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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낙남정맥 04차(덕천고개~계리재) : 낮아도 낙남정맥이라서 걸어야 했던 우리 산하

by 재희다 2011. 1. 23.

산 행 지 : 낙남정맥 04차(덕천고개~계리재)

산 행 일 : 2011. 01. 22.(토)

산행코스 : 덕천고개 ~ 태봉산(191m) ~ 2번국도 ~ 유수교 ~ 실봉산(185m) ~ 화원마을(진주분기점) ~ 모심재

~ 와룡산 ~ 계리재 (20.4km, 9시간 소요)

산행참가 : 10백두.

 

<산행코스>

 

지난 산행에 이어 금번 산행도 낙남정맥 중 최악의 구간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진주~사천 구간이다. 지난 산행에서 실망해서 그런지, 아니면 이번 산행에서 별로 기대할 게 없어서 그런지, 산행에 참가한 회원이 10명밖에 되지 않는다. 한때는 8명이서 대형버스를 타고 산행을 간 적도 있기는 했지만 근래에 가장 적은 인원이 아닌가 싶다. 참가 인원이 버스 좌석을 가득 메우면 조금 불편해지는 게 사실이지만, 불참이 너무 많아지면 기운이 나지 않고 분위기가 잠겨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산우회를 위하거나 다른 회원을 위해 산행에 참가하라고는 할 수야 없겠지만, 본인 자신을 위해 산행에 좀 더 열심히 참가 하기를 기대한다. 많은 조직원이 내가 하지 않아도 누가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조직의 미래는 없어지고, 조직원은 조직이라는 울타리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단촐한 산행도 조금 더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산행을 할 수 있어서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계속 단촐한 게 일상화되면 스스로의 존재감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게 될까 봐서, 그리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단촐한 버스는 진주 시내를 거처, 가로등만이 홀로 지키고 있는 진양호 호수가를 돌아 지난 산행의 날머리였던 덕천고개 앞에 도착한다.

 

 

덕천고개 주유소 앞마당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

 

 

 

옥녀봉 들머리로 올라야 하지만 옥녀봉을 오르는 도중에 우측으로 내려서야 하고, 어두운 밤에 별로 볼 것도 없으려니와, 혹시 갈림길이라도 놓치게 되면 한참 동안 헤매는 위험을 줄이고자 바로 연평마을 방향으로 들머리를 잡는다.

 

 

<옥녀봉>

옥녀봉은 낙남정맥에서 조금 비껴 나 있지만 옥녀봉에서의 진양호 조망은 훌륭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두운 밤이라서 옥녀봉을 두고 바로 태봉산으로 향하지만, 진주와 옥녀봉에 얽힌 얘기는 하지 않을 수 없다. 옥녀봉에 엮인 비련의 러브스토리가 그 훨씬 후에 생긴 진양호의 이름을 드높였을 것입니다.

베를 짜서 덕천강에 씻어 팔아온 미모의 옥녀는 지나가던 민도령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과거에 급제하면 결혼을 하겠다며 민도령을 위해 옷감을 준비하고 있는 중, 고을 사또가 자신을 탐하는 것을 알고 민도령을 위해 준비한 옷감을 모두 잘라버리고 이곳 덕천강에 투신했다 한다. 그 사또는 급사하고, 과거에 급제한 민도령도 따라 몸을 던졌고, 이 벼랑 끝을 지나는 혼인 행차가 매번 화를 당했다 한다. 옥녀의 고혼을 달래고자 옥녀봉이 생겼고 이 지역 이름이 완사(浣紗)라 불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옥녀봉 팔각정 아래 안내판에 적힌 옥녀봉 전설을 여기에 상세히 옮긴 것은 이 전설이 이 지방의 서사민요인 아래의 진주난봉가와 대비되어서다.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년만에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예야 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오실 것이니 진주남강 빨래 가라.

 

진주남강 빨래 가니 물도 좋고 산도 좋아

우당탕탕 두둘기는데 난데없는 말굽소리

고개 들어 흘끗보니 하날 겉은 갓을 쓰고

구름 같은 말을 타고 못 본 듯이 지내가네.

 

흰 빨래는 희게 빨고 껌둥빨래 껌께 빨아

집에라고 돌아오니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예야 아가 메느리 아가 진주낭군 볼라그덩

건너 방에 건너나 가서 사랑문을 열고나 바라

 

건너 방에 건너나 가서 사랑문을 열고나 보니

온갖가지 안주에다 기생첩을 옆에나 끼고서

권주가를 부르더라.

 

이것을 본 진주아씨 건너방에 건너나 와서

오만가지 약을 먹고 목을 매여서내 죽었네.

 

이 말들은 진주낭군 버선발로 뛰어나와

진주아씨 부여 안고서 목을 놓아 울었더라.

 

첩으야 정은 삼 년이고 본 처야 정은 백년이라

내 이럴줄 왜 몰랐던고 사랑 사랑 내사랑아 ~~.

 

민도령의 청혼을 받은 옥녀는 사또로부터 절개를 지키고자 투신해서 죽음을 택했고, 진주낭군의 본처는 남편의 난봉에 절망해 자결했으니, 죽음을 택한 이유가 서로 다르기는 했지만.. 민도령은 자신을 위해 절개를 지키고자 투신한 옥녀를 못 잊어 따라 죽었으나, 진주낭군은 본처를 죽음으로 슬피 울기는 했어도 따라 죽지 않았다는 차이는 있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옥녀와 민도령의 러브스토리가 진주낭군과 그 처와의 사랑싸움보다 훨씬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직도 많은 연인들이 사랑의 힘이 죽음을 뛰어넘을 만큼 위대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내가 오늘 이런 오밤중에 여기에 왔음을 알리도 없겠지만.., 옛날 학창 시절 불렀던 진주난봉가의 추억은 새삼스럽다. 연평마을을 향한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으며 조그만 언덕을 지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태봉산 들머리가 있다는 "고향 사랑"표지석 앞에 이르렀다.

 

 

덕천고개에서 출발한 낙남꾼들이 옥녀와 만나고 오던, 아니면 알바만 실컷 하고 오던,

"애향"이라는 돌비석 앞으로 다들 모여서 새로이 전열을 가다듬고 낙남정맥길에 나서는 곳이다.

태봉산을 향한 산행 들머리는 비석 맞은편 숲으로 이어진다.

 

 

 

연평마을 앞 들머리로 들어서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주변이 잡목으로 둘러진 태봉산에 도착한다.

 

 

<태봉산(190.2m)>

오늘 구간에서 제일 높은 산이으로 해발 고도가 190.2m이다. 진주시 내동면과 사천시 축동면의 경계에 있는 태봉산은 고도가 낮고 주변에 잡목으로 들어차 있어서 더욱이나 어둠 속에서는 볼 것이 없다.

 

 

 

 

태봉산 내림길 어느 언덕에 '디비리산(115m)'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봉우리 표지기가 걸려있다.

 

 

경전선 철도가 지나는 유수터널 옆으로 내려온다.

 

 

4차선의 넓은 2번 국도를 건너기 위해 철도 옆 시멘트 포장임도를 따르면,

 

 

 

2번 국도 아래를 지나고, 이내 우측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오른다.

 

 

 

2번 국도를 지난 지 10여분 만에 129봉(바락지산이란 표지판이 걸려 있다)을 지난다.

 

 

 

유수교가 있는 가화천으로 내려와서 좌측 방향으로 100여 미터 이동하면,

 

 

 

유수교에 도착하여 남은 이들이 어둠 속에서 유수교 인증을 남긴다.

 

 

<진양호와 가화천>

진양호는 1968년 낙동강 지류인 남강 상류를 막아 경남지역 최초로 축조한 인공 호수다. 다목적댐인 이 인공호수는 길이가 975m, 높이가 43m이고 총저수량이 1억3천6백만 톤이다. 또한 낙동강의 범람을 예방하기 위해 진양호에서 남해 사천만으로 흘러드는 인공수로도 만들었다. 인공수로는 원래 정맥에서 발원한 세월천을 역류시켜 그 물줄기를 낙남정맥 남쪽에 있던 가화천으로 돌려 낙남정맥을 절단함으로써,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근간을 무너뜨린 것이다.

 

 

낙동강 유역의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낙남정맥은 허리를 잘라내는 아픔을 감수했고, 전북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 섬진강 물을 끌어대고자 호남정맥은 옆구리가 뚫려야 했다. 치수(治水)는 산허리를 잘라내고 옆구리를 뚫으면서 수로를 바꿔야 할 만큼 지난한 일이다. 낙남정맥을 잘라내고 수로를 낸 가화천, 홍수 피해가 줄어든 낙동강 유역의 주민들은 남강댐이 고맙겠지만 유로가 13km 밖에 안 되는 가화천을 통해 남강댐의 담수가 너무 많이 사천만으로 흘러들어 양식업이 피해를 보는 등 사천 쪽 주민들은 이런저런 손해를 보는 듯하다. 이렇듯 치수사업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갈등이 두려워 치수사업을 포기한다면 자연과 인간은 더 큰 피해를 당할 것이고,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 하는 것이 치산치수다. 낙남정맥도 이런 사리를 잘 알기에 허리를 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유수천에 에코브리지를 만들어 낙남정맥의 맥을 다시 이어봄을 어떨런지 ..!

 

유수교 위에 걸린 도로 이정표.

 

 

 

유수교를 건너 좌측 축구장 울타리를 따르면,

 

 

 

간이 건물 울타리에 표지기들이 걸려있어서 낙남길을 제대로 따르고 있다며 안도하고,

 

 

 

다시 숲으로 들어 오름길을 오르다가 돌아본 진양호 방향.

 

 

<진주 방향 진양호 주변의 불빛>

조선시대 조정의 절반은 영남출신이고, 영남출신의 절반은 이곳 진주출신이라, 진주 姜(강), 河(하), 鄭(정)氏들의 인걸이 저 계곡 마을에서 태어났으니, 지리산에서 이어지는 정기가 진양호에 묻히지나 않았을까 살짝 염려가 되기도 한다.

옛부터 진주지역은 안동과 함께 보수적인 도시로 지리산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상당히 반골기질이 강하다고 한다. 남과 타협하기 싫어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질이다. 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백성들이 나라를 지켰고, 논개는 임진왜란 때에 진주성이 함락되자 촉석루의 술자리에서 당시 왜장(倭將)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안고 남강에 투신했다. 진주를 비롯한 의령, 산청, 사천 등 서부 경남지역의 반골기질은 타고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이곳에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가장 많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의령에서의 삼성, 진주에서의 LG, 함안에서의 효성 등 3개 그룹의 창업주 세분이 모두 이곳 진주(옛 진양 지수초등학교 출신)에서 학교를 다녔다.(펌)

 

 

 

고도가 고만고만해서 그런지 수도 없이 많은 무명봉을 지난다.

산행을 시작한 지 두어 시간 만에 이름 모를 무명봉에서 처음으로 복장을 가다듬어 본다.

 

 

 

솔티고개(덕천고개)에서 벌써 7km 정도를 왔다.

 

 

 

신촌재 이정표.

 

 

<신촌재>

진주시 내동면과 사천시 축동면을 잇는 도로가 지나는데, 진주 쪽 사람들은 유수재라고 부르고 사천 쪽 사람들은 신촌재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도에는 비리재라고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1049번 지방도가 지난다.

 

 

신촌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숲과 과수원이 연속되더니 좌측으로 외딴집이 나타나고, 개들이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짖는다.

 

 

외딴집 앞 임도로 나오니, 2차선 포장도로가 정맥능선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도로 좌측에 다시 숲으로 들어가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여기서 좌측 숲으로 들었다가 이내 다시 도로로 나오게 되는데,

그냥 도로를 따라 6~70m를 가면 이내 다시 정맥길이 돌아 나오므로 그냥 도로를 따르는 게 좋아 보인다.

 

 

 

숲으로 들었던 낙남길이 다시 도로로 내려서고,

 

 

잠시 포장도를 따르다가는,

 

 

잠시 후 정맥길은 우측 숲으로 이어진다.

 

 

 

돌아본 낙남능선 위로 달이 아직도 걸려 있다.

 

 

좌측 사천 방향으로 시야가 트인 곳에서.

 

 

 

잠시 임도와 만났다가 실봉산 오름길을 시작한다.

 

 

 

잠시 전에 만났던 그 임도를 건너고,

 

 

 

제법 정맥길 다운 느낌의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실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인증을 하는 모습이 참으로 단촐한 느낌이다. 오늘 산행에 참가한 분들이 모두 모였는데 ..ㅉㅉ

 

 

 

<실봉산(185m)>

경남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실봉산은 오늘 산행구간 중에서 태봉산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산이다. 인근에서는 제법 높은 산으로 대접을 받는 듯하다. 산행 이정표도 제법 잘 마련되어 있고, 곳곳에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사천읍 방향에서 기다리던 아침해가 떠오른다.

 

 

 

 

아침 해를 배경으로.

 

 

 

 

정맥능선 위로 이어진 임도를 따르는데,

 

 

앞쪽으로 전망대 정자가 보인다.

 

 

진주시 방향.

 

 

 

돌아본 정맥능선에는 백두들이 걷고 있다.

 

 

진주시내 건물도 시야에 들어온다.

 

 

 

실봉산 전망 팔각정을 향한다.

 

 

팔각정과 진주시의 산그림.

 

 

 

실봉산 팔각정 정자에서 추위에 떨며 아침식사를 한다.

 

 

진주시 방향 조망.

 

 

 

단초롬한 산행팀원들 모두가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화원마을을 향한다. 추워서!

 

 

전망 팔각정 옆에는 체육시설을 설치해 놓았다.

 

 

 

정자 아래쪽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화원마을로 향한다.

 

 

안부 건너편 능선쯤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서 낙남능선을 따랐어야 했는데, 임도를 최근에 보수하면서 들머리 흔적이 없어져서, 들머리를 놓친 우리는 임도를 따라 알바에 나서게 된다.

 

바로 우측의 낙남능선을 두고 널찍한 임도로 룰루랄라~~!

 

 

임도를 따라 알바 중인 백두들.

임도가 진주 JC 방향으로 이어져 있어서 알바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ㅉㅉ

 

 

아무런 의심 없이 능선 위로 이어진 임도를 따르며, 우리를 위해 최근에 임도를 개설했나 보다고 ..ㅉㅉ

 

 

 

아직 진주 JC가 아닌데 임도가 아래로 이어진다.

그제서야 알바를 눈치채고 우측 건너편 정맥능선을 바라보지만 ..ㅉㅉ

 

 

 

혹시나 우측 낙남능선으로 가는 길이 있으려나 싶어서 우측 숲으로 들어가 보지만,

길은 보이지 않고 따르던 임도로 다시 나온다.

주변에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보았으나 실패하고..

 

다시 임도를 따라 진주 JC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직전 축사 건물을 끼고 우측 도로를 따라 낙남능선으로 진행하니,

 

 

 

놓쳤던 낙남정맥 능선과 다시 만나고,

 

 

알바의 기억을 뒤로한 채,

 

 

진주JC가 있는 화원마을을 향한다.

 

 

 

능선 등로를 따라 조그마한 봉우리를 넘으니 화원마을이 나타나고,

 

 

산행기에서 보았던 삼계탕집이 시야에 들어온다.

 

 

 

돌아본 화원삼계탕.

잠시 쉼을 하며 알바의 기억을 되새겨 보고,

 

 

 

와룡산을 향한다.

 

 

남해고속도로 아래 지하 통로로 진행한다.

 

 

 

이리저리 얽힌 도로들을 아래고 또는 위로 건너고,

 

 

돌아본 지하통로 모습.

 

 

 

널찍한 3번 국도는,

 

 

횡단보도로 건너서,

 

 

또 인터체인지 날개 도로를 굴다리 아래로 통과하고,

 

 

 

정맥 능선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짐작도 어렵고, 그저 도로 전시장 아래를 방향만 잡고 진행한다.

 

 

그렇게 몇 개의 지하 통행로를 통과해서,

 

 

 

마지막 지하통로를 나오면 정맥길은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등산로는 아닐지 모르지만 정맥길은 분명한데, 사유지이므로 돌아서 가란다.

도로 천국에서 별로 실갱이하고픈 생각도 없고 하여 우회길로 진행한다.

 

 

 

마을 안쪽 도로로 우회하여 진행하면,

 

 

정원을 잘 가꾸어 놓은 집들도 보이고,

 

 

 

이번에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지하통로가 나타난다.

 

 

커다란 통굴같은 지하통로로 거리낌 없이 진행하면,

 

 

 

앞쪽에 외딴집이 나오고, 외딴집 앞에서 우측 밭을 지나 봉우리로 오른다.

 

 

 

돌아본 외딴집.

 

 

밭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절개지 위로 올라서게 된다.

 

 

절개지 위에서 바라본 사천 방향 조망.

 

 

 

돌아본 진주 JC와 지나온 정맥의 봉우리들.

 

 

사천읍 방향 조망.

 

 

 

절개지 위로 조금 더 오르면,

 

 

 

절개지 꼭대기에 '화봉산'이란 표지판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사천읍 방향의 조망이 한결 멀리까지 보인다.

 

 

 

화봉산을 지나면 이내 모산재에 도착한다.

 

 

<모산재>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의 남쪽과 북쪽을 잇는 고개다.

 

 

모산재에서 숲과 과수원을 지나며 잠시 오르면,

 

 

 

과수원 한가운데에 원두막이라고 지어놓은 곳에 도착하고,

 

 

원두막 뒤쪽 과수원으로 오르면 또다른 도로개설 공사로 인해 산허리가 잘려나가고 없다.

 

 

 

다시 원두막으로 돌아나와 우측 아래로 내려서서,

 

 

 

도로 개설 공사장을 지나 건너편 능선으로 오른다.

 

 

 

조그만 언덕처럼 느껴지는 봉우리를 넘으면, 외딴집 앞 임도로 나오게 되고,

 

 

 

잠시 임도를 따르다 보면 와룡산에 도착한다.

 

 

 

와룡산을 지나자 잠시 대나무 숲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잘 가꿔진 묘역에서 잠시 쉼을 한다.

 

 

 

낙남능선을 따라 이어진 농로를 따르면,

 

 

 

숲과 과수원, 밭과 논을 두리두리 지나게 되고,

 

 

 

지나온 낙남능선 위로 이어진 농로 모습.

 

 

 

 

언덕 같은 봉우리로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니 봉우리라 불러야 하나 ..ㅉㅉ

 

 

 

 

산불감시초소 봉우리에 도착한다.

 

 

<109봉 산불감시초소>

정확한 명칭은 없고 죽봉터널 뒷산 정도인가 보다. 산이라기보다는 과수원 한가운데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초소 아래를 자세히 보면 "환영 낙남정맥 종주를 환영합니다"란 글이 적혀 있다. 산불감시초소 감시원이 정맥꾼들에게 커피도 대접하고는 하여 친절한 분이라는 입소문이 난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텅 빈 초소만이 덩그러니 지키고 있다.

 

진주시 방향 조망.

 

 

 

과수원과 밭들 사이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낙남길을 이어간다.

 

 

돌아본 산불감시초소봉 모습.

 

 

 

사천 방향의 가야 할 낙남정맥 봉우리들 조망.

 

 

과수원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진행하면,

 

 

 

다시 농로로 나오게 되고, 논밭뿐인 곳에 등산로 입구라는 표지판도 있다.

 

 

 

그렇게 농로를 계속 따르면,

 

 

 

장승이 지키고 있는 장승집도 통과하게 되는데,

 

 

지키는 장승은 가만히 있는데, 옆에 묶여있는 검은 개가 으르렁 거린다.

 

 

 

농로는 이제 마을 안쪽으로 이어질 듯하고,

 

 

마을 입구 붉은 기와지붕집 앞에서 우측으로 꺾어서 위 사진의 우측에 보이는 봉우리로 진행한다.

 

 

 

봉우리 오름길에 돌아본 낙남길.

 

 

돌아본 지나온 낙남능선을 모습.

 

 

 

봉우리를 지나 다시 새내동고개를 향해 과수원을 가로지른다.

 

 

과수원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고목이 이채롭다.

 

 

 

새내동고개 건너편 정맥능선도 과수원이 점령하고 있다.

 

 

도로로 내려서서 우측 고갯마루로 가면 들머리가 있다.

 

<새내동고개(해발 70m)>

진주시 문산읍과 정촌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이 고개 좌측 아래 마을이 새말, 우측 아래 도로가 웅골(소곡리)이다.

 

 

고개를 지나 과수원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무작정 높은 곳으로 오르면,

 

 

 

반가운 표지기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능선길을 다시 숲으로 든다.

 

 

 

이제 과수원과는 이별하고,

 

 

 

고만고만한 봉우리에 오르니 "금바구산"이란 표지기가 걸려 있다.

 

 

이제 낙남길이 산길 같은 느낌을 주는가 싶더니,

 

 

 

이내 오늘의 종착지인 계리재에 도착한다.

 

 

<계리재>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닭(鷄)과 살쾡이(狸)가 이쪽저쪽에 있다고 해서 계리재라 하였다"는 설과, 저 아래 관봉초등학교가 있는 고미동을 계미골이나 계미동으로 부르는데 이 지역의 산세가 고양이처럼 되어 있어서 계리재라고 부른다고도 한단다.

 

계리재 건너편으로는 낙남길 들머리에 나무데크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종착지인 계리재에서 기다리던 애마에 올라,

 

 

 

진주시내에 있는 EXR 스포츠센타 목감탕에서 산행의 피로를 씻고,

 

 

 

스포츠센타 아가씨가 소개해 준 음식점에서,

 

 

모처럼 맛난 생태찌개를 먹으며 산행의 기억을 추억으로 갈무리한다.

 

 

단초롬한 산행팀의 면모는 식당에서도..ㅉㅉ

 

 

생태탕을 오늘처럼 맛나게 먹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언젠가 진주에 오게 되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라는 기억을 챙겨 높고 서울로 향한다.

 

이제 낙남정맥 최악의 구간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듯하다.

낙남길은 이제 최남단 사천 구간으로 들어가면서 제법 산 같은 산이 있는 능선길이 될 듯하다.

오늘이 최소 인원 기록이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