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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금남정맥 03차(백령고개~대둔산) : 오대산 심설산행의 옛 기억을 떠올리며 걸은 대둔산

by 재희다 2012. 2. 26.

산 행 지 : 금남정맥 03차(백령고개~대둔산 마천대)

산 행 일 : 2012. 02. 25.(토)

산행코스 : 백령고개 ~ 바람골산(622봉) ~ 인대산 ~ 오항리고개 ~ 570봉 ~ 배티재 ~ 낙조대 ~ 대둔산(마천대)

+ 수락리(주차장) (산행거리 17.5km + 0.7km, 10시간 소요)

산행참가 : 27명.

 

<산행코스>

 

영등포에서 10명이나 승차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자리가 모자란다고 했는데, 오늘 오전 한분이 불참을 통보해 오는 바람에 만차의 위기?를 모면하고, 근래에 보기 드물게 거의 만차로 양재를 출발한다. 그동안 백두산우회와 함께했던 김우섭 기사가 다른 회사로 옮기는 바람에, 새로 온 기사님과는 첫번째 산행이라 양재를 출발하고서도 한참 동안 뒤척이다가 늦게서야 잠이 들었다. 겨울비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버스는 그럭저럭 백령고개에 도착하였고, 한 시간쯤 더 뒤척이다가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백령고개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나서니, 눈과 비가 섞여 내리며 바람도 조금씩 불고 있어서 산행하기에 그리 좋은 날씨는 아니다. 하지만, 궂은 날씨에 산행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있으려니 기대하며 산행길에 나선다.

 

 

백령고개 들머리는 '진산/남이' 교통표지판 뒤쪽으로 이어진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 건천리와 충남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를 잇는 635번 지방도를 건너, 첫번째 목표지점인 인대산을 향한다.

 

 

개념도상 473봉쯤으로, 마치 다듬어 놓은 듯한 직육면체 모양의 바위들이 나란히 자리한 암봉을 지난다.

 

 

622봉 전위봉쯤의 봉우리를 지난다.

고도가 높아지며 내리는 비는 눈으로 바뀌었으나, 낙엽 위에 살짝 덮인 눈이 산객들의 엉덩방아를 자주 요구한다. 그래서 이곳저곳에 땅을 많이 사놓을 밖에는..ㅉ

 

 

622봉(바람골산) 도착.

야간에 정맥산행을 하다 보면 현위치를 확인할 길이 없는데, 부지런한 선답자 몇몇 분이 걸어놓은 간단한 표지판은 정말로 많은 도움이 된다. 감사한 마음을 가질 뿐이다.

 

 

622봉 조금 지나서 만나는 610봉에서 우측으로 식장지맥이 분기한다. 식장지맥(食藏枝脈)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과 진산면의 경계선에 있는 인대산 직전 무명봉(약 610m)에서 북동쪽으로 분기하여 월봉산(543m), 금성산(439m), 만인산(537m), 지봉산(464m), 망덕봉(439m), 식장산(598m), 고봉산(335m), 계족산(423m)을 거쳐 금강과 갑천의 합수점인 대전 대덕구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55km의 산줄기다.

 

 

식장지맥 문기봉을 지나 내림길 바람이 잦아드는 곳에 있는 묘지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쉼을 한다.

백령고개에서 이곳까지는 그런데로 업다운이 심하지 않고 평이한 산행을 이어왔지만, 이제 인대산을 향해 고도를 높여야 할 지점이 된 듯하다.

 

 

인대산 정상 도착.

640봉을 지나 안부로 내려섯다가 다시 급경사를 치고 오르면 나오는 금남정맥길이 좌틀하는 능선 갈림길에서 인대산 정상은 반대쪽으로 100m쯤 떨어져 있다.

 

<인대산(印大山, 666m)>

충남 금산군 진산면과 전북 완주군 운주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인대산의 '인'자는 '사람 인(人)' 자가 아니라 '도장 인(印)'자다. 인근 주민들은 한결같이 '이 산으로 인하여 큰 인물이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며, '사람 인(人)'자가 '도장 인(印)'자로 잘못 쓰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대동지지]진산현 편에는 '어질 인(仁)'자 '큰 대(大)'자를 써서 인대봉(仁大峰)으로 쓰고 있다.

인대산은 그 모습이 좋다. 북쪽의 백마산에서 인대산을 바라보면 인대산은 운장산의 모습과 비슷하게 기와지붕처럼 보이고 우람하다. 동.서 양편에 솟아있는 봉우리도 뚜렷하다. 또한 인대산은 특히 조망이 훌륭하다. 운장산, 대둔산, 서대산, 진악산, 천둥산 등이 잘 보인다고 한다.

 

 


 

인대산 증명사진을 한 장 남기고는 인대산을 뒤로한다.

 

 

작은인대산 도착.

 

이곳 611봉 헬기장이 사방으로 조망이 확 트이고 터가 넓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예정했었다. 하지만 아직은 약간 이른 시간이고, 그런대로 산행이 어렵지 않게 진행되어 조금 더 산행을 하다가 아침을 먹기로 하고 후미를 기다려서 정맥산행을 계속한다.

 

오늘 전반부 구간의 대표적인 산(山)인 안대산(印大山)은 금산군 진산면에 있는 해발 666m의 자그마한 산으로, 대둔산과 진악산의 중간쯤에 있어서 별로 각광을 받지 못하는 산이다. 이 산의 주변 일대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치열했던 전장터이며 그에 따른 숱한 전설을 간직한 지명이 많다. 권율 장군 휘하 3천 명의 대군사가 주둔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의 대둔산(大屯山), 산의 영험으로 암벽에서 빛이 반사되어 적의 시야를 가리게 했다고 해서 붙여진 하늘의 등불이란 뜻의 천등산(天燈山)과, 배티재에서 치열한 야간전투 당시에는 달박골 위에서 달이 떠올라 아군을 도왔다고 한다.

 

이곳 금산군은 원래 전라북도였는데, 1970년대 신민당 당수를 지냈고 3,4,5,6,7,9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진산 의원이 충청남도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분이 이곳 진산면 출신이다. 유진산 의원의 본명은 영필이었는데, 고향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이름도 진산(珍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500봉 도착.

 

 

500봉 좌측으로는 오항리 증티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는 채석장이 내려다 보인다.

 

 

 

500봉 내림길에 본 495봉 모습.

저곳 495봉 헬기장에서 식사를 하려고 서둘러 진행한다.

 

 

오항동고개에서 오항리로 이어지는 도로에 내려선다.

 

이 도로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르면 오항동고개에 바로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정맥꾼인 우리가 큼지막한 봉우리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고, 다음 봉우리인 495봉 헬기장에서의 전망이 좋다고 하기에 그곳에서 아침식사도 할 겸 해서 도로를 건너 495봉을 향해 오름길로 들어선다.

 

 

495봉 오름길 중간쯤에 삼각점이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삼각점은 봉우리 정상에 있는데..ㅉㅉ

 

 

495봉 정상 헬기장 도착.

 

495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오항동고개 방향.

 

당겨본 오항동고개.

 

 

이곳 헬기장 주변 조망이 좋다고 하여 아침식사 장소로 삼았는데, 주변이 구름으로 가려 있어서 마음속으로만 멋진 대둔산 조망을 즐기며 서둘러 아침을 먹고는 오항리고개로 향한다. 아마도 후미분들은 도로를 따라 오항동고개로 바로 진행하여 그곳에서 아침식사를 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오항동고개로 향한다.

495봉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 50여 미터 돌아나가면, 오항동고개로 가는 급경사 내림길이 시작된다.

 

 

 

495봉 내림길을 내려서는 백두들의 흔적.

 

 

다시 오항리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서고,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오항동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중간에 우측 숲으로 표지기가 한두 개 걸려 있으나 우측 능선 산길은 진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셀카도 작동해 보고..ㅋㅋ

 

 

이내 오항동고개에 도착한다.

 

오항동고개 전경.

 

 

<오항동고개(서낭당재)>

전북 완주군 오항리 절골마을과 충남 금산군 진산면을 이어주는 고개로, 635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새벽에 백령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에도 백령고개를 지나는 도로가 635번 지방도였었다. 634번 지방도는 금산군에서 완주군을 거처 다시 금산군 남이면 쪽으로 이어진다. 새벽에 그냥 635번 지방도를 따라올걸 그랬나..ㅋㅋ

 

오항동고개 전경.

 

오항동고개 정자에서 우아한 아침식사를 즐기신 분들.

 

 

산객들이 떠난 춘경정 정자에 걸려있는 시계가 대충 현재 시각과 맞다.

 

 

오항동고개를 뒤로하고 배티재로 향한다.

 

 

멋진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고,

 

 

높지는 않으나 제법 경사가 있는 봉우리들을 연이어 넘어서,

 

 

570봉에 도착한다.

 

정맥길은 이곳 570봉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어 아래로 내려서게 된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10분 정도 가면 592봉에 도착하는데, 그곳은 정맥길은 아니지만 조망이 좋아 정맥꾼들이 통상 들리는 곳이지만, 지금은 주변이 구름으로 가려진 상태라 그냥 우측으로 꺾어서 정맥길을 이어간다.

 

 

570봉 내림길에 상고대가 나타난다. 아마도 고도가 높아지며 기온이 내려가서 그런 듯하다.

 

얼음꽃이 핀 능선길을 유유자적 내려서는 전여사님.

 

 

515봉쯤에서 앞서가던 분들이 잠시 쉼을 하고 있다.

 

 

 

515봉을 10여분 내려서니, 우측으로 진산자연휴양림 도로가 나타난다.

 

돌아본 515봉 모습.

 

진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설까를 잠시 망설이다가 정맥 능선을 따르면,

 

 

진산자연휴양림에서 만든 듯한 숲속 수영장이 나타나며,

 

우측으로 진산자연휴양림 통나무집들이 보인다. 20여년 전에 왔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돌아본 515봉.

 

 

도로로 내려서지 않고 능선을 따르면,

 

 

배티재 직전 415봉 오름길에 지각운동의 흔적도 보인다.

 

 

배티재로 내려서는 급경사 내림길을 따르면,

 

 

우측으로 배티재 휴게소가 시야에 들어오고,

 

 

배티재에 도착한다.

 

<배티재/이치고개(340m)>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충남 금산군 진산면을 잇는 17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 고개 주변에는 돌배나무가 많았는데, 배나무가 많은 골짜기라는 뜻에서 이치(梨峙) 또는 배티재라 불리고 있으며, 이곳 배티재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장수인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가 2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금산을 점령하고 난 다음, 전라도를 침략하려던 차에 당시 광주목사를 지내던 권율 장군의 1만5천 향군(鄕軍)에게 야밤 기습을 당해 대패를 하면서 그 기세가 꺾였는데, 이 전공(戰功)으로 권율 장군은 전라감사로 승진했다가 다시 도원수가 되었다.

 

배티재에 도착하는 백두들.

 

배티재에서 느긋한 휴식을 가진다.

 

 

배티재에는 권율장군과 황진현감의 대첩비와 전승비가 있다.

 

 

<이치대첩비>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 12-1, 전라북도 기념물 제26호다. 이곳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라도절제사 권율의 독전 하에 동복현감 황진 장군 등이 왜적을 격파한 전적지다. 왜장 고바야가와 다카가게는 금산에서 웅치 방어선을 뚫고 호남의 수도 전주를 침공하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진 장군은 남원에서 급히 전주로 와 안덕원까지 침입한 적을 물리치고, 바로 이치로 달려와 휘하의 장수 공시억, 위대기, 의병장 황박 등과 함께 사력을 다해 싸워 대파하였다. 이를 전라북도에서는 임진왜란 3대첩(閑山, 幸州, 梨峙)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배운 바로는 임진왜란의 3대첩은 한산, 행주, 진주성 싸움이라고 배웠다.

 

 

 

 

 

 

 

대둔산을 향해 배티재를 출발한다.

 

 

 

배티재 대둔산 방향 들머리에는 멋진 돌문이 세워져 있다.

 

 

등산안내도를 보며 정맥길은 일대봉에서 좌측으로 꺾어서 가야 하며, 시야가 없는 상태에서 우측 오대산 방향으로 알바의 가능성도 미리 확인해 둔다.

 

 

대둔산을 향하는 백두들.

 

 

 

 

배티재 들머리부터 된비탈이 이어진다.

그나마 나무계단으로 등로를 정비해 둔 덕분에 눈길에도 어렵사리 오름길을 올라간다.

 

 

 

 

 

다시 고도가 높아지며 주변 나뭇가지에 얼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군데군데 바위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대둔산이 맞나 보다.

 

 

 

알바의 가능성이 크다는 오대산 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하여 금남길은 생애봉바위 방향이다.

 

 

그냥 능선으로 보이는데, '일대봉'이라는 표지기가 걸려 있다.

 

 

전반부 산행을 어렵사리 마친 다음, 후반부 산행을 된비탈로 시작하니 무척이나 힘들어한다.

 

 

 

장군약수터 갈림길을 지난다.

 

 

<장군 약수터>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허둔 장군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고 대둔산에 입산하여 물을 마신 곳이라 장군약수터라 한다고 전해오고 있다. 약수터의 근원인 상여봉을 멀리서 바라보면 용이 하늘로 구름을 타고 힘차게 승천하는 듯한 형상을 볼 수 있는데, 상여봉이 용의 머리라면 장군약수터는 용의 입으로 물을 내뿜는다고 하여 일명 용천수라고도 한다. 이 약수를 마시면서 100일 기도를 하면 만병이 났는다고 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고 한다.

 

장군약수터 안내판.

 

 

앞쪽으로 보이는 암봉이 상여봉일까, 쉬이 짐작이 안 된다.

 

 

 

장군약수터 갈림길이 또 나온다.

 

 

 

광장 갈림길을 지나고,

 

 

눈 내리는 예쁜 산죽길도 지난다.

 

 

 

가파른 철계단도 오르고,

 

 

미끄러운 급경사 오름길을 올라,

 

 

태고사를 거처 낙조대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잠시 지친 다리를 쉬게 한다.

 

 

태고사 갈림길 등산 안내도.

 

 

눈 쌓인 등로를 올라오는 산객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낙조대 갈림길 도착.

이곳 능선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100m쯤 가면 낙조대가 있고, 정맥길은 좌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낙조대를 가 봐도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중지에 따라 낙조대는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낙조대를 다녀오는 선두팀들.

선두팀은 낙조대에서 한참 동안 추위에 떨며 후미를 애타게? 기다렸다고 한다. 죄송~ㅎㅎ

 

 

<낙조대(落照臺, 859m)>
금남정맥에서 200m 벗어나 있는 낙조대는 '해질 무렵 정상에서 서해 수평선으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다'하여 낙조대(落照臺)라 하였다.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출 일몰의 경관은 일대장관이라 한다. 또한 낙조대 아래 1km 지점에 태고사가 있는데, 신라 신문왕 원년(681)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태고사의 위치를 정했다고 하는데, 대둔산 낙조대 아래에 있는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고려시대 태고화상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진묵대사가 재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낙조대 탐방은 후일을 기약하고, 마천대로 향하는데,

 

 

마천대로 이어지는 등로는 온통 설화가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어,

 

 

황홀경에 빠진 정맥꾼의 발길을 잡고는 놓아주지를 않는다.

 

 

 

 

 

 

 

 

 

실재 모습은 훨씬 멋졌던 나무를 배경으로.

 

 

 

 

주변 경관은 볼 수 없으나, 나뭇가지에 핀 설화가 산객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용문굴 갈림길을 지나고,

 

 

 

길가의 소나무가 자기도 가끔씩은 희게 화장을 할 때도 있다고 귀띔해 준다.

 

 

 

 

 

 

 

기~인 철계단길을 따라 오르면,

 

 

 

마천대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의 막걸리 가계도 궂은 날씨로 문을 닫았다.

 

 

등산 안내도는 보기 드물게 해독이 어렵게 그려져 있다. (방향이 일반적이지 않음)

 

 

 

마천대 갈림길로 접어들어 미끄러운 등로를 잠시 오르면,

 

 

 

하늘과 맞닿았다는 대둔산 정상 마천대(摩天臺)에 도착한다.

 

<대둔산(大芚山, 878m)>

충남 금산군 진산면(珍山面)·논산시 벌곡면(伐谷面)과 전북 완주군 운주면(雲洲面)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우리나라 8대 명산 중의 하나이고, 등산객들이 찾는 빈도는 100대 명산 중 6위를 점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산이다. 대둔산의 원래 이름은 '한듬산'이다. 한듬산은 '큼직한 두메의 산', '크나큰 바윗덩이 산'이란 뜻으로, 한자로 표기하면서 대둔산(大屯山)이 된 것이다. 전라북도 쪽은 기암절벽이며, 충청남도 쪽은 숲과 계곡이 아름다워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즉, 1977년 3월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의 38.1㎢가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1980년 5월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양촌면과 금산군 진산면 일대의 24.54㎢가 충청남도 도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전라북도 쪽에는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연결하는 높이 70m, 길이 50m의 금강구름다리가 특히 유명하며, 마왕문·신선바위·넓적바위·장군봉·남근바위 등의 기암과 칠성봉·금강봉 등 첨봉들이 산재하여 경승지를 이룬다. 주요 사찰로는 안심사(安心寺)·약사(藥寺) 및 운주의 화암사(花巖寺) 등이 있다. 충청남도 쪽에는 낙조대(落照臺)의 일몰 광경이 장관이며, 진산의 태고사(太古寺)와 벌곡의 신고운사(新孤雲寺) 등 고찰이 있었으나 모두 6·25 때 소실되었다. 특히,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元曉)가 이 절터를 발견한 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12승지(勝地)의 하나이며, 한용운(韓龍雲)도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승지를 논하지 말라.”고 하였다는 곳이다.

대둔산의 옛 이름인 '한듬산'과 관련하여서는 또 다른 해석도 있는데, 이는 계룡산의 지세와 겨루다 패해 한이 맺힌 것을 뜻한다고 한다. '한 맺힌 산'이라는 이름인데 그 이름처럼 역사가 순탄치 않은 대둔산은, 임진왜란 때 대둔산 일대에서 김제군수 정담이 이끄는 의병과 권율장군의 군대가 왜군과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조선 말기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도 대둔산을 찾아 일본군에 대항하며 마지막 결사항전을 벌이다가 모두 바위 벼랑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고 한다. 대둔산 마루 삼선계단 직전에 있는 '대둔산동학군최후항전지' 표지가 그 역사를 전하고 있다.

 

 

<대둔산 마천대 개척탑(開拓塔)>

개척탑은 대둔산 등산로를 개척하면서 주민들의 노고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70년 11월에 완주군민 및 공무원들이 자재를 운반 설치한 뒤, 1989년 10월에 1차 정비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완주군에서 설치한 개척탑을 배경으로 정상 증명을 남기고,

주변 조망은 후일 다시 찾아서 확인하기로 하고는 마천대를 뒤로한다.

 

 

 

 

마천대 갈림길로 돌아 나와 다음 봉우리인 서각봉을 향한다.

 

 

주변 설화를 만끽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이에,

 

 

서각봉(허둥봉) 방향의 안심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서각봉은 허둥봉이라고도 하는데, 허둥봉은 낙조대 오름길에 지났던 장군약수터의 전설이 비롯된 백제의 장군 허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서각봉의 유래는 알 수가 없다.

 

 

머리는 안심사 방향의 서각봉을 향하여 오늘의 정맥산행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이제 충분히 걸었으니 수락리 방향으로의 탈출을 예기하고 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백두들이 원해서라는 핑계를 대고는, 오늘의 정맥산행을 여기서 접기로 한다. 사실 전북의 금강이라는 대둔산에서의 조망을 전혀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다음에 한번 더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끌어서 좀처럼 하지 않는 탈출을 쉬이 결정하고는 수락리를 향해 하산길로 접어든다.

 

안심사 갈림길 이정표.

 

 

 

금남정맥 산행을 중단하고 수락리로 향하는 백두들.

 

 

 

 

바위 암릉에는 폼나는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정원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이곳이 제자리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사진으로만 담아간다.

 

 

 

암릉길의 소나무를 배경으로.

 

 

 

 

석천암 갈림길에서 좌측 수락리 방향으로 진행하고,

 

 

안전시설이 없었으면 무척이나 힘들었을 듯한 계곡을 건너,

 

 

 

다시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 건너편 바위 암릉 능선으로 진행한다.

 

 

구름다리 위에서.

 

 

암릉 위 능선으로 오르는 백두들.

 

 

 

 

 

 

 

돌아본 구름다리.

 

 

 

암릉길 위로 설치된 계단을 따라 수락리 주차장을 향한다.

 

 

고도를 낮추니 소나무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있다.

 

 

 

 

 

 

 

1950년에서 1955년까지 5년에 걸쳐 대둔산 일대에서 활동 중인 북한군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전사한 경찰관, 국군, 애국청년단원 등 많은 호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승전탑에 도착하는 백두들.

 

 

좌측에 있는 승전탑을 뒤로하고,

 

 

 

 

 

서둘러 주차장을 향한다.

 

 

 

수락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하고, 애마에 올라 점심을 먹으러 간다.

 

 

 

논산시 양촌면에 있는 한우타운으로 이동하여,

 

 

 

 

장장 열세 시간의 긴 산행에 허기진 배를 마음껏 채운다.

 

 

 

 

 

 

 

 

 

 

산행의 피로도 말끔히 씻고는,

 

 

석양을 바라보며 서울로 향한다.

 

 

백령고개에서 배티재까지의 산행은 당일코스로도 충분한 가능한 거리였는데,

산행 후반부의 대둔산 심설은 오늘 산행을 무척이나 힘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

지난번 11시간에 연이어 오늘도 13시간이나 산행을 하게 되어,

코스 안배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돌아보며 죄송스런 마음 그지없다.

그래도 모두가 안전하게 산행을 마무리하게 되어 무척이나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오늘 보지 못한 대둔산의 진면목은 가을철 단풍시즌에 다시 한번 감상하기로 하고,

다음 산행에서는 금남정맥의 대둔산 이후 구간을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