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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낙남정맥 12차(소목고개~냉정고개) : 홀로 걸은 낙남정맥 창원구간 땜빵 산행

by 재희다 2011. 6. 19.

산 행 지 : 낙남정맥 12차(소목고개 ~ 냉정고개)

산 행 일 : 2011. 06. 18.(토) (백두산우회 6/11)

산행코스 : 창원종합사격장 +소목고개~정병산(566m)~용추고개~비음산~대암산(670m)~용지봉(743m)

~471봉~냉정고개 (도상거리 16km + 1km, 8시간 소요)

산행참가 : 나홀로 + 17백두.

 

<산행코스>

 

지난주 회사 일정이 있어서 백두산우회 산행에 참가하지 못했다. 정맥길이라 땜빵을 해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막상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니 여러 가지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아진다. 살아가면서 매 순간순간마다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데, 고려해야할 변수들이 많아지면 쉽사리 결정하기가 어려워지고 스트레스만 늘어나게 된다. 고민거리는 빨리 해결하는게 좋고, 고려해야할 변수들은 비교 가능한 대안의 같은 변수들과 각각 따로 비교하여 단순화시키면, 그나마 근접한 최적안에 도달하게 된다. 비용, 시기. 방법 등등.., 그래 봤자 별로 뚜렷한 대안이 마땅치 않는다면, 고민을 빨리 끝내는 게 최선이다. 다행히 바로 다음주인 오늘은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낙남정맥 정병산 구간 땜빵을 바로 실행하기로 하고, 금요일 저녁 창원 가는 마지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강남터미널에서 24:00에 출발하는 창원행 심야우등에 몸을 싣고, 익숙한 쪽잠에 빠져든다.

 

 

창원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로 창원사격장까지 이동하여 내리니 4시반쯤이다.

사진의 시간은 카메라 세팅 미스로 시간을 한 시간씩 더하여야 한다.(3시→4시)

 

 

창원사격장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하는데, 날이 어슴프레 밝아오기 시작한다.

주변의 건물들에 불이 켜져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인기척은 전혀 없다.

 

지난주 백두들은 나보다 한 시간쯤 일찍 출발했나 보다.

 

 

지난 산행 때 왔던 곳을 되짚어서 정병산 들머리로 향한다.

사실 하늘색 화살표 방향이 사격장에서 만들어 놓은 우회길인데...ㅉㅉ

 

 

지난 산행 때 소목고개에서 내려오면서 션하게 마셨던 약수터를 지나서 오르니,

 

 

이내 소목고개에 도착하여 소목고개 이정표만 카메라에 담고는,

정병산을 향해 낙남정맥 마루금 산행에 나선다.

 

지난주 백두들도 이곳에서 정병산을 향해 가파른 오름길을 시작했다.

 

 

소목고개까지는 그나마 완만한 오름길이었는데,

이후 낙남길로 들어서서 정병산 오르는 길은 변변히 쉼을 할 틈도 주지 않고 가파르게 이어진다.

 

 

돌아본 천주산 방향의 낙남정맥 봉우리들.

 

 

드디어 정병산 정상부가 시야에 들어오고,

 

 

정병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낙남길은 우측 대암산 방향으로 이어지지만, 좌측 코 닿을 위치에 있는 정병산 정상으로 향한다.

 

 

정병산 정상에 도착하여, 바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셀프 인증을 한다.

 

<정병산(精兵山, 전단산(旃檀山), 봉림산(鳳林山), 566m)>

정병산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이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했던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처음 이름은 봉림산이라고 한다. 봉림산은 통일신라시대 말기 진경대사가 이 산자락에 세운 봉림사에서 유래된 듯하다. 당시 이곳에는 봉림사를 비롯해 많은 사찰이 들어서 불교가 융성했다. 그래서 교려시대 때는 부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과 관련이 있는 전단산으로 불렀다는데, 창원시민들이 뜻을 모아 처음 이름인 봉림산으로 다시 새기고 있다. 그래서 정상석 한쪽에는 봉림산(鳳林山)으로, 다른 쪽에는 정병산으로 새겨져 있다.

신라시대 고승이었던 진경대사의 '보월능공탑비문'에 의하면, 진경대사가 강원도 명주에 있다가 김해 서편에 복립이 있다는 말을 듣고 홀연히 그곳을 떠나, 진례에 도달하여 절을 세우고 봉림이라 고쳐 불렀다 한다. 고대에 '림'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길지라 하였는데, 통일신라 말기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림사와 이에 소속된 많은 사찰이 건립되어 불교가 성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고려시대 이후에는 전단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모친인 마야부인이 전단향나무로 만든 평상 위에서 석가모니를 잉태하는 꿈을 꾸었다 하여, '전단'은 불교와 관련이 깊으며 불교 요람의 산을 전단산이라 한 것이다. 정병산은 창원의 북쪽을 병풍처럼 길게 둘러싸고 있으나, 마금산온천이 위치한 백월산 쪽에서 보면 마치 첨탑과 같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또한 전설에는 산세를 소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소가 북쪽을 향하여 발을 뻗고 누워있는 형세를 취하고 있어서 산의 북쪽에 물이 많이 난다고 하였는데, 우곡사 근처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주 백두들이 정병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으로,

동북쪽 진영 방향으로 짐작된다.

 

잠시 전에 출발했던 창원사격장과, 지나온 소목고개가 내려다 보인다.

 

새벽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창원시 전경.

 

가야 할 낙남정맥 방향.

 

북서쪽 촛대봉 방향.

앞쪽 CCTV봉의 바위 생김새가 눈길을 끈다.

궁금하면 해결해야지 뭐..ㅋㅋ

 

 

CCTV봉 바위에 도착해 보니, 그냥 갈라진 커다란 돌덩어리일 뿐이다.

 

이정표에는 정병산 CCTV봉이라 적혀 있다.

 

앞쪽으로 촛대봉도 내려다 보인다.

 

정병산 동쪽 사면 아래에 있는 자동차 주행시험장과 우곡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정병산 뒤쪽 멀리로 비음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다시 정병산 갈림길로 돌아 나와, 가야 할 낙남능선을 가늠해 본다.

 

지난주에 왔던 백두들은 이곳에서 낙남능선을 넘는 멋진 운해를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쉼터 정자를 지나며 가야 할 낙남길을 다시 한번 담아 본다.

 

 

가야 할 대암산 뒤쪽으로 불모산도 볼 수 있었나 보다.

 

내정병봉을 지나는 낙남 능선을 넘고 있는 운해가 장관을 연출했다.

 

오늘 가야 할 대암산과 용지봉 방향.

 

백두들은 이곳에서 넋을 잃고 멋진 풍광을 감상하고 있었나 보다.

 

 

조각상이라 명명된 소나무를 지나고,

 

 

553봉 헬기장을 지난다.

 

 

우전방으로 창원 중앙역과 창원대학교 교정이 내려다 보이고,

 

 

이내 묵묘가 있는 513봉을 지난다.

 

 

등로 한켠에는 나무둥치에 장승을 조각해 놓아 이채로움을 자아낸다.

뿌리를 내린 상태로 장승이 된 나무는 이곳에서 처음 본다.

 

 

가파른 절벽 구간을 목재 계단으로 내려서는데, 가야 할 수리봉과 내정병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좌측으로는 자동차 주행시험장이 내려다 보인다.

 

 

나무계단을 따라 절벽을 내려서니,

독수리바위 등산로가 위험하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앞쪽으로는 가야할 수리봉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창원대학교와 창원시 건너편으로 장복산이 희미하게 형체를 드러낸다.

 

 

수리봉에 도착하여 돌아본 513봉 방향.

 

<수리봉(독수리바위, 460m)>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단계리에 있다. 정상에는 정병산 수리봉(鷲峰)이라 표시된 오석 정상석이 있다.

 

수리봉에서도 나무계단을 따라 가파른 절벽을 내려서야 한다.

 

나무계단을 내려서며 돌아본 수리봉과 513봉.

 

좌측 아래로는 자동차 주행성능 시험장과 우곡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일심동체 소나무를 지난다.

내가 보기에는 일심여러체인 듯 보이는데...ㅉㅉ

 

 

길상사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고,

 

 

내봉림산/내정병봉(內精兵峰, 493m)에 도착한다.

 

<내봉림산/내정병봉(內精兵峰, 493m)>

정상석에 '내봉림산.내정병봉'이라 새겨져 있는 봉우리로, 정상석과 평상이 설치되어 있고 주변이 깍아지른 낭떠러지라서 안전용 쇠사슬이 둘러져 있다. 주변 조망이 무척 좋다고 하지만, 아직은 안개가 덮고 있어서 훌륭한 조망을 확인할 길이 없다.

 

홀로 내정병봉 인증을 한다.

 

앞쪽으로 오늘 가야 할 낙남길의 대암산, 신정봉, 용지봉이 어슴푸레 가늠된다.

우중앙에 있는 날개봉과 비음산은 낙남길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우측 발아래로는 창원 중앙역이 아찔하게 내려다 보인다.

 

내정병봉 주변은 앉아서 경치를 보며 쉬어갈 수 있는 멋진 장소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아직 나 이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은 내정병봉을 홀로 두고, 낙남정맥을 이어간다.

 

돌아본 정병산 방향.

 

어느새 창원대학교가 우.후방으로 지나가 있다.

 

한장에 담아본 창원대학교 교정 모습.

 

 

체육시설이 설치된 길상사 갈림길을 지난다.

 

길상사 갈림길 이정표.

낙남길은 용추고개 방향이다.

 

 

앞쪽으로 뾰족한 무명봉이 막아서고,

 

그 우측으로는 낙남정맥에서 우측으로 떨어져 있는 날개봉이 뚜렷이 보인다.

 

 

우측 아래로 또 다른 길상사 방향 갈림길을 지난다.

 

 

이내 우곡사 갈림길도 지난다.

 

<우곡사(牛谷寺)>

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의 본시인 범어사의 말사로, 832년(신라 흥덕왕 7년) 무염선사가 창건하고 이곳에서 후학을 길렀다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우곡사 갈림길을 지나 무명봉을 오르니 우측으로 날개봉이 보인다.

이제서야 날개봉이 낙남정맥에서 완전히 따로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 후방으로는 창원 중앙역이 살짝 내려다 보인다.

 

 

용추고개 건너편으로, 415봉 오름 계단길이 드러나 보인다.

 

 

용추고개 도착.

 

<용추고개((龍湫嶺)>

경남 창원시 의창구 용동과 김해시 진례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용추골의 배후에 있다고 해서 용추고개라고 부른다. 창원에서 이 고개를 넘어오면, 동읍 단계마을의 우곡사(牛谷寺)에 이르게 된다. 또한 용동에서는 용추계곡을 따라 진례산성(進禮山城)을 거쳐 진례 방면으로도 교통이 가능하다. 최근 용추계곡 입구에서 통일신라시대의 도로가 발굴되어, 이 길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천년이 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비음산과 정병산(전단산) 사이에 발달한 고개인 용추고개는 현재 창원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행로가 되었다.

우리가 가진 지도에는 앞쪽 진례산성 능선의 415봉과 475봉 사이의 안부를 용추고개로 표시하고 있다. 주변의 형세를 보건데, 이곳 이정목의 표시가 맞는 듯 하고, 지도의 표기가 잘못된 것으로 짐작된다.

 

용추고개 이정표.

 

 

용추고개를 지나 무명봉 위로 올라서니, 좌전방으로 가야 할 475봉쯤이 보이고...

 

 

이내 또 다른 우곡사 갈림길이 있는 안부를 지난다.

 

우곡사 갈림길 이정표.

 

 

잠시의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415봉 정상에 도착한다.

이 봉우리에서 좌측 능선은 진영읍 쪽 노티재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낙남정맥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소나무숲 사이로 이어진 능선길이 얕은 안부를 지나고,

 

 

잠시 오름길을 올라서면 475봉에 도착하여,

이정표의 대암산 방향인 좌측으로 꺾어서 진행한다.

 

 

등로는 계속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지난주 백두들도 이 길을 상쾌한 기분으로 걸었을 듯...

 

 

앞쪽으로 가야 할 505봉이 다가오고,

 

뒤쪽으로는 내정병산이 멀어지고 있다.

 

 

무명봉을 하나 지나서 오르면, 505봉쯤으로 짐작되는 봉우리 정상부에 도착한다.

 

좌측 진례면 신안리 방향의 지능선이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진례면 송정리의 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505봉 정상부에는 '벌거숭이 벚꽃동산'이라 표시된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가야 할 비음산 갈림길이 있는 517봉을 가늠해 보고,

 

 

508봉을 살짝 내려서는데, 좌측으로 진례산성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등로를 따라 이어진다.

 

편안해 보이는 침대형 의자도 설치되어 있다.

 

 

잠시 완만한 오름길을 이어가다 보면,

'진례산성 동문' 삼거리에 도착한다.

 

<창원진례산성 동문지(昌原進禮山城 東門址)>

진례산성은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으로, 성벽은 주변에서 쉽게 구해지는 할석으로 지세(地勢)를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하였다. 성벽의 기초는 구릉을 의지하여 바로 쌓아 올린 육축(陸築)이며, 성벽은 구릉의 경사도에 따라 내탁식(內托式)과 협축식(俠築式)을 혼용하였다. 시설물의 구축에 있어서도 지형적 조건에 맞추어, 구릉 사이에 낮게 형성된 고개에는 문지(門址)를, 능선의 꺾임 부분에는 치(雉)를 조영하였고, 이 밖에 능선의 고지와 군데군데 드러난 암벽은 망대(望臺) 등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은 제4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2구간의 동문지는 성벽 보존이 가장 양호한 곳으로 다른 구간에 비해 경사가 완만하다. 동문지는 성벽에서 김해시 진례로 통하는 고개에 위치해 있으며, 양쪽으로 거대한 자연 암괴가 포진해 있다.

 

진례산성 동문지 안내판.

 

 

517봉 오름길 나무계단 옆으로 전망대가 있지만,

홀로하는 산행이고 조망도 신통치 않아 사진만 남기고 스쳐지나,

 

나무계단을 따라 515봉을 향한다.

 

 

515봉 비음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비음산은 낙남길에서 우측으로 비켜나 있으나 정상에서의 조망이 빼어나서 꼭 들리려고 마음먹었는데, 주변이 연무로 덮여 있어서 별반 볼 게 없다고 판단하고, 그냥 좌틀하여 낙남길로 들어선다.

 

비음산 갈림길 이정표.

이곳에서 비음산이 400m 떨어져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지난주 백두들은 비음산 정상에서 멋진 조망을 즐겼었다.

 

<비음산(飛音山, 510m)>

경남 창원시(昌原市) 성산구 토월동(吐月洞)과 김해시(金海市) 진례면(進禮面) 사이에 있는 산이다. 산 정상부에는 능선을 따라 쌓은, 포곡식 석축산성인 진례산성이 있어, 오래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진례산성은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성의 둘레는 약 4km로,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나 동벽의 일부 구간(높이 157cm, 너비 77cm)이 남아있다. 북서쪽으로는 정병산(精兵山, 567m)과 맥이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대암산(大岩山, 674.6m)과 불모산(佛母山, 801.7m)으로 이어진다. 창원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곳곳에 진달래가 산재하고, 정상부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매년 4월경에 비음산 진례산성 진달래 축제가 열린다.

 

남서쪽 장복산을 배경으로.

 

비금산 내림길에 바라본 가야 할 낙남능선.

 

 

비음산 갈림길에서 2분여 만에 진례산성 안내판이 있는 518봉에 도착한다.

 

<진례산성(進禮山城)>

경남 기념물 128호. 창원시 토월동과 김해시 진례면의 경계인 비음산 정상 부근에 있다. 성의 형식은 능선에서 골짜기를 안고 도는 포곡식이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를 관측하고 성을 지키기에 안성맞춤이다. 둘레가 약 4km로 규모가 꽤 컸으나, 대부분 붕괴되고 동남쪽에 일부만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김해읍지, 여지집성에는 가야시대 때 축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창원시 토월동과 김해시 진례면의 경계인 비음산(飛音山) 정상부분에 있는 이 산성은, 가야시대에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석으로 쌓은 성의 높이는 1~2m이며, 폭은 1m 내외이다. 성터 주위로 산림이 우거져 성의 시설물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성문 터 세곳이 확인되었다. 신증독국여지승람과 김해읍지에는 "김해부의 서쪽 약26km 지점에 진례산성이 있는데 옛터만 남아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시대에 김인광으로 하여금 진례의 군사를 맡게 하였다."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 또 여지집성에는 "수로왕 때, 한 왕자를 봉하여 진례성의 왕이 되게 하였으며, 토성과 천문을 관측하는 첨성재가 있었는데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볼 때, 이 성은 가야시대에 쌓은 것이라 추정된다.

 

 

또 2분여 만에 청라봉 정상쯤에 도착한다.

돌아보니 비음산 정상쯤의 정자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의 아파트 단지들이 조망된다.

 

남산치 건너편으로는 가야 할 낙남능선이 다시금 구름 바다로 침잠하고 있다.

 

<청라봉(靑羅峯, 517m)>

청라봉은 비음산 옆 '비상'이라는 큰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청라봉이라 이름 지어진지는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지난주 백두들은 이런 조망을 즐겼나 보다!

청라봉에서 바라본 대암산 방향의 낙남정맥.

 

청라봉에서 바라본, 장복산과 팔용산 방향 파노라마.

 

 

청라봉 절벽 내림길을 나무계단을 통해 내려오면서 본 남산치와 대암산 방향.

 

 

가파른 나무계단을 두어 번 내려서니 헬기장이 나타나고,

 

 

이내 남산재에 도착한다.

 

<남산재/남산치(南山峙)>

경상남도 창원시의 동쪽 비음산과 대암산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창원시 성산구 사파정동과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를 연결한다. 『조선지지자료』에 따르면, 창원(마산)의 상남면 사파정(沙巴丁)에 비음산과 비음령(飛音嶺)이 있으며, 한글로 각각 '나름산'과 '나름재'라고 병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남산치'는 비음산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짐작된다. 즉 비음산은 '나르미' 혹은 '날음재'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또한 비음산 남쪽의 고개인 비음령이 '나름재→남산재→남산치'로 변화된 것이다. 그리고『조선지형도』의 창원 상남면과 김해 진례면 사이에 비음령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어로 'ナルウムケ-'라 쓰였는데 곧 '나름고개'이다.

 

 

남산치 우측 아래로 쉼터도 보이는데,

 

개월촌 등산객 웰빙 쉼터라는 표지판에, 사파정동의 유래가 적혀 있다.

 

 

남산치에서 가파른 된비탈을 치고 올라 암릉을 지나 전망바위에 서면, 가야 할 대암산과 신정봉, 용지봉이 조망된다.

 

 

잠시 후 내대암봉(550m)에 도착한다.

 

 

내대암봉의 암릉 경고판 우측 나무계단으로 내려서서 암봉을 우회하여 내려서면,

 

 

좌측으로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의 아파트 단지들이 내려다 보이고,

 

가야 할 608봉 방향으로 암릉도 보인다.

 

 

잠시 후, 안내판이 있는 장군바위에 도착한다.

 

안내판에는 장군의 기개를 엿볼 수 있어서 장군바위라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닮아서 엄지바위라 부르기도 한다고 적혀 있다.

 

 

장군바위를 지나 암릉 위 전망바위에 올라서면 지나온 정병산 방향의 낙남능선이 한눈에 조망되는데,

희뿌연 연무가 뒤덮고 있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주 백두들의 산행에서는...

 

가야 할 대암산 방향으로는 암릉이 조금 더 이어진다.

 

 

암릉길을 따라 올라서면, 앞쪽으로 대암산 정상이 불쑥 나타난다.

 

돌아본 정병산 방향.

 

 

대암산 정상 이정표.

 

<대암산(大岩山, 670m)>

대암산은 경상남도 창원시 대방동과 삼정자동의 동쪽에 걸쳐 있는 산이다. 대암산이란 명칭은 근년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북쪽으로는 남산치를 지나 비음산(飛音山)과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낙남정간(洛南正幹)의 분기점인 용지봉(龍池峰, 일명 용제봉)으로 연결된다. 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릉에는 기반암이 드러난 곳이 많다. 정상부는 거친 바위산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아래의 비탈은 임야로 되어 있다. 정상부에는 표지석과 삼각점 그리고 쉼터와 정자가 있으며, 대암산 정상에서 같은 높이로 이어지는 100m가량의 남쪽 자락에 일제강점기 때 사용하였던 방공포 기지 흔적이 남아 있다.

 

 

일주일 전 백두들이 찍은 대암산 정상 전경.

 

정상 남쪽으로 쉼터와 방공포 진지 흔적이 있다.

 

가야 할 신정봉과 용지봉 방향.

 

대암산 정상석 주변에는, 창원의 모 회사 단체 등산객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범접이 어렵다.

 

대암산 정상 쉼터에서 쉼을 하며 인증을 대신한다.

 

지난주 백두들도 쉼터에서 배낭털이를 하며 쉼을 했었던 듯...

 

대암산 방공포 진지 안에도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다과를 나누고 있다.

 

백두들도 이시간쯤에 대공포 진지를 통과한 듯.

 

창원시 삼정자동 방향의 지능선 조망.

 

대암산 정상부를 돌아보고, 용지봉을 향한다.

 

 

우측으로 창원시 대방동 방향의 갈림길이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난다.

 

지난주 백두들이 이곳을 지날 때는 불모산 방향의 신낙남정맥 능선이 시원스레 조망되었던 듯하다.

1대간9정맥 종주를 마치고 불모산이 있는 신낙남정맥도 걸어보리라 다짐한다.

 

가야 할 낙남길 방향으로, 신정봉과 용지봉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대암산과 신정봉 사이의 안부에 내려서니,

좌측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의 평지마을로 이어지는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돌아본 대암산 방향.

(사진의 봉우리 표시가 잘못되었다. 대암산을 신정봉으로 착오 : 704봉 ->674봉)

 

 

낙남정맥 길은 돌탑들이 세워져 있는 신정봉(704m)을 지난다.

 

<신정봉(704m)>

별도의 정상석은 없고 주변의 나무들로 조망도 없다. 봉우리 주변에는 10여 개의 돌탑이 축조되어 있다.

 

신정봉에서 돌아본 대암산 방향.

 

 

신정봉을 뒤로하면, 좌전방으로 진례면 신월리 방향의 지능선이 분기되는 봉우리가 막아서고,

우측으로는 가야 할 용지봉도 보인다.

 

 

신월리 방향 능선 갈림길 봉우리를 지나며 바라본 용지봉 방향의 낙남능선.

 

 

나무벤치가 있는 쉼터를 지나고...

 

 

송전탑도 지나면...

 

 

우측으로 창원시 삼정자동 방향의, 갈림길 삼거리를 지난다.

 

 

급하지 않은 오름길을 따라 오르면, 용지봉 정상에 도착한다.

이정목에는 용지봉이라 적어놓고, 정상석에는 용제봉이라 써 놓았다.

 

<용지봉(龍池峰)/용제봉(龍蹄峰), 744m)>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동과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걸쳐있는 산이다. 북쪽으로는 대암산(大岩山, 670m)과 이어지고, 남쪽은 상점령(上點嶺)을 지나 불모산(佛母山 801.7m)과 이어지는 낙남정맥의 갈림길이다. 용지봉의 원래 이름은 용제봉(龍祭峰)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김해도호부 단묘에 “용제봉은 김해도호부의 서쪽 불모산에 있으며 50리이다. 기우단을 두었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용제봉은 기우제(祈雨祭)와 관련하여 유래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는 용제산(龍蹄山) 또는 용제봉(龍蹄峰)으로 나온다. 제(祭)가 제(蹄, 굽 제)로 바뀐 배경은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용제(龍祭)’와 ‘용제(龍蹄)’는 이름처럼 상이한 기원설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용제(龍祭)는 무제와 관련되고, 용제(龍蹄)는 진례면 무송리 용소의 용 승천설화와 관련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용제봉이 지금의 이름인 용지봉으로 된 것은, 자음 변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용지봉은 창원·김해 지역의 등산객들이 즐겨찾는 대표적인 산행코스다. 낙남정맥 줄기가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꺾여 김해에 이르고, 그 기맥(신낙남정맥)은 남쪽으로 불모산, 웅산(熊山, 703m)을 거쳐 해안 산지로 이어진다. 정상에는 용지봉이라고 새긴 정상석과 김해에서 세운 용제봉 유래비가 있다. 또한 정상의 동쪽 비탈에는 김해시에서 세운 용지정이란 누각이 있고, 정상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약 8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장유암이 있다.

 

 

용제봉 정상에서도 어김없이 인증을 남긴다.

 

비(雨)를 관장하는 용에게 기우제를 지내는 봉우리라 하여 용제봉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유래도...

 

용제봉에서 걸어온 낙남정맥도 돌아보고,

 

남쪽 불모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신낙남정맥 능선도 가늠해 본다.

언젠가 저 능선도 밟아 보겠지...

 

용지봉에서 냉정고개 방향으로 내려서는 곳의 팔각정(용지정) 정자도 담는다.

 

다시 한번 용지봉 정상 전경을 담고,

 

 

용지정에서 쉼을 하며 가야 할 냉정고개 방향의 낙남길도 담는다.

우측에 보이는 471봉에서 좌측으로 꺾어 내려서면, 오늘의 날머리인 냉정고개다.

 

 

팔각정에서의 짧은 쉼을 뒤로하고 용지봉을 내려선다.

 

 

장유사 갈림길을 지난다.

용지봉에서부터는 이정표의 '전경부대'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돌아본 용지봉 방향.

어느새 용지봉이 저만치 멀어져 있다.

 

 

앞쪽으로 가야 할 504봉이 성큼 다가서더니,

 

 

용지봉과 504봉 안부에 있는 임도를 지나서 오르면...

 

 

자유분방하게 자란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는 504봉 정상을 지난다.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김해시 진례면을 가로지르는 남해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오늘의 날머리인 냉정고개도 시야에 들어온다.

 

 

장유 체육공원 갈림길을 지나자...

 

 

이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471봉 정상을 지나게 된다.

 

 

471봉을 지나자, 최근에 설치된 송전탑 옆으로 이어진 수레길이 나타나고,

 

능선을 따라 이어진 수레길을 잠시 따르자,

 

 

직좌틀하여 냉정고개로 내려서는 능선분기점에 도착한다.

직진 방향 능선길은 통나무로 막아 놓았고, 좌틀하여 내려가는 등로에 표지기들이 걸려 있어서 알바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직좌틀하여 냉정고개로 향하는 내림길로 들어서고...

 

 

잠시 동안 고도를 급하게 떨어뜨리더니,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이제 시멘트 포장임도를 따라 내려서기만 하면 냉정고개다.

 

 

시멘트 포장임도는 전경부대 입구로 통하는 도로와 만나, 좌측 아래로 진행한다.

 

우측에는 전경부대 입구가 있다.

 

 

전경부대 입구에서 잠시 내려서면 냉정고개에 도착한다.

 

<냉정고개(冷井峙, 90m)>

냉정고개(冷井峙)는 김해시 진례면 산본리에 있으며, 김해시 장유에서 진례를 넘는 2차선 1042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진례면 경계 표지석과 용지봉 산행 안내도가 있다.

냉정(冷井) 마을은, 옛날부터 김해에서 서부경남으로 가는 요지(要地)로서, 장유면(長有面), 진례면(進禮面), 주촌면(酒村面)의 경계가 되는 마을이다. 지금은 남해고속도로 북부지선과 서부지선이 갈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에 의하면, 냉천원(冷泉院)이 김해도호부에서 서쪽으로 30리에 있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냉천원이 김해도호부에서 서쪽으로 30리에 있었는데, 생법역(省法驛)으로 옮겨 설치하였다고 한다. 냉천원이 있던 곳이 냉정 마을인데, 지금은 ‘찬물등(嶝)’이라고 부른다. 옛날부터 이곳에 ‘찬물샘’이 있었기 때문에, 벼슬아치나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을 설치하였고,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었던 것이다. ‘찬물샘’은 전경부대 입구 부근 계곡 안에 ‘정(井)’자 모양으로 쌓은 돌샘이었는데, 지금은 토사에 묻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냉천원의 ‘천(泉)’과 냉정마을의 ‘정(井)’은 같은 뜻이기 때문에, 어느 때인가부터 ‘냉천’ 대신에 ‘냉정’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9월 읍면 경계 조정으로 인하여, 주촌 냉정과 장유 냉정으로 나뉘었다.

 

 

 

냉정고개 날머리에는 용지봉 산행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1042번 지방도가 지나는 냉정고개는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낙남정맥은 1042번 지방도를 건너 반대편 능선으로 이어진다.

 

지난주 백두들도 이곳에서 산행을 마치며, 길가의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따 먹었나 보다.

 

 

다음 산행은, 냉정고개에서 낙남능선 남쪽 마을로 우회하여 진행할 예정이라,

시간도 넉넉하고 하여, 우회하게 될 부분의 낙남길이 어떻게 이어지는 오늘 답사할 요량으로,

1042번 지방도를 건너 절개지로 오른다.

 

냉정고개 들머리인 절개지 위로 올라서 돌아본 471봉 방향의 낙남능선.

 

 

절개지를 따라 능선으로 오르니, 잠시 동안 수레길이 이어지고..

 

 

이내 따르던 수레길은 희미한 족적 속으로 사라지더니, 빼곡한 잔가지들이 얽혀 있는 숲으로 족적이 이어진다.

 

 

한참을 숲에서 헤매다가 겨우 남해고속도로 절개지 위에 서게 되는데,

낙남정맥은 아래쪽 남해고속도로를 건너, 반대편 능선으로 이어지게 된다.

 

 

절개지 위 배수로에 내려서서 우측 방향으로 배수로를 따라 내려가면...

 

 

남해고속도로 노견에 내려서게 된다.

 

남해고속도로 노견을 따라 부산 방향으로 조금 진행한다.

 

돌아본 남해고속도로와 건너편 낙남능선을 확인하고...

 

남해고속도로를 건너편의 다음 구간 가야 할 낙남능선도 가늠해 본다.

 

 

고속도로를 따라 부산 방향으로 100여 미터 이동하다가 좌측 아래로 내려서면,

냉정고개에서 마을을 거처, 남해고속도로를 통과하는 지하통로로 이어지는 도로에 서게 된다.

 

돌아본 냉정고개 방향.

 

다음 구간 지나게 될 남해고속도로 지하통로.

 

 

다시 냉정고개로 돌아 나와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고...

 

 

김해시 장유로 이동하여,

묻은 먼지를 닦고, 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운다.

 

지난주 백두들은, '봄내'라는 식당에서 뒤풀이를 했나 보다.

 

메뉴는 불분명하지만, 내가 먹은 비빔밥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ㅋㅋ

 

 

장유에서 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백두들은 뒤풀이가 부족했던지,

선산휴게소에서 '~~~~ 삽시다!'를 한번 더 외쳤던 것 같다.

 

 

마산과 창원은 바닷가라 산이 야트막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무박 산행으로, 무학산과 천주산 그리고 정병산에서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구간만도 세번씩이나 되는 우람한 산줄기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홀로 한 산행이라 아기자기한 재미는 없었지만,

모처럼 긴 산행을 혼자서 걷고 나니

다시금 백두들의 소중함도 되새기게 되었다.

함께 해 줘서 고마워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