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낙동정맥 09차(창수령~곰취농장) 영양군. 영덕군.
산 행 일 : 2008. 01. 26.(토)
산행코스 : 창수령(자라목이) ~ 울치재 ~ 맹동산 상봉 ~ 곰취농장 + 하삼의
(약 10km, 9시간)
산행참가 : 20명.
<산행지도>
지난 수요일까지 전국적으로 비교적 많은 눈이 내렸다. 특히 강원 산간지방에는 40cm 이상의 적설량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서는 올 겨울 들어서 가장 매서운 추위가 전국들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서울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고, 낮 최고 기온이 영하 3도를 기록했다. 이쯤 되니 자연히 금번 산행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지 않을 수 없어서 석보면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 보았더니, 다행히 눈이 그렇게 많이 쌓이지는 않았다며, "조금 위쪽인 수비면에는 엄청 많이 내렸는데..."라며 여운을 남긴다. 약간은 안도해 보기도 하지만 고도가 500m 이상이면 비가 아니고 눈이 내렸을 테고, 녹지도 않았을 터이니, "그러면 그냥 옆으로 세지 뭐!"라고 위안해 보며, 조금은 심설산행에 대한 기대도 가지고 금욜이 되기를 내심 기다리기도 했다.
본디 이번 산행은 창수령에서 화매재까지(도상거리 24km)로 공지를 했지만, 워낙 눈이 많이 쌓여서 겨의 10시간 동안에 9km 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맹동산 상봉을 지나 곰취농장 임도에서 낙동길 잇길를 마감하고 우측 하삼의로 탈출하였다.
지난 산행때와는 달리 버스는 정상적으로 달려서 산행 들머리가 있는 창수령에 도착하니 03:42을 가리키고 있었다. 추위에 대비해서 온몸을 꽁꽁 싸는 산행 준비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산행 준비를 마치고 03:58에 창수령 고개 임도 입구의 들머리로 들어서며 낙동정맥 산행을 시작한다.
무릎이 빠지는 심설 럿셀은 이번에도 변함없이 손총무님이 앞장서는데,
강추위로 눈이 모래처럼 쌓여 있어서 뒤따르는 것 조차도 쉽지가 않다.
눈쌓인 산등성이를 헤쳐가는 백두들.
산행 초반이라 힘찬 발걸음의 20여명이 지나간 흔적이 깊게 쌓인 눈밭에 깊은 골짜기를 만들고 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으면 여기 689봉까지 15분여 걸렸을 텐데, 거의 50분이나 걸려서 689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무릅을 덮는 눈도 문제였지만, 689봉에서 능선 좌측 아래로 내려가야 되는데,
그만 표지기를 놓치고 직진하는 바람에 30여분 알바까지 하고서야 다시 봉우리로 돌아왔다.
쌓인 눈이 워낙 깊어서 등로의 흔적은 전혀 분간할 수 없었고,
날은 어둡고 표지기가 드문 곳에서는 여지없이 헤메기를 수없이 거친 후에,
다시 680봉에서도 잠깐의 알바를 했다.
울치재까지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2시간40분만에야 도착한다.
<울치재/울티재/읍령(泣嶺)>
영양읍 양구리와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를 잇는 고개로, 동쪽 영해에서 영양, 안동, 서울로 가는 길목이었다. 창수면과 영양군 경계에 있는 독경산(讀經山)의 줄기로, 창수에서 영양으로 넘나드는 산길로써 울티재는 재가 높고 험하며 계곡도 깊었다. 옛날에는 석양(夕陽)에 이 재를 넘으면 반드시 그 나그네는 참상을 입었다 해서 '울고 넘는다'는 뜻으로 울티재(泣嶺)라 했다 하며, 저녁만 되면 이 재 넘어가기를 꺼려했다 한다.
어느 날 원님이 오다가 길에서 풀벌레를 보고, "저 벌레가 무슨 벌레냐?"하고 물었다.
"범아제비입니다." 하고 하인이 대답하였다.
조금 더 오다가 호랑이(범)를 만났다. 겁이 났으나 정신을 차리고,
"내가 오다가 자네 백부(伯父·阮丈)를 만났으니 길을 비켜라" 하니,
범(호랑이)이 길을 비켜주어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울티재(泣嶺)와 감사 손순효(孫舜孝)>
汝揖華山呼萬歲我將淪命慰群氓 (여읍화산호만세아장논명위군맹)
울티재는 영해 고을의 교통의 요지로, 영해 고을을 오고 가는 대소의 관리들이 처음 이 고개를 넘으면 반드시 죽임을 당하곤 하였다. 그래서 영해 고을의 관리가 되는 것을 모두가 꺼리게 되었다. 그래서 손순효(孫舜孝)가 경상도 감사가 되자 바로 울티재에 내려와 주위를 살핀 다음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베고 글을 쓰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個中輕重誰能會白日昭然照兩情 (개중경중수능회왈일소연조양정)
너희들이 공손히 화산곡(華山曲)을 만세토록 부른다면, 내 장차 임금의 명을 받아 너희들을 위로하리라.
개개 일들의 가볍고 무거움을 누가 능히 헤아리랴, 밝게 비추는 햇님이 우리 양 충정을 비추어 주지 않은가.
그러자 바로 괴이한 일들이 없어지고, 이후로는 흉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울티재는 괴이한 일들이 없어졌다고 하여 파괴현(破怪峴)이라 하였다고 한다.
<영양군>
영양군은 삼국시대에 신라의 판도에 들어가 신라 중기부터 고은군으로 불리다가 말기에 영양이 되었었다. 고려에 와서는 1018년인 현종 9년에 지금의 영덕군 영해면에 있었던 예주부에 속했다가 1179년인 명종 9년에 영양현이 되었다. 이때에 세웠던 관청 건물은 1358년 공민왕 7년에 영해의 남쪽 섬인 축산도에서 상륙하여 영해, 영양, 청기, 예안, 순흥, 단양, 제천까지 쳐들어와 노략질한 왜구가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불태웠다고 전한다. 영양현은 조선 왕조에 들어와서 1413년인 태종 13년에 전국의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에 청기현과 합쳐진 뒤에 관청이 없이 영해 도호부에 속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에는 때때로 있었던 군사 훈련이나 납세와 공무를 위해 주민들이 영해까지 가야 했다. 그런데 영양 지방에서 영해로 가려면 가까운 곳에서는 팔십리, 먼 곳에서는 백리 길을 걸어가야 했고 게다가 험한 산길인 울티재를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영양 주민의 고통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일월산에서 산세를 이어받은 높이 1,004 미터의 백암산이 다시 동쪽으로 뻗어 영양과 영해 사이에 이루어 놓은 이 재는 울티라고도 하고 한자 이름으로 읍령이라고 하는데 눈물을 흘리는 고개라는 뜻이다. 봄과 가을에 곡식을 관청에 바치려고 호랑이와 도둑이 들끊는 이 길을 넘어가던 영양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고 또 이런저런 까닭에 울며 넘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같은 영양군 안에서도 지금의 청기면에서 영해로 가려면 영양과 청기 사이를 가로막은 행곡령을 넘어야 하는데 그 이름도 ‘울며 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1633년인 인조 11년에 이곳 주민들이 현을 이곳에 설치해 달라고 진정하는 소를 올려 1676년인 숙종 2년에는 현을 설치하기도 했으나 인구가 적어서 곧 취소되었고 1683년에 가서야 영양현으로 따로 떨어져 나갈 수가 있었다. 임진왜란 뒤에 점차로 인구가 불어남과 함께 시작됐던 현 설치 운동이 쉰해 만에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그때의 영양현 땅은 지금의 영양읍, 일월면, 수비면과 청기면의 일부였다. 1895년에 영양군으로 승격했는데 1914년에 진보현에 속했던 입암면과 석보면이 옮겨와 면이 여섯개가 되어 비로소 군으로서 면모를 갖추었고, 1963년에는 울진군 온정면 본신리가 이군의 수비면에 들어왔다. 이 군의 영양면이 읍으로 승격된 것은 1979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름만 고쳐졌을 뿐이지 크게 달라진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영양군의 인구는 1972년에 68,582명이었으나 점차로 줄어들어 1980년에는 52,903명이 되었다. 같은 해에 이 군은 인구의 68퍼센트가 농가 인구였는데, 경상북도에서도 농사를 짓던 집이 가장 많이 비어 있는 군으로 꼽혔다. 지금도 영양 지방에서는 “당대에 타관에서 들어오면 돈을 벌 수 있으나 당대에 다시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근거를 찾기 어려운 말을 들을 수가 있다. 아마도 옛날에 성했던 풍수지리설의 잔재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많은 주민이 바깥에서 들어와 정착하기도 하지만 생활 기방이 다져지면 곧 뜨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도끼 맛을 보지 않은 울창한 원시림이 있었고 산나물과 약초가 절로 나며 산지를 개간하면 콩이나 고추나 담배를 심어 생계를 장만하기가 쉬운 곳이므로 바깥사람이 많이 들어왔으나 한편으로 거기에서 더 발전하기도 어려워서 당대에 떠나는 이가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군은 팔십년대에 들어서도 철도도 없고 포장된 도로도 없고 변변한 공장도 없는 정체된 고장으로 남아 있다.
울치재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여, 이정표 뒤쪽의 들머리로 오른다.
낙동능선을 두텁게 덥고 있는 눈으로 날이 밝았음에도 알바는 수시로 이어진다.
뒤돌아본 낙동능선. 아마도 독경산쯤인 듯하다.
눈 덮인 주위의 산들.
OK목장으로 이어지는 낙동 능선길.
능선 우측 아래의 OK목장으로 이어지는 임도에는 포크레인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무릎 위 까지 빠지는 눈길을 힘겹게 헤치며 낙동길을 더듬는다.
좌측 아래로 창수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시간은 흐르는데 이동거리는 쥐꼬리 수준이다.
온통 눈으로 몸단장을 한 나무들은 군데군데 화장이 지워져 있고,
그래도 아래쪽 가지에는 눈꽃이 피어 있다.
드디어 능선 너머로 아침 햇살이 비춰오니 한결 느긋해진다.
돌아본 낙동길가의 나뭇가지에는 눈바람이 동쪽에서 세차게 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게 묵묵히 깊게 쌓인 눈밭을 헤치는데, "밥 먹고 가자!"는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능선 동쪽 사면의 양지바른 곳으로 이동한다.
산행 시작부터 럿셀을 도맡고 있는 손총무님과 서여사님.
양지바른 아침 식당을 찾기 위해 능선 동사면으로 이동하는 백두들.
바람 없는 양지바른 동쪽 사면으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는다.
아침식당 주위의 풍광은 그지없이 좋지만,
한 군데도 빤한 곳이 없어서,
식당을 마련하려고 허리까지 쌓인 눈을 한참이나 파낸다.
허기가 심한 분들은 잠시를 참지 못하고 서둘러 식사를 시작하고,
적당히 파낸 눈밭을 다져서 앉을만한 장소를 만들고는 아침식사를 시작한다.
눈을 파 헤친 곳은 그래도 아늑해 보이기는 하다.
그래도 라면 국물을 먹어 보겠다고 버너에 불을 붙여 보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식사를 마치고, 멋진 풍광을 가진 식당을 뒤로하고 낙동길로 돌아간다.
드디어 OK목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목장 초지와 고랭지 채소밭도 온통 흰색으로 덧칠되어 있다.
바람이 만든 추상화.
천만다행스럽게도 나무가 없는 능선으로 나서니,
눈도 날아가 버려서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 준다.
낙동능선 남서쪽 주왕산 방향 조망.
OK목장 초지로 변한 낙동정맥 능선 모습.
심설 럿셀의 부담이 줄어들자,
한결 가벼워진 발검음에 표정도 밝아진다.
산행기에서 보았던 돌탑이 나타난다.
돌아본 낙동능선.
서쪽 방향 조망.
돌탑의 어느 쪽으로 가야 눈(雪)이 적을까? 답 : 오른쪽 ..ㅋㅋ
돌아본 돌탑 방향.
아까 그 포크레인이 제설작업을 해 놓은 OK목장으로 이어지는 임도에 올라선다.
돌아본 낙동능선의 채소밭.
돌아본 북동쪽 백암산 방향의 산군들!
돌아본 북동쪽 칠보산 방향.
아마도 칠보산쯤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우전방으로 OK목장 우사가 보인다.
우측의 우사로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접어드는 순간.
살짝 얼은 눈의 표면이 꺼지며 허리까지 빠져버린다.
혼자서 탈출이 어려워 동료의 손길을 잡고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눈이 조금이라도 적게 쌓인 곳을 찾아 수없이 철조망을 넘나들어야 하는데,
녹슨 철조망이라 넘나들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그래도 옷가지가 걸려서 쉽지가 않다.
눈밭을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묵묵히 낙동길을 가는 백두!
앞사람의 발자국을 밟고서 따르는 백두들.
연출하지 않은 멋진 그림!
다시 임도에 올라서서 돌아본 낙동능선!
눈 덮인 임도를 따른다.
임도 옆 나무에는 눈꽃과 얼음꽃이 함께 피어있다.
눈꽃이 만발한 산 봉우리가 장관이다.
뒤돌아본 OK목장 방향.
우측 멀리로 일월산이 우뚝 솟아 있다.
임도 갈림길 삼거리에서,
임도 좌측 철조망에 걸린 표지기를 따라 좌측 봉우리로 들어선다.
우측의 봉우리로도 임도가 연결되어 있다.
이곳 임도삼거리에서, 그냥 직진을 했더라면 화매초교 삼의분교로 하산할 뻔했다.
직진의 임도로 들어서다가 다시 돌아나와,
사진에서 좌측의 임도를 따라야 했지만,
철조망에 걸린 표지기를 철조망을 넘으라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여,
모두들 철망을 넘어 봉우리 위로 향하는데..ㅉㅉ
임도로 우회하는 편한길을 두고,
의도치않게 본디의 정맥능선을 고수하려다가,
한참의 시간을 소비하게 되는 길로 들어서는 백두들.
철망을 넘어 봉우리로 오르는 백두들.
(그냥 좌측의 우회 임도를 따랐으면 좋았을 텐데..ㅉㅉ)
봉우리를 향해 가고 있는 수원의 조사장님.
남서쪽 주왕산쯤으로 보이는 방향.
서쪽 방향 조망.
서북쪽 방향 조망.
봉우리 넘어서니,
중앙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맹동산(756)이고, 그 앞 봉우리 아래로 희미한 임도 흔적이 가늠된다.
잠시 전 철망을 넘지 않고 임도를 따랐으면 그 임도(낙동정맥)로 이어졌을 것이지만,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는 목장 초지 능선을 지나, 건너다 보이는 능선으로 알바를 가게 된다.
돌아본 일월산 방향.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갔어야 했는데, 우측 능선으로 알바를 간다.
동쪽 칠보산 방향 조망.
칠보산 뒤쪽 동해 바다 위로 펼쳐진 구름이 멋지다.
봉우리에서 직진을 했어야 했는데,
우측으로 휘어지며 알바 간 선두들을 따라오는 백두들.
낙동능선에서 서쪽의 지능선으로 올라 주변 능선의 모양새를 살피는 조사장님.
바로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맹동산(756봉)이고, 뒤쪽 멀리로 칠보산 줄기가 둘러져 보인다.
현재 이곳은 주 능선에서 우측으로 살짝 벗어난 능선으로 알바 중이었다.
알바 중에 돌아본 백암산 방향.
아래 사진의 흰 눈으로 덮인 능선이 낙동정맥 능선이다.
살짝 당겨본 백암산 방향.
이 능선은 낙동정맥 능선이 아니네, 저쪽 능선으로 갑시다!
잠깐 옆 능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백두들.
능선을 내려서는 곳은 눈썰매장.
엉덩이 사용 가능! ..ㅋㅋ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가,
천연 눈썰매장 이용권을 사용한다.
회장님도 어린 동심의 세계로!
눈썰매장을 뒤로하고 알바에서 돌아와 낙동정맥 능선으로 향한다.
눈밭을 가로질러 건너편의 낙동정맥 능선으로 향한다.
주위는 온통 설화가 만발해 있다.
우측 봉우리에서 현 위치로 왔어야 했는데,
좌측 봉우리로 잠시 알바를 다냐와서 다시 낙동길로 복귀했다.
낙동정맥인 임도로 들어서는 백두들.
좌측의 낙동능선을 두고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아무도 앞사람이 간 흔적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왜냐면 힘드니까..ㅉㅉ
이제 낙동정맥 종주 산행은 뒷전이고, 심설 눈꽃 산행 모드로 전환한다.
올 겨울 눈이 내린 이후로 아무도 지난 흔적이 없는 새하얀 눈을 밟으며,
그렇게 아무도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오늘 예정된 코스 종주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지니,
오히려 마음도 편안해지며 걷기조차 힘든 눈밭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전방으로 고랭지 채소밭과 맹동산 상봉쯤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보이고,
전방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임도를 따라 내려선다.
가야 할 맹동산 상봉 위의 산불 감시탑이 시야에 들어오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나란히 줄지어서 간다.
막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선두에서 럿셀을 담당하는 총무님이 맹동산 상봉을 배경으로!
돌아본 영덕군의 칠보산 방향.
살짝 당겨본 백암산 방향.
좌측 동해 방향으로 대진해수욕장도 보인다.
맹동산 상봉 오름길에 돌아본 낙동능선.
알바 갔다가 눈썰매를 타고 놀던 곳도 보인다.
돌아본 낙동능선 길에는 백두들이 오고 있다.
눈이 바람에 쓸려 날아가 버린 걷기 쉬운 일부의 임도구간이 반갑다.
한시간 반쯤 전에 알바 갔던 능선이 지척이다.
저 정도 거리면 30분이면 왔어야 될 거리인데, 거의 세배인 한시간 반이 걸렸다.
뒤쪽 백암산과 칠보산을 배경으로 낙동길을 걷는 백두들.
칠보산을 배경으로 영화 촬영 중인 백두들.
좌전방으로 가야 할 맹동산 상봉이 무척 부담스러워 보인다.
임도에는 허리까지 눈이 쌓여 있어서 좌측의 맹동산 상봉으로 바로 오르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임도를 벗어나니 움직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눈이 쌓여 있어서 다시 임도로 돌아나온다.
최근에는 정비를 하지 않은 듯한 임도 구간에 들어서니,
주변의 나무들이 만발한 설화 터널을 만들고 있다.
좌측 맹동산 상봉 방향 언덕의 설화가 무너져 내릴 듯 매달려 있다.
맹동산 상봉을 다가서며 돌아본 낙동능선.
임도 우측 아래 계곡 모습.
눈 덮인 임도를 한걸음 한 걸음씩 진행하며,
돌아본 칠보산 방향.
맹동산 상봉 바로 서쪽 아래 임도 도착.
이곳에서 맹동산 상봉을 오를 것인지를 두고 잠시 갑론을박하다가,
어차피 오늘 예정 구간 종주가 어렵고 탈출이 불가피하니,
맹동산 상봉에서 인증이라도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좌측의 맹동산 상봉으로 방향을 잡고
허리까지 빠지는 눈구덩이를 헤치며 잠시 오르니..
이내 맹동산 상봉 정상에 도착하여,
돌아본 백암산(좌측)과 칠보산(우측) 방향.
<맹동산 상봉(萌童山, 812m)>
경북 영덕군 창수면과 영양군 석보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맹동산은 주위의 다른 산보다 높고 특히 바람이 세어서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풀들만 자란다고 하여 맹동산(민둥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산 아랫마을 역시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민둥'에서 '맨둥'으로 소리가 바뀌었다가 마침내 맹동산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아울러 이 마을에는 농바위가 널리 알려져 있다. 농바위는 마치 농을 포개 놓은 것 같이 두 개의 바위가 겹쳐 있다. 예부터 석보에서는 큰 산 주령(珠嶺)의 상징으로 잘 보호하여 온 바위이다 (석보면 소개)
동북쪽 칠보산 방향.
북북동쪽 백암산(좌)과 칠보산(우) 방향.
북북서쪽 일월산 방향.
알바 후 눈썰매를 탔던 봉우리 뒤편 멀리로 일월산이 보인다.
당겨본 일월산 모습.
지나온 낙동길과 뒤쪽으로 백암산과 칠보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뒤이어 맹동산 상봉으로 올라오는 백두들.
남서 방향으로 주왕산쯤으로 보이는 산줄기가 우람해 보인다.
살짝 당겨본 주왕산 방향의 산줄기.
맹동산 상봉 증명.
좌측의 나무 정상 표지목이 왜 높게 세워져 있는지를 짐작하겠다 (雪)
잠시 전 눈썰매를 타던 곳도 당겨 보고,
그 뒤편으로 보이는 일월산도 당겨 본다.
지나온 낙동길이 아득하다.
(거리는 지척이지만 오늘 같은 경우 시간上..ㅉㅉ)
다시 한번 당겨본 주왕산 방향.
맹동산 상봉을 돌아나와 다시 임도를 따라 봉화산을 향한다.
주변 나무에 열린 고드름이 아찔해 보이고, (떨어지면 사망!)
심설을 헤치며 힘겨운 발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걸음을 더욱 더디게 한다.
저기 앞쪽으로 봉화산과 명동산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당겨본 명동산은 그리 쉬 다다를 것 같아 보이지를 않는다.
눈꽃을 감상하며 힘든 한걸음 한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지팡이도 눈밭을 헤미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발아래의 쌓인 눈도 힘드는데, 나무에 매달린 눈덩이도 걸음을 더디게 한다.
우측으로 천마농장쯤인 듯한 인가가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보이고,
가끔씩 나타나는 표지기에 의지해서, 임도를 두고 낙동능선 숲길을 더듬어 들어간다.
그래도 내리막에서는 좀 더 속도를 내어 보지만, 별무 소용이 없다.
겨우 눈으로 두텁게 덮인 낙동능선 숲길을 벗어나 임도로 내려선다.
앞쪽으로 봉화산쯤이 보이며 지도상 곰취농장에 겨우 도달한 듯한데,
이미 시간은 많이 지체되어 오후 한시에 가까워져 있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 된 듯하다.
봉화산을 넘어서 삼의교로 탈출을 할 것인지,
이곳에서 하삼의로 탈출할 것인지를!
지금까지 한 번도 중도에서 탈출을 한 적이 없는 백두산우회였지만,
예정된 화매재까지 24km 중에서 9시간 동안 걸어서 반도 안 되는 10km를 왔다.
더 이상의 진행은 불확실성을 폭증시킬 수 있는 일이기에,
오늘은 여기에서 탈출을 하기로 한다.
쌓인 눈이 너무 깊어서 이곳 곰취농장에서 하삼의로 탈출하자는 의견을 전하자,
모든 분들이 이구동성 신속한 탈출에 환호를 보내주어,
오늘의 낙동길은 여기서 마치고
하삼의로 탈출을 결정한다.
저기 보이는 봉화산은 다음 산행으로 미루고, 우측 하삼의 방향으로 탈출 길에 나선다.
탈출길에 들어서니, 흰 설원이 다시금 놀이터로 다가온다.
하삼의로 이어지는 계곡 방향.
오늘의 힘든 산행을 마치기로 결정하자 다들 얼굴에는 다시금 화색이 돌며,
제각각 하얀 설원에 혼자만의 발자국을 남겨본다.
하삼의로 탈출 중인 백두들.
하얀 이불을 포근히 덮고 잠든 분의 느낌도 궁금해진다.
농장 창고 옆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하삼의로 향한다.
하삼의로 내려가는 계곡 옆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백두들.
천마농장과 곰취농장 갈림길을 지난다.
하삼의로 흐르는 봉의곡 전경.
봉의곡을 따라 이어진 도로를 따라 하삼의로 내려간다.
하삼의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합니다.
우리의 애마가 눈길을 달리다가 길 옆에 치워놓은 눈과 부딪혀 상처를 입었지만,
화매재에서 기다리던 애마를 불러서 타고, 석개면 소재지의 식당으로 향한다.
석개면소재지에 위치한 대동식당(054-682-7904)에서,
돼지두루치기와 산채를 안주로,
한잔의 소맥에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낸다.
갱상도에서 보기 드문 상냥한 쥔~아줌씨.
전형적 갱상도 쥔장 아자씨.
뒤풀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한다.
임하댐 휴게소에 잠시 들러서 또 다른 추억도 남긴다.
모처럼 영파들이 오향장육집에서 회동을 가진다.
백두산우회 초유의 집단 탈출이 발생한 산행이었으나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
우리의 산행이 행복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오늘은 우리가 러셀을 해 놓았으니,
남은 구간은 누군가 다른 정맥꾼들이 러셀을 해 놓을 것을 기대하며..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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