만 개최하고 있다.
'BIFF 거리'를 지나 지하철 1호선이 지하로 지나는 '구덕로'를 건너 '자갈치시장'으로 진행한다.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이 있는 남포동의 옛 이름은 남빈(南濱)이었다. 남빈은 '남쪽의 물가'라는 뜻으로 주먹 크기의 굵은 자갈들이 해안가에 깔려 있는 아름다운 어촌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매립과 매축을 통해 남항이 건설되면서 포구, 항구가 있다는 뜻의 남포(南浦)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는 남빈정으로 불렸고, 남포동이 된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때 남항 주변에는 부산수산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어시장과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세운 부산 어업조합이 있었다. 1935년에는 공설시장인 중앙도매시장이 개설되면서 수산물의 집산과 유통을 통제했다. 한편 시장을 중심한 해안 일대에는 소형 고기잡이배를 통해 잡힌 해산물을 파는 노점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훗날 자갈치시장으로 이어진다. 예전에 해안가에 널려 있던 자갈과 어시장에서 팔리던 물고기를 의미하는 ‘치’ 자가 붙어 자갈치라는 이름이 되었다.
해방과 한국전쟁 때 수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밀려들었고, 생계를 위해 시장 주변에서 노점을 형성했다. 해안가에는 부산어패류 처리장 건물을 중심으로 판자로 지은 가게들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노점들로 이루어진 시장이 형성되었다. 부산시는 한국전쟁 이후 판자촌을 정비하고, 1969년에 건물을 지어 1970년 자갈치시장을 개설했고, 1972년 '자갈치시장'으로 정식으로 시장 등록을 하였다.
1985년에 큰 화재가 발생해서 점포 231개가 소실되었는데, 다음 해 현대식 건물로 개축해서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06년에 다시 현대식 건물로 리모델링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대식 건물로 개축된 자갈치시장 입구를 지나 우틀하여 자갈치시장 골목으로 진입하면,
<자갈치시장 '판때기 장수'의 난전>
자갈치시장에는 과거 노점의 전통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는데, 이른바 ‘판때기 장수’라고 부르는 아주머니들이다. 시장 동쪽에는 살아있는 곰장어를 구워 파는 판때기 장수가 있고, 해삼과 멍게를 파는 판때기 장수, 삶은 고래고기를 눈앞에서 썰어주는 판때기 장수, 미역이나 톳 나물 등을 파는 판때기 장수들이 촘촘하게 자리를 깔고 앉아 장사를 한다.
판때기는 널빤지의 속어로 노점을 가리킨다. 즉, 널빤지로 좌판을 만들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판때기 장수들이다. 줄지어 있는 판때기 장수들의 모습은 다른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광경이다. 흔히 자갈치 아지매로 불리는 판때기 장수들이야말로 자갈치시장의 실제적인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밤중이라 파는 이도, 사는 이도 없이 회~앵한 '판때기 장수'의 난전이 길게 줄지어 있고,
자갈치 판때기시장을 지나자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는 '충무동 해안시장'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말 그대로 새벽시장이라 그런지 벌써 가게 문을 열고 일과를 시작하는 부지런한 상점들도 보이고,
새벽시장 난전을 지나다 보면 좌측으로 '충무동 새벽시장 전망대' 표지판이 보이지만,
영도와 남항대교 야경을 보려고 전망대 출입구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를 않고,
<충무동 새벽시장>
50년 넘은 노후 시설과 열악한 환경으로 어려움을 겪던 부산 서구 충무동 새벽시장이 최근 중소 벤처기업부 '2020년 전통시장 및 상점가 지원 사업' 공모에서 시설 현대화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어, 사업비 약 24억 원을 투입하여 시장 내 '김해 골목'에 비 가림 시설인 길이 256m 폭 5.5m 규모 아케이드를 설치하였다. 부산 최대 상권에 위치한 충무동 새벽시장에는 농·수산물, 정육, 각종 반찬류를 주로 판매하는 310개 도·소매 점포가 상권을 이루고 있다.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한 데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아 하루 유동인구가 1만 5천 명으로 전통시장으로서 뛰어난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다.
현대화된 '충무동 새벽시장' 안으로 들어서서 벌써 하루 일과를 시작한 상점들의 부산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반대편 출입구로 나가 '충무대로'에 접속하여서는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좌측의 '부산 공동어시장'을 지나게 되는데,
<부산공동어시장>
부산공동 어시장은 수산업 협동조합을 비롯한 5개 조합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어시장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직된 부산 어업조합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963년 부산종합 어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이 개설되었다가 1971년에 부산공동 어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63년 개설 당시에는 부산항 제1부두에 있었지만 부산항이 북항과 남항으로 나뉘고, 북항이 무역 전용 항구로 바뀌면서 1973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부산공동 어시장은 100t급 어선 48척이 계류할 수 있는 항만 시설과 냉동공장, 위판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전국을 상권으로 하고 있다. 부산공동 어시장에서 출하되는 어류들은 부산, 서울, 대구의 순서로 많이 팔려나간다. 현재 부산 수산업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기려 불을 피워 놓고 일과를 시작하는 분이 그저 운동 나온 사람으로 보이는 우리를 살짝 부끄럽게 느껴지게끔 한다.
충무대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나가는 지점 좌측 리모델링 중인 주유소 자리를 지나며 바로 좌틀하여,
부산 남항 해변 방파제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하는데,
정면으로 검은 하늘에서 내리꽂힌 듯한 고층빌딩숲이 나타나며,
좌측의 키보다 높은 방파제로 인해 거인국에 들어선 걸리버의 느낌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고,
교량 위로 오르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송도 '남항대교' 아래를 통과하여,
우측으로 휘어지는 방파제 옆 도로를 따르는데,
도로 건너 우측 편으로 '송도해상케이블카'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송도해상케이블카>
송도해상케이블카는 우리나라 제1호 공설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의 옛 명성을 되살리기 위한 복원사업을 통해 2017년 6월 ‘부산에어크루즈’라는 브랜드로 재탄생하였다. 최고 86m 높이에서 송도해수욕장 동쪽 송림공원에서 서쪽 암남공원까지 1.62km 바다 위를 가로질러 운행함으로써 바다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짜릿함과 동시에 송도해수욕장, 부산 영도와 남항대교, 송도 해안둘레길, 파도치는 기암절벽까지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아울러 거대한 공룡들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다이노 어드벤처’와 국내 최초의 케이블카 뮤지엄 ‘송도도펠마이어월드’, 아시아 최초의 공중그네 ‘VR스카이스윙’ 등 다양한 체험시설과 테마시설을 통해 관광형 케이블카로써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북섬에서 등대 방향으로 이어져 나오는 '송도 구름 산책로'가 불을 밝힌채 하늘에 떠 있고,
<송도 거북섬(龜島)>
거북섬(龜島)은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의 송도해수욕장 동쪽 앞바다에 위치한 바위섬으로, 북쪽으로 소나무로 뒤덮인 송림 공원과 마주하고 있다. 면적은 3,129㎡로 섬의 모양이 거북과 닮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북섬은 본래 바다로 둘러싸여 있던 소나무가 자생하는 낮고 작은 섬으로 송도(松島)라고도 불렸다.
일제 강점기 일본 거류민들에 의해 송도해수욕장이 개발되고 ‘수정(水亭)’이란 휴게소가 설치되기도 했으나, 현재 옛 모습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거북섬 둘레에 남은 반석으로 옛날의 윤곽만을 추정할 수 있다. 1970~80년대에는 다이빙대와 보트, 송도 주위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오르내렸던 케이블카, 송도와 거북섬을 연결한 구름[흔들] 다리가 있어 신혼부부들의 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다. 현재는 부산광역시 서구청의 송도지역 관광지 종합개발계획으로 주변환경 정비가 이루어졌다. 구름다리는 2002년 4월 철거되고 70m의 연륙교로 바뀌었으며, 한때 거북 바위 위에 난립했던 음식점들도 철거되었다. 섬 주위의 갯벌은 조개를 채취할 수 있게 만들어졌으며, 거북섬 위의 콘크리트 구조물도 모두 정비되어 송림 공원과 함께 해안 친수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거북섬으로 이어지는 '송도 구름다리 산책로' 입구를 지나,
<거북섬에 얽힌 '어부와 용왕 딸의 사랑 이야기'>
『옛날 송도에 홀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시는 효성이 지극한 어부가 살았는데 고기잡이하러 바다로 나갔다가 큰 파도를 만나 용이 산다는 용굴로 잠시 피신을 하였다. 바다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던 어부는 큰 상처를 입고 용굴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용왕의 딸로 송도 앞바다를 지키는 용이었는데, 악행을 일삼는 바다 괴물과 싸우다가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어부는 육지를 오가며 약초를 구해와 그 여인을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이에 감동한 여인은 어부를 사랑하게 되었고, 두 사람을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용왕은 처음에는 노하였지만 이들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된 뒤에는 결혼을 허락하고, 딸에게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용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달의 기운을 받아 천 일을 기도하되 햇빛을 보면 안 된다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달빛이 스며드는 용굴 안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한 지 999일째 되는 날 갑자기 나타난 바다 괴물에게 쫓겨 그만 햇빛을 보고 만다. 결국 용왕의 딸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용인 인용이 되고 만다. 뒤늦게 배를 타고 온 어부는 괴물과 싸워 괴물의 가슴에 칼을 꽂아 죽였지만 어부도 상처를 입고 송도 깊은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 용왕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죽은 어부를 거북바위로 만들어 영생하게 하였고, 이들의 사랑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거북섬을 찾는 남녀에게 사랑을 이루게 해 주고, 또한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는 재복과 장수를 준다고 한다.』
작은 보트들이 쉬고 있는 접안 시설을 지나면,
'송도거북섬 데마휴양공간' 안내판이 있는 스카이워크 입구를 지나게 되는데, 야간이라 거북섬과 스카이워크가 닫혀 있기도 하지만 시간적인 제약으로 야경조차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쳐야 한다는 게 무척이나 아쉽기만 하고,
이내 야간이라 더욱 아름다운 초승달 모양의 백사장이 펼쳐지는 송도해수욕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송도해수욕장(松島海水浴場)>
송도해수욕장은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1913년에 개장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 해수욕장으로, 부산에 거류하던 일본인들이 송도유원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해수욕장을 개발한 것이 시초이다. 1987년과 2003년에 태풍 ‘셀마’와 ‘매미’로 인해 다이빙대가 유실되는 등 피해가 발생하여 해수욕장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기도 하였다. 2013년에 해수욕장 개장 100주년을 기념하여 송도 100년 사 편찬, 추억의 다이빙대 복원, 전국 해양스포츠제전, 국제 콘퍼런스 등의 사업이 펼쳐졌다.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은 길이 약 800m, 너비 약 50m에 달한다. 해수욕장의 파도가 조용하고 물이 깊지 않아 천혜의 해수욕장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송도해수욕장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모래가 전혀 없기 때문에 백사장 유지를 위해서는 매년 모래를 공급해야 한다.
송도라는 명칭의 유래는 해수욕장 주변의 산에 소나무가 많이 자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거북섬에 소나무가 많아 송도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는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작은 반도를 야망대(夜望臺)라 불렀는데 이곳에 소나무가 울창하다는 데에서 송도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고도 하며, 송도로 불리기 이전에는 거북섬으로 불렸다고 한다.
낮보다 더 멋진 송도해수욕장을 전세라도 낸 듯이 홀로 누리며,
송도해수욕장 탐방객들에게 인기 만점일 듯한 포토존을 독차지하기도 하고,
밝게 빛나는 북극곰이 어슬렁거리는 분수대를 지나다가 좌측 백사장을 보면,
'대한민국 1호 공설 해수욕장 / SONGDO'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딱! 살기 좋은 도시 서구"라는 글귀에 일부 동감을 표하며,
아침식사 장소로 검토했다가 너무 이른 시간에 지나게 됨에 따라 포기한 돼지국밥 식당을 지나니,
'신라의 달밤'으로 유명한 '현인' 동상이 세워진 '현인 광장'을 지나게 된다.
<현인 광장>
송도해수욕장 녹지공간에 들어선 500㎡ 규모의 이 광장에는 부산시 영도구 영선동 1가에서 태어난 현인(玄仁, 1919~2002) 선생의 동상과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등 대표곡과 고인의 약력을 새긴 노래비가 있다. 현인 선생의 대형사진과 그의 대표곡을 감상할 수 있는 노래감상쉼터도 있다.
잠시 전의 "딱! 살기 좋은 도시 서구"의 그 '서구'를 종단하는 트레킹 숲길이 있다는 안내판을 지나,
<서구 종단 트레킹 숲길>
서구 종단 트레킹 숲길은 도심에서 쉽게 접근 가능하고 이야기와 재미가 있고, 구덕산, 천마산, 암남공원 등의 멋진 풍광과 다양한 산림자원을 연결하여 부산시민들이 찾는 대표적 트레킹 숲길이다. 총 15km의 코스는 꽃마을에서 ~ 구덕산 ~ 시약산 ~ 부민산 ~ 천마산 ~ 장군산 ~ 진정산 ~ 암남공원 ~ 송도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문화·경관·건강·휴식의 복합테마 트레킹 숲길이다.
둥그렇게 여럿이 모여 즐길 수 있는 쉼터를 지나는데,
이제 막 찾아올 방문객들을 위해 주변을 청소하는 분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고,
5년째 보수 협의중이라 폐쇄되어 있는 송도 해안볼레길 안내도 앞을 지나면,
<송도해안볼레길(현재 폐쇄 중)>
송도해안볼레길은 부산 갈맷길 4코스 1구간 중 송도해수욕장에서 암남공원 일주로를 거쳐 암남공원 입구까지의 구간으로 특히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해변, 항구, 바다와 기암, 숲길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해안산책로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에서 시작해 국내 최초의 해상 조각품인 고래조형등대, 가수 현인 선생의 동상을 지나, 해변 끝에 위치한 송도포구에 다다른다. 포구와 작은 공원을 지나면 국가지질공원 안내소가 나오고 송도해안 볼레길의 백미인 붉은 계단으로 이어지는 송도 해안산책로가 시작된다. 송도 해안산책로는 붉은 계단과 다리가 기암절벽 위로 끊어질 듯 이어진다. 이 산책로는 구름다리처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산책로와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푸르고 시원한 바다와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마치 내가 바다의 어느 일부분이 된 것 같은 짜릿한 착각마저 느끼게 해 준다. 해안산책로 끝에는 국가지질공원이 위치해 있다. 이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3대 자연환경 보전제도 중 하나로, 눈이 아리도록 붉게 펼쳐진 암반은 붉은 계단, 다리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송도해수욕장을 비롯해 조각품, 전망대, 산책로 등과 울창한 삼림을 자랑하는 산과 푸르고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송도해안 볼레길은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바라보며 오염되지 않는 청정한 삼림욕을 즐길 수 있으며, 원시자연공원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우측으로 '송도 100주년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송도 100주년 기념공원>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 개장 100주년을 맞아 해상 케이블카, 구름다리, 해상 다이빙대, 포장 유선[해상 놀잇배] 등 송도해수욕장 4대 명물의 미니어처와 100주년 기념 상징 조형물 등을 전시하는 기념공원이 2013년 개장되었다. 해상 케이블카는 1964년 우리나라 최초로 420m 구간의 해상 케이블카가 운행되었고, 구름다리는 1965년에 송림공원에서 거북섬 간 150m 길이로 설치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이용했지만 시설 노후 및 잦은 태풍 피해로 2002년 4월 철거되었다.
예상보다 잘 꾸며진 송도를 "밝은 대낮에 재방문 확정!"이라 다짐하며 송도해양레포츠센터를 지나,
갈맷길 이정표와 서구 관광안내도가 있는 '오션파크 광장'으로 좌틀하여 들어서면,
이러저러한 조형물들이 장식하고 있는 넓은 광장이 펼쳐지고,
송도 오션파크 광장의 'Sing a 송도' 조형물과 달과 토끼 형상 조형물 앞을 지나자,
송도 오션파크에서 바라보는 해안 전경 안내판이 설명해 주는 송도해수욕장과 영도 방향 야경이 멋지게 펼쳐진다.
송도오션파크를 나서자 송도어항으로도 불리는 암남항이 나오는데,
접안시설이 이어지는 직진의 송도 파출소 방향이 해안산책길(해안볼레길)로 이어지지만,
해안산책길(해안볼레길)이 2020년 호우와 태풍 피해 복구공사를 추진하다가 토지 소유자의 해안산책로 철거 요구가 접수되어 5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협의 중에 있어서 아직도 폐쇄된 상태라 우측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암남공원로를 따라 암남공원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부산 지질공원의 멋진 절경을 볼 수 없다는 무거운 아쉬움을 짊어지고 우측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
암남공원로에 접속하여 암남공원 방향인 좌측으로 진행한다.
좌측 어둠에 싸인 부산 지질공원의 멋진 절경을 상상하며 암남공원로를 따라,
소설가이자 아동문학가인 손동인(孫東仁)의 '아침' 시비를 지나면,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 기념석인 거북 바위(The Turtle Rock)를 지나게 되고,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기념석/거북 바위(The Turtle Rock)>
거북 바위(The Turtle Rock)는 1950년 12월 31일 6․25전쟁에 참전한 뉴질랜드 「SS올몬드」 군함이 부산에 도착하여 첫번째 캠프를 설치한 송도를 기념하기 위하여 뉴질랜드 오클랜드로부터 전달받은 '거북이' 형상의 기념석이다.
잠시 더 도로를 따르다가 암남공원 정류장을 지나 암남공원 삼거리로 진행하여,
좌측 도로 건너편의 '암남공원' 표지석을 따라 좌측 도로로 조금 내려서서 암남공원 정문에 도착하니,
암남공원 입구에는 '암남공원 안내도'와 그 뒤에 ‘안드레아스 킬린’의 <열린 문> 조각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암남공원(岩南公園)>
암남공원은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 진정산 일대에 조성된 자연공원으로, 군사 보호 구역에 묶여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7년 4월 시민들에게 완전히 개방되었다. ‘암남’이라는 지명은 아미골, 아미산의 남쪽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암남공원에는 용이 살았다고 전하는 용굴, 사람의 콧구멍과 같이 두 개의 굴이 나란히 있는 코굴 등 10여 개의 해식 동굴이 있다. 공원에는 부산 비엔날레에 출품된 조각 작품[14점], 광장 2곳, 구름다리, 팔각 정자, 낚시터, 전망대, 관리 사무소,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등의 체육 시설을 비롯하여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 밖에도 공원의 해안선 일대에는 공룡 발자국과 신석기시대 흔적이 남아 있다.
암남공원은 산책로 1.9㎞, 해안 산책로 1.2㎞를 포함하여 총면적이 553,277㎡이다. 천혜의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암남공원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해안을 따라 바다를 보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약 1억 년 전 형성된 퇴적암, 원시림, 100여 종의 야생화와 370여 종의 식물 등 도심에서 보기 드문 자연 생태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원시 자연공원으로, 해양성 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암남공원 입구로 들어서서 잠시 오르면 암남공원에서 바다 건너 동섬 상부를 연결하는 127m의 '송도 용궁 구름다리' 입구가 나오는데, 아직 오픈을 하려면 3시간이나 기다려야 하기에 용궁구름다리와 동섬 탐방은 후일을 기약하고,
<용궁 구름다리>
송도 용궁 구름다리는 1965년에 송림공원에서 거북섬 간 150m 길이로 설치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이용했지만 시설 노후 및 잦은 태풍 피해로 2002년 4월 철거되었던 송도구름다리를 18년 만에 다시 재건축한 것이다. 암남공원에서 바다 건너 작은 무인도인 동섬 상부를 연결하는 길이 127m, 폭 2m의 송도 용궁 구름다리는 바다 위를 걷는 짜릿함과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바다 풍광, 기암절벽이 빚어내는 천혜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으며, 야간경관조명이 설치돼 밤에는 바다에 떠있는 신기루와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관광도시 부산 서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정표의 두도전망데크(1.45km) 방향 계단길로 진행한다.
산책로 좌측 편에 추락 방지용 펜스가 설치된 산책로를 따라,
작은 지계곡을 넘는 흔들다리를 건너서 이정표의 두도전망대 방향으로 좌틀하여 진행하고,
해안절벽인 좌측 편에 가드 로프가 설치된 숲길을 진행하여,
'동백나무길 전망대'에 도착하니 데크 전망대에는 설명판과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고,
전망대 앞바다에는 선박들의 묘박지라서 많은 배들이 불을 밝힌 채 정박해 있다.
안내판의 제1전망대로 표시된 '동백나무길 전망대'를 뒤로하고 침목 계단길을 오르니,
바위를 깎아 길은 낸 지능선 마루쯤을 지나는데,
조망이 트이며 좌.후방으로 영도 봉래산과 태종대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 보이고,
뚜렷한 침목 계단길을 만나 좌측 아래로 내려서다가,
이내 다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두도전망대( 0.82km) 방향 사면길을 따라 진행하면,
팽나무 고목이 있는 '포구나무 쉼터'를 지나게 된다.
<포구나무 쉼터>
이곳 암남공원 포구나무(일명: 팽나무)는 예부터 나무꾼이나 나물 캐는 처녀는 물론 해안가 초병들이 유일하게 식수를 구할 수 있었던 장소였다. 또 그 옛날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아낙네들이 고개 너머 이곳 포구나무 아래까지 찾아와서 먼바다로 떠난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흰색, 붉은색 천을 나무에 두르고 시원한 샘물 한 잔을 정화수로 받쳐 기원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팽나무는 남부 지방에서는 폭나무, 포구나무 등으로 불리며, 제주에서는 폭낭으로 불리는데, 민가 근처 평지에서 자란다. 포구 나무란 이름은 주로 포구(浦口)에서 방풍림으로 많이 심었기 때문에 인간과는 늘 함께해 온 친숙한 나무이면서, 고목은 마을의 당산나무로도 여겨지는 나무다.
산행거리는 길고 귀경 시간은 다가오는지라 잠시의 다리쉼도 아껴야 할 상황이라,
멋진 쉼터도 본체만체 그냥 지나쳐 가드 로프가 설치된 좁은 벼랑길을 따르다가,
희망정에서 두도 전망대로 이어지는 능선길에 접속하여 좌측 두도 전망데크(0.8km) 방향으로 내려서니,
제법 가파른 침목 계단길이 길게 이어지다가,
사랑계단 포토존이라는 하트 모양 게이트 조형물이 있는 두도전망대 갈림길 안부에 내려서게 되는데,
이곳 안부에서 직진의 두도 전망대를 다녀와서 우측 암남공원 후문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8천만 년 전 이곳은? - 하부다대포층>
약 8~7천만 년 전 송도 반도 지역에는 지각이 벌어지고 갈라지면서 그릇 모양의 다대포 분지가 만들어졌고, 이 분지에는 다대포층이라는 퇴적층이 쌓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흐르는 강이 자주 범람하면서 하부다대포층이 이 분지에 퇴적되고 그 후 분지가 깊어지면서 호수로 변화하여 상부다대포층이 쌓이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하부다대포층이 해안절벽을 따라 연속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하부다대포층은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강에서 운반된 퇴적물이 퇴적된 붉은색의 사암 및 실트암, 회색의 역암이 교대로 나타난다. 화산성 물질이 많은 상부다대포층과는 달리, 화산성 물질의 함량이 적은 특징을 보인다. 붉은색 지층에서는 환원점, 생물교란 구조, 캘크리트 등의 다양한 지질 기록과 역암에서는 쳐트편, 사층리, 깎고메운구조 등의 흥미로운 지질 기록을 관찰할 수 있다.
※ 쳐트 : 스페인 지명 Chert/ Xert에서 처음 이 암석이 추출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규질 미화석(방산충 연니, 규조질 퇴적물 등)이 석화한 것으로 굳고 단단해서 원시인들이 불을 만들 때 사용한 부싯돌(flint)이라고도 한다. 또한 원시인들이 이 돌로 화살촉, 돌도끼 등을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안내판)
송도반도 끝지점에 위치한 두도전망대를 다녀오기 위해 '허그나무 I LOVE YOU 포토존' 좌측 길로 들어서서,
급하지 않은 침목 계단길을 잠시 따르면,
이내 3방향 전망이 시원스레 트인 두도전망대에 도착하게 되는데,
전방으로 작은 바위섬인 두도와 그 우측의 감천항 앞 뜬(일자) 방파제가 조망된다.
<불의 신(VULCAN)이 사는 호수 - 두도>
두도 지질명소는 부산광역시 서구에 속한 섬으로, 송도 반도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무인도이다. 동백나무, 비쭉이, 해송 등의 다양한 자생식물과 바다 산호, 부산의 상징 새인 갈매기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수려한 한려해상의 경관을 만끽할 수 있으며, 해안절벽을 따라서는 백악기 말에 퇴적된 하부다대포층과 화산암들이 절경을 이룬다. 두도를 이루고 있는 하부다대표층에는 공룡알둥지 화석, 석화목, 석회질 캘크리트 등의 퇴적 기록과 정단층 및 주향이동단층, 꽃다발 구조, 암맥 등의 독특하고 다양한 지질구조들도 관찰되며, 해안가를 따라서는 해식절벽, 해식동굴 등의 다양한 침식지형들이 잘 나타난다. (안내판)
<새들의 땅, 두도>
두도는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의 섬입니다. 이 땅 역시 빙하, 화산, 지진, 해일로 지표면이 수많은 침강과 융기를 반복했겠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동남해안에서 중국에 이르는 바닷가에 두루 공룡의 발자국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서남해안 일대는 거대한 초원이나 호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인지 이 암남공원 일대도 장엄하고 변화무쌍한 해안단층과 암반이 분포되어 있고 갯바위에는 공룡발자국을 연상시키는 작은 웅덩이나 구멍들이 산재하며 특히 저 두도에는 학술조사결과 공룡알과 씨앗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자의 '섬 도(島)'자는 '뫼 산(山)'자 위에 '새 조(鳥)'자를 얹어 놓은 것입니다. 독도처럼 인적 없는 섬들이야말로 수많은 바닷새들이 자유롭게 비상하며 짝을 짓고 알을 품는 가장 안전한 서식지인 것 같습니다. 두도민이라도 본래의 주인인 재갈매기와 괭이갈매기가 새끼를 치고 민물가마우지와 해오라기가 철마다 찾아오는 21세기 원시의 섬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안내판)
암남공원 용궁구름다리 입구에서 이곳 두도전망대까지 오면서 갈림길이 많아 초행길인 탐방자들에게는 길을 놓치기 쉽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앞서 갔던 영규형이 길을 잘못 들어 희망전망대로 갔다고 전화가 걸려와 두도전망대로 오라고 해 놓고는, 마냥 기다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두도전망대를 뒤로하고 능선 서쪽 사면길로 진행하여,
허그나무쉼터가 있는 안부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잠시 기다리는데,
희망정 방향에서 즐산팀들에 뒤이어 영규형도 도착하여 좌측 암남공원 후문(1.1km) 방향 사면 등로로 진행한다.
좌측 암남동 수산가공선진화단지 불빛을 내려다보이는 급사면을 깎아 만든 사면길을 따르다가,
우측 위의 포장도로 방향 갈림길에서 좌측 사면길을 따르면,
좌측 수산가공선진화단지의 '도매장동 가는길'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이내 포장도로에 접속하여 좌측 암남공원 후문 방향으로 내려서는데,
좌측의 풍차 모양 화장실을 지나,
'해원 냉장' 뒤편 멋진 해송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정자쉼터에서 급 우틀하여 내려서면,
원앙로가 지나는 암남공원 후문으로 내려서게 되는데, 입구에는 차량 통행을 막는 목재출입문이 잠겨있다.
우측 원양로를 따라 감천항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모지포 마을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진행해야 하지만,
직진의 200여 미터 지점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아침식사를 하려고 직진길로 진행하여,
아침식사를 예정했던 해장국집에 도착했지만 네이버 지도의 정보와는 달리 문이 닫혀 있어서,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편식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뒤따라 오는 총무님께 전화를 걸어 식당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과 다른 식당을 알아봐서 연락을 하겠다고 알린다.
뜨듯한 해장국 대신 컵라면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편의점 옆 언덕길을 올라,
남파랑길인 암남공원로에 접속하여 우측 도로를 따라 한참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 암남공원로는 우측의 진정산(144.7m)과 장군산(152.1m) 산허리를 감아도는 임도로,
좌.후방으로 동원냉장 너머로 잠시 전에 지나온 안남공원 능선이 붉게 물들어 있고,
좌측 아래의 감천항 동편 부두를 내려다 보며 재활용품을 실은 트럭이 드믈게 지나는 도로를 따라,
좌측 감천만 건너로 남파랑길 4코스가 이어지는 두송반도를 조망하며,
산모퉁이를 지나는데 전방으로 우측 구덕산에서 몰운대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능선쯤이 가늠된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스산한 겨울의 풍경을 연출하는 도로를 따라,
부산 서구 에코센터를 지나고,
대형 냉동창고 앞에 있는 냉동컨테이너의 보이지 않던 부분도 직접 보며,
부산냉장과 제일제스엘산업 냉동창고를 지나며 우측으로 휘어져 나가는 암남공원로를 두고,
좌측 갈맷길 이정표가 있는 지점 좌측의 내림길 등로로 들어서서,
잡풀이 무성한 등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면,
감천동 마을길(원양로 356번 길)로 내려서서 골목길을 좌측으로 휘어지며 나가게 되는데,
골목길 담벼락 여기저기에 남파랑길과 갈맷길 표지기가 붙어 있어서 길 찾기에 어려움은 없고,
다시 원앙로 도로에 접속하여 감천사거리 방향으로 우틀하면,
문을 연 식당이 여럿 보이는데 그중 밀양보리밥집이 괜찮다는 블로그를 읽은 기억이 있어서 총무님께 알린다.
원앙로를 따라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당산나무와 감천동 하당 고인돌이 있는 팽나무공원을 지나,
감천사거리에서 우틀하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남파랑길 3코스 종점이자 4코스의 출발지점인 감천사거리의 감천 나누리파크 앞에 도착하게 된다.
참으로 멋진 남파랑길 부산 03코스를 캄캄한 한밤중에 주마간산으로 지나버렸다.
일정상의 제약으로 아침 일출이 늦은 한겨울 신새벽에 출발하여 걷는데만 열중하다 보니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직 04코스가 남았으니 03코스는 다시 찾을 것을 기대하며 04코스로의 걸음을 시작한다.
한국남부발전에서 조성한 감천 나누리 파크 입구를 지나,
<감천 나누리파크>
감천 나누리파크는 (주)한국남부발전이 발전소 부지 약 9,600㎡에 공사비 약 10억 원을 지원해 건설된 공원시설이다. 남부발전은 지역주민들의 쉼터가 부족한 감천지역에 휴식과 체력단련, 각종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는 복합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사하구청과 협력해 공원건설을 추진하게 됐다. 이 공원에는 산책로, 체육시설, 어린이 놀이공간, 태양광을 이용한 에너지 조형물, LED열주등, 태양광 가로등 등의 에너지 시설이 설치돼 있다.
남부발전 담장 옆 보도를 따르다가,
국민체육센터 삼거리에서 도로를 건너지 않고 좌틀하여 진행하고,
감천중앙부두 삼거리에서도 도로를 건너지 않고 좌측 길을 따르다가,
한국남부발전 부산발전본부 정문 앞을 지나서 감천항 중앙부두 방향으로 진행하면,
좌측으로 감천항 철망펜스 가림막이 이어지다가,
감천항 중앙부두 정문쯤을 지나게 된다.
<감천항(甘川港)>
감천항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에 있는 항구로, 부산항의 물동량 증가로 인해 고철, 양곡, 시멘트 등 전용 부두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978년 북항의 보조항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중앙 부두와 관공선 부두, 감천 제7부두는 1990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하였고, 감천 제1, 제2, 제3, 제5, 제6 부두와 다대 부두는 1995년부터, 감천 제4 부두는 2008년에 완공되어 운영되고 있다.
감천항에는 항만기능 강화를 위해 외곽에 동 방파제와 서 방파제가 조성되어 있고, 양쪽 방파제 안쪽으로 매립된 호안을 따라 선박 수리 및 조선소, 컨테이너 야적장, 냉동 및 냉장창고와 수산 가공업체 등이 자리하고 있다. 물류 창고 및 공장 설비가 자리한 감천항 입구 쪽의 양쪽 방파제는 수심과 조류가 원활하여 고급 어종이 풍부한 낚시터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감천항 입구 두도반도의 비탈 사면에서 약 8,000만 년 전 백악기 시대의 공룡 유골이 발굴되어, 국가 지질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동쪽으로는 송도와 암남 공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다대포와 이어져 있어 항만 기능 외에도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
길게 이어지는 감천항 철망펜스 가림막 옆길을 따르는데,
감천항 철망 가림막 안쪽으로 접안되어 있는 커다란 배들이 보이더니,
좌측 '5 Pier YK부두'라 적힌 게이트 안쪽의 감천항 제5부두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완전히 가려진 차단벽 옆 도로를 따르다가,
좌측의 한스트레이딩 옆 갈림길 도로를 건너,
따르는 감천항로 건너편의 '대복식당' 앞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계속 진행하면,
감천항로 도로 중앙에 자리한 '구평동 당산목과 당집'을 지나게 된다.
<구평동 당산목과 당산제>
부산 사하구 구평동 207-1번지에 위치한 당집과 회화나무 당산목은 지역의 전통과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1980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나무 아래에는 제당(祭堂)이 있으며, 이곳은 마을 주민들의 신앙적 중심지 역할을 담당해 왔다.
구평동 당산제는 음력 10월 14일 자정을 기하여 부산광역시 사하구 구평동 산 52번지에 있는 천지 할배 당산과 산신당에서 동네의 안녕을, 구평동 442-6번지에 있는 천지 할매 당산에서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구평동 주민회관을 지나며 이정표를 따라 구평동 가구단지로 오르는 우측의 두송로로 들어서서,
좌측 아래로 구평동 공장지대를 내려다보면서 두송로를 따라 오르다가,
따르던 두송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오르는 지점의 갈맷길 이정표에 따라 좌측 길로 진행하면,
각종 수입 과일 이름이 적힌 창고 옆으로 감천항 제7부두가 내려다 보이고,
또 다른 갈맷길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 길로 진행하면,
좌측 아래로 수출입 액체화물을 전용으로 취급하는 '부산 탱크터미널'의 탱크와 창고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어느새 비포장으로 바뀐 호젓한 임도에는 차량 통행의 흔적도 역력하고,
따스하게 비춰오는 햇살을 쬐며 완만한 오름길 임도를 따르면,
'T자' 갈림길이 있는 능선 마루에 올라서게 되는데, 본디 남파랑길은 좌측 두송반도전망대 방향을 따르다가 우측 사면길로 이어지지만, 두송방파제 절개지 데크길 철거로 코스가 변경되어 이곳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다송아파트 방향으로 우회하여 진행하게 된다.
좌측 두송반도전망대로 이어지는 구평 도로는 원래 군사용 작전도로였으나, 지금은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두송반도 산책길로 각광을 받고 있다. 두송반도 숲길은 우측으로 바다가 펼쳐져 산과 바다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코스라고 한다. 두송반도 해안길 안내판에 의하면 이곳에서 좌측으로 2.2km 정도 내려서면 '두송반도 종점'이자 전망대가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갈맷길은 두송반도전망대를 다녀오도록 되어 있으나, 남파랑길은 이곳에서 바로 우측 다송아파트 방향 도로를 따르게 된다.
이곳부터 사하구 구평동에서 다대동으로 바뀌게 되는데, 다대동에는 '다대팔경(多大八景)'이라는 아름다운 경관이 있으므로 쉬엄쉬엄 걸으며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을 하며 따스한 햇살을 등지고 완만한 임도 오름길을 따르는데,
<다대팔경(多大八景)>
제1경 아미완월(峨嵋玩月) : 아미산 위로 솟아오르는 달
제2경 야망어창(夜望漁唱) : 야망대에서 들려오는 후리소리
제3경 두송만취(頭松晩翠) : 두송산 석양의 비취빛 하늘
제4경 남림숙하(南林宿霞) : 남림(현 성창목재)에 걸려있는 물안개 노을
제5경 팔봉반조(八峯返照) : 팔봉산(현 한진중공업)에 비친 저녁노을
제6경 화손낙조(花遜落潮) : 화손대로 지는 저녁 노을
제7경 삼도귀범(三島歸帆) : 삼도(목도, 서도, 귀도) 사이로 만선으로 돌아오는 돛단배
제8경 몰운관해(沒雲觀海) : 몰운대의 바다 경관
좌측으로 대선조선 다대조선소와 가야 할 몰운대가 바라다 보이고,
완만한 내림길로 바뀐 임도를 따라 좌측 두송방파제 절개지 상단 방향 갈림길을 지나,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변경된 남파랑길을 두고 좌측 두송아파트를 관통하는 지름길로 들어서서,
두송아파트로 내려서서 우측 입구로 나가,
다송아파트 입구로 돌아서오는 남파랑길 도로에 접속하여 좌측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다대두송4지구 복지관 앞으로 내려가는 우측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여 내려가면,
다대두송4지구 복지관 앞을 지나 절개지 데크계단길을 내려가게 되는데,
다송중학교와 다선초교 앞 도로가 나오고,
좌측 도로를 따라 내려서서,
다송로에 접속하여 롯데리아 앞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두송중학교 앞 옛 남파랑길에 접속하여 도로를 건너,
체육공원 가장자리 트랙을 따라 낫개항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간만에 발견한 우측의 통일아시아드공원 화장실에서 차오른 고뇌를 쏟아낸다.
통일아시아드 공원을 뒤로하고 다대포 현대아파트 107동 앞을 지나,
좌측의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낫개항을 지나고,
<낫개항>
낫개는 나포(羅浦)의 우리말 표현이나 지명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낫개 마을은 북쪽의 두송산(頭松山, 95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두송 반도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에는 낙동강 하구로 이어져 다대포 해수욕장이 있고, 동쪽으로 감천만과 접하며, 남쪽에는 다대포항이 있다. 두송산은 조선 시대에 몰운산, 금티산과 함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 관할의 봉산(封山, 병선(兵船)을 만드는 재료를 조달하려고 벌채를 금지]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앞바다[대명 목재 저목장이 있는 위치]에서는 멸치 어업이 성하였다고 전한다. 낫개마을 남쪽 다대항 국제 여객 부두에는 ‘통일 아시아드 공원’[2002년 아시안 게임 기간에 북한 응원단이 타고 왔던 만경봉호가 정박했던 곳으로, 통일을 염원하고 기념하고자 조성]이 있다.
좌측 다대336장작구이 식당과 우측 야망대 식당사이 골목길로 올라,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 아래로 겸손하게 통과하여,
갈맷길 이정표와 아치형 구조물이 있는 고갯마루를 넘고,
이리저리로 얽힌 골목길을 빠져나가,
다대동로에 접속하여 좌측 도로로 진행하고,
작은 횟집들이 즐비한 다대항 해변길에 접속하여 좌측 다대항을 따라 일명 "초장빌딩"을 향해 진행한다.
모든 횟집 상호에 '초장'이란 단어가 들어가야만 입주가 가능할 듯 보이는 일명 "초장 건물" 앞에서 좌틀하여,
다대포 활어 재래시장 앞을 지나는데,
앞서가던 분들이 포장마차를 에워싸고 맛난 부산오댕을 즐기고 있다.
내친김에 옆 가게의 강정까지 사서 먹으며 '부산시수협 다대위판장'을 지나고,
우측의 신우농수산 건물도 지나,
다대자유아파트 직전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부산 지하철 1호선이 지하로 지나는 다대로에 접속하여 좌틀하여 다대로를 따라 물운대 유원지 방향으로 진행한다.
'다대 자유아파트' 입구 버스정류장을 지나자,
좌측으로 대규모의 성창기업이 자리하고 있고,
으리으리한 모텔과 투썸플레이스 커피숍 건물 사잇길로 좌틀하여 다대 해안길로 진행해야 하지만,
그대로 직진하여 따르던 다대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도로로 진행하여,
횟집들이 연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몰운대 유원지 입구에 도착하여서는,
"몰운대" 표지석 앞에서 인증을 남긴다.
<몰운대(沒雲臺)>
몰운대는 부산광역시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16km 떨어진, 다대곶 동편 사하구 다대동 산 144번지 일원, 49만 2300㎡에 달하는 명승지로 소유자는 김중태이고, 부산광역시 시도기념물 제27호로 1972년에 지정되었다. 몰운대(沒雲臺)는 '구름 속에 빠진 섬'이라는 시화적(詩話的)인 이름으로 낙동강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이면 섬이 구름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바다에서 몰운대를 바라보면 학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몰운대는 낙동강하구와 바다가 맞닿는 곳에 자리하여 16세기까지 「몰운도」라는 섬이었으나, 낙동강 상류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면서 지금은 육계도(land-tied island)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은 대마도와 가까워 일본과 교역하는 주요 해상로로 이용되었으며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 해상 노략질을 일삼던 곳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으로서 이곳 앞바다에서 전사한 녹도만호(鹿島萬戶) 충장공(忠壯公) 정운(鄭運)이 이곳 지명을 듣고 운(雲)과 운(運)이 같은 음인 것을 따라 “내가 왜놈들과 싸우다 이 대에서 장렬하게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으며, 정운의 순절을 기리는 유적비가 있다.
1983년 북한의 무장간첩선이 이곳으로 침투하다 괴멸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도 몰운대 최남단은 군사보호 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다. 언덕 전체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했던 곳이다.
2008년 9월 27일 낙동정맥 마지막 산행길에 들어섰던 몰운대 유원지로 들어서서,
소나무숲길을 따라 오르다가 좌측 화손대 방향 탐방로로 좌틀하여 진행하면,
이내 몰운대전망대 갈림길 입구에서 좌측으로 이어온 둘레길쯤과 만나,
우거진 해안 숲으로 이어진 호젓한 산책길을 따르다가,
'Y'자 갈림길에서 좌측 해안 방향 산책로를 두고 직진의 우측 숲길로 진행하여,
다시 좌측 해안 방향 갈림길을 두고 직진의 오름길을 오르면,
테니스 코트가 그려진 운동장을 지나 화손대 갈림길을 지나게 되는데,
좌측 450m 지점 화손대를 다녀오고 싶지만 남은 여정이 어떠할지 알 수 없어서 우측 남파랑길로 진행한다.
"봄철 구릿한 악취는 '사스레피나무' 특유의 꽃냄새로 살균작용이 있어서 좋다"는 코팅지가 걸린 숲길을 따라,
산새들이 물을 마시고 있는 길가에 물길을 막아 조성한 '동물 식수용' 개울도 지나고,
작은 지계곡을 넘는 출렁다리를 건너니,
소나무숲 전망 쉼터가 나오는데,
앞서 갔던 분들이 배낭을 내리고 떡과 과일을 나누며 쉼을 하고 있다.
잠시 더 사면 방향 산책로를 따르다가,
우측 다대포 객사에서 좌측 몰운대 전망대로 이어지는 침목 계단 산책로에 접속하여, 좌측 아래 200m 지점의 낙동정맥 종점인 '몰운대 전망대'를 다녀와서 우측 남파랑길을 이어가기로 하고,
좌측 침목 계단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섰다가,
잠시 올라서 군부대 경고판이 있는 철망문으로 들어가면,
낙동정맥 종착지인 옛 군부대 초소에 도착하게 되는데, 17년 전보다 초소가 높아진 것인지 아니면 바닥이 낮어진 것인지, 모습은 그대로인데 좀 생소한 느낌이 든다.
낙동정맥의 종착지인 몰운대 전망대를 뒤로하고 안부로 돌아나와 침목 계단길을 오르다가,
잠시 전에 진행해 왔던 화순대 방향 산책로 갈림길을 지나 오르면,
완만한 소나무 산책로가 이어지다가,
좌측 정운공 순의비 방향 갈림길에서 우측 몰운대 입구 방향으로 들어서면,
17년 전 낙동정맥길에서는 '다대포 객사'였는데 어느 틈에 '다대진 동헌'이란 표지석 있는 누각을 지나게 되고,
<다대진 동헌(多大鎭 東軒)>
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3호 '다대포객사'로 지정되었다가, 2015년 3월 18일 '다대포 객사'로 명칭이 변경, 2020년 7월부 '다대진 동헌'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옛부터 다대포는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요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욱 중요시되었다. 다대진 동헌은 다대진 성 내에 있던 관아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다대진 동헌은 조선시대 동래 지역 수군(水軍) 군영인 다대포진의 첨절제사(첨사)가 정무를 보던 건물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순조 25년(1825)에 다시 지었다고 전해지며, 관아 일곽의 하단 구역에 위치했던 동헌 건물로서 수호각(睡虎閣)이라 불렸었다.
시간이 흘러 방치되던 것을 다대포실용학교의 학교 건물로 사용되다가 다시 다대초등학교의 건물로 사용되었었고, 1970년 다대초등학교 운동장 평탄화 공사 때 지금 위치인 몰운대로 이전 복원되었는데 이때 학교 관계자들이 건물을 객사로 잘못 기록하여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3호(1972. 6. 26)로 지정될 당시 '다대포객사'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었었다. 이후 이 건물이 객사가 아닌 동헌임이 밝혀지면서 2020년 7월 부산시 문화재 위원회 심의에서 '다대진 동헌'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넓은 헬기장과 음수대가 있는 공터를 지나,
몰운대 입구 방향 산책로를 따르다가 도로를 두고 좌측 숲길로 들어서 잠시 진행하면,
숲길 좌측으로 낙동강 하구와 가덕도 방향 조망이 좋은 벤치 쉼터를 지나게 된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잠시 더 내려서니,
다대포 해변공원이 나오며 좌측으로 낙조 전망대가 있는 섬까지 데크 해안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지만 별반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 같지가 않아 생략하고,
우측의 해안산책로 진입로를 따라,
다대포 해변공원으로 들어서면 공원 조성과 함께 만들어진 해수천 우측의 해솔길을 따르게 되고,
해수천 우측의 꿈의낙조분수 광장과 좌측의 해솔숲을 연결하는 보도교를 지나서,
<다대포해변공원>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다대2동)에 있는 공원이다. 바로 앞에 다대포해수욕장과 몰운대가 있고 1호선 다대포해수욕장역에서 내리면 바로 도착한다. 쉬거나 걷기 좋아 다대포 주민뿐만 아니라 다대포를 찾는 방문객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다대포해수욕장과 붙어있어서 이곳까지 다대포해수욕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전만 해도 여기까지 모래사장으로 다대포해수욕장은 훨씬 컸었으며 다대포해수욕장과 함께 노을 보기 좋은 곳이다. 여기에는 주로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해솔길이라는 길이 있다. 공원 내에 사진 찍게 만든 조형물도 있다. 그리고 후에 서술할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가 있다. 서쪽에는 고우니생태길과 갯벌, 동쪽에는 전 다대포 동쪽 해수욕장이 있는데 주차장도 동쪽에 하나 서쪽에 하나 있다. 운동장 같은 체육시설이 있긴 하지만 을숙도 같은 느낌보다는 걷기좋은 동네 공원의 느낌이다.
공원에서 조금만 가면 강변대로 노을나루길과 이어진다. 공원 길 중에 테두리 부분이 다대포해수욕장과 갈대밭이랑 만나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찍거나 해넘이를 보기도 한다. 동그랗게 둘러싸인 의자가 있는 잔디광장이 3개 있고 그 앞에는 작은 하천이 있다. 다대포해변공원에 있는 하천이라고 하면은 민물은 아닌 해수천이다. 몰운대 쪽의 다대포해수욕장(펄갯벌)에서 시작하여 공원 중앙을 관통하고 고우니생태길(주로 모래갯벌)에서 끝난다. 해수천은 원래는 없었지만 공원을 조성하면서 만들었다. 몰운대 쪽에서 시작하고 해수욕장 최서단에서 끝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고우니생태길 부근에서 끝난다. 하천 가에는 꽃이 심어져 있고 건널 수 있는 다리는 그냥 다리, 징검다리, 흔들다리 등이 있다.
공원 동쪽에서는 몰운대 쪽 다대포해수욕장과 몰운대 테두리 일부를 따라서 갈 수 있게 된 나무 계단 길이 있다. 2010년에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걸으면 절벽이 있는 거석의 작은 돌 봉우리가 있고 올라가면 작게 낙조전망대라는 전망대가 있다. 내려가면 작은 모래사장과 조약돌로 만든 그림이 있다.
좌.우 해솔숲 사이로 이어진 해수천과 산책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사하구는 2008년부터 8년간 백사장 13만여㎡에 해송(소나무의 일종으로 염분이 높은 바닷가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 5만여 그루를 심어서 다대포 해변공원을 조성했다고 하며,
유해 조수로 지정되었을 망정 어엿한 생명들인 비둘기들의 먹이활동을 방해하지 않으려 숨소리조차 죽여,
다대포 해변공원 해솔길 표시판을 지나자,
서쪽 가덕도 방향으로 드넓은 갈대밭이 펼쳐지며,
'고우니 생태길' 아치형 입구로 들어서게 된다.
<고우니 생태길>
다대포해변공원 고우니 생태길은 길이가 0.653㎞로 2015년도에 드넓은 다대포해수욕장 습지 위에 만들어졌다. 전체가 데크로 이뤄져 있고 길이 평탄해서 휠체어 탄 장애인이나 몸이 약한 노약자도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다. 고우니 생태길을 걷다 보면 바다 풍경은 물론이고 갈대나 바다생물인 게와 고둥 등도 슬그머니 엿볼 수 있다.
다대포의 습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이어진 데크길에는 군데군데 쉼터도 만들어 놓았고,
탐방로 좌측 드넓은 갈대밭과 낙동각 하구를 조망할 수 있는 '낙조 전망대'를 올라보고 싶지만,
지나온 몰운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남기고는,
고우니 생태탐방로 출구를 향해 진행하여,
고우니 생태길 출구로 나서니 8차선의 다대로가 지나는 노을정 휴게소가 나온다.
을숙도 방향 다대로를 따르다가 "생명의 소리"라는 제목의 조형물을 보며 나의 예술적 감각이 떨어짐을 자각할 뿐이고,
도로 건너편의 가파른 산 사면으로 이어진 데크길인 '아미산 노을 마루길'이 나타나는데,
'아미산 노을 마루길'은 다대로에서 우측 '롯데캐슬 몰운대 아파트'로 오르는 데크길로,
남파랑길도 이곳에서 우측 횡단보도를 건너 우측의 지그제그로 이어지는 데크 계단길로 이어가게 된다.
횡단보도를 건너 '아미산 노을 마루길' 입구로 들어서서,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데크 계단길을 올라,
한때 전망대로 쓰였음직한 건물에 도착하니 오랫동안 폐쇄되어 방치된 듯 보이고,
폐 건물 옥상의 전망대에 올라서자 을숙도에서 몰운대까지의 낙동강 하구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낙동강 하구에 형성된 모래섬, 백합등과 도요등>
백합등은 낙동강에서 운반되어 온 토사의 퇴적으로 낙동강 삼각주 말단부에 형성된 모래섬이다. 사하구 다대동 1597번지에 동-서 약 1.75㎞, 남-북 약 0.5㎞ 규모로, 면적 410,310㎡에 육지로부터 70m 거리에 천연기념물 제179호인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 내에 위치한다. 일명 사자도, 사자등이라고도 부르며, 무지개 마을 사람들이 백합 조개를 주로 채취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현재는 주로 김 양식과 재첩을 채취하고 있다. 백합등에는 갈대와 염생식물이 서식하여 고라니ㆍ너구리ㆍ족제비ㆍ쥐 등 육상동물과 해안 무척추동물 4종이 관찰되는데 그중 「엽낭게」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주요 조류·곤충으로 멸종 위기종 2급인 물수리ㆍ알락꼬리마도요와 천연기념물 제323-8호인 황조롱이 등 15종이 관찰되고 있다.
이 섬의 동쪽으로 장림골, 서쪽으로 진동골[갯골]이 있어 조수가 드나들며, 백합등 동쪽 육지에는 무지개 공단인 신평·장림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장자도와 새등이, 남쪽에는 나무싯등, 도요등, 다대포 해수욕장 등이 위치하는데, 급속한 퇴적으로 이들이 결합되고 있다.
도요등은 1986년 이후에 성장하면서 노출된 모래섬으로, 한글 'ㄴ자'모양의 이 도요등은 지금은 낙동강 하구 모래섬 중 가장 큰 섬으로 발달하였다. 이 섬에 도요새가 많이 깃들어 '도요등'이라 부르며, 일명 '철새등'이라 하여 철새들의 산란·휴식·은둔지다. 도요등 주변에는 각종 어패류 양식장이 분포하고 있다.
건물 옥상 전망대 뒤로 이어지는 '아미산 노을 마루길'을 따라,
'아미산 노을 마루길' 3번 출입구로 나가 좌틀하여,
몰운대 성당 방향으로 오르면,
도로 좌측에 데크목으로 만든 아미산 전망대 포토존이 자리하고 있고,
포토존 옆에는 '낙동강 하구 에코센터' 입간판이 세워진 '아미산 전망대'가 나오는데,
낙동강 하구 조망은 이미 충분히 봤기에 생략하고 도로를 따라 남파랑길을 이어간다.
<아미산 전망대>
낙동강 하구를 조망할 수 있는 아미산 전망대는 아미산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여 낙동강 하구의 모래섬, 철새, 낙조 등 천혜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며, 낙동강하구의 모습과 삼각주의 형성 과정, 지질에 대한 자료를 알기 쉽게 전시하고 있다.
도개공 몰운대 아파트 단지 옆 도로를 따라,
'다대롯데캐슬 몰운대 아파트' 단지 내 도로로 진행하여,
'몰운대 초등학교' 담장을 지나며 우틀하고,
롯데캐슬 401동 직전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도로를 따르기 위해 대각선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아미산 방향으로 단지 내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우측 아미산에서 이어오는 낙동정맥 숲길로 들어서서는,
이내 다시 직진의 아미산으로 오르는 낙동정맥길을 두고 좌측 둘레길로 접어들어,
<아미산(234m)>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과 장림동에 걸쳐있는 산으로 낮지만 동네에선 영향력이 큰 산이다. 남쪽에는 롯데캐슬등의 아파트가 모여 있으며, 서쪽에는 무지개 공단과 홍티마을이, 북쪽에는 장림, 동쪽에는 바다와 봉화산이 있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으며 현재는 응봉봉수대 모형이 있고, 낮아서 공원처럼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에서는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 다대포항, 장림과 신평 등을 볼 수 있으며 아미산 전망대에서 연안 사주를 볼 수도 있다.
아미산 서쪽 사면 능선에 무지개 고개(虹峙, 홍티)가 있고, 그 아래 낙동강이 남해로 유입되는 하구와 맞닿은 곳에 홍티 마을이 있다. 마을 서쪽 해안에 무지개 공단[신평·장림 산업단지, 부산 자동차 및 기계 공업 협업화 단지]이 조성된 이후 옛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홍티 포구는 마을 앞 해안은 좁은 수로 형태로 남겨져 1톤 미만 소형 선박만이 정박한다. 옛 마을이 있던 골목길은 '홍티로'로 명명되었고, 이전 마을 앞바다 쪽에 무지개 공단과 연결되는 홍티1교와 홍티2교가 마을의 위치를 전하여 준다.
잠시 비포장의 둘레길을 따르면,
롯데캐슬 아파트단지에서 이어오는 도로에 접속하여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도로는 차량 차단봉이 설치된 곳에서 비포장 임도로 바뀌며 '아미산 둘레길'이 이어지게 된다.
멋진 도심 산책길인 아미산 둘리길을 따르는데,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는 무지개 공단(신평·장림 일반산업단지)과 그 앞쪽의 도요등과 백합등이 조망되고,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는 무지개 공단(신평·장림 일반산업단지)과 그 앞쪽의 도요등과 백합등 그리고 멀리의 신자도와 장자도쯤도 가늠되고,
아미산 '응봉봉수대 입구'에 자리한 전망대를 지나게 되는데,
앞서간 분들은 의도와 상관없이 아미산 응봉봉수대에서 인증을 남기게 된 듯하다.
전망대를 뒤로하고 아미산 둘레길 임도를 이어가면,
임도 우측 위의 능선 안부에 다양한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체육시설이 있는 안부를 지난 지점의 이정표에서 직진의 '국제금융고교' 방향 임도를 계속 따르다가,
지도상 헬기장으로 표시된 서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산허리로 이어지는 아미산 둘레길을 두고, 직진의 '국제금융고교'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아미산 둘레길은 아니지만 이어지는 완만하게 내려가는 임도를 따라,
커다란 창고 건물 사이로 들어서자 비포장의 임도가 포장도로로 바뀌어 우측으로 휘어지며,
커다란 공장건물 사이로 이어져,
좌측의 국제금융고등학교를 지나고,
좌측 현대요양병원을 끼고 좌틀하여 넓은 하신중앙로를 따라 내려가게 된다.
아침을 컵라면으로 때운 탓인지 허기가 느껴지며 주변의 식당들에 눈길이 가는데,
길 건너편의 선지국밥집에서 배낭을 메고 나온 분들은 갈맷길을 걷는 분들이라 하고,
장림2교로 들어서니 좌측 장림포구 방향으로 장림 생태공원이 내려다 보이며,
장리2교를 건너며 좌틀하여 데크길을 따라 '부네치아 장림포구' 방향으로 남파랑길을 이어간다.
장림유수지 관리사무소를 지나며 좌틀하여 수문 상단 다리를 건너야 하지만,
어차피 강을 건넌 남파랑길은 하천을 따라 낙동강으로 이어져 다시 강을 되건너오게 되므로,
강을 건너지 않고 진행하는데 강 건너편으로 '부네치아'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장림항이 건너다 보이고,
<장림포구>
장림포구는 SNS로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부산의 핫플레이스이다. 행정구역상 사하구 장림동에 속해 있으며 포구의 이름은 지명을 따서 장림포구라 한다. 포구를 따라 늘어선 알록달록한 건물과 떠 있는 작은 배들이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을 닮았다고 해서 부산의 베네치아라는 뜻으로 "부네치아"라는 별명이 붙었다. 노을이 아름답고 다대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아미산 전망대, 다대포 꿈의 낙조분수 등과 연계한 관광이 가능해 부산의 새로운 피서지로 떠오르고 있다.
나무섬남형제섬해양보호구역홍보관 건물에서 잠시 멈췄다가,
예쁜 조형물과 벤치가 이어지는 길을 이어가면,
포구 건너편으로 '장림포구 놀이촌'이 시야에 들어오고,
다대로가 지나는 장림교 직전에 좌측 장림교 아래로 이어진 도보길로 진행하여,
장림교를 통과하면 부산환경공단에서 방류하는 처리수이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걸려있고,
장림교를 통과하며 바로 우틀하여 이어지는 데크길을 따라 올라,
다시 다대로에 접속하여 을숙도대교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을숙도대교 램프 입구를 지나 램프 아래로 통과하고,
을숙도대교를 아래로 지나면,
저 멀리로 다음 구간에 넘게 될 낙동강하구둑이 시야에 들어오고,
좌측 강변 쪽으로 이어진 산책길 입구가 보여 들어서니,
강변인지 해안인지 구분이 애매하지만 낙동강하구둑 아래이니 해안산책로가 길게 이어지다가,
마침내 오늘 트레킹의 목적지이자 남파랑길 4구간 종점인 신평동교차로 옆 노을전망대에 도착하여,
남파랑길 3~4코스 이어 걷기를 마친다.
노을전망대를 뒤로하고 다대로 횡단보도를 건너와 기다리던 분들과 완주 인증을 남기고,
다대포 해변공원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전화를 받고 도착한 버스에 올라,
오늘도 사우나는 생략하고 바로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여,
오리 한방백숙과 소금구이로 푸짐한 뒤풀이 시간을 즐기다가,
기다리던 애마에 올라 귀경길에 오른다.
오늘 새벽에 걸은 남파랑길 부산구간 3코스는 부산의 유명 고적지와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장통, 그리고 명승지가 연이어지는 멋진 코스였는데, 귀경 시간의 제약으로 너무 이른 시간에 출발하여 빠르게 걷는 바람에 그 진면목을 보았다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오늘 주마간산으로 지난 남파랑길이 얼마나 멋진 코스인지를 알았으니, 오늘도 언제나처럼 혹여 후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한번 걸으리라. 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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