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한남정맥 08차(성황당고개~장승고개) 인천시, 김포시.
산 행 일 : 2017. 03. 10. ~ 11.(토)
산행코스 : 성황당고개(아라마루휴게소)~백석고개~골막산~할메산~문고개~방아재~서낭당고개~세자봉~가현산
~스무네미고개~학운산~대능삼거리~대곶신사거리~장승고개 (거리 23km)
산행참가 : 18명.
<산행코스>
오전 11시에 대통령 탄핵심판이 헌재에서 인용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 나라를 경영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지만, 국기를 뒤흔들 정도의 탈법을 행하였느냐에 대해서는 그럴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본인의 말대로 선의를 가지로 한 통치행위가 사유제산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고, 그동안 끊이지 않고 문제가 되었던 정경유착의 연장선으로 해석이 될 여지가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커다란 실수로 보인다. 아무튼 국가적으로 불행한 상황임에 분명한 사실이나, 그나마 법치국가의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어김없이 산행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양재에서 버스에 오른다.
양재를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 남짓을 달려 경인운하 아라마루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흔들리지 않는 버스에서 세 시간 남짓을 버틴다는 게 무척 힘든 일이었는데, 요즘은 그것조차도 적응이 되어서 버스에 불이 켜질 때까지 그런대로 선잠이나마 께지 않고 잘 수 있었다. 오늘자 일기예보에 최저 기온이 영상 3도 수준으로 춥지 않다고 하여 겨울옷을 두고 봄옷을 입었더니 바깥공기가 서늘하게 스며든다.
아라마루 휴게소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모두들 출발하고 텅빈 버스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아라마루 휴게소에서 본 계양산 방향.
아라마루 휴게소 맞은편 둑실마을 입구에서 한남정맥 여덟 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둑실마을>
둑실 마을은 조선 선조 때 부평도호부사 심신경이 퇴임 후 이곳 황무지에 낙향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개간을 했는데, 의로서 협동 단결하자는 깃발을 만들어 꽂고 농경에 힘써 마을 이름도 그 뜻을 담아 둑실이라 했다고 한다. 지금도 심부사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봉우리가 다섯 개인 오봉산의 물줄기가 마을 앞 들 바래벌을 기름지게 하고 있다 한다.
둑실마을 입구에서 아라로를 따라 100m쯤 이동하다가 야생동물주의 표시판 우측으로 들어서면 정맥꾼들의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들머리에서 7분쯤 후, 갈림길에서 좌측의 내림길로 진행하고...
나는 호기심에 직진의 오름길을 조금 오르니 참호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뚜렷한 직진 길을 두고 직좌틀하여 내려서니,
잠시 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와 만난다.
안부를 지나 오름길을 오르는데...
자전거 바퀴 자국이 사방으로 얽혀 있다.
지도상 '타잔 MTB파크'라고 표시된 곳을 지나는가 모양이다.
잠시 후, 군부대 철망 울타리를 만나 좌측으로 울타리를 따라 진행하면,
좌측으로 묘지가 있어서 시야가 트이며 남서쪽 방향으로 인천 검안지구의 야경과 영종대교도 가늠된다.
부대 울타리를 따라 잠시 더 진행하니 군부대 정문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건너게 된다.
군부대 진입도로를 건너 잠시 더 부대 울타리를 따르다가 이내 부대 울타리와 이별한다.
둘레길 수준의 편안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다시 갈림길을 만나,
뚜렷한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길로 접어들어 잠시 더 진행하면,
백석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백석 고개>
인천시 서구 검암동과 시천동을 연결하는 9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다. 예전부터 백석동을 한둘이라 하는데, 코끼리 모양을 한 마을 뒷산인 '상산'에 흰돌이 많아 생긴 이름으로, 흰돌이 변해 한둘이라 불렀으며 또한 큰 들을 뜻한다는 한들 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한둘 동쪽 산 밑으로 둥근달이 너무나 크게 보인다고 해서, 큰 달을 뜻하는 거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석고개에서 횡단보도 건너 전라도정식백반전문점 옆 골목으로 진행한다.
잠시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갈림길에서 뉴스타이앤씨와 성진광고공장 사잇길로 들어서서, 잠시 후 좌측 산길로 들어선다. 요즘 정맥꾼들은 우측 청색 화살표 방향의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종알고개에서 넘어오는 '한들로' 아래 지하차도를 통하여 종알고개를 우회 통과하는 방식으로 많이 진행한다.
우리는 오늘 산행도 여유로울 듯하고, 정맥 능선에 충실하기 위해서, 골막산을 향하여 녹색의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한다.
텃밭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돌아본 백석고개 방향.
밭을 가로질러 산으로 들어서니 이내 송전탑을 만나고,
우측 요양병원 방향 갈림길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마한 돌탑을 지나게 되고, 잠시 더 진행하면,
우측 종알고개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지도에 표시된 골막산은 좌측 능선길로 조금 더 진행하여 다음번 봉우리쯤일 듯하지만,
우틀하여 종알고개 방향으로 조금 내려서면 폐초소가 나오고,
폐초소를 지나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면,
편도 2차선 아스팔트 도로(한들로)가 지나는 종알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종알고개>
인천시 서구 백석동에서 당하지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이 고개를 넘을 때 종알종알 거리며 넘었다 하여 종알고개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좌측으로 이동하여 횡단보도를 건너 종알고개를 통과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종알고개 표지판이 나타난다.
표지판 좌측 도로를 따라 다시 종알고개 절개지 상단 방향으로 진행하면,
백석스포렉스 골프연습장이 나오는데,
다른 분들은 골프연습장 직전 좌측으로 들어서서 절개지 펜스 옆을 통과하여 올라가고,
나는 등로를 확인해 보고자 백석스포렉스 골프연습장 그물 아래 주차장으로 들어서서 등로를 찾아보았더니,
입구 대각선 방향으로 나무계단 등로가 보인다.
훤히 불을 밝히고 있는 백석숯가마사우나 앞을 통과하여,
골프연습장 우측 뒤편으로 이어진 나무계단 등로로 들어선다.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진 진입 등로.
(나중에 한남정맥을 하는 분들은 이곳으로 들머리를 잡는 게 좋을 듯하다)
들머리를 들어서면 이내 절개지 펜스 옆으로 올라오는 백두들과 합류하게 된다.
할메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근교산의 둘레길처럼 편안하게 이어져,
한켠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할메산(105m) 정상에 도착한다.
수많은 참호들이 얽혀 있는 할메산 정상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한참 동안의 휴식을 취하고,
우측 이정표가 있는 방향으로 급하게 꺾어서 할메산 내림길을 시작한다.
뚜렷한 등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좌측 사면으로 공동묘지가 있는 곳에서,
묘지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서면 앞쪽으로 롯데마트 간판이 보인다.
공동묘지 사이를 지나 '은혜자원' 앞으로 내려서고 있는 백두들.
롯데마트 앞 넓은 포장도로에서 횡단보도를 이용해 도로를 건너 롯데마트 옆 도로로 진행하다가,
막다른 T자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앞에 보이는 천주교 공동묘지로 오른다.
롯데마트 뒤편의 천주교 공동묘지로 오르게 된다.
공동묘지를 오르며 돌아본 지나온 할메산과 한남길 모습.
공동묘지 가장자리를 따라 잠시 오르면,
공동묘지 끝부분에 낡은 삼각점이 있는 82봉에 도착한다.
지나온 할메산과 마루금의 모습.
82봉 내림길은 넓은 공터를 지나 길게 파진 교통호를 따라 문고개로 이어진다.
잠시 후 완정초등학교 담장 옆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문고개다.
<문고개>
인천시 서구 마전동에 있는 고개로, 임진왜란 때 성문 노릇을 하였다 하여 문고개(門峙)라 불리어지고 있다고 한다.
마전동(麻田洞)은 조선시대에 김포군 마산면 마전리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여래리를 병합하여 마전리라 하고, 검단면·노장면·마산면을 합한 검단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검단면이 인천광역시 서구에 편입되어 검단동이 되었다. 법정동인 이 동은 행정동인 검단동에서 관할한다. 지명은 마을에 삼(麻)을 많이 심어 삼밭이라고 하였는데, 이후 삼밭이가 삼바지로 변한 것을 한자로 표기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옛 지명에 여래·골말·품무굴·간약골·원현·방현·목화·중동·문현·버들우·학굴·능내·장자골·약천골·문고개 등이 있다.
완정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 정면에 보이는 검단힐스테이트1차 아파트 쪽문으로 들어가면 정맥능선인데,
문이 잠겨 있어서 좌측 하늘색 화살표 방향으로 우회하여 통과하기로 한다.
검단힐스테이트1차 아파트를 우회하여 정문 앞을 지나, 정면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좌틀하여 진행한다.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정면에 보이는 언덕에서,
계속 직진방향의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검단고등학교 앞을 지나서 방아재고개로 갈 수도 있지만,
다른 분들은 도로를 따라 검단고등학교 앞을 지나서 방아재고개로 향하게 하고,
나는 좌틀하여 우측 펜스 있는 지점에서 절개지를 따라 산으로 오른다.
돌아본 들머리 방향.
언덕 위로 오르면 기대와 다르게 잘 정비된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밭 가장자리를 지나 내려서면,
방아재고개가 내려다 보이고, 한남길은 정면의 도로를 따라 올라가게 된다.
문고개에서 도로를 따라 검단고등학교 앞을 통과하여 온 백두들도 방아재고개에 도착해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방아재고개에서 정면의 도로를 따라 오르면 좌측으로 영진아파트 앞을 지나게 되고,
정면의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검단 배수지 인라인스케이트장으로 오르는 좌측의 계단으로 올라간다.
<검단동(黔丹洞)>
검단동은 인천에서 가장 넓은 동으로 남구, 연수구, 부평구보다도 넓은 42.14km이다. '黔(검)'자는 '검다'는 뜻이며, '丹(단)'자는 '붉다'는 뜻이다. 서해안 일대가 넓은 갯벌로 되어있어, '개흙이 검다'는 의미와, 서해안 갯벌이 석양에 붉게 노을이 지면 '홍학의 날개와 같다. 하여 '丹'자를 써서 검단(黔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검은 '신성하고 으뜸이다'라는 뜻과 제단을 의미하는 '檀(단)'을 합하여 검단이라고도 했는데,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제단이라 이곳에 이름이 붙어졌다고도 한다. 이는 백제의 도읍지로 추측되는 하남시의 위례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검단이라는 땅 이름이 있다고 하여 나온 이야기다. 검단은 백제 때에 양주, 고구려 때에 포현, 신라 때에는 김포였다. 조선 시대 중기에는 검단 지구를 검단면, 노장면. 마산면 등 3개 면으로 구분하였다가, 1914년에 검단면으로 합해지고, 검단면 금곡리, 당하리 일부가 양촌면과 계양면 일부에 편입된다. 1995년 인천시에서 편입되었다.
한남정맥길은 인라인스케이트장에 올라서서 반대편 사각정자 뒤편으로 이어지지만,
시장기도 돌고 하여 건물 옆 쉼터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아직은 차가운 기온 탓에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인라인스케이트장 건너 쪽 정자 뒤편으로 이어진 한남길을 이어간다.
인라인스케이트장을 뒤로하고 잠시 등로를 따르니, 이내 국궁장인 현무정이 있는 도로가 나오는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남정맥꾼들은 좌측의 현무정을 통과하여 가현산으로 향했으나,
최근에는 인천시에서 새로이 개설한 우측 편의 가현산 등산로를 따라 한남길을 이어간다.
우측 30m 지점에 있는 가현산 등산로 입구로 이동하여 가현산 등산로 들머리로 들어서는 백두들.
국국장인 현무정 옆을 지나 잘 나있는 등산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군부대 울타리도 지나고, 금곡초등학교 갈림길을 지나서, 수레길 수준의 등산로를 따르면 전방으로 세자봉이 보인다.
등로 우측으로 가족묘지가 있는 곳에서 시야가 트인다.
서낭당고개를 지난다.
<서낭당고개>
인천시 서구 금곡동 큰쇠골 마을에서 마전지구로 넘어가는 고개다.
서낭당고개 안내판.
운동시설이 있는 곳에서 좌측의 우회로를 두고 우측 오름길을 따라 세자봉을 향한다.
가파른 나무계단 오름길을 올라서면 육각정자가 있는 세자봉에 도착한다.
<세자봉(170m)>
이 지역 사람들은 작은 가현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산으로, 산 정상에는 육각정과 오래된 삼각점이 있다.
정자에 올라서 바라본 인천시 서구 금곡동 방향.
세자봉 정상에서 잠시 쉼을 하는 백두들.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 할 가현산도 보인다.
세자봉을 뒤로하니 이내 묘각사로 가는 넓은 비포장도로를 만나고,
묘각사 입구에 도착하니,
배불뚝이 포대화상이 만면에 너그러움을 담은 넉넉한 모습으로 오가는 이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늘어진 배에 길상의 모습을 한 포대화상은 지팡이에 자루를 매달고 다니면서 인간의 번뇌와 고통을 자루에 담고,
포대에서 웃음과 기쁨을 내주시는 스님이라 한다.
묘각사 입구에서 우측 폐타이어 계단을 통해 가현산을 오르려는데,
지나던 할머니들이 그쪽은 등산로가 아니라며 좌측의 묘각사 쪽으로 가라고 소리치지만,
우리는 정맥꾼이라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도 부득이하게 가야 한다며 능선길을 고집한다.
제법 가파른 가현산 오름길을 폐타이어 계단을 통해 오르면,
군부대 울타리가 앞을 가로막아 우측으로 울타리를 따라 우회하여 진행하여,
가현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를 우회하여 지나게 된다.
선두팀들을 우회시키고 한참을 기다려서, 도착한 후미와 함께 나도 우회길로 들어선다.
잠시 후 가현산통신소 정문 앞으로 내려서고,
북쪽 방향 조망.
중앙 멀리 보이는 산이 한강 남쪽 김포시 하성면의 봉성산이고,
우측 아파트 뒤쪽으로 보이는 산이 강 북쪽의 파주시에 있는 심학산이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니, 가현산 바로 남서쪽 아래 묘각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갈림길이다.
가현산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 도착.
<가현산(歌絃山, 215m)>
인천시 서구 검단동과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구래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예로부터 서쪽 바다의 저녁노을에 비켜 보이는 고기잡이 배의 돛대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그 경치 속에서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 하여 가현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산 정상에 올라서면 임진강 하류에 위치한 북한의 산세를 조망할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산의 형세가 코끼리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상두산(象頭山)이라고 불려 오다가, 칡이 번성한다 하여 갈현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이 산 서쪽 바다의 석양낙조와 황포돛대가 어울리는 경관을 거문고 등을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감상하였다 하여 가현산(歌絃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그 시절에 이 산 서쪽 해안 일대에 많이 나는 약쑥을 중국과 물물교환하는 무역이 활발하게 되자, 이 산 밑에 주막집이 번창케 되어 가무를 즐기게 된 것이 산의 명칭이 변하게 된 사유라고도 전해 오고 있다.
남서쪽 영종도 방향으로 '가현산 진달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진짜 가현산 정상의 통신탑을 배경으로 가현산 정상석에서 인증사진을 남긴다.
가야 할 수안산을 배경으로 오늘 산행에 참가한 18명 전원이 참가한 기념사진도 남긴다.
가현산을 사랑하며 가꾸자는 뜻으로 조성하였다는 '가현산 수애단' 모습.
백두들은 가현산을 뒤로하고 한남정맥 잇기를 계속한다.
가현산 정상에서의 서쪽 수안산 방향 조망.
남서쪽 영종도 방향.
남쪽 검단지구 방향.
당겨본 계양산.
가현산을 뒤로하니 자연스럽게 제 멋대로 자라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짖는 소나무숲이 이어진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손 총무님의 평소 지론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이곳이 소나무 쉼터인가 보다.
가현정을 지나는데,
가현정 옆에는 가현산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이 새워져 있다.
사랑의 쉼터를 지난다.
조그마한 봉우리를 올라서는데, 산행기에서 본 상주산(146m) 쯤으로 짐작된다.
다시 조그마한 봉우리를 하나 더 지나니,
갈림길을 만나 우측 능선길로 진행하는데,
좌측 내림길은 양촌읍 대포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정규 등산로이다.
삼각점이 있는 140봉을 지나면,
스무네미고개에 도착하여 지난해 설치된 생태통로 위로 스무네미고개를 통과한다.
<스무네미고개>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대포리와 유현리를 잇는 고개로, 옛날 이 고개를 넘으려면 스무 번을 쉬어야 한다고 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 높지 않은 고개인데 스무 번이나 쉴 필요가 있었는지..ㅉㅉ (답:짐을 잔뜩 지고 있었음)
남쪽 김포시 양촌읍 대포리 방향.
북쪽 구레리 방향으로 한강신도시 아파트들이 보인다.
스무네미고개를 지나서 계속되는 완만한 산길을 이어가면 밤나무 농장을 지나게 되고,
좌측으로 시야가 트인 묘지에서 잠시 쉼을 한다.
양지바른 묘지에서 배낭털이를 하고는 다시금 수안산을 향하는 백두들.
남쪽 인천 방향 조망.
우중앙의 동그란 봉우리 위에 묘지가 보이는데, 딱 보기에도 명당으로 보이는데, 후손들은 잘 살고 있는지?
잠시 후 임도를 만나 따르면 군부대가 자리한 봉우리에 닿게 되는데,
좌측 임도를 따라 진행해도 되지만, 군부대 입구에서 우측으로 울타리를 따라 진행한다.
(군부대는 이전하여 떠나고 울타리만 남아있다)
우측으로 한강신도시 아파트숲이 조망된다.
잠시 후 다시 임도에 내려서게 되고 임도를 따라 한참을 이어가면,
남쪽 양촌읍 학운리에서 북쪽 유현리로 이어지는 5번 군도를 만나 건너편 숲으로 들어간다.
우측 공장지대 절개지를 따라 우틀하고,
우측 공장지대 모습.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본 가야 할 수안산 모습.
'묘지 가는 길'을 지나 잠시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101봉에 도착한다.
송전탑을 지나 내려오니 밭이 나오고 도로에 내려서서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우측 전봇대 뒤로 오르는 수레길이 있다.
수레길을 따라 올라 천주교 공동묘지 정상부에서 잠시 쉼을 하며 배낭털이를 한다.
봉우리 정상부를 지나 내려서면,
우측으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의 흔적이 이어져 있다.
도로에 내려서서 우측으로 20m쯤 진행한 후,
다시 좌측 길로 접어들고,
건물이 끝나는 부분에서 다시 좌측 언덕으로 오른다.
밭을 가로질러 내려서면,
7번 군도인 대곶남로에 내려서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앞쪽으로 가야 할 코스(막혀있음)를 가늠해 보고 삼거리에서 길을 건너 좌측으로 진행하는데,
우측 수안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성진테크 입구 도로에 대문이 설치되어 잠겨져 있어서,
하는 수 없이 길을 따라 조금 더 진행하여,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옆으로 들어서서 산으로 올라간다.
도로를 따라서 터널 좌측으로 올라간다.
밭을 가로질러 오는 백두들.
대곶남로에서 골목으로 바로 왔으면 녹색 화살표를 따라왔을 텐데,
입구에 철문이 설치되어 잠겨져 있는 바람에 우측의 청색 화살표 방향으로 돌아왔다.
수안산을 향하는 백두들.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인천~김포)가 마무리 공사에 들어가 있고,
남향의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풀들이 돋아나 녹색으로 바뀌어 있다.
아직도 나의 생각은 겨울에서 헤매고 있었는데...ㅉㅉ
터널 위에서 바라본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인천~김포) 인천 방향.
능선에서 바라본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인천~김포) 김포 방향.
우측으로 국궁장이 내려다 보이고,
국궁장에서 올라오는 도로에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수안산으로 향하는데,
임도는 수안산 정상으로 이어져 있다.
임도 좌측에 잘 꾸며진 가족 납골묘지가 설치되어있는데,
납골묘지 옆 평상에서 느긋한 쉼을 즐긴 후,
가파른 임도를 따라 수안산 정상으로 오른다.
수안산 정상 직전 헬기장을 지나면,
수안산 정상부에 도착한다.
<수안산(守安山, 146.8m)>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율생리에 있는 산으로, 수안산에 있는 수안산성은 1996년 경기도 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수안산성은 삼국시대의 성터로 현재도 산 정상부를 돌아가면 돌로 쌓은 성벽이 약 685m 정도 남아 있다. 성 안의 남쪽 바다를 향한 평평한 터에서는 많은 기와 조각이 널려있어 여기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서쪽에서 성문터가 발견되었고,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방벽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성 안 곳곳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토기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성은 삼국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는 조선 시대에 설치되었던 김포시의 5개 봉수대 중 하나인 수안산 봉수대 터가 있다. 수인산 봉수대는 남쪽으로는 김포시 백석산 봉수에 응하고, 서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강화 대모산 봉수에 응하였다는 옛 기록이 있다. 이처럼 봉수대로서의 기능을 함께 가진 수안 산성은 성 바로 아래에 강화도와 배로 왕복할 수 있는 포구가 있는 등, 강화도와 육지를 연결시켜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성으로 조선 시대까지 이용되었다. 또한 산성 안에는 도마(陶馬)뫼라고 불리는 무덤이 있는데, 여기에는 옛날 도 장군이 타고 다니던 애마가 묻혀 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수안산성 안내판.
돌아본 가현산과 계양산 방향.
수안산 전망 안내도.
수안산 정상 인증.
수안산 정상에서 다시 따르던 임도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수안산신령지단'이란 제단이 있고,
임도 우측으로 들어서라는 표지기들이 걸려 있다.
임도 따라 직진하면 알바!
체육시설이 있는 쉼터를 지나면,
앞쪽으로 조망이 트이며 김포시 대곶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잘 관리된 묘지 앞으로 이어진 농로를 따르면,
농로는 능선 위로 이어지다가,
도로를 만나 밭을 우회하여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돌아본 수안산 방향.
농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패션아웃렛 단지로 내려서게 된다.
한남길은 페션아웃렛 마당을 가로질러 대곶신사거리에 도착하여,
대곶신사거리를 건너 대곶성당 앞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대곶교회 앞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몇 차례 배낭털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일들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
아침을 빵조각으로 때운지라 덕분에 약간 출출해지려는 배를 꽉꽉 채운다.
백두들은 대곶사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장승고개까지 진행하게 하고, 나는 우틀하여 대곶초등학교 방향으로 한남능선을 더듬어 가기로 한다. 아무리 개발로 희미해진 능선일지라도 최대한 찾아보는 게 의미가 있을 듯하여!
대곶사거리에서 우틀하여 잠시 진행하면 대곶초등학교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고,
골목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곶초등학교가 보인다.
휴일이라 학교 정문은 닫혀있어서 쪽문을 통해 대곶초등학교로 들어선다.
대곶초등학교 교정에 들어서서 우측으로 나가야 한다고 해서 가 보았더니,
산으로 통하는 쪽문은 잠겨져 있고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지 덩굴에 덮여 있다.
그래도 대곶초등학교 뒷산이 한남정맥 능선인지라 주변에 학생들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학교 울타리를 넘는다.
최근에는 정맥꾼들도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대곶초등학교 뒤쪽 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흔적이 희미하만, 능선으로 짐작되는 사면을 치고 오르면 정상부에 도착하게 되고, 봉우리 정상부에서 좌틀하여 '대곶 어린이집'이 있는 고개로 향한다.
고갯마루 건너편으로 숲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공사판이 벌어져 있다.
한남정맥은 녹색 화살표 방향으로 이어지지만, 공사판과 공장이 앞길을 가로막아 우측으로 우회하기로 한다.
도로에 내려서서 돌아본 남쪽 대곶면 소재지 방향.
대곶사거리에서 직진방향의 도로를 따라와도 이곳으로 오게 된다.
북쪽 방향의 길을 따라 공사판을 우회하기로 한다.
도로를 따라 200m쯤 진행하면 좌측으로 들어서는 수레길이 나오고,
수레길을 따라 오르면 수레길은 묘지까지만 연결되어 있고,
묘지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길은 없어지고 발자국 흔적만을 더듬어 오른다.
희미한 족적을 쫓아 봉우리에 오르면, 이내 뚜렷한 정맥길에 다시 접속하게 된다.
능선을 따라 홀로 걷다가 보니 좌측으로 덕원군 묘소가 보인다.
<덕원군(德源君) 묘소>
덕원군(1449년 3월 6일~1498년 7월 22일)은 조선 전기의 왕자 왕족으로 세조의 서자이며 근빈 박씨 소생이었다. 예종 때 남이의 옥사를 평정한 공으로 수충보사정란익대공신(輸忠保社定難翊戴功臣)에 책록 되었다. 휘(諱)는 서(曙)이고, 자(字)는 정수(晶搜)이며, 호는 종덕암(宗德庵)이다.
조선 세조와 근빈 선산박씨 사이의 서자로, 세종 31년(1449년) 한성부에서 출생하였다. 단종 3년(1455) 어머니를 여의고, 부왕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다. 부왕 세조가 등극한 뒤, 세조 4년(1458) 8월 10세에 덕원군에 봉군 되고, 세조 8년(1462) 14세에 혼인하여 사저(私邸) 60여 간을 하사 받고 출궁 이때부터 궐 밖 건천동에서 살았다. 덕원군은 평소 효심이 지극하여 부왕을 정성껏 모셨으며, 부왕이 거동할 때에는 항시 배행하였다. 부왕의 온양 온천 행차에 배종하면서 진위군 종덕면 막금리(현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당현리)에 당도하니, 옛날 나라에서 지표(地標)를 묻어 둔 곳인데, 덕원군이 세조의 어가 앞에 나아가 이 땅을 자신에게 내려 줄 것을 엎드려 청하니, 세조가 쾌히 승낙하여 그 땅을 덕원군의 사패지 전지로 하사 하였다.
세조 14년(1568년) 무자년 덕원군의 나이 20세에 세조가 승하하고 이복동생 예종이 즉위하였다. 예종 조에는 국정을 돌보고 문충공 신숙주, 한명회, 유자광 등과 협력하여 남이의 옥사를 평정한 공으로 수충보사정란익대공신에 책훈되고, 성종조에는 종부시도제조를 명 받아 종실을 바로 살피고 선원보를 관장하였으며, 선왕의 제향소 일을 맡아보았다. 연산 조에는 바른말을 진언하여 잘못된 정사를 다소 시정케 하였다. 연산군 4년(1498) 한성부 건천동 자택에서 사망하니 향년 49세였다.
덕원군 묘소 전경.
묘지 아래쪽에서 후손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묘소로 올라오고 있다.
덕원군 묘지를 뒤로하고 벌목된 등선을 따라 한남길을 이어가니,
능선길은 편안한 오솔길로 이어지더니,
갈림길을 만나 뚜렷한 우측 길을 두고 표지기가 붙어 있는 좌측 길로 접어들면,
이내 김포시 공장지대를 관통하는 2차선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2차선 포장도로에 내려서면,
오늘의 산행은 실질적으로 끝이 나며 도로를 따라 장승고개까지 진행한다.
공장과 상점들만 즐비한 도로를 따라 한동안 진행하고,
인도도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차량의 매연의 마시며 진행하자니 과연 이게 산행을 하는 건지 회의가 생기고,
어쨌든 20여분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길가에 장승이 있는 장승고개가 나타난다.
장승고개를 지나 잠시 더 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전방에 우리의 애마가 보인다.
공장지대 도로를 걸으며 원치 않게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김포 옥천인삼사우나로 이동하여 땀을 닦고,
대곶신사거리 근처에 있는 두부집으로 이동하여,
한남정맥 여덟 번째 산행의 피로를 푼다.
서울이 가까우니 마치는 시간도 빨라진다.
먼 곳 산행을 가면 마치는 시간도 늦어지는데, 빈익빈 부익부와 같은 원리인지 이해는 안 되지만..ㅉㅉ
산행같지 않은 산행을
산행처럼 하는 백두들
고생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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