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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진양기맥 08차(아등재~쇠목재) : 청명한 날에 오른 조망 맛집 한우산

by 재희다 2024. 3. 15.


산행장소 : 진양기맥 08차(아등재~쇠목재) 경남 합천군, 의령군. 
산행일시 : 2023. 11. 25.(토) 
산행코스 : 아등재(160m) ~ 238.9봉 ~ 270.2봉 ~ 339.6봉 ~ 안금봉(368.5m) ~ 325.1봉 ~ 한실재 ~ 344.4봉 ~ 성현산(561.8m) ~ 480.3졸 ~ 440.1봉 ~ 한태재 ~ 619.1봉 ~ 505.1봉 ~ 외초재/큰재만당 ~ 산성산(741.9m) ~ 찰비재 ~ 한우산(835.7m) ~ 한우산동봉/우봉지맥분기점(764.7m) ~ 쇠목재 (약 20km, 9시간 반 소요) 

산행참석 : 14 백두.


<참고사항>
- 아등재~한티재~외초재 구간은 잡목이 많고 희미한 등로에 낙엽까지 덮여 있어서 등로 찾기에 주의가 필요.

- 외초재~쇄목재 구간 한우산 등로는 지나칠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어서 걷는데 불편함이 없다. 
- 한티재까지는 별다른 조망이 없으나 한우산 구간은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을 볼 수 있다. 

<산행지도>

 

지난 5월 진양기맥 7차 산행으로 아등재까지 진행해서는, 진양기맥 등로 상태가 여름 산행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이후 팔공기맥과 지리산 등의 명산 산행으로 여름을 보냈다. 이제 회원들의 뇌리에서 진양기맥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아무도 진양기맥 산행에 대해서 묻는 이가 없어졌고, 무성한 잡목들도 푸르던 잎사귀를 모두 떨구고, 등로를 덮고 있던 덩굴과 잡초들도 시들어 힘을 잃은 상태라 이제다시 남은 진양기맥 산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진양호까지의 진양기맥 산행도 서너번의 산행을 남겨 놓은 상태인데, 이번에 좌골티재까지 진행하게 되면 3회의 산행으로 진양기맥 종주를 마감할 수 있겠지만, 전망이 빼어난 한우산과 좌골산 산행을 걷는데 급급해서 그냥 대충 지나치고 싶지는 않았고, 또한 즐거운 산행을 원하는 분들을 한티재에서 출발해서 쇠목재까지만 진행하게 하는 것도 버스 기사님께 너무 큰 부담을 지우게 되는 듯해서, 금번 산행은 쇠목재까지만 진행하고 좌골산 구간은 후일  일출시간이 아침 6시쯤으로 당겨질 즈음에 다시 이어가기로 한다. 

 

예년보다 따뜻하던 늦가을 날씨가 주말을 앞두고 기온이 내려가 산행일인 토욜에는 꾀나 쌀쌀할 것으로 예보되며 사방팔방으로 조망이 멋지다는 한우산에서의 장쾌한 조망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양재에서 산행버스에 올라 산행 출발지인 합천군 쌍백면의 아등재로 향한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쉼 없이 달린 버스가 새벽 3시쯤 아등재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장가처럼 들려오던 엔진 소리가 멈춰버린 버스에서 단잠을 더 청한다. 얼마간 잤을까!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의 진동에 눈을 뜨고서는, 한티재에서 산행을 시작하게 되는 즐산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은밀하게 배낭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라이트에 의지해 산행 준비를 하는데, 총 14명 중에서 따라 내린 분이 7명으로 딱 반반으로 나눠졌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아등재 들머리를 향해 멱곡육교로 들어서며 진양기맥 여덟번째 산행을 시작하는데, 

 

<아등재(我等峙, 150m)>
경남 합천군 대양면 도리와 쌍백면 장전리 멱곡마을 아등골을 잇는 고개로, 예전에 조금만 마을이었으나 진주에서 삼가를 지나 합천으로 통하는 4차선의 33번 국도를 확장하는 바람에 이곳은 상전벽해가 되었다. 
아등재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로는, 아등재(我等峙)는 자동차가 없던 옛날에는 50명이 모여야 이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연유는 재 아래에 주막이 있었는데, 그 주막에는 주인과 여덟 명의 아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곤궁한 살림살이에 살기가 어려워지자 처음에는 아버지가 산적질을 하다가, 그래도 살기가 어렵자 나중에는 여덟 명의 아들도 합세하여 삼가와 합천 시장을 오가는 상인들을 상대로 산적질을 하였는데, 부자(父子) 산적 아홉 명이 산봉우리 한 등씩을 차지하여 산적질을 하였다 하여 ‘아등재’라 이름하였다 한다. 지금은 도로가 개설되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아등재에는 10m가 넘는 갈라진 바위가 있었는데 그 도적들을 잡아 사형시킨 장소라고 한다. 
또 다른 예기로는, 어느 도사가 이곳 지형을 보고 '어린 아동이 금반을 받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아동이재’라고 불러오다가 ‘아동재’가 되었다고도 한다. 

 

지난 구간 날머리 방향인 북쪽 합천군 대양면 방향의 고속도로처럼 쭉쭉 뻗어 있는 33번 국도를 건너는 생태통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저리도 높고 가파른 절개지를 만들 거였으면 진즉에 터널을 뚫을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며 이제 내년쯤이면 진양기맥을 걷는 분들과 고라니들이 조금은 수월하게 아등재를 통과할 수 있으리라 짐작해 보며, 

 

4차선의 33번 국도를 건너는 멱곡육교를 건너면, 직진의 합천군 폐기물처리장 입구 좌측에 산행 들머리가 있다. 

 

 

이정표는 물론 표지기조차 보이지 않아 여름철이면 찾기가 쉽지 않을 듯이 보이는 들머리로 들어서서, 

 

희미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능선 등로에 들어서면 제법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며, 

 

첫 봉우리인 묘지봉(238.9m)에서 ​우측 표지기가 이끄는 등로로 내려서고,  

 

나주임씨 묘지가 연이어 나타나는 제법 뚜렷한 내림길을 내려서서,

개념도와 인터넷 지도에 아등재로 표시된 안부를 지난다.

 

<옛 아등재>

경남 합천군 쌍백면 장전리와 대양면 함지리 큰골 사이의 고개 지점으로 좌.우로 옛길 흔적이 남아있으며, 개념도와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아등재'로 표시된 고개지점이다. 지금은 거의 재의 역할이 사라진 잘록이 안부로, 멱곡육교 지난 지점의 들머리에서 합천군 쓰레기처리장 방향으로 곧장 진행하면 이곳에서 정상 기맥등로에 합류하게 된다.

 

 

표지기가 한두개 걸린 작은 241봉을 넘어, 

 

포근한 낙엽에 덮여 있고 망주석도 세워져 있는 합장묘 좌측으로 내려서고, 

 

다시 조금 오르면 표지기가 걸린 237봉인데 이곳에서는 좌측으로 꺾어 내려서다가,  

 

다시 능선에서 우틀하여 조금 더 오르면 이내 개념도의 266봉이다. 이곳에서는 다시 좌틀하여 내려서야 하는데, 어둠 속에서 수시로 좌.우로 방향이 바뀌어 진행 방향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지도를 보니 지금까지 남동향으로 이어오던 기맥길이 동향으로 바뀌는 봉우리다.

 

 

소나무가 빼곡한 평탄한 능선에 이따금 희미한 갈림길이 나타나는 등로를 따르다가,

파묘터로 보이는 구덩이를 지나서 내려서면, 

 

잘록한 안부를 지나 합천이씨 가족묘지를 지나고, 

 

작은 봉우리를 좌회하여 희미한 길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나게 되고, 

 

약간 가팔라진 오름길을 잠시 올라 다시 완만해진 능선길을 따르다가, 

 

얕은 봉우리를 우회하여 조금 오르면,

표지기만 한두개 걸린 개념도의 335봉(339.6m)에 올라서 우측으로 내려서고, 

 

다시 완만한 능선 등로를 따르다가 얕은 능선봉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오르면, 

 

'준.희'님의 '삼각점봉(368.2m)' 산패가 걸린 안금봉(368.5m)에 도착하여 산행 1시간 반만에 첫번째 쉼을 한다. 

 

<안금봉(368.5m)>
경남 합천군 대양면과 쌍백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안금봉이 봉우리의 정확한 명칭인지를 알 수 없으나, 봉우리의 북동쪽이 대양면 안금리이고 얼마 전까지 서래야 박건석님의 '안금봉' 산패가 걸려있었다고 한다.

 

 

 

10여 분간의 긴 쉼을 뒤로하고 안금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빼곡한 다복솔 터널을 지나게 되고, 

 

이내 등로 우측으로 가족묘지가 나타나며 우전방으로 가야 할 성현산 능선쯤이 건너다 보이고, 

 

완만하지만 잡목의 태클이 심한 능선길을 따르는데, 

 

능선 마루가 널찍한 평지라서 따르던 족적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어둠 속에서 길흔적을 놓쳤는데,

작은 나뭇가지에 걸진 표지기 하나가 진행할 방향을 가르켜 주고, 

우전방 성현산 방향

 

간벌된 소나무가 방치되어 산꾼을 힘들게 하는 등로를 따르다가,

 

새로 구입한 렌턴 배터리가 방전되는 암울한 상황에서 영규 형이 내어준 예비용 렌턴에 의지하여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새벽 산행을 이어가면, 

 

평지 수준의 널찍한 소나무숲으로 이어지던 기맥길은 봉우리의 느낌조차 없는 313봉에서 직진의 안금소류지와 중촌마을 방향 뚜렷한 등로를 두고 표지기가 한두개 걸린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우틀하여 내려서야 하고, 

 

이내 좌측 대양면 안금리와 우측 쌍백변 대곡리를 잇는 최근에 신설된 것으로 보이는 임도를 지나게 된다. 

우측 쌍백면 대곡리 방향
좌측 대양면 안금리 방향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어, 

 

우측 산허리로 우회길로 보이는 오래된 수레길이 이어지지만 직진의 능선 오름길을 따르면, 

 

우측 한우산 방향의 사면에 쌍분묘지가 자리한 봉우리를 넘고, 

 

낙엽이 푹신한 능선길을 따르다가, 

 

개념도의 340봉(344.4m)을 우회하여 지나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346봉에서는 좌측으로 휘어지며 진행하고, 

 

작은 봉우리를 우측으로 비켜지나 내려서면, 

 

좌.우로 희미한 옛길 흔적이 남아있는 안부를 지나는데,

작은 나무둥치에 '한실재' 표지판이 걸려 있다.

 

<한실재>
우측 경남 합천군 쌍백면 대곡리 한실마을과 좌측 의령군 봉수면 청계리 윗말계 마을을 잇는 고개로, 한산재라 부르기도 한다. 이 고개 아래에 있는 쌍백면 대곡리 한실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제 이곳 한실재를 지나면서부터는 성현산까지 약 300고지 이상을 꾸준히 올라야 하는 힘든 구간이 기다리고 있다. 

 

 

한실재를 지나 호젓하고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는데, 

 

아직 푸르름을 남겨놓고 가을이 떠나감을 아쉬워하는 산객들을 맞이하는 나무가 시선을 끌고,

우측 산성산 방향

 

작은 나무둥치에 높다랗게 내걸린 344.4봉 산패를 매단 산꾼이 거인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데, 

 

344.4봉에서 약간 내려서다 보면 좌측으로 51번 송전탑을 지나게 된다. 

송전탑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의령군 봉수면의 국사봉쯤

 

 

빵빵은 아닌 쭉쭉 뻗은 소나무숲 오름길을 오르는데, 

 

좌후방 봉수상계마을 뒷산 너머 멀리로 가야산 정상부가 살짝 드러나 보이고, 

살짝 당겨본 가야산 모습

 

이내 다시 거칠지만 완만해진 능선 오름길을 따르다보면, 

 

좌측 소나무 둥치 사이로 의령군 봉수면의 국사봉이 더욱 뚜렷이 조망되고, 

 

다시 가팔라진 오름길을 따라 암릉구간도 통과하여 올라, 

 

별다른 표식이 없고 잔가지들이 정상을 차지한 500봉에서 성현산에 올라서하려던 아침식사를 한다. 

 

 

고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차가운 기온에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500봉을 뒤로하고 성현산으로 오르다 보면, 

 

등로 좌측으로 건너다 보이는 동북쪽 봉수면의 국사봉(688m)이 아침햇살을 받아 우람하게 보이더니, 

 

마침내 좌측 만지산과 위고지산 방향으로 더욱 뚜렷한 능선길이 나있는 성현산(城峴山)​에 도착한다. 

 

<성현산(城峴山, 561.8m)​>
경남 합천군 쌍백면 대곡리, 의령군 봉수면 청계리, 궁류면 평촌리의 경계에 자리한 삼면봉으로, 옛날에 성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오늘처럼 날씨가 맑으면 북서쪽으로 황매산과 오도산 그리고 가야산이 조망된다. 

 

북서쪽 합천호 방향.

살짝 당겨본 황매산 조망
살짝 당겨본 가야산 방향

 

 

성현산에서 좌측 만지산과 위고지산 방향의 능선이 더욱 뚜렷하게 보이지만, 진양기맥길인 우측 급경사의 잡목이 뒤덮은 능선으로 들어서야 하며, 이후 한티재까지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약 200고지 정도 고도를 낮추게 되는데, 

 

지도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알바를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거친 급경사 사면을 내려서면, 

 

능선을 차지한 김녕김공 합장묘 좌측 아래로 지나가는 포장임도를 따라서 한티재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쉬운 인생을 사는 우리가 기맥길은 쉬운 길로 갈 수 없다며 기맥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잠시 전에 보았던 임도가 좌측으로 맞닿는 안부 직전의 묘지를 지나고, 

 

이내 잡목으로 뒤덮인 안부를 지나 오름길을 오르면, 

 

48번 송전탑이 자리한 봉우리를 지나는데 작은 소나무 둥치에 '다류'님의 480.3봉 산패가 걸려있고,

 

더욱 거칠어진 능선을 따라 이어진 희미한 족적을 쫓는데, 

 

좌측 소나무 뒤로 보이는 우람한 산줄기는 성현산의 남동쪽에 위치한 외고지산(597.4m) 산줄기이고, 

 

<외고지산(外古地山, 597.4m)>
경남 의령군 궁류면에 있는 산으로, 산이 깊어 사람을 죽여도 모른다는 뜻에서 외고지산이라 하였다. 산정에는 2등 삼각점이 있으며, 성현산 방향으로 족스톤(chock stone, 낙석이 바위틈에 끼어 있는 돌)의 통천문이 있다.

<만지산(萬芝山 607.4m)>
경남 의령군 궁류면에 있는 산으로, 외고지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능선 상에 있다. 국사봉과 더불어 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이다. 아침해가 제일 먼저 비친다고 하여 망조산(望朝山) 혹은 그냥 명근산, 맹건산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만지산(晚知山) 한자이름으로 볼 때 지초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도 생각된다. 산정에 삼각점이 있다.(펌)

 

경주최공 묘지를 지나 내려서다가 다시 작은 봉우리를 오르면, 

 

47번 송전탑이 자리한 약간 편평한 봉우리를 지나게 되고, 

 

제법 깊숙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올라, 

 

짧은 거리에 세번째인 46번 송전탑이 자리한 봉우리를 지나서 내려서면, 

 

잘록이 안부가 나오는데 '반바지'님이 걸어놓은 용무령 산패가 작은 소나무 둥치에 걸려있다. 

 

<용무령(龍舞嶺)>
합천군 쌍벽면 대현리와 의령군 궁류면 토곡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안부로, 옛 산행기에는 직전의 46번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를 용무령이라 하였는데, 용무령에 대한 정확한 고증은 어렵다. 용무령이란 '용이 춤추는 산마루'란 뜻으로 짐작되는데, 정확한 명칭의 유래 또한 알 길이 없다.

 

 

 

용무령 산패가 걸린 안부에서 오름길로 들어서자 그나마 희미한 등로가 봉우리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다가, 

 

우측 아래로 송전탑이 보이기에 스마트폰 지도를 꺼내보니 송전탑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알바길이라, 

 

좌측의 기맥능선 봉우리로 올라서니 앞서 갔던 김전무도 알바를 하였는지 지도를 확인하고 있고,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외고지산 모습

 

앞쪽으로는 한티재 건너의 가야 할 622봉과 산성상쯤이 나뭇가지 사이로 가늠되고, 

 

다소간 완만해진 능선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어, 

 

한티재 직전의 다소 밋밋하게 오른 봉우리에서는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서야 하는데, 

우측 지능선에 자리한 송전탑으로 이어진 뚜렷한 산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예상보다 급경사 내림길이라 지도를 확인해 보았더니 한티재로 이어지는 기맥능선 우측의 능선으로 알바 중이라, 

 

다시 좌측 한티재로 이어지는 기맥능선으로 트레버스 하여 내려서다가, 

 

붉은 지붕의 한태령쉼터 건물 뒤로 닭장 그물로 보이는 그물망 울타리를 우회하여 내려서면, 

 

2차선의 1041번 지방도가 지나는 한태재에 도착하는데,

들머리인 도로 건너편 '궁류면' 표석 뒤로 오르게 된다. 


<한티재(漢峙, 365m)>
경남 합천군 쌍백면 대현리 골한태마을 용무령(龍舞嶺)과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대현마을 사이의 고개로 1041번 도로가 지나간다. 국토지리 정보원 지도에는 한태재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태'자도 '클 태(太)'자일 터이니 한티나 한태나 대현(大峴)이나 커다란 고개란 뜻으로 같은 말이다. 

우측 쌍백면 방향 조망이 시원한 데크목 전망대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폐업 하였는지 문이 닫힌 한태령쉼터 전경

 

우측 전망데크에서 본 서쪽 쌍백면 방향.

 

 

문이 닫힌 한태령쉼터 대신에 전망데크에서 간단히 목을 적시고는 도로를 건너, 

 

'궁류면' 표석이 있는 곳에서 옹벽을 올라, 

 

낙석방지 그물망이 설치된 능선을 따르는데 잡풀과 덩굴이 온통 등로를 뒤덮고 있어서 진행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우전방 합천군 쌍백면 방향.

 

좌후방 의령군 외고지산과 궁류면 평촌리 봉황대 방향. 

 

<봉황대>
봉황대는 의령읍에서 약 23km 떨어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의 벽계저수지 초입에 있는 단애(斷崖)이다. 거대한 기암괴석이 일대장관을 연출하는 봉황대는 모양이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봉황대 돌계단을 따라서 오르면 암벽 사이로 자연동굴이 하나 있고, 이 동굴을 지나면 좁은 석문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 석문을 간신히 빠져 나서면 또다시 동굴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는 사시사철 넘쳐흐르는 약수터가 있어 봉황대를 찾는 이들에게 시원한 약수를 제공한다. 봉황대 중턱에는 약간의 평지에 누대 하나를 마련해 두었는데 봉황루다. 50여 명이 앉아 놀 수 있는 봉황새의 머리처럼 생긴 이 봉황루에서는 인근의 유생들에 의해 잦은 시화 모임도 있었다고 하니, 지금은 가고 없는 옛사람들의 풍류를 잠시 엿보는 듯 현실의 눈에 선연하다. 바로 옆에는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잘 알려진 일붕사라는 큰 절이 있어 불자들의 내왕이 많은 곳이다.

 

돌아본 한티재 방향

 

다행히 초겨울이라 풀들이 말라있어서 찬찬히 살피며 진행하다 보면 뚜렷한 오름길 등로가 이어지며, 

 

무척 가파르고 거친 오름길을 20여분 더 오르면, 

 

좌측 방향 지능선 분기봉인 개념도의 556.5봉(큰동이봉, 590m)에 올라서 우측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봉우리 서쪽 가장자리 전망바위에 서면,

서쪽 지리산에서 북쪽 가야산까지의 합천군 쌍백면 방향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살짝 당겨본 지리산 천왕봉 방향
살짝 당겨본 황매산 조망

 

서북쪽 덕유산 방향.

북쪽 가야산 방향
살짝 당겨본 오도산과 가야산 조망
지리산과 황매산을 배경으로

 

 

우측이 낭떠러지인 잡목이 들어찬 암릉을 따르는데 서쪽 지리산과 황매산이 꿈인 듯 조망되고, 

 

소나무 가지 사이로 드러난 지리산 천왕봉 방향.

 

잡목으로 뒤덮인 능선을 따르다가, 

 

둥그런 안부를 지나 잠시 오르면, 

 

좌측 찰비계곡 건너의 매봉산(응봉산) 풍력단지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더니, 

 

바위암봉인 개념도의 622봉(619.1m)에 올라서는데 꾀꼬리등(619.1m)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다. 

 

 

꾀꼬리등이라 불리는 619.1봉을 뒤로하고 아기자기한 암릉지대를 내려서게 되는데, 

 

연이어 나타나는 전망바위에서는 서쪽 지리산 방향 조망이 장쾌하게 펼쳐지며, 

서쪽 지리산과 황매산 방향
살짝 당겨본 지리산 방향

 

잠시 완만해진 능선을 진행하다가, 내려서기가 조금은 까칠해 보이는 암릉 위에 서면, 

 

가야 할 한우산과 산성산 방향도 시원스레 조망되며 유명세를 떨치는 한우산에서의 조망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까칠해 보이던 암릉 내림길이 역암이라 잡을 곳도 많고 나뭇가지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다. 

 

 

까칠해 보이던 암릉을 어렵잖게 내려서서 잠시 완만해진 암릉 내림길을 따르다가, 

 

커다란 암릉 봉우리를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서서, 

 

좌측 관광농원의 높은 철망 울타리를 만나 울타리 우측으로 이어진 완만해진 내리막 능선을 따르면, 

 

옛고개 흔적이 희미한 안부를 지나며, 

 

완만한 소나무숲 능선길이 지쳐가는 산꾼을 다소간 편안하게 해 주더니, 

 

 다시 가팔라진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다가 좌측 벽계리 방향 길흔적이 선명한 옛고개를 지나서 오르면, 

 

작은 능선봉우리를 올라 계속해서 호젓한 능선 내림길을 내려서게 되고, 

 

다시 또 얕은 안부를 지나서 소나무들이 내뿜은 맑은 공기를 느끼며 기맥 능선을 이어가면, 

 

우측 편에 탱자나무가 울타리를 이루며 줄지어선 터널 길을 지나게 되고, 

 

길흔적조차 희미한 오름길을 잠시 오르다가, 

 

봉우리에 세워진 송전탑 축대인지는 알 수 없는 석축이 둘러진 501봉을 좌회하여 내려서면, 

 

좌측 벽계마을에서 올라와 산성산으로 이어지는 수레길 수준의 등로가 연결되는 큰재만당을 지나게 된다. 

 

<큰재만당/외초재>
경남 의령군 궁류면 벽계리와 합천군 쌍백면 외초리 사인마을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다. 이정표에는 우측 쌍백의 외초리에서 따 온 '외초재'란 표지가 붙어있으며, 어떤 지도에는 각수재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만당’이란 경상도 사투리로 ‘산봉우리’를 일컫는 ‘만대이(만댕이)’이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궁류의 유명한 벽계 저수지와 유원지가 있다. 

<벽계 마을의 유래>
옛날 백로가 떼지어 살았던 골이라서 백학동(白鶴洞)인데 변음돼어 「배애골」로 부르게 된 것이다. 벽계 못을 가로질러 긴 다리를 건너면 가파른 산길인데 한참 올라가면 산중턱 양달에 오목한 마을「웃벽계」에 닿는다.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노인층은 「벽언이」 또는 「벽기」라 부르는데 한자표기나 어원은 알 수 없다. 
벽언이 동네 앞에 산줄기 두 개가 있다. 동쪽이 한우산(寒雨山)인데「찰비산」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고, 서쪽이 산성산(山城山)인데 보통 산성터, 성터라고 부른다. 이 두 산맥 사이 칠마장 정도의 계곡이 바로 「찰비골」로 한우동(寒雨洞)으로 적는다. 오뉴월 한더위에도 이 산, 이 골에서 맞는 비는 겨울비처럼 차갑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또 산성산은 가야와 삼국시대 때 외침을 대비한 산성이 있었고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이웃 합천군 문화유적소개에도 「주위 약 2km의 석축(石築) 성지로 성내에는 다시 두루 200m의 토축성(土築城) 두 군데가 남아 있으나 붕괴되었으며 왜병이 침입 때는 봉수대(烽燧臺)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마을 뒷산이 꾀꼬리봉인데 꼭대기에 있는 큰덤을 「망바위」니 「망덤」이라 부르는데 이는「망(望)을 보는 바위」란 뜻이며 그곳에 서면 사방의 몇 십리는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을 들머리 높이 솟은 산은 함박꽃 모양이라서 함박산이며 뒷산은 버들잎이 돋아 날 때면 꾀꼬리가 둥지를 틀고 많이 살아서 황려봉이다. 

아득한 옛날 이 마을에 살던 백정(白丁)의 딸이 신분을 속이고 재너머 이진사(李進士)댁 도련님과 혼인을 했는데, 시집가던 그날로 속인 일이 들통나고 파혼으로 쫓겨오게 되었다. 이 계곡을 따라 신부행차가 오게 되는데 화가 난 백정은 딸이고 가마고 모두 물속에 밀어 넣고 난 뒤 자기도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그 순간 뇌성번개가 치고 억수비가 쏟아지고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말았다. 재너머 진사댁은 터도 없이 되었고 찰비골에는 없었던 바위돌이며 소(沼)가 여러 곳에 생겨났다. 신부가 빠진 자리가「각시소」, 농(籠)과 가마(駕馬)를 던진 곳이「농소」와 「가매소」,「중신아비」와 백정이 죽은 곳이 「장개소」가 된 것이라고 한다.
찰비골 막마침은 가례와 대의로 통하는 「쇠목재」고 산성산 너머가 합천땅(쌍백)이다. 약 4백년 전에 경주 김(金)씨가 먼저 터를 잡았고 지금도 서른집 넘게 살고 있다고 한다.

 

 

 

큰재만당 쉼터 의자의 유혹을 뿌리치고 넓은 수렛길 수준의 등로를 따라 산성산을 향하면, 

좌측 낙엽송 조림지

 

능선 등로가 급경사를 만나 지그제그로 오르게 되더니, 

 

우측에 산불감시초소 안내판이 세워진 갈림길에서 직진의 등로를 두고 우측의 침목계단길로 오르면, 

 

아래로 합천군 쌍백면과 삼가면의 들판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데, 

 

산불초소를 지키던 감시원이 오늘 같이 시야가 좋은 날은 좀체 드믈다며,

"저~기가 지리산이고, 그 앞이 황매산, 그리고 저짝 멀리가 가야산"이라며 일일이 조망 설명까지 해 주신다.

가야 할 산성산 방향

 

남서쪽 하동의 금오산 방향. 

 

서쪽 지리산과 황매산 방향.

 

북쪽 가야산 방향.

 

 

자세한 조망 설명을 해 주신 산불감시인과 헤어져,

능선길을 오르다가 산불감시초소를 들르지 않고 오는 등로와 합류하여 넓은 육산 등로를 오르면, 

 

좌측 굴샘 약수터 갈림길에서 우측 산성산 방향 통나무계단길로 들어서서, 

 

<굴샘약수터>
​산불감시초소에서 산성산 정상 방향으로 5분쯤 오르면 좌측 110m 거리에 ‘굴샘약수터’가 있다는 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굴샘 약수터는 커다란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샘물로 물맛이 일품이라 하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꾀나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잠시 전에 멋진 조망을 선사받았던 622봉 방향

 

능선에 우측 '동이듬' 방향 등로에는 '등산로 아님'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산행로 우측에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돔형 바위가 나타난다. 물동이를 엎어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합천 쌍백면 사람들은 '동이듬'이라 부르는 바위다. 잘 정비된 주 산행로를 따르면 이 바위의 왼쪽으로 우회,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하지만 '동이듬' 부근의 '산성산 0.2㎞'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능선 마루금을 살짝 넘어가면 로프 구간과 바윗길을 통과해 '동이듬'과 '선듬'을 거쳐 오르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재미는 있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20~30년 전 쌍백 초등학교 학생들이 소풍을 왔을 때만 해도 일부 '용감한' 어린이들은 마치 다람쥐같이 날쌘 동작으로 거대한 동이듬 꼭대기까지 오르내렸다고 한다.』 (국제신문) 

 

산성산까지 450m 남았다는 이정표

 

 

산성산이 가까웠다며 한층 힘을 내어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넓은 잔디마당인 산성산 헬기장에서 좌측 의령군 궁류면 벽계리 방향을 두고 우틀하여, 

 

완만한 숲길을 오르다가, 

 

이내 우측 위가 산성산 정상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우틀하여 오르면, 

 

앞서간 백두들이 쉼을 하고 있는 산성산 정상에 도착한다. 

 

<산성산(山城山, 741.9m)>
『산성산(山城山, 741.9m)은 경남 합천군 쌍백면 외초리와 의령군 궁류면 벽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축조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야 시대 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벽계산성(碧溪山城)에서 유래를 한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곳은 백제의 침공에 맞선 신라군의 중요한 방어진지였다.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고 신라 애장왕이 아끼던 부마가 전투에서 전사하자 애장왕이 직접 출정,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왕이 직접 지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성을 빼앗겼기 때문에 '왕다실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정상부는 비교적 넓은 대지이며, 평탄하여 성터로서의 입지는 탁월한 편이다. 현재 성(城)의 흔적은 토성(土城)과 석성(石城)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토성은 내성(內城)이고 석성(石城)은 외성(外城)으로 추정이 된다. 토성은 남북과 동서로 구성되어 있고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성벽 위는 현재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석성은 허물어진 상태로 2, 3단의 일부만 남아있고 유물로는 기와와 토기편 수점이 채집되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봉수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산성산 정상에서는 서쪽 먼 곳의 지리산 천왕봉과 황매산이 아련하게 다가오고, 북쪽으로는 오도산과 남산제일봉, 가야산까지 드러난다. 남쪽 가까운 곳의 한우산을 바라보면 천혜의 요새 역할을 했던 자연 성벽인 병풍바위와 수많은 기암들이 어우러져 화려한 풍경을 연출한다. 

 

서쪽 지리산 방향. 

살짝 당겨본 가야할 진양기맥의 집현산 방향
살짝 당겨본 지리산 조망

 

서북쪽 황매산 방향. 

 

북쪽 덕유산과 가야산 방향. 

 

북동쪽 대구 방향. 

살짝 당겨본 팔공산과 비슬산 조망

 

 

다시 산성산 이정표가 있는 등로로 돌아나와 한우산을 향하면, 

산성산 정상 이정표

 

산성의 내성쯤으로 보이는 토성 위에 '동이덤 등산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이내 외성인 허물어진 석성 성곽을 넘어서 내려서면, 

 

등로 우측에 우아한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전망대를 지나게 되고, 

소나무전망대에서 본 지리산과 황매산 방향

 

앞쪽으로 가야 할 한우산을 향해 능선길을 따르다가, 

 

등로 우측 20m 지점에 '상투바위 전망대'가 있다는 안내판을 따라 우측으로 들어서면, 

 

상투 치고는 너무 길어서 촛대바위나 거시기바위쯤이 더 어울려 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지리산 조망
당겨본 황매산 조망

 

상투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성산 아래의 절벽과 암봉 조망.  

병풍바위와 동이듬, 경사면에 우뚝 솟은 선듬 등 거대한 바위들이 도열해 있다.

 

산성산 남쪽에서 한우산 방면으로는 약 2km 길이로 병풍을 친 듯한 바위지대가 있다. 이 바위지대에는 제법 큰 독립암봉들인 동이덤, 상투덤, 쉬는덤, 장수덤, 붉은덤 등이 기경을 이룬다. 이 다섯 바위덤에는 옛날 장수덤에 사는 장수가 공깃돌 놀이를 하면서 들었다 놓았다 하는 바람에 바위 밑이 패어 샘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한우산 방면 바위지대에도 탕근바위, 어미바위 등 직립된 기암괴석들이 자리하고 있다.

 

 

상투바위 전망대에서 되돌아 나와 잠시 내려서면 또 다른 전망 암봉이 나오지만, 

 

멘 뒤쳐져서 가는 처지라 저 암봉은 생략하고 좌회하는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산성산과 한우산 사이의 안부로 우측 내초마을 방향 갈림길이 있는 찰비재를 지나게 된다. 

 

<찰비재>
경남 의령군 대의면 내초마을과 궁류면 찰비계곡을 넘나드는 고개이다. 이곳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지 이정표가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다. 

 

 

 

찰비재를 지나 한우산으로 오르는 낙엽이 푹신한 등로를 따르면, 

돌아본 산성산 방향

 

멀리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능선 오름길이 다소 완만하게 이어지며, 

 

전망이 좋은 자리에 설치된 벤치가 긴 산행에 지친 산꾼을 유혹하지만, 

벤치에서 본 합천군 삼가면 방향

 

홀로 뒤떨어진 산꾼은 후일을 기약하며 앙상한 철쭉나무 터널을 따라 오르면, 

 

아직 한우산 정상은 400m 정도를 더 가야 하지만 이정표에는 한우산이라 표시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곳부터 우측도 합천군 쌍백면에서 의령군 대의면으로 바뀌며 좌.우 모두  의령군 지역으로 접어드는 삼면봉(756m, 의령군 궁류면, 합천군 쌍백면, 의령군 대의면)이라서 '한우산'이라 표시된 이정표를 세워놓은 듯하다.

 

 

이제 지척으로 보이는 한우산 정상을 향해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사거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생태주차장 등로에는 '도깨비 설화원'이, 그리고 직진의 한우산 정상 방향 등로에는 백두산 호랑이가 한우산으로 내려와 새끼호랑이를 낳고, 새끼호랑이들이 한우산 도깨비 ‘쇠목이’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여 한우산의 왕호랑이가 되는 과정이 조각으로 설명되어 있는 '호랑이 설화원'이 조성되어 있다. 

 

<호랑이 설화원>
예로부터 한우산과 자굴산에는 '호불 어미 돌너덜', '호랑이의 자식 사랑', '은혜 갚은 호랑이' 등 호랑이에 관한 설화가 많이 전해져 내려왔다. 실제로 일제강점기까지 한우산에서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한다. 

호랑이 설화원에서는 백두산 호랑이가 한우산으로 내려와 새끼호랑이를 낳고 새끼호랑이들이 한우산 도깨비 ‘쇠목이’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호랑이 설화원 조성사업은 기존의 도깨비 설화와 연계한 스토리 구성을 위해 호랑이, 도깨비 스토리를 재구성했고 캐릭터 디자인을 변경했다. 그 결과 조형물 12개를 설치했고 전망대와 데크 230m, 숲길 200m 정비를 완료했다. 

 

좌측 도깨비 설화원 방향. 

 

정상 방향 등로에 풀어놓은 한우산 쇠목이와 한호 이야기. 

 

<한우산 쇠목이와 한호 이야기>

자굴산 황금동굴에는 쇠목이라는 도깨비가 살고 있어요. 쇠목이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대장 도깨비랍니다. 황금방망이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변신을 하기도 하고 물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영험한 능력도 가지고 있답니다. 

쇠목이가 지내고 있는 한우산과 자굴산은 백두산의 정기가 시작되는 곳으로, 예로부터 힘의 근원을 찾아오는 호랑이들의 성지로 유명했어요. 호랑이들은 이곳에 사는 쇠목이를 스승으로 여기고 쇠목이에게 다양한 체력훈련과 생존훈련을 받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백두산에 살고 있던 한호라는 호랑이가 출산을 위해 한우산을 찾아왔어요. 한호는 백두산 정령의 연인으로, 태어난 아기호랑이들을 강한 호랑이로 키워, 백두산 정령의 기운을 이어받을 후계자로 선발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쇠목이는 이 소식을 한우산의 홍의송 정령들에게 알렸답니다. 그리고는 태어날 아기호랑이들을 위한 훈련 준비에 돌입했어요. 저기 홍의송 정령들이 한호를 찾아가고 있네요. 우리 같이 한호의 출산을 축하하러 떠나 볼까요? 

 

 

한우산 정상 방향 등로로 들어서면,

 

한호가 동굴에서 새끼호랑이를 출산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이어서 새끼호랑이들이 쇠목이로부터 왕이 되기 위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장면을 지나, 

 

좌측 철쭉터널 방향 갈림길을 지나서 오르면, 

돌아본 찰비계곡 방향

 

아기호랑이의 강인한 생존력과 힘을 기르기 위한 절벽오르기 훈련이 묘사되어 있고, 

 

쇠목이가 주는 힘이 절로 솟는 신비한 망개떡을 받아먹는 장면도 지나면, 

 

멧돼지 왕 차우의 습격도 물리치고 한우산을 지켰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북동쪽으로는 오래전에 앞비종주에서 올랐던 비슬산이 뚜렷하게 가늠된다. 

살짝 당겨본 비슬산 방향
당겨본 화왕산 방향

 

 

이어서 약간은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넓은 나무계단을 오르는데, 

 

동쪽 대구의 비슬산과 창녕의 화왕산 방향이 비교적 선명하게 가늠되며, 

 

살짝 당겨본 비슬산 방향. 

 

당겨본 창녕 화왕산과 영남알프스의 운문산, 천왕산 조망. 

 

북쪽 지나온 산성산 뒤로 가야산도 선명하게 가늠되더니, 

 

이내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호기심에 이끌려 우측 길로 들어서니, 

 

네 마리의 아기호랑이를 상징하는 돌기둥이 있는 호랑이 쉼터를 지나게 되고, 

 

호랑이 쉼터에서 본 남쪽 사천의 와룡산 방향. 

 

남서쪽 금오산과 지리산 방향. 

당겨본 남해 망운산과 하동 금오산 방향

 

서쪽 지리산과 황매산 방향. 

지리산 천왕봉 방향
당겨본 황매산 방향

 

북쪽 가야산 방향.

 

탄성이 절로 나는 멋진 조망에 취해 폰카메라 셔터를 누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빤히 보이는 한우산 정상을 향하면, 

 

이제 훈련을 마친 호랑이들이 호랑이들의 성지인 자굴산으로 떠나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고,  

 

둥그런 산정을 포근히 덮고 있는 억새밭 사이로 이어진 신작로를 따르면, 

 

여느 시골의 신작로처럼 보이는 길 위에 대형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한우산 정상에 도착한다.   

 

<한우산(寒雨山, 835.7m)>
경남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와 궁류면 벽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쪽으로 산성산, 동쪽으로 응봉산, 남쪽으로 자굴산과 각각 연결된다.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으며 기암괴석이 많다. 의령의 형님 산이 자굴산이라면 한우산은 동생 산이다. '찰 한(寒)', '비 우(雨)'자를 쓰는 한우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산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며 한여름에도 찬비가 내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찰비계곡' 또한 길이가 3km에 달하여 인근에서 유명하다. 한우동 골짜기를 사시사철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며 곳곳에 폭포가 일대장관을 이루고 있는 천하의 절경이다. 봄철에는 철쭉과 진달래가 군락으로 피고, 가을엔 억새가 유명하다.
한우산은 정상 부근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하여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고, 봄에는 철쭉이 군락으로 피어나 경관이 아름답고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도 유명하다. 자굴산 쇠목재에서 내려다보는 단풍길도 유명한데, 이 도로의 형상이 마치 색소폰처럼 생겨 '색소폰도로'로 불린다.

『조선지지자료」(의령)의 대곡면(현재 대의면)에 '냉정산(冷井山)', 이유곡면(현재 궁류면임)에 ‘한천(寒泉)’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차가운 우물이 있는 시원한 산이라는 의미가 한우산(寒雨山)의 옛 지명임을 추정할 수 있다. 지명은 산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여 시원한 정도가 겨울에 내리는 '차가운 비[寒雨]'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이에 '찰비산'이라고도 하며, 산 북쪽 아래에 '찰비계곡'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백정의 딸이 신분을 속이고 재 너머 이(李) 진사댁 도령과 혼인을 했는데 시집가던 날 속인 일이 들통나고 파혼되어 쫓겨 오게 되자, 화가 난 백정은 딸과 가마를 물속에 밀어 넣고 자기도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그 후 찰비골에는 소(沼)가 여러 곳에 생겨났는데, 신부가 빠져 죽은 자리가 '각시소', 농(籠)과 가마(駕馬)를 던진 곳이 '농소'와 '가매소', 중신아비와 백정이 죽은 곳이 '장개소'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한국지명유래 경상편)

 

 

돌아본 북서쪽 호랑이 쉼터와 황매산 방향. 

 

동북쪽 응봉산 풍력발전기 너머 멀리로 보이는 현풍 비슬산과  창녕의 화왕산 방향. 

 

동남쪽 밀양과 함안 방향. 

 

동남쪽 창원과 가야 할 쇠목재 방향.

 

남서쪽 사천의 와룡산과 하동의 금오산 방향.

 

서쪽 지리산 방향. 

 

조망 맛집 한우산 정상에서 본 우리의 산하. (동영상 01' 07") 

 

 

'훗날 언젠가, 비겐 아침에 다시한번 장쾌한 조망을 보러 한우산의 정상을 오르리라' 다짐하며,

한우산을 뒤로하고 앞쪽으로 보이는 스카이워크 전망대로 이어진 신작로 수준의 등로를 따르다가, 

 

Y자 갈림길에서 기맥길은 좌측으로 내려서야 하지만 앞쪽의 전망대를 올라보려고 우측 능선길로 진행하였으나, 

 

타원형의 새 둥지를 닮은 전망대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는지 출입을 막아 놓았고, 

 

발길을 돌려 갈림길로 돌아나와 데크목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좌측 지나 온 산성산 능선과 가야산 방향
응봉산 풍력발전 단지 너머로 보이는 비슬산 방향

 

가야 할 한우정(寒雨亭)과 우봉지맥 분기점인 766봉이 내려다 보이더니, 

 

우전방으로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쇠목재와 다음 산행에서 오를 자굴산이 시원스레 시야에 들어오고, 

 

이내 쇠목재에서 한우산 정상부를 지나 궁류면 벽계리로 이어지는 도로에 내려서서, 

남쪽 진주 방향
돌아본 한우산 정상

 

한우정(寒雨亭) 뒤로 이어진 능선으로 들어서서 쇠목재 방향으로 진행한다. 

 

 

한우정을 지나 능선 등로로 들어서자 야자 매트까지 깔려 있고, 

 

이내 등로 좌측으로 '철쭉 도깨비숲'이란 팻말이 걸린 '철쭉 설화원길' 입구를 지나, 

철쭉 도깨비숲길은 한우산 오름길에 지났던 사거리로 이어진다.

 

<한우도령과 응봉낭자의 사랑이야기>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한우산에는 차가워 보이지만 마음이 따뜻한 한우도령과 달님처럼 어여쁜 응봉낭자가 살고 있었답니다. 응봉남자는 망개떡을 좋아했기에 둘은 자주 이곳 한우산에 올라와 사랑을 고백하며 망개떡을 나누어 먹었답니다.
하지만 그곳은 땅속 황금동굴에 사는 욕심많고 심술궂은 도깨비가 자주 나타나는 곳이었답니다. 이들은 낮에는 황금동굴에 모여 있다가 밤에는 도깨비가 되어 한우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지나가는 나그네를 괴롭히기도 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응봉남자를 보게 된 황금동굴의 대장 도깨비 쇠목이는 그만 넋을 잃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의령 최고의 선남 한우도령이 있었으니 속앓이를 하면서도 심술이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속앓이를 하던 황금동굴의 대장 도깨비 쇠목이는 궁리 끝에 응봉낭자가 좋아하는 망개떡을 황금으로 만들어 두손 가득 들고 찾아가 사랑을 고백하였지만 거절을 당하게 되고, 이에 분을 못 이겨 단숨에 한우도령을 찾아가 숨통을 조이며 그가 세상에서 없어지기를 바랐답니다.
그러던 그때, 응봉낭자가 나타나 힘없이 쓰러진 한우도령을 발견하고 너무나 큰 슬픔에 그 자리에서 나무로 변하고 철쭉꽃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장 도깨비는 그 꽃이라도 갖고 싶은 마음에 철쭉 꽃잎을 따서 먹었는데, 그 독에 의하여 바로 쓰러지며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답니다. 
이를 지켜보던 한우산의 홍의송 정령들은 한우도령과 응봉남자 두 사람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안타깝게 여겨, 한우도령은 도깨비가 없는 하늘로 올려 보내 차가운 비를 내리는 구름이 되게 만들고, 철쭉이 된 응봉남자는 한우도령의 비를 맞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답니다. 
한편 잠들어버린 쇠목이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깨어나 사람들에게 황금 망개떡을 나누어 주며 자신의 못이룬 사랑을 대신해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착한 도깨비가 되었답니다. 하지만 때로는 대장 도깨비 쇠목이는 응봉남자가 화한 철쭉과 한우도령이 화한 비를 머금은 구름을 시샘하여 강한 바람이 되어 둘 사이를 갈라놓기도 한답니다.

 

 

철쭉이 만개한 풍경을 떠올리며 철쭉터널 능선길을 따르면, 

 

좌측 '철쭉설화원' 길과 우측  '홍의송원' 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을 지나서 직진의 능선길을 따르는데, 

 

이제 남서쪽 남해의 망운산과 하동의 금오산이 우측으로 보이더니, 

 

이내 나무 벤치가 있는 삼거리 갈림길 쉼터가 나오는데,

좌측은 우봉지맥과 활공장 방향이고 진양기맥은 우측 능선을 따라 쇠목재로 이어진다.


 <우봉지맥(牛峰枝脈)>

우봉지맥(牛峰枝脈)은 진양기맥의 자굴산(897m)과 한우산(835.7m) 사이의 764.7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매봉산(597m), 신덕산(582m), 우봉산(373mn), 장군당재, 막실고개, 달재, 왕봉산(262.8m), 돌문재, 남재를 지나 남강이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기강나루)까지 이어지는 약 30.6km의 산줄기로 남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엄밀하게 강의 수계만을 따진다면 남덕유에서 온 산줄기는 이쪽으로 내려와서 남강의 우측 울타리를 쳐야 할 것이나, 산세나 길이, 가화강의 특성, 남강댐등을 고려하여 진양기맥이 진양호로 가는 바람에 기맥반열에서 지맥반열로 강등된 산줄기다.

우봉지맥 분기점의 이정표

 

좌측 활공장과 우봉지맥 방향. 

 

 

우측 쇠목재 방향으로 들어서면 앞쪽 나뭇가지 사이로 다음 산행에서 오를 자굴산이 보이고,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따뜻하게 보듬는 야자 매트가 깔린 호젓한 등로를 따르면, 

 

앞쪽으로 쇠목재 건너편의 다음 산행에서 오를 자굴산이 건너다 보이고, 

우측 진양기맥의 집현산 방향

 

좌측으로는 우봉지맥 산줄기가, 우측으로는 자굴산에서 남으로 뻗은 지맥이 병풍처럼 둘러진 함지박같이 움푹한 곳에 자리한 아담한 갑을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甲乙), 양성(陽城), 개승(介承)리>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진 아담한 '갑을' 동네는 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 양성리, 개승리 등 3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전면으로 흐르는 우봉지맥이 진양기맥 한우산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응봉산, 우봉산 및 옥녀봉을 지나 낙동강에서 맥을 다하는 길이 30.6km의 의령지역 지맥으로, 좌로는 낙동강, 우로는 남강을 경계 짓는다. 중간 잘록한 부분이 부잣재이고, 오른쪽이 응봉산(매봉산), 왼쪽이 신덕산이다. 그리고 저 갑을동네의 서쪽은 자굴산에서 남쪽 가례마을로 뻗은 산줄기가 포근하게 감사고 있다.

<가례동천(嘉禮洞天)>
자굴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리다가 문득 멈춘 곳의 넓은 골짜기 사이로 가례면 가례마을이 있다. 가례는 퇴계 이황 선생이 지은 마을이름(洞名)이다. 퇴계 선생은 경북 안동에서 이곳 의령의 허씨 집안(허원보의 손서이며 둘째 아들 찬의 사위)으로 장가를 들어 처가에 왕래를 하였고, 처고모부인 수성제공의 집을 여러차례 드나들면서 집 앞의 돌 벼랑에 예절을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가례동천이라는 네 글자를 지어서 남기었다. 

 

밀양 박씨 졸당파보의 수성제공에 관한 기록에 

“名其里曰 修誠 其洞曰 嘉禮洞天 載 宜寧郡誌“라 하고, 

“退溪題堂前石面曰 嘉禮洞天 至今 有四字刻”이라 하였다. 

가례동천은 우곡동산(牛谷東山)의 서암(西巖), 덕곡서당(德谷書堂)의 퇴계 암각문(巖刻文)과 함께 퇴계의 유묵선서(遺墨選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의령군 가례면 갑을 마을 조망

 

급경사의 암릉을 안전하게 내려서는 데크목 계단길을 내려서면, 

 

소나무숲 통나무 계단길을 내려서야 하고, 

 

다시 한번 데크목 계단길을 길게 내려서면, 

 

우측 생태통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리는 쇠목재에서 산행을 마치게 되므로 좌측 등로를 따라 내려가면, 

 

아고라 쉼터가 마련된 쇠목재 날머리에 도착하여 진양기맥 여덟번째 산행을 마감한다. 

 

<쇠목재>
쇠목재는 한우산과 자굴산 사이의 안부 고개지점으로, 경남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 신전마을과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 갑을 마을을 잇는 1013번 지방도가 지난다.

『자굴산은 의령의 명산이요 진산으로, 궁류의 한우산과 가례의 응봉산, 용덕의 신덕산과 이어져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는데, 의령을 감싸고 있는 이 거대한 산맥 전체의 형상이 마치 황소를 닮았다고 한다. 자굴산의 우람한 덩치가 황소의 머리, 동남으로 길게 뻗은 한우산과 응봉산의 산줄기가 몸통이며 신덕산이 엉덩이 부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자굴산과 한우산 사이에는 '쇠목재'라는 고갯길이 있는데, 이 고개의 잘록한 모양새가 마치 소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쇠목재'로 불리고 있다. 쇠목재 아래 갑을마을의 옛 촌명은 '쇠목', '쇠목촌'이었으며, 쇠목재는 갑을마을에서 대의면 모의마을을 이어주는 옛날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고갯길이었다.』 (의령 군청) 

쇠목재 생태통로

 

 

쇠목재 생태통로를 통과하여 반대편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의령읍의 온천에서 쌓인 피로를 씻어내고, 

 

의령의 진미 국밥집에서, 

 

장쾌한 조망을 선물해 준 신령님께 감사의 소맥을 올리고는, 

 

기다리던 애마에 올라 귀갓길에 오른다. 

 

 

삼연타석 홈런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본 광주의 무등산과 대구의 비슬산.

청산도 보적산에서 본 제주도의 한라산.

오늘 한우산에서 본 북가야산, 동비슬산, 남금오산, 서지리산.

 

이번 세기는 백두들의 세기가 될 듯하니, 

2099년까지만 산을 오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