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한남금북정맥 04차(쌍암재~현암삼거리)
산 행 일 : 2013. 03. 09.(토)
산행코스 : 쌍암재 ~ 602봉 ~ 살티재 ~ 국사봉 ~ 추정재 ~ 대항산 ~ 신정말고개 ~ 선두산 ~ 안건이고개
~ 선도산 ~ 현암삼거리(수레너미재) (산행거리 20.4km)
산행참가 : 23명.
<산행코스>
지난번 백석고개에서 쌍암재까지의 산행에서 무척이나 힘든 산행을 했던 터라, 이번 산행에 대한 우려가 컸다. 지난 산행에서 16km로 짧았고 야트막한 4~5백 미터 높이의 능선 산행이라 얕봤다가 10시간이나 걸리며 혼이 났던 기억 때문에, 이번 산행이 20km라는 말에 다들 걱정이 앞선 모양이다. 이제 계절이 3월로 접어든 상태라 춥지 않을 것이고, 지난번보다 큰 산은 더러더러 있는 구간이지만, 작은 봉우리들이 연속되는 상황은 아닐 거라 진정시키고는 일찌감치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03:43 한밤이라 통행이 전혀 없는 쌍암재 마루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03:45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 옆 들머리로 들어서며 한남금북 네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03:54 희미한 등로를 찾아 오르니, 산행기에서 보았던 커다란 PVC물통이 나오고,
03:56 이내 임도를 건너 숲길로 진행하면,
04:00 벽돌로 잘 축조된 참호 옆을 지나게 되고,
좌측에 가족묘지가 나오며 '토지지신'비석 옆을 지나면,
04:04 인가와 시멘트 포장도가 있는 새터고개를 지나게 된다.
<새터고개>
이곳은 오래전 지방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충북 보은군 회인면 쌍암리와 내북면 법주리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지만, 지금은 571번 지방도가 개설되면서 농로와 마을길의 역할만 하는 작은 고개로 변해버렸다. 고갯마루 주변에는 잘 지어진 주택이 몇채 있다. 들머리는 입산통제 입간판이 세워진 우측 옆으로 진행한다.
04:28 팔봉지맥(단군지맥)이 분기되는 525봉 오름길(좌)과 우회길(우)이 갈라진다.
04:33 팔봉지맥이 분기되는 525봉 정상 도착.
<팔봉지맥/단군지맥>
'팔봉지맥(八峰枝脈)'이란 한남금북정맥 줄기에서 갈라져 피반령을 거쳐 팔봉산과 은적산, 그리고 황우산을 끝으로 금강물줄기로 떨어지는 46.6km의 산줄기다. 이곳부터 한남금북정맥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충북 보은군과 청주시의 경계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525봉 정상에는 '단군지맥'표지석이 있고, 좌측 능선 들머리에는 '팔봉지맥'이라는 표지도 걸려있다.
짐작컨데 팔봉지맥을 일부에서는 단군지맥이라 표시한 듯하다.
'단군지맥' 표지석 뒷면에는 천부경이 새겨져 있다.
<천부경(天符經)>
대종교(大倧敎)에서 신성시하는 기본 경전으로 우주 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하고 있는 경전이다. 유대민족이 구약을 가졌던 것처럼 상고시대에 우리 민족도 고유한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세계 최고(最古)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 자랑스레 떠들면서도,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경전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3대 경전은 천부경과,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가 쓴 참전계경, 그리고 삼일신고의 세 가지다. 그중 가장 오래된 천부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일 뿐 아니라, 유불선과 음양오행, 그리고 주역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우리 민족만의 경전일 뿐 아니라 전체 동양의 경전이며, 세계인의 경전이다.
이 천부경은 원래 환인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세 개 중의 하나인 거울(용경)에 새겨졌던 것인데,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글로 새겨, 훗날 통일신라시대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이 비에 새겨진 천부경은 우리 민족의 옛글자(훗날 훈민정음의 모체가 됨)인 '가림다'로 새겨진 것이어서, 후세 사람들이 판독치 못하다가, 통일신라 시대에 해동공자로 추앙받았던 당대의 세계적 석학인 최치원이 백두산을 찾았다가 이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한자로 번역해서 전하는 것이 바로 여든한 글자의 천부경이다. 이 81 글자로 우주의 법칙 모두를 압축해 담은 번역문을 볼 때에 최치원의 학식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 구름 이경숙님의 글 -
우리 천손 천민의 배달겨레는 개천 이래로 위대하고 거룩한 3대 경전으로 조화경인《천부경》과 교화경인《삼일신고》, 치화경인《참전계경》이 있다. 81자로 구성된《천부경》은 한배검께서 천부삼인을 가지고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셔서 신시를 열어 인간을 넓고 크고 유익케 하기 위하여 만백성을 가르치실 적에 조화의 원리 곧 우주 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한 참 경전이다.
말로써 전해 오던 것이 신지 혁덕(神誌 赫德)에 의하여 녹도문자(鹿圖文)로 기록되었고, 뒤에 신라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선생께서 신지[*글을 맡은 사관 벼슬이름]가 쓴 그 천부경이 전자(篆字)로써 옛 비석에 적힌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작은 수첩에다 한자로 옮겨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귀중한 경전이 오랫동안 묻히게 되었는데, 특히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는 유교의 책만을 읽게 하고 이를 돌보지 아니하였고, 그러는 동안 개천 4363(1916)년에 선천(宣川) 계연수(桂延壽) 선생께서 묘향산 석벽에서 이를 발견하여 개천 4364(1917)년 대종교에 전했으니...
위의 글들에서 보듯 천부경(天符經)은 단군조선 이전의 고대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우리 민족의 위대한 가르침이다. 천부경은 비록 81자의 짧은 문장이지만 조화의 원리, 즉 우주 창조의 이치를 밝힌 위대한 가르침으로, 그 문장이 짧고 간단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오한 뜻을 품고 있어,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렵고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매달려 나름의 해석을 풀어놓지만 여러 논란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몇몇 해석을 대충 눈으로 훑어봤지만, 그 뜻풀이가 제각각이고 내용이 어려워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다만 쉽게 풀이한 내용을 아전인수격으로 더 간단하게 이해하자면,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근본은 변함이 없고, 사람을 우러러 하늘의 밝은 빛을 비추어..'라고 터무니없게 결론을 지어버린다.
天符經[천부경] - 직역
一 始 無 始 一
하나(one, many)가 비롯됨은 무(emptiness, fullness)에서 비롯된 하나이며,
析 三 極 無 盡 本
셋으로 나뉜다 할지라도 그 근본은 다함이 없으니,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하늘의 하나는 하나요, 땅의 하나는 둘이요, 사람의 하나는 셋이니라.
一 積 十 鉅 無 櫃 化 三
하나부터 쌓고, 열을 크게 펼치면, 무를 둘러싼 셋의 조화가 나오느니,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하늘도 둘과 셋의 조화요, 땅도 둘과 셋의 조화요, 사람도 둘과 셋의 조화로서,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큰 셋(천지인)이 합치면 여섯이 되고, 일곱, 여덟, 아홉(만물)이 나오며,
運 三 四 成 環 五 七 一 妙 衍
셋(천지인)을 운영하여 넷(음양, 사계절)이 완성되면 다섯(오행)으로 고리를 이루어
(돌아와) 일곱(칠요)과 모두 하나(only one의 한)가 되는 묘한 흐름을 보이니,
萬 往 萬 來 用 變 不 動 本
수만 번을 오고 가며 쓰임이 변한다 할지라도 그 근본은 움직이지 않느니라.
本 心 本 太 陽 昻 明
근본 마음은 근본 태양(진리)을 우러러 향한 밝음이고,
人 中 天 地 一
사람의 중앙에는 하늘(우주마음, 허공, 하나님)과 땅(자연, 만물)의 이치가 있어
크게 하나(great one의 한)이며,
一 終 無 終 一
하나(maximum의 한)의 끝남은 무로 끝나는 하나(minimum의 한)이니라.
(펌)
팔봉지맥 상의 은적산에 단군성전이 있어서 일부에서 팔봉지맥을 달리 단군지맥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정맥길을 걷다 보니 단군지맥의 유래도 점쳐보고, '천부경'이라는 단어와 단군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뭇가지에는 눈에 익숙한 준.희 님의 '팔봉지맥분기점'이란 표지판이 걸려있다.
04:37 514봉 정상 단군지맥 표지석에서 인증을 남기고 우측 한남금북정맥 등선으로 들어선다.
05:05 겨울이 가고 있음을 느끼며 어둠 속에서 593봉을 지난다.
삼각점이 있고 표지기들이 많이 걸려있는 602봉을 지나는데,
오늘 산행 중 제일 높은 봉우리임에도 따로이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봉우리의 높이와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는가 보다.
06:16 돌탑이 있는 살티재를 지나,
<살-티/사흘티(三日峙)>
살티재는 청원군 가덕면 금거리와 보은군 염둔리를 잇는 고개로, 고개를 넘는데 삼일이 걸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움푹 들어간 고개에는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성황당이 있고, 고개 양쪽으로 길이 또렷하게 나있다. 살티재는 큰사티 또는 삼일재라고도 불리는데, 옛날에 교통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 이곳 살티재를 거쳐서 선도산 아래에 있는 매태재와 말구리재를 지나 청주 등지를 다니는 길이 있었는데, 옛날에 한 노인이 3일 동안 이 고개를 지나다가 죽었다고 하여 삼일재라 부른다는 예기도 있다.
06:35 무명봉을 연이어 넘고,
날카롭게 각을 가진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능선을 지나며,
06:39 국사봉을 향한 오름길을 이어간다.
06:55 오름길이 비교적 평탄하게 바뀌고,
06:56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일출이 시작된다.
해가 솟아오르는 곳이 속리산 주능선으로 추정된다.
속리산 주능선이 조그마하고, 떠오르는 해가 커 보인다.
당겨본 속리산 주능선.
속리산 주능선 위로 솟은 태양.
언제 보아도 아침 일출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켜켜이 쌓인 산줄기들을 제쳐놓고 해는 제일 놓은 산줄기 위로 떠 오른다.
속리산 주능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 일출을 감상하는 백두들.
자~아 이제 국사봉으로 갑시다!
속리산 위로 솟는 태양을 보면서,
켜켜이 쌓인 산그리메를 당겨보기도 하고,
07:00 일출의 장관을 카메라에 담는다.
조금 진행하다가는,
또 멈춰 서서 일출을 보고,
07:03 오늘도 그렇게 벅찬 가슴을 안고 국사봉을 향한다.
이제 국사봉을 향한 마지막 오름을 하는 백두들!
07:08 국사봉 헬기장에 도착한다.
국사봉 헬기장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이른 아침식사를 한다.
07:35 조금은 느긋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금 산행길에 나서니,
07:37 이내 국사봉 정상이 나온다.
<국사봉(國師峰 586m)>
청원군 낭성면 추정리와 보은군 내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나뭇가지에 '국사봉'이란 나무 팻말도 걸려있고,
국사봉 표시 금속판도 걸려있다.
국사봉 정상 증명을 남기고,
07:38 추정재를 향한 급경사 내림길을 시작한다.
07:48 청원군 남성면에서 추정재로 이어지는 골짜기에는 낮은 구름이 들어차 있다.
07:54 한금길이 좌측으로 급히 방향을 바꾸어 내려가서는,
08:02 이내 한금정맥은 편안한 내림의 능선을 따른다.
멋진 일출에 아침식사까지 한 백두들의 표정은 여유롭다.
08:07 한금길은 다시 한번 좌틀하여,
08:12 내림길로 진행되고,
08:14 우측 계곡에는 삼나무 조림지가 있고,
추정재 방향의 골짜기는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다.
08:17 우측으로는 빼곡한 삼나무 조림지가 있고,
좌측으로는 은사시나무 조림지가 있다.
그렇게 여유로운 능선 내림길을 걷다 보면,
08:26 관정사로 이어지는 진입로에 내려서게 되고,
관정사로 향하는 도로.
관정사 진입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면,
08:28 막고 있는 철대문을 옆으로 돌아 통과하고,
돌아본 국사봉 방향.
08:30 32번 지방도가 지나는 추정재에 도착한다.
<추정재>
32번 지방도가 지나는 밋밋한 고개로, 고갯길 같은 분위기가 들지 않은 고갯길이다. 머구미고개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머구미는 옛날 우물 물이 검다 하여 '먹우물', '묵정'이라 한 것이 변하여 머구미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부터 보은군과 이별하고 청원군으로 완전히 접어들었다. 이곳은 무심천의 발원지 3곳 중 한 곳으로 도로 확장공사로 발원지 흔적을 찾을 수 없으나, 이곳은 엄연한 한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
추정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나뭇가지에는 이슬이 얼어붙어 상고대 흉내를 내고 있고,
길 옆으로는 장승을 만들어 세워 놓았는데,
장승 중에는 제법 무섭게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런 장승들의 경호를 받으며 건널목으로 이동하다가,
08:31 32번 지방도를 건너 '미원석물' 옆길로 진입한다.
미원석물 뒤편에서 좌틀하여,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08:34 우측 관정리 마을 안으로 진입한다.
정맥길은 위의 사진에서 한 블록 더 가서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능선 바로 아래로 이어지게 되어 쉽게 대항산 오름 한금길로 들어설 수 있다.
한 블록 전에 마을길로 진입하여 밭을 가로질러 가게 되는데,
밭을 밟고 간다며 밭 쥔장으로 보이는 분이 싫은 소리를 한다.
한 블럭 더 진행하여 우측 길로 왔으면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밭을 가로질러 오는 백두들.
08:36 잘 꾸며진 전원주택 옆 들머리를 따라 오름길로 접어든다.
돌아본 관정리 마을.
08:42 급하지 않은 오름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08:49 주능선 위로 올라서서는 한금길은 좌측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데,
능선 좌측 아래로는 골드나인 CC가 내려다 보인다.
08:55 후미가 따라올 여유를 위해 골드나인 CC가 내려다 뵈는 봉우리에서 쉼을 한다.
한가로이 골프장도 내려다보며,
제법 따사로워진 햇살에 목도 축여 본다.
09:15 모처럼 느긋한 쉼을 즐기고 487봉을 향해 오름길을 이어간다.
09:24 삼각점이 있는 487봉을 지나다가,
487봉 삼각점에서 인증도 남겨 보고,
나무에 걸려있는 표지판 인증도 남긴다.
09:29 잠시 후 잘 가꿔진 무덤을 지나면,
09:32 벌목으로 시야가 트이고 우측 아래편으로 청원군 남성면 호정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마을 뒤쪽으로 가야 할 선도산도 보인다.
가야 할 한금길 좌.우 양쪽이 모두 벌목되어 있어서 조망이 시원스레 트여있다.
09:33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우틀하여 진행하면,
벌목지대 중앙을 가로질러 임도가 이어지는데,
최근에 벌목한 듯 나무들이 널려있다.
당겨본 우측의 호정리 마을 전경.
벌목으로 시원스레 속살을 드러낸 한금정맥 능선.
09:36 이곳에서 임도를 따르거나 능선을 따르거나 이내 다시 만나게 되고,
좌측 아래로 잘 단장된 가족묘지가 내려다 보인다.
09:40 능선 위로 이어진 임도를 따르다가,
09:42 '고령신씨 납골묘' 옆을 지나게 되는데,
묘지 상단에서 또다시 긴 배낭털이를 시작한다.
납골묘 전경.
돌아본 한남금북정맥 능선.
양지바른 묘지터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09:54 느긋한 쉼을 뒤로하고 신정말 고개를 지나는데,
신정말고개 부근에서 벌목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신정말 고개>
청원군 가덕면 신정말과 남성면 웃전마을을 연결하는 임도이다.
09:57 신정말고개에서 정면의 능선길을 따라야 하지만,
좌측의 임도를 따라도 될듯하여 임도를 따라 진행하였는데,
한참을 돌아서야 겨우 한금길에 복귀하게 된다.
물론 시간상으로는 조금 줄였는지 모르겠다.
능선 좌측의 임도를 따라 진행하는 백두들!
급경사 벌목지대에는 벌목해 놓은 나무들이 쌓여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벌목을 기계로 하는가 보다.
좌측 추정리 방향 조망.
앞쪽에 보이는 능선이 오늘 아침에 지나온 한남금북정맥 국사봉쯤인 듯하다.
10:05 벌목지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추정리 마을(신정말)이 나타난다.
추정마을 인가 수돗가에서 목을 축이고,
느긋하게 둘레길 걷는 느낌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마을 우물도 있고,
10:11 마을 뒤쪽 고갯마루에 폐가와 고목나무가 있다.
위의 사진 고갯마루에서 좌측은 백족산으로 이어진 능선이고, 우측으로 오르면 한남금북정맥으로 복귀하게 된다.
<백족산(431m)>
백족(白足)은 ‘하얀 발’이니 산 이름으로는 독특한데 사연이 있는 이름이다. 조선시대 세조대왕이 속리산 복천암으로 행차하는 길에 이 산 아래를 지나다가 발을 씻었는데, 발이 하얗게 변했다고 하며, 그 후 백족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백족산 허리춤에 충북자치연수원과 충북단재교육연수원이 자리 잡은 이후로 산이 극기훈련코스로 이용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산세가 빼어나거나 절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볍게 오르기에는 손색이 없는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 한금길에 접속해도 되지만,
우리는 고목나무를 지나 농로를 따라 직진하여,
정면에 보이는 묘지 좌측 임도를 따라 한남금북정맥으로 복귀한다.
10:14 농로를 따르다가 우측 임도를 따라 오름길로 들어서는 백두들.
10:19 한참을 돌아 드디어 한남금북정맥 능선에 복귀하여,
능선을 따라 이어진 임도를 따라간다.
능선 위 수레길을 따르는 백두들.
10:27 오래된 임도 수준의 수레길을 오르다 좌측 숲길로 들어서면,
10:30 지도상 485봉으로 올라 좌틀하여 진행한다.
이어지는 능선길은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앞쪽으로 백족산 가는 능선이 분기되는 또 다른 485봉이 나타난다.
중앙에 보이는 둥그런 산이 백족산이고, 산 아래 마을이 잠시 전에 지나온 신정말이다.
10:36 485봉 백족산 갈림길 봉우리에서 한금길은 우틀하여 이어진다.
10:43 485봉에서 우틀한 한금길은 잠시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10:51 앞쪽으로 선두산이 나타나고,
10:52 청원군 가덕면 한시울 마을과 낭성면 지산리를 잇는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에 설치되어 있는 표지판의 선두산 방향 오름길이 한금길이다.
10:54 지나온 두 개의 485봉을 돌아보고,
11:07 잠시 오름길을 오르면 표지기가 걸려있는 515봉을 지나게 되고,
11:10 이내 선두산 정상에 도착한다.
<선두산(先頭山, 526m)>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이목리와 지산리, 가덕면 한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한계리 저수지를 품고 있다. 한계리는 보은에서 청주를 연결하는 길목으로 왕래하는 사람이 많았고, 곳곳에 주막과 마방집이 있었던 곳이다. 당시에는 보은에서 청주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살티재를 넘어 한계리로 들어섰고, 한계리에서 미테재를 이용하여 청주 월오동으로 넘어갔다. 한계리 안쪽에 자리 잡은 한시울은 한자말을 그대로 풀면 "한가한 사람이 개울가에서 노는 형국"이라고 하였는데, 한계저수지가 생기고 유료낚시터로 인기를 끌고 있으니 이름대로 되었다고 할 것이다. 한시울은 지형이 조리를 닮았다고 해서 조리터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한계저수지는 1977년 준공된 저수지로 가덕면과 남일면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한계리 골짜기는 무심천의 발원지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11:26 선두산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11:29 앞쪽으로 보이는 선도산을 향한다.
11:38 편안한 내림길이 어어지다가 이내 안건이고개를 지난다.
<안건이 고개>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한계리와 낭성면 지산리를 잇는 안건이 고개는, 옛길의 흔적과 성황당 터의 돌무더기가 그대로여서 옛날에는 이곳이 주요 교통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11:46 안건이고개를 지나면 선도산을 향한 완만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11:54 돌아본 선두산 방향.
12:03 산행 후반부로 접어들며 오름길을 역시나 힘에 부친다.
12:14 등로 옆 통나무에서 한참을 쉬다가,
12:25 미테재와 성무봉 방향의 갈림길이 있는 능선 분기점을 지나는데,
분기점 이정표 옆에는 다른 산악회 회원들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미테재 분기점 이정표.
<미테재>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과 가덕면 한계리를 잇는 고갯길로, 옛사람들이 보은이나 상주에서 청주로 오갔던 옛길이다.
12:39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선도산에 도착한다.
<선도산(仙到山, 547.2m)>
청주시 월오동과 낭성면 지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신선이 이곳에 와서 놀았다고 전해지는 산이다. 그러나 지금은 신선이 놀던 장소에 중계탑이 설치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시그널들이 줄줄이 매달려있다. 그러나 선도산의 ‘선도’는 ‘우뚝 서 있는 큰 바위’를 뜻하는 ‘선돌’일 가능성이 높다. 이산 중턱에 선도할아버지바위와 선도할머니바위가 우뚝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른 지역의 예를 보아도 ‘선돌이’, ‘선돌거리’, ‘선돌골’, ‘선돌바위’, ‘선돌숲’, ‘선돌재’ 등에서 처럼 지명의 선행 요소로 아주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실제 봉우리에 선돌이 있는 산을 선돌산이라고 하는 지역도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이 선도산을 선돌산의 ‘ㄹ’탈락 어형으로 보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동네분들의 이야기로는 예전에는 선도산 할아버지바위와 할머니바위에 매년 정월 보름에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에는 자그만 정상석이 놓여 있다.
선도산의 이정표.
통신중계소 철망 앞에 걸려있는 선도산 안내판.
남겨진 분들이 선도산 정상 인증을 하고,
12:50 선도산을 뒤로하고 현암삼거리로 내려가는 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12:58 묘지 갈림길을 지나고,
13:00 현암리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면,
뚜렷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13:05 잠시 후 좌측 사면길로 들어서면,
좌전방으로 다음 구간 가게 될 상당산이 보인다.
13:13 임도로 접어들어,
조경수를 식재해 놓은 밭 사이로 이어진 임도 내림길을 따르면,
아래쪽으로 현암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13:15 잠시 후 마을 시멘트길로 들어서서 내려가면,
현암삼거리 날머리에 도착한다.
13:17 현암삼거리 날머리 모습.
현암삼거리 방향으로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다음 구간 들머리를 확인하려고 청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현암삼거리까지 가 본다.
<현암삼거리(수레너미고개)>
수레너미고개는 현암삼거리에서 512번 지방도를 따라 청주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수레너미란 수레가 다니던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3:30 현암리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14:14 청주 골목길 안쪽에 있는 황할머니 갈비찌개 집에서,
물론 이곳에서 땀을 먼저 닦고,
14:55 식당과 목욕탕 사이에 이런 곳도 통과하며,
14:58 음식명이 특이해 보여서 선정한 집에서,
오랜 산행으로 시장끼 반찬을 더하여,
'갈비찌개'라는 특이한 이름의 메뉴를,
열심 먹고 또 마셨다.
16:37 식사를 마치고,
16:56 평소보다 조금 일찍 서울행 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고생 좀 하겠는걸~'하며 걸으면 쉬 목표지점에 도착하는데,
'오늘은 별것 아니여~'하며 걸으면 고생 좀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 산행이었다.
천보 사장님은 목디스크로 뒤에서 무척 힘들었던 것 같은데..
만보사랑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산행은 마치기는 했지만,
조금 차도가 있으신지 모르겠다.
조리 잘하셔서 다음 산행에서 꼭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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