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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팔공기맥 8차(오로고개~내밀재) : 전망도 좋은 베틀산 능선길이 빨래판!

by 재희다 2024. 2. 26.

 
산 행 지 : 팔공기맥 8차(오로고개~내밀재)  경북 군위군, 구미시.
산 행 일 : 2023. 10. 14.(토)
산행코스 : 오로고개(67번 국도) ~ 233.4봉 ~ 329.2봉 ~ 331.3봉 ~ 장구미기 임도 사거리 ~ 339봉 ~ 304.9봉 ~ 348.8봉 ~ 292.2봉 ~ 303.3봉 ~ 243.9봉 ~ 곰재(923번 지방도) ~ 226.4봉(82번 송전탑) ~ 경운산 문수봉(335m) ~ 328.7봉 ~ 비재(165m, 2차선 도로) ~ 우베틀산(332m) ~ 베틀산(324m) ~ 좌베틀산(370m) ~ 반석바위(332.4m) ~ 325.8봉 ~ 333.5봉 ~ 내밀재(195m, 927번 지방도) (21km, 10시간 소요)
산행참석 : 17 백두.

 
<산행 참고>
- 오로고개~곰재 구간은 완만하지만 희미한 등로가 이어지며 군데군데 거칠고 주의해야 하는 곳도 있고,
- 곰재~비재 구간은 다소 완만한 능선과 봉우리를 따라 정비된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 비재~내밀재 구간은 이정표까지 잘 갖춰진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며 암릉과 봉우리에서의 전망도 좋지만,
  연이어지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의 오르내림이 무척이나 가팔라서 힘이 든다.
 
<산행 지도>

 
지난 팔공기맥 7차 산행에서 더위라는 핑계로 곰재까지 진행하지 않고 오로고개까지만 진행했던 관계로 이번 구간 산행 설계가 상당히 고민스러워졌다. 산행 후반부에 자리한 베틀산 구간이 빨래판 구간이라 무척이나 부담스러운데, 그렇다고 비재까지만 진행하게 되면 남은 팔공기맥 구간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하고 또 조망이 좋다는 베틀산 구간을 새벽에 진행해야 하는 아쉬움도 있다. 산행 구간을 레고 블록처럼 때어 붙이기가 가능하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다가, 결국 베틀산 구간을 밝은 대낮에 진행하는 것으로 결론내고, 즐거운 산행팀을 곰재에서 출발시키기로 한다. 
 
 
오로고개 아래 문을 닫은 해피아일랜드 골프클럽 앞에 도착한 버스에서 한 시간쯤의 쪽잠을 더 청하다가 눈을 뜨고 산행 준비를 시작하는데, 두어 시간을 더 자다가 곰재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하게 되는 즐거운 산행팀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게 은밀하고 신속하게 산행 준비를 한다. 
 
 
희미한 미등만을 밝힌 버스에서 대충의 산행 준비를 하여 버스문을 나와, 버스가 라이트를 비춰주고 있는 골프장 입구에서 장천면 오로리 방향 도로를 따라 고갯마루로 진행하여 도로 우측 편에 주제가 불분명한 '고향'이란 광고판을 지나고, 

 
절개지 옹벽이 낮아진 지점의 오로고개 들머리에서 뚜렷한 수레길 흔적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오로고개(155m)>
경북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와 대구시 군위군 군위읍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동쪽 아래에는 무량사가 있고 우측으로는 군위읍으로 통하는 도로와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장천면 오로리>
고개 좌측 장천면 오로리는 오로지(五老池) 안쪽에 위치하며, 군위군과 경계로 지 가산(芝 歌山) 능선이 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아늑한 곳에 터를 잡아 전통적인 산남수북(山南水北)의 양지바른 작은 동네로, 1500년대 말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오금리에서 살던 밀양 박씨 박준(朴雋) 선생이  이곳에 피난 와서 살게 되어 세거한 곳이다. 선생은 호를 노은( 老隱)이라 하고 고향을 그리워하여 고향 동리 첫 글자와 자신의 호의 첫 글자를 따서 오로실(五老室)이라고 동네 이름을 지었다. 후에 선생의 현손 5형제(永澤, 永善, 永發, 永達, 永郁)가 동네 입구에 느티나무와 버드나무를 각각 한 그루씩 심어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성하다.
마을에는 朴雋(박준) 선생의 추모소(追慕所)인 노은당(老隱堂)이 있으며, 그의 5세손인 박영달(朴永達) 선생의 후손들이 건축한 춘우정(春雨享)이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동구의 다섯 나무 때문에 동네 이름이 오로실이라 불려지고 있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구미의산 종주길 안내판

 
 
옹벽이 낮어진 들머리에서 넓은 수레길 흔적을 따르다가 바로 우측 제법 뚜렷한 등로로 들어서서 오르면, 

 
이내 표면이 검은 널찍한 암반을 지나서, 

 
잠시 더 오르면 우측 무량사 방향에서 이어져 오는 널찍한 수레길에 합류하여 오르게 되고, 

 
자그마한 경주김씨 내외분 묘지 좌측으로 올라가면, 

 
소나무에 표지기가 한두개 걸린 첫 봉우리인 210봉에서 우측으로 꺾어 잠시 더 완만한 능선길을 이어가다가,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소나무가 빼곡한 개념도의 236봉을 지나서 능선 내림길을 이어가게 된다.

 
 
잔가지의 방해를 뿌리치며 희미한 등로를 따라 내려서다가, 

 
좌.우로 길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나고,  

 
소나무 제선충병 방제 흔적이 있는 완만한 능선을 올라,  

  
개념도의 330봉의 전위봉쯤을 지나고, 

 
가파르지 않은 능선을 따라 바위들도 보이는 등로를 잠시 더 오르면, 

 
'준.희'님의 329.2봉 산패와 표지기들이 잔뜩 걸린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잠시 배낭을 내리고 여장을 정비한다. 

 
 
겉옷을 배낭에 갈무리하고 한결 가벼운 분위기로 완만한 능선 내림길로 들어서서, 

 
업다운이 거의 없는 평지 수준의 능선길을 따르다가, 

 
좌.우로 길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나 잠시 오르면, 

 
표지기가 한두개 걸린 지능선 분기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 능선을 따르면,  

 
이내 '신선'님의 팔공지맥 331봉 산패가 걸린 봉우리를 지나게 되는데,
네이버 지도를 보니 상주영천고속도로 평호터널 상부 지점이고, 

 
내림길로 들어서면 이내 제법 널찍한 수레길을 만나 한결 수월하게 진행하다가, 

 
의성김씨 가족묘역을 지나면, 

 
좌측 장구미기 마을에서 올라오는 임도에 내려서서 좌측으로 5m 지점에서 다시 우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기맥길을 이어가는데, 우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군위읍 수서리의 내장수지(內長壽池)와 장수동을 거쳐 군위로 이어진다. 

 
<장구미기>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에서 우측의 중앙고속도로 군위 IC로 가는 고개로, 장구의 모가지처럼 잘록하게 생겼다고 해서 장구미기(장구메기)라고 부른다. 이 고개 좌측의 마을 이름이 장구미기라 한다. 그래서 이 고개를 장구미기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이곳 장구미기 고개지점에서 기맥길은 소나무 간벌로 인해 무척 거칠어서 좌측 장구미기 마을 방향의 임도를 따라 좌회하여 지나기도 하는 곳이라서, 아직 캄캄한 밤이라 그냥 편히 도로를 따라 좌회 할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핑계에 불과한 듯 보여 기맥길을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들머리 임도에 걸린 표지기에 이끌려 오름길 임도로 들어서면, 

 
들어선 임도길은 금새 사라지고 길흔적조차 희미한 거친 능선을 더듬어 오르게 되는데, 

 

어둠 속에서 좌틀하여 내려가는 기맥길을 보지 못하고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따르다가, 

 

알바가 아닌가 하고 네이버 지도를 보니 좌틀하여 내려가는 지점을 지나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다. 바로 발길을 돌려 잠시 내려오니 기맥길 방향 좌측 숲으로 표지기가 여러 개 걸린 능선분기점(알바 주의)이 나오는지라, 표지기가 걸린 희미한 기맥길로 들어서서 내려서면, 

 

앞쪽으로 가야 할 기맥능선이 구미시의 후광으로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우측 밭 가장자리를 따라 좌측 장구미기에서 이어오는 포장임도로 내려서서 우측 임도길로 50m쯤 진행하다가, 

 

'Y'자 갈림길에서 따르던 포장 임도를 두고 좌측 비포장 임도로 들어서고, 

 

잠시 넓은 수레길로 오르다가 우측 나뭇가지에 걸린 표지기에 이끌려 숲길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직진의 넓은 수레길은 사면으로 우회하여 잠시 후 기맥길과 만나게 되겠지만, 기왕 기맥 종주에 나섰으니 편한 우회길보다 기맥 능선에 가까운 숲길을 따르기로 한다. 

 

 

추석 때 벌초를 한 듯 보이는 묘지를 지나고, 

 

어지러운 관목숲으로 이어진 희미한 족적을 쫓아 올라, 

 

북쪽 지능선 방향 알바 주의 지점인 봉우리 묘역에서 맥길을 잘 따르고 있는지 점검도 할 겸 잠시 배낭을 내리고 목을 축인다. 

 

 

밝은 낮이었으면 남쪽 유학산 방향 조망이 좋았을 묏터를 뒤로하고 좌틀하여 남사면에 묘지가 자리한 능선을 따르다가,  

 

능선을 차지한 묵밭 둘레에는 유해 조수 방지용 그물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어,  

 

묵밭 좌측 묘지 상단으로 진행하다가 우측 숲으로 들어서니, 

어둠 속에서 희미한 남쪽 장천면 방향

 

잠시 전에 지난 밭으로 이어질 듯 보이는 수레길에 접속하여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능선 수레길을 따르게 되고, 

 

좌측 수레길과 만나는 'ㅓ'자 갈림길삼거리인 안부를 지나 직진의 수레길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면,  

남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은 금성일까?

 

좌측 오로리 방향 지능선이 분기되는 330봉쯤을 지나는데 좌측 유학산 방향으로 구미 마이다스 골프클럽쯤의 불빛이 뚜렷하고, 

 

관목지대로 이어지는 수레길은 인적이 끊어진지 오래인 듯 거미들의 영역임이 완연하지만, 

 

숲으로 뚜렷하게 이어지는 수레길을 따르다가, 

 

어린 참나무에 표지기가 한두개 걸린 300봉쯤의 능선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는 능선을  따르면, 

 

거칠지만 업다운이 거의 없는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렌턴 불빛에 화들짝 모습을 드러낸 들국화

 

304봉쯤을 지나는데 우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전방으로 가야 할 347봉쯤과, 

 

그 우측 평호리 방향으로 이어진 능선이 조망된다.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따르다가, 

 

안부를 지나 오르는데,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산그림이 그림인 듯 보이더니, 

 

작은 소나무 둥치에 표지기가 걸린 삼면 경계 능선에서 좌측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좌측은 구미시 장천면이 계속되지만 우측은 군위군 소보면에서 구미시 산동면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삼면봉을 지나자 여명이 밝아와 주변 사물이 뚜렷이 보이며, 

 

최근에 팔공기맥을 걸은 산꾼들의 흔적이 연이어 눈에 들어오고, 

 

따르던 등로가 봉우리를 점령한 관목숲으로 사라지며 잠시 혼란를 겪다가, 

 

'여영'님의 산패와 여러 산꾼들의 표지기가 내걸린 347봉을 지나게 된다. 

 

 

347봉 정상을 벗어나자 분위기가 확 바뀌어 멋들어진 소나무숲 능선으로 들어서는데, 

 

철없이 피어난 진달래가 신기하면서도 가엽기까지 하고, 

 

작은 둔덕 수준의 봉우리를 지나, 

 

좌측 금산리 방향으로 지능선이 분기되는 지점에서 우측 능선으로 진행해야 되지만 양쪽 능선으로 제법 뚜렷한 등로가 이어져 있어서 알바의 우려가 있어 보인다. 혹여하며 일행들을 점검해 보았더니 김 전무는 우측 아래의 지름길로 진행하였고 권 법사님이 보이지 않아 전화를 해 보았으나 받지를 않아 배낭을 내리고 기다리기로 한다. 

 

 

10여 분 만에 권 법사님과 연락이 닿아 우측 능선을 따르는데 이어 우측 아래로 이어온 지름길과 합류하는 안부를 지나고, 

 

커다란 바위가 있는 304봉쯤에 올라서는 평지 수준의 능선길을 따르다가, 

 

'Y'자 갈림길에서 기맥꾼의 냄새가 풍겨오는 보다 뚜렷한 좌측으로 진행하여, 

지도를 확인하는 동안 잠시만!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안부를 지나 잠시 올라, 

 

작은 봉우릴 지나고,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싱그러운 숲길을 올라, 

 

곰재 직전 244봉에 올라서는 좌측으로 내려서야 하지만, 곰재를 지나면 경운산까지 가서 아침식사를 하여야 하기에 이곳에서 조금 이른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곰재로 내려서다가 빽!
244봉에서 아침식사

 

 

244봉에서 아침식사 인증을 마치고 좌측 능선을 따라 곰재로 향하면, 

 

제법 가파른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안부를 지나 작은 봉우리를 넘고, 

 

다시 제법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서면,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곰재에 내려서게 된다. 

 

<곰재(熊峴)>
경북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에서 산동읍 백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곰재를 지나는 923번 지방도로변에는 '곰재농장' 대형 표지석이 있는데, 곰재농장에서는 토종닭과 유정란, 가시오가피와 헛개나무를 키우고 재배한다. 
『곰재(熊峴)는 옛날 곰이 많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옛날 어떤 포수가 고갯마루에서 곰을 보고 몸을 피하였는데, 실제 그 곰은 이미 죽어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행인이 죽은 곰을 주워 큰 이득을 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웅현 아래에 곰재못이 있다.』 (디지털 구미문화대전)

 

도로 건너편 '곰재농장' 표지석이 있는 들머리 전경. 

 

 

잠시 전에 아침식사를 한 터라 따로이 쉴 필요도 없어서

'곰재농장' 표지석 옆 양쪽으로 갈라지는 들머리 임도에서 좌측 오름길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산길로 들어, 

 

우측 봉우리로 이어진 등로를 따르면, 

 

등로는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좌측 아래의 임도와 나란히 사면으로 이어지다가, 

 

포장 임도에 내려서서 그냥 임도를 따라 올라도 되지만 가급적 기맥 능선을 걸어보자며 산길로 들어 오르면, 

돌아본 팔공기맥의 봉우리들

 

둥그런 모양의 말끔한 226.4봉쯤을 지나는데 앞쪽으로 거대한 송전탑이 보이고,   

 

좌측 아래로  27홀 규모의 구미 CC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지만, 

 

기맥 산꾼들이 우측 임도를 따라 진행하는지 칡넝쿨로 덮인 능선 등로를 어렵게 진행하여, 

 

다시 임도로 내려서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잠시 임도를 따르다가 임도가 우측 산허리로 돌아가는 지점에서 다시 좌측 산길로 접어들어 오르는데,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구미시 쓰레기 소각장이 내려다 보이고, 

 

들국화가 예쁘게 피어있는 수레길을 따르면, 

 

좌측으로 또 하나의 송전탑이 보이더니,  

 

제법 가파른 능선 오름길을 오르는데 최근에 설치한 듯 보이는 참호가 눈길을 끌고,  

 

잠시 더 오름길을 올라 좌.우로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는 개념도의 270봉에 올라 우측 능선을 따르면, 

 

앞쪽으로 가야 할 경운산쯤이 건너다 보이고, 

 

다시 우측으로 송전탑을 지나는데 우후방으로 구미시 소각장과 첨단종합환경타운(매립지)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여러 산꾼들의 왕래에도 밣히지 않은 달팽이

 

 

잘 정비된 능선 등로를 따라 안부를 지나 작은 봉우리를 넘고,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따르는데,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비행기가 보여 살짝 당겨보니 경운대학교라는 간판이 보이고, 

 

<경운대학교>
경북 구미시 산동읍에 있는 4년제 사립대학으로 학교법인 숭선학원이 1997년 3월 한국산업대학교로 개교한 뒤 1998년 8월 경운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사립 4년제 산업대학에서 2012년에 일반대학으로 전환했으며, 현재 4개의 단과 대학(항공공과대학, 항공서비스대학, 간호보건대학, 사회안전대학) 22개 학과가 있고, 대학원은 일반대학원(11개 학과), 산업정보 대학원(6개 학과), 사회복지 대학원(4개 학과)에 총 21개 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단과대학 중 항공공과대학(KAI-TECH), 항공서비스대학(KAI-SERV)은 항공특성화 단과대학이다.

 

 

이내 다시 좌측 경운대학교에서 올라와 곰재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서서, 

 

우측 임도를 따라 30m 이동하여 좌측 능선 숲길로 기맥길을 이어가게 된다.

 

 

임도로 진행하여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분들과 함께 좌측 숲길로 들어, 

 

암릉 사이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오르면, 

 

두 개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경운산/문수봉(341m) 정상에 오르게 된다. 

 

<경운산/문수봉(341m)>
경북 구미시 산동읍 동곡리와 백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동읍 인덕리 경운대학교의 뒷산이다. 산 아래에 문수사란 절이 있어서 문수봉이라 불렀는데, 경운대학이 들어서며 경사로운 구름이 머무는 산 즉 '경운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지만, 공인된 지명인지는 알 수 없고 네이버 지도에는 문수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상에는 별 특징도 없고  산불감시초소와 재난방송 시스템만 산을 지키고 있다.

 

살짝 당겨본 구미시와 금오산 방향.

 

<구미시(龜尾市)>
구미시(龜尾市)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정신문화의 산실이다. 구미지역은 낙동강 주변으로 가야시대 고분군과 유적이 발견되고 있어 역사적으로 고대문화가 발달했던 지역으로 보인다. 신라시대에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불교가 전해진 곳이고, 해동(海東) 최초의 가람인 도리사(桃李寺)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성리학을 꽃피운 지역으로 야은 길재(冶隱 吉再), 강호 김숙자(江糊 金叔滋), 점필제 김종직(店畢濟 金宗直) 등의 학자와 하위지(河緯地), 생육신 이맹전(李孟專), 한말 의병대장 허위(許蔿) 등 숱한 애국지사를 배출한 곳이다. 
근대에 와서는 과감한 수출정책을 추진하고 새마을운동을 창시하여 국가경제의 기틀을 다진 박정희 대통령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1969년 구미면이 공업개발지구로 지정된 이후 공업생산활동을 기반으로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내륙전자공업도시로 발전했고, 1995년 선산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도농 통합형태의 구미시가 되었다. (디지탈 구미문화)

 

살짝 당겨본 금오산 모습

 

가야 할 베틀산과 냉산을 배경으로. 

 

 

문수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가야 할 베틀산의 모양에 약간은 주눅이 들어 소나무숲 내림길로 들어서서, 

 

좌.우로 길흔적이 희미한 안부를 지나고, 

 

작은 봉우리를 우회하여 잠시 더 능선길을 따르면, 

 

좌측 구미시 방향으로 조망이 트인 임부암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약간은 황당한 내용의 '임부암의 전설' 안내판에 나오는 임부암은 전망데크 아래의 바위절벽이어서 전망대에서는 보이지 않고 약간 더 진행하여 돌아봐야 볼 수 있다. 

 

<임부암(妊婦岩)의 전설>
먼 옛날 지금의 선산 지역 출신의 한 왕비가 있었는데, 임신을 하면 낙태를 거듭하였더라. 왕이 전의에게 물은 즉, 왕비의 몸이 음기가 약하여 그러함에 음기가 센 곳을 지나는 바람이 우측으로 돌아 몰아치는 수직의 암벽에 나신(裸身)으로 기대어 그 음기를 받으면 태반이 튼튼하게 되어 무사 출산을 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 이에 왕이 음기가 세기로 소문난 이곳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현주소)에 위치한 승선골을 찾아와 중턱의 한 암벽을 찾았더라.
왕은 절벽 옆에 조그마한 궁(宮)을 지어 거처지를 만들고, 계곡에 장군과 맹수를 배치하여 사람과 동물의 접근을 막았더라. 왕비는 나신(裸身)으로 절벽에 기대어선채 임신을 하여 10개월 후 건강한 왕자를 출산하였고, 태어난 아이가 영명하여 자라서 왕이 되어 왕권을 강화하고 영토를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더라.
왕비의 모성애에 감복한 경운산 산신령이 이를 기리기 위하여 임부의 모습을 바위로 만들었으니 지금의 임부암(妊婦岩)이요, 주변을 지키던 장군과 맹수의 모습도 만들었으니 장군암(將軍岩)과 금수암(禽獸岩)이요, 맞은편 산에서 지켜보던 거북의 형상을 따서 만든 것이 귀암(龜岩)이더라. 후세 사람들이 왕비 거처지를 인덕궁(仁德宮)이라 이르고, 왕이 매일 태양과 달이 중천에 떠올랐을 때 몸을 씻었던 작은 연못을 제왕지(帝王池)라 하였더라.
후일 태반이 약한 여성들이 임부암(妊婦岩) 곁에서 나신(裸身)으로 음기를 쐬어 튼튼한 아기를 낳았으며, 태어난 왕손이 영명하였다 하여 입시절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 임부암(妊婦岩)을 찾아와 합격을 기원하고, 제왕지(帝王池)에는 몸이 허약한 사람들이 찾아와 해와 달이 중천에 오를 때를 기다려 목욕을 하며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더라.
왕이 산을 오르다 '이곳이 인재 양성의 요람이구나!'라고 한 곳엔 지금 명문 경운대학교가 들어서 있고, 왕이 휴식을 취한 곳에
경운대학교가 지는 경운정(慶雲亭)이 있어 산행하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남동쪽 구미 4공단 방향. 

남동쪽 구미 4공단 방향 좌측으로 천생산이 구름 위에 떠 있다.
남동쪽 구미 4공단 방향으로 좌측에는 천생산, 우측에는 금오산이 아련하다.
살짝 당겨본 금오산 방향
북쪽 가야할 봉우리는 좌회하여 지나게 된다.

 

 

전망데크를 뒤로하고 잠시 내려서서, 

 

좌측으로 '전설의 길'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안부를 지나 오름길로 들어서면, 

 

뚜렷한 등로는 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좌측 사면으로 이어지다가 우측 산능선 방향의 희미한 등로가 열려있는 지점에서 잠시 '봉우리(334봉)를 오를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봉우리를 올라도 별다른 조망도 없고 내려서는 길이 절벽이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선답자의 산행기를 읽은 터라 그냥 우회하여 지나기로 한다. 

 

남쪽 유학산과 천생산 방향. 

살짝 당겨본 유학산과 천생산 방향.
천생산과 구미 4공단 방향

 

 

소나무숲 바위비탈로 이어진 좁지만 잘 나있는 우회길을 따라, 

 

334봉을 좌회하여 다시 기맥능선에 접속하여  완만한 기맥능선 내림길을 이어가는데,  

우측 산동읍 백현리 방향

 

등로에 놓인 벤치가 지쳐가는 산꾼을 유혹하지만, 

 

갈 길 먼 산꾼은 부지런히 발길을 놀려 넓은 주차장용 공터가 있는 안부 임도에 내려서는데, 

 

이곳 안부에서 북동쪽 1시 방향 임도를 따라도 비재로 갈 수 있지만, 아직은 굳이 기맥 능선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어보여 건너편 등로로 들어서서 기맥 능선을 따라 비재까지 진행하기로 한다. 

임도 날머리 이정표

 

 

안부 공터에서 건너편 숲길로 들어서면 뚜렷한 숲길은 남쪽 경운대와 문수지 방향으로 이어지는지라, 우측 희미한 족적이 이어진 능선길로 올라, 

 

남쪽 문수지 방향 지능선 분기점에 접속하여 희미한 우측 능선 등로를 따르면, 

좌측 구미하이테크벨리 방향

 

이내 거친 능선에 방화선처럼 널찍한 수레길이 이어지며 훨씬 편안한 발걸음을 옮기는데, 

 

우측 지능선 분기점에서 따르던 수레길이 지능선을 따라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지점에서 앞서 가던 분들이 배낭을 내리고 쉼을 하고 있다. 

 

 

아침식사 후 제대로 쉬지를 않았던 터라 과일을 나누며 느긋한 쉼을 하다가, 우측으로 내려가는 수레길을 두고 직진의 기맥능선으로 들어서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딴판의 거친 등로가 이어지다가, 

 

이동통신 중계탑을 지나며 우측으로 내려서면, 

 

좌측으로 비재 도로가 내려다 보이며 앞쪽으로는 비재 동쪽 산동읍 백현리의 시루봉(262.6m)이 건너다 보이더니, 

 

'산동 참 생태숲' 표지석이 있는 비재에 내려서게 되는데, 비재 들머리는 도로 건너편 통신전주 옆 수레길이다. 

 

<비재>
경북 구미시 산동읍 동곡리에서 백현리를 연결하는 923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이제는 고개 아래로 비재터널이 뚫려 고갯마루는 더욱 한산해졌다. 비재는 옛 지도(1917 일제 발행)에는 星領(성령, ピルリョン)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별고개’로 불렸다고 하는데, 비재라는 이름을 얻은 연유는 찾을 길이 없다. 
산동읍에서 조성한 '산동 참 생태숲'이 자리하고 있고, 좌측 아래의 동곡리에는 산동논공단지가 들어서 있다.

 

'산동 참 생태숲' 표지석 좌측 임도는 20여분 전에 지났던 안부 임도로 이어진다.
좌측 비재 고개마루 전경
우측 백현리 시루봉 방향

 

 

이곳 비재에서 내밀재까지는 6km 정도로 길지는 않지만 업다운이 100m 내외인 봉우리가 8개나 이어져 혼을 빼놓는 구간이지만, 곳곳에 자리한 전망바위에서의 구미와 금오산 방향 조망이 좋고 구미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베틀산 구간이라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구간으로, 

 

산행 들머리인 '산동 참 생태숲' 표지석 건너편의 통신전주 옆 묘지길로 오르면서 기맥 산행을 이어가게 된다.

 

 

첫번째 묘지 상단 숲을 지나 들국화가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두번째 파묘터 상단 숲으로 들어, 

 

아래로 비재터널이 지나는 봉우리에 올라 우측으로 진행하면, 

 

좌.우로 옛길 흔적이 남아있는 안부인 '옛 비재'를 지나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다가. 

 

다소 완만해지는 거친 능선길을 오르면, 

 

소나무 재선충병 방재의 흔적이 있는 221봉을 넘고, 

 

완만한 소나무숲 능선 내림길을 따르는데, 

 

등로 좌측으로 산동읍 소재지와 산동농공단지가 내려다 보이며, 

 

다시 길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나 다소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다가, 

 

'T자' 능선 갈림길에서 우측 방향으로 잠시 더 오르면, 

 

가지 하나를 베어낸 흔적을 가진 소나무와 잡목들로 뒤덮인 봉우리를 지나서, 

 

헬기장이 있는 247봉을 지나면, 

 

앞쪽 나뭇가지 사이로 뾰족하게 생긴 베틀산과 뾰족봉 등 가야 할 빨래판 구간이 바라보는 산꾼을 질리게 만든다. 

 

 

헬기장에서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서, 

 

멋들어진 참나무가 눈길을 끄는 편평한 안부를 지나고, 

 

우측으로 잘 다듬어진 가족묘지도 지나서, 

 

우측 사면 방향으로 뚜렷한 길흔적이 이어지는 'Y'자 갈림길에서 좌측 직진의 희미한 능선길로 접어들면, 

 

바위가 듬성듬성 도드라져 보이는 급경사를 오르게 되고, 

 

작은 자갈이 흩어져 있는 역암 암반지대를 올라서면, 

 

우측 시루봉 방향 능선갈림길인 인동장씨 가족묘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표지기가 한두개 걸린 묘소 좌측으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오르다가, 

 

우측 백현리 방향 지능선 분기점에서 좌틀하여 진행하면, 

 

잠시 완만한 능선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작은 바위 두 개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개념도의 우베틀산인 305봉에 도착하니, 

 

<개념도의 우베틀산(304.4m)>

작은 바위 두 개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고 좌측 15m 거리에 전망좋은 바위가 있다. 개념도와 네이버 지도에는 이 봉우리를 '우베틀산'으로 표시하고 있지만, 베틀산 입구 베틀재에 구미시에서 설치한 이정표에 의하면 베틀산 직전 0.3km 지점의 봉우리(개념도 상 뾰족봉(332m)을 '우베틀산'으로 표시하고 있고 커다란 정상석도 세워져 있으므로, 332봉을 우베틀산으로 정한 행정기관의 표시를 따르는 게 맞는 듯하다. 

 

앞서 가던 백두들이 션한 바람을 쐬며 쉼을 하고 있다. 

 

서쪽 산동면 도중리 구미 하이테크벨리 국가산업단지와 낙동강 건너 구미 금오산 방향.

살짝 당겨본 낙동강과 금오산 방향

 

가야 할 우베틀산, 베틀산, 좌베틀산과 냉산 방향. 

 

 

개념도의 우베틀산인 304.4봉에서의 느긋한 쉼을 마감하며 종주팀 인증을 남기고는,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서, 

 

 잠시 완만한 안부 능선길을 따르다가, 

 

다시 코가 닿을 정도의 오름길을 치고 올라가니, 

 

벤치와 바위 서너 개가 자리한 314봉을 지나고, 

아, 앉아서 쉬고 싶다!
좌측 해평면 구미하이테크벨리 방향

 

다소 완만해진 오름길을 잠시 더 오르면, 

 

커다란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우베틀산(332m)에 도착한다.    

 

<우베틀산(332m)>
경북 구미시 산동읍 도중리와 백현리의 경계능선인 베틀산 능선에 산동읍 소재지에서 바라볼 때 가장 우측에 있는 봉우리라서 우베틀산이라고 부른다. 개념도에는 뾰족봉으로 표시된 봉우리다. 정상에는 벤치 2개가 놓여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산동읍 소재지가 내려다 보인다. 

 

이곳을 지나 내려선 후 오르는 봉우리가 베틀산이고 베틀산을 중심으로 우베틀산, 좌베틀산이라 명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고, 구미시에서 세운 이정표에도 이곳을 우베틀산으로 지명하고 있으며, 서래야 박건석 님의 ‘우베틀산(332.0m)’ 코팅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서, 이 봉우리를 '우베틀산'으로 통일시키자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우베틀산을 뒤로하고 잠시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다가, 

 

급경사 철계단 위에 서면 가야할 베틀산과 좌베틀산은 물론 냉산으로 이어지는 기맥의 봉우리들이 조망되는데, 

 

코앞으로 다가서는 베틀산을 또 올라야 하는지라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으로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을 길게 내려서서, 

 

다소 완만해진 소나무숲 능선을 잠시 더 내려서면, 

 

좌측 산동읍 도중리에서 백현리로 넘어가는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우베틀재, 234m)를 지나게 된다.

 

 

우베틀재를 지나 베틀산 오름길을 오르는데, 

 

등로 우측에 자리한 평상이 지친 산꾼을 유혹하지만, 

 

이제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내밀재까지는 4km 밖에 남지 않았는데, 곰재에서 출발한 분들을 따라잡지 못한 상태라 가파른 오름길에도 쉬지 않고 올라 베틀산 아래 철계단 직전 삼거리 갈림길 이정표(현위치:베틀2)에서, 

 

좌측 금산1리 방향을 두고 우측 베틀산까지 100m 남았다는 이정표를 따라 우틀하면, 

좌측 금산1리 방향

 

바위 절벽 위로 이어진 철계단을 오르게 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보이는 바위절벽 모습

 

다시 좌측 우회로(금산1리/우회로(5번합류)) 방향 갈림길 이정표를 만나 우측 베틀산 80m 방향으로 들어서면, 

 

절벽 암릉 사이 등로를 따라 오르게 되는데,  

 

돌아본 우베틀산 뒤로 지나온 기맥 봉우리들이 상어 이빨인 듯 줄지어 있고, 

당겨본 유학산과 천생산 방향

 

절벽 사면으로 오르던 등로를 막아선 역암 덩어리를 피해 방향을 틀어 좌측으로 우회하면, 

 

곰재에서 출발한 백두들이 쉼을 하고 있는 넓은 전망바위가 나오는데 서쪽 구미 방향 조망은 물론 지나온 기맥능선과 가야 할 기맥 봉우리들이 모두 조망되고, 

 

남쪽 유학산 방향의 우베틀산과 지나온 팔공기맥의 봉우리들. 

 

연무에 가린 남서쪽 구미 방향으로 내려다 보이는 산동면 도중리 하이테크 벨리 전경. 

 

서쪽 해평면 금산리 소상골 방향.

 

북서쪽 다음 구간의 냉산 방향. 

영천 와촌이 고향이라는 25현인과 함께

 

전망바위 바로 뒤가 베틀산이라며 앞장서는 활기찬 산객을 따라 능선을 오르면,  

 

좌.우베틀산과는 달리 별다른 표식이 없는 베틀산(320.7m) 정상에 도착하여 함께 기념사진을 남긴다. 

 

<베틀산(324m)>
경북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에 위치한 산으로, 과거에는 조계산으로 불리기도 했고, 경상도 방언으로는 비틀산이라고도 한다. 3개의 베틀산 중에 가장 가운데 있는 산으로, 중국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의 둘째 손자인 문영(文英)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첫째 손자는 문래(文來) 임)

조선 태종 때 일선(지금의 선산) 부사로 부임한 문영은 처가가 있는 선산현 해평면 월호동에 자리잡는다. 화려한 벼슬보다 민생을 위한 산업발전에 힘을 기울이는데 보람을 가진 문영은 할아버지(문익점)의 뜻을 높이 받들어 베 짜는 기계 만들기에 전념한다. 오랜 연구 끝에 문영은 조계산(해평면 금산리의 뒷산)의 모양과 공상다리(오상리 국도에 놓인 다리) 모양을 본떠서 만든 베틀로 문영베(무명)를 짜는 데 성공한다. 이때부터 조계산을 베틀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베틀산인 주봉인 좌베틀산과 우베틀산, 본베틀산 등으로 구분이 되며 높고 낮은 6개의 봉우리가 있다.

한편 어느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데 산 위에서 여인의 베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거나, 임진왜란 때 많은 사람들이 피난하여 베를 짰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좌베틀산까지는 900m밖에 안된다는 베틀산 이정표에 힘을 얻어 급경사를 내려서다가, 

E.T. 얼굴을 닮은 바위

 

좌측 금산1리 방향 우회로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며 다소 완만하고 널찍한 능선 등로를 따르게 되고, 

 

좌측 금산1리 방향 갈림길 안부인 베틀재를 지나면, 

베틀재 이정표

 

급경사의 암릉 바위들 사이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올라, 

 

좌베틀산 전위봉을 지나면 다소 완만한 능선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가야 할 좌베틀산과 냉산 방향 조망이 트이는 곳을 지나고, 

 

좌측 해평면 방향.

살짝 당겨본 낙동강 방향.

 

잠시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다시 오름길로 접어들어,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암릉을 통과하여 오르면, 

 

베틀산 6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주봉(主峰)인 좌베틀산(369m) 정상에 도착한다. 

 

<좌베틀산(370m)>
베틀산의 실질적인 주봉으로 정상에는 어엿한 정상석과 돌탑 그리고 2등 삼각점(선산22 1981재설)이 있다. 높이가 370m로 크게 높지는 않으나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암릉과 풍화동굴 등이 산재하고 있다. 해평면 금산리에서 볼 때 가운데 베틀산을 중심으로 북쪽 방향의 왼쪽에 위치한 좌베틀산(370m)과 남동 방향의 오른쪽에 위치한 우베틀산(332m)이 연봉을 형성하고 있다. 산 중턱 바위절벽 곳곳에는 역암과 사암의 풍화동굴이 널려 있고, 동화사 부근에는 높이 6m 정도의 마애불입상이 동쪽을 향해 새겨져 있다. 주봉인 좌베틀산  정상에서는 구미 지역의 대표적 산지인 금오산과 냉산(태조산), 청화산 등이 보인다.

 

『베틀산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에 있는 산으로, 주봉(主峰)은 370m 높이의 좌베틀산이다. 예전에는 조계산이라고 불렀다. 대동여지도에는 조계산(曺溪山)으로 나오고, 1917년 발행 지형도에는 기산(機山)으로 나오는데, ‘機’ 자는 '베틀 기'자이다. 해평 금산리에서 볼 때 왼쪽으로 동화사 뒤에 있는 산이 좌베틀산(369m), 가운데가 베틀산(320.7m), 남동쪽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오른쪽 산이 우베틀산(304.4m)이다.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암릉과 해식굴(海蝕窟) 등이 산재하여 산행이 재미있다. 
고려 시대 문익점은 목화씨를 전래시켜 재배에 성공하였는데, 문익점의 손자인 문래(文萊)가 목화로부터 실을 뽑는 기계인 ‘문래(물레)’를 만들었고, 문래의 동생인 문영(文英)이 조계산의 모양과 해평면 오상리에 있는 공상 다리의 모양을 따서 베틀을 만들어 ‘문영베’를 짜는 데 성공한 이후 산 이름이 조계산에서 베틀산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그 밖에 어느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데 산 위에서 여인의 베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거나, 임진왜란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산으로 피난하여 베를 짰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전해진다. 
산 중턱 바위 절벽 곳곳에는 역암·사암의 풍화나 해식 작용으로 생긴 해식굴이 널려 있고, 동화사 부근에는 높이 6m 정도의 거대한 마애불 입상이 동쪽을 향해 새겨져 있다. 동화사로부터 20분 거리에 있는 좌베틀산 정상에서는 금오산, 냉산(冷山), 청화산이 보인다.』 (네이버)

 

 

좌베틀산 정상에서 이제 다 왔다며 느긋하게 배낭털이를 하는 백두들. 

 

좌베틀산 정상 인증. 

손 점장님 손가락 좀 치워 주세요!
치웠다!

 

 

좌베틀산 정상에서 우측 지능선으로도 표지기가 갈린 등로가 선명하지만, 기맥 길인 좌측 상어굴 가는 방향으로 내려가, 

 

<상어굴 바위>
바위가 마치 엄청나게 큰 상어가 이빨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이곳을 상어굴바위라고 부른다. 앞쪽 바위에는 무속인들이 굿을 하는지 여러가지 기물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베틀산은 옛날에 산의 형태를 보고 베틀을 만들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이곳 아래의 지역 지명이 '바다 해(海)'자를 쓰는 해평(海平)이다. 그 옛날 바닷물이 가득 잠겨 있을 때 뾰족이 섬같이 솟아 나온 게 있었는데, 바닷물이 빠져나가 드러날 때 평평한 땅은 해평이고 섬은 베틀산이 되었다는 유래가 내려오며 그 증거가 상어가 살았다는 상어굴이라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바위암릉 사이 계단길 상부에 서면, 

 

아직도 다음 구간 가야 할 냉산과 청화산 방향으로 내밀재까지는 여러 개의 봉우리들이 대기하고 있어서 우려스럽기 짝이 없고, 

 

마치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돌계단처럼 보이는 암릉 사이 계단길을 내려서면, 

 

직진의 금산1리와 상어굴 방향 등로를 두고 우틀하여 군위 소보 방향 내림길로 진행해야 한다.

상어굴은 금산1리 방향 등로 절벽에 있다.

 

 

내밀재까지 뾰족봉 3개를 포함해서 여려 봉우리를 더 넘어야 하는데 내리막길 경사가 우려스럽기 짝이 없고, 

 

괴목이 홀로 지키는 길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나고, 

 

다시 젖먹던 힘을 짜내어 332봉 오름길을 오르면, 

 

커다란 참나무가 자리한 바위능선을 지나며 다소간 완만한 오름길로 바뀌더니, 

 

잠시 후 커다란 바위가 덩그렇게 자리한 시.군 경계봉(332.4m)에 오르는데, 좌측은 구미시 해평면이지만 우측이 구미시 산동면에서 군위군 소보면으로 바뀌게 된다. 

 

 

가야 할 내밀재 방향으로 325.8봉과 그 뒤로 333.5봉이 지친 이들의 발길을 묶어놓아서, 

 

다시 배낭을 내리고 체력이 보강될 때까지 무작정의 쉼을 한다. 

 

 

'언제 가도 내가 갈 길인데..'라는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다시금 배낭을 메고 능선 내림길로 들어서면, 

 

좌측 나무 사이로 가을빛이 스며드는 해평면 도문리가 내려다보이고, 

 

다소간 밋밋한 안부를 지나 오르다가,  

 

다시 급경사를 올라, 

 

별다른 특징이 없는 325.8봉을 지나고, 

 

325.8봉에서 다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름길로 들어서는데, 

 

가파른 암반 등로를 오르다가 멈춰쉬기를 반복하며, 

 

'그래도 가야지!'를 외치며 힘겨운 오름길을 오르고 또 오르니, 

 

다소간 완만해진 능선길에는 뻐근해져 오는 종아리를 쉬게 할 겸으로 쉬엄쉬엄 걷다가, 

 

좌측 도문리 방향 지능선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 

 

다소간 가팔라진 오름길을 잠시 더 올라, 

 

내밀재까지의 마지막 봉우리인 333.5봉에 도착하여 다시 배낭을 내리고 과거의 잊혔던 빨래판 구간 산행의 기억을 더듬는다. 

 

 

내밀재까지 더 이상의 봉우리는 없다며 다시금 기맥 능선길로 들어서서,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따르다가, 

 

약간의 오르내림에도 터져 나오는 하소연을 흘려들으며 내밀재를 향하면,  

 

등고선 1칸 높이의 능선 봉우리를 마지막으로 넘고서야, 

 

내밀재 도로 절개지 상단에 다다라 우틀하여 내려서게 되고, 

 

잠시 후 구미시 해평면과 군위군 소보면의 경계를 2차선의 927번 지방도(도신로)가 지나는 내밀재/나밀재에 도착한다. 

 

<내밀재/나밀재>
경북 구미시 해평면 창림리와 군위군 소보면 도산리를 잇는 927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냄밀재, 남일재, 나밀재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려져 혼란스럽다. 내밀재란 이름이 유래된 남일(藍一) 마을은 칠봉의 남방 1.5km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냄일이란 이름은 이 마을 서쪽 해평으로 넘어가는 험한 고개에 옛날에는 산적이 나타나므로 밤에는 넘기 어려워 어둡기 전에 넘어야 되겠다는 뜻으로 내머리재가 내밀재로 그 가까이 있는 마을을 냄일로 불렸다 한다.

『남일재(藍一峙)는 구미시 해평면 도문리 내미리마을에서 군위군 소보면 도산리 새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지만, 조선시대의 고문헌과 고지도에는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한국지명총람》에 "남일재(내미티, 남일티, 藍一峙) : 냄일에서 해평면 도문동, 습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중략) 냄일(새마을, 藍一) : 남일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기록과, 같은 문헌의 선산군 해평면 도문동 기록에 "내밀재(남일재) : 남일에서 산동면 도산동의 칠풍으로 넘어가는 재. (중략) 냄일이(남일, 남일리) : 습문동 북동쪽에 있는 마을. 내밀재 밑이 됨"라는 기록이 있어 이칭인 '내밀재', '남일티', '남일치', '냄일이'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개 지명에서 파생된 촌락 지명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지명유래집)

 

힘겨운 빨래판 구간을 걸은 백두들!
구미시 해평면 교통표지판 옆 다음구간 들머리 전경
가을로 접어들었음을 알려주는 내밀재의 억새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힘들게 찾은 군위읍의 목욕탕에서 땀을 닦고, 

 

머리카락 예기로 잠시 박장대소를 터뜨리다가, 

 

보무도 당당하게 군위축협 축산물플라자로 이동하여, 

 

가성비도 등급도 최고인 한우 등심으로 성대한 뒤풀이를 가지고는, 

 

힘들었던 베틀산의 기억을 말끔히 씻어내고는 서울로 향한다. 

 

 

산행 계획을 하면서 구미에 있는 친구에게 베틀산을 가 봤냐고 물은즉, 

구미 사람들이 자주 가는 산으로 쉽다고 했다. 

해발 천 미터에 가까운 금오산에 비해 삼백 미터 남짓인 베틀산이니

그리 대답하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화자(話者)의 입장에서 그 말을 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늘 내 입장에서 그의 말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