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백두대간 39차(중고개재~복성이재)
산 행 일 : 2015. 09. 12.(토)
산행코스 : 삼거리 + 중고개재~중재~월경산갈림길~광대치~봉화산~매봉~복성이재
(거리 14km + 1km)
산행참가 : 18명.
<산행코스>
이번 산행의 시작은 지난 산행 날머리인 지지계곡에서 중고개재로 올라서 대간길을 이어가기로 했었는데, 비 예보에 따라 지지계곡을 건널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대쪽 함양군 백전면 중기마을을 들머리로 하여 중재로 오르기로 변경했다. 중고개재와 중재 사이의 1km 남짓 거리는 중재에 배낭을 벗어 두고 왕복할 요량이었으나, 옛날 북진길에 걸었던 길이라며 생략하자는 중론에 따라 중재에서 대간 남진길로 바로 들어섰다.
옛날 대간 북진길에 중재에서 중기마을로 하산한 적이 있어서 중기마을까지 버스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100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운산리에서 중기마을로 들어서자 예상보도 길이 좁아서 어렵게 중기마을로 진행을 하는데, 중기1교쯤에서 교량 신축 공사로 버스가 더이상 가지를 못하고 멈추어 선다. 중기마을 까지는 600여 미터를 남긴 지점이지만, 하는 수 없이 산행 준비를 하고 걸어서 중기마을까지 가서, 중재로 오르기로 한다.
06:03 중기마을 진입로 교량공사 현장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중재를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06:07 버스를 어떻게 돌려서 나가게 할까를 걱정하며,
조금씩 흩뿌리는 부슬비를 맞으며 중재마을 진입로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06:13 중재마을(함양군 백전면 소재) 입구에서 좌틀하여 중재 고개로 향해야 하는데,
직진 본능의 선두팀은 중재마을 안으로 들어서다가 돌아나와 합류한다.
옛날 중재(중기마을)에는 바람둥이 소금장수가 보따리장수처럼 바람처럼 왔다 갔는데, 어느 과부가 소금장수의 감언이설에 정을 주어 임신을 하였다고 한다. 산달을 4개월 앞두고 소금장수가 다시 왔길래 과부가 임신 사실을 말하니, 결혼할 입장이 아니라고 하면서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다시 주막에서 주모와 정쌓기를 하고, 밤새 몰래 동네를 빠져나가다가 연못(沼)에 빠져 죽었는데, 중기 마을에서는 이 소(沼)를 소금쟁이 소(沼)라고 부르며, 과부도 해산하다가 아이와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좌틀하여 임도를 따라 중재 고개로 향하는데,
중재마을 안으로 들어섰던 분들도 돌아나와 합류한다.
06:15 마을 앞 계류를 건너는 다리를 건너면, 중재로 오르는 본격적인 임도 오름길이 이어진다.
빗방울이 굵어졌다가 가늘어졌다를 반복하며 그치지를 않고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깨끗한 공기와 좋은 조망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06:26 중재로 오르는 백두들.
앞서가던 몇몇 분이 임도를 오르다가 벌집을 건드려 벌에 쏘였다.
특히나 창병씨는 집중 공격을 당했는지 손과 얼굴에 뚜렷한 벌침의 흔적을 남겼다.
돈 들이지 않고 봉침 시술을 받았으니..ㅉㅉ
06:38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중재에 도착한다.
<중치(中峙, 650m)>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마을과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백운산과 월경산 사이에 있으며, 중치와 중기마을은 임도로 연결되어 있다. ‘가운데에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백운산과 월경산의 가운데’라는 의미다.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에는 이 고개 이름을 딴 중재마을이 있다.
대간 마루금을 잇기 위해서는 지난 산행의 종착지였던 중고개재까지 1.7km를 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곳에 배낭을 두고 다녀오기로 했었는데, 북진 때 갔던 길이고 오늘은 비도 오고 하니 그냥 남진길로 들어서잔다. 비도 오는데 그게 좋다는 맞장구에 다들 동의하고,
월경산 방향의 대간 남진길로 바로 진행하기로 한다.
06:43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에 내리던 비가 조금 잦아든다.
입고 있던 우의를 갈무리해서 배낭에 넣고, 중재에서 대간 남진길로 들어선다.
07:12 초반의 완만한 경사가 급경사로 바뀌며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토사 유출로 인해 무너진 대간길을 복원하는 현장을 지나게 된다.
07:28 전형적인 육산 등산로에 돌길도 나타난다.
07:30 우측 지지계곡 방향으로, 구름이 걷히며 건너편 능선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07:40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지만 이어지는 오름길에 마땅한 식사 장소를 찾지 못하다가,
월경산 직전의 봉우리에 올라서니 널찍한 공터가 있다.
월경산 갈림길에서 식사를 하자고 하는데도, 이미 시장끼를 느끼던 터라 공터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다행히 내리던 비가 그쳐서, 오손도손 둘러앉아 조금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07:50 월경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월경산은 이곳 백두대간 능선의 갈림길에서 300m쯤 떨어져 있어서, 다른 분들은 대간길을 이어가고 나만 홀로 배낭을 벗어 두고 월경산으로 향한다.
07:55 배낭을 두고 빠른 걸음으로 가니, 5분여 만에 숲으로 둘러진 월경산 정상에 도착한다.
<월경산(月鏡山, 980.4m)>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와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능선에서 약 200m(갈림길에서는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특이한 이름에 비해서는 조망도 없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산이다. 지명의 유래는 약 200년쯤 전에 어떤 사람이 고향을 떠나와 지지리 계곡에 살게 되었는데, 어느날 밤 달빛이 밝아 밖을 나와 하늘을 쳐다보니, 유난히 보름달이 빛을 더해 고향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월경산이라 불렀고 살던 마을을 광대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도 많은 대간꾼들이 월경산 정상을 다녀 간 듯,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07:59 다시 월경산 갈림길로 돌아나와, 벗어 두었던 배낭을 메고 대간길을 이어간다.
08:14 폐헬기장을 지나니 약초재배 단지 펜스가 나오며, 팬스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대간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지고,
구름이 걷히며 좌전방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08:24 약초단지에서 잠시 내려서니 광대치가 나온다.
<광대치(廣大峙)>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 광대동과 경남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를 잇는 고개로, 우측으로 내려서면 장수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지지리계곡이 있다. 광대치는 ‘넓고 큰 고개’라는 뜻이다. 동.서 양쪽에 계곡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의 능선과 동쪽의 능선이 모두 해발 높이가 높아 산속에 갇혀 있는 형상이다. 월경산에서 달이 크게 비치는 고개라고 하여 광대치라 부른다고도 하며, 그 아래에 있는 마을을 광대동이라 한다.
08:28 부드러운 육산 능선에 커다란 바위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08:41 제법 가파른 암릉 오름길이 이어지고,
08:42 암릉 위로 올라서자 지나온 월경산이 보이며,
우후방 함양군 백전면 방향으로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08:43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한번 더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08:47 936봉 정상에 오르게 된다.
정상 직전 전망바위에서의 조망이 좋아 정상에서의 조망도 기대했는데, 주변이 나무로 둘러 있어서 조망이 없다. 실망! 후회!
아침식사 후 처음하는 쉼이라 목도 축이며 조금은 여유있는 휴식을 한다.
09:06 936봉을 뒤로하고 편안한 능선을 따르다가, 잠시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서니 안부를 지나게 되고,
09:11 짧은 오름길을 오르면 바위들이 있는 능선 위에 서게 된다.
장안산과 백운산 방향을 배경으로 전망바위에서 조망을 즐기는 김작가님.
장안산과 영취산, 백운산 능선 너머로 남덕유산의 두 봉우리도 살짝 보인다.
백운산에서 이어온 대간능선이 한눈에 가늠된다.
그 우측으로는 함양군 방향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당겨본 남덕유산과 서봉(장수덕유산) 모습.
09:14 고도 차이가 거의 없는 능선길이 이어지며 빛바랜 이정표를 지나면,
09:17 나뭇가지에 944봉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봉우리를 지난다.
실제 944봉 앞.뒤의 능선은 봉우리와 높낮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09:22 다시 짙어지는 구름이 시야를 가리기 시작한 944봉 능선을 진행하다가,
널찍한 마당바위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하염없는 여유를 부린다.
남쪽 백전면 대안리 소바위골 조망.
오락가락하는 구름에 잠깐씩 드러나는 조망을 즐기는 편안한 쉼의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진다.
09:45 이윽고 후미들도 도착하고,
드러난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 소바위골 조망을 담고서, 후미와 함께 대간길 잇기에 나선다.
10:01 키를 넘는 억새가 능선을 뒤덮은 대간길이 이어지더니,
좌측으로 경남 함양군과 전북 남원시를 경계하는 연비지맥의 능선이 조망된다.
10:04 억새 능선을 지나니, 추석을 앞두고 말끔히 벌초가 된 묘지가 나온다.
습기에 젖은 얼굴을 훔치던 오여사님이,
쫓아오는 남편 얼굴도 닦아 주겠다며 마중을 간다. 부러워유~~!
10:06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경계가 되는 연비지맥이 분기하는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봉우리에는 '무명봉'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봉우리 이름이 없는 건지, 봉우리 이름이 무명봉 인지 !
<무명봉(870m)>
전북 장수군 번암면, 남원시 아영면, 경남 함양군 백전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서부지방 산림청에서 무명봉이라고 팻말을 세워 놓았다. 아마도 대간꾼들이 이름없는 봉우리를 그리 부르다가 보니 이름이 되었나 보다. 이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이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경계를 이루는 연비지맥 능선이다.
남원시 아영면 들판이 누렇게 변하고 있다.
10:09 무명봉을 뒤로하고 거의 고도차가 없는 능선을 이어가는데,
대간 능선에는 키높이를 넘게 자란 억새들이 등로를 감춰두고 있다.
억새보다 작아서 슬픈 백두들!
10:12 앞쪽으로 가야 할 봉화산이 구름에 가려 있다. 우리가 도착할 때쯤에는 구름이 걷히기를 기대하며..!
10:15 갑자기 나타난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남쪽 아영면 방향으로 임도가 연결된 봉화산 쉼터에 도착한다.
봉화산 쉼터에는 '봉화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쉼터로 내려서는 백두들.
구름에 가린 남쪽 지리산 방향 조망 대신 조망 안내도를 살피는 영규 형.
지리산 방향 조망 안내도.
산행이 널널해서 그런지 쉼도 널널하다.
산행이 쉬워도 대간길이라, 평소의 컨디션이 아닌 회장님은 힘들어하신다.
10:19 쉼터를 뒤로하고 봉화산을 향한다.
쉼터를 뒤로하는 백두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는데, 아직도 구름 속에 들어있는 봉화산이 아쉽기만 하다.
10:23 능선에서 바라본 남원시 아영면(阿英面) 조망.
아영면(阿英面)은 남원시의 북동단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은 함양군, 서쪽은 장수군, 남쪽은 인월면, 북쪽은 장수군과 함양군에 접해 있다. 면을 중심으로 봉화산, 연비산, 상산, 성산으로 주위가 에워싸여 있고, 관내의 주요 하천은 남쪽으로 흘러 풍천에 모이며 흘러나가다가 만수천과 합수한다. 면 소재지인 갈계리(葛溪里)를 비롯하여 11개 리(里)를 관할한다.
지명은 이 일대에 있던 고려시대의 고지명인 ‘아영(阿英)’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은 757년(신라 경덕왕 16)까지는 모산현(母山縣)에 속해 천령군(天嶺郡, 현 경남 함양군)에 예속되었다. 이후 운봉현으로 개칭되었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운봉현이 남원부의 관할이 되면서 아용곡(阿容谷), 또는 아영(阿英), 아막(阿莫)이라 하였다. 당시 북상면(北上面)과 북하면(北下面)에 해당되었다. 당시 북상면은 아곡동(阿谷洞)·봉대동(鳳臺洞)·청계동(淸溪洞) 등 13개 동리로, 북하면은 부동(釜洞)·월성동(月城洞)·이동(梨洞) 등 9개 동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후 아곡리(阿谷里)·봉대리(鳳臺里) 등 11개 리로 이루어졌다. 1995년 남원시 아영면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한편 면 소재지인 갈계리는 이곳에 정착 당시 천년 묵은 칡덩굴이 우거지고 마을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어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펌)
10:25 잠시 잠깐 사이에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며,
10:28 가야 할 봉화산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억새로 덮인 능선을 따라 봉화산으로 향하는 백두들.
10:31 봉화산 정상으로 이지는 나무계단을 오르는 백두들.
10:32 구름을 걷어내어 훤히 드러난 봉화산 정상에 도착한다.
봉화산 정상의 정상석이 멋지다.
<봉화산(烽火山, 919.8m)>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와 동화리의 경계 산령인 남원시 야영면의 최북단 접경 지역에 위치한 산으로, 역사적인 유적지를 간직하고 있다. 봉화산은 봉수대의 유적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봉화 봉수대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고 한다.
고적조사자료에 따르면 "번암면 동화리 장안산 주 140간 석축 남원 함양 계"라 하여, 곧 봉수대는 번암면 동화리 장안산에 있고, 봉수대의 둘래는 약 252m인데, 돌로 쌓은 것으로 남원과 함양 간의 경계선에 있다고 적고 있다. 이 봉수대는 대체로 통일신라 이후부터 폐지된 것으로 보이며, 백제와 신라의 국경 분쟁이 잦았던 운봉과 아영면 부근을 살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봉화산은 위 기록에서와 같이, 전에는 장안산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봉화산 정상에서는 88올림픽 고속도로와 지리산의 수많은 연봉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데, 특히 봄철에는 봉화산을 오르는 산등성이가 철쭉꽃으로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현재는 정상에 산림 측량 기점인 삼각점이 있어 동화리 노단지역 산의 기점 역할을 한다.
지역주민들은 일제시대에 깃대를 꼽고 측량을 했다는 의미로 깃대봉으로도 부른다. 전북지역에는 많은 봉수대 터가 있는데, 산경표 상의 금남정맥에 자리잡은 803봉의 태평봉수대가 가장 크고 원형이 그대로 복원돼 관심을 끌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 삼국사기에는 백제 온조왕이 봉수대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봉화산 정상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남쪽 아영면 방향 지능선 조망.
봉화산 정상 주변에는 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돌을 가져왔는지 봉수대 모양의 돌탑을 쌓아 놓았다.
비는 아침에 그쳤지만 물방울을 달고 있는 억새 능선을 헤치고 오느라 모두들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어디를 다녀오시는지 용호 형님은 뒤늦게 도착하신다.
10:45 오늘 산행 중 처음 맞이한 정상석 앞에서 봉화산 인증을 남긴다.
10:47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봉화산을 뒤로한다.
10:54 그다지 힘들지 않은 산행길이라서 그런지, 백두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여유롭다.
11:07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지는데, 백두들이 모여 나무에서 뭔가를 따고 있다.
이 열매의 이름은? (답 : 으름)
11:14 익히 보지 못하던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들이 눈에 띈다.
11:16 열매를 달고 있는 이 식물의 이름은?
등로에서 바라본 남원시 아영면 구상리 방향 조망.
구상마을은 조선조 말엽에 초계 변씨(草溪 卞氏)가 입주하면서부터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구한말에 이르러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정감록(鄭鑑錄)>비결이 성행하자, 자손들의 안전을 기하는 내로라하는 가문들이 피난지로 알고 찾아와 거주하게 됨으로써 큰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이 형성될 당시만 해도 이곳은 사람이 드물고 천연의 밀림이 우거진 깊은 골짜기여서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등 인명에 피해를 끼치니 사람들은 자연히 산신을 섬기게 되었는데, 그것은 집집마다 정성을 들이고 매년 마을 공동으로 산신제(山神祭)를 모셔 개를 잡아 호랑이에게 바쳤다 하여 마을 이름이 구식(拘食)이라고 하였다 한다. 또 일설에는 호랑이가 먹이로 개를 찾는다고 해서 구색(拘索)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그러다 마을의 지형이 풍수지리적으로 장차 아홉 재상이 나올 수 있는 명당자리라 하여 구상(九相)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펌>
대간 능선 너머로 지리산 서북능선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11:19 관목숲이 이어지다가 앞쪽으로 조망이 트이며, 오늘 걸어야 할 대간능선이 가늠된다.
11:21 등로는 키 작은 관목숲 터널로 이어지더니,
가끔씩 키 큰 나무가 나오면 어김없이 대간꾼들의 쉬어간 흔적이 있다.
11:37 우측 번암면 방향으로 조망이 트인 곳도 지나고,
완만한 능선 숲길을 이어 가다 보면,
밤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밤나무에는 탐스러운 밤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11:42 아직 익지 않은 밤송이를 발로 까보기도 하며,
11:44 시종 여유로운 대간길이 이어진다.
예쁜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의 이름은?
11:46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매봉이 치재 건너편으로 훤히 드러나 보이고,
좌측으로는 아영면의 황금빛 들판이 조망된다.
11:48 치재에는 정자쉼터가 마련되어 있어서, 편안한 산행에도 어김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느긋한 쉼을 한다.
가야 할 매봉 방향으로는 치재까지 데크목으로 등로를 포장해 놓았다.
아영면 방향 조망.
등로에서 발견한 갖가지 열매들을 살펴보는 백두들.
이 나무의 이름은?
북쪽 번암면 방향 조망.
11:56 백두들이 치재를 지나 매봉 오름길에 나선다.
데크목으로 포장해 놓은 치재 등로 모습.
<치재(660m)>
남원시 아영면 성리 치재마을에서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역적재를 잇는 고개로, 깊은 안부 양 옆으로 철쭉이 빼꼭히 군락을 이루는 곳이다. 이 지역은 각종 버섯류와 산과일, 산채나물, 고냉지채소 등을 많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주로 대간의 동쪽 사면에서 이루어진다. 고개라는 뜻의 ‘峙’와 ‘재’가 합쳐져 지명이 되었다. 치재에 서면 흥부마을로 유명한 아영면 성리마을도 내려다 보인다. 이 마을에는 판소리에 나오는 화초장 바윗거리, 흰죽배미, 노리다리 등의 지명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
치재 이정표.
11:57 치재를 지나 매봉으로 향하는 백두들.
12:00 치재에서 매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철쭉 군락지 사이로 이어진다.
키높이를 넘는 철쭉나무 터널을 지나면, 매봉으로 이어지는 데크목 계단길이 나온다.
뒤쪽으로는 장수군 번암면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고,
이내 데크목 전망대가 있는 매봉 정상에 도착한다.
12:03 매봉 정상에는 '백두대간 매봉'이라 새겨진 정상석이 있다.
<매봉(721.2m)>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와 남원시 아영면 성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지도상에는 매봉이란 지명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정상에는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남원시에서 설치한 이정석과 데크목 광장,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데, 아마 철쭉 군락지 때문에 급조된 봉우리가 아닌가 싶다. 정상에 서니, 좌측으로는 흥부마을로 불리는 성리와 구상저수지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복성이재에서 노단리로 연결되는 751번 지방도가 내려다 보이며, 정면으로는 다음 구간 새벽에 올라야 할 아막산성터와 그 너머로 시리봉이 훤히 조망된다.
월경산에서 이어온 대간 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북쪽 장수군 방향 파노라마.
12:06 매봉 정상 인증을 남기고,
12:07 백두들은 먼저 남쪽 방향의 능선을 따라 복성이재로 향한다.
메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동쪽 아영면 방향 조망.
이곳 매봉 동사면에 있는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지이다. 이 마을은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품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마을에는 박춘보(朴春甫)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낸다. 또한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길 양쪽으로 감자가 재배되고 있는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다.
“형수님 저 흥분되(데)요.”
이 말을 들은 형수는 주걱으로 시동생을 난타한다.
형수가 성희롱하는 시동생을 그냥 놓아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고전 소설과 사투리가 적당히 어우러져 만들어진 익살스러운 이야기의 한토막이다.
백두대간 복성이재 동쪽에 흥부마을(아영면 성리)이 있다. 그런데 여기가 원조 흥부마을이라고 하면 화를 낼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인월면 성산리 사람들이다. 수년 전 서로 흥부마을 원조라고 시비가 붙었을 때, 모 대학팀이 고증한 결과 성산리는 흥부의 출생지, 그리고 성리는 발복지라고 결론을 내리며 분쟁을 잠재운 바 있다.
그러고 보면 형수 성희롱 사건의 주 무대는 아영면 성리가 아니라 인월면 성산리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성산리는 놀부마을인 셈이다.
그런데 흥부전이 픽션이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픽션으로 알고 있었는데!, 하여간 흥부전이 픽션이든 아니든 흥부는 놀부의 등쌀에 못 이겨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가서 새로운 둥지를 튼다. 그곳이 바로 아영면 성리다. 멀리 갔음에도 대간을 넘어서지 못하고 복성이재 아래 마을에 자리잡은 것이다. 어쨌든 흥부전은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니 자질구레한 논란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매봉 정상의 덩그러니 남겨진 전망데크도 담고,
지나온 월경산 방향의 대간 능선도 다시한번 담아 두고,
번암면 방향 지능선의 708봉 방향도 담아 둔다.
12:09 지리산 주능선 방향은 아직도 구름에 가려있어서 조망을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매봉을 뒤로하고 복성이재로 향한다.
아래쪽으로 번암면에서 복성이재로 오르는 751번 지방도가 살짝 보인다.
12:17 복성이재로 향하는 능선 우측으로는, 전에 없던 목장용 초지가 조성되어 있고,
우측 번암면 방향 지능선 봉우리에 천문대로 보이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12:18 소나무숲으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12:22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복성이재에 도착한다.
<복성이재(福星峙, 601.4m)>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산줄기는 시리봉과 봉화산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나뉜다. 복성(福星) 마을에서 연유해서 생긴 이름으로 그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복성이 마을은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와 남원시 아영면 성리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산골마을로, 행정구역은 번암면 논곡리에 속한다. 이 마을은 백두대간의 능선이 크고 작은 봉우리를 이룬 첩첩산중이어서 제대로된 전답도 없었다.
옛날에 '변도탄'이란 기인이 있었다. 변도탄은 나라의 군량미를 관리하는 양관으로 있었다. 그가 어느날 천기를 보고, 삼년 내에 국가에 큰 전란이 있을 것을 알았다. 앞으로 닥쳐 올 전란에 대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상소했으나, 평화 시에 혹세무민 한다는 이유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변도사 보아하니 북두칠성의 복성이 갑자기 밝은 빛을 남쪽으로 비추므로, 별빛을 따라 지리산 쪽으로 가다가 별빛이 멎은 곳에서 쉬었다. 그곳이 오늘날 복성부락에서 약간 떨어진 복성이라는 곳이다. 변도사는 이곳에 움막을 짓고 피난 때 가지고 왔던 많은 양곡을 가루로 만들어서 벽과 천장을 발랐다.
이삼년 뒤에 마침내 나라에 큰 전란이 일어났다. 외적의 침입으로 임금은 몽진 길에 오르고 왕족과 중신들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어느날 구름처럼 몰려드는 피난민 틈에 허기가 지고 노독으로 기진맥진한 왕족 일행을 발견하고, 벽을 떼어서 죽을 쑤어 먹게 하여 목숨을 구하였다. 또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군을 위하여 움막에 발랐던 쌀가루를 군량미로 사용하였다. 몇 년 동안 계속되었던 전란은 끝이 나고, 한사람 두사람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복성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변도탄이 피난 올 때 군량미를 가지고 온 죄는 크지만, 국가 위급 시 국가를 구하는 군량미로 긴요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임금께서 죄를 사하고 오히려 상을 내렸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남원시 송동면의 변씨들이 변도탄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복성이재에서 애마를 기다리는 백두들.
12:25 복성이재 시리봉 방향 들머리 옆에는 이곳을 짖제고개라 표시해 놓고 있는데,
네이버 지도에는 매봉 직전의 치재를 짖제고개로 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명의 일괄적인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13:26 인월IC 인근에 있는 목감탕에서 비와 습기에 젖은 몸을 닦고,
13:39 지근거리의 지리산 흑돈 식당으로 이동하여,
땀흘리지 않은 널널이 산행 뒤풀이를 한다.
15:21 늘 그렇듯이 두어 시간 동안의 뒤풀이를 마치고, 귀경길에 오른다.
비 내린 직후의 산행은 또 다른 풍광들을 선사한다.
잔뜩 시야를 가렸던 구름이 걷히며 나타나는 산하와
바람의 움직임이 구름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역동적인 장면,
그리고 비에 깨끗이 씻기어진 청량한 공기가 제공하는
끝간데 없는 조망과 청량감 등등.
그래서 우리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산행길에 나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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