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백두대간 33차(우두령~삼도봉)
산 행 일 : 2015. 06. 13.(토)
산행코스 : 우두령 ~ 석교산(화주봉) ~ 밀목령 ~ 삼마골재 ~ 삼도봉 + 혜인리
(거리 18.5 +0.5 km)
산행참가 : 20명.
<산행코스>
03:42 지난 산행의 들머리였던 우두령에서 대간 산행 준비를 한다.
<우두령(牛頭嶺, 720m)>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과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을 잇는 901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우두령이라 한다. 우두령은 질매재라고도 불리는데,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牛)의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질매는 길마의 이 고장 사투리다. 이 말이 한자화하여 우두령이라고 표기된 것으로 보이는데, 지도에는 두 이름이 별개로 표기되어 있다.
우두령 생태통로 남쪽에서 바로 올라도 되지만,
03:45 생태통로 아래로 우두령을 넘어 황소상이 있는 영동군 쪽에서 석교산을 향한 대간남진 산행을 시작한다.
04:46 어둠 속에서 완만한 능선길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걷다가,
날이 어슴프레 밝아올 무렵에서야 헬기장이 있는 1058봉쯤에서 잠시 쉼을 한다.
05:26 석교산(화주봉) 도착.
<석교산(石橋山, 1,207m)>
오늘 산행 코스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황악산에서 삼도봉의 1000m급 봉우리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한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경북 김천시 부항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높은 산에 운해(시냇물처럼)로 가득 차 봉우리만 보이게 될 때, 석교산은 황악산과 삼도봉 사이에서 흐르는 운해(시냇물)에서 돌다리 같은 산이다'하여 불려진 이름이란다. 석교산은 화주봉(花朱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화주봉이라 부르는 연유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철쭉꽃이 붉게 피는 산'이란 뜻이 담긴 화주봉(花朱峰)으로 붙리기도 하고, 또 다른 설은 원래 이곳은 무명봉 이었는데, '옛날 전란을 피해 이곳으로 피란을 온 민초들이 화전을 일구며 민생고를 해결하면서 화주봉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설은 화주(花主)는 불교에서 '부처'의 다른 이름, 즉 중생을 교화하는 주인이라는 뜻이 있고, 석교(釋敎)는 불교(佛敎)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불교와 관련된 봉우리가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석교산에서 바라본 가야 할 삼도봉 방향.
남동쪽 김천시 부항면 방향.
석교산 정상에서 조망을 즐기는 백두들.
가야할 대간길의 1175봉 방향.
05:35 석교산에서의 인증을 남기고,
05:47 석교산 정상부 암릉을 내려서면 널찍한 공터가 나오고,
05:51 이어서 완만한 내림길이 이어진다.
06:02 안부를 지나 1175봉 오름길에는 가파른 암릉구간이 나타난다.
돌아본 석교산(화주봉) 방향.
06:05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절벽 구간도 조심조심 오르면,
뒤쪽으로 지나온 석교산이 멋진 산그림을 펼치고 있고,
구름이 드리운 동쪽 하늘에는 해가 떠올랐음을 알려준다.
서여사님이 석교산을 배경으로.
두 분 아자씨도 시원한 아침 바람을 쐬며 석교산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긴다.
06:11 1175봉 오름길 막바지 암릉구간을 오르는 백두들.
돌아본 석교산 방향의 대간 능선.
06:13 1175봉 정상 도착.
1175봉 정상에서 돌아본 석교산 방향.
가야 할 삼도봉 방향의 대간 능선을 가늠해 보는 백두들.
가야할 대간 능선 방향으로 삼도봉과 석기봉, 민주지산 등이 가늠된다.
06:19 1175봉 정상에서 하염없이 펼쳐지는 조망을 감상하며, 잠시 편안한 쉼을 즐긴다.
06:22 1175봉을 뒤로하고 암릉을 내려서면 작은 공터가 있고,
06:33 등로는 잠시 북쪽 사면으로 이어진다.
06:38 미역취 넝쿨이 엉켜있는 등로를 헤쳐가다 보면,
06:39 영동군 상촌면의 660봉 방향 능선 분기점을 지나게 되고,
대간길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완만하게 이어진다.
06:44 이제 삼도봉 까지는 달리 큰 봉우리가 보이지 않는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06:48 앗, 먹거리 발견!
가끔씩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입에 넣으며 즐거운 산행을 이어간다.
06:52 능선에 큰 나무와 암릉이 없으니, 미역취 넝쿨이 우거져서 산꾼들의 걸음을 방해한다.
06:55 등로 주변에 움푹 꺼진 곳이 나타나더니, 폐광지역으로 지반이 안정되지 않아 위험하다는 경고판도 있다.
이곳 폐광 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폐광 터 남쪽으로 산 아래에 '김천시 부항면 대야동'이란 마을이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대동(大洞)이라고 불렸다. 일제시대까지 마을 뒷골 일대에서 금맥이 발견되어 큰 규모의 금광이 생겨나 전국적인 명성을 누렸고, 실제로 김천은 선산과 함께 신라시대부터 이름난 금 생산지로 각종 고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곳 금광 굴의 깊이와 관련해서 멀리 해인동 앞까지 뻗어 있다는 등의 여러 설이 떠돌지만, 전 마을 노인회장 임차랑씨에 의하면, 어릴 때 동굴 끝까지 들어갔었는데, 수평과 수직갱도를 합해도 100미터는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일제시대 때 이곳에는 많은 금이 생산되면서 이 마을은 일본인 기술자들과 인부들이 밀려 들어와 크게 번성했는데, 자연히 인부들을 상대하는 술집까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수시로 분쟁이 발생되자, 급기야 일개 마을에 지서가 들어서기도 했다고 한다.
07:11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진행하다가,
07:28 우장풀이 싱그럽게 자라난 널찍한 안부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선들바람에 땀을 말리며 느긋한 아침식사를 즐기는데,
식사를 하는 백두들의 모습에서 회장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둘러보니,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아침식사를 않고 한쪽에서 쉬고 계신다.
식사를 마무리할 즈음에도 영 기운을 차리지 못하시자,
상황이 심상치 않은지 경험 많은 김여사님을 필두로
여러분이 함께 전신을 마사지하며 회복되기를 기다리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잘 회복하시지를 못한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러 가지 민간요법을 동원해 보지만,
별무 소용이 없다.
첩첩산중이라 전화도 터지지를 않고,
하는 수 없이 응급상황에 대처할 6명만 남기고,
다른 분들을 출발시켜 삼마골재에서 해인리로 탈출토록 하여
위기상황 발생 시 구조요청 등, 대응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전신마사지를 계속하며 얼마간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기운을 차리신다.
회장님의 상태가 조금 더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다른 분들이 탈출한 삼마골재 방향으로 천천히 진행한다.
탈출 도중 1123봉에서 쉼을 했던 백두들.
삼마골재에 도착한 백두들.
삼마골재에서 통화가 되어 후미를 기다리는 백두들.
10:10 다행히 두어 시간여 만에 기운을 차린 회장님과 함께 진행하여 밀목재를 지난다.
<밀목재(密木峙, 1,089m)>
충북 영동군 상천면 물한리 한천마을에서 면목골로 올라, 이 고개를 지나 경북 김천시 부항면 대야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밀목재는 경상도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고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충북 영동 쪽에서는 '면목재'라고 부른다.
10:15 조금 더 진행하니 이정목에 '밀목재'라고 손글씨를 써 놓았다.
11:05 가다가 쉬고, 그러다가 또 쉬고를 반복하며, 1123봉 정상에 도착하여 또 한참을 쉰다.
11:33 1123봉을 뒤로하고 삼마골재로 향하는 도중에 돌아본 석교산 방향의 지나온 대간 능선.
11:40 앞쪽으로 삼도봉이 다가오며 이제 내려서기만 하면 삼마골재에 도착하게 된다.
삼도봉(좌)에서 석기봉 방향으로 이어진 능선이 조망된다.
11:43 이런 '힘내세요'란 표지판은 '준.희' 님이 많이 걸어 놓았는데, 이곳의 표시판은 신선이 걸어 놓았다.
'회장님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이윽고 삼마골재 직전의 헬기장을 지나고,
11:45 앞서 출발하여 삼마골재에서 기다리던 백두들의 열열한 박수를 받으며 삼마골재에 도착한다.
회장님은 아직도 창백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백두들을 안심시키려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곳에서는 전화가 가능하여 부항령에서 기다리던 버스 기사님께 해인리로 탈출한다고 알리고는,
삼마골재에서 좌측 해인리로 탈출을 시작한다.
11:55 해인리로 내려가는 등로는 뚜렷이 나 있고,
이정표도 잘 설치되어 있다.
12:02 가파른 비탈길은 돌로 포장해 놓기까지 했다.
12:10 등로는 수레길 수준으로 넓어지고,
해인리가 멀지 않았음을 이정표가 알려준다.
12:16 수레길 수준의 등로가 임도 수준으로 넓어지더니,
12:24 해인리 날머리에 도착한다.
돌아본 삼마골재 방향 날머리.
해인리에서 삼도봉 방향의 등산 안내도.
삼도봉은 민주지산의 한 봉우리로 원래는 화전봉이라 불리었다. 경상도 김천, 전라도 무주, 충청도 영동의 삼도(三道) 경계가 이곳 한 자리에 맞물리는 봉우리라 하여, 근대 이래 삼도봉(三道峰)이라 부르고 있다고 적혀 있다.
삼마골 주변에는 예쁜 펜션들이 즐비하고,
펜션 입구는 예쁘게 단장이 되어 있다.
12:27 민가도 새로이 단장을 하였구나 싶었는데,
앞쪽 입구에는 해인산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12:29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풍기더니, 커다란 밤나무에 밤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12:33 정자가 있는 해인마을회관에 도착하니,
회관 앞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어 회차가 가능다고 하여 버스가 이곳까지 올라오게 되었다고 한다.
<해인리 유래>
신라시대에 마을 뒤 삼도봉 골짜기에 있던 해인사(海印寺)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설에 삼도봉 해인사가 경남 합천군으로 옮겨 간 것이라고 하나, 확인할 길은 없다. 조선 말기 지례군 상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윗두대와 해인동이 통합되어 김천군 부항면 해인리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부항면 해인리로 개칭되었다가, 1995년 다시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가 되었다.
백두대간 준령인 삼도봉을 비롯하여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삼도봉에서 발원한 부항천의 상류 하천이 지난다. 해인동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해인산장 못미쳐, 도로변에 마치 우람한 몽둥이처럼 생긴 큰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는데, 옛부터 유명한 고추방골의 남근석(男根石)이다. 이 남근석은 효험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해, 이들 낳기를 염원하며 치성을 올린 많은 여성들이 효험을 얻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김성옥이 경기도 양주군에서 피난 와 정착한 이래, 대대로 광산 김씨 집성촌을 이루어 왔다. 농경지가 좁고 오미자, 호두, 천마를 주로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 광산김씨 문중 재실인 둔암재(遯庵齋)와 쌍광재(雙光齋)가 있다. 마을 뒷산인 삼도봉은 충청북도 영동군,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북도 김천시의 삼도가 만나는 지점으로, 정상에는 1989년 김천문화원, 영동문화원, 무주문화원에서 '삼도봉 만남의 날' 행사를 기념해 만든 삼도화합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디지털 김천문화대전 자료)
정자에는 '해인정'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고,
12:49 정자에는 마을 노인들이 더위를 피해 쉬고 있다.
덕분?에 산행이 일찍 끝나서 너무 좋다며,
모처럼 황소걸음의 백두들이 속속 도착한다.
12:53 해인마을 버스 회차장에는 벌써 애마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
별로 털어낼 먼지도 없지만, 남은 힘을 먼지 털기에 쏟아붓고는 버스에 오른다.
13:19 오늘 산행의 종착지로 예정했던 부항령을 버스를 타고 지나,
14:05 무주로 이동하여 땀을 닦고,
15:01 예쁘게 단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뜨락'이라는 식당에서,
아귀찜과 아귀탕으로 뒤풀이를 진행한다.
모든 분들이 늘 바라던 "산행은 짧게, 뒤풀이는 길게"를 실천하게 되어,
다행스럽고 기쁜 마음으로~~!
16:29 뒤풀이를 마감하고는 식당 주인의 정성이 배어있는 정원의 이모저모도 둘러보고, 서울로 향한다.
회장님과 함께 걸어서 내려올 수 있어서 천행(天幸)이었다.
삶은 도전의 연속이기는 하다.
하지만 늘 살피고 살펴서 항상 성공할 수 있는 도전을 이어가도록 해야겠다.
노심초사 함께 걱정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김영임 여사님의 적절하고도 적극적인 대응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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