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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금북정맥 03차(유량리고개~양곡리) : 중국발 미새먼지를 정화하며 걸은 금북정맥 y

by 재희다 2014. 2. 23.

산 행 지 : 금북정맥 03차(유량리고개~양곡리)

산 행 일 : 2014. 02. 21. ~ 22.(토)

산행코스 : 유량리고개~경암산~납안들고개~돌고개~고려산~고등고개~비룡산~덕고개~성요셉치매센타~양곡리

              (산행거리 23km)

산행참가 : 17명.

 

<산행코스>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고 있는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밭이라던 쇼트트랙에서 여자선수들만 금 2개를 따고, 남자는 명함도 못 내밀었고, 한국이 딴 금 3개는 모두 여자선수들이 땄다. 한국의 남자들은 소주 마시며 스포츠 구경만 하고 있는 건지, 기대했던 김연아는 좋은 경기를 펼치고도 러시아 마피아들의 어거지로 인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많은 사람들을 날밤 세게 만들었던 동계올림픽도 지난밤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올림픽이 끝나던 말던 산으로 가야 하는 사람들은 시간 맞춰 배낭을 꾸리고 버스에 올라 산행지로 향한다.

 

 

유량동고개에 너무 일찍 도착한 버스 안에서 3시간 넘게 잠을 더 청해 보다가,

산행 준비를 하고 서늘한 새벽 기운에 몸을 맞긴다.

 

 

지난 산행의 날머리였던 유량동고개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유량동고개 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금북정맥길을 이어간다.

 

 

315봉 구성산 갈림길에서 좌측 취암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좌측 아래로 불을 대낮처럼 밝혀 놓은 남양유업 천안공장이 내려다 보인다. 목장에서 식탁까지 우유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장을 가동하는 듯하다.

 

가스 안전교육원 갈림길.

 

<가스안전교육원>

가스안전교육원은 가스안전에 관한 지식과 전문기술 보급을 통한 가스안전관리자 및 전문가 양성을 위해 1979년 개원했다. 2003년 5월 충남 천안에서 교육원을 새롭게 개원하여 현장실무 위주의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설, 풍부한 실습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필요한 인력을 적기에 양성·배출함으로써 가스사고 예방과 안전문화 정착을 통한 기업의 생산성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장고개.

희미한 고갯길의 흔적을 지나쳐서 급히 돌아보며 셔터를 눌러본다.

 

<장고개>

목천 지산리에서 천안 구성동으로 넘어가는 옛 고개인데, 천안 장을 보러 다니던 고개라 하여 장고개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283봉에 전망바위에서 우틀하여 진행한다.

앞에 있는 전망바위에서 보는 조망이 좋다는데 입맛만 다시고 스쳐 지난다.

 

283봉 내림길 정면으로 흑성산의 커다란 그림자가 앞을 가로막는다. 산꼭대기에 불빛이 있는 저 산이 취암산인가 하고 잠시 긴장을 했으나, 정맥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지며 정면을 막고 섰던 흑성산은 자연스레 좌측으로 비켜나 길을 터 준다.

 

230봉을 지나 취암산 직전 안부쯤이 배넘어고개라는데, 별다른 고갯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냥 평범한 안부가 이어지며 흔한 이정표나 갈림길 흔적조차 없어서 어디쯤이 배넘어고개인지 분간이 안 된다.

 

<배넘어고개>

샛골(鳥洞)에서 목천면 지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전설에 의하면 천지창조 때 큰 배 한 척이 이 고개를 넘어 이빠진산(驚岩山)을 지나다가 산 정상부에 부딪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배(舟)가 넘어갔다고 배넘어고개라 하나 사실을 고개 마루턱에 오래 묵은 배나무가 있어 배나무고개라 불리다가 변해서 배넘어고개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잠시 오름길을 오르면 취암산 전위봉인 310봉 정상에 도착한다.

천안시내 방향으로 천안시 야경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천안시 야경.

좌측 봉우리 우측 편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경부고속도로에는 새벽임에도 차량통행이 무척이나 많아서 다른 시내 도로와는 확연히 구별이 된다.

 

 

취암산/경암산(321m) 도착.

널찍한 공터 중앙에 삼각점이 있고, 주위는 소나무로 둘러 있다.

 

<취암산(鷲巖山, 321m)>

천안시 목천읍에 있는 취암산은 금강의 지류인 병천천과, 한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곡교천의 분수령을 이룬다.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마치 수리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경암산 또는 취엄산이라고도 하며, '두 봉우리가 이 빠진 것처럼 생겼다'하여 '이빠진산'이라고도 부른다.

산 이름과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여서 사기를 가득 실은 배가 넘어가다가 산꼭대기 바위에 부딪쳐 배에 실었던 사기그릇이 깨지는 바람에 지금도 사기 조각이 뒹굴고 있다 하여 배너머산이라고도 부른다. 바위 중턱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샘이 있어서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이 샘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산기슭에 있는 천연동굴 용혈 앞에는 조선시대까지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던 제단 터가 남아 있다.

 

취암산 이정표.

정맥길은 동우아파트 방향으로 이어진다.

 

 

취암산 내림길은 잠시 암릉이 이어지며 천안시 방향 야경이 시원스레 시야에 들어오고, 앞쪽으로는 독수리머리 바위봉이 선명하다.

 

경암산을 뒤로하고 2분쯤 후 앞쪽으로 바위 암릉이 막아선다. 독수리머리봉이고 낮이었으면 암릉 위로 한번 넘어가 보았을 터이지만 미련 없이 우측으로 돌아간다.

 

 

세광아파트 갈림길에서 잠깐 고민을 한다.

좌틀의 정맥길은 사면을 따라 동우아파트 방향으로 이어지고, 정면의 내림길이 능선길처럼 보인다.

 

 

세광아파트 갈림길에서 좌측 사면길을 잠시 따르면 독수리머리봉을 넘어오는 능선으로 복귀하고, 등로 우측에 널찍한 마루 쉼터를 지난다.

 

 

이내 동우아파트 갈림길이 나오는데, 금북길은 우틀하여 동우아파트를 좌측에 두고 이어진다.

 

동우아파트를 옆을 지나는 백두들!

 

 

동아아파트 103동 101동 지점에서 아파트를 뒤로하고 등로는 다시 숲으로 이어진다.

 

 

철망을 따라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따르면,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오고 동우아파트는 어슴프레 멀어지더니,

 

 

경부고속도로와 21번 국도가 나란히 지나는 절개지 상단에 서게 된다.

 

마루금에서 철계단을 타고 뚝 떨어지니,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지나는 21번 국도다. 목천에서 천안을 잇는 도로로 교통량이 꽤나 많을 듯하다. 도로가 금북길을 잘라 버려서 부득이 우틀하여 우회길로 돌아간다.

 

 

철계단을 내려서며 우틀하는 백두들.

 

신새벽이라 아직은 차량통행이 많지 않은 21번 국도를 따라 천안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차가 잠시 뜸한 틈을 타, 도로를 횡단하여 진행한다.

 

 

번화한 시내 중심가처럼 보이는 도로를 따라 800여 미터쯤 진행하면,

 

 

천안삼거리 가구단지에서 좌측 고속도로 지하통로가 나온다.

 

 

좌측으로 경부고속도로 아래로 지나는 굴다리가 나온다.

이곳은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분기되는 지점, 즉 천안JC(표준어 천안분기점)다.

 

널찍한 지하통로를 따라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하여,

 

 

좌틀하여 다시 왔던 방향으로 돌아 목천 방향으로 진행한다.

사진의 정면으로 이어진 도로 우측이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다.

 

고속도로 지하통로 지나서 좌틀하면 고속도로를 끼고 다시 남쪽으로 향하게 되는데, 우측에 자동차 정비공장이 있고 경동택배 물류창고가 나오며 조금 지나면 동원시스템즈라는 공장이 나타난다.

 

 

른 새벽에도 불을 밝히고 부지런히 작업 중인 택배회사.

 

목천, 독립기념관 방향 진출로 표시가 보인다.

 

 

도로 끝 지점을 지나,

 

우측에 동원시스템즈 공장을 끼고 좌측에 ‘숲속에 미래가 있다’라는 표식 좌측 수레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서쪽 하늘에는 하현달이 걸려 있고,

 

 

묘지를 지나며 수레길은 좁은 등로로 바뀌어지며,

 

돌아본 취암산이 멀어져 있고, 능선 너머로 새벽에 지나온 동우아파트가 살짝 보인다.

 

고속도로를 우회하며 돌아온 거리가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임도길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임도를 따르다가,

 

 

이내 임도는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금북길은 우측 언덕으로 이어진다.

 

 

지도상 216봉으로 표시된 왕자봉(216m)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예정했으나 조금 일찍 도착했고, 기온이 많이 내려가 있어서 잠시 더 진행하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왕자(王子)봉이라 함은 산 모양이 '임금 왕(王)' 자 모양을 하고 있어야 왕자봉이란 이름을 갖게

되는데, 능선 구분이 안 되어 확인할 방법은 없다.

 

 

모두가 도착하자 왕자봉 인증을 남기고, 돌고개를 향한다.

 

 

 

잠시 후 185봉을 지나며 직우틀하여 내림길 능선으로 이어간다.

표지기가 없었으면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155봉으로 향하는 등로는 평지의 소나무숲 사이로 이어진다.

 

 

우측 능선 아래에 진왕영농조합법인에서 운영하는 양돈장이 내려다 보이며 역겨운 냄새가 끊어지지를 않는다.

 

이제 해가 돋았으니 기온이 올라가려나 기대가 피어오른다.

숲속이라 변변한 조망처 하나 없음을 아쉬워하며 쑥스러운 듯 떠오른 해를 당겨본다.

 

 

남쪽 도장리 방향 조망.

 

 

금북길은 동쪽으로 휘어져 가다가,

 

 

직우틀하여 돌고개를 향하여 내려간다.

 

능선에서 직우틀하자,

잘 가꿔진 묘지가 나타나고 아래로 돌고개가 내려다 보인다.

 

 

위쪽의 묘지는 그냥 지나쳐 아래쪽 묘지터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나중에 이런 묘지가 다 없어지면 정맥꾼들은 어디에서 밥을 먹을까 하는 씰데없는 걱정도 해 본다.

 

오늘 최저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라서, 한두 분만 도시락을 가져오고 대부분 빵과 떡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추운 날씨 탓에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고려산을 향한다.

 

돌고개 날머리.

 

<돌고개(石峴)>

순우리말로 돌고개라 하며 石峴(석현)이라 쓰고 있다. 목천면 도장리와 용원리를 이어주는 오래된 고개이며, 돌고개 밑의 마을 고개도 돌고개라 하는데, 고개 부근에 돌이 많아 얻은 이름이라 한다.

 

돌고개에 내려서서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석곡배수지 좌측 철책을 따라 능선으로 오른다.

 

최근에 완공된 듯한 석곡배수지 철책에는 아직 표지기가 거의 붙어 있지 않다.

이제 한 일 년쯤 지나면 갖가지 색깔의 표지기들이 커튼을 친 듯 느려뜨려 질 것이다.

 

 

돌아본 돌고개 전경.

건너편 능선에서 직우틀하여 중앙의 지능선을 따라 돌고개로 내려온 지나온 정맥길이 쉽게 가늠된다.

 

 

석곡배수지 절개지 상단을 지나자 다시 등로는 편안하게 이어지더니,

 

 

널찍한 개활지를 지나는데,

마치 비무장지대 내의 방치된 평지 같은 느낌이 든다.

 

 

가끔씩 능선 위에 널따란 밭도 조성되어 있어서 시골 마을 구릉지를 걷는 분위기다.

바로 좌측 아래쪽에 천안시 성남면 대정리(대치 윗마을) 마을이 있는데, 그곳 사람들이 예까지 올라와서 개간을 한 듯하다.

 

 

밭을 지나며 갈림길에서 좌측 오름길로 올라 밋밋한 봉우리를 지나면,

 

 

또 밭이 나오고,

 

 

한치고개를 지나게 된다.

 

<한치고개>

고개 좌측 아래에 대치 윗마을이 있어서 대티고개라고도 하며, 대티윗말 사람들이 목천면 도장리로 넘나들던 고개이다. 조그만 화물차가 드나들 정도로 길은 넓다. 등로의 고도차가 없어서 마냥 편안한 느낌으로 길을 걷는다.

 

 

한치고개를 지나자 잘 단장된 묘지 옆을 지니고,

 

 

잠시 후 우측 편으로 연이어 묘지를 지난다.

 

 

등로는 별다른 오르내림 조차 없이 능선 위로 이어진 수레길을 따른다.

 

 

우측으로 미세먼지를 뚫고 가야 할 고려산이 보인다.

 

 

편안하게 수레길로 이어지던 등로가 좁아지며 오름길을 올라, 잠시 더 진행하면 굴머리고개를 지난다.

 

<굴머리고개>

굴머리고개는 천안시 목천읍 소사리(굴머리)와 성남면 대정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지금도 수레가 다닐 정도로 널찍한 고갯길이 나 있는데, 고저 차이가 거의 없어서 고개인지 인식을 하지 못하고 그저 버려진 임도쯤으로 생각하며 지나친다.

 

265봉 갈림길.

금북정맥은 직우틀하여 고려산으로 이어진다.

 

위의 사진에서 좌측 오름길로 가면 265봉을 지나 전의면 관정리로 내려가게 된다.

갈림길이 뚜렷하지 않아서 숲이 우거진 계절에 오면 무심코 265봉 쪽으로 알바하기 십상이겠다.

이제 이곳부터 세종특별자치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갈림길에서 직우틀하여 잠시 내려서자,

우측으로 벌목지가 펼쳐지며 전방으로 가야 할 고려산이 별안간 나타나고, 좌측 아래쪽에 아야목 마을이 보인다.

 

<아야목 마을>

고구려가 강성하였을 때 최남방의 국경 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때 홍건적이 침입해 오자 백성들이 이곳에 성을 쌓고 피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홍건적의 포위가 풀리지 않으며, 성 가운데 우물의 물이 떨어져 주민들이 갈증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이 '아야 목이야'하고 울부짖었다고 하여 아야목 마을이라 부른다고 한다.

 

고려산 방향 파노라마.

 

 

굴머리고개로 이어지는 옛고개.

고갯길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잠시 전 지나온 굴머리 고개로 이어지는 듯하다.

 

 

애미기고개(아먀목고개).

 

<에미기고개>

갑자기 뚝 떨어지는 도로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에미기고개란다. 천안시 소사리와 연기군 고등리를 연결하는 콘크리트 포장도로이며 산불안내방송시설이 있고, 여기서부터 천안시를 벗어나 연기군으로 접어든다.

 

 

애미기고개를 지나 고려산 오름길을 오른다.

 

 

고려산 오름길은 제법 가파르게 이어지다가,

 

 

비탈이 조금 급해지는가 싶더니 고려산성 위로 올라서고,

 

고려산성에 둘러진 고려산 정상부는 보기와는 달리 꾀나 널찍한 평지를 이루고 있다.

 

 

고려산 정상 도착.

 

 

고려산 정상 돌탑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고려산(高麗山 307.2m)>

이곳은 연기군 전의면과 소정면의 경계의 산으로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이 고려산이다. 산 정상에는 산성이 축조되어 있는데 이 산성을 고려산성(高麗山城)이라 부른다. 이 산성에 대하여 『여지도서(與地圖書)』의 전의현 산천조에 기록이 있고, 또 『대동지지(大東地志)』전의 산수조에 「高麗山 : 西十里」라 하여 고려산이 전의현에서 서쪽으로 10리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전의현읍지(全義縣邑誌)』 산수조에는 「古麗山 : 縣北十三里 上有祈雨祭壇」이라 하여 고려산이 전의현에서 북쪽 13리에 있으며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산을 고려산이라 부르는 것에 대하여 어느 학자는 고구려의 준말로
고구려가 남쪽까지 내려왔을 때 이곳에까지 내려와 성을 쌓았으므로 '고구려 산성'이라 부르다가 줄여서 '고려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 산성은 길이가 250m의 퇴뫼형 산성으로 성내에서는 삼국시대 토기편과 기와편이 출토되고 있다.

 

 

20미터 정도 진행하면 사각정자 쉼터가 있고, 고려산성 안내판이 새워져 있다.

 

고려산성 안내판.

 

사각정자 쉼터에서 느긋한 쉼을 하고,

 

 

후미가 도착하여 고려산 정상 증명을 남기고는,

 

 

급한 계단 내림길을 내려서자 아야목 마을 갈림길이 나타난다.

 

<아야목고개 갈림길>

고려산성 아래 마을을 아야목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산성에서 전투를 하던 병사들이 성안의 우물이 모두 말라 갈증으로 괴로워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하늘에 기우제를 지냈다. 정성을 다하여 제를 지내자 하늘에서 비가 내려 모두들 춤을 추고 기뻐하면서 그 빗물을 받아 마셨는데, 갑자기 마신 물로 목구멍이 따가워서 "야야 목" "아야 목" 하고 외쳤다 하여 마을 이름을 아야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는 조금 색다른 전설이 있다.

 

아먀목마을 갈림길 이정표.

 

 

잠시 후 산불감시초소를 지나고,

 

 

조그만 언덕 위를 지나며 정맥길은 우틀하여 진행되고,

 

 

이내 옛고개를 하나 지나 잠시 더 진행하면,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며 아래쪽으로 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황골도로 절개지 위에 서게 된다.

 

 

좌측 절개지를 따라 내려서면 세종시 소정면 대곡리 황골에서 고등리 세거리로 넘어가는 황골도로에 서게 된다.

 

<황골도로>

고등리 세거리와 대곡리 황골을 이어주는 9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절개지가 무척 가파르고 높게 되어 있다. 우측 아래 소정면 대곡리에 '황골마을'이 있어서 황골도로라 부르게 된 듯하다. 북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북방을 막는 산성(山城)이 있었던 지역으로 높고 곧은 큰 골짜기가 있는 산성 아래 부락이 생기면서 '곧은골'로 불리게 되었으며 한자로 '高登(고등)'이라 썼다고 한다.

 

황골도로 날머리.

 

황골도로 들머리.

 

들머리에 '고등고개'라 적혀진 표지기도 걸려 있다.

 

 

황골도로 들머리로 들어서서 모터싸이클이 등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고등고개에 도착한다.

 

<고등고개>

예전에는 삼남대로(三南大路)가 있어서 많은 행인이 넘어다닌 고개다. 선비들이 흥얼거리는 시조가락에 들새가 잔잔하였다는 옛 시조의 일절에 등장할 만큼 유명한 고개다. '고등이재', '고등현(高登峴)'이라고도 부르며, 고등리에서 대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우측에는 벌목을 한 상태이고 좌측 아래로 고등리가 보인다.

고등리는 백제 때부터 큰 골짜기여서 북방을 막는 산성이 있었던 지역이다. 높고 곧은 큰 골짜기가 있는 산성 아래 부락이 생기면서부터 "곧은골", "고등(高登)이"라 부르게 되었다. 예전에는 한양과 통하는 삼남대로여기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고장이기도 했다. 한때 삼남대로가 고등고개를 넘을 때는 그 영화를 황골도로에게 뺏앗길 줄은 몰랐겠지만, 이제 대곡터널이 뚫리면서 황골도로 또한 가끔씩 경운기나 지나다니는 길로 변했다.

 

 

우측 언덕을 좌회 하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고,

 

 

조금 오름길을 오르면 나무마루 쉼터가 있다.

 

정맥길에서 마루에 걸터앉아 쉼을 하는 호사를 오늘은 제법 많이 누린다.

 

 

한참을 쉬고 있으려니 후미가 도착하고,

 

쉼터 아래쪽으로 경부고속철도 터널이 뚫려 있어서 KTX가 쉴 새 없이 지나다닌다.

 

건망고, 딸기-바나나, 육포 등등 느긋한 배낭털이를 진행하고,

 

 

덕고개를 향해 금북길을 이어간다.

 

 

등산로 갈림길에서 좌측 비로봉 방향에 정맥 표지기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무심코 걸으면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 우측 내림길로 알바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잠시 전까지의 뚜렷한 능선길은 자취를 감추고, 희미한 흔적만이 남겨진 등로를 따라 금북길을 이어간다.

 

 

갈림길에서 비로봉 방향의 능선길을 잠시 진행하면, 정맥능선은 전의산연수원이 점령하고 있고, 정맥길은 좌측 아래로 우회하도록 표지기들이 붙어 있다. 비로봉은 우측 방향에 있는 듯 하나, 길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전의산연수원 좌회길로 접어든 백두들.

 

 

사면을 따라 뚜렷한 우회길이 이어진다.

다만 사전 우회길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면 혹시 알바길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겠다.

 

그렇게 사면을 따라 잠시 우회길을 따르면,

 

 

넓은 공터로 나오게 되고,

 

우측 계단은 연수원으로 오르는 길이고, 좌측 도로를 따라 가면 연수원 정문으로 이어진다.

 

 

하나뿐인 우측 방향의 길을 20여 미터 진행하면,

 

연수원 건물이 군사시설인지 사람 횟갈리게 만드는 경고판이 서 있다.

군용지에 건축된 연수원이 군 소유가 아닌 듯한데,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ㅉㅉ

 

좌측에 견공이 멀뚱히 처다 보고 있다.

저도 군용지에 지어진 종교단체 연수원을 지켜야 하는 참담한 현실이 기가찬 듯 보인다.

 

 

전의산연수원 정문을 지나 입구 방향으로 좌틀하여 진행하면,

 

<전의산 연수원>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에서 1995년에 개원한 연수원으로, 선지자 양성을 위한 교육과 전국 목회자 교육 및 각종 세미나가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1985년 승천)이라는 분이 1964년에 설립한 교회 그룹으로 국내 400여 개의 교회와 세계 여러 나라에도 교회가 있다고 한다. (정보는 회원만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확인 못함)

 

성령시대 구원자로 이 땅에 임하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 하나님과 새 예루살렘 하늘어머니을 믿고 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교회가 다 같은 동일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성경의 모든 가르침대로 행하고 있으며 성령과 신부 되신 하늘아버지 안상홍 하나님과, 새예루실렘 하늘어머니을 믿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천국 복음이 동방 땅 끝 땅 모퉁이인 대한민국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는 곳이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초대교회의 순수한 진리를 회복하는 마지막 종교개혁이 하나님의 교회" 라고 되어 있다.

 

 

 

바로 좌측으로 초소 건물이 나오고, 맞은편 공터 쪽에 금북정맥으로 이어진 들머리가 있다.

 

정문 방향.(이쪽으로 계속 가면 그냥 집으로 가는 길임)

 

 

초소 앞 공터 들머리로 들어서는 백두들.

 

 

잠시 사면길을 따라 진행하면 금북정맥 능선으로 복귀하게 된다.

 

전의산연수원이 자리하고 있는 정상을 거처 오면 쉽게 금북정맥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지나와서 보니 좌회 보다는 우회하는 편이 훨씬 짧게 돌아서 올 수 있을 듯이 짐작했다. 하지만 산행기를 쓰면서 지도를 자세히 관찰해 보았더니 좌회길이 조금 더 짧았다. 따라서 추후 산행기에서는 좌회길이 좋은지, 우회길이 좋은지는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듯하고, 지금까지 많은 선답자들이 좌측으로 나녀서 뚜렷이 나 있는 좌회길을 전의산연수원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이용하는 수 밖에는..ㅉㅉ

 

 

금북능선에 복귀하여 잠시만에 옛고개 하나를 지나게 되고,

 

 

정맥꾼들만이 다닌듯한 오솔길을 여유롭게 이어가다 보면,

 

 

또 다른 옛고개에서는 직진하면 안 되고,

 

우측 내림길처럼 보이는 널찍한 등로를 따라야 하는데,

우측 편으로 표지기들이 몇 개 있어서 조금만 주의하면 큰 어려움은 없지 싶다.

 

 

옛고개에서 우틀하여 조금 진행하면 세종에머슨CC(옛 IMG내셔널CC) 클럽하우스가 나타난다.

 

 

절개지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주차장이 나오고, 잠시 후미를 기다려서 함께 출발한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백두들.

 

주차장을 좌.우 어느 쪽으로든 가로질러 정문으로 향하는 백두들.

 

골프장 정문으로 이어진 진입도로 방향으로 진행하여,

 

 

세종에머슨CC 정문을 지나 진입도로로 들어서는 백두들.

 

 

늦은 시간이라 비교적 한산한 진입도를 따라 진행하면,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지점(플래카드가 걸린 지점)에서 좌측 숲길로 들어선다.

 

돌아본 진입도로.

 

 

좌측 숲길 들머리에는 표지기들이 걸려 있다.

 

 

숲으로 들어서 조그만 봉우리에 오르면 좌후방으로 세종에머슨CC가 내려다 보이고,

 

두터운 미세먼지로 흐려진 시야에도 불구하고, 좀 전에 지나온 전의산 연수원 건물이 건너다 보인다.

(당겨본 전의산 연수원)

 

 

잠시 더 진행하면 널찍한 공터 봉우리를 지나게 되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호젓한 산길을 편안하게 이어간다.

 

 

군데군데 갈림길마다 표지기가 금북능선길을 알려주고,

 

 

좌우로 수레길 정도의 흔적이 뚜렷한 옛고개도 지난다.

 

 

그냥 표지기가 이끄는 데로 진행하면,

 

 

산행기에서 본 자연산 나무대문을 지나게 되고,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전의면 읍내리 방향이 조망된다.

 

<연기군 전의면>

옛날에 연(燕)씨와 전(全)씨가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원래 전의면은 연기군에 속했으나 개편되면서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이 되었다. 전의면은 백제때 구지현(仇知縣)이라 불렀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금지현(金池縣)이라 고쳐 부르다가 전의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라고 한다. 전의면의 유래는 백제시대 때 이곳에서 ‘전씨(全氏)’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에서 발견된 석불비에 새겨진 ‘전씨’라는 명문과 이 일대의 지명이 전의·전동이라 한 것이 이 사실을 입증해 준다.(펌)

 

 

잠시 숲길이 이어지더니 좌우로 숲은 사라지고 시야가 트이며,

 

 

우측 전의면 유천리 방향으로 덕고개 비석이 내려다 보이고,

 

정면으로는 경부철도와 1번 국도가 지나는 덕고개가 보인다.

덕고개 직전에 다시 후진하여 우측 유천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도로 건너편에 덕고개 비석 앞으로 내려서게 된다.

 

<덕고개>

목포에서 출발하여 서울, 문산을 거쳐 신의주까지 가는 1번 국도와 경부선 철도와 고속철도가 지나는 연기군 전의면 유천리는 교통의 요충지다. 인근을 지나는 경부고속도로까지 보태면 예전의 삼남대로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오른쪽 유천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길 건너편에 키보다 큰 '덕고개' 표지석 서 있다.

 

전의면 번영회에서 1994년 7월에 세운 덕고개 표지석에는,

 

차령산맥 조그만 줄기 내려와

이곳에 머무르니 고개 되었네

우마차 달구지가 넘나들었고

오가는 길손마다 쉬어 넘었네

삽교천 금강으로 물이 갈라져

몇 굽이 돌고 돌아 서해로 가네

여기는 분수령 전의 덕고개

유서깊은 옛 고을 인심 좋은 곳.

이라 적혀 있다.

 

덕고개 인증은 모델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셀카로 해결하고,

 

서쪽 전의면 유천리 방향.

 

동쪽 전의면 읍내리 방향.

 

 

동쪽 전의면 읍내리 방향으로 300여 미터 진행하면 경부선 철로를 무단 횡단하는 들머리가 있다.

 

 

덕고개 날머리로 내려서는 백두들.

 

옛날에는 이 도로가 1번 국도였는데, 확장하면서 철길 남쪽으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도로를 건너서 잠시 동쪽으로 이동하면,

 

 

경부선 철길은 쉴새없이 열차가 오가고,

 

건너편으로 덕고개 버스정류장이 있다.

 

 

방음벽이 시작되는 지점에 철길을 무단횡단하는 들머리가 있다.

 

 

경부선 부산 방향.

 

경부선 서울 방향.

 

철길을 건너는 백두들.

 

 

철길을 건너 조그만 텃밭을 통과하여 우측 편으로 이어진 농로를 따른다.

 

텃밭을 지나는 백두들.

 

돌아본 덕고개 날머리.

 

 

농로를 따라 우측으로 100여 미터 진행하면 1번 국도를 통과하는 굴다리가 나타나고,

 

굴다리를 통과하여,

 

 

ㅜ자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진행하고,

 

 

도로 끝 지점에 있는 비닐하우수 농막 앞을 지나,

 

 

1번 국도 신의주 방향.

 

<1번 국도>

1번 국도 목포신의주선(木浦新義州線)은 전남 목포에서 경기도 파주시(498.7km)를 잇는 일반 국도이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까지는 전체 노선 약 1,068km로, 판문점거쳐 신의주까지 이어주는 도로였다.

 

1번 국도 목포 방향.

 

 

전의조경수마을 이란 커다란 입간판 앞에서 수레길은 좌틀하여 진행된다.

 

수레길을 따라 좌틀하여 진행하면,

 

수레길은 언덕 위 묘지까지 이어지고, 최 상단 묘지 좌측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들머리가 있다.

 

 

수레길이 끝나며 표지기를 따라 숲으로 든다.

 

돌아본 덕고개 방향.

 

 

산행이 짧거나 길거나 막바지쯤에는 항상 힘이 부친다.

 

 

숲으로 접어들자 능선 구분이 모호하고, 곳곳에 갈림길이 있어서 정맥길 찾기가 쉽지 않다.

 

 

ㅜ자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조금 진행하면,

(듬성듬성 나부끼는 표지기를 참고하여 길을 찾는다)

 

 

우측으로 매실 과수원으로 나오게 되고,

 

과수원 가장자리를 따라 진행한다.

 

과수원 가장자리를 따라 통신선들이 다발로 묵여 있다.

밤에 진행하려면 걸리지 않도록 발을 조심해야겠다.

 

 

이윽고 전의요셉의집으로 연결된 시멘트 도로가 나타난다.

 

날머리를 내려오는 백두들.

 

전의요셉의집으로 내려간다.

 

이 고개에서 직진하면 군부대가 나타나는데,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부득이 이곳부터 양곡리까지는 정맥 능선을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 진행해야 한다.

그동안 대간과 정맥을 걸으며 수없이 많은 군부대 주둔지를 만났지만 모두 다 우회길이 있었는데,

이곳만은 없어서 정맥능선 기준 6.8km 정도를 도로를 따라 우회하게 된다.

 

전의요셉의집으로 내려서는 백두들.

 

전의요셉의집 풍경.

 

주차장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고, 먼저 도착한 분들이 양지바른 곳에서 쉬고 있다.

 

전의요셉의집은 60세 이상 노인성치매환자를 진료하는 곳으로,

대전카톨릭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치매노인 요양소라 한다.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연기군>

연기군의 역사를 살펴보면, 마한의 54개국 중 충남에는 15개국이 있었는데, 연기군과 인접한 곳에는 월지국(月支國 혹은 目支國-직산), 신운신국(臣雲新國-천안), 불운국(不雲國-공주 서부)이 있었고, 이 중 연기군은 독자적인 행정구역을 형성하지 못하였으나, 이들에 흡수되어 행정력을 행사하는 영역에 속하였다.
백제시대 연기군은 백제의 도읍을 한성에서 웅진으로 옮긴 475년을 전후하여 연씨(燕氏)와 백제 말기 전씨(全氏)가 활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훗날 두잉지현이 연기현으로, 구지현이 금지현으로 변했다가 전의현으로 불리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연기는 연씨들 즉 웅진 초기에 활약했던 연신(燕信)과 연돌(燕突)이『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근거지로 추측할 수 있다. 연신과 연돌은 벼슬이 병관좌평(兵官佐平)에 이르러 오늘날 국방장관에 올랐다. 비암사에서 출토된 백제 말기 유물인 석불비상(石佛碑像)에 전씨가 주동이 되어 제작하였음이 명기되었고, 이는 계유년(673)에 제작된 것으로 백제유민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것과 그곳의 지명이 전의/전동이란 것으로 보아 전씨 근거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지금의 전의(全義)는 서원경(西原京)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대록군(大麓郡, 지금의 천안)의 영현(領縣)이었다. 대록군은 본래 백제의 대목악군(大木岳郡)을 신라 경덕왕이 개명한 것이다. 대록군의 영현으로는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순치현(馴雉縣)으로 본래 백제의 감매현(甘買縣)을 경덕왕 때 개명한 곳이며 지금의 천안지방에 해당한다. 또 하나의 영현은 금지현(金池縣)으로 본래 백제의 구지현(仇知縣)을 경덕왕 때 개명한 것으로 지금의 전의(全義)에 해당한다.

연기(燕岐)는 통일신라시대에는 연산군(燕山郡)의 영현이었다. 연산군은 백제의 일모산군(一牟山郡)을 신라 경덕왕이 개명한 것이다. 연산군의 영현은 두 개 현인데, 하나는 연기현으로 백제의 두잉지현(豆仍只縣)을 경덕왕 때 연기현으로 개명한 것으로 지금의 연기에 해당하며, 다른 하나는 매곡현(昧谷縣)을 경덕왕 때 개명한 것으로 지금의 회인(懷仁) 지방에 해당된다. 지금의 금남지역은 웅천주(熊川州)였는데, 757년(경덕왕 16) 웅주(熊州)로 개명하였다. 웅주는 오늘의 공주를 지칭하는 것이며, 금남은 그 일부이다.

 

연기군은 성종 때 10도 제가 실시되었을 때는 중원도(中原道), 지금의 충청북도에 속하였다. 5도양계(五道兩界)의 제도가 실시되면서 양광도(楊廣道-지금의 경기와 충청)에 속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의 연기군은 연기현과 전의현으로 청주(淸州)의 속현이었다. 연기현은 고려 현종(縣宗) 9년에 청주의 속현이 되었고 명종 2년에는 감무(監務)를 두었으나 뒤에는 목천(木川) 감무가 겸하였다. 전의현은 신라 경덕왕 때 금지현(金池縣)으로 개명한 것을 고려 때 전의로 고친 것이다. 금남은 통일신라시대 웅주(熊州)였다가 고려시대 공주(公州)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는데 공주의 동쪽에 위치한다.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연기군은 연기현과 전의현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금남지역은 공주로 연기군에 편입되어 있지 않았다. 연기현(燕岐縣)은 태종 6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태종 14년(1414년) 전의에 합쳐져서 전기현(全岐縣)이 되었다가 다시 태종 16년(1416년) 연기현으로 복설(復設)되어 조선시대 후기까지 계속되었다. 전의현은 태조 4년에 감무를 두었고 태종 13년에 현감을 두었으며 다음 해에는 연기현을 합하전기현이 되었다가 태종 16년(1416년)에 연기현이 복설(復設)되면서 전의현이 되어서 조선시대 후기까계속되었다.

 

금남지역은 공주의 일부로 조선시대 후기까지 공주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의 지방제도는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종래의 8도를 23부의 행정구역으로 개편하였다. 이와 같은 행정구역의 개편은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한성부(漢城府) 이외의 지역을 13도로 개편하고 그 밑에 7부(府), 1목(牧), 231군(郡)을 두었다.(연기군 홈 펌)

 

 

전의역 앞에 있는 복지회관 목욕탕에서 땀을 씻고,

 

 

병천순대거리에 있는 청화집이라는 순대집에서,

 

산행을 무사히 마친 자축을 한다.

 

병천의 명물이 순대이고.. 청화집이 원조 중의 하나라서 그런지 배불리 먹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순대로 순대를 채우고,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고장마다 맛볼 수 있는 먹거리가 있기 마련인데, 의외로 충청도 지역은 특이한 먹거리 찾기가 쉽지 않다.

삼남의 물산이 모여드는 곳이라 그런지 이 고장만의 특이한 먹거리보다는 풍성함이 충청도의 인심인 듯하다.

즐겨 찾아서 먹지는 않았던 순대를 맛나게 잘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