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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진양기맥 1차(남덕유산~영각재) : 예수 석가 공자님도 어쩌지 못하는 것(?)을 피해!

by 재희다 2019. 9. 29.

산 행 지 : 진양기맥 1차(남덕유산~영각재) 경남 함양군.

산 행 일 : 2019. 09. 28.(토)

산행코스 : 양악호 주차장 ~ 토옥동계곡 ~ 계곡삼거리(월다리) ~ 양악폭포 ~ 서봉(장수덕유) ~ 남덕유산(동봉)

              ~ 중봉 ~ 영각재 ~ 남덕유산 ~ 월성치 ~ 황점마을 (15km, 8시간 소요)

산행참가 : 19백두.

 

<산행지도>

 

지난달에 시작한 팔공기맥 종주에 이어 이번 산행은 진양기맥 종주의 첫발을 내딛기로 한다. 진양기맥은 백두대간 남덕유산(1,507m)에서 분기되어 금원산, 기백산, 황매산 등 우리가 이미 올랐던 산들을 지나 진양호에 이르는 산줄기로서, 낙남정맥과 함께 진양호를 에워싸는 산줄기이기도 하다. 진양기맥은 남강과 황강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진양기맥의 서쪽과 남쪽의 물은 남강으로 흐르고, 동쪽은 황강과 낙동강 본류로 흐른다. 일반적으로 진양기맥의 출발은 영각사에서 남덕유산으로 올라서 출발하지만, 우리는 덕유산의 숨겨진 비경이라 일컫는 토옥동계곡과 장수덕유산 산행을 아우르기 위해서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의 양악저수지 주차장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여러모로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는 '조국(曺國) 사태' 뉴스가 독차지하고 있는 TV를 꺼 버리고는, 치미는 화를 삭이다가 이른 시간에 배낭을 매고는 산행 출발지인 양재로 향한다. 백과사전에도 등재된 '조국(曺國) 사태'란 2019년 8월 조국씨가 문제인 대통령에 의해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후 제기된 여러 논란으로 발생한 사태를 말한다. 조국 후보자 측에서 의혹에 대해 해명은 하였으나 조국 딸이 다녔던 대학교를 중심으로 조국 임명 철회 및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되었고, 조국 일가를 둘러싼 여러 비리의 정황들은 단순한 개인의 비리 수준을 넘어서 사회의 전반적인 신뢰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안 듣고 안 보려고 해도 이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그래도 산행을 하는 시간만큼은 화나게 하는 생각일랑 떨쳐버리자며,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편안한 새 차에 몸을 싣고는 산행지인 덕(德)이 많다는 덕유산으로 향한다.

 

여느 때 같았으면 버스가 출발하며 모든 실내등이 꺼지면 이내 취침 모드로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실내등이 꺼진 상태에서도 스마트폰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다가는 꺼지기를 반복하였는데, 술이 거나하게 된 손 점장이 자장가를 틀려다가 엉뚱한 음악이 틀어지며 발생한 일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이제 백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엉덩이를 붙이기만 하면 잘 수 있는 상태여서 굳이 자장가가 필요치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지 싶다.

 

 

최근에 출고된 차량이어서 그런지 의자가 한결 편안해진 버스에서 한참의 쪽잠을 더 즐기다가,

손 총무님의 알람 소리에 일어나 버스 밖으로 나오니, 주차장 한켠의 시계가 4시 40분을 넘어서고 있다.

 

토옥동계곡 산행의 출발지인 양악저수지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를 하는 백두들.

 

<양악리(陽岳里)>
전북 장수군 계북면에 있는 리(里)로, 해발고도 500~1000m의 높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양악마을, 당저마을이 있다. 양악마을은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옛날 양촌 고을의 고을터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는 동헌터, 옥터, 향고터였다는 자리가 있다. 마을 위쪽에 심방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5층 석탑이 지방문화재로 남아있다. 당저마을에는 동네의 위쪽에 당산이 있는데, 이 당산에는 노송과 바위 그리고 느티나무가 잘 어울려 경치가 좋다. 그리고 이 당산에 큰 절이 있었는데 6·25 때 불타 버리고 지금은 흔적이 없다. 그래서 당산의 밑이라는 뜻으로 당밑이 속말로 댕밑이 되었다고 하며, 한자로 당저(堂底)라고 불린다. 지방문화재 제21호인 계북면 양악탑이 있다.

 

 

양악저수지 주차장을 뒤로하고 토옥동계곡을 향해 산행을 시작하는데,

 

우측에는 '토옥정'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가 있다.

 

<토옥동계곡>
토옥동계곡은 남덕유산(1,507m)과 삿갓봉(1,410m) 사이로 깊숙이 뻗은 비교적 덜 알려진 7㎞ 길이의 골짜기다. 웅장한 규모는 아니어도, 20여 개의 지류와 크고 작은 소, 폭포가 이어지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위골짜기다. '새색시를 태운 가마가 떨어진 곳'이라는 가마소(각시소), 골짜기의 가장 큰 폭포인 지추골폭포(큰폭포·높이 15m)가 이름 높다.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1986년 댐을 막아 양악저수지를 만들면서 댐 하류 계곡은 '바위 바닥이 파여나가고 물이 말라' 경관이 볼품없어졌지만, 지금도 상류 쪽은 오염원 없는 청정 골짜기다. 산이 험하고 가팔라 등산객 출입을 금지해온 덕에 청정 물길이 유지돼 왔다.
토옥동계곡 물길을 따라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터널이 이어지는데, 오를수록 길은 가팔라지고 좁아져 길을 잃기 쉽다. 남덕유산은 거창·함양 쪽으론 경사가 완만하지만, 서북쪽인 장수 쪽으론 급경사를 이루는 지형이다. 산이 깊고 험한 만큼 아픔도 많이 깃든 골짜기다. 삼국시대엔 백제·신라의 경계를 이루며 영토 다툼의 격전장이었다. 수림이 울창해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골마다 숯가마가 들어섰고, 광복 뒤까지 대량 벌목이 자행됐다. 을사늑약(1905년) 때는 호남 일대에서 분연히 일어선 의병들이 왜병들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한국전쟁 땐 빨치산 활동 거점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거창으로 갈 땐 월성재를 넘어 걸어 다녔다고 한다. 거창 읍내 가려면, 하루 한두번 다니는 버스 기다렸다 타고 가는 것보다 월성재로 걸어가는 게 빨랐던 것이다.
토옥동 경치의 시작은 본디 양악저수지 댐 밑 용연정과 용소 일대부터였다. 명주실에 돌을 달아 던지면 실꾸리 두세개가 들어갔다는 깊은 소가 용소인데, 지금은 탁한 물만 고여 있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용소엔 커다란 뱀장어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댐이 생긴 뒤 다 사라졌다. 한자 이름이 빽빽이 새겨진 용소 바위 위엔 마을에 세거하던 동래 정씨들이 지은 정자 용연정이 있고, 그 옆엔 주변(현 저수지 댐 왼쪽 앞)에 있던 심방사 절터의 탑으로 추정되는 아담한 양악탑(고려말 5층석탑·유형문화재)이 서 있다. 탑은 본디 논 가운데 세워져 있었는데, 1970년대 초반 주민들이 현 위치로 옮겼다. 옮길 때 '맨 밑 기단석은 파낼 수 없어 논바닥에 그대로 뒀다'고 한다.

 

 

승용차로 접근이 가능한 마지막 지점인 토옥동 송어횟집 앞을 지난다.

 

 

토옥동계곡을 좌측에 두고 사면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는 백두들.

 

 

좌측 토옥동계곡 쪽에는 철 울타리가 임도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고,

 

 

계곡 분기점 삼거리에 도착하니 출입금지 현수막이 걸려 있다.

토옥동계곡이 2017년쯤에 개방된 것으로 알았는데 아직도 미개방지라니..ㅉㅉ

계곡을 좌측으로 건너는 등로는 토옥동계곡을 따라 월성재로 이어지는 등로이고,

우리는 직진의 우측 등로로 들어서서 서봉으로 오르는 양악폭포골로 가야 한다.

 

 

계곡을 넘는 다리로 들어서던 분들을 불러 세워 울타리를 넘어 양악폭포골로 들어서는데,

옛날 산행기에는 사면길에도 안전시설이 되어있었다는데 지금은 철거되고 보이지 않는다. 조심!!!

 

 

계곡 우측으로 이어진 등로의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좋다.

뚜렷이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다가 계곡을 좌측으로 건너는데, 실수다.

계속 계곡 우측을 따랐어야 했다!!

 

 

등로가 우측 사면 위로 이어지며 희미해진다.

계곡 좌측 능선으로 오르면 고생한다는 산행기를 읽었던 기억이 나서 일행들을 잠시 쉬게 하고는,

주변에서 놓친 등로를 찾아 아래위로 오르내리며 30여 분을 헤맨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 위쪽으로 갔던 창병 대장을 불러서 등로의 상태를 듣고는,

다시 토옥동계곡으로 돌아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혹시나 싶어서 계곡 우측으로 건너와 보니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기에,

기다리던 분들을 불러서 계곡을 건너오게 한다.

 

 

 

계곡을 우측으로 건너서 뚜렷한 등로를 따라 다시금 서봉을 향하며,

야간산행에서는 등로를 놓치면 고생이 필수라는 경험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따르던 등로가 다시 계곡을 좌측으로 건넌다.

기존에 그렸던 등로는 이곳에서도 계곡 우측을 따라 오르게 되어 있지만,

뚜렷한 등로가 좌측으로 이어져 있으니 그냥 따라가 볼 수 밖에는!

 

지계곡을 좌측으로 건너고,

 

연이어 나타나는 또 하나의 계곡을 좌측으로 건넌다.

즉 두 개의 계곡을 연이어 좌측으로 건너면,

 

 

다시 뚜렷한 등로가 계곡 좌측으로 이어져 있다.

 

 

우측 아래로 양악폭포쯤이 내려다 보이는데,

양악폭포로 내려가 보고 싶지만 알바로 30여분을 지체한 상태라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는지 깨끗한 청정 계곡이 길게 이어지고,

 

 

등로는 계곡 좌측 사면을 따라 뚜렷하게 이어진다.

 

 

내려다본 양악폭포골 모습.

 

 

골짜기를 우측으로 건너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제대로 된 쉼을 한다.

 

 

 

 

짧은 쉼을 뒤로하고 우측 사면으로 진행하나,

또 다른 지계곡을 우측으로 건너게 되고,

 

 

이내 우측 지능선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된다.

 

 

 

지능선 위로 올라서서 능선 위쪽으로 가파르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면,

 

 

좌전방으로 가야 할 1435봉 헬기장봉에서 분기된 지능선이 살짝 조망된다.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덕유산 주능선 방향에서 아침 햇살이 살짝 비춰오고,

 

가파른 오름길에도 그다지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오르는 백두들.

 

 

능선 조망바위에서 돌아본 시루봉 방향.

시루봉은 덕유산 주능선의 삿갓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지능선에 있는 봉우리다.

 

향적봉 방향.

 

무룡산과 삿갓봉 방향.

 

넓게 본 덕유산 주능선과 향적봉 방향.

 

 

조망바위를 뒤로하고 잠시 더 올라서면,

 

 

가야 할 1435 헬기장봉이 올려다 보이는 전망봉에 오르게 된다.

 

전망봉에서 향적봉 방향의 덕유능선을 배경으로.

 

 

시루봉과 적상산 방향.

 

무룡산 방향.

 

월성재 방향.

 

살짝 당겨본 삿갓봉과 월성재 방향.

 

 

 

 

산죽으로 덮인 다소간 완만해진 능선길을 따르면,

 

 

선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능선 초지를 지나고,

 

 

다시 짧은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면,

 

 

구름이 감싸고 있는 덕유산 주능선이 조망되는 절벽 날등 위에 올라서게 된다.

 

가야 할 능선 방향.

 

헬기장이 있는 1435봉 방향.

 

향적봉 방향.

 

시루봉 방향.

 

 

빼곡한 관목이 덮고 있는 가파른 능선길을 잠시 더 오르면,

 

 

장수덕유산(서봉)에서 장수군 계북면 방향으로 뻗은 지능선 봉우리에 도착한다.

지능선 갈림봉에서 본 서봉 방향의 1435봉 모습.

 

 

남서쪽 수군 방향.

 

서쪽 안군 방향.

 

서북쪽 주군 방향.

 

이곳에서 서쪽 방향으로 '무진장(無盡藏)'을 제대로 조망한다.

'무진장(無盡藏)'이란 '덕이 넓어 다함이 없음'을 뜻하는 불교 용어다. '엄청나게 많다'는 이 말 뜻과는 관계없이, 전북 내륙 산간 오지로 꼽히는 세 고장 무주·진안·장수를 함께 이를 때도, 흔히 앞 글자를 따 '무진장'이라 표현한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사용해 온 '무진장'의 본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장수군 방향을 배경으로.

 

 

 

갸아 할 1435봉을 배경으로.

 

 

본디 잠시 더 진행하여 헬기장이 있는 1435봉에서 아침식사를 예정했으나,

알바와 가파른 오름길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능선갈림봉 아래에서 이미 늦어버린 아침식사를 한다.

 

지난밤의 음주상태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손 점장도 함께 아침식사를 마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산죽이 덮고 있는 거친 능선길을 더듬어 오르면,

 

 

헬기장이 있는 1435봉에 도착한다.

 

 

 

 

1435봉을 지나자 서봉 방향의 능선길은 다소간 완만한 모습이지만,

 

 

완만한 능선을 따라 또 다른 헬기장을 지나는데, 앞쪽으로 뾰족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마도 서봉 직전의 선바위가 있는 봉우리인 듯하다.

 

 

 

노루궁뎅이버섯 발견.

 

산행 중에 노루궁뎅이 버섯 몇 개를 채취했는데,

뒤풀이 때에 불판에 구워 놓았더니 별다른 맛은 없다.

 

 

구조목 1030번을 지나고,

 

빨알간 열매가 예쁘게 열린 나무를 지나고,

 

 

우측 아래로 참샘으로 이어질 듯한 갈림길에서 좌측 오름길 방향으로 진행하면,

 

 

작은 너덜지대를 지나게 되고,

 

 

이내 서봉 아래의 육십령 방향 대간길에 접속하게 된다.

 

 

육십령 방향 대간 능선에는 부지런한 부부 산꾼이 쉼을 하고 있다.

 

 

장수덕유/서봉 도착.

 

<서봉(西峰)/장수덕유(長水德裕, 1,492m)>
덕유산 동엽령에서 육십령까지를 남덕유로 부르고, 남덕유의 주봉이 장수덕유산(서봉, 1,492m)이다. 남덕유는 무룡산, 삿갓봉, 남덕유산, 장수덕유산(서봉), 할미봉으로 이루어진다. 옛날에는 남덕유산 또는 동봉을 '봉황산'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했으나 최근에는 장수 사람들이 서봉을 장수덕유라 부르며 남덕유의 주봉을 장수덕유/서봉이라 주장하고 있다. <문헌비교>와 <산경표>에는 백두대간은 대덕산을 경유, 덕유삼봉-백암봉-봉황산을 거처 육십령으로 간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남덕유산인지 장수서봉인지 가늠할 필요가 있다. 남덕유산는 암봉으로 날카롭다면 북덕유는 전형적인 육산으로 매우 유순하다.

 

서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남쪽 경남도학생교육원 방향 조망.

 

동쪽 남덕유산 방향.

 

서봉 정상부에는 작은 삼각점이 놓여 있다.

 

서봉에 도착하는 백두들.

 

드뎌 지난밤의 술기운에서 깨어난 듯.

 

 

 

 

배탈로 몹시 힘들게 산행을 이어오신 회장님도 도착하여,

 

장수덕유/서봉 정상 인증을 남긴다.

 

 

서봉 인증과 아울러 진양기맥 출발 인증도 남덕유가 아닌 장수덕유에서 대신한다.

 

 

남덕유산을 향해 서봉 헬기장을 지난다.

 

구름이 가려서 조망이 없는 덕유산 주능선 조망은 조망 안내도로 대신한다.

 

 

서봉을 뒤로하고 남덕유산을 향하는 백두들.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서고,

 

 

 

 

다시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면,

 

 

서봉과 남덕유산 사이의 완만한 안부를 지나게 되고,

 

 

 

남덕유산 우회로 갈림길에 도착한다.

 

 

 

갈림길 삼거리에서 과일을 나누며 쉼을 하고는 남덕유산에서 남령으로 진행하는 팀과,

남덕유를 우회하여 월성재에서 황점마을로 하산하는 팀을 구분하여 진행키로 한다.

 

 

남덕유산 정상을 향하여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다가,

 

돌아본 서봉 모습.

 

 

남덕유산 직전의 덕유 주능선에 접속하는 공터 갈림길을 지나고,

 

 

남덕유산 정상부에 도착하며,

 

돌아본 서봉 방향.

 

남덕유산 정상의 이정표.

 

 

남덕유산 정상에서,

 

<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원촌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남덕유산은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 남쪽에 위치한 덕유산 제2봉으로, 금강, 남강, 황강이 이 산에서 발원한다. 산에는 신라 헌강왕 때 심광대사가 창건한 영각사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봉황산(鳳凰山) 혹은 황봉(黃峯)이라고 하였다. 『여지도서(보유)』(안의)에 "황봉은 덕유산에서 남쪽으로 달려 나와 이 산봉우리를 이룬다. 관아의 서북쪽 65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대동지지』(안의)에는 "봉황봉(鳳凰峯) 즉 덕유산 동쪽 지맥은 서북쪽 70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1872년 지방지도』(안의)에 현의 북쪽에 황봉이 묘사되어 있으며 산에 영각사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이를 통해 고지도에서도 황봉·봉황산·봉황봉으로 지명을 혼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리산 다음으로 넉넉하고 덕이 있다고 하여 덕유산이라고 하고, 덕유산의 연봉들 중,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다고 하여 남덕유산이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이 산하에 와서 산을 보고는 크고 덕이 있는 산에서 싸울 수 없다 하여 퇴군했다고도 전해진다.

 

진양기맥 출발 인증을 남긴다.

 

진양기맥(晉陽岐脈)은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남덕유산(1,507m)에서 갈라져 나와 남강과 황강을 가르면서 진주까지 이어지는 163km의 산줄기다. 진양기맥이라는 이름은 남강댐에 의해 생긴 진주의 진양호(晉陽湖)에서 비롯되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법칙에 따라 남강과 낙동강의 합수점인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방향의 산줄기를 따라야 하는 것이 정석이나, 한우산에서 남쪽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금원산(1353m), 기백산(1331m), 황매산(1108m), 한우산(835m), 자굴산(897m) 등을 지나며 남강댐 부근의 진양호 공원에서 끝이 나는데, 중간에 정수지맥, 우봉지맥이 분기한다.

 

가야 할 진양기맥 남령 방향은 구름에 가려있고,

 

덕이 많다는 덕유 주능선도 구름 속에 숨어버렸다.

 

 

진양기맥 능선인 영각사 방향 등산로가 정비공사로 임시폐쇄 중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양기맥 출발은 하여야겠기에 우측으로 돌아서 남령 방향 진양기맥 능선으로 들어선다.

 

 

우회길로 들어서서 올라오는 포즈를 잡아보는 권 형님들!

 

데크목 계단을 내려서서 구름에 가려있는 중봉을 향한다.

 

 

구름에 가려있던 중봉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앞서간 백두들이 돌아오고 있다.

중봉을 지나 영각재로 내려서다가 공사현장에 가로막혀 돌아오는 길이란다.

 

 

남령 방향의 진양기맥은 다음 산행으로 미루고, 다시금 남덕유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남덕유산으로 돌아가는 백두들.

 

 

남쪽 함양군 서상면 방향 조망.

 

 

다시금 현수막을 넘어서 남덕유산 정상으로 돌아 나오는 백두들.

 

진양기맥 능선 남령 방향.

 

 

마침 정상에 홀로 오른 산객에게 부탁하여, 새로이 진양기맥 남덕유산 인증을 남기고,

 

 

남덕유산을 뒤로하고 월성재로 향한다.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면,

 

 

남덕유산 우회로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덕유능선을 따라 월성재로 향하다가,

 

 

우측 황점마을 방향으로 조망이 트인 조망처가 나온다.

 

삿갓봉 방향의 덕유능선 조망.

 

 

월성재로 향하는 백두들.

 

 

돌아본 남덕유산에서 이어지는 진양기맥 능선 모습.

 

 

앞쪽으로 뾰족한 봉우리가 내림길의 산객들을 위협하고,

 

월성재를 향해 동엽령 방향으로 덕유능선을 따른다.

 

 

다행히 월성재 직전의 봉우리를 좌회하여 내려서면,

 

 

우측 황점마을 방향과 좌측 양악리 방향 갈림길이 있는 월성재에 도착한다.

 

월성재 이정표.

 

월성재에서 배낭털이를 하며 잠시 쉼을 하고,

 

 

우측 황점마을 방향 내림길로 들어선다.

 

 

 

작은 옹달샘의 물맛도 보고,

 

 

황점마을로 이어진 널찍한 내림길 등로를 따라 내려간다.

 

 

 

전형적인 육산의 등로임에도 나무 계단길이 나오고,

 

 

황점마을이 2.2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면,

 

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가 나온다.

 

 

 

수레길 수준의 널찍하고 완만한 등로를 따르면,

 

 

다시 또 계곡을 넘는 교량이 나온다.

 

 

돌아본 나무다리 모습.

 

 

널찍한 등로를 유유자적 내려서는데,

 

우측의 계곡물도 널찍한 반석을 휘감으며 유유히 흘러내린다.

 

 

 

월성리 황점마을 날머리 도착.

 

월성리(月星里)는 북상면의 남서쪽 끝에 자리하여 전라북도와 함양군 서상면에 맞닿는데, 월성, 내계, 심동, 답동, 황점 다섯 마을이 있다. 그중 황점(黃店) 마을은 봉황산(鳳凰山) 밑에서 쇠를 만드는 점(店)이 있으므로 황점이라 했다고 한다.

 

 

여름철 놀기 좋아 보이는 계곡을 건너면,

 

 

황점마을 주차장이 나오며 홀로 서 있는 빨간색 버스가 우리가 타고 온 버스인 줄 알았는데,

다가가서 보니 아니다!

 

 

남령 방향에서 내려오는 버스에 올라서,

 

 

황점 마을회관 앞에서 먼저 도착한 분들을 태우고,

 

 

장수군 장계면 소재지로 이동하여 목감을 하고,

 

날씨가 화창하게 개여서 주변 조망이 너무나 깨끗하다.

 

 

오리탕이 맛있다는 청기와집가든으로 이동하여,

 

 

오리구이로 푸짐한 뒤풀이 시간을 갖는다.

 

 

 

1시간 경과!

 

 

 

머루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청기와집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밟은 거리야 몇 걸음 안 되지만 이제 진양기맥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언젠가는 진양호를 내려다 보고는 진주에서 뒤풀이를 가지게 되리가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갈 것이기에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모든 결정은 미래를 살아갈 세대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하루속히 모든 분들이 이성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모든 사항을 스스로 판단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올 가을 단풍산행에 대한 기대를 품고 오늘을 견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