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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대간남진 20차(죽령~저수령) : 멋진 소백산 주능선 조망을 즐기며 걸은 도솔봉 구간 대간길 z

by 재희다 2013. 9. 29.

산 행 지 : 백두대간 20차(죽령~저수령)

산 행 일 : 2013. 09. 28.(토)

산행코스 : 죽령~삼형제봉~도솔봉(1,314m)~묘적봉~묘적령~솔봉~뱀재~흙목정상~싸리재~시루봉

              ~촛대봉~저수령 (거리 18.3km)

산행참가 : 23명.

 

<산행코스>

 

 

죽령에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마치고,

 

 

도솔봉 방향 들머리가 있는 영주쪽으로 이동한다.

 

<죽령(竹嶺 689m)>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소백산맥에 있는 고개로,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도솔봉(兜率峰, 1,314m)·연화봉(蓮花峰, 1,394m)·국망봉(國望峰, 1,421m) 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주요교통로 였다. 1936년 중앙선이 이 고개를 통과하기 위해 '또아리굴'이라 불리는 루프식 터널을 건설했고, 최근에는 중앙선을 따라 중앙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에 이 고개를 사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비교적 높고 험한 고개이므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걸어 다녀야 했던 시절에는 이 고개에 도둑떼가 들끓었다고 하며, 전설에 의하면 도둑떼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도둑소굴로 숨어들어 망을 보다가, 사람들에게 신호로 "다자구야"라고 외쳐서 도둑떼를 사로잡는데 공을 세워, 이곳 주민들은 매년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에 모여 다자구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영남제일루' 옆 영주로 가는 죽령옛길 들머리 우측에 도솔봉으로 향하는 들머리가 있다.

 

들머리 이정표에는 도솔봉까지의 거리가 6km로 표시되어 있다.

도솔봉까지 두시간 반쯤 이내에 도착해야 하는데, 오르막이 길어서 조금은 걱정이 된다.

 

<죽령 옛길 유래>

소백산 허리, 구름도 쉬어 간다는 아흔아홉 굽이 죽령은, 영남과 기호를 넘나드는 길목 가운데서도 가장 유서깊고 이름난 중요 관문이다. 이 고개는 신라 아달라왕 5년(서기 158년)에 신라사람 죽죽(竹竹)이 길을 개설하였다 하여 죽령이라 불리어 왔으며, 한 때는 고구려와의 국경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청운의 꿈을 안은 선비들의 과거길 이었고, 온갖 문물을 나르던 보부상들과 나그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숱한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죽령 옛길 안내 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몇 분이 보이지 않아 잠시 기다리니,

늦게 출발한 김종협 점장님 내외분이 따라붙었다.

 

 

바위 암릉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좌측 아래쪽에 샘이 있을 듯한데,

어둡고 배낭에는 물통이 여러개라 그냥 지나친다.

 

 

죽령을 출발한지 한시간째 오름길이 이어지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간다.

대단한 백두들이다! 보통 출발하면 몸이 더워져 옷도 바꿔 입고 목도 축이고 하는데..ㅉㅉ

 

 

1286 갈림길.

어둠을 헤치고 올라갈 근거?를 찾지 못하여 도솔봉으로 향하는 우회길을 따른다.

1286봉에서 남쪽으로 직진하면 흰봉산(1261봉)이 나온다.

'출입금지' 표시판이 걸려있는 직진 오름길도 산객들의 발길이 잦은 듯하다.

 

 

1286봉을 우회하여 안부에 이르자, 백두들이 쉼을 하고 있다.

급경사 오름길을 쉼 없이 달려오느라 몇몇 분은 많이 뒤쳐진 듯하다. 산행을 시작하여 최소 30분 정도의 몸을 달구는 시간이 필요한데, 바로 급경사 오름길이 이어지다 보니 그리된 것 같다.

 

 

백두들의 쉼을 뒤로하고, 볼일을 보러 먼저 자리를 떴는데,

느긋하게 쉬고 있던 백두들이 순식간에 도솔봉을 향해 내달린다.

홀로 뒤처진 나는 봉우리 우회로가 많아서 삼형제봉을 그냥 지나치게 될까 염려되어,

삼형제봉의 흔적을 좇아 능선을 이리저리 헤맨다.

 

 

삼형제봉 쯤인 듯한데, 몇번째 형제인지는 알 길이 없고,

낮에 왔으면 좋은 조망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만 담는다.

 

죽령 방향 조망으로, 우측 아래쪽 불빛이 죽령휴게소 불빛이다.

사람의 두 다리가 무섭다는데, 죽령이 벌써 저리 멀어져 있다.

그러면 도솔봉에 가까이 온건가..!

 

 

첫번째 삼형제봉의 남쪽 방향 전망바위.

삼형제봉은 도솔봉 북쪽의 봉우리 세개가 연이은 곳이다.

 

 

두번째 삼형제 봉에서 돌아본 소백산 방향.

이제 제법 산과 하늘의 구분이 뚜렷해지며 영원할 듯하던 어둠도 밝아지는 시간 앞에 순식간에 밀려난다.

 

 

세번째 삼형제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도솔봉 조망.

도솔봉에서 가까운 순서로 보나, 높이로 보나, 이곳 제일 남쪽 봉우리가 삼형제 중 맏이일듯 하다.

 

권법사님의 아우인 권용상님.

아우가 아니라 아들인가 왜 이리 앳된 모습인겨!

 

 

 

 

도솔봉 너머 묘적봉과 옥녀봉 위쪽 구름 사이로 붉은 기운이 살짝 비쳐진다.

저 붉은 기운이 어둠을 가시게 하고 있나 보다.

 

도솔봉을 보고 있으니 옛날 학창시절에 많이 들었던 "애고, 도솔천아"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풍우설운 등에 지고, 산천 대로 소로 저자길로.

만난 사람 헤어지고, 헤진 사람 또 만나고. 애고, 도솔천아. ~ ~

기차나~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누가 노을 비끼는 강변에서 잠든 몸을 깨우나니,

시름짐은 어딜 가고 ......

~~~

먼데 찾아 나는 간다. 정든 고향 다시 또 보랴.

~~~

"애고 도솔천아!"

 

끝나는 이 노리는 청태춘이 부른 노래인데,

 

정든 시골을 떠나는 한 청년의 쓸쓸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이 청년에게 있어 "도솔천"은 고향을 떠나며, 갈 수도 있는 목적지로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마지막 쯤에 ‘애고 도솔천아!’라고 외치며 끝나는 것으로 보아,

편안하게 이상향인 도솔천에 갈 수 있었을지는...

이 노래에서 "도솔천"은 불교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머물다가 이 세상으로 오신 곳이며,

현재에도 미륵보살이 그곳에서 수 억만년 후 미래에,

중생을 제도하러 이 땅으로 오실 때를 기다리며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면 부처가 머물던 도솔천이란 어떠한 곳일까?

도솔천은 불교의 우주론에 의하면 욕계육천(欲界六天) 가운데 넷째 하늘을 말한다.

하늘에 사는 사람의 욕망을 이루는 외원(外院)과,

미륵보살의 정토인 내원(內院)으로 나뉘는데,

내원(內院)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이다.

석가도 현세에 태어나기 전에 이곳 내원에 머물며 수행하였고,

현재는 미륵보살이 불법을 설하며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하생(下生)하여,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곳이다.

즉 도솔천은 천상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여겨지는데,

미래의 붓다(미륵)가 거주하고 있으므로 불자들은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게 된다.

도솔천이라는 이름은 즐거움이 가득 차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펌)

 

이러한 도솔천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끊임없이 정진하여 덕을 많이 쌓은 사람,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사람,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보살을 염불 하는 사람,

계율을 지키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은 사람,

널리 복업(福業)을 쌓은 사람,

죄를 범하고서 미륵보살 앞에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람,

미륵보살의 형상을 만들어 꽃이나 향 등으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사람

등이다. 이중에 해당하는 항목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소백산의 산그리메도 이제 뚜렷하다.

 

소백산 좌측 단양 방면 조망.

 

 

10여분 뒤에, 김작가님이 찍은 도솔봉 방향 사진.

 

 

도솔봉을 향한 삼형제봉 내림길은 급경사 구간으로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급경사 내림길에 이은 안부를 통과한다.

 

 

급경사의 오름길이 완만해지며 잠시 여유를 찾게 해 준다.

 

 

이내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 내림길에 전망바위가 나온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 할 도솔봉 방향.

 

남서쪽 대강면 무수천리 방향.

 

도솔봉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가늠해 보고,

 

뒤로 멀어진 삼형제봉과 흰봉산(좌) 능선을 담는다.

 

 

도솔봉 오름길 전망바위에서 소백산을 배경으로.

 

 

도솔봉 직전 급경사 오름길에는 나무데크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십여년 전 대간 북진길에서는 아무런 안전시설이 없어서 무척 위험하다는 느꼈는데...

 

 

도솔봉 정상 도착.

 

 

<도솔봉(兜率峰, 1,314.2m)>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경리의 경계에 있으며,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도솔봉은 형제봉과 더불어 가장 한적한 육산으로 꼽히고 있다. 도솔봉은 소백산의 축소판이라 불릴 만큼 한 키나 되는 철쭉과 진달래가 화원을 이루며, 각종 고산식물이 많고, 숲길 가득 수목이 울창하며, 계곡마다 꽃피는 초본류가 무성하여 발길 닿는 곳마다 풍치가 그만이다.
도솔봉 정상을 주축으로 삼형제봉과 묘적봉을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으며, 능선에는 바위지대와 억새 등이 있고, 정상 암봉에 서면 중령에서 장엄하게 뻗어 오른 소백산의 장릉을 끝까지 바라볼 수 있어 황홀하고, 남쪽으로는 활같이 구부러지면서 황정산으로 이어내린 백두대간이 아련하기만 하고,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산야가 펼쳐 보인다. 마침 오늘 날이 맑아 도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은 전체와 부분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솔봉 정상석 아래의 동판에는, 대강의 등산로가 그려져 있다.

 

도솔봉 정상 전경.

 

도솔봉에서 바라본 삼형제봉과 흰봉산 방향의 주능선.

죽령으로 이어진 대간 능선도 한눈에 가늠할 수 있다.

 

도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정상 비로봉의 모습.

이제야 소백산의 진면목을 보는 듯하다.

소백산을 보려면 도솔봉이나 신선봉에 올라야 한다고 들었는데, 과연!

 

흰봉산에서 소백산 방향 파노라마.

 

남쪽 가야 할 대간능선과 자구지맥 능선 파노라마.

 

옥녀봉(좌중간 멀리), 묘적봉(중앙 앞쪽), 자구산(우중앙 멀리)

 

남서쪽 솔봉, 문복대, 황장산 등이 지척인 듯 조망된다.

 

도솔봉에서 좀 더 조망을 즐기고 싶었으나,

바로 옆 헬기장에서 다들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시장끼가 돌아 서둘러 도솔봉을 뒤로하고 헬기장을 향한다.

 

 

도솔봉 헬기장에는 먼저 도착한 백두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소백산 산그림 병풍을 두른 식당에서 오손도손 예기를 나누며,

 

 

배낭에서 꺼낸 먹거리들을 배로 갈무리한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소백산.

 

남서쪽 문복대 방향.

 

남쪽 가야 할 묘적봉 방향.

 

동쪽 풍기읍 방향 조망.

 

돌아본 도솔봉 정상.

 

지나온 삼형제봉과 흰봉산 방향.

 

지리산은 남쪽 백운산에서 봐야 하고,

소백산은 이곳 도솔봉에서 봐야 하고,

백두산우회는 참가해야 한다!

 

흰봉산에서 소백산까지의 파노라마.

 

위와 동일 장면을 감도를 바꿔서 더 멀리에 초점을 두면...

 

 

도솔봉 정상은 좁아서 이곳 헬기장에서 인증을 남긴다.

배낭을 메지 않은 분들은 식사 도중에 인증하러 오신 분들!

 

최고의 식당에서,

느긋하게 식사하시는 몇분을 남기고,

백두들은 저수령을 향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긴다.

 

 

1,185봉에서 바라본 가야 할 묘적봉 방향.

 

황장산(좌)과 황정산(중앙) 방향.

 

가야할 대간 능선을 배경으로.

 

동쪽 영주시 풍기읍 조망.

 

 

북쪽 소백산 주능선 조망.

 

당겨본 소백산 비로봉과 국망봉.

 

동쪽 풍기읍 방향 파노라마.

 

구름이 덮고 있는 동쪽 하늘!

 

가야 할 묘적봉으로 이어진 대간 능선.

 

남서쪽 황장산 방향.

 

 

능선을 따라 묘적봉 직전 안부를 지나 묘적봉 정상에 도착하여 인증을 남긴다.

 

 

<묘적봉(妙積峰 1,148m)>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 국립공원 최남단에 위치한 봉우리로, 소백산국립공원과 별개의 봉우리로 생각하는 산꾼들이 많다. 도솔봉을 포함한 묘적봉 일대에는 취나물 군락과 철쭉군락이 주능선에 형성되어 있다.

묘적봉은 옛날 대간능선 서쪽 사동리에 '묘적사'란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묘적사는 여지도서와 호서읍지에 기록되어 있는 오랜 사찰로, 부처가 삼매의 경지를 맞이하는 세계를 묘적( 妙積)이라 한다. 단양 사람이 가마 타고 오가던 경상도와 통하는 길목이었고, 1965년까지도 부도가 남아 있었다 하며, 임도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묘적사는 다음과 같은 폐사 전설이 전해온다.

묘적사는 큰 사찰이었고, 옛날 이곳은 경상도와 충청도,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빈대가 생기기 시작하여 스님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최후로 2~3명이 남아 기거하였는데, 어느 날 스님들이 인근 마을에 공양을 하러 갔다오니, 빈대가 갑자기 성하여 법당 요사채에 우글거려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이에 스님이 바랑과 장삼을 벗어 마루에 놓고, 나뭇단에 불을 붙여 방에 던져서 불을 지르고는 스님들도 도망갔다고 하며, 건물은 타 없어지고 절터만 남았다고 한다.

 

좌측으로 자구지맥이 옥녀봉 방향으로 거침없이 뻗어나가고 있다.

 

 

지나온 묘적봉 너머로 도솔봉이 쌀짝 고개를 내밀고 있고,

 

소백산도 묘적봉 동사면 너머로 모습을 보여준다.

 

자구지맥 옥녀봉 방향.

 

가야 할 솔봉 방향의 대간 능선.

 

앞쪽 묘적령에서 자구지맥(좌)과 백두대간(우)이 갈라진다.

 

잠시 후 걷게 될, 솔봉 방향의 가야 할 대간능선.

 

서쪽 도락산 방향으로,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가 내려다 보인다.

 

돌아본 도솔봉(우)과 흰봉산(좌) 쯤.

 

남쪽 묘적령 방향 조망.

좌측으로 옥녀봉을 거쳐 자구산으로 이어나간 자구지맥이 거침없이 조망된다.

 

우측 풍기읍 방향 조망.

 

가야 할 대간(좌)과 단양 방면의 산군들!

 

 

묘적령 안부(사동리 갈림길)를 지난다.

 

묘적령 안부에는 탐방 안내도가 새워져 있다.

이곳은 분명 입산통제 구역인데...ㅉㅉ

 

탐방 금지구역에 자세한 이정표!

 

<사동리(寺洞里) 갈림길>

사동리는 본디 단양군 남면의 지역으로, 예전에 묘적사가 있어서 절골이라 불리고 있다. 화전민이 많았던 1940년 무렵에 100여 호가 살아, 소위 마을의 전성기를 누렸다. 구한말 때 관군에 쫓기던 동학군이 들어와 살았다는 얘기도 전해지는 곳이다.

묘적령 가는 길 부근이 화전민촌으로 성황을 이루었는데, 1936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화전민촌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현재 곳곳에 남아있는 낙엽송 군락은 후에 조림된 것으로, 당시 화전의 흔적을 말하고 있다.

 

이제 이곳부터 소백산 국립공원에서 벗어나며, 단속구간에서도 벗어난다.

 

 

잠시 오름길을 오르면 묘적령 정상에 도착한다.

 

묘적령 정상 아래 자구지맥 갈림길.

 

자구지맥은 모래재 방향으로 이어진다.

 

 

묘적령 이정석이 있는 곳에서 쉼을 하는 사이에 자구지맥 능선을 확인한다.

 

묘적령 정상석.

 

<묘적령(妙積嶺 1,020m)>

경북 영주시 봉현면과 예천군 상리면,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묘적봉 아래에 있어서 묘적령으로 불리우게 된 것으로 보이며, 능선 좌측으로는 옥녀봉으로 가는 등로가 뚜렷하고, 백두대간 등로는 우측으로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예전에 없었던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부터 남쪽은 영주에서 예천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이곳은 단양군의 남조천과 영주시의 서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빗물이 우측 서쪽으로 흐르면 남조천을 발원하여 흐르다가, 대강면에서 죽령에서 내려오는 죽령천에 물을 더하여 충주호를 이루고, 남한강이라는 큰 물줄기로 긴 여정을 거쳐 팔당댐에서 북한강과 합류되어 서해로 흐른다. 그리고 좌측 동쪽으로 흐르면, 서천 지류를 따라 흐르다가 영주시 문수면에서 봉화군에서 발원하는 내성천과 합류를 이루고, 회룡포에서 한굽이 회오리를 만들자마자 예천군 용궁면에서 낙동강과 합류되어 긴 여정을 이어간다.

 

좌측 나뭇가지에 '자구지맥 분기봉'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1,027봉 정상에는 커다란 벤치가 2개가 있고, 이곳에서 대간길은 우틀하여 이어진다.

 

 

1011봉.

 

 

등로 주변의 풀들이 싱그러운 호젓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모시골 마을 갈림길이 있는 모시골 정상을 지난다.

 

<모시골 정상>

모시골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 고향리에 있는 백두대간 능선 아래의 계곡으로, 조선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겸암 류운용선생(서예 유성룡의 형)이 가솔 100여명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안동 하회마을을 떠나 이곳 골짜기 굴(겸암굴)에서 피난을 한 곳으로, 이때 이곳 마을 사람들이 겸암선생을 모시고 온 곳이라 해서 마을 이름도 모시골이라 붙여진 지명이란다.

 

 

모시골 정상에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솔봉 정상에 도착한다.

 

<솔봉(松峰 1,021m)>

경북 예천군 상리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예전에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나, 지금은 활엽수들만 보인다.

 

 

솔봉을 뒤로하고 철쭉 군락지를 지나 오름길을 오르다 보면, 등로 좌측으로 고인돌 모양의 바위를 지난다.

 

 

뱀재(蛇峙) 헬기장을 지나는데, 이정표는 헬기장 구석에 설치되어 있다.

 

<뱀재(蛇峙)>

경북 예천군 상리면 초항리 능선 위에 있는 재로,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다. 뱀재, 사티(蛇峙), 배음재, 배읍티, 라는 여러가지 지명을 가지고 있으며, 샘골에서 초항리 새목이로 가는 고개다. 옛날에는 뱀이 많아서 겸암선생이 이 고개를 왕래하실 적에, 이 고개 위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항상 절을 하셨다 하여 배암재 또는 뱀재라 하며, 또 다른 설은 흙목마을에서 꼬불꼬불한 임도가 마치 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뱀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뱀재 헬기장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며 우거진 원시림 사이로 호젓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가끔씩 대간꾼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는 바위도 지난다.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자구지맥 능선이 조망된다.

 

 

전탑을 지나고,

 

 

잠시 이어지는 오름길에 암릉길도 나타나는데,

 

능선 좌측으로 바닥모를 낭떠러지도 지난다.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니 앞쪽으로 흙목정상이 가로막아 선다.

 

 

우리가 흙목 정상을 향한 힘든 오름길을 오를 때쯤에,

묘적령 안부에서 사동리 방향으로 탈출한 분들은 계곡 입구쯤에 도착했다.

 

 

줄이 매어진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흙목정상' 이정표가 있는 잡목이 무성한 봉우리에 서게 된다.

 

<흙목(1,070m)>

흙목 정상 아래에 예천군 상리면 흙목부락이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지명으로 보이며, 흙목은 토항(土項)이라고도 한다. 약 500여년 전쯤, 중국의 유명한 풍수지리가인 박상이라는 분이 산천을 구경할 때, 이곳에서 백봉암이라는 암자를 향하여 분향배례하였다는 곳으로써, 지명을 吐香이라 기록하였다고 했는데, 토향(吐香)이 와전되어 土項, 즉 흙목으로 지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좌측으로 자구지맥 능선과의 사이 골짜기로 고항리가 내려다 보인다.

 

 

우리가 흙목정상에 있을 쯤에, 탈출한 분들을 갈내골에서 유유자적 사동리를 향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는 갈내골 전경!

 


흙목정상을 뒤로하고 잠시 내려서니,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어가기 좋은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흙목정상에서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오다 보니, 앞쪽 나뭇가지 사이로 유두봉이라 불리는 봉우리가 보인다.

 

 

관리되지 않고 있는 헬기장을 지난다.

 

 

십자 안부인 싸리재에 도착한다.

 

<싸리재>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와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를 잇는 고개로, 좌측으로는 원용두 내려가는 마을의 이정표가 있으며, 우측으로는 남조리에 있는 단양유황온천 내려가는 길이 뚜렷하게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예전에 이곳에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라 하는데, 지금도 주위에 싸리나무들이 조금씩 보인다.

 

싸리재 한켠에 메어놓은 밧줄 그네를 즐기는 사이에,

 

 

탈출한 백두들은 사동리 마을로 접어들어,

 

사동리 마을 회관을 지나고,

 

길가 과수원에서 사과값 흥정도 해가며,

또 다른 체험을 했다.

 

 

가파른 유두봉 오름길에 좌측으로 예천군 상리면 방향이 조망되고,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마침내 유두봉 정상에 도착한다.

 

<유두봉(乳頭峰, 1,059m)>

싸리재에서 20여분 이상을 빡세게 치고 오르니, 아무런 표식도 없는 밋밋한 봉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유두봉이다. 아마도 봉우리 정상부가 유두처럼 생겼다고 대간꾼들 사이에서 그리 불리고 있는 듯하다. 실제 지도에서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좌측 예천군 상리면 두성리 방향 조망.

 

좌측 아래로 두성리 마을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탈출을 마다하고 대간능선을 함께 걷고 있는 권용상님.

 

 

 

유두봉에서 다시 올라온 만큼 급경사의 내림길을 한참 동안 내려서니, 배재에 도착한다.

 

<배재>

충북 단양군 대강면 남조리에서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야목마을을 잇는 고개로, 유두봉과 1,084봉 사이에 푹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여인의 유방 사이에 폭 꺼져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배재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배재에서 1084봉 오름길은 속된 말로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급경사라 힘이 든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서니 ‘1084m봉 힘내셔요 둘산악회’라는 코팅지가 붙어 있고,

최근에 설치한듯한 이정목이 있다.

 

 

탈출한 백두들은 과수원에서 구입한 사과를 나무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1084봉 정상에서 탈출한 분들과의 연락을 시도하는 총무님.

 

 

1084봉에서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진다.

 

 

돌아본 도솔봉 방향 대간 능선의 봉우리들.

 

 

또 그렇게 도솔봉 정상에 도착한다.

 

시루봉 정상 증명은 순회형 홀로!

 

<시루봉(1,110m)>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무수천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우측 능선으로 내려서면 대강면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시루봉의 지명유래는 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떡시루를 엎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시루봉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상리면 용두리 방향.

 

동남쪽 효자면 방향 조망.

 

 

탈출한 분들의 현위치는!

 

 

 

시루봉을 뒤로하고 완만해진 능선길을 따라 투구봉을 향한다.

 

 

폐헬기장은 지나면 이내 투구봉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투구봉(鬪具峰, 1,080m)>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예천군 상리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단양과 예천에서 세운 2개의 정상 표지판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봉우리가 마치 장수들이 쓰는 투구(모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투구봉 정상 조망바위에서 폼을 잡아 보는데,

힘든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ㅋㅋ

 

도솔봉에서 어렵게 넘어온 대간능선의 봉우리를 돌아보니,

오늘 걸어온 대간길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당겨본 도솔봉 능선 너머로 소백산 연화봉 쯤이 가늠된다.

 

투구봉 정상에서 본 동남쪽 방향 파노라마.

남쪽 방향으로는 저수령에서 예천군 효자면 용두리로 내려가는 도로도 보인다.

 

투구봉에서의 한참의 쉼을 뒤로하고,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촛대봉을 향한다.

 

용두리 방향 갈림길에서 우측의 능선길을 따르면,

 

 

이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촛대봉에 도착한다.

 

<촛대봉(燭臺峰 1,080m)>

산 정상에 있는 날카로운 암릉이 마침 촛대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며, 촉대봉(燭臺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문으로는 똑같은 뜻이다.

 

촛대봉 정상 인증은 나홀로!

 

촛대봉 정상에서 다음 구간 저수령에서 오르게 될 첫 봉우리인 문복대를 담아보고,

 

 

모두 떠나고 텅 빈 촛대봉을 뒤로한다.

 

 

용두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꺾어져 저수령으로 향한다.

 

빽빽한 철쭉 군락지를 지나면,

 

이윽고 건너편에는 지난번 어둠 속에서 걸었던 문복대가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며, 등로 아래에서 들려오는 차량 소리가 날머리인 저수령이 가까이 왔음을 알려준다.

 

 

완만한 내림길 능선을 따르면,

 

앞쪽으로 옛날에 고기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는 '소백산관광목장'이 내려다 보이고,

 

 

이내 저수령에 도착한다.

 

저수령 날머리로 내려서는 백두들.

 

길고 힘들었던 산행을 마무리하며, 저수령에 도착한다.

 

 

저수령 정상석 앞에서 힘든 산행을 마친 성취감에 취해 본다.

 

<저수령(低首嶺, 850m)>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울산리를 잇는 도계로, 저수령이란 이름은 경사가 급하여 지나가는 길손은 고개가 저절로 숙여야 지날 수 있다 하여 저수령(低首嶺)이라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까지는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곳을 넘는 외적(外適)은 목이 잘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저수령 전경.

 

저수령에서 기다리던 애마에 올라 힘든 산행의 마침표를 찍는다.

 

 

저수령에서 단양 방향으로 내려오며 단양군 대강면 미노 삼거리에서 탈출한 분들을 태우고,

 

 

가까이 있는 천연 목감탕에서 주변 눈치를 살피며 땀을 닦는다.

 

 

단양군 대강면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부실한 식사를 맛나게 해치운다.

 

먹거리가 기대에 못 미쳐도,

 

산행의 기억을 안주삼아 힘들었던 산행의 기억을 뒤로한다.

 

비어버린 안주 접시를 앞에 두고서도 뒤풀이 시간은 꽉꽉 채운 후,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소백산 주능선 조망이 멋졌던 백두대간 도솔봉 구간 산행을,

어렵사리 마무리하면서도,

종주를 마친 분이나, 탈출한 분들 모두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너무나 감사드린다.

 

산행 후 뒤풀이 식당이 평소와 달리 무척 부실했던 것은,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나의 불찰이니 다시한번

죄송한 말씀 아니 드릴수 없다.

 

어러나저러나 늘 감사해 주시는 모든 분께

다시한번 죄송한 말씀드리며,

감사하다는 말로 산행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