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서봉지맥 1차(감투봉~샘골고개) 경기도 군포시, 의왕시, 안산시, 수원시, 화성시.
산 행 일 : 2025. 03. 13.(목)
산행코스 : 수리산역 #1 + 감투봉(185.1m/분기점)~군포시보건소사거리~100.4봉~군포IC~125봉~110.8봉~구봉산(145.3m)~105.1봉~동안산.당수TG~당수IC앞교차로~천주교공원묘지~칠보산제1전망대/가진바위~186.7봉~칠보산(238.5m)~218.8봉~칠보산제3전망대~천천IC직전생태통로~79.6봉~오목천삼거리~수영오거리~수원대삼거리~와우사거리~119.4봉~동화마을생태공원~샘골고개 + 협성대 정문 (22.5km + 1.5km = 24km, 8시간 소요)
산행참석 : 3 백두.
<산행지도>
지난 2월 네째주 산행에서 관악지맥을 마치고 미뤄뒀던 천마지맥을 진행하려고 하다가 아직 겨우내 쌓인 눈이 다 녹지 않은 듯하여 가까운 서봉지맥을 진행하기로 한다. 사실 천마지맥같은 높은 산과 뚜렷한 능선이 이어지는 지맥은 상대적으로 등로가 뚜렷하고 좋은 반면에, 서봉지맥처럼 가장 높은 서봉산이 250m도 안 되는 그야말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지맥은 도로와 공장, 주택지가 연이어져 있고, 들머리와 날머리는 물론 군데군데에 잡목과 넝쿨이 얽혀있어서 여름철에 진행하게 되면 더욱 힘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나뭇잎이 돋아나기 이전에 진행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있기는 하다.
실제로 서봉기맥 첫번째 구간인 한남정맥 감투봉에서 화성시 명봉산 입구까지의 기맥길은 2016년 개통된 파주평택고속도로를 좌.우로 넘나들며 남향하게 되는데, 도로 들머리와 날머리가 잡목과 넝쿨이 우거진 거친 구간이 있으나 대체로 길이 잘 나있고 완만하여 그리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여름철 수풀이 우거지면 길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듯하다.
약속된 아침 7시가 되었음에도 한 분이 수리산역에 나타나지 않는다. 좀체 약속시간에 늦는 분들이 아닌지라 바로 연락을 했더니 시간 세팅을 잘못해 놓아서 아직 집이라고 한다. 집이 그리 멀지는 않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다음 산행에서 같이하자고 하였더니, "지금 준비해서 중간에 합류하겠다"라고 한다. 산행 코스도 그리 좋지는 않은 코스이고 지맥 완주를 목표로 하지도 않는 터이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며 전화를 끊고는 바로 출발한다.
개인 사정으로 교화 형도 빠진 상태라 총무님과 단 둘이서 서봉지맥 1차 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총무님이 워낙 준족이라 단 둘이서 산행을 하게 되면 그러잖아도 늦은 걸음에 사진까지 찍어가며 가야하므로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수리산역 1번 출구에서 서봉지맥 첫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수리산역에서 서봉지맥이 분기하는 한남정맥의 감토봉으로 가려면 1번 출구나 2번 출구로 나와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숲길로 들어 감투봉에서 슬기봉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 능선에 접속하여 좌측 한남정맥 능선을 따라 감투봉으로 오르게 되는데, 이동 경로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별반 차이는 없지만 1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게 최소 100여 미터는 짧을 듯하다. 뭐 그래봤자 시간 차이가 없겠지만...ㅋㅋ
수리산역 1번 출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다가,
번영로 도장교 아래에서 우측 도장터널 방향 인도로 진행하여,
도장터널 방향의 도로를 두고 우측 숲길로 들어서서,
도장터널 입구 상단으로 이어지는 수로 옆으로 오르면,
도장터널 입구 상단에서 좌측 한라주공 4단지에서 오는 등로에 접속하여 우측 등로를 따라 오르고,
이내 감투봉에서 수리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 능선 등로에 접속하여서는 좌측 능선을 따라,
2016년 한남정맥길에 걸었던 기억이 어슴프레 떠오르는 감투봉으로 이어진 데크 계단길을 오르면,
늘 산책객들로 붐비는 곳임에도 아직 이른 시간이라 인기척이 없는 감투봉 정상에 도착하게 되는데,
<감투봉(敢鬪峰, 185m)>
경기도 군포시 당동과 대야미동의 경계에 있는 수리산의 한 봉우리이다. 한남정맥에서 서봉지맥이 분기되는 봉우리로 '군포시 지명유래 및 씨족역사' 자료에 따르면 감투봉은 수리산 거룡봉(슬기봉) 줄기가 남동류하여 솟아오른 산으로서 모양이 감투처럼 생겼으므로 감투봉이라 불린다고 한다.
감투는 옛날 머리에 썼던 탕건처럼 생긴 쓰개의 일종이며 '감투=벼슬'을 뜻한다. 또 산 정상에서 세 곳으로 물이 흘러내리는데, 오금동으로 흐르는 물은 산본천, 군포2동으로 흐르는 물은 당정천(흐린내), 대야동으로 흐르는 물은 반월저수지에 합류하므로 삼파산(三波山)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감투봉 정상은 10여 년 전 한남정맥길에서 눈에 덮여 있던 모습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감투봉 아가씨 전설>
옛날 부곡동 삼성마을에서 과거 공부를 하던 한 청년과 예쁜 아가씨는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청년이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난 후 아가씨는 매일 감투봉에 올라 달님에게 청년의 과거시험 급제를 기원했다. 아가씨의 정성이 통하였는지 청년은 장원급제하였고 그 소식을 들은 아가씨는 감투봉에 올라 감사 기도를 드렸는데, 용과 호랑이가 아가씨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서로 차지하려고 무섭게 싸우기 시작했다. 그에 금의환향한 청년이 아가씨를 찾아다니다 감투봉으로 가서 아가씨를 불렀는데, 뒤를 돌아본 아가씨는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는 용과 호랑이의 모습에 놀라 혼절하였고, 몸이 쇠약해진 탓으로 끝내 깨어나지 못하는 아가씨를 청년은 밤새 끌어안고 울다가 함께 죽고 만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봉우리가 마치 장원급제한 벼슬아치의 관모와 같이 생겼다 하여 관모낭이라 부르며 두 사람의 못다한 사랑을 기렸고, 나중에 감투봉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감투봉 정상에서 군포시보건소 방향의 제법 뚜렷한 등로를 따라,
좌측 군포시 부곡동 방향 조망이 트인다는 쉼터를 지나,
좌측 삼성마을 5단지 갈림길에서 우측 군포시 보건소 방향으로 진행하니,
<군포시(軍浦市)>
군포시는 경기도의 중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안양, 안산, 시흥, 의왕, 수원시가 둘러 싸고 있는 신흥도시이다. 군포는 조선시대에는 과천현 남면에 속해 있었다. 과천현 남면에는 산본리, 당리, 용호동, 장간리, 부곡리, 괴곡리, 금정리, 당정리, 봉성리, 초막동 등 10개의 부락이 있었다. 그러다 일제 때 시흥군을 확장하면서 다시 시흥군 남면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다 1979년 군포읍으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1989년 시흥군을 분할하면서 군포시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군포라는 명칭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의병과 승군, 그리고 관군이 군포지역에서 군장을 재 정비하였는데,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이 굶주린 병사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사기를 북돋워주어 왜병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때 군사를 배불리 먹였다는 의미로 군포(軍飽)라고 하였다가 세월이 흘러 ‘물가 포(浦)’자로 바뀌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숙종 25년 <신수읍지>에 한강의 지류로 수운을 이용하는 포구로 널리 알려졌기에 군포천(軍浦川)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세 번째 설은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산으로 천묘하기 한 달 전인 정조 13년(1789) 9월에 능행에 관한 전반적인 사실을 편찬한 <원행정례園幸定例> ‘도로교량조’에 '베 포(布)'자를 써서 軍布(군포)라 기재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軍布(군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네 번째로,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 군인들이 군함을 타고 한강을 거쳐서 안양천을 경유하여 상류인 군포에 머물렀다고 軍浦(군포)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다섯 번째로, 지금의 안양시 호계3동 구 군포지역을 조선시대에는 시장으로 개설하여 군포장(軍浦場)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군웅제를 지내는 군웅산이 있어 '군사 군(軍)'자와 '물가 포(浦)'자를 합쳐 군포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이장(移葬)이나 파묘(破墓)를 하고 묘비만 덩그러니 남은 곳을 지나,
번영로 절개지 상단에서 좌틀하여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 내려서게 되는데, 원 지맥능선은 4차선의 번영로를 건너 군포보건소 뒤쪽 능선으로 이어지며 좌측으로 휘어져, 다시 넓은 47번 국도를 건너 대아배수지가 있는 100.4봉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절개지를 오르내리는 길도 없으려니와 차량통행이 많은 차도를 두 번이나 무단횡단하는 위험이 따르기에 보건소사거리로 좌회하여 지나기로 한다. (대부분의 선답자들이 가는 방식)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 번영로에 내려서서,
직진의 번영로를 따라 GS 주유소를 지나,
군포시 보건소사거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47번 국도를 따라 좌측의 군포 공용차고지를 지나면,
좌측으로 차단시설이 설치된 대아배수지 입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많은 지맥꾼들은 대아배수지 입구를 지나는 직진의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100.4봉을 좌회하여 진행하기도 하지만, '차 떼고 포 떼면 지맥길은 뭣 하러...'라는 생각이 들어 100.4봉을 넘기로 하고, 굳게 잠긴 배아배수지 방향 차단시설을 통과하여 우측의 수로로 올라 맥길을 이어간다.
대아배수지 입구에서 우측 절개지 수로를 따라 오르니,
말끔히 단장된 경주김씨 가족묘지가 나오는데 가족묘지 좌측의 100.4봉은 철망 울타리를 두른 대아배수지가 차지하고 있어서,
경주김씨 가족묘지 뒤편 배수지 울타리를 따라 진행하니 여름철이었으면 온갖 종류의 넝쿨과 잡목으로 지나기가 만만치 않아 보이고,
배수지 울타리 끝지점에서 50여 미터 더 진행하니 나무 둥치에 '준.희'님의 '서봉지맥 100.4봉' 산패 가 걸려있는데 어린시절 소풍에서 보물 쪽지를 발견하여 득템 한 듯한 기분이 들고,
100.4봉 산패가 걸린 나무를 지나며 좌틀하여,
잡초와 넝쿨이 뒤엉켜 여름에는 통과가 불가능해 보이는 사면을 따라 내려서니,
대아배수지 입구에서 좌회하여 오는 도로에 내려서게 되고, 직진의 우측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평택파주고속도로 지하통로가 나오는데,
원 지맥길은 고속도로 좌측으로 이어지다가 평택파주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지점 직전에 우측으로 평택파주고속도로를 건너고 이내 바로 좌틀하여 영동고속도로를 건너게 되지만, 날개가 없는 인간이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도 좌측길로 진행하여 두 개의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지점과 남군포IC를 여러 개의 굴다리를 통과하며 우회하는 방법도 있지만, 가장 간명하고 손쉬운 루트는 이곳에서 우측의 평택파주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며 바로 좌틀하여 진행하다가 영동고속도로 대야미2교를 갓길로 건너는 방법으로 보여,
우측의 평택파주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들어선다.
평택파주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며 바로 좌틀하여 도로를 따라 올라,
지맥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바로 영동고속도로 절개지이므로 좌측 밭 가장자리로 들어서서,
영동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넘어 갓길로 들어서 평택파주고속도로를 넘는 대야미2교(80m쯤)를 건너며,
바로 남군포TG 방향 램프로 진행하다가,
남군포IC 램프 절개지 울타리 직전에서 우측 옹벽을 넘어 숲으로 들어선다.
선답자의 족적조차 보이지 않는 거친 잡목지대를 올라,
절개지 상단으로 오르면 제법 뚜렷한 길흔적이 이어지고,
좌측의 남군포IC 램프 절개지 관리용 철계단을 지나면,
이내 바위가 불거져 드러난 125봉 정상을 지나게 되는데, 이후 구봉산까지는 걷기 좋은 호젓한 등로가 이어진다.
봉우리 높이에 비해 제법 가파르게 내려가,
잠시 완만한 능선 등로를 따르면,
좌측으로 산장낚시터가 보이는 쑥고개(?)를 지나게 되는데,
쑥고개 좌측의 임도를 따라도 되지만 통나무 계단을 올라 능선길로 진행하니,
쑥고개에서 이어온 임도를 가로질러 No 50 송전탑을 지나게 되고,
산책 나온 주민의 빠른 걸음을 쫓는데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호젓한 숲길을 따라,
좌측 군포시 부곡동과 우측 도마교동을 잇는 송부로를 넘는 생태통로(송부터널)를 건너,
좌측 파주평택고속도로 울타리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다가,
파주평택고속도로 구봉산 터널 입구 상단에서 우향 하여 완만하게 오르는데,
등로 좌측 소나무 둥치에 '준.희'님의 110.8봉 산패가 걸려있고,
아래로 파주평택고속도로가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호젓한 등로를 오르면,
주변이 안개로 둘러진 밋밋한 봉우리에서 낯익은 분이 우리를 보고 빙긋이 웃고 있는데, 오늘 출발지인 산본역에서 합류하지 못한 분이 중간에 합류하겠다더니 구봉산(145.3m)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다.
<구봉산(九鳳山, 145m)>
의왕시 초평동과 군포시 도마교동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본래는 갈매기가 나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이라 하여 '비둘기 구(鳩)'자를 따서 구봉산(鳩鳳山)이라 했다가, 그 후 '새 봉(鳳)'자를 써서 '구봉산(九鳳山)'으로 불려왔는데, 현재는 '봉우리 봉(峯)'자를 써서 구봉산(九峯山)'이라 부르고 있다. 정상에는 선답자의 산패와 표지기가 걸려있고 널찍한 공터에 벤치와 운동기구가 정상을 지키고 있지만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구봉산을 뒤로하고 뚜렷한 등로를 따르다가, 직진의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는 의왕시 초평동 새우대 마을 방향을 두고 우측 작은 나뭇가지에 표지기가 한두개 걸려 있지만 길흔적이 희미한 사면길로 들어서서,
<새우대 마을>
새우대 마을은 원래 광주군(廣州郡) 월곡면(月谷面) 상초평 및 하초평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원군 반월면(半月面) 초평리가 되었다. 1949년 화성군(華城郡) 반월면 초평리가 되었고, 1983년 시흥군(始興郡) 의왕읍에 편입되었다. 1989년 의왕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초평동으로 개칭되어 의왕시 부곡동 관할의 법정동이 되었다.
인접한 삼동과는 달리 도시화 개발이 매우 뒤진 농촌지역이다. 동쪽 월암동과의 사이에 왕송저수지가 있으며, 서쪽 군포시 도마교동과의 경계에 구봉산(146m)이 있다. 마을 주위에 경부선·영동고속도로·42번 및 47번 국도가 있다. 장터들·천훈골 등에서 밭농사가 이루어지며, 삼삼농장·꽃봉농장 등이 있다. 기와집말, 비탄말, 새말, 샛터말, 웃말, 아랫말, 중간말, 밤나무말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그나마 겨울철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내려서다가,
배나무 과수원 상단으로 들어서서 우측 과수원 가운데로 이어진 과수원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면,
파주평택고속도로 구봉산터널 남쪽 출입구 상단에 서게 되는데,
서봉지맥은 고속도로 좌측으로 이어져 고속도로를 우측으로 건너게 되지만, 날개가 없는 산꾼들은 고속도로를 넘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지라 이곳에서 우틀하여 내려섰다가 고속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봉우리로 오르며 지맥길에 접속하게 된다.
평택파주고속도로 구봉산터널 남측 출입구 상단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다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수레길을 두고 좌측 길 없는 사면으로 들어서서,
무작정 내려가기 쉬운 루트를 따라 아래로 내려서면,
이내 수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농로에 접속하여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앗! 이곳에도 굴다리가 있으니 잠시 전 파주평택고속도로 남축 출입구 상단에서 좌측으로 진행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굴다리 직전에서 우측 숲으로 이어진 희미한 수레길을 따라 오르니,
이내 희미하게 이어지던 수레길은 사라지고 벌목된 나무와 개간을 하면서 나온 잔가지들이 쌓인 험한 곳을 지나,
의왕시와 군포시, 안산시의 3군 경계봉으로 개인 캠핑장으로 꾸며진 86봉을 지나게 되는데,
86봉 정상부는 캠핑카 보관장이 차지하고 있고, 진입 임도 좌측에는 미니 골프연습장이, 우측에는 농기구창고와 사각정자 그리고 화려하게 꾸며 놓은 전주최씨 삼형제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진입 임도를 따라 내려서다가,
사각정자와 전주최씨 묘원 방향으로 휘어져 나가는 임도를 두고 좌측 능선길로 들어서서,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옛고개를 지나,
바이크 바퀴자국으로 파인 등로를 따라 No7 송전탑을 지나고,
105.3봉 직전에 자리한 삼각점을 지나,
선답자의 표지기가 여럿 걸려있는 105.3봉 정상을 지나게 된다.
105.3봉을 뒤로하고 완만한 등로를 따라,
No8 송전탑을 지나고,
직진의 능선 등로를 두고 좌측 사면 방향 등로로 들어서서 내려가니,
우측의 청주한씨 묘지로 이어지는 묘지길이 나오는데,
우측의 묘지길을 따라 내려가도 되지만 묘지길을 가로질러 족적조차 희미한 숲으로 진행하여,
철재 박스와 (고속17) 표시 노란 시멘트 말뚝이 있는 절개지 상단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좌측으로 동안산.당수 TG가 내려다 보이는 청주한씨 묘지길로 이어지는 도로에 내려서게 되고,
우향 하여 길가로 빈 벌통이 늘어선 동안산.당수 TG 옆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앞쪽으로 수원시 당수동의 아파트 단지와 가야 할 칠보산이 조망되고,
수인산업도로로 알려진 수인로를 만나 좌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동안산.당수 TG 진입 램프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42번 국도 수인로를 따라 수원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안산시와 수원시의 경계 능선(서봉지맥)으로 수인로가 지나는 비늘치를 지나며,
<비늘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과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좌측에는 대안학교인 경기 대명고등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비늘치를 지나는 8차선의 수인산업도로인 47번 국도는 교통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 자동차 소음이 심하다. 비늘치는 사사동 칠보산 자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의 이름을 딴 것으로, 토질이 운모(돌비늘)가 많이 섞여 반짝거리는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이곳을 넘는 장사꾼을 상대로 한 도적떼들이 들끓었던 곳이었으며, 팔보산이 칠보산으로 바뀌는 과정이 전개되는 황금닭을 훔쳐간 장씨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개로, 비들치라고도 불렀던 곳이다.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沙士洞)>
사사동은 아름다운 모래가 많고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선비가 모래처럼 많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산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사시골·사사골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경기대명고교 담장을 따라 좌틀하는 도로를 두고 수인로 방음벽 안으로 들어서서,
약간은 위험해 보이는 수인로 갓길을 따라,
좌측의 대안학교인 경기대명고교 정문을 지나고,
당수IC앞교차로로 내려서며 2019년 7월 무더운 여름날에 걸었던 수원팔색길을 만나 우틀하여,
당수동2 지하차도를 통과하여서는,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당수동은 마을에 아가위나무, 즉 당수(棠樹)가 많았기 때문에 비롯된 지명이다. 또한 마을 뒤 신당나무 앞에 개천이 있어 당나무께·당수개·당진포·당수포라고도 하였다. 옛 지명에 가진바위·거리골·곡말·까치말·넘말·다래기·두집매·미납골·새굴·새텃말·양지편·활터재·황새골 등이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농수산물유통공사 유통교육원, 한국인삼연초연구원 수원시험장이 있고, 당수초등학교가 있다.
지맥길은 바로 우틀하여 비늘치를 건너온 지맥으로 접속하여야 하지만 시장끼를 해결하러 직진의 당진로를 따라,
170m쯤을 진행하여 좌측의 당수원가마솥순대국 본점에서 닫힌 문을 두드려 맛난 순댓국으로 아점 식사를 한다.
40여 분간의 맛난 순댓국으로 점심까지 해결하고,
잠시 진행방향 당진로를 따르다가 사거리에서 우틀하여,
한라비발디 2단지A 도로를 따라 'T'자 갈림길에서 우틀하며 수원둘레길과 함께하는 지맥길에 접속하고,
쌍용아파트 정문과 까치 어린이공원을 지나,
따르던 도로를 두고 좌측 아고라 쉼터가 있는 공터로 들어서서,
능선길을 따라 우측의 천주교 북수동성당 공원묘지를 지나서 내려서면,
칠보산 등산로 입구가 있는 여가녹지로 내려서게 되는데,
서울 사람들이 남산을 가지 않듯이 수원 토박이인 손사장님도 이곳이 처음이라고 한다.
좌측에 약수터가 있고 우측에 찰보산 정상이 4.2km'라는 이정표가 자리한 칠보산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자,
평일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은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 수준의 등로가 이어지다가,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며,
능선 구분이 쉽지 않은 평지 수준의 숲길 가에는 운동기구와 벤치도 보이고,
'맨발로 걷는 길'이란 안내판에 수긍이 갈 정도로 깔끔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정자와 보물을 가진 가진바위가 있는 칠보산 제1전망대를 지나게 되는데,
정자 옆에는 주먹바위쯤으로 보이는 '보물을 가진 가진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가진바위(보물을 가진 바위)>
칠보산 주 능선 북쪽에는 보물을 간직한 바위로 알려진 가진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옛날 어느 석공이 이 바위에 보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 속의 보물을 가지려고 돌을 자르고 있었다. 석공이 돌을 자르는 중에 갑자기 비바람이 몰려오면서 벼락이 떨어졌는데 석공은 이 벼락에 맞아 죽었다. 그때 잘린 부분이 아직도 틈새로 남아있다. 이 바위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하여 가진바위, 또 위와 아래가 같다 해서 '같은바위'라고도 불려진다. 중생대 쥐라기 1억5천만~2억만년 사이에 마그마가 굳어지면서 생성된 암석이다.
잘 나있는 소나무숲 능선길을 따라,
좌측 무학사 방향 갈림길을 지나고,
<무학사 갈림길>
좌측 금곡동 쪽으로 300m 정도 내려가면 무학사가 있고, 우측은 매송면 어천리다. 어천리(漁川里)는 화성시 매송면에 있는 법정리로서 어랑천(어천) 가를 따라 자리하고 있으며 어천 저수지가 있는 마을로 어랑천 가가 되므로 어랑내, 어량내 또는 어랑천, 어량천, 어천이라 한 데서 어천(漁川)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자연마을로는 내촌, 외촌 등이 있다. 내촌은 어천리 안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외촌은 어천리 바깥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
186.7봉을 지나니,
크지 않은 바위에 움푹움푹 파인 해골바위를 지나게 된다.
좌측 금곡LG아파트 방향 갈림길인 "서울대 칠보산학술림 안내판"과 칠보산 등산 안내도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칠보산>
예로부터 8개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왔으나, 어느 때인가 한 개의 보물이 없어져 칠보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8개의 보물에 대해서는 설이 많으나 '산삼, 맷돌, 잣나무, 호랑이, 황계수탉, 범절, 장사, 금닭'이라고 전해온다. 그러다가 한 장사꾼이 황금수탁을 가져가서 칠보산이 됐다고 한다. 해발 238.8m로 그리 높지 않고 경사도 완만하여 노약자나 여성들의 등산코스로 적당하며 자연생태학습장으로 연중 개방하고 있다.
작은 오르내림이 오히려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호젓한 등로를 따라,
좌측 상춘고교 방향 갈림길을 지나고,
좌측 광이재약수터 방향 갈림길도 지나서,
수원둘레길 표지기가 이어지는 소나무숲 등로를 따르면,
우측 화성시 원평리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이내 체육시설과 벤치 쉼터가 설치된 칠보산 정상에 도착하여 배낭을 내리고 조금 긴 다리쉼을 한다.
<칠보산(七寶山, 238.8m)>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과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 사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삼·맷돌·잣나무·황금수탉·호랑이·사찰·장사·금의 8가지 보물이 많아 팔보산(八寶山)으로 불리다가 황금수탉이 없어져 칠보산(七寶山)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조선 시대에 치악산으로 불렸고 『수원부읍지』에는 치악산(鴟岳山)으로, 『화성지』에는 치악산(雉岳山)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화성지』에는 칠보산을 화산(花山, 현재의 융건륭 뒷산)의 주맥(主脈)으로 기술하고 있다. 『해동여지도』, 『광여도』, 『해동지도』 등의 고지도에도 치악산(鴟岳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팔도군현지도』와 『해동여지도』에는 앞의 지도에 치악산으로 표기한 곳에 '증악산(曾岳山)'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치악산'으로 표기한 고지도나 '증악산'으로 표기한 고지도 모두 그 산 가까이에 현재의 호매실동 일대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명칭 '호매절면(好梅折面)'을 적어 놓고 있다. 따라서 '증악산'은 '치악산 '의 다른 별칭으로 추정된다.
칠보산도 산 능선이 매우 완만하고 소나무 등 수림이 울창하여 좋은 식생 조건을 가지고 있다. 골짜기마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피서철이면 많은 시민들이 계곡을 찾고 있으며, 특히 비늘치골짜기는 깊고 풍경이 아름다워 안산시민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칠보산 자락인 화성시 매송면 천천리 뒷산에는 우암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하였던 매곡서원(梅谷書院) 터가 남아 있다.
칠보산에는 모두 6개의 절이 있는데 수원시 쪽에 개심사·용화사·무학사·여래사 등이 있고, 안산 쪽으로 칠보사(七寶寺) 그리고 화성 쪽으로 일광사가 있다. 절은 칠보산에 있다는 일곱 가지 보물 중 한 가지이다. 하지만 ‘팔보산(八寶山)’에서 칠보산으로 변화한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산은 처음에는 산삼·맷돌·잣나무·황금 수탉·호랑이·절·장사·금 등의 보물 8개가 있어서 팔보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귀중한 보물이 여덟 가지나 있다는 소문 때문에 산 주변에는 마을이 형성되고 장사꾼들도 많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일확천금을 노리고 보물을 찾겠다고 모여든 사람들은 쉽게 그 보물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점차 도적떼로 변하여 행패를 부렸고 특히 칠보산에 있는 비들치고개는 도적떼가 들끓어 장사꾼들은 이 고개를 넘는 일이 가장 큰일이었다. 이때 장씨라는 장사꾼이 있었는데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아무래도 비들치고개를 넘는 일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칠보산 아래 주막에서 다른 장사꾼들이 모여 함께 고개를 넘기로 했다. 그런데 장씨가 그만 약속 시간에 늦어 일행들을 놓치고 말았다. 이에 장씨는 빠른 걸음으로 가면 앞서 간 일행들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혼자서 산을 넘었다. 그런데 두려움에 떨며 앞서간 일행들을 쫓아 오르던 장씨의 귀에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깊은 산중에 닭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장씨는 닭 울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았다. 그랬더니 조그마한 샘에 닭 한 마리가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장씨는 얼른 두 팔을 벌려 그 닭을 구해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닭은 황금으로 된 닭이었다. 장씨는 금세 이 황금 닭이 팔보산 여덟 가지 보물 중의 하나인 것을 알아차리고 즉시 그 닭을 보자기에 싸서 산을 내려왔다. 그 때문에 '칠보산'으로 되었다는 유래가 수록되어 있다.
느긋한 쉼을 가졌던 칠보산 정상을 뒤로하고,
칠보산 정상 아래의 헬기장을 지나니,
우전방 남서쪽 매송면 방향으로 태행산과 어천저수지를 건너는 다리처럼 보이는 KTX 선로가 보이고,
데크 계단을 따라 잠시 오르면,
동쪽 수원역 방향으로 조망이 트인 데크전망대를 지나게 된다.
모아이 석상의 얼굴 형상과 말안장 형상의 바위를 지나니,
동쪽 수원시내 방향 조망이 트인 칠보산 제2전망대를 지나게 되는데,
제2전망대 앞 전망바위에서는 동쪽 수원시 방향 조망이 트이지만 흐린 시야로 아쉽기만 하고,
가야 할 제3전망대가 자리한 서봉지맥 능선에는 통신대가 자리잡고 있어서 우회해얄 듯하다.
제2전망대를 뒤로하니,
이내 서쪽 방향 조망이 트인 데크 전망대를 지나게 되지만,
전망대 앞으로 나무가 자라나 조망안내도의 설명처럼 시원한 조망은 보이지 않고,
이내 통신대로 오르는 군 임도가 지나는 안부에 내려서니 앞서간 두 분이 기다리고 있는데, 능선으로 들어서서 통신대 울타리를 따라 진행을 할 것인지 좌회하는 정규 등로로 진행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듯하다.
통신대를 좌회하는 좌측 용화사 방향 데크계단 내림길로 내려서다가 갈림길에서 우측 제3전망대 방향 사면길로 들어서서,
통신데 울타리 좌측으로 이어진 우회 등로를 따라,
통신대 후문으로 이어진 주능선에 접속하여,
기암들이 듬성듬성 자리한 능선길을 따르니,
이내 칠보산의 세 전망대 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칠보산 제3전망대를 지나게 된다.
칠보산 제3전망대를 뒤로하고 잠시 소나무숲 능선길을 따라,
헬기장을 지나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다가,
Y자 갈림길에서 수원둘레길 표식이 있는 우측 길을 두고 좌측 능선길로 진행하여,
제법 가팔라진 내림길을 내려가면,
파주평택고속도로 절개지 울타리를 만나 우측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이내 절개지 울타리를 두고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등로를 따라,
파주평택고속도로 건설로 지맥 능선이 잘려나가 고속도로를 넘는 생태통로가 있는 지점으로 가기 위해 작은 지계곡을 건너,
다시 절개지 울타리 옆으로 이어져 파주평택고속도로를 넘는 생태통로 방향으로 내려서게 된다.
절개지 상단으로 이어지던 등로가 좌향 하여 생태통로로 내려서서,
잡목이 자라난 널찍한 생태통로를 건너,
넓은 수레길에 접속하여 우측 수레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우측 과천봉담고속도로/파주평택고속도로 절개지로 인해 시야가 트이며,
지나온 칠보산에서 이어온 경로가 시원하게 돌아다 보인다.
앞쪽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 가족묘지들을 지나,
좌측 산림과학원 조림지 울타리 옆 도로를 따라,
개발제한구역 표시판이 있는 도로에 접속하여 우측으로 들어서니,
삼거리 갈림길 모퉁이에 수원팔색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좌측의 산림과학원 울타리 옆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르다가,
서수원교회 앞 오거리에서 직진의 도로를 따라 지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의 산림청 임업연구원 굴참나무 산지 시험장을 따라 이어진 도로를 따르니,
우전방으로 가야 할 79.6봉이 보이고,
호매실동 가림리경로당 앞을 지나,
따르던 도로를 두고 우측 차단봉이 있는 사찰건물(고금선원) 입구로 들어서서,
고금선원 마당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서서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오르니,
이내 뚜렷한 묘지길에 접속하여 우측 오름길로 오르면,
잘 단장된 묘지가 있는 79.6봉에 도착하게 되는데,
묘지 뒤편 나무둥치에는 '준.희'님의 79.6봉 산패가 걸려있다.
79.6봉에서 좌측으로 꺾어 내려서다가,
묘지 우측 아래에서 나뭇가지에 걸린 선답자의 표지기에 이끌려 숲으로 들어서니,
방치되어 흔적이 희미해진 수레길이 이어지다가,
매송고색로 절개지에서 좌측으로 오목천 삼거리 방향으로 내려가,
오목천삼거리에서 남쪽 효행로로 진행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봉담읍의 119.4봉 들머리까지 약 5km는 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수원시 오목천동(梧木川洞)>
수원시 오목천동은 마을에 흐르는 하천이 오목한 곳을 따라 흘러 오목내라고 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옛 지명에 건너말·고금산말·고사촌·삼거리·안산·이성벌·즘토마을 등이 있으며 고사촌은 옛날 수원부의 곳집이 있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때 양곡 창고로 이용되었으며, 8·15 해방 이후에는 우리말로 곳집말이라고 하였다. 축산기술연구소, 임업연구원 임목육종부, 임업연구원 서부임업시험장, 북부지방산림관리청 수원국유림관리소, 수원여자대학, 영신중학교 등이 있다.
오목천 삼거리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매송고색로 상부를 무단횡단하여,
도로관리기관이 '수원시청'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수영오거리 방향 효행로를 따르다가,
방송통신대 입간판이 있는 곳에서 직진의 효행로를 따라도 되지만 지맥 능선과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우리는 우측 소로로 들어서서,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를 짓고 있는 지맥 능선을 확인하고는,
이내 'ㅓ'자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소로를 따라 나가면,
다시 효행로에 접속하여,
수영오거리에서 대각선 병점 방향 효행로로 지맥길을 이어가게 된다.
<봉담읍 수영리(水營里)>
수영리는 저평한 평지에 주거지구가 조성되어 있으며, 중소규모의 공장들이 있다. 마을 서쪽으로 천천인터체인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점말(즌말), 수영말, 수영동, 뒤점골, 뒷말(후촌) 등이 있다. 고려시대 말에 "군사들이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하여 수영말(水營洞) 또는 수영리(水營里)로 이름 지어졌다. 즌말(점말)은 조선시대에 옹기를 굽던 곳이어서 점말(店村)이라고 하였다가, 그 뒤에 어음이 변화되면서 즌말로 전화(轉化)되었다.
수영오거리에서 병점 방향 효행로를 따라,
국립축산과학원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도로 우측으로 방치된 넓은 축산과학원 초지가 이어지더니,
수영리검사소 버스정류장을 지나,
예전 국립 농수산대학교였다가 2022년 화성시민대학으로 새롭게 개관하면서 캠퍼스 부지를 공원화하여 누구나 배움과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 화성시민캠퍼스 앞을 지나게 되고,
한때 동양매직이라는 전기오븐 등을 만들던 기업이 이제 SK매직으로 바뀐 공장을 지나,
이마트 화성봉담점 앞 쉼터에서,
산길이 아닌 포장도로 걷기가 너무 힘들다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불이 나는 발바닥을 쉬게 한다,
화성공구상가 입구를 지나며,
수원대삼거리에서 우측 와우안길로 들어서니,
앞쪽으로 와우리 교회가 보이고,
와우사거리에서 우틀하여,
<봉담읍 와우리(臥牛里)>
화성시 봉담읍에 잇는 와우리(臥牛里)는 마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지형이 소가 누워있는 모양 같다고 해서 불려진 지명이다. 대부분이 주거단지로 조성되어 있으며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서 있다. 와우4리에는 수원대학교가 위치해 있고 자연마을로는 남촌말(지청재, 남촌동), 북촌말(북촌동), 와우동, 와우말 등이 있다. 남촌말은 지청재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에 정조가아버지 사도세자의 제사를 지낼 때 떠놓을 물을 이곳에서 가져갔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동화역말길을 따라,
우측의 엄청나게 큰 '와~우리교회'를 지나게 되는데, 아마도 이 건물이 새로지은 본관이고 조금 전에 지나온 교회가 원래의 교회 건물인 별관인 모양이다.
에듀시티파라곤 버스정류장 직전에 횡단보도를 건너 소로로 들어서서,
최근에 들어선 듯이 보이는 식당들이 늘어선 도로를 따르다가,
와우로15번길에 접속하여 우측 길을 따라 '봉담그대家 아파트' 입구를 지나,
와우로에 접속하며 좌틀하여,
봉담아이파크와 봉담푸르지오 아파트 사이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봉담센트럴푸르지오A를 끼고 우틀하니,
지맥길은 좌측 119.4봉 방향 절개지로 이어지지만 갈 수 있는 길이 없어서,
그냥 막다른 길이라 차량 통행이 없는 도로를 따르다가,
막다른 곳에서 계단길로 들어서며 거의 1시간 남짓만에 포장도로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선다.
지맥 능선으로 올라 좌측 금덩산 방향의 절개지 상단 119.4봉을 다녀오려다가,
별다른 조망도 없다고 하여 바로 우측으로 들어서서,
잘 나있는 등로를 따라,
산행 초반부터 넘나들던 파주평택고속도로가 이름을 달리 한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를 다시금 넘는 '비너스 숲길'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의 생태통로를 지나,
절개지를 우회하여 오르는 등로를 따라 오르니,
정자와 테크목 쉼터가 나오기에,
오늘 산행의 목적지인 샘골고개가 바로 지척이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여유를 부려본다.
데크 쉼터를 뒤로하고 봉담유아숲체험원 방향으로 내려가니,
우측으로 '봉담 웃음만발 높이숲'이 내려다 보이고,
봉담읍 동화리와 분천리를 잇는 동화길을 넘는 생태통로를 건너,
봉담 유아숲 체험장을 지나게 되고,
이정표의 멀티코트.팔각정 방향으로 진행하니,
옛 샘골고개를 지나는 웃음길을 넘는 생태통로를 건너,
완만한 오름길 산책로를 따르면,
잠시 전 이정표에서 보았던 '멀티코트.팔각정' 지점을 지나게 되는데,
팔각이 아닌 육각정자와 풋살장, 배드민턴장 등의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오늘 산행 종료지점이 샘골고개가 바로 지척이라 미리 묻은 먼지를 털고,
맨발로 지압을 할 수 있는 길도 설치된 산책로를 따르다가,
삼거리 갈림길에서 직진의 '꽃의 언덕' 방향으로 진행하니,
동화마을 생태공원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게 되고,
그네 밴치가 설치된 '꽃의 언덕' 우측 가장자리 산책로를 따라 내려서니,
이내 샘골고개 날머리로 내려서게 되는데,
도로 건너편 능선 너머로 협성대학교 건물이 보이는 샘골고개에 도착하여 서봉지맥 첫번째 산행을 마감한다.
<샘골고개>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지나고 우측으로 협성대학교가 있다. 샘골고개의 지명유래는 고개 아래에 시내말이라는 분천리의 자연부락이 있었는데, 옛날 이 마을 앞에 큰 시내가 흘렀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으로 고개 이름도 거기서 따온 듯하다. 분천리(汾川里)에는 분천, 샘골, 수기리 등의 물(水)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300여 미터 거리의 협성대 정문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여 수원역으로 가는 30-1번 버스를 타고,
귀갓길이 편리한 수원역으로 이동하여 간단한 뒤풀이를 하려는데,
예상보다 산행이 일찍 종료되어 문을 연 식당들이 거의 없는 상태라,
그저 호프집에서 생맥주로 배를 불리며 봉수지맥 산행의 뒷얘기들을 말끔히 정리해 둔다.
자전거로 한강변을 빠르게 달리다가 맞바람에 힘이 들어 속도가 떨어지는데,
속도가 느려지며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멈춰서고 넘어지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속도는 경이로웠지만,
이제 좀 천천히 가자며 페달링을 멈추면
우리의 후세는 풍요하지 않은 나라에서 살게 될 듯하다.
저리도 많은 고속도로를 지어가며 달려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그저 "옛날 그때는 참 좋았지" 하는 넋두리를 늘어놓지는 않아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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