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소 : 백두산우회 11주년 고흥군 팔영산, 외나로도 일원 트레킹
기 간 : 2015. 11. 13.(금) ~ 15.(일) (1박3일)
산행참석 : 24백두.
숙 소 : 사포 산촌 한옥펜션(061-834-0065)
전라남도 고흥군 영남면 팔영로 1103
< 일 정 >
2015. 11. 13.(금)
23:00 영등포 출발
23:30 서초구민회관 앞 출발
2015. 11. 14.(토)
07:00 아침식사(식당)
09:00 산행출발(팔영산 능가사)
(5시간 예상, 점심 가져오세요)
14:00 하산(남포미술관)
(남열 해돋이 해수욕장 및 고흥 우주발사 전망대 산책)
16:00 숙소 도착 (사포 남촌 한옥펜션)
(저녁식사. 남자-식사 준비 및 설거지, 여자-총괄 지휘)
20:00 소등 및 취침
2015. 11. 15.(일)
07:00 기상
(아침식사. 여자-식사 준비 및 설걷이, 남자-주변 청소 및 정리)
09:00 외나로도 봉래산 및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관람
13:00 점심식사
14:00 출발
19:00 서울 도착 해산.
<산행지도>
지난해 10주년에는 보길도 트레킹을 갔었는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좋은 장소로 가야 한다는 부담에 어느 섬으로 가야 할지가 여간 고민스러운 게 아니었다. 완도는 이미 100대 명산에서 다녀온 곳이고, 고금도나 청산도를 고려하다가 청산도는 후일 봄철에 가자는 의견에 따라 좀 더 동쪽으로 이동하여 고흥군에 있는 팔영산과 최근 우주선 발사장으로 한참 각광을 받고 있는 외나로도를 한번 가 보기로 했다.
여느 산행 때와 마찬가지로 금욜 저녁 늦은 시각에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멀고 먼 길을 달리고 또 달려서 새벽 6시가 다 되어서야 아침식사를 예약해 놓은 고흥군 과역면 소재지의 기사식당에 도착했고, 환히 불을 밝히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식당 앞에서 잠시 대기를 하다가 예약 시각인 6시 반이 되어서야 식당으로 찾아든다.
여느 기사식당과 마찬가지로 식사 메뉴는 달랑 한 가지에 주류 메뉴는 여러 가지가 보이고,
차려져 나온 백반의 반찬들이 서울의 여느 한정식집 반찬들 보다 푸짐해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주변이 훤히 밝아져 있고, 오늘 오르게 될 팔영산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팔영산 산행의 들머리인 능가사 앞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마치고,
팔영산 산행에 앞서 능가사를 둘러보고자 능가사 천왕문으로 향한다.
<능가사(楞伽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로, 417년 아도화상(阿道)께서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조선 인조 22년(1644년)에 벽천(碧川) 정현대사(正玄大師)가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벽천은 원래 90세의 나이로 지리산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절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라는 계시를 받고 이곳에 능가사를 신축하였다고 한다. 그 뒤 1768년(영조 44)과 1863년(철종 14)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1993년에 응진전을, 1995년에 사천왕문을 각각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한 보물 제1307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당·종각·천왕문(天王門)·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350여 년 전에 나무로 만든 뒤 개금한 불상 8위와 나무로 만든 뒤 도분(塗粉)한 불상 22위, 보물 제1557호로 지정된 높이 157㎝의 범종(梵鐘)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4호인 4.5m의 목조사천왕상(木造四天王像), 귀부(龜趺) 위에 세워진 높이 5.1m의 사적비(事蹟碑)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중 사적비는 1726년(영조 2)에 건립한 것으로 불교의 유래와 절의 역사를 기록해놓은 귀중한 자료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비석은 원래 탑 앞에 있었는데, 덕목이 도술을 부려 절 뒤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이밖에도 절의 경내에는 광희(廣熙)·사영당(泗影堂)·추계당(秋溪堂) 등의 부도(浮屠) 8기가 있다.
영조 때 이중환(李重煥)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 일본 류큐(琉球:지금의 오키나와)의 태자가 표류하다가 이곳에 이르렀는데, 이 절의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7일 만에 승려가 나타나서 태자를 끼고 파도를 넘어갔다고 하며, 절의 승려들이 법당 벽에 그 모양을 그려놓았던 것이 영조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부속암자로는 만경암(萬景庵)과 서불암(西佛庵)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능가사 목조사천왕상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안내판.
<능가사 천왕문, 목조사천왕상>
사천왕상은 원래 인도 재래의 방위신인데 불교에 흡수된 것이다. 좌우 2구씩 목책 안에 안치되어 있는데, 천왕문 입구 왼쪽 앞쪽에 북방 다문천왕이, 뒤쪽에 서방 광목천왕이 배치되고, 오른쪽 앞쪽에 동방 지국천왕이, 뒤쪽에 남방 증장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이 사천왕상 중 동방 지국천왕상에서 발견된 발원문과 능가사사적비 등에 이 사천왕상이 1666년(현종 7)에 조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사천왕상이 안치된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1995년 천왕문 해체 복원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여 1666년에 건립된 후 1824년(순조 24)과 1931년에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천왕상은 나무로 제작되었고 서 있는 입상이 아니라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의 의좌상(椅座像)으로, 높이는 450㎝이다. 머리에는 화려한 연화문이 그려진 원통형의 보관을 쓰고, 머리 양 옆으로 보관에 달린 끈이 휘날린다. 얼굴은 불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험상궂은 표정을 하면서도 눈썹과 수염 등에서 부드럽고 해학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천왕상은 갑옷을 입은 무장형으로 어깨 위로 한 가닥의 천의(天衣)가 휘날리고 있다. 천왕이 든 지물은 북방 다문천왕이 당(幢)을, 서방 광목천왕은 용과 보주를, 동방 지국천왕이 비파를, 남방 증장천이 칼을 들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에 제작된 대형 사천왕상은 중국 원대와 명대에 갑옷을 입고 위협적인 얼굴을 한 용맹스런 장수의 모습에 비파, 용과 보주, 당, 탑 등의 다른 지물을 가지고 있다.
조선 후기 사천왕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사찰의 중창과 중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인조와 숙종 연간에 집중적으로 조성된다. 능가사 사천왕상의 특징은 다른 사찰에 봉안된 것보다 크고, 천왕문에 사천왕상을 배치한 방향이 다르다. 또한 동방 지국천왕 발아래에는 동녀(童女)가 천왕의 왼쪽 다리를 받쳐 들고 있어 특이하다.
능가사 대웅전을 배경으로.
<능가사 대웅전>
대웅전은 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능가사는 팔영산 아래에 있는 평지 사찰로 일명 보현사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던 것을 조선 인조 22년(1644)에 벽천대사가 다시 지어 능가사라 했다. 이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각지붕이다. 기둥은 약간 거칠게 다듬은 배흘림 형태이다. 특이한 것은 건물 방향이 입구에 맞춰 북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의 건물이지만 규모가 크고, 건축양식이 우수하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지금의 모습은 최근에 해체 보수한 것이다.
능가사대웅전은 18세기 중엽에 중건된 정면 5칸, 측면 3칸, 57.58평의 건물로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다포계의 일반적 수법을 따랐지만 정면 기둥머리의 안초공 수법과 건물 내·외부에 연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보물로 지정된 영광의 불갑사대웅전, 부안의 개암사대웅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포벽 수장재에 도드라지게 새긴 첨차(檐遮)는 사찰건물에서 보기 드문 예에 속하는 등 조선 중·후기 호남지역 사찰건축의 일면을 보여주는 건물로 학술적·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능가사 동종(銅鐘).
<능가사 동종(銅鐘, 보물 제1557호)>
종신에 「강희삼십칠년 무인삼월일 흥양팔영산능가사 康熙三十七年戊寅三月日 興陽八影山楞伽寺…’」라는 문구가 있어 절대연대(1698년, 숙종 24)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높이는 154㎝, 입술 지름은 101.5㎝(1구)이다. 쌍용으로 정상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음관(용통)을 두지 않고 조그마한 운형 구멍으로 대신하고 있다. 천판은 이중의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는데, 상단은 16엽이고 하단은 활짝 핀 무늬이다. 그 밑으로 보이는 상대에는 범자문을 돌렸으며, 4면이 장방형인 유곽 안에 9개의 유두를 뚜렷하게 조각했다. 양 옆에는 천의를 걸친 보살입상과 문짝 모양을 장식하였는데, 그 안에 ‘주상전하수만세’라는 문구가 양각되었다. 또 종신 중앙부에는 주역에서 나타나는 전양인 건에서 전음인 곤에 이르기까지의 팔괘를 양각으로 둘렀는데, 이는 조선 범종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팔괘 밑으로 음각의 명문대가 있는데, 여기에 능가사 창건주인 정현대사의 이름이 보인다. 하대로 내려와서는 두 줄의 띠를 둘렀고 그 안에 꽃잎과 당초문대를 돌렸다.
이 종은 용뉴의 웅건한 표현과 단정한 보살입상, 세부 문양의 정교함 등 김애립 범종의 완숙한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17세기를 대표하는 범종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수작이다.
능가사 연지.
연지의 한가운데에는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란 마음 그대로 또는 마음 그 자체가 부처라는 뜻으로,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쓰기도 한다.
이른 아침 고요가 깃든 능가사를 둘러보는 백두들.
능가사 사적비.
<고흥 능가사 사적비(高興 楞伽寺 事蹟碑)>
능가사 사적비는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능가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적비이다. 1978년 9월 22일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었다. 사적비란 어떠한 사건에 관련된 사실이나 자취를 기록한 비로, 이 비는 능가사의 창건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능가사는 비문에 의하면, 신라 눌지왕 3년(419)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창건 당시에는 ‘보현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린 것을 인조 22년(1644) 정현대사가 다시 건물을 지어 ‘능가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그 위로 구름과 용이 새겨진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고흥 능가사 사적비 건립연대 표기 ‘숭정기원후재경오(崇禎紀元后再庚午)’는 1690년으로 알려졌는데, 숭정 재위 기간의 경오(1630년)는 포함하지 않고 그 뒤로 이어지는 두 번째 경오로 보아야 하고, 비문 찬자, 서자, 관련 인물의 활동연대와 비교하여 보면 건립연대는 1750년이다. 비의 몸돌은 화강암을 매끄럽게 갈아서 만든 것으로 별다른 조식이 없다. 이수는 장방형으로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이수 하단은 전.후면에 8엽의 앙련과 운룡문, 화문을 조식하였다. 상단은 두 마리의 용이 중앙의 여의주를 향해서 서로 안쪽을 보게 하였다. 네 귀퉁이에는 역시 용을 새기고 정면과 중앙에 오른편 측면에는 귀면상을 조식하여 장식을 더하고 있다.
능가사의 고요를 흔들까봐 조용히 사찰의 이모저모를 둘러보는 백두들.
능가사의 이모저모를 눈으로만 둘러보고 팔영산 산행을 위해 능가사를 뒤로하면,
고흥 팔영산과 각 봉우리의 명칭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팔영산(八影山, 608m)>
고흥 10경 가운데 으뜸인 팔영산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병풍처럼 이어지며 다도해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산으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팔영산지구로 불린다. 팔영산이라는 이름은 금닭이 울고 날이 밝아 햇빛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 이 산의 봉우리가 마치 창파에 떨어진 인쇄판 같은 모습을 보여 ‘영(影)’ 자가 붙었다는 설, 또는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를 보고 감탄한 중국의 위왕이 이 산을 찾으라고 명하였는데, 신하들이 고흥에서 이 산을 발견한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설 등이다.
팔영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608m이다. 고흥반도의 동쪽에 우뚝 솟아 있으며 북사면의 경사가 다소 급한 편이다. 해발 400m 이상의 정상부는 암석이 노출되어 절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쪽 사면으로는 8개의 암석 봉우리가 있다. 이 8개의 봉우리는 해발고도가 낮은 곳에서부터 제1봉으로 간주하여 가장 높은 곳에 제7봉이 위치하고 제8봉은 고도가 조금 낮은 곳에 있다. 팔영산에 오르면 서쪽을 제외한 모든 방향으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멀리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8개 봉우리 사이의 험준한 구간에는 철제 계단을 설치하여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고흥군에서는 각 봉우리의 정상에 고유 이름을 표지석에 새겨 놓았다. 제1봉은 유영봉(491m), 제2봉은 성주봉(538m), 제3봉은 생황봉(564m), 제4봉은 사자봉(578m), 제5봉은 오로봉(579m), 제6봉은 두류봉(596m), 제7봉은 칠성봉(598m), 제8봉은 적취봉(591m)이다.
<1봉 유영봉(儒影峰, 491m)>
유달은 아니지만 공명의 도 선비레라 유건은 썼지만 선비풍채 당당하여 선비의 그림자 닮아 유영봉 되었노라.
팔봉 중 하나는 아니지만 우람한 암릉미를 뽐내는 선녀봉(仙女峰).
<2봉 성주봉(聖主峰, 538m)>
성스런 명산주인 산을 지킨 군주봉아 팔봉 지켜주는 부처같은 성인바위 팔영산 주인되신 성주봉이 여기로세.
<3봉 생황봉(笙簧峰, 564m)>
열아홉 대나무통 관악기 모양새로 소리는 없지만 바위모양 생황이라 바람결에 들어보세 아름다운 생황소리.
<4봉 사자봉(獅子峰, 578m)>
동물의 왕자처럼 사자바위 군림하여 으르렁 소리치면 백수들이 엎드리듯 기묘한 절경속에 사자모양 갖췄구려.
<5봉 오로봉(五老峰, 579m)>
다섯명 늙은 신선 별유천지 비인간이 도원이 어디메뇨 무릉이 여기로세 5신선 놀이터가 5로봉 아니더냐.
<6봉 두류봉(頭流峰, 596m)>
건곤이 맞닿는 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디메뇨 통천문이 여기로다 두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노라.
<7봉 칠성봉(七星峰, 598m)>
북극성 축을 삼아 하루도 열두때를 북두칠성 자루돌아 천만년을 한결같이 일곱개 별자리 돌고도는 칠성바위.
<8봉 적취봉(積翠峰, 591m)>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첩첩하며 초목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쌓여 꽃나무 가지 엮어 산봉우리 푸르구나.
능가사 추계당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구름이 가리고 있는 팔영산 방향으로 진행하면.
팔영산 오토캠핑장이 나오고,
좌측 만경골을 통해 팔영산 제1봉인 유영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들머리가 있다.
이곳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는 안내판.
들머리 옆에 자리한 팔영소망탑. 팔영의 소망은 뭣일까?
팔영산 산행 들머리로 들어서면,
잠시 완만한 오름길 등로가 이어지다가,
가을빛이 흥건한 계곡길이 나타나며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고,
가파른 오름길에 흐드러진 가을빛을 감상한다는 핑계로 걸음을 멈추어 보기도 하며,
그렇게 제법 숨이 가빠질 즈음에,
흔들바위라 이름 붙여진 커다란 바위가 있는 쉼터에 도착한다.
킹콩 정도가 와야 흔들려질 듯.
흔들바위 옆 정자 쉼터.
잠시의 쉼을 뒤로하고 다사 가파른 계곡 오름길로 들어서면,
가을비에 젖은 단풍들이 더욱 처연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주변의 나무들이 앙상한 모습으로 바뀌더니,
묘지가 있는 능선 갈림길에 도착한다.
능선갈림길 이후는 조금 완만해지리라 기대했건만,
바다가 인접한 산의 높이가 600m를 넘는다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대변하고,
낙엽 덮인 급경사의 바위너들을 조심조심 오르니.
능가사가 자리한 성기리 방향 조망이 트인 전망바위가 나온다.
북쪽 성기리 방향 조망.
제1봉 유영봉을 우회하는 낙엽 덮힌 바위너덜길을 잠시 더 따르면,
철재 난간이 설치된 가파른 암릉을 올라서게 되고,
뒤쪽 성기리 방향 조망이 트이며,
이내 유영봉 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우틀하여 성주봉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좌측의 제1봉 유영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 유영봉 방향으로 진행하면,
뒤쪽으로 제2봉 성주봉이 돌아다 보이고,
돌아본 가야 할 성주봉 모습.
이내 바위 암봉인 유영봉 정상에 도착한다.
<1봉 유영봉(儒影峰, 491m)>
유달은 아니지만 공명의 도 선비레라 유건은 썼지만 선비풍채 당당하여 선비의 그림자 닮아 유영봉 되었노라.
조선 고종 때 편찬한 흥양읍지(흥양은 고흥의 옛 이름)에 팔영산 8개 봉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북쪽 봉우리부터 순서를 매긴다. 제1봉은 유영봉(儒影峰·491m)으로 선비의 그림자를 닮았다는 봉우리로, 이 봉우리에는 송팔응(宋八應) 장군의 전설이 서려 있다. 팔영산 제1봉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송팔응에게 하늘을 나는 백마가 있었다. 어느 날 송팔응은 말의 능력을 시험하려고 화살 한 발을 팔영산 봉우리로 쏘았다. 이내 말을 타고 봉우리로 날았지만, 화살은 온데간데없었다. 낙담한 송팔응은 말의 목을 단칼에 벴다. 그때 화살이 바위 뒤에 와서 꽂혔고, 송팔응은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며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팔순의 송팔응은 이 산에 올라 '팔십에 팔영산에 오르니 팔영은 늙지 않았는데 팔응은 늙었구나'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그래서 팔영산은 다른 이름인 팔응산으로도 불기게 되었다고 한다.
북동쪽 여자만 방향.
살짝 당겨본 여호리 응치산 방향.
강선리 선녀봉 방향을 배경으로.
제2봉 성주봉을 배경으로.
유영봉 정상의 백두들.
가야 할 제2봉 성주봉 조망.
유영봉 정상 증명.
선녀봉 방향으로 알바를 가다가 돌아온 분들이 함께하여,
다시금 유영봉 인증을 남긴다.
그냥 폼만 살짝..ㅋ
아직 유영봉에 도착하지 않은 분들은 저기 성주봉 어디쯤에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유영봉을 뒤로하고,
유영봉 갈림길로 돌아나와 제2봉인 성주봉으로 향하면,
암봉을 오르는 급경사의 철계단을 오르게 되고,
돌아본 유영봉에는 아직도 몇몇의 백두들이 남아 있다.
옅은 비구름이 드리워져 신비감을 더하는 북동쪽 점암면 방향 조망.
급경사의 철계단을 한 번 더 올라서면,
좌측 강신리 방향의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갈림길 삼거리를 지나게 되는데,
제1봉 유영봉에서 보이지 않던 분들은 어느 틈에 선녀봉을 찍고 있었다.
제2봉 성주봉 안내판을 지나 다시 한번 철계단을 오르면,
선녀봉을 다녀온 분들이 성주봉으로 오는 모습이 보이고,
제2봉 성주봉 정상에 도착하여 인증을 남긴다.
<2봉 성주봉(聖主峰, 538m)>
성스런 명산주인 산을 지킨 군주봉아 팔봉 지켜주는 부처같은 성인바위 팔영산 주인되신 성주봉이 여기로세.
뒤이어 도착한 선녀봉 팀들도 성주봉 인증을 남긴다.
제2봉 성주봉에서 50여 미터 거리에 있는 제3봉 생황봉에서는 모든 백두들이 함께 모여 인증을 남긴다.
<3봉 생황봉(笙簧峰, 564m)>
열아홉 대나무통 관악기 모양새로 소리는 없지만 바위모양 생황이라 바람결에 들어보세 아름다운 생황소리.
찍사 바꿔서 한번 더.
생황봉을 뒤로하고 급경사의 데크목 계단길로 들어서서,
암봉 사이의 협곡으로 내려서면,
제4봉 사자봉 안내판이 나오며 다시한번 급경사의 철계단을 오르게 되고,
이내 안개가 자욱하여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 제4봉 사자봉 정상에 오르게 된다.
<4봉 사자봉(獅子峰, 578m)>
동물의 왕자처럼 사자바위 군림하여 으르렁 소리치면 백수들이 엎드리듯 기묘한 절경속에 사자모양 갖췄구려.
사자봉 정상을 가득 매운 백두들.
제4봉 사자봉 정상 인증.
사자봉을 뒤로하고 암릉을 내려서면,
이내 제5봉 오로봉 안내판이 나타나며,
금세 제5봉 오로봉 정상에 서게 된다.
<5봉 오로봉(五老峰, 579m)>
다섯명 늙은 신선 별유천지 비인간이 도원이 어디메뇨 무릉이 여기로세 5신선 놀이터가 5로봉 아니더냐.
오로봉 정상 인증.
돌아본 제4봉 사자봉에는 아직도 서성이는 백두들이 보이지만,
짙은 안갯속에서 위압적인 자세로 서 있는 제6봉 두류봉을 향하는데,
안개가 옅어지며 두류봉의 위압적인 모습이 살짝 엿보이고,
오로봉 내림길은 무척이나 까탈스럽게 이어진다.
제 모습을 드러내는 가야 할 두류봉 모습.
두류봉 오름길에는 벌써 백두들이 들어서고 있고,
제6봉 두류봉 오름길 옆에는 예외 없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미끄러운 두류봉 암릉 오름길로 들어서는 백두들.
방금 내려온 제5봉 오로봉을 어떻게 내려왔는지..ㅉㅉ
돌아본 오로봉과 두류봉 사이의 안부 전경.
흐린 날씨로 팔영산을 독차지한 백두들이 까다로운 암릉길에서도 사뭇 여유롭게 진행하며,
가끔씩 바위 절벽에서도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며,
혹여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조심조심 암릉길을 오르면,
어김없이 작은 정상석이 자리한 제6봉 두류봉 정상에 서게 된다.
<6봉 두류봉(頭流峰, 596m)>
건곤이 맞닿는 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디메뇨 통천문이 여기로다 두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노라.
두류봉 정상에서는 이런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다는데,
비구름이 자욱하게 덮고있는 주변 조망이 그저 아쉽기만 할 뿐이다.
북서쪽 점암면 방향.
두류봉 정상 인증.
시야가 좋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떠올리며 두류봉을 뒤로하고,
가파른 절벽을 안전시설에 의지하며 내려서는데,
가야 할 칠성봉이 멀찍하니 보이고,
강산리 방향의 선녀봉에 선녀가 있는지 살피기도 하며,
가파른 절벽 계단길을 내려서면,
좌측 팔영산자연휴양림과 우측 능가사 방향 갈림길사거리 안부를 지난다.
안부 사거리의 탐방 안내도.
제7봉 칠성봉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하는데 무등산의 서석대를 닮은 듯한 기암괴석들이 나타나자,
멋진 기암들 사이에서 추억도 남기고,
가파른 암릉을 올라서면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바위가 나타난다.
통천바위를 지나서 지나온 두류봉을 배경으로.
통천바위를 통과하여 하늘로 오르려는 용현 형님.
통천문을 지나자 이내 제7봉 칠성봉 정상에 이르게 된다.
<7봉 칠성봉(七星峰, 598m)>
북극성 축을 삼아 하루도 열두때를 북두칠성 자루돌아 천만년을 한결같이 일곱개 별자리 돌고도는 칠성바위.
칠성봉 정상 인증.
봉우리를 내려서면 구름이 걷히는가 싶지만 어김없이 봉우리만 오르면 다시금 구름이 주변 조망을 가려버리고,
희뿌연 안개가 주변을 가려버린 칠성봉 정상을 뒤로하고 가파른 내림길로 들어서면,
잠시 까다로운 암릉길이 이어지다가가,
철계단을 통하여 수월하게 지나기도 하지만,
제8봉 적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쉽지 않은 암릉길이 계속된다.
희뿌연 안개로 보이지 않는 멋진 다도해의 풍경을 떠올리며 추억도 남겨보고,
멋진 조망바위를 아쉬운 듯 그냥 지나치고,
칠성봉과 적취봉 사이의 암봉을 다시 내려섰다가는,
제8봉 적취봉 암릉 오름길을 오르면,
앞쪽으로 제8봉 적취봉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암릉에 설치된 안전시설에 의지하여 잠시 진행하면,
제8봉 적취봉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잠시 더 암릉길을 진행하면,
여덟 개의 봉우리 중 마지막 봉우리인 제8봉 적취봉에 도착하게 된다.
<8봉 적취봉(積翠峰, 591m)>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첩첩하며 초목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쌓여 꽃나무 가지엮어 산봉우리 푸르구나.
적취봉 정상 인증.
다도해상공원의 멋진 조망은 상상으로만 그리며 제8봉을 뒤로하면,
두리뭉실한 암릉길이 연이어지고,
돌아본 적취봉 정상에는 홀로 남겨진 정상석만이 쓸쓸하다.
8봉 적취봉을 내려서면 Y자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데,
우측은 탑재를 지나 능가사 방향으로 이어지고, 깃대봉은 좌측 능선길로 들어서야 한다.
잠시 능선길을 따르면 나타나는 널찍한 헬기장에서 이른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다.
짙은 안개로 주변 조망이 없어서 그런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점심식사도 일찍 하게 된다.
궂은 날씨로 점심 식사도 빠르게 마치고 잠시 더 능선을 따르니,
좌측 팔영산자연휴양림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진행하니,
경찰통신시설이 있는 팔영산의 최고봉 깃대봉에 도착하게 된다.
팔영산 깃대봉의 등산 안내도.
팔영산 깃대봉(旗臺峯, 609m) 정상 인증.
팔영산의 깃대봉은 여덟 봉우리와는 멀찍이 떨어져서 늘 살펴주는 맏형같은 듬직한 봉우리다.
정상에 서면 여덟 봉우리가 나란히 보이고 주면 다도해 조망도 멋지다는데,
오늘은 인연이 아니니 후일을 기약하고,
경찰통신초소와 통신시설이 자리한 깃대봉 정상부를 뒤로하고,
양사리 방향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르면,
가을 낙엽이 덮인 능선 등로가 이어지고,
앙상히 몸뚱이를 드러낸 나목들 사이로 이어진 등로를 따르는데,
나목 사이로 올망졸망한 다도해의 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남쪽 영남면 양사리 방향 조망.
북동쪽 여자만 방향.
날이 맑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본 깃대봉과 팔영산의 봉우리들.
만추의 풍경이 완연한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따르던 능선을 두고 우틀하여 진행하라는 이정표에서 우측 지능선길로 들어서면,
앞쪽으로 영남면 양사리와 앞바다의 섬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좌측으로는 양사리의 우미산이 시야에 들어오며,
잠시 더 내려서니 오늘 산행의 종료 지점인 남포미술관 날머리에 도착한다.
돌아본 남포미술관 산행 날머리 전경.
남포미술관 산행 날머리 이정표.
남포미술관 담벼락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좌측으로 오늘 묵을 사포산촌 한옥펜션이 보이고,
팔영산 등산 안내도도 세워져 있다.
대부분의 백두들은 바로 펜션으로 향하고 호기심이 많은 몇몇 분들은 남포미술관으로 향한다.
<남포미술관>
고흥군 영남면 남열리에 위치하며 폐교된 영남중학교를 리모델링하여 2005년 개관하였다. 선친의 유업으로 2대째 사립학교를 운영하던 곽형수 관장이 농어촌 학생 수의 감소로 폐교된 학교부지와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설립하였으며, 학교부지의 특성상 넓은 면적을 활용한 야외 전시장과 200여 평의 내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전시장과 연결된 60여 평의 공연장에서는 계절별 음악회를 마령하여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운영한다.
옛 영남중학교를 리모델링하여 개관한 남포미술관에는 전시작은 그다지 많지 않으나,
넓은 대지를 이용하여 정원을 예쁘게 꾸며 놓았다.
미술관 입구에서.
마을에서 공동 운영하는 사포산촌 한옥펜션에 도착하여,
10주년 기념 연을 준비한다.
예쁘게 지어진 한옥펜션 마당에서,
백두산우회 10주년 기념연을 시작한다.
연회 시작 1시간반쯤.
연회 시작 3시간반쯤.
연회 시작 4시간반쯤.
연회 시작 5시간째!
50여년이 지난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는데,
불과 5년 전 팔영산 산행과 산우회 창립 기념연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이제 또 몇해가 지나면 지난해의 기억도 떠올리기 어렵게 될 것이기에,
어떻게든지 오래 기억하고픈 추억은 기록으로 남겨야 함을
다시한번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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