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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낙남정맥 14차(나밭고개~매리/고암나루터) : 사력을 다해 걸은 마지막 낙남길

by 재희다 2011. 7. 10.

산 행 지 : 낙남정맥 14차(나밭고개~매리/고암나루터)

산 행 일 : 2011. 07. 09.(토)

산행코스 : 나밭고개~영운리고개~가야골프장~신어산~생명고개~499봉~동신어산~상동 매리/고암나루터

(도상거리 16.4km, 9시간 소요)

산행참가 : 27백두.

 

<산행코스>

 

 

장마철이라 그런지 지난 산행에서도 종일 비를 맞았는데, 낙동정맥 마지막 산행인 이번 산행을 앞두고도 주말에 큰 비가 예보되었다. 비가 온다고 가지 않을 산악회가 아니니 가기는 가야 할 것 같은데, 산행의 종착지인 낙동강 하구 근처의 풍광을 늘 보고싶었던 터라, 못내 아쉬움을 안고 집을 나선다. 예상 산행 경로를 살피면서 가야 CC 통과 시 골프장 관리인들과의 실랑이를 우려했었는데, 비가 오면 내방객이 없을 것이고, 그러면 골프장 통과도 조금은 쉬워질 듯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 본다. 보통 살다 보면 나쁜일은 좋은일을 동반하고, 좋은일은 더 좋은일을 동반하는가 보다.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빗길임에도 불구하고, 4시간여 만에 산행 출발지인 김해시 나밭고개에 도착했다. 최근에 개통된 대구대동간 고속도로의 덕을 톡톡히 본 듯하다. 오늘이 낙남정맥 졸업하는 날이고, 참석 인원도 평소보다 많아서, 뒤풀이 시간을 조금 여유 있게 할 요량으로, 도착하자 바로 산행 준비를 한다.

 

 

빗줄기가 조금 뜸해진 틈을 타, 우장을 갖추고 나밭고개에서 산행 준비를 한다.

 

주) 사진기의 시간 세팅 오류로, 사진의 흰색 시간표시는 +1시간으로 계산해야 함.

 

<나밭고개(羅田峙)>

경상남도 김해시 삼계동과 생림면 나전리를 잇는 고개로, 나전령(羅田嶺), 나전현(羅田峴), 나전티, 나전치(羅田峙), 노현(露峴) 등으로도 불린다. 『대동지지』(김해)에 나전현이 북쪽으로 가는 길로, 『조선지지자료』(김해)에는 생림면 나전리에 있는 고개로 나전령이 기재되어 있다. 『조선환여승람』(김해)에도 "나전현은 군의 북쪽 15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광여도』(김해)에 좌부면 북쪽, 해반천 상류에 나전령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 『대동여지도』(18첩 2면), 『해동지도』(김해) 등에 나전현(), 나전령()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나밭'이란 지명은 풍수적으로 '선녀나대하강전형()'의 명당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산길이 험하여 숨이 가쁘다고 '가쁠 노()' 자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나밭고개 들머리는 천리교 한국포교당 정문 직전에 있는데, 들머리 바로 앞에 주차를 했다.

 

낙남정맥 나밭고개 들머리로 들어서는 백두들.

 

<천리교(敎)>

천리교(天理教 텐리쿄)는 일본 나라현 덴리시에 본거지를 둔 신흥종교이다. 에도 시대인 1838년 나라현의 농민 여성인 '나카야마 미키'에게 천리왕명(天理王命, 인류를 창조했다는 천리교의 유일신)이 내려, 츠키히노야시로(천리교 교조)로 화하여, 이후 포교에 힘쓰게 되었다고 한다. 신토(조상과 자연을 섬기는 일본 종교)의 일종으로 자리매김하는 의견도 있으나, 교리나 신앙생활에 있어 차이가 크다. 전 세계에 약 200만 명가량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그중 일본 내에 150만 명이 있다. 한국에서도 1893년 이래로 포교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27만여 명의 신자가 있다.

 

 

일본 신도() 13개 교파의 하나로 일컫는다. 교조() 나카야마 미키(伎, 1798∼1887)라는 여성은, 원래 야마토노쿠니(國) 야마베군(: 市)의 지주() 나카야마가()의 평범한 주부 출신이다. 1838년 그녀가 40세 때 장남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야마부시(:僧)를 초빙, 가지()를 행하다가, 하늘의 계시를 받고 전도를 개시하였다 한다. 스스로 3천 세계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내려왔다 하며, 도쿠가와(川) 말기의 혼탁한 사회정세 속에서 안산()과 치병()의 주술() 등을 행하여, 농민과 서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갔다. 그 후 정부로부터 박해와 압박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고, 1908년에는 교파신도()의 한파로서 독립이 공인되었다.

 

천리교의 교리는 교조가 직접 지었다고 하는 《미카구라우타》 《오후 데사키》(한국에서는 《》) 및 《지도 말씀》에 의하여 주신() 덴리오노미코토[:한국에서는 님]를 받들고 죄악의 근원인 욕심을 제거하여 서로 사랑하며 신에게 노력()을 바칠 것을 교지()로 삼고, 참다운 이상세계 곧, ‘감로대()’를 현세에 건설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887년 교조가 죽자 목수() 출신인 이후리 이조(藏)가 역시 신이 들려 대를 잇고, 오사시즈(지도 말씀)를 저술하여 교단을 이끌었다. 1907년 그가 죽자 나카야마가()에서 대대로 교주를 전승하여 포교에 전력하는 한편, 1966년에는 신도교파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할 만큼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교회수 1만 7000개소, 신도수 235만 명이 넘는다는 천리교의 본부가 있는 덴리시(市)는 일대 종교도시를 이루고 있으며, 덴리대학을 비롯한 여러 학교와 도서관 ·체육시설 등 문화활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천리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01년 일본인 사와무라(村)라는 사람이, 마산()의 김선장()에게 그 교리를 전한 것이 효시가 된다고 한다. 그 후 일본 자체의 탄압정책 등으로 빛을 보지 못하였고, 8·15광복 후에도 반일()사상 등의 영향으로 교세의 확장이 부진하였으나, 6·25전쟁 후 종교의 자유와 한 ·일국교의 정상화 등에 힘입어 착실하게 교세를 확장, 1993년 현재 전국에는 500개의 교회, 700개의 포교소(), 신도수 37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펌)

 

 

나밭고개 들머리로 들어서서 한두 군데 암릉도 있는 가파른 오름길을 20여분 오르면, 주능선 갈림길에 도착한다. 좌측은 371봉으로 연결되고...

 

낙남길은 우틀하여 주능선을 따른다.

 

 

주능선에 올라서자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331봉을 지나고,

짙은 안개와 어둠을 헤치며 능선길을 따르다 보니 402봉에 도착한다.

 

낙남정맥 땜빵하러 오셨다는 분이 첫번째 402봉 인증을 한다.

 

수없이 보던 표지판이다.(늘 고마워유 준.희 내외분!)

'화이팅'하고 힘내서 낙남정맥 무사히 졸업해야지요.

 

 

주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한두 개 더 지나서, 등로가 좌측 사면으로 내려가더니,

이내 임도와 만나 우측으로 잠시 임도를 따르면, 나무벤치도 있는 쉼터도 조성되어 있다.

 

낙남길은 벤치가 있는 쉼터에서 좌측 숲으로 들어간다.

 

 

임도에서 숲으로 들어서자 이내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뚜렷한 우측 길은 김해천문대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하고 낙남길은 희미한 좌측 등로로 들어서야 한다.

 

 

정맥꾼들이 알바를 많이 한다는 갈림길을 지나 잠시 내려서니, 가야 CC 퍼블릭 4번 홀 티박스가 나온다.

 

가야 CC로 들어서는 백두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비가 와서 그런지, 필드는 텅 비어있고,

우리는 4번 홀 아래에 있는 2번 홀 그린 옆으로 내려서서...

 

4번홀 디박스를 지나 2번홀 그린 쪽으로 들어가는 백두들.

 

 

영운리고개 도로 위를 건너는 골프장 연결통로로 들어선다.

평소 이 연결통로는 잠겨있어서 영운리고개 통과에 많은 애를 먹는다는데,

다행히 오늘은 열려있어서 조금의 수고를 덜어준다.

 

<영운리 고개>

김해시 삼방동에서 나전리를 오가던 옛 고개로, 삼방동의 영운개라는 옛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고개다. 삼방동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와 아들, 며느리가 함께 화를 당하여 충신, 효자, 열녀가 함께 났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란다. 현재는 가야 CC가 고갯마루에 자리 잡고 있으며, 21번 지선 도로가 가야 CC를 관통해 지난다.

 

 

골프장 연결육교를 건너 영운리고개를 통과하는 백두들.

 

연결통로 위에서 내려다본 북쪽 생림면 방향.

 

 

연결통로를 지나 도로를 따라가면, 김해시 쪽에서 가야 CC 클럽하우스로 집입하는 도로와 만나고,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클럽하우스 방향으로 진행한다.

 

 

가야 CC 집입도로를 따라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백두들.

클럽하우스 샤워장으로 바로 직행할 듯이 편안한 표정들이다.

 

 

가야 CC 클럽하우스 앞을 통과하는 백두들.

좌측의 클럽하우스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기서 뜨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가면 좋으련만..ㅋㅋ

 

 

가야 CC 클럽하우스 앞에서 우틀하여, 9번 홀로 들어서고,

그린에서 티박스 방향으로 페어웨이를 따라 진행한다.

 

 

우중이라 내방객이 없어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골프장을 마음껏 활보한다.

산이 아니라 이런 골프장을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뜻밖의 희열을 느끼게 한다.

클럽이 아니라 스틱을 잡고 있어서...ㅋㅋ

 

 

좌측의 봉우리가 낙남능선 상의 봉우리이기에,

지금 우리는 낙남능선 봉우리를 살짝 우회해서 통과하는 중이다.

 

 

9번 홀 티박스에서 스틱을 거꾸로 잡고...

 

폼 좋고, 복장 개판이고!

 

 

바로 옆 8번 홀 그린으로 이동하여...

 

가야 CC 8번 홀 그린 위에서 인증을 남긴다.

산행하면서 골프장 그린에서 인증하기는 처음이다.

 

종협형님 찍은 사진(위 사진과 1시간 차이가 나는데, 카메라 세팅 시간 차이임)

 

 

가야 CC 8번 홀 그린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서서,

가파른 오름길을 한참 동안 오르면, 신어산 서봉에 도착한다.

회장님과 총무님이 나란히 신어산 서봉 인증을 한다.

 

<신어산 서봉(神魚山, 630m)>

신어산(神魚山)신(神)처럼 우뚝하니 솟아 김해를 내려다보고 있는 산으로, 지도에는 높이가 614m로 되어있는데, 정상석에는 630m로 표시되어 있다. 신어산이 630m인데 오기인 듯하다.

신어(神魚)는 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의 출신국 아유타국의 상징이다. 신어는 수로왕릉 정문을 포함해 은하사, 영암사 등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 두 마리, 즉 쌍어(雙魚)를 말한다. 쌍어는 가락국의 상징으로, 페르시아 신화에서 신어는 카라(Kara)라고 불린다. 이 카라(Kara)에서 가야, 가락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추정한다. 신어는 페르시아인들이 숭배하던 큰 나무 '고 케레나'를 수호하는 일을 한다. 이 나무는 인간의 병을 고치거나 새로운 생명을 준다고 하므로, 신어가 있는 곳이 곧 인간을 보호하는 신령스러운 장소가 된다. 그래서 신어산은 옛 김해, 즉 가락국 사람들이 신성시하던 산이다.

불교에서도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고 항상 깨어 있기에, 수행자의 상징 혹은 부처를 수호하는 신물로 여겨진다. 2000년 전 저 멀리 페르시아에서 온 신어가, 지금까지 김해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신어산 서봉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신어산 서봉 이정목의 '신어산 헬기장' 방향이 낙남길이다.

 

신어산 서봉 정상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한참 동안 부득이한 쉼을 하고...

 

 

신어산 서봉 헬기장으로 내려서는데...

짙은 안개로 신어산 방향의 능선을 가늠키 어려워 잠시 주변을 살핀다.

 

 

잠시 편안한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니, 신어산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을 지나면...

 

은하사 방향 갈림길이 나오는데, 낙남정맥은 신어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은하사(銀河寺)>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 신어산() 서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이다. 서림사(西)라고도 한다. 구야국() 수로왕( 42∼199) 때, 인도에서 온 승려 장유()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 시기는 아직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기 전이라, 확실한 고증은 할 수 없다. 전하는 설에 따르면, 신어산 서쪽에 인도불교가 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이 절을 지었으며, 동쪽에 동림사()를 지어 구야국의 번영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대에 중창하였다.
신어산은, 예전에는 은하산()이라 불리었던 까닭에 은하사라고 부른다. 또 신어산의 별칭이 소금강산인 까닭에 소금강사()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1989년 3월 신어산에 산불이 났지만, 이 절만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화운루,설선당,명부전,응진전,요사채 2동과 객사, 산신각, 종각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조선 중기 이후에 세워진 전각으로,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용두()와 봉두()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대웅전 안 수미단에는 신어() 무늬가 있었으나, 근래에 도난당했다. 그밖에 1668년(숙종 14)에 쓴 시왕전 상량문과, 1791년에 쓴 시왕전 이건 상량문, 취운루 현판 등이 전한다. 특기할만한 문화재는 없으나, 대웅전 앞에는 높이 5m 정도의 5층 석탑이 있고, 응진전 앞에는 3층 석탑이 있으나 모두 오래된 것은 아니다. 또, 절 아래에는 신어산이라는 산명과 연관된 연못이 있다.

 

 

백두들은 헬기장에서 좌측으로 오는데,

관록의 산꾼 오세민씨가 이곳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내려가, 30분 이상의 대형 알바를 시작한 곳이다.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은 곳에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그래도 아래쪽으로 통과하는 것보다는 수월하게 지나간다.

 

출렁다리를 건너 신어산으로 향하는 백두들.

 

 

영구암 갈림길에 있는 신어산 등산 안내도.

 

 

영구암 갈림길 쉼터를 지나 잠시 오름길을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내 신어산 정상 직전에 있는 신어정(魚亭)에 도착한다.

 

비를 피해 신어정으로 오르는 백두들.

비를 쫄딱 맞으며 걷다가 이런 정자를 만나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신어정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느긋한 쉼을 한다.

젖은 양말도 짜 보고, 배낭에 물이 들어갔는지 점검도 하면서...

 

비 오는데 식사는 어떡하지.. 하며 걱정하다가, 오붓하게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한 백두들.

 

온몸이 젖어있어서 체온 손실이 만만치 않은 듯...

복장을 여미며 따뜻한 커피를 찾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젖은 옷으로 몸의 열기가 식어, 추위를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어서야,

오세민씨가 긴~ 알바에서 돌아왔다. 안갯속에서 홀로 헤매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짙은 안개로 보이지 않던 신어산 정상은 신어정에서 지척이다.

신어정과 전망대를 경남은행에서 지어 기증했다는 비석이 있는 신어산 정상에 도착한다.

 

신어산 정상의 이정목에는,

낙남정맥의 종착지인 고암나루터가 있는 메리까지 아직 10.3km나 남았다고 표시하고 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모두들 신어산 정상을 스쳐 지나가고, 만식형님 홀로 신어산 정상 증명을 한다.

 

<신어산(神魚山, 631.1m)>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에 있는 산으로, 김해시와 김해군 상동면의 경계선상에서 동서로 뻗어있는 산이다. 북동쪽으로는 낙동강이 감돌아 흐르고, 남쪽으로는 김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금관가야() 시조 수로왕과 허황옥() 왕비의 신화가 어린 성산()으로, 신어는 수로왕릉 정면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를 뜻하며, 밀양 만어산(山, 670m) 전설에도 나오는 인도 아유타국()과 가락국()의 상징이다. 일명 선어산()이라고도 하며, 고찰 은하사()와 영귀암() 등이 깃들어 있다.

신어산을 중심으로 김해시 복판의 황새봉(393m), 경운산(山,379m), 분성산(山,375m)이 동쪽 백두산(山,352m), 덕산(山,457m), 까치산(342m) 등과 연봉을 이루고, 낙동강 건너 낙동정맥의 산들과 대치하고 있다. 카펫처럼 부드러운 백두산∼신어산 종주능선은 부산 근교의 워킹 산행지이며, 산마루에 서면 부산을 에워싼 연봉들의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금정산(山,801m)과 태백산맥의 구봉산()에서 몰운대()로 뻗은 낙동정맥()의 산군은 물론, 지리산 영신봉(峰, 1,651m)에서 분성산에 닿는 낙남정맥()의 연산들을 비롯해 이웃한 무척산(山,703m), 양산시 물금읍 오봉산과 원동면 토곡산(山,855m), 웅상읍 원효산(山,992m)과 천성산(山,812m) 등 동부의 크고 작은 산들을 살펴볼 수가 있다.

 

신어산 정상을 뒤로하고 매리 방향으로 내려서는데, 쏟아지는 비로 지척조차 분간이 어렵지만, 그래도 이곳이 김해 시민이 많이 찾는 산이라 그런지, 등로가 뚜렷하고 이정표도 잘 갖추어져 있어서 어렵사리 낙남능선을 더듬어 진행하면, 이내 신어산 동봉에 도착한다.

 

신어산 동봉(605m)의 인증도 만식형님 홀로서 한다.

 

 

신어산 동봉을 뒤로하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한참 동안 꾸준히 내려서면,

상동면 묵방리 절터골과 대동면 주동리를 잇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생명고개에 도착한다.

 

<생명고개>

생명고개는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에 있는 고개로, 신어산과 장척산 사이에 있다. 새명고개라고도 하는데, 자세한 지명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생명고개 주변에는 농장들이 조성되어 있고, 차량이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있다. 고개 우측 주동리 쪽 독지곡 마을 위에는 숯골이 있었는데, 이곳은 6.25 전쟁 발발 후 전국 각 지역에서 부산교도소로 수용되었던 보도연맹원들의 마지막 매장터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반도의 남쪽 끝 이곳까지 내려와, 타향 땅 이름 모를 계곡에서 한스런 생명을 끝내야만 했는지.., 생명고개라는 이곳의 지명이 아이러니로 남는다. 자신들이 가지고 싶은 권력을 위해 어리석은 민중들의 투쟁을 이용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우리의 자본주의 민주체제나, 이북의 공산주의 관료체제나 민중들을 때리고 짓밟는 일에는 매한가지 이거늘, 생각 없는 민중들은 그저 알량한 말장난에 그들의 모든 것을 스스럼이 없이 내던져 버린다. 이데올로기가 무서운 것이, 선과 악, 옭음과 그름, 좋음과 싫음, 진실과 거짓, 민주와 독재 등 그 모든 판단기준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기성세대의 자리조차 내줘야 하는 우리들은 후세들의 먼 훗날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그 결과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돌아본 생명고개 날머리.

 

생명고개 고갯마루에서 직진의 상동면 묵방리 방향 도로를 두고, 우측 임도로 들어선다.

 

 

우측 임도를 따라 30여 미터 진행하면 우측에 들머리가 있다.

생명고개 들머리 이정목의 '백두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생명고개 들머리로 들어서는 백두들.

 

 

생명고개에서 숲길로 올라 조금 진행하다 보면, 고개에서 올로와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서는데, 이 임도를 따라 405봉을 우회해도 되지만, 정통파 백두들은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면서도 낙동정맥을 고집하며, 임도를 두고 405봉 오름길로 들어서서 급경사를 힘겹게 오른다.

 

 

미끄럽고 가파른 오름길을 조금 오르면, 숲으로 가려져 조망이 없는 405봉 정상에 도착한다.

 

405봉 정상에는 조그마한 목재 팻말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이곳 정상의 이정목에서도 백두산 방향이 낙남정맥길이다.

 

 

405봉을 뒤로하면 다시 임도가 지나는 터실고개에 내려서게 되고,

낙남길은 임도 건너편 이정목의 백두산 방향 숲길로 들어간다.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452봉쯤을 지나게 되고, 조금 완만해진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롯데자이언츠 상동야구장 방향의 능선갈림길이 있는 531봉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도 낙남정맥은 백두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531봉과 523봉 사이의 안부쯤에서, 비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우장을 정비한다.

 

 

523봉 부근 공터에서 잠시 쉼을 하며...

 

배낭털이를 한다.

 

 

523봉을 지나 길고 지루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한바탕 빡센 오름길을 오르면 481봉 팻말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481봉에 도착하는 경진씨와 세민씨의 표정에서 아무런 감흥이 보이지 않는다.

새벽부터 이어진 우중산행으로 몸과 마음이 다 지친 듯하다.

 

 

481봉을 뒤로하고 우측으로 백두산 방향의 봉우리 우횟길을 지나 직진의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낙남정맥의 종착점인 매리와 백두산 방향의 능선이 갈라지는 능선 분기봉인 475봉에 서게 된다.

 

<백두산(白頭山, 354m)>

생명고개 이후 이정목의 '백두산' 방향을 따라왔었는데, 이곳의 백두산은 김해시 대동면에 있는 산이다. 낙동강가에 위치하며 산 동쪽으로 대구대동간 고속도로와 69번 지방도 등이 지나고, 동쪽 사면에 월명사가 자리하고 있다. 백두산의 지명 유래와 관련해, 대홍수 때 산이 100마(碼) 정도 남아 유래했다는 설과, 산경표 상의 끝점인 양강도의 백두산에 대칭되는 시작점이 되는 산이라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옛날 낙동정맥 금정산에서 백양산에 이르는 능선을 걸을 때 낙동강 건너로 보였던 산이 백두산이었던가 보다.

 

 

475봉에서 고암나루터가 있는 매리 방향의 낙남능선으로 들어서자,

완만한 내림길이 길게 이어지다가, 양쪽으로 갈림길이 있는 안부에 도착하는데,

김해시 상동면 매리와 대동면 대감리 감천마을을 잇는 감천고개다.

산행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내림길이 이어지니,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은 나아지는데...ㅉㅉ

 

 

감천고개에서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백룡암 갈림길이 있는 471봉쯤에 올라서게 된다.

 

잠시 더 진행하면 암릉이 나오고, 좌측으로 낙동강이 시원스레 조망되어야 하지만,

보이는 것은 짙은 안개뿐이다.

 

 

한참을 더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진행하니, 499봉을 지나게 되고, 이내 커다란 바위가 요상하게 놓여있는 암릉을 지난다.

 

계속되는 암릉과 봉우리를 통과하느라, 다시금 백두들의 발길이 무거워지고...

 

더 이상 못 가겠다기에, 배낭을 탈탈 털어 본다.

 

웬만해서는 잘 앉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아예 대(大) 자로 누워 버린다.

아마도 비에 젖은 배낭과 몸의 무게를 옮기기에는, 이 부근 연속되는 봉우리가 중과부적인 듯하다.

 

 

늘 막강체력을 자랑하시던 김여사님도 오늘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고갈된 체력 보충을 위해, 백두들의 모든 배낭을 탈탈 털어 본다.

 

 

길고 힘든 암릉을 힘들게 지나, 드디어 낙남길의 마지막 봉우리인 동신어산에 도착한다.

오석의 정상석에는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라 적혀 있는데,

우리에게 이곳은 낙남정맥의 마지막 봉우리가 된다.

 

동신어산 정상에서,

오늘 긴~ 알바를 다녀온 오세민씨가 낙동강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짙은 안개를 뚫고 낙동강의 희미한 윤곽이 드라나 보인다.

 

 

동신어산 정상 증명.

길고 힘든 낙남정맥길도 이제 곧 끝나간다는 희열과 안도가, 힘들어하는 표정 사이로 살짝 드러난다.

 

 

동신어산에서의 조금은 느긋한 쉼을 뒤로하고, 암릉을 따라 내려선다.

 

 

이제 더 이상 오를 봉우리는 없다는 안도감이 확신으로 바뀌며, 표정도 날씨처럼 밝아진다.

 

암릉길에 낙동강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우장을 벗은 백두들이 조심스레 암릉길을 내려선다.

 

 

우측 아래 낙동강에는 장맛비로 누런 황토물이 그득 차 있다.

 

낙동강 물금 쪽 강변 둔치는 장맛비로 물에 잠긴 곳도 있다.

 

 

남들보다 무거운 체중에 더욱 힘들어하는 경진씨도, 마지막 사력을 다해 내려선다.

 

 

동신어산을 뒤로하고 암릉을 따라 고도를 낮추자,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선명해지며, 영규형도 포즈를 잡아 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낙동강 건너편의 물금이 살짝 보이고...

 

상동면을 지나는 대구대동간 고속도로도 내려다 보인다.

 

 

대구~대동 고속도로 절개지 배수로 위에 내려서서 바라본 낙동강 하구 방향.

 

고속도로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선다.

 

돌아본 동신어산 방향.

 

 

대구~대동간 고속도로에 내려서서...

 

고속도로 좌측 계단을 따라 내려선다.

 

대구대동간 고속도로 상동터널 방향.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도로를 따라 고암나루터로 가도 되는데...

굳이 낙남길을 마저 잇겠다며, 다시 우측 고속도로 배수로를 따라 오르는 백두들!

 

 

마지막 봉우리를 내려서며 내려다본 고암나루터 전경.

 

 

낙남길의 마지막 날머리로 내려서는 백두들!

 

낙남정맥 종착지인 매리 도착.

 

 

장마로 고암나루터 접근이 용이치 않아서, 길가에서 신발에 묻은 낙남길의 흙을 털어낸다.

 

 

낙남정맥 종착지에 선 두규형.

 

험했고, 길고 지루하기도 했던 힘든 낙남길!

한발짝 한발짝씩 이어와 종착지에 선 권법사님 내외분!

 

모든 백두들이 무사히 도착하여,

 

백두 화이팅!

 

쌩고생 하셨습니다.

무사히 도착해서 감사 감사드립니다^^

 

 

낙남길 날머리 인증을 마치고, 아쉬운 듯 낙남정맥을 뒤로한다.

 

 

1대간9정맥 중, 유일하게 타도(他道)를 거치지 않는 낙남정맥은, 경남 산청 지리산 영신봉 백두대간에서 분기하여 경남 김해시 상동면 매리 고암나루터에서 물길로 잦아드는 정맥이다. 남해 바다와 내륙을 확연히 구분하는 산줄기인 낙남정맥을 기준으로, 동쪽은 낙동강, 서쪽은 섬진강, 남쪽은 남해, 북쪽은 남강과 낙동강이 흐른다. 소설가 정동주님에 따르면, 낙남정맥을 경계로 위쪽 지역(진주, 함양, 합천 의령, 창녕, 밀양, 양산)은 양반 문화권에 속하고, 아래쪽 지역(마산 창원 진해, 김해 통영 거제, 남해, 사천)은 해안 문화권에 속한다고 나눈다. 정서도 위쪽은 여유 있고 깊이 생각하는 성정인데 반해, 아랫쪽은 거칠고 조급하고 시끄럽다고 한다. 그러나 위쪽은 서울 식도, 지방 식도, 아닌 이중적인 문화가 있고, 아랫쪽은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문화가 있다.(경남 도민일보 이수경 기사 내용)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다.

낙남길을 걸으며, 여유와 운치를 논하는 분위기도 접해 보았고, 투박하지만 진취적인 삶의 현장을 함께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는 이런 다양성을 바탕으로 훨씬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보며, 낙남길을 마무리한다.

 

긴 우중산행으로 움츠려 든 몸을 녹이고, 상동면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길고 힘들었던 산행의 기억을 뒤로하고....

 

벅찬 낙남정맥 졸업의 기억을 되새긴다!

 

 

낙남정맥 졸업 뒤풀이를 마치니, 백두들의 얼굴도 제 모습을 찾았다.

 

 

버스가 있는 곳까지는 식당 차로 이동하여, 따듯한 보금자리가 있는 서울로 향한다.

 

 

남쪽 해안가에 있는 낙남정맥!

뭐 어렵겠어. 그냥 천천히 걸으면 되지 뭐!

라며 시작한 낙남정맥 길.

예상과 달리 어렵고 힘들었다.

 

그래도,

지리산 영신봉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남부능선 줄기를 걸으며

진정한 지리산의 의미를 느꼈고,

창원을 한바퀴 휘감아 돌면서 아름다운 산하를 보았다.

 

언젠가 9정맥 종주를 마치고

신낙남정맥을 돌아볼 날도 있으리라 기대하며,

서울로 향하는 긴 여정을 꿈길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