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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금북정맥 06차(차동고개~학당고개) : 우리말 지명에 서린 민초들의 삶을 생각하며 걸은 금북길 z

by 재희다 2014. 4. 9.

산 행 지 : 금북정맥 06차(차동고개~학동고개)

산 행 일 : 2014. 04. 05.(토)

산행코스 : 차동고개~장학산~천종산~서반봉~사점미재~국사봉~운곡고개~금자봉~645지방도~문박산~학당고개

              (산행거리 23km)

산행참가 : 21명.

 

<산행코스>

 

 

차동터널이 뚫린 후 차량통행이 뜸해지면서 폐업한 차동휴게소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하차.

 

<차동고개>

산경표에는 "차유령(車踰嶺)이라 표시되어 있다. 순수 우리말로 해석하면 "수레넘이 고개"가 되며 옛날에는 수레가 넘어 다닐 수 잇는 넓은 고갯길이었다는 예기다. 오늘날의 차동고개는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32번 국도가 지나가지만, 대전당진간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한산한 고갯길로 변했고 고갯마루에 있던 차동휴계소는 폐업을 해서 우리가 타고 온 버스만이 홀로 서 있다.

 

효성지극한 차서방이 보이지 않는 차동고개를 출발한다.

 

사면 길을 따라도 되지만 우측 오름길을 따라 절개지 위로 향한다.

 

 

널찍한 임도길 수준의 등로를 따라 330봉쯤을 오른다.

 

 

고재고개를 지나,

 

<고재고개>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鹿川里) 2구 고재 마을과,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如來味里) 고재동마을 사람들이 왕래하던 뚜렷한 고갯길이 금북정맥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곳으로, 고갯마루에는 옛 서낭당 돌무더기 흔적이 있다.

 

고재고개를 지나자 벌목지대가 나타난다.

 

 

374봉쯤에서 잠시 쉼을 한다.

 

 

벌목지대라서 조망이 트여있다.

북서쪽 신양 방향.

 

 

장학산 증명.

 

<장학산(長鶴山 381m)>

장학산은 산맥이 길고 비학지형이 있어서 조선시대 때 묘를 쓰는데 학이 날아갔다 하여 장학산(長鶴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장학산 정상은 능선 갈림길에서 10여 미터 떨어져 있어서 정상에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돌아본 장학산(우) 직전 안부 사이로 붉게 물들고 있는 동쪽 하늘이 조망된다.

 

좌측 노동리 방향.

 

노씨(盧氏)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노동(盧洞)이라고 부른다 한다. 또한 호랑이가 턱을 괴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유래된 버미터골이 있으며, 마을에 불당이 있다고 하여 불당골, 안개가 많이 낀다 하여 유래된 앵개골과 발아래 보이는 마을이 옛날 노씨 중에서 천석꾼이 살았다 하여 부른다는 천석동이 있다.

 

새벽에 보는 진달래가 또다른 느낌이다.

 

 

서낭당 고개를 지나고,

 

<서낭당고개>

공주시 유구읍 노동리(蘆洞里)와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秋光里)의 들광이 마을을 연결하는 뚜렷한 고갯길이 금북정맥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곳으로, 옛날 추광리 사람들이 유구장(유구 시장)을 보기 위해 넘어 다니던 고개라고 한다.

 

공주시 유구읍(維鳩邑)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 땅에 진군했다가 유구의 지세가 큰 나라도 위협할 장군출생형임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해 유구리 뒷산을 끊었는데, 이때 땅속에서 세 마리의 금빛 비둘기가 피를 흘리며 날아갔다고 한다. 이후 전염병이 퍼져 수많은 군졸들이 죽어가자 인근 고승을 찾아가 치유방법을 묻자 이곳 지명을 유구(維鳩)라 고쳐 부르라 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천종산을 오르며 돌아본 북쪽 신양 여래미 저수지 방향.

 

 

350봉쯤을 지나는 후미팀.

 

350봉은 별 특징은 없는 봉우리이고 벌목을 하면서 표지판과 띠지를 제거해 버렸다. 하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매우 중요한 봉우리로 공주시와 예산군 그리고 청양군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봉우리다.

 

남쪽 공주시 유구 방향.

 

 

천종산 능선 위로 올라서서,

 

천종산 정상 증명을 남긴다.

 

 

<천종산(409m) >

공주시 유구읍과 신풍면과 청양군 운곡면을 경계하는 천봉 방향 능선이 분기하는 봉우리다. 정맥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북쪽을 향한다. 천봉산(千鳳山)이라고 부르는 천봉은 봉우리가 수없이 많은 산이라 하여 천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해오는 설에 의하면 옛날에 홍길동이 무예를 익혔던 산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때의 도적 안수(安壽)가 여기에서 은거하였던 것이 그리 전해오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천종산에서 바라본 일출.

 

옅은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산하 위로 동그란 태양이 올라온다.

 

 

 

 

 

 

천봉 방향 능선 갈림길에서 본 일출.

 

천봉 갈림길에서 일출을 감상하고 있는 백두들.

 

천봉 갈림길에서 능선 따라 직진하여 15분쯤 가면 나오는 천봉에 알바 다녀오신 김 작가님의 알바 기록 사진.

 

 

06:24 야광고개.

 

<야광고개>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구분실 마을과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 들광이 마을을 잇는 고갯길로,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에서 예산으로 이어지는 옛날에는 중요한 통행로였다. 추광리(楸光里)는 추동과 야광리가 합쳐진 이름으로 달빛으로 밤에도 밝았다는 전설에 의해 부야광 마을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괭이로 개간한 들판이 있어서 붙여진 돌괭잇고개로도 불리고 노동고개라고도 불린다. 야광고개에서 미끄러운 절개지 사면을 올라서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정맥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바위지대를 통과한다.

 

 

349봉에서 돌아본 능선 위의 아침해.

 

 

돌아본 천봉 방향 능선.

 

우측 들광골 방향의 조평리에서 아침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천봉 위로 떠오르는 아침해.

 

좌측 조평리 방향 조망.

 

 

가야 할 국사봉이 보인다.

 

천봉 위로 솟은 아침해가 제법 온기를 전한다.

 

 

서반봉.

 

 

<서반봉(392m)>

서반봉공주시 서쪽 끝에 있는 산으로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반봉의 남쪽은 골짜기와 바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조선동이 자리 잡고 있다. 옥백산·억복산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활석광산이 있던 산이다. 서반봉 꼭대기에는 돌로 만든 간결한 제단이 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외지 사람들이 와서 가끔 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서반봉에서 돌아본 천봉 방향의 능선과 골짜기.

 

돌아본 천종산에서 천봉으로 이어진 능선.

 

 

벌목 구간을 지나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짧은 암릉구간이 나타나며 아무런 표시가 없는 415봉을 지난다.

 

415봉을 넘어서 잠시 내려서면 임도가 지나는 사점미재를 지나게 된다.

 

<사점미재>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와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를 잇는 임도로, 좌측에는 축사로 쓰이는 커다란 비닐하우스 몇 동이 자리잡고 있고 그 아래는 활석 채취장이 있다. 우측으로는 삼광 광업소 가는 길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지 길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사점미재는 국사봉에서 바라볼 때 사자의 꼬리 부분에 해당된다 하여 사점미재(獅点尾峙)라 불린다고 한다.

 

사점미재를 지나 10여 분간 급한 오름길을 오르자 국사봉 헬기장이 나타난다.

 

 

국사봉 직전 헬기장에서 아침식사.

 

북동 신양 방향 조망.

 

자세히 보면 지나온 금북정맥 능선이 가늠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하는 백두들.

 

 

후미가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며 식사자리를 내어 준다.

 

산다래를 채취하느라 늦어진 분들이 아침상을 차리는 것을 보며,

 

조금 떨어져 있는 국사봉을 향하자,

 

후미팀들도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한다.

 

 

어릴 때 보았던 할미꽃이 놓인 식탁에서,

 

다시 한번 북동 방향의 지나온 금북능선을 가늠해 보고,

 

후미팀도 식사를 마치고,

 

 

국사봉 정상 도착.

 

<국사봉(國師峰 489m)>

충청남도 신풍면 조평리에 전해 내려오는 국사봉에 깃든 지명 이야기다.

「국사봉 전설은 국사(國師)가 왕에게 하사 받은 금 잎을 국사봉 자락에 묻고 칩거하여 30여 년을 살다가, “금이 지금도 자란다”는 말을 하고서 운명을 했기에 그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불렀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아주 옛날 왕궁 안에서 왕자를 가르치던 국사가 있었다.

그는 세 살 난 어린 왕자를 15세가 되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그 해 여름에 왕자에게 병이 나, 해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왕자가 죽자 국사는 왕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왕에게 하직을 고했다.

왕이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자 왕은 국사에게 금 한 잎을 주었다.

국사는 전국을 떠돌다가 지금의 신풍면 조평리 국사봉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봉오리 주변에 금 한 잎을 묻었다.

 

국사는 봉우리 옆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와서 국사와 마주쳤다.

국사는 나무꾼에게,

“내가 여기에서 산짐승과 벗을 하며 살아온 지가 30년이 넘었다. 임금에게 받은 금을 이 산에 묻었는데 지금도 크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국사는 이내 쓰러져 숨졌다.

이후로 사람들은 국사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불렀다.
나무꾼에 의해 국사봉에 금이 자란다는 말이 풍문으로 돌자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국사봉 주위를 파헤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금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금광을 개설하고 많은 금을 캐갔다고 한다.

 

특이한 국사봉 정상의 이정표 앞에서.

 

국사봉 인증.

 

 

440봉 철탑이 있는 봉우리로 탑봉이라 표시되어 있다.

우측으로 우회길이 있어서 모두들 그리로 지나간 듯.

 

<십자가 철탑봉(440m)>

봉우리 정상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서 있는 걸로 봐서 이 아래 마을이 수리치골 성지라서 아마 이곳에 십자가를 세운 모양이다. 정상에 있는 삼각점은 심하게 마모되어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수리치골 천주교 성지는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의 수리치골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말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곳으로, 성 김대건 신부에게 서품을 주고 김대건 신부를 지팡이 삼아 한국에 입국한 페레올 주교와 성 다블뤼 안 신부가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고 안장될 무렵인 1846년 11월 2일 박해받는 한국 교회와 민족을 위해 한국과 한국 교회를 봉헌하고 신심단체를 조직하였던 발상지로써 한국 천주교회의 의미 깊은 사적지이다.

 

440봉의 시멘트 표석.

 

우측으로 금자봉 방향의 지능선이 분기하는 봉우리로, 금북길은 좌측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대치면 상갑리 방향 조망.

옛날 삼광광업소가 있던 곳이 내려다 보인다.

금광은 폐광이 되었지만 활석 채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국사봉을 지나자 모처럼 이정표가 눈에 띈다.

 

등로 한켠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어서 산객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이곳에도 금맥을 찾으려 한 흔적이 보인다.

 

 

08:28 수리치골 성지 갈림길.

 

수리치골은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다. 수리취는 취나물의 일종으로 나물로 무쳐먹기보다는 주로 떡을 해 먹었으며, 수리취 나물이 이 골짜기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다고 하여 수리치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수리치골성지 갈림길.

 

수리치.

 

오늘 걷는 금북길은 상대적으로 오름내림이 크지 않고 주변에 진달래도 피어서 모처럼 느긋한 걸음을 해 본다.

 

 

08:45 416봉 헬기장.

금북정맥은 416봉을 깃점으로 공주시와 이별하고 완전히 청양군의 품속으로 안기게 된다.

 

칠갑지맥 분기점.

 

<칠갑지맥(七甲枝脈)>

칠갑지맥은 금북정맥의 416봉에서 동남방향으로 분기하여 줄바위고개, 짐디울고개, 대덕산, 칠갑산, 마재 낙지재, 백토고개, 문드래미고개, 명덕봉을 넘어 청양군 청남면 인량리 금강천이 금강을 만나는 곳에서 끝이 나는 산줄기다.

 

남쪽 칠갑지맥 방향 조망.

 

 

08:52 지도상 400봉쯤을 지난다.

 

400봉 북쪽 아래에 배실이 마을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마을이 배(船)를 닮았다 해서 배실이라 부르는데, 배가 육지에서 짐을 푸는데 7년이 걸릴 정도로 크다는 의미에서 마을이 그런 큰 배(船)의 형이라 한다. 그런 연유로 배실이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을에서 7년을 살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한다고 한다. 이유인즉 7년을 넘게 살면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듯이 그렇게 큰 어려움이 닥치면서 재앙을 만나 집안이 망한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런 배실이 마을의 전설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미팀들은 현재 위치를 파악하며 길지 않은 쉼을 해 본다.

 

 

09:05 이내 큰 나무 두 그루가 있는 참나무 장고개를 지난다.

 

<참나무 장고개>

대치면 상갑리와 운곡면 신대리(냉정골)를 잇는 옛 고갯길로, 옛날 상갑리 사람들이 운곡장을 보기 위해 넘어 다녔던 고개라고 한다. 장을 보러 넘어 다녔다고 "장고개"라 하고, 고갯마루에 아름드리 참나무가 있어서 "참나무 장고개"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09:13 424봉에서 여름 산행 모드로 변경하고,

 

정맥길에서 봉우리마다 걸린 낯익은 표지판이 이곳에도 어김없이 걸려 있다.

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이곳저곳에 피어있는 진달래 능선길을 사뿐사뿐 걷노라면,

 

 

09:25 묘지도 지나고,

 

잠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더니,

 

 

09:31 운곡고개에 도착한다.

 

<운곡고개>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 운곡(냉정골) 마을과 대치면 농소리 놋점이 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 성황당 나무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신대리 운곡은 금광이 있던 곳이다.

 

빛바랜 표지가 나뭇가지에 꼭꼭 동여져 있다.

 

올해는 겨울이 끝나려는 찰나에 봄이 이미 저만치 가고 있다.

 

 

09:49 금자봉 갈림길에 밴치도 놓여 있다.

 

<금자봉(金子峰, 370m)>

청양군 상갑리와 대치면 농소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금(GOLD)과 관련된 지명인 듯하다.

 

금자봉 이정표.

 

 

금자봉 정상은 직진 방향으로 80m 떨어져 있고, 금북길은 이곳 갈림길에서 급좌틀하여 진행된다.

 

금자봉 갈림길에서 80m 떨어진 금자봉 정상에서 인증을 남긴 김 작가님.

 

금자봉 정상에도 낯익은 표지판이 걸려 있다.

 

 

10:02 경주 김씨 묘지를 지나고,

 

 

10:05 좌측으로 우라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사라골 마을과 농경지가 지근거리에 내려다 보이는 밤나무밭 야산 능선을 잠시 따르면,

 

 

10:15 18번 송전탑과 염소우리가 나타난다.

 

금북정맥 산행기 마다 올라와 있어서 낯설지 않은 염소 가족 모습.

 

염소들을 뒤로하고,

 

 

10:20 다시 밤나무밭 가장자리로 등로가 이어져 있다.

 

여름이 아닌것을 감사하며 민둥산 등성이로 이어진 등로를 잠시 따르면,

 

우측으로 운곡면 사라동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봄을 맞아 조상 묘소를 다듬고 있는 부자(父子) 모습이 이웃 인양 반갑게 느껴진다.

 

 

10:24 자주자주 쉬는게 남는겨!

 

 

10:25 분골고개.

 

<분골고개>

우측에 청양군 운곡면 효제리와 좌측에 대치면 위라리를 연결해 주는 96번 지방도로가 지나가고 거기서 갈라져 나와 농공공단 가는 임도를 지난다. 맞은편 임도로 올라서 금북정맥길을 이어간다. 분골은 질그릇을 만드는 분토가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며, 옛날에는 이곳을 통하여 과거를 보러 다녔으므로 주막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분골고개 들머리를 들어서는 백두들.

 

상갑리 방향의 96번 지방도와 청양 방향 갈림이 좌측으로 내려다 보인다.

 

 

10:29 좌측 봉우리가 좀 전에 지나온 금자봉인 듯하다.

 

우측으로 청양군 운곡면 효제리 모습이 보이고,

뒤쪽으로 지도에 백월산(459m)이라 표시된 봉우리도 가까이 보인다.

 

 

10:33 묘지가 나란히 있는 곳을 지나, 정맥길은 앞쪽에 보이는 구릉에서 직우틀하여 아래쪽으로 이어진다.

 

분골고개에는 전설이 하나 있는데..,

150여 년 전에 명씨 중에 한 사람이 과거를 보던 중에 한 글자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막히게 되었는데, 시험관이 옆에서 보니 '물 수(水)' 자인 고로, 안타까워서 "이 선비 목이 몹시 마른가 보다. 물 좀 갖다 주어라"라고 힌트를 주었다. 하지만 명씨는 물만 마시고 물水를 생각해 내지 못하고 과거를 그냥 마치고 나오다 보니 그제야 생각이 났다고 한다. 이에 원통한 명씨는 후대에게 "내가 죽거든 과거 보러 다니는 사람이나 구경하게 이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묘들이 많다고 한다.

 

 

10:35 직우틀하여 70번 지방도로 내려가는 도중에 돌아본 납골묘.

 

 

10:38 와고개 또는 효제고개라 불리는 지도상 645번 지방도라 표시된 도로(70번 지방도).

 

<와고개(70번 지방도)>

청양군 대치면과 운곡면의 경계에 있는 도로로서 지도상에는 645 지방도로 표시되어 있다. 흔히들 산악회나 개인이 금북정맥을 산행할 때 이곳을 날머리나 들머리로 잡는 경우가 많다. 와고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지방도 치고는 차량들이 꽤나 많이 다닌다.

 

북쪽 방향.

 

 

10:40 645번 지방도 들머리를 들어서며 돌아본 모습.

 

문박산 오름길에 우측으로 보이는 칠갑지맥 능선.

 

이제는 할미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11:05 돌아본 금자봉 방향.

 

우측 방향으로 칠갑지맥 능선이 청양을 감싸듯이 늘어서 있다.

 

 

11:07 문박산으로 이어지는 등로 모습.

 

돌아본 금자봉 방향.

 

 

11:09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

 

 

11:10 이내 문박산 정상에 도착한다.

 

<문박산(文博山 337.8m)>

충남 청양군 운곡면과 비봉면 경계 능선에 자리잡은 이 산은 문박산 정기를 이어받은 이곳 주변 학당마을에선 옛부터 인물들이 많이 났었고, 효제 마을엔 열녀비가 세워질 정도로 충효의 예절이 드높았었다. 또한 위락 마을은 최초의 구기자 재배단지가 들어서서 전국으로 공급되기도 했었다. 또한 10여 년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이회창씨의 선영이 이곳 문박산에 있다고 한다. 문박(文博)의 기운이 끼친 가문에서 제왕이 되어 보겠다고 했으나 기운이 제왕이 되기에는 부족했었던 듯하다.

 

돌아본 효제리 방향.

 

문박산 정상 인증.

 

효제고개에서 산행 중포의 유혹을 딛고 문박산에 오른 후미팀. 홧팅!

 

 

11:20 문박산 정상 아래에서 잠시 쉼을 하고,

 

문박산 내림길에서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의 능선길을 이어가면 밤나무밭을 지나 임도로 내려서게 되고, 우측의 내림길로 가면 문박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봉정사로 이어지는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우리는 우측의 내림길을 따라가서 금방 아래의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11:29 임도로 내려서서 금북길은 좌측이고, 우측으로 가면 봉정사가 나온다.

 

 

11:32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조금 가면 체육시설이 설치된 곳을 지나게 되고,

 

 

11:32 돌아본 봉정사(문박산 서쪽 사면에 위치해 있다).

 

사면을 돌아가는 임도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능선을 따라오면 나오는 밤나무단지를 거치는 금북능선과 다시 만나게 된다.

 

 

11:35 이제 금북길은 능선마루를 따라 이어진 임도를 따르게 된다.

 

좌측 대치면 방향으로 칠갑지맥 능선이 조망된다.

 

 

11:40 9번 송전탑을 지나,

 

우중앙 멀리 보이는 산이 칠갑산쯤이다.

 

좌측 아래로 사기점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우측 멀리로 칠갑지맥 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11:47 사기점고개.

 

흔히들 '청양'이라 하면 청양고추와 구기자들을 연상케 한다. 청양이란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청무군(靑武郡)과 정양군(定陽郡)이 합병하면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양(靑陽)이란 이름은 그 역사가 오래되어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月明師)의 산화가(散花歌)란 향가와 관련이 있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이름이라고 한다. 푸르고 따스한 동네라는 뜻의 청양은 농작물이 성한 고장인데 구기자와 그 이름도 유명한 청양고추가 많이 난다. 그러나 정작 청양고추는 그 기원이 경북 청송, 영양 지방과 관련이 있다.

 

사기점고개 이정표에서,

 

 

11:50 시멘트 임도 우측 숲으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청양공설운동장이 나오는데, 알바를 많이 하는 곳이다.

 

250봉을 들르지 않고 우회하여 내려서면,

 

 

11:56 여우실고개를 지나게 된다.

 

<여우실고개>

청양군 청양읍 학당리에 속한 여우실 마을은 학당리에서 여우실고개를 넘으면 나오는데, 옛날 이 마을에 여우가 많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인 듯하다.

 

 

12:00 225봉 오름길에 돌아본 여우실고개.

 

225봉 오름길은 최근에 개간을 해서 등로가 사라져서 그냥 임도를 따라 지그제그로 오르면 정상부에 도착된다.

 

 

12:02 225봉 정상을 지난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라 그런지 가벼운 마음으로 봉우리를 넘는다.

 

 

12:03 이어서 송전탑 아래를 지나게 되고,

 

 

12:05 다음 구간에 가게 될 오봉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좌측 학당리 마을 전경.

 

 

12:10 드디어 학당고개가 내려다 보이고,

 

능선이 밭으로 변하여 밭두렁을 따라 학당고개를 향해 내려간다.

 

좌측으로 축사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좌측 학당리 방향 전경.

 

 

12:13 학당고개가 내려다 보이고,

 

돌아본 225봉 방향.

 

학당고개 날머리에 도착한다.

 

<학당고개>

청양읍을 지나는 29번 국도인 학당고개는 아리고개라고도 불린다. 고개라기보다는 평지에 가깝다. 건너편에 청양장례식장이 자리잡고 있고 조금 내려가면 에덴모텔이 있는 곳이다. 청양에서 예산으로 이어지는 이 고개를 지대가 낮다고 하여 ‘아리고개’라고 부르는데 산꾼들에게는 학당고개로 더 알려져 있는 곳이다. 비가 오면 이 아리고개에서 물길이 나뉘어 북쪽은 예당 저수지로 흘러들어 가고 남쪽은 백마강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한다.

 

고개 좌측 편에 주유소가 있고,

 

고개 우측으로는 청양장례식장이 보인다.

 

 

12:15 주유소에서 기다리는 버스에 도착하니 시간이 좀 많이 이르다는 느낌이다.

 

 

12:16 먼저 갔던 분들도 마을 안쪽으로 돌아 학당고개로 오고 있다.

 

 

12:17 가장 먼저 도착한 선두팀.

 

후미팀과의 통화에서 시간 차이가 좀 나는 듯하고, 청양읍내 목욕탕이 지척이라 먼저 온 분들을 목욕탕으로 가게 했다. 평소에 목욕시간이 너무 짧다고 원성이 자자했던 터라 오늘은 목욕시간을 두 시간쯤 느긋하게 즐기시라고...ㅋㅋ

 

 

14:03 후미 백두도 도착.

 

이로써 어렵지 않았던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14:44 청양읍내 목욕탕에서 목감을 하고,

 

 

15:03 대치면 장곡리 칠갑산 아래에 있는 "칠갑산 맛집"으로,

 

콩밭 메는 아낙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

칠갑산(七甲山·561)은 청양군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대치면과 청양군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정산면, 청양군의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장평면 등 3개의 면에 걸쳐있는 큰 산이다. ‘어머니 품과 같은 포근한 산’으로 불리지만 가요 ‘칠갑산’으로 더 유명하다. 비록 해발고도가 높고 험준하진 않지만 깊고 웅장한 산세를 보여 청양의 진산으로 여겨져 왔다. ‘한국의 알프스’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칠갑산의 뜻을 보면 산천숭배사상을 따라 천지만물을 상징하는 칠(七)과, 육십갑자의 첫 글자인 갑(甲) 자를 따왔다고 한다. 이와 함께 지천(芝川)잉화달천(仍火達川) 등이 돌아다니며 7곳에 명당을 만들어 놓아 이 같은 이름이 생겨났다고 알려져 있다.(펌)

 

대천에 사시는 회장님 친구분이 회를 준비하여 방문해 주셔서 모처럼 회를 푸짐하게 먹었다.

 

대천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회.

 

언제나 산행 뒤풀이가 제일 뿌듯하다.

 

소주병은 자꾸만 쌓여 가는 사이에,

 

 

16:37 잠시 틈을 내어 장곡사 탐방에 나선다.

 

<칠갑산 장곡사>

장곡사는 충남 청양 칠갑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 후기 보조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 정조 1년(1777) 고쳐 짓고 고종 3년(1866)과 1906년, 1960년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지형을 따라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상대웅전은 하대웅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상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특이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건물 안쪽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그중에는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를 새긴 것도 섞여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의 짜임수법이 특이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장곡사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국보 제58호)와 장곡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174호) 등 귀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

 

장곡사에는 특별함이 있다. 다른 절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유래가 어찌 되었는지 절에 계시는 스님도 잘 모르는 그런 특별함이 있다. 바로 대웅전이 둘이라는 것인데, 그 대웅전도 사실 대웅전이라고 하기에 좀 난감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아래 있어 하대웅전이라고, 그보다 높은 곳에 있어 상대웅전이라고 부르지만 이상하게도 두 대웅전 모두 석가모니불을 모신 게 아니라 하대웅전에는 금동약사여래불을 상대웅전에는 철조비로자나불과 철조약사여래불과 소조아미타불을 모셨다. 사실 장곡사를 찾는 이유 중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대웅전 때문일 것이다.

 

내려다본 장곡사 전경.

 

뒤풀이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헐레벌떡 식당 앞으로 뛰어 오니,

 

다들 버스에 올라 기다리고 있다.

 

 

근디 회장님은 오를 고향에서 행사가 있다며...

 

 

07:01 회를 사 오셨던 친구분과 함께 먼저 출발하시고, 백두들은 다시금 서울로 향한다.

 

금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 있다.

선두와 후미의 산행 마무리 시간에 조금 차이가 있는 듯하여,

먼저 도착한 선두 조를 목욕탕으로 먼저 보낸 것이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못지 않게 여러가지 문제점 또한 노정되었다.

앞으로는 가급적 함께 산행하고, 목감도 함께하고,

뒤풀이도 함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을 듯하다.

 

오래 전의 산행이었지만

단풍 든 계절에 벚꽃 핀 산행 모습을 떠 올릴려니 역시 무리가 따른다.

함께해 주셔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