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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간남진 40차(복성이재~여원재) : 운봉고원과 지리산 북부능선 조망을 즐기며 걸은 대간길

by 재희다 2015. 10. 10.

산 행 지 : 백두대간 40차(복성이재~여원재)

산 행 일 : 2015. 10. 09.(금)

산행코스 : 복성이재 ~ 시리봉 ~ 사치재 ~ 매요리 ~ 고남산 ~ 여원재

              (거리 18.6km)

산행참가 : 19명.

 

주) 10월 9일 한글날 연휴로 인하여 산행일 조정.

홍도 탐방은 예약 곤란으로 순연하였기에 죄송^^

 

<산행코스>

 

오늘 산행은 전라북도 지리산 북쪽 경계를 품은 남원땅 운봉고원을 휘감아 도는 산행이다. 등산로는 곳곳에 이정표와 시그날이 잘 되어있어서 알바의 가능성도 낮고, 백두대간 중에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산행 코스다. 산행 중에 지나게 될 아막산성과 사치재, 매요마을, 고남산과 운봉고원 등에 대해서 미리 알아보고 가면, 산행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대간길이 될 것이다. 사실 가야 할 코스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가지고서 직접 걸으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고, 산행이 끝난 후에 기록으로 남기면 여러모로 유익한 일이 될 터인데, 우리네 삶이 바쁘다 보니!

 


05:07 지난 산행 종착지였던 복성이재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한다.

 

<복성이재(福星峙, 601.4m)>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산줄기는 시리봉과 봉화산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이어진다. 복성이재는 복성(福星) 마을에서 연유해서 생긴 이름으로 그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복성이 마을은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와 남원시 아영면 성리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산골마을로, 행정구역은 번암면 논곡리에 속한다. 이 마을은 백두대간의 능선이 크고 작은 봉우리를 이룬 첩첩산중이어서 전답도 제대로 없었다 한다.

 


05:08 복성이재에서 시리봉 방향 들머리로 들어서며, 대간남진 산행을 시작한다.

 

복성이재에서 들머리로 들어서는 백두들.

 


05:10 복성이재에서 작은 봉우리를 넘으니 임도가 지나는 재가 나오고,

 


05:20 다시 봉우리를 하나 더 넘으니, 시멘트 포장 임도가 지나는 재가 나오는데,

이곳이 산행기에 나오는 복성이뒷재인 모양이다.

 


05:33 시리봉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며 아막성이 200m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다.

 


05:34 허물어진 성벽의 잔해로 보이는 돌들이 나뒹구는 너덜을 오르게 되고,

 

허물어진 성곽 돌들을 밟고 오르며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삶의 터전을 지키고, 생존을 위한 투쟁들의 시간이 흐르며 역사로 쌓이고, 우리는 이러한 역사에서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미래가 없는 오늘의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 과연 오늘 우리의 삶을 지키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생각으로 임해야 할지를...

 

주변에는 거의 1500년 이상을 버텨온 생존의 갈림길 흔적이 보인다.

 

<아막산성(阿莫山城, 630m)>
아막산성의 '언덕 아(阿)', '드넓을 막(莫)'은 한자 뜻대로 드넓은 언덕이란 뜻으로,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와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 걸쳐있는 산성이다. 운봉읍과 주천면 지역에 있는 해발고도 600~1300m 이상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인 계곡분지인 운봉고원에 우뚝 솟은 언덕이란 뜻의 아막산성은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초기에는 금관가야의 대를 이은 대가야의 섬진강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을 지키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 된다. 이후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 사이의 지형상 중요한 군사요충지가 되었다. 백제에서는 아막성, 신라에서는 모산성이라 불렀다는 이곳, 백제와 신라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던 이곳이 지금은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만이 찾는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성터가 무너져 너덜지대를 만들고 200m쯤 진행을 하면 이끼가 낀 성터가 길게 이어지면서 1,500여년의 오래된 성터임을 짐작케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서기 167년에 백제는 신라의 서방을 침공하였고, 170년에 또다시 신라를 침범하였다. 그 후 초고옹 10년(서기 188년)에 또다시 신라가 차지하고 있던 아막성(모산성)을 침공하는 등, 이 산성을 두고 신라와 백제가 끊임없는 영토분쟁을 벌였다. 그리고 무왕 3년(서기 602년)에 백제가 아막성을 공격하여 신라장군 무은이 전사하자, 그 아들인 화랑 귀산이 추항과 함께 백제군을 물리쳤다. 이 전투에서 백제는 6만 군사 중 4만이 전사하였고, 백제 무왕의 한이 서린 국운이 기우는 전투가 있었다.

 

삼국사기 권제27 백제본기 제5(三國史記 卷第二十七 百濟本紀 第五) 602년 8월(三年秋八月,음력) 신라의 아막산성을 공격하다.

무왕 3년 가을 8월에 왕이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을 포위하였다. 신라 왕 진평이 정예 기병 수천명을 보내 항전하자 우리 군사가 불리하여 돌아왔다. 신라가 소타(小陀), 외석(畏石), 천산(泉山), 옹잠(甕岑) 등 4성을 쌓고 우리 변경에 침범하였다. 왕이 노하여 좌평 해수(解讎)에게 명령하여 보병과 기병 4만 명을 거느리고 4성을 공격케 하였다. 신라 장군 건품(乾品), 무은(武殷)이 군사를 거느리고 마주 싸웠다. 해수가 불리해지자 군사를 이끌고 천산(泉山) 서쪽의 소택지로 퇴각하여 복병을 숨겨 놓고 기다렸다. 무은이 승세를 타고 갑병 1천 명을 거느리고 소택지까지 추격하여 왔을 때 복병이 달려들어 갑자기 공격하였다. 무은은 말에서 떨어지고 군사들은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다. 무은의 아들 귀산(貴山)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내 일찍이 스승에게 들으니 '군사는 적을 만나서는 물러서지 말라'고 하였는데 어찌 감히 도망하여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겠느냐!" 그는 말을 아버지에게 주고 즉시 소장(小將) 추항(箒項)과 함께 창을 휘두르며 힘껏 싸우다가 사망하였다. 나머지 군사들이 이를 보고 더욱 분발하여 우리 군사가 패배하고, 해수는 겨우 위기를 모면하여 단신으로 돌아왔다.

 


05:37 아막성(모산성) 안내판 옆을 지난다.

 


05:42 묘지를 지나 아막산성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잠시 진행하니, 톨탑봉에 도착한다.

날이 밝았으면 전망이 좋은 곳인데, 어둠과 밤안개로 아쉬움을 남긴다.

 


06:04 안부를 지나 781봉 오름길은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소나무와 철쭉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781봉 소나무 아래에서 첫번째 쉼을 한다.

 


06:10 781봉에서 능선을 따라 잠시 진행하면 전망이 좋을 듯한 곳들이 있다.

좌측으로는 흥부마을로 유명한 아영면이 조망되는 곳인데, 어두운 야밤에 지나게 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06:11 선바위가 있는 암릉이 나오고, 대간길은 암릉을 지나며 우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진다.

 


06:17 암릉에서 직진 방향은 소나무숲의 사면으로 이어지는데,

앞서가던 분들이 점차 희미해지는 등로에 알바 길임을 알아차리고서 외치는 '백두~!'라는 외침에 화답하고서는 기다려서 함께 진행한다.

 


06:24 좌측 사면 방향으로 들어섯던 분들이 돌아나와 합류하고,

 


06:35 소나무숲이 있는 작은 봉우리를 지나 내려서니,

 


06:40 누가 일부러 올려놓은 듯한 바위 옆을 지나면, 편안한 내림길이 이어진다.

 


06:49 몇개의 작은 봉우리를 거치며 폐헬기장도 지나 내려서고,

 


06:52 벌초가 된 오래된 묘지를 지나서 내려서면,

 


06:59 새맥이재를 지나게 된다.

 

<새맥이재>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와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를 넘나드는 고개다. 새맥이재는 형세가 새의 목에 해당하는 곳이라하여 새목이재로 불리다가, 변음되어 새맥이재가 되었단다.

 

안양 산죽산악회에서 새목이재란 표지기를 걸어 놓았다.

 


07:07 새맥이재에서 잠시 오르면 나오는 오래된 임도길 흔적에서 오늘 두번째 쉼을 한다.

 


07:09 임도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 오름길을 이어가면,

 


07:13 697봉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진다.

 


07:19 697봉 주능선쯤에서 우틀하여 주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주능선 위에는 뚜렷한 수레길이 이어지다가 임도를 만나 가로질러 능선을 따라 가면,

 


07:33 숲으로 둘러져 조망이 없는 697봉에 도착한다.

 


07:35 697봉을 조금 지나자, 앞쪽으로 조망이 확 트인다.

 

좌측으로 휘어져 대구광주간고속도로를 넘고, 다시 우측으로 휘어지며 고남산까지 이어지는 대간 능선이 뚜렷이 가늠된다. 하지만 아침 안개로 백두대간의 종착지인 지리산의 장쾌한 능선이 보이지를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가야 할 고남산 아래로 최근에 새로이 건설된 대구광주간고속도로가 보인다.

 

살짝 당겨본 고남산.

 

남쪽 운봉읍의 황산 방향 조망.

 

고려 말기인 1380년(우왕 6년) 왜구가 경상도와 전라도에 대거 침입하자, 양광(楊廣)·전라(全羅)·경상도(慶尙道)의 순찰사인 이성계 장군이 뛰어난 전술과 사술(射術)로 적을 무찌른 황산대첩이 있었던 곳이다.

 


07:36 운봉읍과 고남산을 배경으로.

 


07:43 능선을 따라 잠시 진행하자 좌측으로 대구광주간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가 내려다 보이는데,

옛날 북진길에서는 구간을 끊었던 곳이다.

 

대간 능선의 작은 봉우리에서 조망을 즐기며 놀멍 쉬멍 가는 백두들.

 


07:50 평소의 아침식사 시간에 비해 늦은 터라, 식당 찾으려 서둘러 다음 봉우리로 오른다.

 

다시 고남산 방향.

 

북서쪽 남원시 산동면 방향 조망.

 


08:01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지나온 시리봉(우중앙) 방향을 배경으로.

 


08:19 그 좌측 북서쪽 남원시 산동면 방향 조망.

 

서쪽 고남산 방향.

 

남서쪽으로 가야 할 사치재 고속도로를 넘는 생태통로도 보인다.

 


08:22 아직도 구름모자를 쓰고 있는 고남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는,

 


08:23 사치재를 향한 가파른 내림길에 접어드니,

 

이제 동쪽 대구를 향해 뻗은 대구광주간고속도로가 좌측으로 조망된다.

 


08:33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니, 사치재를 지나는 대구광주간고속도로가 나온다.

 

<사치재>
전북 장수군 번암면 유정리에서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를 잇는 고개로, '이슬재'라고도 하며 광주에서 대구를 잇는 88고속도로가 지난다. 사치(모래재 마을 : 장수군 번암면 소재)는 과거 백제의 영토였으며, 신라 영토인 가산리(남원시 아영면)와는 양국의 국경분쟁지였었다.
88고속도로는 1988년도 88올림픽 기념으로 영남과 호남의 언어, 생활풍습, 가치관의 차이 등으로 인한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고속도로다. 남부 내륙지역에 잠재된 관광자원을 개발하여 지역 격차가 완화되면서 그동안 단절되었던 두 지역을 화합의 장으로 이끌어 '화합의 고속도로'라고도 불렸다. 2015년 12월 전 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개통되면서 대구광주고속도로로 명칭을 바꾸게 된단다.

 

그 옛날 대간 북진길에서는 88고속도로를 지하통로로 통과하여 지리산 휴계소(광주방향)에서 구간을 끊었었는데, 이제는 4차선으로 확장 포장하며 만들어 놓은 생태통로를 통하여 고속도로(사치재)를 통과하게 된다.

 

생태통로로 향하는 백두들.

 

사치재 날머리로 내려서는 백두들.

 


08:35 88고속도로 위에 만들어 놓은 에코브리지를 지나는 백두들.

 

88고속도로 대구 방향 모습.

12월 확장개통을 앞두고 막바지 마루리 공사가 한창이다.

 

 


08:37 에코브리지를 건너면 사치재 들머리가 나오는데, 들머리에 있는 밤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는 알밤 줍기는 보너스다.

 

사치재 들머리에는 사치재를 알리는 이정목도 세워져 있다.

 


08:39 어린 소나무들이 빼곡한 숲길을 따라 618봉으로 오른다.

 


08:46 가끔씩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도 지난다.

 


08:47 작은 봉우리를 넘어 묘지 옆을 지나 내려서니,

 


08:49 좌측으로 황산과 운봉읍 가산리의 방현 마을이 보이고,

 

 

08:58 무너진 성곽의 흔적인 듯한 너덜길도 나타난다.

 


09:10 어느 곳이 618봉이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지나치며 소나무숲길을 따라 편안한 대간길이 이어진다.

 


09:21 유치삼거리 도착.

 

매요 마을은 유치삼거리서에서 직진 방향의 743 지방도로를 따라야 한다.

 

유치삼거리로 내려서는 백두들.

 


09:23 유치삼거리를 지난 매요 마을로 향하는 백두들.

사실 대간 능선은 유치삼거리를 지나며 우측 숲으로 이어지지만, 이내 도로로 내려서기에 그냥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Y자 갈림길에서 따르던 743번 지방도는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우리는 직진 방향의 우측길을 따라 매요 마을로 진행한다.

 

좌측은 운봉읍으로 이어지는 743번 지방도이고, 우측길을 따라야 매요마을로 가게 된다.

 

주변 밭에는 예쁜 상추가 심어져 있는데, 그닥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09:28 좌측에 폐교된 운성초교가 나오고,

 

우측에는 매요교회가 있다.

 

<매요마을>
남원시 운봉읍 소재지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8번 군도가 마을 앞을 지난다. 백두대간 상에 있는 2개 마을 중 하나로, 마을 뒤로는 88고속도로가 지나며, 고남산과 황산 사이에 자리하여 북쪽으로는 장수군 번암면과 경계에 있다.

매요마을은 옛부터 말의 허리 형국이라, 마을 이름을 '말 마(馬)' 자와 '허리 요(腰)' 자를 써서 마요리(馬腰里)라 하였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유정대사가 산천을 유람하다 마요리에 당도하여, 마을 사람들이 매화같이 순결하고 선량하다 하여 마요리를 매요리(梅要里)로 고치는 것이 지형과 인심에 합당하다고 하여 매요리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교회 앞을 지나자 매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폐교된 운성초등학교 정문에는 아직도 이름을 달고 있다.

 


09:31 매요 마을에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매요휴게실이 있다.

백두대간을 진행하는 산꾼이라면 무조건 들렀다 가야 한다는 곳이라, 백두들도 당연히 걸음을 멈추고 막걸리를 주문한다.

 

막걸리에 김치 안주를 가져다주시는 할머니!

 

가계에는 별다른 먹거리가 없어서, 매상을 올려줄 만한 것이 막걸리 외에는 없다.

 


09:56 매요휴게실 지킴이 할머니를 모시고 인증!

 


10:00 매요휴게실을 뒤로하고 우틀하여 매요 마을회관을 지난다.

 

농가 마당에는 갖가지의 겨울철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마을 안길을 따르다가 다시 좌틀하여 유치재로 향한다.

 

돌아본 매요마을 전경.

 


10:04 매요마을을 벗어나면 조그마한 언덕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따르던 시멘트 도로를 두고, 우측 수레길로 들어야 한다.

 


10:07 편안한 수레길을 따라 진행하여 능선 위로 오르면,

 


10:19 우측 아래로 새로이 확장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88고속도로가 보이고,

 


10:32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자그마한 봉우리를 넘으면, 앞쪽으로 가야 할 고남산이 보인다.

 


10:38 좌측으로 운봉읍 임리의 불당저수지가 보이더니,

 


10:45 유치재를 지나게 된다.

 

<유치재(柳峙, 626m)>
남원시 운봉읍 임리와 장수군 번암면 유정리 사이를 잇는 고개로, 버들치라고도 한다.

 


11:01 유치재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오래된 묘지 옆을 지나게 되고,

 


11:09 고남산 중계소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옆으로 지나는, 통안재에 도착한다.

 

<통안재(655m)>
남원시 산동면 대기리에서 운봉읍 권포리와 임리를 잇는 고개로, '동네 안쪽에 있는 고개'라는 뜻이라 한다. 고개 위에는 고남산 통신탑이 있고, 서어나무들이 있는 넓은 공터가 있으며, 이 지역 사람들은 독골재라고 부른다.

 

고남산 정상의 통신중계소로 이어지는 통안재 옆 임도를 따라 고남산으로 오르게 된다.

 

 

11:14 통안재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백두들이 도착하고,

 


11:20 또 한참 만에야 후미가 도착한다.

 


11:31 늦게 도착한 후미들이 쉬는 동안을 기다려, 함께 임도를 따라 고남산으로 향한다.

 


11:39 이곳에서 좌측 숲으로 들어 지름길로 가도 되지만, 시간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듯하여 임도를 따른다.

 


11:42 꼬불꼬불 오르는 임도를 따르는데,

 

북동쪽 멀리로 장안산과 백두대간의 백운산이 조망된다.

 


11:43 고남산 정상부를 차지한 통신중계소를 우회하는 등로가 임도 우측으로 나 있는데,

무심코 임도를 따르려는 직진 본능의 백두들을 불러세워, 고남산 정상으로 향하는 우측 숲길로 들어선다.

 

KT중계소를 우회하여 오르는 등로 들머리 모습.

 


11:47 숲길을 잠시 오르면 통신중계소 뒤편 헬기장에 올라서게 되고,

 

멀리로 지나온 백두대간의 백운산이 조망된다.

 


11:48 널찍한 고남산 헬기장을 지나,

 


11:50 호젓한 숲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면,

 


11:53 남원시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는 고남산 정상부에 도착한다.

 

<고남산(古南山, 846.5m)>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와 운봉읍 권포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인근 주민들에 의하면 고남산을 태조봉, 고조봉, 제왕봉, 적산, 일광산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아침에 가장 먼저 햇빛을 받아 빛나는 산이여서 일광산이라 하고, 저녁이면 노을에 붉은빛을 띤다 해서 적산이라 불렀다. 이 산의 고도는 846m에 불과하지만, 정상에 있는 송신탑이 말해 주듯이 운봉평야에 우뚝 솟아 있어서, 옛부터 전쟁터와 격전지의 방어선이 되곤 했다. 또한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 부르는 이유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왜적을 무찌를 때 이곳에 제단을 쌓아 제를 올렸기 때문이다. 운봉의 북서쪽에 있는 산으로 운봉분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요천이 흘러내리는 전망이 멋진 산으로 옛부터 위치 상 전쟁의 요충지였다. 고려 말인 1380년(우왕 6)에 인월면 인월리에 본진을 둔 일본군 왜장 아지발도에 맞선 이성계가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황산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 후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건국한 뒤, 이 산의 이름을 태조봉 또는 제왕봉으로 불렀다고 한다.

고남산 동쪽의 운봉천은 남천, 경호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유입되고, 고남산 북서쪽의 요천은 섬진강으로 유입된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KT무선통신 중계소가 있다.

 

남동쪽으로는 지리산이 둘러싸고 있는 운봉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고남산 정상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12:00 고남산 정상 인증을 남기고,

 


12:03 산불 감시탑이 있는 고남산 꼭대기로 오른다.

 

산불감시초소와 감시카메라가 있는 고남산 정상 모습.

 

고남산에서 돌아본 KT통신탑이 있는 동쪽으로, 걸어온 마루금과 봉화산은 물론 백운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고남산을 오르지 않고 탈출하는 분들을 위해 버스를 대기시켰던 운봉읍 임리를 당겨본 모습.

 

동쪽 방향 파노라마.

 


12:06 고남산 꼭대기에서 조망을 즐기는 백두들.

 

남쪽 지리산 방향 파노라마.

주변에 지리산과 대간능선으로 둘러진 운봉평야(운봉고원)가 한눈에 들어온다.

 

<운봉고원>
신생대 후기 지리산 일대의 지반융기와 차별침식에 의하여 운봉읍과 주천면 일대에 만복대(1,433.4m), 고리봉(1,304.5m), 세걸산(1,207m), 바래봉(1,165m), 덕두산(1,149.9m), 황산(697m), 고남산(846.4m), 수정봉(805m) 등의 높은 산으로 둘러 싸인 80㎢의 넓은 운봉분지가 생겼다.

 

북쪽 덕태산과 장안산 방향.

 

지리산 북능을 배경으로 두른 운봉고원 평야 전경.

 

동쪽 방향.

 

서쪽 남원시 방향.

 

북쪽 장수군 방향.

 

남쪽 방향 파노라마.

지리산 주능으로 이어진 대간능선이 한눈에 가늠된다.

 

고남산 정상에서 바라본, 앞으로 진행할 마루금 조망.

 

지리산 북능을 배경으로 영규 형님과 친구분.

 


12:15 고남산 정상에서의 장쾌한 조망을 뒤로하고 여원재를 향한다.

 


12:17 고남산 정상을 뒤로하고 데크목 계단을 내려서는데, 우측으로 공깃돌을 이고 있는 암봉이 멋지고,

 

서쪽 방향으로 남원시가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서쪽 남원시 방향 조망.

 

서쪽 방향 파노라마.

 

우측 번암면 방향 지능선의 암릉이 멋지다.

 

살짝 당겨본 지능선의 바위절벽.

 


12:21 데크목 계단을 내려서자 작은 암릉 옆을 지난다.

 

돌아본 고남산 데크목 내림길 모습.

 


12:23 다시 작은 암봉 위로 올랐다가 좌틀하여 내려서면,

 


12:30 오래된 묘지가 나오며 앞쪽으로 가야 할 지리산이 한걸음 다가선다.

 


12:38 소나무가 빼곡한 능선을 따라 대간능선이 이어지고,

 


12:54 고남산에서의 멋진 조망을 즐기느라 늦어진 후미와 함께 능선을 따르니,

 


13:01 말끔히 벌초가 된 묘지에서 백두들이 쉼을 하고 있다.

 


13:13 잠시의 쉼을 뒤로하고 능선을 따라 내려서니,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며 운봉읍 권포리 마을이 조망된다.

 


13:16 뚜렷한 권포리 가동마을 방향의 능선을 두고, 표지기가 이끄는 우측 길로 들어서면,

 


13:20 다시 수레길 수준의 갈림길이 있는 곳을 지나는데, 이곳에서는 직진의 능선길로 가야 한다.

 


13:21 잘룩한 옛고개를 지나고,

 


13:24 숲으로 이어진 완만한 등로를 따라 잠시 오르면,

 


13:27 가족묘지가 있는 능선에 오르게 되고, 이곳에서 좌측 내림길 방향의 능선으로 들어선다.

 

 

13:30 고도차가 거의 없는 편평한 숲으로 대간길이 이어지며,

 


13:33 가족묘지를 지나는데, 우전방으로 다음 구간 오르게 될 수정봉이 보인다.

 


13:36 대간능선을 점령한 밭 가장자리로 등로가 이어지고,

 

주변은 완만한 구릉지대가 이어진다.

 


13:37 좌측 장동마을로 이어지는 농로를 지나는데, 이곳에서 좌측 장동마을로 내려가서 여원재로 가도 되지만,

도로 건너편 계단으로 올라 능선을 고집하며 마루금을 따른다.

 

백두대간 이정목은 더위에 지쳐 쓰러져 길 옆에 누워 있다.

 

도로를 건너 올라서면, 등로는 밭 사이로 이어져 있다.

 


13:38 돌아본 장교리 장동마을 뒤편으로 고남산이 보인다.

 


13:40 밭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니, 대간길은 능선 위로 이어진 농로를 따르게 된다.

 

돌아본 장동마을과 고남산 방향.

 


13:42 장동마을 앞 농로에 내려서서 다시한번 장동마을을 담고,

 


13:47 다시 밭을 가로질러 도로에 내려서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르다가 좌틀하여 진행하게 된다.

 

도로에 내려서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첫번째 갈림길에서는 직진하고,

 

이정목이 있는 두번째 ㅓ자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여원재를 향한다.

 


13:49 지나온 고남산 방향. 좌중앙 묘지 옆으로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이곳으로 왔다.

 

우측으로 남원에서 운봉읍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 여원재 오름 구간 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13:50 대간길은 구릉을 따라 이어진다.

 

지나온 고남산 방향 조망.

 


13:52 완만한 구릉을 따라 내려서면, 나뭇가지에 표지기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곳을 지나게 되고,

 


13:54 여원재에서 기다리고 있는 애마가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소나무숲길을 따라 내려서면,

 


13:55 24번 국도가 지나는 여원재에 도착한다.

 

<여원재(女院峙, 470m)>
남원시 운봉읍과 이백면을 잇는 고개로, 일명 '연재'라고도 하며, 남원에서 함양으로 가는 24번 국도가 지난다. 남원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운봉읍으로 가다 보면 해발 470m 여원재를 넘는데,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에는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개였다.

여원재의 유래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에 이곳 운봉현까지도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갯마루 주변 주막집에 들락이던 왜구 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런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한다. 한편으로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자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성계는 꿈에 나타난 이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자결한 주모의 원신이라고 믿고, 고갯마루 암벽에 여상을 암각 한 다음 주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을 지어 여원(女院)이라고 불렀다.

 

 

여원재 이정목과 안내판.

 

여원재 날머리 전경.

 

24번 국도 건너편 다음 구간 들머리 옆에는 돌장승이 지키고 있다.

 


13:56 여원재 다음구간 들머리 전경.

 


13:58 대간산행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애마에 올라,

 


14:22 남원시에 있는 목감탕으로 이동하여,

 


15:03 산행에서 묻은 먼지와 땀을 닦고,

 


15:13 뒤풀이 장소인 신촌매운탕으로 이동한다.

 


15:13 신촌매운탕은 남원시내를 관통하는 요천 제방 곁에 있는데, 지천을 건너는 쇠다리를 건너야 한다.

 

싱그러운 가을바람을 맞으며 다리를 건너는 백두들.

 


13:24 한가한 매운탕 집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종업원이 차려진 상을 들고 나타난다.

 

고남산에서의 장쾌한 조망을 떠올리며,

백두! ~~ 삽시다!

 


매운탕에 들어가는 배추시래기를 삶고 있는 쥔장 할머니.

신촌매운탕은 부드러운 시래기가 맛있는 오래된 매운탕의 명가라고 한다.

 


16:48 '쉬운 산행, 맛난 뒤풀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한다.

 

판소리의 고장 운봉을 내려다보며 이어진 멋진 대간길이었다.

특히나 매요휴게실의 할머니와 뒤풀이 장소인 매운탕집의 할머니의 모습이

정겨움으로 기억된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