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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낙남정맥 11차(청학동갈림길~길마재) : 지리산 주능선의 위용을 즐겨 걸은 남부능선

by 재희다 2011. 5. 29.

산 행 지 : 낙남정맥 11차(청학동갈림길 ~ 길마재)

산 행 일 : 2011. 05. 28.(토)

산행코스 : 장재기마을+ 길마재~870봉~고운동재~991봉~묵계치~외삼신봉~청학동갈림길+삼신봉~내삼신봉

~상불재~불일폭포~쌍계사~쌍계사매표소 (도상거리 10km + 8km + 2km, 11시간 30분 소요)

산행참가 : 20백두.

 

<산행코스>

 

지난해 11월 13일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을 시작한 이후, 낙남정맥도 거의 마무리 국면에 이르렀다. 그동안 지리산국립공원의 경방기간 입산금지 조치로 인해 청학동 갈림길에서 길마재까지의 두번째 구간을 뒤로 미루어 두었었다. 하지만 이제 경방기간이 끝나고 입산통제가 풀림에 따라, 미답 구간의 낙남길과 함께 삼신봉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지리산 남부능선 일부를 곁들여서, 지리산 주능선의 장엄한 모습을 가슴 깊이 새겨 넣고자 조금 긴 듯도 한 산행을 계획했다. 다행히 산행하기 그지없이 좋은 계절임을 빌미로 체력테스트용 임을 주창하며, 지리산 입산통제 해제와 동시에 다시금 지리산으로 향한다.

사실 산을 좋아하고, 자연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발자국만 남기는 그동안의 백두산우회 산행 모습을 보면서, 입산통제에 그리 심한 압박을 받지는 않아왔다. 하지만 가급적 법과 정부의 정책에 순응하면서 떳떳한 산행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리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선잠을 들락거리는 사이에, 어느새 버스는 하동군 묵계리 장재기 마을에 예정대로 도착하였고, 잠시 더 선잠을 청한 후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묵계리 장재기마을 앞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서늘한 밤공기에 몸을 맡긴다.

지난 초겨울울 한번 와 보았던 곳이지만, 그새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낯선 곳인 듯 느껴진다. 나이 탓인가?

 

 

장재기마을 뒤편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한참을 올라 길마재에 도착하고,

고갯마루 좌측 들머리로 오르며 삼신봉을 향한 낙남길 잇기를 시작한다.

 

<길마재>

하동군 옥종명 궁항리에 있는 고개로 '질매재'라고도 하며, 궁항리에서 열두 모랭이 입구(옛 묵계리)로 넘어가는 시멘트 포장의 59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열두 모랭이'란 질매재 먼당(높은 곳의 경상도식 발음)에서 묵계리로 가는 모퉁이로, 열두 번을 돌아간다는 뜻이다. 추측컨데 길다는 뜻의 경상도식 표현인 '진 고개'와 모랭이가 합쳐져, 진모랭이재가 질매재, 질마재를 거쳐 길마재가 되었다고 한다. 6.25동란 때, 지리산에 은거해 있던 빨치산들이 자주 이용하던 고개라고 한다.

묵계리에서 길마재까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으나, 대형버스의 출입은 어려운 정도여서 지난번과 같이 도보로 이동하였지만, 어둠 속에서 지나간 길이라서 그런지 구비구비 많이도 올라간다는 느낌만이 남아있다.

 

 

우측 766봉 방향의 능선이 분기되는 봉우리쯤인 듯한데, 짙은 안개와 어둠으로 분간이 어렵다.

 

 

삼각점이 있는 790봉에 도착한다.

간간이 뿌리던 비는 그쳤으나, 물기를 머금은 안개로 등로의 초목이 온통 물방울을 매달고 있다.

 

 

찾는 산객이 많지 않아 잡목들이 무성한 등로는 초목들이 물기를 그득 머금고 있어서 마치 우중 산행의 느낌을 준다.

 

 

이슬과 땀으로 온몸은 젖었으나, 아침 산행의 상쾌한 느낌은 그대로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지능선을 들어 올린 구곡산이 운해 위로 솟아 있다.

 

우측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 고운동 계곡 방향 조망.

 

북쪽의 지리산 천왕봉은 아직 구름을 덮고 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 위에, 이 길이 낙남길임을 확신케 하는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이곳이 비법정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맥꾼들이 지나갔음을 가늠케 한다.

 

 

892봉 방향 갈림길 봉우리.

정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이고, 직진의 우측 길은 892봉을 거쳐 고운동 계곡으로 내려가게 된다.

 

 

좌측으로 전망이 트인 곳에서 바라본, 북동쪽 고운동계곡 방향.

 

당겨본 구곡산(961m) 방향.

 

산청양수발전소 상부댐인 고운호가 내려다 보인다.

 

<산청양수발전소>

양수발전은 주간과 야간의 전략 사용의 차이를 이용하여 수력으로 발전하는 시스템이다. 양수발전은 수력발전소와 달리 물을 저장하는 상부댐과 하부댐의 2개의 댐을 운용한다. 산청양수발전소의 시설용량은 700MW이며 35만kw 발전기 2기가 운용된다. 1호기는 2001년 9월 28일, 2호기는 같은 해 11월 8일에 준공되었다. 상부댐은 시천면 반천리에 있으며 댐의 높이는 92m이고 댐의 길이는 380m이다. 하부댐은 시천면 내대리에 있으며 댐의 높이는 69m이고 길이는 318m이다. 상·하부저수지 및 댐, 지하발전소로 이루어지는 시설의 총낙차는 427m이다. 1995년 2월에 건설을 시작하여 총공사비 5,888억원이 투입되었다. 2001년 9월 상업운전에 들어갔고, 6년 10개월 만인 2002년 7월에 당시 국내 최대 규모로 준공되었다.

 

 

고운동재로 가는 낙남길에서 상부댐(고운호)이 내려다 보인다. 산청군 시천면 고운동에서 반천리로 흘러드는 계곡 이름이 반천(反川)이다. 이 반천을 막아 상부댐(고운호)을 만들고, 동북쪽 능선을 뚫어, 지리산 거림골에서 흘러내려오는 물길을 막은 하부댐으로 물을 흘려보내어서 발전을 하게 된다. 상부댐이 만들어진 물길이 반천(反川)인데, 이는 물이 거꾸로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우리 선조들은 미래를 알고서 반천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냇물을 거꾸로 올려보내 발전을 하리라 예측을 하고 반천이란 이름을 붙인 선조들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당겨본 상부댐(고운호) 모습.

 

 

어디선가 고운 향기가 풍겨오는가 싶더니,

 

 

고운동재에 도착한다.

 

<고운동재, 797m>

신라 말기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이 자신이 은거할 이상향을 찾아 들어갈 때 넘었던 고개라 하여 고운동재라 불린다고 한다. 신라의 대 학자요 문장가인 최치원 선생은 당나라에서 명성을 날리다가, 29세인 헌강왕(890년) 때 귀국한다.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고국의 회생을 위해 혼신을 다했지만, 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 청운의 뜻을 펴지 못하고, 관직을 버리고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청학동에 은거를 결심한다. 그가 즐겨 찾은 곳은 경주의 남산, 강주(지금의 경북 의성), 합천 청량사(해인사), 지리산 쌍계사 등이었는데, 특히 지리산 쌍계사 부근에 이상향인 청학동이 있어서 자주 찾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차량통행이 전혀 없는 고운동재 도로 한켠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출입금지 표시판 앞에서 식사를 하는 대담함은..ㅋㅋ

 

 

 

편안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음 한켠에 별 기록을 추가하고자 철울타리를 넘는다.

 

 

 

고운동재에서 조금 오르자 숲 속 묘지가 나타나고, 묘지 가장자리 등로를 따라 삼신봉을 향한다.

 

 

 

키를 넘는 무성한 산죽이 등로조차 꽉 메우고 있다.

 

 

산죽 터널이 마치 동굴처럼 이어져 있다.

 

 

 

헬기장이 있는 묵계재 도착.

선두에서 산죽을 해쳐온 손총무님은 마치 소나기를 맞은 듯하다.

 

 

<묵계재(1,090m)>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서 산청군 시천군 내대리를 잇는 묵계재는, 이제 고개 아래로 묵계터널이 뚫리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전혀 없는 고개로 이름만이 남았다. 지난밤 우리가 탄 버스는 이 터널을 통과하여 청학동으로 들어왔었는데, 이리저리 에둘러서 이제야 겨우 이곳으로 돌아왔다. 산죽이 주변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 묵계재 안부 헬기장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특별히 생각해서 찾아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고운동재에서 봉우리를 넘어 이곳까지는 전체적으로 오름길인데도 불구하고, 산죽 터널에 시달리느라 오름길이라는 인식도 못하고 지나왔다.

 

묵계재 헬기장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르는 백두들.

삼신봉 방향 들머리가 산죽으로 뒤덮여 있어서 들머리 찾기가 쉽지않을 듯하여 잠시 쉼을 하며 후미의 도착을 기다린다.

 

 

모처럼 산죽꽃도 보이는데, 산죽이 저렇게 꽃을 피우면 수명을 다한게 되고,

부근의 산죽도 함께 고사하여 후일 이곳을 지나는 낙남꾼들은 산죽터널 경험을 못할 듯하다.

 

 

 

외삼신봉이 가까왔는지 암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구름모자를 벗은 지리산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조망된다.

 

 

 

 

 

좌측 묵계리 방향 조망.

 

 

빼곡한 산죽지대를 뚫고 나온 여성회원들! 방금 샤워를 끝내고 온 듯..ㅋㅋ

 

 

 

지리산 주능선이 온전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좌측 칠선봉에서 우측 천왕봉으로 이어진 주능선이 장관이다.

 

 

우측 대내리 방향 조망.

 

 

이제 걸어온 낙남능선을 돌아볼 여유도 찾았다.

 

 

우측 천왕봉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진 지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아마도 천왕봉 뒤쪽 중봉에서 산청군 시천면의 구곡산으로 어이진 능선으로 짐작된다.

 

 

지리산 천왕봉을 배경으로.

 

 

 

밧줄이 매여진 암릉 오름길을 올라서면,

 

 

 

외삼신봉 정상에 도착한다.

 

 

외삼신봉에서 내려다본 묵계리 방향 조망.

 

 

외삼신봉 정상은 넓지 않은 암봉으로, 사방으로 조금의 막힘도 없이 조망이 시원스럽다.

 

 

지나온 낙남정맥 능선도 조망하고,

 

 

가야 할 삼신봉 뒤쪽으로 반야봉도 조망된다.

 

 

당겨본 반야봉. 앞쪽 삼산봉 정상의 조망 안내판도 뚜렷이 보인다.

 

 

묵계리에서 고운동재로 오르는 도로도 보인다.

 

 

우측 거림계곡 방향 조망.

 

 

 

서쪽 청학동 방향 조망.

 

 

살짝 당겨본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 주능선 조망.

 

 

구름에 가린 지리산 주능선과 반야봉(좌측 끝).

 

 

삼신봉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능선 상에 가야 할 내삼신봉도 자리하고 있다.

 

 

서쪽 청학동 방향 조망.

 

 

남쪽으로 이어진 낙남정맥 능선.

 

 

 

장소가 협소하여 몇몇분만이서 외삼신봉 정상 증명을 남기고,

 

 

삼신봉을 향한다.

 

 

작품도 좋지만, 조심하세요!

 

 

가야 할 삼신봉과 내삼신봉은 호수? 건너편에..ㅉㅉ

 

 

 

 

 

청학동 갈림길에 도착하여 비법정 탐방자의 굴레를 벗는다.

이곳이 지난해 영신봉에서 낙남정맥 첫걸음을 시작하여 청학동으로 하산하였던 지점이다.

 

 

 

삼신봉 오름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등로가 뚜렷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물론 이제 우리는 법정 등산로로 들어왔기 때문일 듯.

 

 

 

삼신봉 정상 도착.

 

 

<삼신봉(1,284m)>

삼신봉은 성산(聖山)인 지리산 봉우리 중 성봉(聖峰)으로 자리매김한 봉우리다. 삼신봉 정상에서 보면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의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쌍계사와 세석을 잇는 등산로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삼신봉은 지리산 남쪽에서는 한 개의 봉우리이지만, 실제 삼신봉은 내.외삼신봉과 더불어 세 개의 봉우리다. 삼신의 사전적 의미는 환인, 환웅, 환검의 삼신인 삼성(三聖, 아기를 점지한다는 삼신령(三神靈)), 즉 삼신할머니를 지칭하고 있어 신화적인 의미와 생명을 점지하는 주술적 의미가 강한 편이다.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인 봉래산(蓬來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은,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일컫는다. 더군다나 저 아래 청학동의 청학(靑鶴) 역시 신선(神仙)이 부리는 전설속의 새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삼신봉과 청학동은 인류가 꿈꿔온 이상향을 지칭하며 지리산 남쪽 어느 자락에 있지 않나 한다.

 

가야 할 내삼신봉 방향.

 

지나온 외삼신봉 방향.

 

 

천왕봉 방향.

 

 

지리산 주능선 모습.

 

 

반야봉(우측)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 모습.

 

 

노고단과 반야봉 방향.

 

 

삼신봉 안내판과 실제 사진 비교(김작가님 솜씨)

 

 

 

삼신봉 정상 증명을 남기고,

 

 

청학동 전경도 다시 한번 담아두고,

 

 

 

쌍계사로 향한다.

 

 

가야 할 외삼신봉 정상을 당겨보니, 앞서간 백두들이 벌써 올라있다.

 

 

 

외삼신봉 직전의 커다란 바위 대문을 지나면,

 

 

 

이내 외삼산봉 정상에 도착한다.

 

 

지난밤 비가 와서 아침까지 구름에 싸여 있던 봉우리들이 이제야 시원스레 조망된다.

 

 

외삼신봉에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모습.

영신봉~촛대봉~천왕봉

 

 

명선봉~덕평봉~칠선봉~영신봉

 

 

내려다본 대성동계곡 건너편으로 반야봉이 보이고,

 

 

반야봉 서쪽 노고산에서 왕시루봉으로 이어진 지능선은 아직도 구름에 덮여 있다.

 

 

서쪽 왕시루봉 방향.

 

 

쌍계사 방향으로 이어진 가야 할 지리산 남부능선.

 

 

청학동 방향.

 

 

청학동 계곡.

 

 

지나온 삼신봉(좌)과 외삼신봉(우).

 

 

천왕봉 방향.

 

 

 

외삼신봉 증명.

 

 

당겨본 영신봉과 촛대봉.

 

 

고사목과 반야봉의 어울림!

 

 

 

 

 

돌아본 외삼신봉.

 

밧줄을 타고 암릉구간을 내려선다.

 

 

 

 

 

 

반야봉 방향으로 의신마을쯤도 내려다 보인다.

 

 

 

상불재 방향의 남부능선은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송정굴을 지난다.

 

 

 

 

 

이제 철쭉들도 지는 시기가 된 듯, 땅바닥에 그 화려했던 삶의 흔적을 떨구고 있다.

 

 

 

잠시 가파른 내림길이 이어지더니,

 

 

연민인지 분노인지 해석이 분분한 나무둥치!

 

 

 

등로는 다시 편안한 육산으로 바뀌더니,

 

 

지나온 능선이 좌 후방으로 올려다 보인다.

 

 

 

등로는 다시 한번 내림길로 바뀌고,

 

 

통천문 쇠통바위쯤을 지난다.

 

 

 

통천문 쇠통바위 앞 이정표.

 

 

쇠통바위는 그냥 스쳐 지난다.

 

 

 

이제 청학동이 한결 가차이 보인다.

 

 

 

비박꾼들이 비워준 독바위 갈림길 봉우리에서,

 

 

모처럼 느긋한 쉼을 한다.

 

 

 

 

1301봉 독바위 갈림길에서 우측 쌍계사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면 전망바위가 나온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 할 상불재 방향 능선 조망.

 

 

좌측 청학동 계곡 조망.

 

 

돌아본 독바위.

 

 

살짝 당겨본 독바위.

 

가야할 쌍계사 계곡 모습.

 

 

 

1180봉 갈림길.

본디 상불재 방향 능선은 좌측의 희미한 길을 따라 봉우리를 넘어가야 되지만,

우측의 뚜렷한 우회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면 '쌍계사'라 표시된 표지목을 만난다.

 

 

 

1180봉에서 바라본 남쪽 관음봉 방향의 남부능선 모습.

 

 

우측 노고단 방향 조망.

 

 

 

1180봉에서 우측으로 잠시 내려오면 '상불재' 표시목에 도착한다.

 

 

상불재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가파른 내림길이 시작되고,

 

 

 

바위 너덜길이 한참 동안 이어진다.

 

 

우리가 곰의 자손인데..ㅋㅋ

 

 

 

정맥산행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깨끗한 계곡에서..

 

 

 

불일폭포 갈림길에서 잠시 방설이다가, 언제 또 올까 싶어서 불일폭포로 향한다.

 

 

불일폭포 휴게소.

 

 

한두번의 오르내림을 자나 모퉁이를 돌아 내려가자, 가녀린 물줄기가 이어지고 있는 불일폭포가 나타난다.

 

불일폭포 명칭의 유래.

 

 

 

불일폭포 앞에서.

 

 

 

 

불일폭포를 뒤로하고 돌아 나오니 조그만 암자 앞을 지나고,

 

 

 

휴게소에서 쉬어갈까 망설이다가 선두팀이 기다릴 듯하여,

 

 

 

참새 방앗간을 그냥 지나친다!

 

 

 

휴게소에 들르지 않았다고 장군들이 호통치며 서 있다.

 

 

여기가 새앙쥐 휴게소인 듯.

 

 

 

국사암 갈림길을 지나니,

 

 

 

이내 쌍계사 경내로 들어선다.

 

 

 

 

 

쌍계사 대웅전.

 

 

<쌍계사(雙磎寺)>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삼법이 창건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관장하는 말사는 43개이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고, 쌍계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쌍계사는 723년(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는데,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육조의 머리를 취한 뒤 귀국하였다. 그리고 한라산·금강산 등을 두루 다녔으나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오자 호랑이가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꿈에 지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뒤 절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그 뒤 840년(문성왕 2)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중국에서 차(茶)의 종자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였다. 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벽암(碧巖)이 1632년(인조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 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 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

 

최근에 세워진 듯 보이는 9층석탑.

 

 

천왕문.

 


 


 


 

 

 

 

이미 쌍계사 경내에서는 일행들의 자취를 찾을 수 없는지라 서둘러 쌍계사를 뒤로한다.

 

 

 

쌍계사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올라,

 

 

 

화계천변에 위치한 목감탕을 들렀다가,

 

 

 

화개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섬진강 참게탕과 은어 매운탕으로..

 


 

 

 

 


산행의 피로를 삭인다.

 

 

 

잠시 화개장터에 들러,

 

 

 

장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막걸리 맛도 보고,

 

 

 

 

 

 

 

서울로 향한다.

 

 

지금에 와서! 거의 일 년이 지난 일들을 기억하기란 불가능한 듯하다.

일단 미뤄둔 것은 하는 수 없지만 가급적 늦지 않게 기록해 놓아야겠다는 후회가 많다.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