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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호남정맥 25차(석거리재~조계산) :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생각하며 걸은 호남길

by 재희다 2010. 3. 14.

산 행 지 : 호남정맥 25차(석거리재 ~ 조계산) 순천시 외서면, 보성군 별교읍, 순천군.

산 행 일 : 2010. 3. 13.(토)

산행코스 : 석거리재 ~ 백이산 ~ 빈계재 ~ 고동산 ~ 굴곡치 ~ 조계산 + 송광사 주차장

(도상거리기준 15km + 6km, 10시간 소요)

산행참가 : 19명.

 

<산행지도>

 

 

호남정맥을 걸으며, 불교계에서 양대 종파의 중요사찰을 동서에 품고 있는 조계산을 그냥 능선 위로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조계산 장군봉을 기점으로 잡아 한번은 조계산의 서쪽에 위치한 조계종의 삼보사찰로 유명한 송광사를 탐방하고, 또 한번은 동쪽에 위치한 태고종의 총림인 선암사를 탐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 산행을 공지하자, 지난 11일 법정스님이 타계하셨다는 소식이 뉴스로 전해지고,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13일에 우리가 송광사를 탐방하기로 예정된 날에, 그 곳 송광사에서 다비식이 거행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이에 우리의 송광사 탐방을 선암사부터 가는 것으로 바꿀 것인지를 고민한 끝에, 스님의 다비식도 볼 수 있으면 더욱더 좋을 듯하여,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혹시 법정스님의 다비식으로 인해 버스의 출입을 제한할까봐, 석거리재로 향하던 길에 송광사까지 버스로 출입이 가능한지를 답사하고 난 후에, 다시 버스를 돌려 산행 출발 기점인 석거리재로 향한다. 다행히 새벽 3시쯤의 송광사 앞 주차장은 아직 텅 비어 있었고, 통행을 제한하고 있지도 않아서 산행을 예정되로 진행하기로 한다.

 

버스는 별다른 알바?도 하지 않았고, 이쪽 방면은 우리 기사님의 나와바리(?) 지역이라서 깜깜한 한밤중에도 속도를 내어, 송광사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시간쯤에 석거리재에 도착했다.

 

 

석거리재 휴게소 마당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한다.

 

석거리재는 벌교에서 광주로 가는 15번, 27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평소 교통량이 많다고 하나 아직 한밤중이라 길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 석거리재를 옛날에는 섭거리재라 불렀다 한다.

 

 

석거리재 휴계소 마당에서 간단한 몸풀기를 마치고, 바로 백이산 방향으로 호남정맥 산행을 시작한다.

 

석거리재를 출발하여 조그만 봉우리 하나를 지나면 우측 아래로 채석장이 있는데, 깜깜한 어둠 속이라 육안으로 확인은 할 수 나 능선 우측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노란 줄이 처져 있어서 별다른 위험을 느끼지 않고 무난하게 능선을 따라 백이산으로 오를 수 있다.

 

 

백이산 정상(584m) 도착.

 

<백이산(伯夷山, 582m)>
전남 순천시의 서쪽 낙안면과 벌교읍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낙안면의 서쪽 경계를 고동산에서 백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담당하고 있다. 『여지도서』에 "백이산은 관아의 서쪽 5리에 있다. 광주 무등산에서 뻗어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낙안)에 백이산은 읍치 서쪽 산줄기에 표기되어 있는데, 풍수적 측면에서 볼 때 우백호에 해당된다. 『1872년 지방지도』에서도 백이산이 우백호로서 표현되어 있다.

 

'백이산'이라는 명칭은 무척 귀에 익은 명칭이지만, 실재 백이.숙제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백이숙제의 고사와 연관이 있다면 이곳에도 고사리가 많이 있을텐데, 아직은 철이 아니니! 지난 산행의 막바지에서 바라본 백이산의 뾰쭉한 삼각형의 봉우리는 이곳에 올라오면 사방의 조망이 좋을 것으로 짐작을 하였지만 아직은 어둠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을 뿐이고, 남쪽 낙안읍성 방면으로 빛나는 야경만이 이곳에서의 조망이 좋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남쪽 낙안면 방향 야경.

 

오늘 산행이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감으로, 느긋하게 백이산 정상에서 증명사진도 남긴다.

 

 

 

빈계재로 향하는 백이산 내림길은 억새풀 사이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이어진다.

 

 

빈계재 도착.

 

빈계재 이정목.

 

<빈계재>
순천시 외서면과 낙안면의 경계로, 2차선의 58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빈기재/분계재(奔界峙-1760년 여지도)/(奔溪峙,分鷄峙)로 표기의 흔적이 보인다. 빈계재(牝溪峙)로 쓰인 기록은 조선조 말 김남파(金南波)의 시집 풍월집(風月集)에 보인다. 한편 백이산 아래에서 태어나 흙으로 낙안성을 쌓은 김빈길 장군의 이름을 따서 '빈길재'로 부르던 것이, 오랜 세월 동안에 빈계재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빈계재의 '닭'과 오금재(낙안/승주;蜈蚣峙)의 '지네'를 대비시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지난번 석거리재에서 산행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낙안읍성으로 이동할때 지났던 고개인데, 밤에 오니 전혀 낯선 곳이다.

 

고동산까지 5.5km라는 이정표를 뒤로하고 빈계재 들머리를 들어선다.

 

 

빈계재 들머리를 조금 오르면 좌측으로 철재 울타리를 따라 진행하게 되고,

 

 

무슨 용도로 만들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잡목이 울창한 심산에 철울타리는 한참 동안 이어진다.

 

 

511봉 오름길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백이산 방향.

 

 

511봉 도착.

 

 

시야가 트인 벌목지역에서 돌아본 백이산 모습.

 

서쪽 외서면 방향.

 

 

가야할 고동산도 시야에 들어오고,

 

능선 좌전방으로 가야 할 조계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어느새 날이 밝아서 지난 구간에 지나왔던 존제산도 백이산 우측 멀리로 뚜렷이 조망된다.

 

금전산과 낙안면 방향도 우측으로 조망된다.

 

당겨본 낙안읍성 민속마을 모습.

 

낙안면 방향 뒷쪽 멀리로 순천만이 보인다.

 

가야 할 고동산 정상부에 세워진 통신탑이 선명하다.

 

 

임도로 내려서서,

 

고동재까지 임도를 따른다.

 

 

고동재 전경.

길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면 고동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고동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임도는 오프로드용 차량이 다녀서 그런지 형편없이 망가져 있다.

 

 

고동산 오름길 임도 모습.

 

 

임도를 따라 고동산을 오르는 백두들.

 

 

고동산 오름길에 돌아본 백이산과 존재산으로 이어진 호남능선이 뚜렷하다.

 

 

돌아본 고동재 방향.

 

 

가야 할 조계산으로 이어진 호남정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야 할 고동산 정상부 모습.

 

다시 한번 백이산을 돌아보고,

 

낙안면도 이제 한눈에 들어온다.

 

당겨본 낙안읍성 뒤로 금전산과 오봉산이 우람해 보인다.

 

 

고동산 직전 봉우리에서 바라본 순천 방향 조망.

 

동남쪽 방향 조망.

 

남쪽 낙안면 금전산 방향 조망.

 

지나온 백이산 방향.

 

서쪽 송광면 방향.

 

서북쪽 조망.

 

좌측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이 고동산 정상이다.

 

 

고동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 할 조계산 방향.

 

당겨본 조계산.

우측 끝 봉우리가 장군봉이고, 좌측이 연화봉인 듯.

 

서북쪽 송광면 방향.

 

 

잠시 뒤 도착한 후미와 함께 고동산 증명사진을 남긴다.

 

 

<고동산, 709m>

고동산의 유래를 찾아보았더니, 임진왜란 발발 전에 산고동이 울었다고 하여 그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날씨가 흐리면 산고동이 울었다고 하는데, 주민들은 산고동이 울면 비나 눈이 오겠구나 했단다. 산고동이 뭔가 찾아보았더니, 고동(우렁)은 물에서 산다. 산(山)고동은 달팽이보다 훨씬 더 크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육지에 사는 달팽이 종류로는 가장 큰 종이라는 야그도 있다. 산고동은 우리나라 어느 높은 산의 산자락 아래의 습기가 좀 있으며 고목이 많고 바위돌들이 있는 곳에서 산다. 산고동은 소리 내어 운다고 하지만 너무 희귀한 것이라 실물을 보기도 어렵고, 울음소리를 들어 본 사람이 없는 듯 하다.(전설인 듯!)

 

 

고동산을 출발하여 조계산으로 이어진 호남정맥길을 이어간다.

 

고동산 내림길 억새 사이에 자리 잡은 선두팀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07:51 돌아본 고동산 모습.

 

비교적 등로 상태가 좋아서 그런지, 아침식사도 느긋하게 진행된다.

 

 

 

느긋하게 시작한 아침식사를 서둘러? 끝내고, (늦게 도착해서..ㅉㅉ)

 

조계산을 향해 출발한다.

 

 

통신탑 봉우리에서 돌아본 고동산.

 

 

송전탑을 지나며 돌아본 고동산 방향.

 

 

송전탑을 지나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서 바라본 가야할 조계산 방향.

 

조계산을 향해 호젓한 산길을 걷고 있는 백두들.

 

 

꽃피는 삼월에, 그것도 반도 최남단 임에도 아직 잔설이 남아 있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705봉을 지난다.

 

705봉 산불감시초소를 통과하는 백두들.

 

 

잔설을 밟으며 평탄한 능선길을 걷다보면,

 

 

연화봉 아래에 위치한 조계산의 명물이라는 '보리밥집'도 보이고,

 

당겨본 보리밥집 모습.

 

 

차량 통행이 가능해 보이는 장안치에 도착한다.

 

 

장안치에서 바라본 동쪽 순천시 방향 조망.

 

장안치에서 잠시 쉼을 하는 백두들.

 

 

장안치를 출발하여 호젓한 산길을 쉬엄쉬엄 걷다 보면,

 

 

큰굴목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송광사 방향으로 조금 가면 아까 보았던 그 보리밥집 있다고 한다.

 

조계산에는 굴목재가 여러 곳에 있는데, 굴목재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일제시대 지하로 '굴'이 뚫릴 '목'이라 하여 굴목재라 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는 이 설은 원래 지명과 전혀 무관하다고 한다. 어원의 유래로 '골짜리를 가로막고 있는 목재'란 뜻의 골목재나 오랫동안 조상들이 사용해 온 '굴맥이재'로 써야 옳다고 주장한다.

 

큰굴목재부터는 조계산 도립공원 지역이라서 그런지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이렇게 별다른 굴곡이 없는 호젓한 능선길을 조금 따르면,

 

 

이내 작은굴목재에 도착한다.

 

작은굴목재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고로쇠 아짐씨에게서 시원한 고로쇠 물을 한 그릇씩 얻어 마신다.

물론 금전을 지불하고서..ㅉㅉ

 

 

 

지난 연말 쯤, 울산지점으로 전근을 감에 따라 보기 힘들었던 손지점장도 어렵게 산행에 참가했다.

 

 

잠시 후 도착한 후미들도 고로쇠물을 한 그릇씩 비우고, 모두 함께 조계산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오름길.

 

 

배바위 도착.

 

<배바위>
'배바위'에는 아주 먼 옛날에 온세상이 물에 잠기는 어마어마한 홍수가 발생하여 사람들은 이 바위에 밧줄을 묶고 기다렸다가 홍수가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흡사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느낌이다. 1900년대까지도 조개껍질이 붙어 있었다고도 한다. 배바위를 '신선이 이 바위에서 바둑을 두었다'하여 '신선바위', 즉 선암(仙巖)이라 부르게 된 데서 선암사가 유래했다고도 하고, 다른 전설은 '장군봉' 장군의 도장이라 하는 '인장'바위라고도 부른단다.

 

밧줄을 잡고 배바위로 올라,

 

걸어온 호남능선도 돌아보고,

 

동쪽 방향으로 선암사와 상사호도 조망한다.

 

당겨본 선암사 모습.

 

가야 할 장군봉을 배경으로.

 

지나온 호남능선을 배경으로.

 

 

 

오늘 언제쯤에 가게 될 송광사를 품은 연화봉도 물끄러미 바라본다.

 

 

 

배바위를 내려와 장군봉을 향한다.

 

 

조계산 정상 장군봉에서 돌아본 호남정맥.

 

<조계산 887m>

조계산의 원래 이름은 송광산이다. 전남 승주군 송광면에 위치해 있으며, 덕유산 추월산 무등산과 더불어 호남의 4절로 꼽히는 명산이다. 이 산이 송광산이라고 불려진 데에는 몇 가지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장차 이곳에서 십팔공이 배출되어 불법을 널리 펴게 될 것이라 하여 송광이라고 했다는 것이 그 첫번째 설화다. 송(松) 자를 십팔공(十八公)으로 파자하고, 광(廣)자를 불법광포의 뜻으로 해석한 데서 유래된 말일 것이다. 또 다른 설은 보조국사와 관련이 있다. 국사가 처음 절터를 잡을 때, 나복산(현재의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더니 국사전의 뒷등에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뒷등 이름을 치락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올빼미의 방언)라고 풀었다. 그러나 포고아 김영수는 이 산에 소나무가 가득 차 있었으므로 지방 사람들이 이 산을 예로부터 솔메라고 불러왔던 것이며, 그래서 송광사라는 이름이 생긴 것으로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광은 원래 언덕을 의미하는 강(崗)이었다는 것이다. 소나무는 우리 선인들에게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종교생활 내지 예술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불가에서는 선풍이 진작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참선 수도하는 승려들의 집단적인 수련장을 총림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총림이란 빽빽이 들어찬 소나무의 숲을 말하는 것이다. 호남 불가의 총림이라고 할 수 있는 송광사가 가람을 배치한 이곳을 송광산이라고 부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수차례의 전화(戰禍)를 입어 울창하게 들어차 있던 거송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곳은 고온다습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불렸으며, 피아골·홍골 등의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폭포·약수 등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동쪽의 계곡물은 이사천(伊沙川), 서쪽의 계곡물은 송광천으로 흘러드는데, 특히 비룡폭포가 유명하다. 서쪽 기슭에는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사찰(僧寶寺刹)인 송광사(松廣寺)가 자리한다. 이곳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42),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43), 국사전(국보 56) 등의 국보와 12점의 보물, 8점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동쪽 기슭에는 선암사(仙巖寺)가 있다. 이 곳에도 선암사 삼층석탑(보물 395), 아치형 승선교(昇仙橋:보물 400) 등 문화재가 많다. 그밖에 송광사의 곱향나무(일명 쌍향수:천연기념물 88), 승주읍 평중리의 이팝나무(천연기념물 36) 등이 유명하고, 선암사의 고로쇠나무 수액과 송광사 입구의 산채정식 등이 먹을거리로 꼽힌다. 산 일대의 수종이 다양해 산 전체가 전라남도 채종림(採種林)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펌)

 

장군봉 전경.

 

 

 

조계산 장군봉 정상석 모습.

 

조계산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조망.

 

서쪽 장밭골 방향 조망.

 

장군봉에서 능선을 따라 이어가면 도착하게 되는 연화봉 모습.

 

 

조계산 정상 증명.

 

 

조계산 장군봉 정상을 뒤로하고,

 

 

능선갈림길 삼거리 도착.

이곳에서 우측의 접치 방향이 호남정맥 길이지만,

오늘은 송광사 탐방을 위해 서쪽의 장박골 방향 능선길로 들어선다.

 

삼거리 이정표.

 

 

산죽이 빼곡한 능선길을 따라 쉬엄쉬엄 걸으며,

 

 

지나온 장군봉도 돌아보고,

 

 

헬기장도 지나며,

 

좌측 장밭골 너머로 지나온 호남능선도 바라보고,

 

 

잔설이 녹아서 질척이는 등로를 조심조심 진행한다.

 

 

장밭골 삼거리를 지난다.

 

장박골 삼거리 이정표.

 

 

연화봉 방향(좌측)과 계곡을 따라 송광사로 내려가는 지름길이 분기하는 분기봉에서,

편안한 좌측 연화봉 방향의 등로를 두고, 개?고생의 우측 지름길로 접어드는데 ..ㅉㅉ

 

 

희미한 능선길에서 겨우 좌측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흔적을 찾아내고서,

 

 

거의 흔적이 지워져 가는 좌측 계곡길로 접어드는데,

 

 

어느새 길 흔적은 사라져 버리고, 그냥 계곡을 따라 무작정 내려가다 보니,

 

 

그래도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보이기 시작하고,

 

 

천심만고 끝에 겨우 계곡을 벗어나,

우측 오솔길을 찾아들어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것도 잠깐 뿐!

뒤따르던 후미 몇 분이 오솔길 흔적을 놓치고 그냥 계곡을 따라 내려가서는,

"백~두~~"를 소리쳐 부르는 소리가 계속 아래에서 들려온다.

 

 

후미를 찾아 나서서 한참을 부른 끝에, 겨우 목소리를 확인하고 길로 복귀하고,

 

 

그렇게 예상치 못했던 고생을 마치고, 겨우 연화봉을 거처서 송광사로 이어지는 등로에 내려선다.

 

정규 등산로에 도착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종협형.

 

 

그렇게 고행을 마감하고,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되고 있을 송광사 경내로 들어선다.

 

<송광사>

송광사는 신라 말에 길상사(吉祥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어, 1204년(희종 원년)에 수선사(修禪社)로 개칭되었다가, 어느 시기엔가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송광사는 조계종의 삼보사찰로 유명한데, 삼보사찰이란..,

 

 

삼보(三寶)는 불교에서 귀히 여기는 세 가지 보물이라는 뜻으로, 부처님(佛)과 부처님이 설하신 법(法),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스님(僧)을 말하는 것이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으므로 불보(佛寶)사찰이며,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 경판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법보(法寶)사찰이며, 송광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한 스님들이 열여섯 분이나 나라에서 내리는 국사(國師)의 지위에 올랐으므로 승보(僧寶)사찰이라고 한다.

 

 

계곡을 건너 송광사 경내로 들어선다.

 

법정스님 다비식에 참석했던 신도들이 점심공양을 위해 길게 줄지어 있다.

 

법정스님 분향소 앞에서 잠시 스님의 자취를 떠올려 본다.

 

 

 

 

 

싸리나무로 만들었다는 밥통도 확인하고,

 

송광사 안내판.

 

 

산행이 예상보다 많이 지체된 터라, 서둘러 송광사 경내를 빠져나와,

 

 

이곳에 꾀나 유명한 산채비빔밥집이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바쁜 듯하여 그냥 지나치고,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석곡면 소재지로 이동하여 땀을 닦고,

 

석곡면사무소 전경.

 

 

'석곡돼지한마리'라는 식당에서,

 

 

푸짐한 삼겹살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석곡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바라본 석양!

법정스님이 저 태양과 함께 서쪽으로 잘 가셨는지...

 

어렵지 않을 듯했던 산행에서 막바지에 지름길을 택했던 저의 불찰로,

또 한번의 추억거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좀 더 편안한 산행이 될 수 있도록 더욱더 세심한 주의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