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9년

지리산 태극유람 8차(왕시리능선) : 노고단 문수대에서 일출을 맞으며 바라본 왕시리봉 !

by 재희다 2019. 10. 27.

산 행 지 : 지리산 태극유람 8차(왕시리능선) 전남 구례군.

산 행 일 : 2019. 10. 26.(토)

산행코스 : 성삼재휴계소 ~ 노고단대피소 ~ 화엄사계곡 전망대 ~ 문수대 ~ 왕시리능선 ~ 왕실봉 ~ 질매재

              ~ 질등 ~ 문바우등 ~ 느진목재 ~ 왕시리봉 ~ 파도리 (19km, 8시간 40분 소요)

산행참가 : 18백두.

 

<산행지도>

 

지리산의 왕시리봉능선은 노고단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 꾀나 우람한 왕시루봉을 솟아 놓고는 '왕의 강'에 발을 담그는 능선으로, 서쪽은 문수골, 동쪽으로는 피아골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이다. 노고단에서 남쪽으로 나란히 뻗어내린 형제능선과 왕시리능선이 있는데, 지난 2017년 가을에 형제능선을 걸은 다음 2018년 봄에 왕시리능선을 걸으려고 계획했으나, 이러저러한 연유로 몇차례 연기를 거듭하다가 드디어 무르익어가는 가을에 왕시리능선을 걷게 되었다.

본디의 계획은 성삼재에서 노고단고개를 넘어서 돼지령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비목갈림길이라 불리는 곳에서 우측 왕시리능선으로 진입하려 했다. 하지만 왕시리능선에서 문수대를 왕복하는데 1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어, 산행시간을 줄이고자 들머리를 형제능선 분기점으로 바꾸어 노고단 남쪽 사면길을 따라 문수대을 거쳐서 왕시리능선으로 접속하기로 했다.

 

최근 몇 차례 우리 애마를 몰았던 기사님은 성격도 활달하고 운전실력도 뛰어난 편이었던데, 무리한 배차 때문인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애마가 매끄럽지가 않다. 옆자리의 총무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지 잠에서 깨어나 기사분에게 이런저런 예기를 건네보는데 시계를 보니 도착할 시간이 지나고 있어서, 스마트폰 지도를 켜 보니 버스는 달궁 근처를 지나고 있다. 서울에서 네비를 찍으면 구례를 거쳐 성삼재로 오르는 코스를 추천하는데, 어쩐 일인지 남원을 거쳐서 인월 방향으로 돌아서 성삼재로 향하고 있다. 달궁에서 정령치 방향 갈림길을 지나 성삼재로 오르는 길도 만만치가 않아서 급커브를 올라갈 때면 어김없이 기어를 바꾸는 쇳소리를 들어야 했다. 또한 간밤에 빗방울이 뿌렸는지 노면은 젖어있고 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라, 그저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조바심을 내는 사이에 버스는 기상시간을 넘긴 시간에야 안개 자욱한 성삼재휴게소에 도착하였고, 뜬눈으로 불안해하던 백두들은 서둘러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어제까지도 다소 포근한 가을 날씨였지만, 간밤부터 기온이 내려간다는 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백두들의 산행 복장이 갑자기 겨울산행 모드로 바뀌었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버스 문을 나서니,

랜턴 불빛 조차도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도 분간이 어렵다가는,

 

한바탕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안개가 흩어지면서 주변이 살짝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늘 그렇듯이 부지런한 산꾼들에 뒤섞여서 성삼재휴게소를 뒤로하고 노고단 대피소를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등로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어서 비가 내렸는가 생각했지만,

안개가 나뭇잎에 부딪히면서 아파서 흘린 눈물이 등로를 흥건히 적시고 있다.

 

 

앞쪽 노고단 방향으로 조각배를 닮은 그믐달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별빛을 가린 안개가 달빛을 가리기에는 조금 부족했던 모양이다.

 

 

따르던 임도를 두고 지름길인 계단길로 들어선다.

노고단 아래의 문수대 방향 들머리부터 랜턴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일출시간에 맞추기 위해 우회하는 임도를 따라서 산행시간을 늘려야 하는데,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천천히 진행하자고 신신당부를 드렸음에도 평상시의 속도대로 진행하면서도 지름길로도 들어선다. 못 말리는 백두들!

 

 

계단을 따라 다시 임도에 올라서서 무냉기를 지나자, 노고단 대피소로 이어지는 지름길 계단이 나온다.

함께 가던 창병 대장은 급한 볼일을 해결해야 한다며 지름길로 들어서고,

손 점장과 둘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늘려 보려고 우회하는 임도로 들어선다.

 

 

임도를 따라 우회하니 거리는 700m, 시간은 10여분 정도 더 걸리고,

노고단 정상부가 보이는 노고단대피소 직전에서 지름길과 다시 합류하게 된다.

 

 

노고단 대피소는 우측의 취사장만 불을 훤히 밝힌 채 북적이고 있다.

 

 

부지런한 산꾼들로 북적이는 노고단대피소 취사장에서 백두들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려,

 

돌아본 종석대 방향.

 

 

노고단고개 방향이 아닌, 임도를 따라 노고단 아래 화엄사계곡 전망대로 향한다.

 

 

화엄사계곡 전망대 도착.

 

전망대 갈림길에서 문수대와 왕시리능선으로 가야 하는 우리는 우측의 노고단 송신소 방향으로 가야 하고,

노고단고개를 지나 피아골삼거리로 가는 분들은 좌측의 임도를 따라 노고단고개로 가야 한다.

 

 

이곳 전망대는 좌측 형제능선과 우측 차일능선 사이의 화엄사계곡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본 남쪽 화엄사계곡과 구례 방향 조망.

 

서쪽으로는 종석대(우)에서 남으로 뻗은 차일능선이 조망되고,

 

화엄사계곡 좌측으로는 형제봉능선이 듬직하게 내려다보이고,

 

형제능선 너머 좌측으로는 가야 할 왕시리봉도 보인다.

 

KBS 송신소가 자리한 노고단 위로는 미인의 눈썹을 닮은 작은 그믐달이 매달려있다.

 

 

전망대에서 종석대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남기고는,

 

 

오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피아골의 단풍이 궁금한 분들은 좌측의 임도로 들어서서 노고단 고개로 향하고,

 

왕시리능선의 곰이 보고픈 분들은 우측의 KBS 송신소 방향 임도로 들어선다.

그리 밝지는 않아도 랜턴을 켜지 않고도 충분히 사물이 분간되는 원하던 딱 그런 시점이다!

 

 

지그제그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오르면,

 

좌측으로 노고단고개가 올려다 보이고,

 

뒤쪽으로는 종석대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

종석대 우측 아랫 편에는 산행 출발지였던 성삼재휴게소도 가늠된다.

 

 

KBS송신소 직전에 우측 울타리를 넘어서 문수대 방향으로 들어서면,

 

앞쪽으로 가야 할 왕시리능선의 문바우등과 왕시리봉이 멋지게 조망된다.

 

울타리를 넘어서 문수대(문수암) 방향으로 들어서는 백두들.

 

남쪽으로 문수골을 가운데 두고 왕시리능선과 형제능선이 나란히 조망된다.

 

 

거센 바람에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초지를 가로질러 KBS송신소 울타리 방향으로 진행하면,

철망 울타리 옆으로 뚜렷한 등로가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문수암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무척 거칠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뚜렷하고 양호하다.

이 정도라면 단풍팀들도 함께 왔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좌측 위로는 바위 절벽이 이어져 있고,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나무들은 벌써 잎사귀를 떨구어 버리고는 앙상한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산죽밭 사면을 따라 이어진 등로를 따르는데,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다.

 

 

지리산 남부능선 너머의 동쪽 하늘이 붉은 황금색으로 변하더니,

 

세상의 온갖 잡귀들을 쫓아버리려는 듯 밝은 빛이 하늘로 비춰지고,

 

그 무엇보다도 밝은 빛덩어리가 지리산 남부능선을 박차고 오른다.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의 이름을 딴 문수대를 찾아가다가,

일체의 잡귀를 일소하는 태양을 맞이하는 백두들.

 

지혜를 찾아 문수암 가는 길에 본 일출!

 

아침 햇살을 받은 가야 할 왕시리능선이 그 우람한 위용을 드러내고,

 

가야할 문바위등과 왕리리봉이 우리의 용기를 한껏 북돋운다.

 

문수대로 향하다가 본 일출과 왕시리봉!

 

왕시리봉을 배경으로.

 

 

 

세월에 침잠하던 우리의 용기를 다시금 일깨우는 왕리시봉!

 

 

멋진 일출과 왕시리봉의 모습을 뇌리에 새긴 채 문수대로 향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왕시루봉이 시선을 부여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우측 아래의 왕시리능선과 형제능선 사이의 사면이 아침햇살을 받아 온통 불타오르고 있다.

 

 

법으로는 정해 놓지 않은 길로 접어들어, 황홀경에 취해서 20여분쯤을 진행하다가,

'거 뉘 계지는지요?' 스님 계시면 매롱!!!

 

문패에 '등산로 아님'이라 적힌 문수대 아래에 자리한 문수암 입구가 나온다.

돌담이 출입구임을 표시하고, 자라난 구상나무가 사천왕상을 대신하는 문수암 입구를 조용히 들어서니,

 

 

노고단 남쪽의 문수대와, 그 아래에 자리한 구도자 수도처인 너와지붕의 문수암이 나오는데,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라던 말이 떠올라 고도계를 보니 1,343m를 표시하고 있다.

 

 

예로부터 지리산에는 전망이 좋고 기도빨이 센 기도처가 있는데, 호사가들은 이를 '지리산 십대(智異山 十臺)'라고 일컫는다. '대(臺)'란 '높은 언덕의 전망이 좋은 곳'으로 지기(地氣)가 뭉친 절벽에 전망이 좋고 대개 석간수가 흘러 암자터로도 적합한 곳이다. 지리산에 산재한 십대(十臺)는 일반적으로 문수대, 종석대, 묘향대, 서산대, 무착대, 향운대, 문창대, 영신대, 향적대, 금강대 등을 일컫는데, 이곳들을 올라야 지리산을 제대로 안다고 한다. 이곳 노고단 주변에도 종석대, 만복대, 집선대, 문수대, 청련대 등 이름난 곳들이 많다. 이런 곳들은 모두 풍광이 좋을 뿐만 아니라 기운이 모인 곳이라 수도처로도 알맞은 곳이다.

 

문수암은 노고단 남쪽 사면의 50m가 넘는 아찔한 벼랑 문수대 아래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옛부터 육산에는 바위가 있는 곳이, 골산에는 부드러운 흙이 있는 곳이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 했는데, 문수암은 육산인 지리산의 바위 벼랑 아래의 부드러운 대지에 터를 잡았으니 애써 명당이라 말할 필요조차 없고, 지금도 화엄사의 스님이 이곳에서 수도 중이라 한다.

 

이곳에 암자가 처음 들어선 건 1803년 경 화엄사의 초운대사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자세한 내력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 고요한 암자도 지리산의 아픈 역사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한다. 문수대는 항일 의병 운동의 본거지였는데, 문수대가 역사에 드러난 건 구한말 지리산 일대에서 일어난 의병 활동 때문이다. 한때 의병부대가 1700명에 달했던 의병장 김동신이 이곳 문수대 일대를 근거지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연곡사에서 순절한 의병장 고광순과 피의 맹세를 한 김동신은 영호남의 여러 군을 돌아다니며 의병 활동을 전개했고, 두 차례에 걸쳐 지리산에 들어왔었다. 1907년 9월 18일, 화개를 출발한 김동신 부대는 반야봉을 거쳐 이곳 문수대로 왔다. 다음 날 문수골 아래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에서 하룻밤을 머문 후, 그 다음날 새벽 구례읍을 습격해 읍내를 장악했다. 화개에서부터 김동신을 추격하던 일본군은 의병장 고광순 부대가 진을 치고 있던 연곡사를 기습 공격해 불태운 후, 이곳 문수대마저 불태웠다. 김동신의 의병 투쟁은 1908년 6월 6일 대전 순사대에 그가 체포되자 막을 내리게 된다. 이렇게 기를 쓰고 찾아도 쉬이 찾기 힘든 문수대마저도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비켜나 있지를 못하였다니, 새삼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문수암 앞마당에서 바라본 일출.

 

 

노고단의 정기를 듬뿍 받으며 문수대 문수암 앞에 선 백두들.

 

 

 

인기척이 없는 오두막은 저 아침햇살이 찬란히 비추지 않았다면 오히려 짙은 적막감에 뒤덮여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이제 발길을 돌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쥔장의 허락도 받지 않고 문수암를 뒤로한다.

 

 

형제능선에서 문수대까지의 등로는 비교적 뚜렷하고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는데,

문수대에서 왕시리봉능선으로 접속하는 등로는 희미하고 흔적을 찾기조차 만만치 않고,

 

거친 등로는 그나마 양반이고 거의 길의 흔적이 없는 곳도 있다.

 

 

그래도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 가야 할 방향만 잡고서는 희미한 발자욱의 흔적을 더듬으며 진행한다.

 

 

거친 등로를 더듬는 와중에서도 좌측 멀리에서는 왕시리봉이 어서 오라 응원해 준다.

 

그래 잠시만 기다려라 왕시리봉아!

 

 

흔적조차 희미한 너덜지대를 만나면,

 

가야 할 방향만 잡고서 잡목들을 헤쳐 나아가고,

 

 

난마처럼 얽혀있는 넝쿨들과 관목들의 태클을 뿌리치며 진행하면,

 

쓰러진 나무둥치 아래로 낮은 포복을 하여 지나야 하는 곳도 나오고,

 

 

축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작은 공터를 만나서는, 잠시 목을 축이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사면을 뒤덮은 산죽밭 사이로 이어진 등로를 잠시 따르면,

 

 

 

동작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왕시리능선에 접속하게 된다.

이 능선은 노고단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 우람한 왕시리봉을 솟아 놓고는 '왕의 강'에 발을 담근다.

이곳에서 좌측 오름길은 돼지령으로 이어지고, 왕시리봉 방향은 우틀하여 능선을 따라 내려서게 된다.

 

왕리시봉 능선으로 들어서서 돌아본 지리주능선 방향의 문수대갈림길 지점.

 

 

왕시리능선의 등로는 뚜렷하여 우려와 달리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육산 능선에 빚어놓은 듯한 작은 암봉을 좌회하여 지나게 되고,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는 불무장등이 우람하게 조망된다.

 

돌아본 노고단 방향.

 

 

좌후방에서는 반야봉쯤이 내려다보고 있고,

 

왕시리능선의 멋진 단풍을 기대했는데,

나무들이 벌써 잎사귀를 떨구어 버리고는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서 약간은 아쉬운 마음도 든다.

 

 

또다른 작은 바위 암봉을 우회하는데,

주변에서 더 높은 봉우리가 보이지 않아 지도를 조회하니 왕실봉쯤이다.

 

주변에 어떠한 아무런 표식도 없고, 잡목으로 오를 수도 없는 왕실봉(1,263m) 옆에서,

노고단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겨둔다.

 

 

능선에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마땅한 식사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왕실봉 남쪽 능선에는 북서풍이 불지 않아서, 등로에 식당을 마련하고 아침식사를 한다.

 

 

 

간단히 아침 요기를 때우고는, '곰 주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왕실봉을 뒤로하고 질매재로 향한다.

 

 

육산 능선을 점령하고 있는 바위 병사들을 만나면,

 

바위들을 우회하여 지나고..

 

 

올 가을 밟은 흔적이 없는듯한 낙엽이 덮인 능선 등로를 따르면,

 

키높이의 산죽밭도 지나게 된다.

 

 

고도를 낮추자 나무들이 단풍을 매달고 있고,

 

 

질매재가 가까워지며 주변의 단풍은 절정을 이루고 있다.

 

 

질매재(1,082m) 도착.

좌측은 피아골대피소, 우측은 문수리 신율마을로 산길이 이어지는 곳인데,

 

우측 문수리 신율마을 방향으로는 길이 뚜렷하고 '곰 주의' 현수막도 걸려 있고,

 

좌측 피아골대피소 방향도 다소 희미하지만 길 흔적은 뚜렷하나,

막상 들어서면 이내 등로의 흔적이 희미해져 방향만 잡고 진행해야 한다.

 

 

질매재를 뒤덮고 있는 산죽을 헤치며 질등으로 향한다.

 

 

 

질등 오름길의 단풍은 더욱 곱게 물들어 있고,

 

완만한 오름길을 따라 오르면,

 

뒤쪽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왕실봉과 지리주능선이 가늠되고,

 

 

최근의 잦은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이 등로를 막고 있어서 진행을 더디게 한다.

 

 

 

 

작은 암봉과 커다란 바위들이 뒹굴고 있는 암릉길이 나오며,

 

 

등로는 더욱 짙은 단풍 사이로 이어지며,

잡목으로 뒤덮인 암봉인 질등(1,145m) 정상은 우회하여 지난다.

 

 

 

질등 우회길에서 녹색 이끼가 덮힌 바위와 빠알간 단풍이 멋들어진 등로 좌측에 질등전망대가 있다.

 

질등전망대에서는 왕시리능선이 분기된 노고단과 지리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살짝 당겨본 노고단과 반야봉 방향.

 

 

전망대를 뒤로하고 내려서는 등로는 절정의 단풍길이다.

 

 

 

왕시리능선의 가을 단풍!

 

 

단풍터널로 빨려드는 백두들.

 

 

 

바위와 산죽과 단풍이 절묘한 왕시리능선!

 

 

젖은낙엽이 너무 좋은 등로!

 

<젖은낙엽(落葉)>

일본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들이 정년을 맞이할 즈음에 나온 말로, 10여 년 전 일본에서 유행했던 '누레오찌바'란 말을 한국말로 '젖은낙엽'으로 번역하는데, 요즘의 의미로 보면 삼식(三食)이쯤으로 보면 된다. 구두나 몸에 붙으면 쉽게 떼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퇴직 후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남편을 빗댄 말로, 제대로 떨어지지도 않으면서도 쓸모는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이 시리즈와 관련하여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젖은 낙엽 자기 진단"을 소개해 본다.

1. 깨우지 않아도 혼자서 일어난다.

2. 스스로 이불을 펴고 갠다.

3. 라면, 달걀 프라이 말고 할 수 있는 요리가 있다.

4. TV 안 보고도 혼자 집에서 잘 논다.

5. 밥을 지을 줄 안다.

6. 설거지를 할 수 있다.

7. 청소기 사용법을 안다.

8. 세탁기를 쓸 줄 안다.

9. 빨래를 널고 갤 수 있다.

10. 가끔 화분에 물을 준다.

11. 단추를 달 줄 안다.

12. 스스로 구두를 닦을 수 있다.

13. 목욕물을 맞출 수 있다.

14. 혼자 장보기를 할 줄 안다.

15. 쓰레기 분리수거 일을 기억한다.

16. 속옷, 양말, 양복이 어디 있는지 안다.

17. 집안의 중요한 서류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18. 동네 세탁소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19. 화장지를 값싸게 파는 곳을 알고 있다.

20. 쌀, 야채 등의 가격을 알고 있다.

젖은낙엽 신세를 면하려면 위의 스무 개 문항 중에서 "그렇다"는 답이 열일곱 개는 돼어야 하고, 열개가 안되면 젖은낙엽이 될 팔자라고 한다. 평생을 직장에서 일만 해 오다가, 이제 은퇴해서 백수 티 안 내려고 집에서 조금 편하게 지내려 한 게 무슨 큰 죄가 되겠는가 마는, 취미도 없고 돈도 없어서 소일거리가 마땅찮다는 건 핑계일 뿐이고, 이젠 봉사활동, 취미활동, 자기계발 등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아야지 않을까 한다. 백두들이야 너무 적극적으로 이런 활동에 나서는 게 오히려 문제이겠지만..ㅉㅉ

늙는다는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늙더라도 항상 꿈을 꾸며 도전을 하는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등로 또한 완만하고 푹신하여 걷기에 더없이 좋다.

 

 

 

 

 

얼굴을 할퀴는 산죽의 손길 조차도 부드러운 어루만짐으로 느껴지며,

 

 

곱게 물든 단풍을 감상하느라 완만한 내림길조차 더디게 진행된다.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본 동쪽 지리산 남부능선 방향.

우중앙으로 보이는 통꼭봉과 황장산 너머로 지난 몸에 걸었던 성제봉 능선이 우람하다.

 

불무장등과 천왕봉 방향.

 

 

문바우등을 향해 암릉 우측으로 이어진 완만한 단풍길을 따른다.

 

 

 

 

등로가 능선 위로 올라서면 어김없이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천왕봉과 남부능선이 조망된다.

 

 

능선 위에 버티고 있는 선바위를 우회하고,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오는 능선길을 따르면,

 

앞쪽 단풍 사이로 가야 할 문바우등이 가늠된다.

 

 

괴목!

 

화염!

 

 

 

 

낙엽이지 않고 싶은 이들의 단풍놀이!

 

 

문바우등 오름길에 돌아본 촛대봉과 남부능선 조망.

 

피아골과 반야봉 방향.

저 아래 피아골 어디쯤에 단풍놀이 중인 백두들이 있을 듯!

 

 

문바우등이 가까워지면서 등로가 암릉 오름길로 바뀌고,

 

주변의 단풍은 더욱 자기 빛깔을 뽐낸다.

 

 

문바우등(1,199m) 도착.

 

문바우등은 왕시리능선의 질매재와 느진목재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명칭의 정확한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정상 바로 아래 남쪽 느진목재 방향 등로가 좁은 바위 절벽 사이로 이어지는데, 이 바위 절벽이 문(門)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아련히 보이는 '왕의강'이라 불리는 섬진강과 백운산 방향 조망이 멋지다!

 

조금 넓게도 담아 본다.

 

동쪽 지리산 남부능선 방향.

 

천왕봉 방향.

 

 

문바우등 정상의 백두들.

 

 

 

지리주능선 모습.

 

촛대봉과 천왕봉을 뒤에 두고, 영신봉에서 삼신봉으로 뻗은 남부능선 모습.

 

성제봉과 섬진강 방향.

 

반야봉과 불무장등 방향.

 

왕시리봉, 잠시만 기다려라!

 

 

남쪽 왕시리봉 방향.

 

남동쪽 성제봉 방향.

 

동쪽 지리남부능선 방향.

 

북동쪽 노고단~반야봉~천왕봉의 지리주능선 방향.

 

 

북쪽 노고단과 반야봉 방향.

 

서쪽 형제능선 방향.

 

서남쪽 형제봉 방향.

 

남쪽 왕시리봉 방향.

 

동쪽 천왕봉과 지리남부능선 방향.

 

북동쪽 반야봉과 천왕봉 방향.

 

북쪽 노고단과 반야봉 방향.

 

 

돌아본 노고단에서 왕시리능선과 나란히 남으로 뻗는 형제능선 모습.

 

문바우등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지능선의 복호등 너머로 지난해 갔던 형제봉능선이 멋지다.

 

여순반란사건 때 반란군 김지회 부대가 저 아래 문수골로 들어와 왕시루봉능선을 넘어 피아골로 갔다고 한다. 그때에 지리산에 빨치산이 첫 발을 들인 것이다. 이들을 6.25 동란 때 들어온 이현산, 박영발, 방준표 등의 신빨치산과 구별하여 구빨치산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지금은 포근해 보이기까지 한 저 골짜기, 저 능선에도 수많은 아픈 역사를 머금고 있음을 생각하니 그저 아름다운 경치로만 볼 일은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왕시리봉을 배경으로.

 

 

살짝 당겨본 섬진강 모습.

 

 

 

문바우등을 뒤로하면 바로 수직의 암릉을 내려서야 한다.

 

양쪽 절벽이 대문인 듯 서 있어서 문바위등이라 불리게 된 게 아닌가 짐작케 하는 곳이다.

 

양쪽 바위에 디딜 곳과 잡을 홈이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다.

 

 

문바위등을 내려서서 인원 점검을 하고는,

 

왕시리봉을 향해 다시금 단풍숲으로 빨려든다.

 

 

고색창연해 보이는 선바위를 지나고,

 

 

빼곡한 조릿대밭을 지나서 잠시 오르면,

 

 

좌측 피아골 방향 지능선으로 등로 흔적이 뚜렷한 분기봉에 오르게 되는데,

왕시리능선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알바 주의!

 

 

느진목재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키를 넘는 조릿대가 빼곡하여 차라리 허리를 숙이고 조릿대터널로 진행한다.

 

 

느진목재 도착.

질매재와 마찬가지로 문수골과 피아골을 넘나드는 고개로, 좌.우로 희미한 등로의 흔적이 있고,

 

느진목재에서는 가야할 왕시리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느진목재에서 목을 축이며 왕시리봉 오름길 준비를 단단히 하고,

 

 

능선을 뒤덮은 산죽밭 사이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왕시리봉을 향한다.

 

 

짧은 급경사를 오르면 좁은 평지가 나타나고,

 

 

다시금 나타나는 암릉을 우회하여 오르면,

 

 

고운 단풍으로 단장된 완만한 능선이 다시 나타나며,

 

 

앞쪽으로 올라야 할 왕시리봉이 다가온다.

 

 

젖은 낙엽, 그들도 다시금 흙으로 돌아가 새 생명을 잉태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음에,

모진 풍파에 멍든 몸뚱이를 떨구어도 아름답지 않을까!

 

 

왕시리봉 오름길의 단풍은 그 고운 자태가 비할 데 없이 아름답지만,

저 고운 단풍에서도 낙업을 본다.

 

멋진 단풍이 떨어지는 낙엽이 되는 것을 마다치 않음은,
진토로 변해 나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니,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듯, 늘 제자리인 것을!

 

 

 

 

 

왕시리봉을 향한 희미한 족적은 바위벽을 따라 오르고,

 

 

좌측에 암릉을 두고 완만하게 올라간다.

 

 

완만하던 등로가 다시금 급경사로 바뀌고,

 

 

등로 우측 나뭇가지에 걸린 노란 비닐 조각이 단풍과 뒤섞여 구분이 어렵다. 뭘까?

사연이야 어찌 되었던지 간에, 비닐이나 플라스틱은 우야든둥 안쓰도록 해야제!

 

 

바위 절벽 옆으로 이어지는 족적을 따르다가,

 

앞쪽이 막힌 듯 보여서,

 

좌측 암릉 위로 진행한다.

 

 

 

암릉으로 올라섰는데도 능선은 아직도 좌측에 있고,

 

 

다시금 좌측에 암릉을 두고 바위벽을 따라 진행한다.

 

 

커다란 암릉을 만나면 우측으로 우회하여,

 

가파르게 올라서고,

 

 

산죽도 꽃을 피우고는 말라버린 등성이가 나오며, 뒤쪽 나뭇가지 사이로는 지리주능선이 가늠된다.

 

 

다시 짧은 급경사를 치고 오르면,

 

 

왕시리봉 갈림길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왕리리봉 정상은 좌틀하여 진행해야 하지만,

우측에 있는 왕시리 전망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왕시리봉 삼거리 갈림길로 올라서는 백두들.

 

 

왕시리전망봉 도착.

사실 왕시리봉 정상은 나무로 둘러싸여 전망이 없고, 지리산 주능선 조망은 이곳에서만 가능하다.

 

전망봉에서 본 지리주능선 조망. 멋지다!

 

노고단에서 이어온 왕시리능선이 한눈에 가늠되고,

 

반야봉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진 지리주능선에서 흘러내린 남쪽 지능선들이 몽조리 조망된다.

 

왕시리전망봉에서 지리주능선을 배경으로!

 

 

 

다시 능선 갈림길 삼거리로 돌아 나와 왕시리봉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으로 들어서면,

 

 

평탄하고 호젓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 길로 들어서면,

 

 

사무들로 둘러싸인 좁은 공터인 왕시리봉 정상에 도착한다.

 

 

왕시리봉 정상에 도착하는 백두들.

 

<왕시루봉(1,243m)>

전라남도 구례군의 토지면 문수리와 내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리산 노고단에서 남쪽 구례군 토지면을 향해 뻗은 산줄기가 왕실봉, 문바우등, 느진목재 등을 지나 왕시리봉을 솟구쳐 놓았다. 산의 정상부가 펑퍼짐하고 두리뭉실하게 생겨 마치 큰 시루를 엎어놓은 것과 같다 하여 '시루봉'이라 이름 지어졌다가 전국의 수많은 시루봉 중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다 하여 왕시루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왕시리봉은 시리봉, 증봉 등으로도 불리는데, 산의 모습이 시루를 닮아서 '시루(시리) 증(甑)'을 사용해 증봉이 되었다고 전한다. 『조선지형도』(화개장)에 문수리 불당 마을과 내서리 사이에 왕증봉이 기재되어 있다.

산에서는 토지천 등이 발원하여 섬진강에 합류한다. 발아래로는 섬진강 청류가 흐르고 백운산과 마주 보고 있어 수려한 경관은 비길 데 없이 좋다. 봄엔 철쭉이 가을엔 정상부 초원이 온통 억새밭으로 변한다. 애당초 노고단에 있던 외국인 별장촌이 6.25 전란 때 폐허화되고 또 노고단이 번잡스러워지자, 1957년경부터 이곳 왕시루봉 일대로 옮겨와 자리 잡게 되었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가 1920년대에 홍콩처럼 99년 간의 조차계약을 맺어 노고단을 미국, 호주 등의 외국인 선교사들 하계 별장지로 사용케 해 줬는데, 그 계약이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유효한지 지금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왕시리봉 정상에서 과일을 나누며 멋진 왕시리능선 산행의 기억을 갈무리하고,

 

 

작은 돌무더기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는 왕시리봉 정상 인증을 남긴다.

 

이제 산행 종착지인 파도리까지는 6km가 안 되게 남았고 내려서는 등로도 양호할 것으로 예상되어,

시간반이면 목적지에서 단풍팀과 만날 수 있을 듯하여, 총무님과 1시 40분에 만날 것을 약속하는데..ㅉㅉ

 

 

토지면 방향의 왕시리봉 내림길 능선은 좌측 피아골 쪽은 급경사이지만, 우측은 완만하고 편평한 편이다.

 

 

좌측 피아골 방향은 아찔할 정도로 급경사다.

 

완만하고 수레길 수준의 등로를 따라 내려서는 백두들.

 

 

이제 곰(熊)과의 조우 가능성도 낮아져 편안한 왕시루봉 하산길을 이어가는데,
수레길 수준의 완만한 등로를 따르다 보면 좌측으로 봉긋 솟은 무덤 같은 곳(1231.1m)을 지나게 된다.

무덤이 솟은 곳에는 3등급 삼각점도 있는데, 봉애산이 있는 송정리 방향 지능선이 분기하는 지점이다.

 

 

이어지는 완만한 내림길을 따르면, 좌.우즉으로 등로가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은 외국인 선교사 유적지로 이어지는 길이고, 좌측에는 섬진강이 멋지게 조망되는 조망처가 있다.

 

 

아 섬진강, '왕의강'이라고도 불리는 섬진강이다!

 

'왕의강'이란 말은 '왕시리봉에서 보이는 섬진강'이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왕의강'이라 명명된 어느 사진작가의 작품이 국전에 당선되면서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이곳 왕시리봉에서 보는 아름다운 섬진강 물줄기가, 마치 지리산의 용(龍)이 바다의 용왕을 향한 용트림을 하는 듯이 장엄한 모습으로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살짝 당겨본 왕의강.

 

 

'왕의강'을 배경으로!

 

 

 

 

잠시 더 능선길을 따르니 또다시 좌측으로 섬진강이 멋지게 조망되는 조망처가 나온다.

 

섬신강과 백운산 방향 조망.

 

 

초지와 나무들이 멋지게 어울리는 편안한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다시 외국인 선교사 유적지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쳐지고,

 

갈림길 옆에는 멋진 만지송이 있다.

 

 

앞쪽으로 백운산과 똬리봉, 도솔봉 등이 자리한 호남정맥 능선이 건너다 보이고,

 

등로에는 단풍 계절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야생화가 애처롭다.

 

 

평탄한 등로는 억새평원으로 이어지더니,

 

 

난데없이 왕시루봉 정상석이 나타난다.

아마도 토지면에서 오르는 산객들이 이곳에서 만족하고 돌아가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정상석이 있는 왕시루봉 인증.

 

 

 

정상석 아래의 헬기장을 지나고,

 

 

이곳이 서울대 남부학술림임을 알리는 표지판도 지난다.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네.

누구는 환영한다고 하는데, 누구는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니..ㅉㅉ

 

 

다시 완만한 내림길을 따르면,

 

 

잣나무 조림지를 통과하는데,

 

 

지난 군자산 산행을 건너뛰어서 그런지, 그리 어렵지 않은 산행임에도 왼쪽 허벅지에 쥐가 나타났다.

오늘 산행 중에 자주 넘어지신 분과 고관절이 아프다는 분께 사용했던 파스를 내게도 사용한다.

 

 

파스 붙이는 사이에 앞서간 분들을 따라잡으러 작은 도랑처럼 보이는 곳도 지나는데,

 

 

엇, 등로가 다시 도랑을 건너 우측 사면으로 이어진다.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어 지도를 확인해 보았더니, 우리는 계속 계곡을 따라 구례요양원이 있는 파도마을로 진행해야 하는데 따르던 등로는 토지면 구산마을로 이어진다. 알바다!!!

 

 

왔던 길을 잠시 되돌아오니 의구심을 가지며 지나쳤던 갈림길 삼거리가 나온다.

 

 

갈림길로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고 돌아온 분들과 함께 버스가 기다리는 파도마을로 향한다.

전화에도 백두의 직진본능에 충실한 세분은 구산마을 방향의 따르던 등로를 고수했다.

 

 

파도마을로 이어지는 등로도 뚜렷하고 양호한 편이다.

 

 

왕시리봉에서 1000m 이상 고도를 낯추는 게 그리 만만한 길이 아님을 느껴갈 즈음에,

 

 

들어오면 단속하겠다는 현수막이 걸린 울타리가 나오고,

 

 

울타리를 넘어 법(法)의 세상으로 들어서자,

동작감지기가 설치되어 있는지 '50만원 과태로.."라는 방송이 연이어 나오고,

파도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임도가 나온다.

 

 

알바로 30여분 지체되었음에도 먹어야 간다며..ㅉㅉ

 

 

펜션으로 보이는 인가도 나오고,

 

 

알바 갈림길 부근의 작은 물길이 커진 계곡을 건너서 내려서면,

 

 

앞쪽으로 몇 해 전 둥지리봉 오름길이 어려웠던 산행길의 첫 봉우리인 계족산이 보이고,

 

호남정맥 똬리봉에서 간전면의 밥봉으로 이어져온 능선도 조망된다.

 

 

임도는 파도저수지 위로 이어지더니,

 

 

섬진강이 흐르는 토지면과 간전면의 들판이 넓게 펼쳐진다.

 

 

지난해 걸었던 계족산~둥주리봉~오산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좌측이 계족산, 우측이 오산이다.

 

 

구례요양원 뒷편에는 지리산둘레길 이정표도 있다.

 

돌아본 왕시리봉 방향.

 

 

구례요양원 앞 사거리에 도착하여 왕시리봉 산행을 마친다.

 

 

토지면 구산리에서 헤어졌던 세분을 테우고,

 

 

그다지 흘린 땀도 없지만 사우나에도 들리고,

 

 

가오리찜과 족탕이 전문이라는 동아식당에서,

 

지리산 피아골과 왕시리능선의 단풍에 대한 기억을 고이 접어 간직한다.

 

살림꾼 총무님이 족탕만 시켰는데, 회장님께서 가오리찜 주문을 명 하셔서..ㅉㅉ

 

 

 

 

 

가을날의 멋진 하루를 마감하고 서울로 향한다.

 

산행 내내 백두들이 모두 함께 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가급적 함께 걸으며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