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중국 고도 서안, 화산 태백산 트레킹
산 행 일 : 2011년 5월 5일(목) ~ 8일(일) (3박4일)
<5월 8일(일) 제4일차>
- 호텔 조식 후 중국 문인들의 묘비 등이 모셔져 있는 비림 탐방.
- 서안국제공항으로 이동.
12:45 서안 출발.
16:40 인천 도착.
<서안의 주요 관광지>
시안 화산과 태백산 트레킹의 마지막 일정으로 오전에 비림((碑林)을 간단히 둘러보고, 바로 공항으로 이동하여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지난밤 늦게까지 고량주를 탄 맥주(고맥)를 마시며 트레킹 일정의 마지막 밤을 밝힌 터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그리 가뿐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깨끗하고 현대식 시설을 갖춘 호텔이라서 다소간 산뜻한 느낌도 든다.
늦게 일어난 탓으로 다른 분들은 벌써 아침식사를 마쳐서 식당에는 익숙한 얼굴이 한분도 보이지 않는다.
묵었던 부림성시주점(포레스트호텔)에서 버스에 탑승하여 비림으로 향한다.
비림박물관(碑林博物館) 도착.
<서안 비림박물관(西安 碑林博物館)>
비림(碑林)은 시안(西安)의 공자문묘(孔子文廟) 였던 자리에 역대 중국의 귀중한 비석을 수집하여 모아놓은 비석박물관이다. 한(漢)대부터 청(淸)대에 이르기까지 각 조대의 비석과 묘비는 물론 석각예술품 등을 1만여점 소장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비석들이 모여 마치 '숲을 이룬 것 같다'하여 '비림(碑林)'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특히 당(唐), 송(宋) 이후의 석비(石碑)와 법첩(法帖)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현종(玄宗) 어주효경비(御註孝經碑)와 안진경(顔眞卿), 구양수(歐陽修), 저수량(褚遂良), 서호(徐浩), 몽영(夢瑛) 등이 쓴 돌비석이 유명하다. 당송 이후 근대에 이르는 비석과 순화각법첩(淳化閣法帖)을 비롯한 유명한 서가(書家) 법첩의 석각(石刻)을 많이 수집하여 지금은 500여개에 이르는데, 작품을 보관하는 건물이 여섯 채나 된다.
서안 비림박물관은 3000년 고도(古都) 서안(西安, 시안) 일대에서 출토(出土)된 석각 비문들을 시대별로 제1관(第一館)에서 제4관(第四館)까지 전시해 놓았는데, 비림(碑林)의 제4관(第四館)에 전시된 명.청시대(明淸時代) 비문(碑文) 가운데 관제시죽(關帝詩竹)도 있다.
각종 석각예술품들이 즐비한 주변 풍경으로도, 이곳이 비석이 숲을 이룬 비림(碑林)임을 짐작케 한다.
입장권을 구매하여 지하철 출입구 같은 개찰구로 입장하여,
측백나무가 심어져 있는 정원을 지나면,
좌측 정자에는 5호16국 시대 때 대하국에서 만들었다는 대하석마(大夏石馬)가 있고,
우측 정자에는 당 예종 때인 711년에 만들어진 중국 종(鐘)이 걸려 있다.
이 중국 종(鐘)은 당 예종 때인 71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형적인 중국 범종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이라는 설명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신라의 범종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과 비교해서 볼 수 있는 유물이라고 한다. 가이드의 예기로는 에밀레종이 훨씬 뛰어나다고..
'비림(碑林)'이라 적힌 비각 건물이 나오고, 뒤편으로 제1전시실이 보인다.
비림(碑林)은 공자문묘(孔子文廟) 였던 자리에 역대 중국의 귀중한 비석을 수집하여 모아놓아, '비석들이 마치 숲을 이룬 것 같다'하여 '비림(碑林)'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각형 연못을 지나 문묘(文廟) 글귀가 새겨진 패방을 지나면, 6개의 누각이 양옆으로 3개씩 도열해 섰는데, 청대 여진족이 쓴 것이라고 한다. 그 누각들 끝에 효경정(孝經亭)이 있고, 그곳에 임측서(林则徐)가 썼다는 비림(碑林) 현판이 걸려 있는데 '비(碑)'자의 '田' 위에 삐침 한 획이 빠져 있다. 현지 가이드는 아편전쟁 이후 서양 열강이 아편 소각의 책임을 물어 흠차대신 임칙서의 파면을 요구했고, 결국 임칙서는 신장(新疆)의 한직으로 쫓겨 가게 되는데 그 길에 썼기 때문에 불만의 표시로 한 획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대의 예서체에서는 '비(碑)'자의 점 한 획을 주로 생략해 썼다고 하며, 불만의 표시라기보다는 농민을 상징하는 '전(田)' 위에 그 어떤 것도 억누르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생략했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싸한 해석이라는 예기도 있다. 또 다른 설은, 청나라 말 임칙서가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러 가다가 이곳에 들러 현판을 쓸 때, 임칙서는 난을 평정한 후 다시 와서 빠진 한 획을 써넣겠노라는 약속을 하고 전장으로 떠났는데, 도중에 병으로 죽고 말아서 빠진 획을 그려 넣지 못했다는 예기도 있다.
'비(碑)'자의 '전(田)' 위에 삐침이 빠져 있다.
비각을 지나 제1전시실로 들어서니, 석대효경이라 불리는 비석이 있다.
한나라 때 발견된 2종류의 효경에 대한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 당 현종이 직접 주석을 달고 천하에 반포했으며, 745년 돌에 새겨 태학을 건립하면서 세웠는데 이를 석대효경이라 하며, 비림을 대표하는 유물이라 한다.
가이드가 당나라 때의 여러 비석들을 열심히 설명해 주기는 하는데,
비석에 새겨진 한자 중에서 익숙한 몇 글자를 빼고는 대부분 까막눈인 상태라,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를 않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아는 게 별무 없음을 확인한다.
제2전시실에는 당나라 때의 비석들을 많이 전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진경교유행중국비>라 한다.
경교는 콘스탄티노플의 네스토리우스(?~451) 총주교를 시조로 하는 기독교 일파로, 네스토리우스파라고도 부른다. 당 태종 때 중국으로 전래되었으며, 통일신라 때 발해와 신라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 비석은 당시의 교류 관례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라 한다.
제3전시실에는 각종 서체로 새겨진 진귀한 비석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한나라의 <희평석경>, 전진의 <광무장군비> 등이 있다.
들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돌아서니 남은 게 없다.
제4전시실에는 송나라부터 청나라때 까지 비석에 새겨진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비문을 탁본해 판매하고 있는 4전시실에는 재미난 문자유희(文字遊戱) 비석들도 많다.
그중에서도 댓잎편지(竹葉便紙)로 유명한 관우(關羽)의 '관제시죽(關帝詩竹)'은,
대나무 그림 속에 자신의 마음을 시로 표현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관제시죽비(關帝詩竹碑)>
관제시죽(關帝詩竹)은 당시의 문인(文人)이 관우(關羽)를 칭송(稱頌)하기 위하여 지어낸 한시(漢詩)의 문자유희(文字遊戱)라 한다. 서기 1716년,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55년에 한재림(韓辛臨)이 비석에 조각하였다. 장죽도(長竹國)의 댓잎(竹葉)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죽엽(竹葉) 그림이 한시(漢詩)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제(關帝)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수많은 출연 인물 중 의리(義理)가 있고 용맹하며 덕(德)까지 갖춘 관우(關羽)를 후대 사람들이 높여서 제왕(帝王)처럼 일컷는 말이다. 시죽(詩竹)은 두대의 장죽화(長竹畵)와 한편의 오언절구(五言絶句) 한시(漢詩)로 구성되어 있다.
관제시죽(關帝詩竹)은 관우(關羽)가 조조(曹操) 진영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조조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 하지만 관우는 의형제를 맺은 유비에 대한 절개를 지키며 자신의 충절을 보이기 위해, 한 장의 죽엽편지(竹葉便紙)에 자신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담아 유비에게 보낸다. 자칫 편지의 내용이 조조에게 알려질까 하여, 한지의 글자를 대나무 이파리 모양으로 써서 그림처럼 보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암호문인 이 그림을 보고 유비가 안도했다고도 전해지는데, 진위여부(眞僞與否)를 떠나 옛사람들의 기발한 기지와 운치가 엿보인다.
유비(劉備)에게 보낸 한 장의 장죽도(長竹圖)인 관제시죽(關帝詩竹)은 그 속에 자신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죽엽(竹葉) 그림에 몰래 담아 표현한 죽엽편지(竹葉便紙)로 아래와 같다.
不謝東君意(불사동군의) 동군(東君, 조조)의 호의(好意)에 감사(感謝)하고픈 마음은 없네.
丹靑獨立名(단청독립명) 불고(丹) 푸르게(靑) 홀로 이름을 세우려 하네.
莫嫌孤葉淡(막혐고엽담) 마지막 남은 외로운 나뭇잎(關羽, 관우)의 퇴색됨을 미워말고.
終久不凋零(종구불조령) 끝끝내 시들어 떨어지지는 않을 것임을.
관제시죽(關帝詩竹)은 주군(劉備, 유비)을 향한 관운장의 충절(忠節)과 의리(義理)가 깊이 서린 한시(漢詩)이다. 관제시죽(關帝詩竹)으로 하여금 18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삼국지(三國志)>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기념으로 150위안 정도를 주고 탁본을 한 장 구매했는데,
나중에 나오면서 보니까 노점들이 따로 70위안 정도에 팔고 있다.
살짝 후회도 들기는 하지만, 개인들이 파는 것을 탁본이 아닌 인쇄본이겠거니 하며 마음을 추스른다.
빠듯한 일정으로 짧은 시간에 비림 탐방을 마무리한다.
가이드가 나름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지만, 그냥 '이런 게 있는가 보다'하는 정도다.
혹시 기회가 되면 사전에 중국 역사와 인물들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서 들리면 아주 흥미로울 것 같다.
서안의 장안성(長安城) 주위에 파 놓은 헤자(垓子) 모습.
장안성(長安城) 성곽 모습.
위하(渭河)를 건너고,
서안 선양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한다.
한국으로 가는 아시아나항공.
선양국제공항을 뒤로한다.
한국의 다도해가 내려다 보이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아이스크림으로 중국 서안 화산, 태백산 트레킹 일정을 마무리하는 해단식을 갈음한다.
사진을 더듬어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 보았지만,
역시나 인상 깊었던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떠오르는 게 없다.
혹여 기억에 남아있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남겨주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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