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낙동정맥 제1구간(피재~통리역) 경북 태백시, 강원 삼척시.
산 행 일 : 2007. 9. 8.(토) 05:00~11:20
산행코스 : 피재 ~ 천의봉 ~ 낙동정맥분기점 ~ 작은피재 ~ 대박등 ~ 서미촌재 ~ 유령산 ~ 우보산 ~ 통리역
(약 10 km)
산행참석 : 24명.
기타사항
- 안전산행 기원제 (천의봉) 거행.
- 검룡소 탐방 : 한강 발원지로 약 1시간 소요.
- 황 지 탐방 : 낙동 강발원지로 약 10분 소요.
<산행 지도>
<낙동정맥(洛東正脈) 이란? >
낙동정맥(洛東正脈)은 글자 그대로 낙동강의 동쪽을 따라 흐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백두대간의 매봉산(일명 천의봉)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백병산-통고산-백암산-주왕산-단석산-가지산-신불산-천성산-금정산을 지나,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19km의 산줄기이다. [산악문화 간 『백두대간&정맥 종주지도집』(2005)에는 낙동정맥의 도상거리가 351.2km로 나와 있으나, 박성태의 『신산경표』(2004)에는 419km로 되어 있다].
이 산줄기의 동쪽으로는, 동해안의 울진·영덕·포항·경주·울산·부산, 서쪽으로는 태백·봉화·영양·청송·영천·경산·밀양·김해 지역과 이어진다. 이 산줄기는 백두대간의 매봉산 동쪽 능선의 무명봉(1,145m) 분기점에서 분기하여, 낙동강 동쪽에서 동해와 나란히 남쪽으로 뻗어 내려간다. 종래의 산맥 개념에 의하면 태백산맥 줄기로 볼 수 있다.
낙동정맥은 낙동강의 동쪽 울타리가 된다. 낙동정맥이 백두대간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백두대간과 함께 동해안지방의 담장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 산은 스스로 물 흐름을 나누는 산마루가 된다)의 천리를 본다. 산이 물을 가르고 있으니 물은 산을 넘어가지 못한다. 산과 강의 어우러짐, 그것이 이 나라 국토 인식의 출발점이다. 산과 강이 제멋대로 노는 것이 아니고, 산과 강을 서로 떼내어 바라보지 않는다.
원래 낙동강은 낙(洛)의 동쪽을 흐르는 강으로, 낙(洛)은 삼국시대에 가락국의 땅이었던 상주를 가리킨다. 즉 낙동강은 상주 동쪽을 흐르는 강이다(상주에 낙동면 낙동리가 있다). 오늘날의 상주는 옛 영화를 잃었지만, 옛날에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를 대표하는 도읍이었다. 경상도는 慶州의 ‘慶’ 자와, 尙州의 ‘尙’ 자를 합한 말이다. 이 강(江)은 강원도 매봉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를 거쳐 남해로 흐르는 강으로, 길이는 525.15km로 남한에서 제일 긴 강이다. 물론 한강의 길이가 514km로 낙동강보다 짧지만, 유역면적을 기준으로 하면 한강이 남한에서 제일 큰 강이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 줄기를 따라 이 나라 불교가 꽃을 피웠고, 조선 유학이 터전을 잡았다.
낙동강의 발원지에 관하여는, 동국여지승람을 근거로 태백의 황지(黃池) 연못으로 보는 견해가 많으나(이곳에 ‘낙동강 천 삼백리 예서부터 시작되다’라는 글이 새겨진 표석이 세워져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정선과 태백을 잇는 두문동재의 금대봉 기슭에 있는 ‘너덜샘’(은대샘)을 낙동강의 최장 발원지로 보고 있다.(동아일보 2003. 6. 5.자) 은대샘은 태백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싸리재 옛길을 오르다 보면, 은대샘을 알리는 표지가 있다.
낙동정맥이 맥을 다하는 몰운대(沒雲臺)는 낙동강 하구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16세기까지만 해도 ‘몰운도’라고 불리는 하나의 섬이었으나, 낙동강 상류에서 운반되어 온 토사의 퇴적에 의해, 다대포와 연결된 육지가 되었다. ‘몰운대(沒雲臺)’란 지명은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이 일대가 그 기류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이 인구에 회자되기 전인 1984년, 25세의 당찬 처녀 남난희는 부산 금정산에서부터 이 태백산맥 줄기(낙동정맥)를 타고, 매봉산에서 백두대간과 합류하여 진부령까지 이어감으로써, 이 나라 산꾼들의 백두대간 종주 붐에 불을 지폈다. 그녀의 『하얀 능선에 서면』은 그 종주 기록이다.
<낙동정맥 개념도>
낙동정맥을 출발하며 ...!
백두대간길에서 태어난 우리 백두산우회가 대간길을 진부령에서 잠시 멈추고, 100대 명산 탐방에 나선 지 어느덧 일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약 23차에 걸쳐, 대간과 정맥길에 들어있지 않은 100대 명산을 찾는 동안에, 일부 산행거리가 맞지 않는(너무 짧음) 산을 제외하고는 거의 오르지 않은 명산이 없게 되었다. 하여 이제는 통일의 그날 다시 잇기로 한 진부령 이후 백두산까지의 대간길은 잠시 미뤄 두고, 낙동강의 동쪽 물막이인 낙동정맥 길에 들어, 우리 산하의 오묘함을 느끼고,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지친 우리의 심신을 닦기로 의견을 모으고, 이렇게 새로이 먼길에 나선다.
낙동정맥이 백두대간에서 분기되는 천의봉은, 약 2년쯤 전에, 대간길을 걷던 중 어느 추운 초겨울 날, 화방재에서 시작하여 함백산을 지나 건의령까지 가는 길에 지났던 곳이다. 이직도 그 기억이 생생한 것은, 한참을 걸어서 오른 천의봉에서, 새벽에 지났던 함백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함백산에서 싸리재, 금대봉을 거처 이어진 백두대간길을 걷고 걸어서, 낙동정맥 분기봉인 천의봉에 올라 느꼈던 뿌듯했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해석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천의봉이란 말에서 왠지 하늘의 뜻이 깃들어 있을 듯한 느낌이 들어, 그곳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정맥길에서의 무탈함을 기원드리는 것이 마땅할 듯도 싶었다. 하여 여러모로 빠쁘신 총무님과 회원님들께서 정성껏 준비해 오신 제물을, 낙남정맥의 출발점인 천의봉 정상에 차려놓고, 우리 인간의 모자람을 채워 주십사고 기원드리고, 힘찬 발걸음으로 정맥길을 나선다.
지난밤 11시 반에 양재를 출발한 버스는, 경부를 거처 신갈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이천휴게소에서 이상만 선생님 부부를 태우고, 아마도 중앙고속도로를 거처 우찌우찌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3시 40분쯤 피재에 도착하였다. 너무 이른 시간이고 밖은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또한 천의봉에서의 기원제 시간도 있고 하여, 버스에서 한시간쯤 다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니, 하늘에 별들도 몇 개 보였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산신령께서 배려해 주심이라 여기며 산행 준비를 한다.
피재는 옛날 백두대간 산행 때의 그 조막걸리를 먹던 가계도 그대로이고, 지난 2년여 동안 이곳은 변한 것이 거의 없는 듯하다. 대간길을 걷던 그때, 이곳에서 지친 몸을 쉬며 건의령까지 또 어찌 가야하나 막막한 기분이 들었던 곳이었는데, 이제 이곳에서 낙동정맥을 시작한다.
05:00 산행 준비를 마치고 피재(삼수령)를 출발한다.
피재를 비재 또는 빗재가 격음화된 비탈재의 뜻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고, 이 고개를 한자로 직치(稷峙)로 표기하고 있어서 '피 직(稷)'자와 관련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난리가 나면 태백으로 피난하던 고개라 하여 피재라 불리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피재는 서해의 한강, 남해의 낙동강, 동해의 오십천으로 물길이 갈리는 분수령으로 삼수령(三水嶺)이라고로도 불린다.
05:50 천의봉 오름길 고랭지 배추밭을 배경으로 서분덕님께서 따님과 함께!
06:00 천의봉(매봉산)에 도착하여 바라본 태백 방향.
06:03 손총무님과 사모님께서 정성껏 마련해 오신 제물을 천의봉 정상석 앞에 진설해 놓고,
06:05 경건한 마음으로 신령님께 안전한 산행을 기원드리고,
또한 발자국 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도 드린다.
준비해 간 축문도 읽으며 신령님을 향한 우리의 바램과 다짐을 고한다.
06:17 하늘님도 우리의 정성에 감읍하신 듯, 구름이 걷히며 파란 하늘과 태양을 보내어 응답한다.
06:24 기원제를 마친 후, 차려 놓았던 제물을 음복하며 아침식사를 한다.
신령님 덕분에 산행 중 농주를 마시는 호사까지 누린다.
06:45 천의봉(매봉산) 기념촬영.
2005년 11월 26일. 대간길을 걸으며 같은 자리에서 찍었던 옛 사진.
그리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뵙고 싶습니다!
06:55 천의봉을 뒤로하고 낙동정맥을 찾아 돌아 내려오며 돌아본 천의봉과 배추밭 풍경.
천리길 낙동정맥 들머리로 향하는 백두들.
06:59 낙동정맥 분기봉인 1145봉 직전 안부에서 바라본 가야 할 낙동정맥 방향.
07:08 낙동정맥 분기점에 도착하여 출발을 고하는 기념촬영을 한다.
내년 아맘 때쯤 모든 분들의 건겅한 모습을 몰운대에서 뵙게 되길 희망하며!!
07:11 낙동강 하구의 몰운대를 향해 출발!
07:28 목장 우사 옆에서 까칠한 쥔장으로부터 길안내를 받는다.
안내받은 길은 도로를 따라서 피재로 가라고..ㅋㅋ
<목장 통과 방법>
- 분기점에서 출발하여 10여분 내려오면, 피재에서 천의봉 가는 길에 보았던
"삼수령목장"이라는 목간판에서 이어지는 진입도로로 내려서게 된다.
- 도로 우측으로 진행하면 쥔장이 사는 집과 우사가 있고,
그 너머로 초지가 펼쳐지며, 좌측으로는 목장 입구 쪽으로 나가는 길이다.
- 도로 아래쪽에 직원들 숙소로 보이는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 뒤 임도를 따라 통과하여 좌측 방향으로 진행하여 조금 내려가면..
- 위에 보이는 우사 건물이 나오고,
우사 뒤쪽 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면 Y자 삼거리를 만난다.
- Y자 삼거리에서 좌측 오름길을 처음에 내려섰던 도로로 다시 올라가는 길인 듯하고,
우측 내림길로 조금 진행하면...
- 임도 우측에 물탱크(지하 매설)가 보이는데, 이 물탱크 우측으로 낙동정맥 들머리가 있다.
주) 목장 내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은 흘려듣는 게 좋다.
전염병 때문에 외부인의 목장 출입을 거림.
소(牛)들에게 길을 물어보시는 게 좋을 듯..ㅋㅋ
07:14 목장을 내려서며 카메라에 담은 빈집!
이렇게 모두 빈집으로 남겨질 텐데 왜들 그리 집에 집착하는지 ..ㅉㅉ
07:46 작은피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07:47 태백에서 삼척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를 건너, 작은피재 들머리로 들어서는 백두들.
07:53 길가에서 반겨주는 예쁜이들. 사진이 흐려서 뭔 꽃인지 알 수가 없다.
07:55 돌아본 천의봉과 삼수령목장.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임도와 능선을 번갈아 걸으며,
07:57 목가적인 완만한 낙동정맥 길이 이어진다.
08:09 정맥길 우측으로 넓은 해바라기 밭이 펼쳐지는데,
해가 구름에 가려 있어서 아무 데나 지 멋대로 보고 있는 해바라기들!
꽃을 보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남녀무별인 듯..ㅋㅋ
08:18 대박등 오름길에 돌아본 천의봉 너머로 풍차의 모습이 선명하다.
08:15 대박등 오름길에 만난 엉겅퀴.
<엉겅퀴. Cirsium japonicum var. ussuriense>
과 명 : 국화과
분포지 : 전국
개화기 : 6~8월
결실기 : 10월
용 도 : 식용. 관상용. 약용
전국의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엉겅퀴는 6~8월에 원줄기 끝과 가지의 끝에 꽃이 피는데, 붉은색과 자주색으로 둥글게 피며, 10월에 씨앗이 여문다. 줄기의 높이는 약 1미터 정도고, 풀 전체에 흰털과 거미줄 같은 섬유질이 많으며 가지가 갈라진다. 봄에 어린잎을 나물로 먹고, 잎과 줄기는 지혈제. 외상. 종기치료에 효과가 있다.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는데, 뿌리의 재생력이나 생명력이 대단히 강하며, 번식력도 좋은 편이다. 엉겅퀴는 벌과 나비가 즐겨 찾는 꽃이고, 전국에 걸쳐서 자라고 있다. 꽃말이 '고독한 사랑'이라고 하는 엉겅퀴는, 싱그럽고 매혹적인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꽃이다.
08:24 천의봉에서 우측으로 흘러내린 사진 속 대간능선을 따라가면,
사진 중간 부분 가옥이 있는 좌측 편이 작은피재이고,
작은피재에서 좌측 아래로 이어진 능선이 낙동정맥길이다.
약간의 비탈을 5분 정도 올라서면 대박등(930m) 삼각점이 있다.
돌아보면 지나온 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되는데,
대간에서 정맥으로 갈라지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능선은 작은피재까지 확연하게 이어지고,
그 위로 피재에서 왼쪽으로 올라선 대간길은 1145봉과 그 위로 천의봉이 우람하다.
08:25 대박등 삼각점.
08:35 자작목이 근처 공터에서 과일을 나누며 쉼을 한다.
오늘은 산행이 길지 않아 과일을 빨리 소비해야 될 듯하여..
09:11 서미촌재를 지난다.
<서미촌재>
사면으로 능선을 돌아 15분 정도 오르고, 다시 내리막을 내려가면 황량한 절개지가 눈앞에 나타나는데, 서미촌재 도로개설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공사를 하고 있었으면 지도에도 "도로개설중"이라 표시되어 있을 정도다.
서미촌재는 탄광지대를 잇는 고갯길로. 태백시 예낭골과 주추골을 잇는 고개로, 여기서부터 통리까지 능선 좌측으로는 영동선(통리~심포~나한정역)이 수많은 터널로 이어진다. 이곳 통리역과 동쪽의 심포리역 구간은, 영동선이 처음 낙동정맥을 넘어 삼척으로 이어질 때에는 열차를 케이블로 묶어 끌어올리는 인클라인 방식을 이용했었다. 그래서 화차가 열차를 끌어올릴 때 승객들은 내려서 고개를 걸어서 올랐다 한다. 그러던 것이 1963년 영동선의 전철화로 스위치백으로 바뀌었다. 스위치백은 경사가 워낙 급해 열차가 단번에 올라갈 수 없을 때, 지그재그 형으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경사면을 극복하는 방식이다.
09:55 유령산 정상에 도착하여 또 쉼을 한다.
산신제를 올리며 산신께 드리고 꼬불처 두었던 농주를 '유령'에게도 좀 나눠준다.
유령산의 '유령'은 고스트(Ghost)를 의미하지 않고, '느릅나무 유(楡)' 자를 쓰는 '느릅나무고개가 있는 산' 이란 뜻이다.
유령산 정상석 모습.
유령을 지긋이 깔고 앉은 이분은?
10:08 느릅령 "유령산령당" 모습.
<느릅령(楡嶺) 전설>
황지에서 도계로 넘어가는 우보산에 '느릅령'이란 큰 고개가 있다. 옛날에는 삼척 지방에서 경상도로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했던 고개다. 고갯마루에 산신당이 있어서, 매년 음력 4월 16일에 통리와 도계지역 사람들이 모여 산신제를 올린다. 대동여지전도(大東與地全圖)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楡峴」으로,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척주지(陟州誌)에는「楡嶺」으로 표기되어 있는 고개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楡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큰 느릅나무(楡)가 고개마루에 많았다고 느릅령(楡嶺)이라 불렀다고 하나, 사실은 느릅나무보다는, 넘어 재, 넘을 재에서 온 말이 아닐까 하며, 또한 '늘어진 고개' 즉 낮은 산등을 의미한다고 짐작된다. 신라 때부터 태백산으로 천제(天祭)를 지내려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었으며, 안동과 봉화 쪽으로 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大東地志 楡嶺一 云牛甫山西一百里..) 옛날에는 맹수가 많아 이 고개를 넘자면 여럿이 모여야 했고,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갔다고 한다.
이 고갯마루의 유령산신각(楡嶺山神閣)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황지에 사는 효자 한분이 소달장(도계장)에 조상 제사에 쓸 제수를 사러 갔다. 같이 간 사람들은 먼저 고개를 넘었고 효자 양반만 남게 되었는데, 그날 밤이 조상 제삿날이라 아니 갈 수 없었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고개를 올라오니 큰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에게 덮쳐 들었다. 놀란 효자는 그만 기절을 하였고, 한참만에 깨어보니 큰 범이 옆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데 범이 말하기를, "나는 이곳 산신이다. 그동안 너희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고 고갯길을 함부로 다니기에 너희들을 혼내주고 잡아먹었다. 오늘 너를 잡아먹으려 했으나 하늘이 낸 효자라 살려 보내니, 돌아가서 산제(山祭)를 정성껏 지내면 다시는 재앙이 없으리라"하더니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장에 갔다가 먼저 돌아온 사람들이 효자 양반이 걱정되어 횃불을 들고 고갯마루를 찾아가 보니, 효자 양반이 무사했다. 효자 양반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다시 산신제(山神祭)를 지내기로 뜻을 모아 상장면, 하장면, 소달면 주민들이 합심하여 고갯마루에 산신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효자 양반이 산신에게 계시를 받은 날이 음력 4월 16일이라서 매년 그 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유령산령당'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백두들.
유령제를 지내게 된 유래문.
오늘은 유난히 발에 물집이 잡힌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나도 그중 한명이지만, 그렇게 멀고 험한 대간길에도 멀쩡했던 발이 ...ㅉㅉ
앞으로 펼쳐질 낙동길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경고라도 하는 듯하다.
10:35 우보산 오름길 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척시 방향.
돌아본 낙동정맥 모습.
10:50 무슨 버섯일까?
11:05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통리역이 내려다 보이고,
우보산의 묘지를 지키는 문관석 조각이 등로를 지키고 있다.
당겨본 통리역.
<통리 기차역>
마을의 사방에 산이 높고, 그 가운데로 길게 골짜기가 형성되어, 흡사 구이(구유)처럼 생긴 곳이라 하여, '통 통(桶)', '마을 이(里)'라 하여 통리(桶里)라 부르게 된 동네이다. 일설에는 옛날 이곳에 속이 빈(구새먹은) 통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통나무 통', '마을 이'라 하여 통리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한 때는 통의(通義) 또는 통리(通里)라고도 불렀는데, 마을의 동쪽에 있는 통골을 넘어가면, 삼척시 원덕면 쪽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고 해서 통할 '通'자를 써서 통리 또는 통의(通義)라 불렀다 한다.
정맥길은 통리역을 통과하여 사진의 우측 능선으로 이어져 간다.
11:08 통리 도착.
11:19 모든 회원들이 무사히 도착하고,
버스에 올라 태백을 통과하여 산행 출발지인 피재를 지나,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탐방에 나선다.
<검룡소>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검룡소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이깔나무 빼곡한 널따란 산길을 1.3km쯤 걸어 오르면, 검룡소가 나온다. 금대봉의 고목나무샘·물구녕석간수·제당굼샘 등에서 처음 솟은 샘물은, 각각 지하로 1~2km쯤 흘러 내려와 검룡소에서 다시 솟구치는데, 웬만한 샘물은 엄두도 못 낼 하루 2,000~3,000톤이나 되는 양이다. 예전 조선 시대에는 최상품의 샘물로 인정받던 평창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었으나, 1980년대 정밀측정 결과, 검룡소에서 흐르는 물줄기의 길이가 32km나 더 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묻혀 있던 검룡소는 일약 한강의 발원지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검룡소는 오랜 세월 동안 솟아 흐른 물살로 인해, 깊이 1~1.5m, 넓이 1~2m의 석회암반이 푹 파였는데, 곧바로 20m에 이르는 와폭이 계단을 이루며 용틀임한다. 또 검룡소에서 솟은 검룡수(儉龍水)는 사계절 내내 9℃를 유지하기 때문에, 물이 흐르는 주변 바위에는 한겨울에도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다. 물맛 역시 그윽하게 혀끝을 감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오르다가, 검룡소에 이르러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곳이 없음을 알고, 그 자리에서 용이 되는 수업을 쌓았다고 한다. 이때 이무기가 못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검룡소에서 쏟아지는 와폭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런데 검룡소에서 머물며 용이 되는 수업을 쌓던 이무기가, 부근에서 풀을 뜯다가 물을 마시러 오는 소들을 잡아먹자, 화가 난 마을 사람들이 검룡소를 메워버렸고, 이무기는 결국 용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검룡소는 1980년대에 다시 복구되었다고 전한다.
이렇듯 특별한 전설이 서려있는 검룡소는, 어느 계절에 가도 항상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철철 넘친다. 온갖 야생화가 다투어 피어나는 요즘 같은 계절이라면, 식물 생태계의 보고로 꼽히는 금대봉의 아름다운 풍광도 덤으로 감상할 수 있어 더없이 좋다.
11:55 검룡소 주차장 위 들머리에 세워진 표석.
검룡소 안내판.
옆 계곡물을 그냥 떠서 마신다는 관리사무소 직원의 예기를 듣고서,
'여기서 알탕을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며 검룡소로 향한다.
대덕산 등산로와 검룡소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세워진 안내도.
뭐 하시는 거지요!
검룡소 가는 길이 너무 고와서 흙 묻은 신발을 신고 걷기에 민망해서리 ..ㅉㅉ(변명?)
비가 많이 오는 날은 검룡소 가는 길이 폐쇄되는 이유다!
12:18 검룡소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
이무기가 소(沼)로 들어가기 위해 몸무림 친 흔적인지!
12:15 검룡소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가 보일 정도다.
물맛 좋습니다. 집에서 먹는 수돗물과 꼭 같습니다.
수돗물 그냥 마셔도 될 듯합니다만 ..ㅋㅋ
한강물 같이 마신 분들과.
검룡소 오름 계단을 내려서며.
무슨 꽃?
노랑물봉선(Impatiens noli tangere)
<노랑물봉선 Impatiens noli tangere>
과 명 : 봉선화과
분포지 : 울릉도, 중 . 북부 산지
개화기 : 8~9월
결실기 : 10월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야생하는 봉선화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들을 특히 물봉선이라고 한다. 울릉도 및 중부 지방의 습지변과 계곡 등에서 자란다. 높이는 60센티미터 가량 되고, 8~9월에 꽃이 피며, 10월에 씨앗이 여문다. 줄기는 전체로 연약하고 털이 없으며, 잎이 어긋나고 잎의 수가 적다. 꽃은 통꽃으로 줄기와 잎의 겨드랑이에 고깔 모양으로 매달려 피는데, 아름다운 모습을 풀잎 뒤에 숨기고 있는 듯하다. 가을에 벼이삭이 누렇게 익을 무렵, 도랑의 초원에서 다른 꽃과 어우러져 노랗게 핀 모습은 청아하기 이를 데 없다.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소박하고 정서적인 우리 꽃으로,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다.
대덕산 방향으로 알바 다녀오신 총무님 내외분이 올라오신다.
오늘 산행이 짧았다고 이렇게까지 산행 시간을 채우려는 그 의지는 진정코 본받기 힘든 저희들로서야 ...ㅉㅉ
아무리 오래 걸어도 마냥 기분 좋을 것 같은 숲길을 따라 다시 주차장으로 향한다.
걸어서 내려오며 다시 징검다리도 건너고,
근데 깨끗한 계곡물을 보면 아마도 그냥 빠지고 싶어 지던디!
김종협님의 정성스런 사진, 즐감입니다 !
얘들아 ~~, 샘이 누구랑 손잡고 간다!
다시 버스를 타고 피재를 거처 태백으로 들어왔다. 왜?
앞으로 걷게 될, 낙동강 발원지를 답사하러!
<황지연못의 전설, 황부자 전설>
옛날 황지연못 터에 황동지라는 부자가 살았는데, 매우 인색한 노랭이였다. 어느 날 외양간에서 쇠똥을 져내고 있는데, 남루한 차림의 한 노승이 찾아와 염불을 하며 시주를 청했다. 시주할 양식이 없다는 황부자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염불만 하고 서 있는 노승을 보자, 황부자는 심술이 나서 치우고 있던 쇠똥을 한가래 퍼서 바릿대에 담아 주었다.
노승이 말없이 돌아 서는데, 마침 방앗간에서 아기를 업고 방아를 찧던 며느리 지씨가 이 광경을 보고 달려와 노승을 붙잡고,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내고 시아버지 몰래 찧고 있던 쌀을 한 바가지 시주하였다. 물끄러미 지씨를 바라보던 노승은,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 오시오" 하였다. 지씨는 아이를 업은 채 노승의 뒤를 따라나서는데, 노승이 말하기를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송이재를 넘어 지금의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렀을 때, 며느리는 자기 집 쪽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자, 노승의 당부를 잊고 그만 뒤를 돌아보았다. 이때 황부자 집은 땅 밑으로 꺼져 내려 큰 연못이 되어 버렸고, 황부자는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 뒤돌아 보던 며느리는 돌이 되어 구사리 산등에 서 있는데, '미륵바우'라 부르고 있으며 흡사 아이를 업은 듯이 보인다. 옆에는 개바우라 하여 집에서 며느리 뒤를 따르던 개가 함께 돌이 되어 있다. 그때 집터는 세 개의 연못으로 변했는데, 제일 위쪽의 큰 연못(상지)이 집터로 마당늪, 중간(중지)이 방앗간 터로 방앗간늪, 아래에 있는 작은 연못(하지)이 변소 자리로 통시늪이라 한다.
이 지방에 전해오는 노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며느리가 돌이 된 것은 노승의 "뒤 돌아보지 말라"는 당부를 잊고 뒤돌아 봐서 돌이 된 것이 아니라, 늙은 시아버지를 버리고 저만 살자고 달아났기 때문에 벌을 받아서 돌이 된 것이라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황부자는 큰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연못은 1년에 한두 번 흙탕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무기가 된 연못 속의 황부자가 심술을 부려서 그렇다고 한다. 실제로 30여 년 전만 해도 연못에 큰 나무 기둥이 여러 개 잠겨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황부잣집 대들보와 서까래라고 하였다. 그러나 연못 부근의 지반이 물러, 오래된 나무가 연못에 쓰러져 썩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
황지 못은 세개가 있다.
상지(上池)는 둘레가 100m로 전설에 황성가(黃姓家)의 집터요,
중지(中池)는 둘레가 50m로 황성가의 방앗간 자리이며,
하지(下池)는 둘레가 30m로 가장 깊은 못이며 변소 터라 이른다.
수량은 무한 량으로 대한(大旱) 시기나, 우기의 대홍수 시기나, 수량의 증감을 모르는 항상 동일한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여름은 차고 겨울은 따뜻하다. 물밑까지 맑고 투명하여, 어족이 전혀 살지 않는 못이니, 황지라 하여 더욱 유명하다. 상지의 남쪽 언덕에 큰 구멍이 있는데, 수심을 알지 못하는 수굴이다.
황지못은 해발 725m의 고원지대로,
옛 삼척군 황지읍 황지리로 지금의 태백시 황지동이다.
낙동강의 발원지로 잘 단장된 시민 휴식처로 유명한 곳이다.
13:33 황지 상지(上池) 모습.
13:35 황지를 살펴보며 황부잣집 금고라도 찾을 요량으로..ㅋㅋ
상지(上池) 전경.
낙동강 강물은 식수로 이용하지 않는지..?
먹는 물에 돈 던지게 만들어 놓은 넘들의 머리에는 뭣이 들어 있을까!
아마도 그분들은 검룡소 물을 길어다 먹나보다.
중지(中池) 모습.
하지(下池) 모습.
황지 탐방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서 태백시를 두어번 맴돌다가 겨우 찾아간 '태백한우골' 고깃집에서,
따님과 함께한 서여사님, 아름다우십니다.
글구 행복한 모습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인터넷에서 나름 유명한 집을 검색했었는데,
그 집이 요즘 좀 맛탱이가 갔다며 이 집을 소개받았다.
만족해요.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구호는, "아름답게 삽시다" 란다.
"아름다운 당신을".... "위하여"... 짠!
14:01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한다.
안녕 ~~!
21:03 늘 그렇듯이 영등포에서 다시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나만 없으면 이러신다니까...!
"그러게 술버릇 고치지 말랬지..." ~~ 허걱
이제 우리는 낙동정맥 종주를 시작을 했고,
우찌 되었던지 간에 앞물결은 뒷물결에 떠밀려 남해 바다로 갈 수 밖에는 없다!
낙동강은 바다로 흘러가며
안개로.. 논으로.. 땅으로.. 잦아들어도,
또 다른 물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넘치듯이
넉넉한 가슴으로 놀며 쉬며 가다보면,
넓고 넓은 남해 바다에 닿으리라!
조상님께 감사드리는 추석명절을 뜻깊게 보내시길 빕니다^^
2009. 9. 2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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