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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금북정맥 05차(곡두고개~차동고개) : 끝없이 이어지는 금북길의 빨래판 구간 z

by 재희다 2014. 3. 29.

산 행 지 : 금북정맥 05차(곡두고개~차동고개)

산 행 일 : 2014. 03. 22.(토)

산행코스 : 곡두고개~길재고개~각흘고개~봉수산~천방산~부엉산~극정봉~명우산~불모골고개~차동고개

              (산행거리 24km)

산행참가 : 21명.

 

<산행코스>

 

 

공주시 정안면 산성리 곡두고개 아래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마치고,

 

곡두터널 앞쪽 공터에서 AI방역을 하고 있어서 버스는 산성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와서 정차했고,

금북정맥 산행을 위해 곡두터널 방향으로 출발한다.

 

 

629번 지방도 곡두터널 입구 앞 쉼터를 지나는데 AI 확산 방지를 위해 한밤중에도 방역은 이어지고 있다.

 

 

곡두터널 앞에서 좌측 임도를 따라 곡두고개로 향한다.

 

곡두터널은 공주시 정안면 산성리와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를 곡두고개 아래에 뚫은 터널이다. 지도상에는 호계터널로 되어 있지만 표지판에는 곡두터널로 되어있다. 지난 산행 때 뒤풀이를 위해 찾았던 광덕사에서 천안이 왜 호두로 유명한지 알게 되었는데, 호두는 마치 복숭아(枓)처럼 생긴 것을 중국 호(胡)나라에서 가져온 데서 호두(胡枓)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러한 호두의 원산지는 이란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곡두고개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금북정맥 산행을 시작한다.

 

<곡두재(曲頭峙, 310m)>

공주시 정안면 주막거리에서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안심터를 잇는 고개로, 곡두티라고도 하는데 고개가 높은 곳에 있다 해서 꼭두재라고도 부른다.

 

 

553봉(이정목에서 '까막봉 557m'로 표시) 도착.

우측 광덕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분기된다고 표시되어 있다.

 

초반부터 코가 닿을 듯한 된비탈이 이어지며 아직 새벽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여사님께서 미처 몸을 풀어보지도 못하고 몸에 이상을 느껴 뒤쳐지는 바람에 553봉에서 한참을 기다린다. 아직은 새벽 공기가 무척 차가워서 잠시 기다리는 사이에 녹으려던 몸에 한기가 밀려온다.

 

 

후미가 도착하여 까막봉(553봉)을 뒤로한다.

 

 

554봉쯤을 지나고,

 

 

한바탕 더 된비탈을 치고 올라 태화산(630봉) 능선 분기봉에 도착하여 좌측으로 능선을 따른다.

 

오늘 산행 구간은 흔히들 빨래판 구간이라 하여 산행하기가 무척 힘이 드는 구간이다. 빨래판 구간이란 봉우리가 연이어져 오르내리는 것이 마치 빨래판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북정맥 구간 중에서는 차령고개에서 갈재고개까지 구간을 말하는데, 지난 산행 막바지에 징~한 경험을 했고, 오늘 초반의 곡두고개에서 갈재고개까지가 그에 해당된다. 이제 태화산에 올랐으니 대충의 빨래판 구간은 마무리되었다는 안도감도 들지만, 초반부터 무리한 분들이 있어서 사뭇 염려가 된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우회 아닌 우회로 통과하니,

 

 

무성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금북길은 우측의 내림길로 이어지고, 직진의 능선길은 태화산 천자봉(670m, 갈재봉)으로 이어진다.

 

<무성지맥(武盛枝脈)>

금북정맥이 차령고개를 넘어 곡두고개와 갈재고개 사이의 646봉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다가, 570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법화산, 철승산 줄기를 떨구고 629번 도로인 문안달고개를 지나 국사봉(590.6m) 어깨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604번 도로인 기름재를 지나 갈미봉(515.2m)에서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홍길동 성이 있는 무성산(613.6m)으로 이어간다. 무성산에서 영천고개를 지나 또 다른 갈미봉(309.2m)에 이르기 바로 전에, 서남으로 약산(277.9m) 줄기를 떨구고 갈미봉(309.2m)에서 계속 남동진하여 대전~당진 고속도로와 공주~서천 고속도로를 지나 채죽산(170m), 부엉산을 일구고 금강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0.3km 되는 산줄기를 무성지맥이라 부른다.

 

 

태화산 천자봉(갈재봉) 정상 증명.

 

"태화산 천자봉"이란 조그만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 한켠에 '갈재봉'이란 코팅지도 걸려 있다.

아마도 서쪽에 갈재고개가 있어서 그리도 불리우는 모양이다.

이제 금북길의 좌측은 공주시 정안면을 뒤로하고 유구읍이 시작된다.

 

 

다시 무성지맥 분기점 삼거리로 돌아나와, 서쪽 갈재고개와 각흘재 방향으로 금북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소나무 조림지를 지나고,

 

돌아본 태화산 능선이 밤하늘에 뚜렷이 윤곽들 드러내고 있다.

 

 

통신탑을 지나자,

 

 

갈재고개에 도착한다.

 

<갈재고개(葛峙, 460m)>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에서 공주군 유구읍 불당골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천안 쪽으로 진행하면 유명한 광덕사가 나타나고, 공주방향으로 진행하면 유구읍을 관통하는 39번 국도와 만난다.

 

 

갈재고개에서 460봉 광덕산 갈림길로 오르는 길은 수레길 수준이다.

 

 

갈재고개에서 들머리를 들어서서 널찍한 수레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480봉 광덕산 갈림길이 있는 널찍한 헬기장에 도착한다.

 

<광덕산(廣德山 699m)>

충남 아산시 송악면과 천안시 광덕면의 경계를 이룬 광덕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와 조망이 뛰어난 산으로 정평이 나있다. 온양온천을 지척에 두고 있어 온천산행지로도 널리 알려진 광덕산은 천안.아산.공주의 분기점이자 금북정맥 상의 각흘고개와 갈재고개 사이의 무명봉에서 북쪽으로 갈래 쳐 천안시와 아산시를 가르며 뻗은 산줄기의 최고봉이다. 광덕산은 천안시와 아산시의 경계에 있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천안 광덕산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와 비슷한 일례로 흔히들 태백산 하면 강원도 태백산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태백산 전체면적의 70%가 경북 봉화군 관할이라는 사실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이런 산들은 산행 기점을 기준으로 잡은 탓일까, 광덕산도 산행기점의 거의가 천안시에서 시작된다.

흔히 내포지방이라 일컫는 아산, 당진, 서산뿐 아니라 평택, 천안, 대전 등 충남북 일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이다. 크고 풍후(豊厚)하여 옛날부터 덕이 있다고 하는 광덕산은 난리가 나거나 불길한 큰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있다.

 

480봉 헬기장 한켠에 세워진 이정표.

 

이제 금북정맥의 우측은 천안시 광덕면을 뒤로하고 아산시 송악면으로 접어든다. 천안시를 벗어나 아산시로 접어드니 등로에 표지판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산행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이곳 헬기장까지 이어진 임도를 따라 차량도 들어오고 남쪽으로 시야가 트여 있지만,

한밤중에 조망도 없고 공기도 서늘하여 서둘러 좌측 남쪽 방향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각흘고개를 향한다.

 

 

돌아본 무성지맥 능선 위로 샛별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다.

 

당겨본 샛별(금성)이 마치 달처럼 찍힌다.

 

 

금북길은 잠시 숲으로 들었다가 다시 임도를 만나고,

 

 

395봉 헬기장 도착하여 밝아오는 여명에도 지지않으려는 달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395봉 헬기장 증명.

 

 

 

송전탑을 지나는데,

 

좌측으로 무성지맥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송전탑 아래 이정표.

 

 

후손들이 풍요를 누리고 있는 듯, 묘지가 단정하게 가꿔져 있다.

 

 

310봉을 지나는데 아산시에서 설치한 이정목이 05-01이다.

광덕산 갈림길 헬기장에 05-05가 있었으니, 이제 각흘고개까지 300m쯤 남았다.

 

 

또 가지런한 가족묘지를 지나니,

 

 

각흘고개가 나타난다.

 

<각흘고개(角屹峙, 213m)>

금계령이라고도 하는 각흘고개는, 충남 아산시와 공주시를 잇는 39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 고개 아래에 있는 아산시 송악면 성골마을의 지형이 와우형으로 소가 누워있는 형상인데, 이 고개가 소가 누운 형상 중 뿔이 있는 부분이라 하여 각흘(角屹)이라 불렀다고 한다.

 

각흘고개 표석.

 

<각흘고개의 전설>

충남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 일대에 전해오는 사랑 이야기이자 지명 이야기로, 각흘고개는 유구 금계산과 봉수산 사이 온양으로 가는 길에 있다. 고개가 구불구불하고 험준하여 예로부터 외적에 대항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는데, 각흘고개 전설 충남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에 전해지는 돌고개 전설과 같이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의 원한이 깃든 이야기다.

고려 말엽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겨울날이었다. 이 산중에서 숯을 구우며 살아가던 삼덕이가 잠자리에 들려던 차에, 어디선가 들리는 여자의 비명 소리에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몽둥이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한 여자가 두 남자에게 포박당하고 있었다. 삼덕은 몽둥이를 휘둘러 포박하고 있던 두 남자를 죽이고 여인을 집으로 데려 왔는데, 들어온 여인은 자신이 이성계에 대항한 역적의 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방금 삼덕이가 죽인 두 남자는 포졸이라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놀란 삼덕은 포졸을 산에 묻고 여인은 산속의 굴에 숨겨 놓았다.

며칠 후 또 다른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포졸은 삼덕에게 “도망가는 색시를 보지 못했느냐?”라고 물었다. 삼덕은 태연하게 “색시를 보았는데 남쪽으로 내려갔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에 남쪽으로 내려갔던 포졸들이 다리를 절며 뒤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삼덕은 여인을 굴에서 데리고 나와 집에 머물게 하였다.

세월이 가면서 두 사람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여인은 삼덕을 따라 숯가마에 가고 그곳에서 잠을 자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의 거처가 알려졌는지 포졸들이 삼덕의 집 주변에 매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숯을 구워 내려오는 여인을 발견하고는 포박하려 하자, 삼덕은 짊어진 숯을 팽개치고 포졸들에게 달려들었다. 작대기로 저항하려 하였지만 결국 포졸의 창에 찔리고 말았다. 이를 본 여인이 쓰러진 삼덕에게로 다가가며, “여보, 여보!”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포졸들에게 달려들었다. 포졸은 여인도 칼로 베어 죽였다.

이처럼 두 사람은 이 고개에서 숨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죽은 두 사람이 이 고개를 지키는 혼령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고개를 지키는 문지기로 둔갑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오랑캐를 죽음의 길로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 전설이다.

 

남쪽 유구읍 방향.

 

각흘고개 들머리에서.

봉수산을 향해 각흘고개를 뒤로한다.

 

 

각흘고개 들머리를 들어서자 우측으로 묘지가 나오며, 아산시 송악면 성골마을과 멀리 광덕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각흘고개 주변에는 소(牛)와 관련된 지명이 많은데, '이곳에 각흘(角屹) 와우라 하는 명당이 있다' 하여 전국에서 지관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한바탕 된비탈을 치고 오르면,

 

 

잠시 완만해졌다가는 다시 한번 급경사가 시작되고,

 

 

이내 주능선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 주능선에서 봉수산 방향은 우틀하여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게 된다.

 

 

봉수산 방향을 알리는 표지기들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봉수산 능선 분기점 삼거리에서 일출을 맞이 하는데,

조금 전에 지나왔던 태화산 능선 위로 아침해가 솟고 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하나둘 넘어서 가다 보면,

 

옛날 할아버지의 곰방대일까 아니면 산토끼의 깊은 산속 옹달샘일까!

 

 

393봉 쉼터라 표시되어 있다.

 

 

봉수산이 드디어 시야에 들어오며,

그동안 금북길을 함께하던 송전선로가 오늘도 봉수산으로 산객을 인도하고 있다.

 

좌측으로는 봉수산을 찍고 이어가게 될 천방산으로 이어진 금북능선이 지척이다.

 

 

잠시 후 가야 할 천방산이 좌측으로 보인다.

 

천방산(좌)과 봉수산(우)을 잇는 금북능선 줄기.

 

 

호젓한 산길을 쉬엄쉬엄 가다 보니,

 

 

구만봉이라 표시된 392봉에 도착한다.

 

<구만봉(392m)>

지도상에는 나타나지도 않은 구만봉이라고 이름 붙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무명봉에 구만봉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산아래 마을이 아산시 송악면 구만리라서 그리 붙인 모양이다. 구만리는 용두원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작은 마을로 옛날 구만 명이 피난했던 마을이라 하여 구마니(구만리)라 불려진다고 한다.

 

 

작은 구릉 같은 봉우리들을 넘다 보니 시장끼가 느껴지는가 했더니,


앞서가던 선두들이 등로 우측 바람이 없는 사면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무척 쌀쌀한 날씨라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차 한잔으로 전우애?를 확인한다.

 

먼저 식사를 마친 선두팀들은 서둘러 떠나고,

 

 

쌀쌀한 날씨에 마냥 앉아 늑장을 피우는 것도 힘이 들어,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봉수산을 향한다.

 

 

조그만 봉우리를 넘는데, 봉수산이 아직 1.4km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다.

 

 

식사 후 걷는 완만한 숲길은 산객들에게는 축복이다.

 

 

제법 잘 생긴 소나무 숲을 지나는데,

 

좌측으로 봉수산 찍고 이어갈 금북능선이 계속 함께한다.

 

봉수산이 0.7km 남았다는 표지판에 현 위치가 '373봉 갈림길'이라 표시되어 있다.

 

 

봉수산 오름길.

멀리서 보기에는 만만해 보이던 봉수산도 그리 쉽게는 정상을 보여주지 않을 모양이다.

 

 

길상사 갈림길을 지난다.

 

우측 계곡 쪽에 길상사가 자리하고 있는가 보다.

 

 

봉수산 남봉 도착.

금북길은 이곳에서 급좌틀하여 남쪽을 향하고, 봉수산 정상은 북쪽으로 100m쯤 떨어져 있다.

 

봉수산 남봉 이정표.

 

그래도 오늘 산행에서 제대로 된 정상석이 있는 곳이 봉수산뿐이기에 단체사진 촬영은 봉수산에서 하겠다고 공지까지 했건만, 선두팀은 이미 천방산을 향해 가버린 듯하고 후미팀도 일부만이 봉수산을 향한다.

 

 

봉수산 정상 전경.

 

<봉수산(鳳首山 536m)>

봉수산 갈림길(남봉)에서 100m 떨어져 있는 봉수산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지만, 이번 구간의 주봉으로 예산과 아산 그리고 공주의 3개 군에 걸쳐있다. 봉수산은 봉황새의 머리를 닯았다 하여 봉수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산기슭에는 887년(진성여왕)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봉곡사가 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7년(인조)에 중창하였다. 북쪽에 있는 봉곡사 방향이 왼쪽 날개에 해당되고, 남쪽의 천방산 방향 능선이 우측 날개에 해당되며, 대술면 상황리 갈막 고개가 봉황의 꼬리에 해당된다고 하여 봉수산이 봉황의 머리가 된다.

이 산은 봉황이 남북으로 날개를 펼친 채 동쪽에 있는 광덕산을 향해 날아가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산은 육산으로 등산로는 뚜렷이 잘 나 있고, 비교적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옛날 남편을 기다리다 일생을 마감한 아낙네의 애환이 서린 베틀바위 등이 이 산의 진가를 높여주고 있다고 한다.

 

봉수산 증명.

 

봉수산 정상 이정표.

도고온천이 있는 도고산이 이곳에서 북쪽으로 12.8km라 표시되어 있다.

 

 

봉수산 정상을 뒤로하고 왔던 길로 돌아나가,

 

 

봉수산 전위봉을 우회하며 돌아본 봉수산 모습.

 

바위 옆에 핀 이름 모를 꽃의 이름은!

 

송전탑을 지나며 가야 할 천방산 방향이 시야에 들어온다.

 

 

460봉 오름길에 돌아본 봉수산 방향.

 

잠시 전에 지나온 각흘고개에서 봉수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좌측으로 펼쳐진다.

 

 

밴치가 나란히 놓인 460봉을 지나니,

 

천방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우측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의 방산저수지가 조그마하게 보인다.

 

 

가아할 천방산 방향으로 이어진 금북정맥.

 

능선 좌측 사면은 벌목이 되어 있어서 가야 할 천방산 방향의 금북능선이 뚜렷이 조망된다.

 

 

돌아본 460봉.

 

좌측으로는 금북정맥 능선(송전탑이 지나는 능선)과 광덕산 능선(뒤쪽 희미한 능선)이 켜켜이 쌓여 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몇 개 지나 355봉 정상에 도착한다.

 

연속되는 작은 봉우리를 수없지 지나며 지친 산객들을 위해 주요한 봉우리마다 나무 밴치를 설치해 놓았는데, 이 고장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에 감사한 마음으로 약 13분 정도의 느긋한 쉼을 해 본다.

 

 

탑곡리 갈림길 안부.

 

<탑곡리(塔谷里)고개>

이곳 사람들은 쑥고개라고도 부른다 한다. 탑곡리고개는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와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를 잇는 고개로 탑곡리에 탑이 있어 탑곡리라 부른다고 한다.

 

 

조그만 봉우리를 살짝 우회하여 급경사 오름길을 오르면,

 

 

천방산 능선 갈림길 능선 위에 올라선다.

금북길은 우측 극정봉 방향으로 이어지나, 좌측 50m쯤에 있는 천방산 정상을 향한다.

 

 

천방산 정상.

천방산 정상은 그저 밋밋한 능선의 조금 솟은 곳 정도로 보인다.

주변은 나무가 우거져 조망이 거의 없고, 정상표시도 나무에 매달아 놓은 코팅지가 전부다.

 

 

<천방산(千方山 479m)>

충남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와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천지사방을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천방산은 높이가 479m이며, 화강편마암, 주입편마암, 안구상편마암들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시 최북단에 위치한 산으로서 북쪽의 봉수산능선을 함께 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극정봉과 명우산이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유구천이 흐르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예산군에 속해 있는 방산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천방산에서 바라본 돌아본 봉수산 방향.

 

천방산 정상에서 회장님께서 찍어준 인증.

 

천방산 정상 이정표.

 

 

천방산 정상의 밴치에서 한참 동안 세상 야그를 나누다가 다시 천방산 갈림길로 돌아 나와,

 

 

가파른 천방산 내림길을 내려서니,

 

 

탑곡리 이치리 안부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은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이고, 우측은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이다.

 

 

부엉산(403봉) 정상.

이름이 부엉산이라 혹시 화면 속에 부엉이가 있나 살펴보지만...ㅋㅋ

 

 

400봉 정상.

우리가 가진 개념도에는 이곳을 부엉산으로 표시하고 있다.

 

 

천안시를 벗어나자 이정표가 국립공원처럼 잘 갖춰져 있다.

 

 

350봉쯤을 지난다.

 

350봉이 이정표.

 

 

돌아본 천방산과 봉수산 방향.

 

 

가야 할 354봉.

 

 

벤치가 있는 오지재를 지난다.

 

오지재 이정표.

 

<오지재(소거리 안부)>

부엉산에서 350봉을 지나 뚝 떨어져 아래로 내려오면 나오는 조그만 고개가 오지재이다. 우측으로는 소거리 가는 길이고 좌측은 머그네미 가는 길인데 지도상에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오지재'라 아크릴로 붙여놨다. 머그네미는 오동나무가 많은 골짜기라 하여 유래된 지명이며, 과거에는 오동나무를 머그나무라고도 했다 한다. 또한 소거리는 당거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우명리(牛鳴里)라고도 하며 옛날 소장수들이 이곳에서 소를 놓고 쉬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오지재 이정표.

 

 

354봉쯤을 대충 그냥 지나니,

 

우측 멀리로 가야산도 보인다고!

 

내년쯤에야 오서산을 거처 가야산을 만나게 될듯하다.

 

저기 보이는 저 산이 어릴 때 뛰어놀던 산들인데,

 

 

354봉을 넘어오는 백두들!

 

우측으로 벌목이 되어 있어서 조망을 즐기며 천천히 극정봉을 향한다.

 

 

돌아본 대술면 방산리 방향.

 

우측 대술면 이티리 방향.

 

 

Y자 갈림길에서 좌측 오름길로 가야 한다.

우측 길은 우측 지능선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극정봉 오름길에 돌아본 천방산과 봉수산 방향의 금북능선.

 

당겨본 천방산과 봉수산.

 

 

극정봉 정상.

 

<극정봉(極頂峰 424.0m)>

충남 공주시 유구읍과 예산군 대술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옛날 선인들이 이 산에 와서 나랏일을 걱정했다고 하여 걱정봉이라고도 불린다. 북으로 천방산 봉수산으로 연결되며, 남으로는 설대봉과 차동고개와 연결되어 있다. 천방산의 동쪽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유구천으로 흘러들며, 서쪽 계곡의 물은 화산천으로 흘러든다.

 

옛날에 홍길동이 이 부근에서 무술을 익힐 때 금계산에서 활을 쏘고 그 화살보다 빨리 말을 달려 서쪽에 있는 두루봉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찾다가 앞산 봉우리에 올라와서도 화살이 안 보여 걱정을 하였다 하여 걱정봉이라 불렸다는 예기도 있는데 세월이 흘러 변음되어 지금은 극정봉이라 부른다.

 

또 다른 설은 홍길동과 홍길동 누이에 관한 이야기로, 홍길동과 홍길동 누이가 목숨을 건 내기를 하였는데, 홍길동은 쇠신을 신고 소를 몰고 한양을 다녀오는 것이었고, 누이는 홍길동이 돌아오기 전에 금계산에 산성을 쌓는 내기였다. 홍길동의 어머니는 딸이 성을 다 쌓도록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극정봉에 올라 걱정을 하였다고 하여 걱정봉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난해 지나왔던 한남금북 정맥의 구녀산성에 얽힌 예기와 흐름이 비슷하다.

 

극정봉 삼각점.

 

회장님이 오늘은 무척 심심하신 듯하다.

평소에 가까이 않던 지도를 꺼내 보시고..ㅋㅋ

 

선두팀들의 극정봉 인증.

 

 

이것은 할머니의 곰방대 일까!

 

 

무명봉에서 또 쉼을 한다.

 

 

좌측 사면 방향의 우회 길은 명우산 우회 길이다.

 

 

명우산 정상.

 

<명우산(鳴牛山 368m)>

공주 유구읍과 예산군 대술면의 경계를 타던 마루금이 예산군 신양면으로 바통을 넘기는 3면 경계봉이다.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있는 산으로, 소가 우는 모습을 한 형상처럼 보이는 산이라고 하여 鳴牛山으로 부른다. 또한 우명산(牛鳴山)으로도 불린다. 명우산의 남쪽으로는 절대봉과 국사봉이 있으며, 북쪽은 극정봉과 이어지고 있다. 동쪽으로는 유구천이 흐르고 있으며,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좁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고갯길 비슷한 안부를 지나 극정봉을 향한다.

 

 

우측 이티리 방향.

 

 

수없이 이어지는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는데,

 

앞쪽으로 가야 할 극정봉 너머로도 금북능선에 많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우전방 신양면 방향의 산군!

멀리 희미한 어디쯤에 금북정맥의 최고봉인 오서산도 있으리라.

 

 

등로 좌측에 구덩이가 있다. 금맥을 찾으려 한 것인지!

 

서쪽 대술면 방향.

 

 

아침에는 무척 쌀쌀했는데, 이제는 여름 산행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직도 나목이 봄 채비를 전혀 못하고 있는데, 산꾼들은 벌써 여름을 느끼고 있다.

 

 

새벽에 지나온 태화산까지의 산행으로 금북정맥 빨래판 구간을 마친 줄 알았는데... ㅉㅉ

 

 

절대봉을 오르는 백두들.

 

 

절대봉 정상에 도착하여,

 

절대봉에서 잠시 쉼을 한다.

 

나뭇가지는 아직도 겨울인데, 진달래가 먼저 봄을 알리고 있다.

 

생강나무도 질세라 꽃망울을 달고 있다.

 

절대봉에도 꾀나 깊은 동굴이 파져 있다.

아마도 일제 때 금광을 찾기 위해 파헤친 흔적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절대봉 정상 아래에 동굴이 있다.

 

많이 메워져 있기는 하지만, 꾀 깊이 파 들어 간 듯하다.

 

 

무명봉을 지나고,

 

 

무명 안부도 지나고,

 

 

또 어렵게 봉우리 위에 올라서,

 

어렵게 지고 온 과일들을 나눈다.

 

문득 생각해 보면 주변에 수많은 감사함과 소중함이 함께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손 총무님처럼 빨리 가는 체력을 갖지 못했을까!

나는 왜 서 여사님처럼 지치지 않는 체력과 패활량을 갖지 못했을까!

그래도 나는 두 다리로 굳건히 홀로 서서 자유롭게 걸으며 솔내음에 취하기도 하고,

켜켜이 쌓인 한국의 산하를 바라보며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떨쳐 버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소중함을 느껴본다.

그래 삶은 내 것이고 나 혼자의 것이듯

오늘 산행도 내 몫이고 오롯이 나 혼자만의 소중함이고 감사다!

 

 

우측 신양면 하천리 방향으로 저수지가 보인다.

 

 

이제는 야트막한 언덕만 보아도 경기가 날 지경인데,

 

좌측 명곡리 방향.

 

이런 우회길이 그나마 위안이다.

 

 

우횟길이 끝나며 서재에 도착한다.

 

<서재>

차량이 다닐 정도의 넓은 임도와 연결된다. 서재 우측으로 간이화장실과 하얀 성모 마리아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천주교 묘지가 있는 듯하다. 이곳에서 정맥길은 임도에 내려서자마자 우측 숲길로 진행해야 한다. 만약 그냥 임도를 따라가면 성모 마리아상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돌아 잠시 더 진행하면 바로 마루금과 나란히 진행되므로 우측 능선으로 바로 진입이 가능하다.

 

 

서재에서 이어진 임도가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고, 임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돌아본 우측 후방 조망.

 

 

지나온 금북정맥 봉우리 우측으로 임도가 나란히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이제는 업다운이 거의 없이 편안하게 이어지는 금북길에 마냥 감사할 뿐이다.

 

불모골 고개에서 바라본 좌측 명곡리 방향.

 

<불모골 고개>

불모골이란 옛날에 대장간에서 불쏘시게로 불무질을 하던 곳이라서 불무골이라 하던 것이 불모골로 바뀐 듯하다.

 

백두들이 모처럼 편안한 등로를 걷고 있다.

 

 

275봉을 좌회 하여 지나 내림길로 들어서서 평산신씨 묘지를 지난다.

 

 

서낭당 고개를 지난다

 

 

돌아본 절대봉 방향.

 

가야 할 294봉 방향.

 

좌측으로 명곡저수지와 잔대골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가야 할 금북정맥 능선.

 

돌아본 절대봉 방향.

 

 

우전방으로 차동 휴게소에 외로이 주차해 있는 버스가 보인다.

 

당겨본 차동휴게소.

 

 

돌아본 절대봉 천방산 방향.

 

 

294.2봉 도착.

 

좌측으로 차동고개를 지나 신양으로 이어지는 32번 국도와 새로 뚤린 32번국도 그리고 당진대전간 고속도로가 차례로 보인다.

 

 

등로를 나무로 막아놓았다.

아마도 묘지에 누워있는 후손들의 소행이 분명해 보인다.(참고로 묘지 주인들은 수원김공들로 표시되어 있다)

 

산허리를 깎아 묘지를 만들고, 묘지를 보호하려로 나무를 베어 금북정맥 산꾼들의 길을 막으면 후손이 잘 될는지 모를 일이다.

 

 

직진방향의 정맥길이 갑자기 좌틀하여 내려간다.

아마도 차동고개에 도착한 모양이다.

 

드디어 차동고개 날머리가 보인다.

 

길고 지루했던 금북정맥길 또 한 구간이 마무리 되려 한다.

 

차동고개 날머리.

 

 

차동터널이 뚫리며 차량의 왕래가 끊긴 32번 국도 모습.

 

부지런한 백두들이 서둘러 내려온 이유은 바로..ㅋㅋ

 

다음 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고,

 

자동고개 예산 방향으로 차동휴게소가 보인다.

 

<차동고개(車動고개)>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 경계에 있는 고개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차유령(車瑜岺)으로 기록되어 있고 현지에서는 차동고개라 부른다. 남금강(南錦江)의 지류인 유구천과 북서류의 무한천이 이곳에서 발원하는 두 하천의 분수령이다.


차동고개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이 곳 불왕골에 차서방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가난하여 늙으신 홀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지는 못했지만,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님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드리는 효자였다. 하루는 건강한 어머님이 갑자기 몸져눕게 되어, 차서방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서방은 돈이 없어서, 남들처럼 약을 쓸 수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끝에 별다른 도리가 없어 이튿날부터 지금의 차동고개에 가서 나무를 하여 장에 팔아 어머님 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차서방은 매일 자기 몸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무를 해 팔았다. 그러나 사람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어느 날 어머님을 낫게 해 드려야겠다는 집념에 지친 몸을 끌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져 꿈을 꾸니 하얀 할아버지가 나타나 `지금 네가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열 발자국을 가면 산삼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캐다 어머님께 달여 드리면 나을 것이다`라고 노인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 꿈속에서 본 할아버지가 이른 데로 발자국을 세어 동쪽으로 가 보니 정말 커다란 산삼이 있는 것이었다. 산삼을 캐 가지고 집에 돌아와 정성껏 달여 어머님께 드리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병환이 나았다 한다. 이 일이 있은 뒤 이 고개를 차서방이 산삼을 얻은 고개라 하여 차동 고개라 부른다 한다.

 

 

차동고개에 주차 중인 백두의 애마.

 

차동고개 공주 방향.

 

차동휴게소 모습.

한때 번창하였으나, 당진대전간 고속도로가 생기고 32번 국도 또한 터널로 통하게 되면서 옛 영화를 뒤로한 듯하다.

 

 

지난했던 산행을 마무리하고 버스에 올라,

 

 

가까운 유구읍으로 이동하여,

 

유구읍내 풍경.

 

 

근사한 오토바이도 있고 하여 기대를 잔뜩 하고 들어갔지만,

 

조금 질기긴 했지만 모처럼 소고기를 앞에 두고 "행복하게 ~~~"를 외친다.

 

 

 

 

서울로 향한다.

 

지난 구간에 이어 이번 구간도

빡쎈 금북정맥의 한 구간이었다.

이제 남은 금북정맥의 구간들은 최소한

이번 산행보다는 좀 더 편안한 산행이 되리라 믿는다.

고생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