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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설악산 저항령 단풍산행 : 저항골의 풍광과 길골의 단풍에 흠뼉 젖었던 단풍산행

by 재희다 2017. 10. 15.

산 행 지 : 설악산 (강원도 속초시, 인제군)

산 행 일 : 2017. 10. 14.(토)

산행코스 : 설악동 탐방지원센터 ~ 저항령계곡 ~ 저항골 ~ 저항령 ~ 길골 ~ 백담사 ~ 백담 탐방지원센터

              (15km, 9시간)

산행참가 : 20백두.

 

<산행지도>

 

여행을 계획하며 출발일이 다가오게 되면,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 마음이 설레게 된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제한되고 적을수록 설렘은 커지고 심지어는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설악산 단풍산행을 계획하면서 예쁘게 물든 단풍은 보고 싶고, 수많은 행락객들로부터는 떨어져서 우리들만의 호젓한 단풍산행 코스를 찾다 보니, 설악산의 길골이 거론되었고, 길골 단풍산행을 위한 최단 코스를 떠올리다 보니 저항령계곡을 따라 저항령을 넘으면 좋을 듯 했다. 물론 그간 백두대간 산행에서 몇차례 지나쳤던 저항령에서 언젠가는 저항령계곡 산행을 염두에 두었던 기억도 이번 코스를 계획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설악동에서 설악산으로 향하다가 보면, 설악산 주능선이 한껏 고도를 낮춰 움푹 들어간 안부가 저항령이어서 별반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코스를 계획하며 접한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등로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무했으며, 그냥 계곡을 좌우로 넘나들며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전부이다시피 했다. 정규 등산로가 닫힌 지 거의 20여 년쯤이 되어가다 보니 등로의 흔적은 사라지고, 더욱이나 계곡과 너덜지대가 이어지다 보니 희미한 흔적조차 찾기가 어려운 게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네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듯, 이번 산행 또한 도전의 한 페이지일 뿐이라 여기며, 등로를 놓치면 고생이야 하겠지만 위험하면 돌아 나올 것이고, 위험하지만 않으면 어렵사리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으리가 기대하며, 평소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설악동까지 족히 5시간은 걸렸던 듯한데, 2시간 남짓만에 버스가 설악동에 도착했다. 렌턴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출발시각을 느지막이 잡아 놓은 탓에, 버스를 되돌려 집단시설지구로 돌아 나와 2시간 남짓의 쪽잠을 청한 후, 5시에 산행 준비를 하고 매표소 앞으로 향한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설악동 탐방지원센터 앞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산행을 시작하는데,

새벽시간임에도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찼고, 산객들은 이미 출발하여 떠난 듯, 매표소 주변은 다소 한산한 분위기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지는 벌써 10여 년쯤이나 되는데, 이런 야밤에 문화재를 볼 일이 없음에도 여전히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한다. 스님들은 산문 밖으로 나올 때 돈을 내지 않는데, 우리는 산문으로 들 때 돈을 내야 하는 게 불합리하다며 어느 분이 불평을 토로한다. 사찰은 신도들의 성의로 운영하는 게 맞다고 맞장구를 쳐 보지만, '세상일이 내 뜻대로 굴러가겠는가'라며 불평을 접을 밖에는!

 

 

신흥교를 건너는데, 앞쪽으로 설악산 주능선의 움푹 들어간 저항령이 어슴프레 가늠된다.

여기서 보면 그리 어렵잖게 갈 수 있을 듯한데...ㅉㅉ

 

 

신흥교를 건너 신작로 수준의 등로를 따르다가, 설운교가 가까운 지점에서 렌턴을 끄고 우측 숲속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찾아보지만, 저항령계곡으로 들어서는 들머리는 보이지를 않는다. 들머리가 있을것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저항령 오름길의 난관이 예상되며 걱정이 밀려온다.

 

저항령계곡 들머리 찾기를 포기하고, 설원교 직전쯤에서 좌측 숲으로 들어서며 저항령을 향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등로 찾기는 아예 포기하고는 계곡에서 멀어지지 않게만 길을 잡아, 그냥 발길이 가는 데로 계곡 좌측을 따라 오르다가 보니 가끔씩 희미한 등로의 흔적도 보인다.

 

 

어느새 어둠이 가시고 좌측으로 저항령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들린다.

 

 

희미한 족적을 쫓아 작은황새골 입구로 접근하다가,

계속 족적을 따르다가는 작은황새골로 들어설까 저어되어 다시금 좌측의 저항령계곡으로 내려서는데,

계곡 아래쪽으로 권금성으로 이어지는 봉화대릿지 봉우리들이 보인다.

 

 

작은황새골 입구쯤에서 좌측으로 계곡을 건넌 후, 다시 계곡을 따라 오른다.

 

 

계곡 상류 방향인데 족적을 놓치고 그냥 계곡을 따라 오른다.

 

 

사람들이 종종 설악산과 지리산을 비교하여, 어느 산이 더 좋으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두 산을 모두 가 본 사람이라면, 그 질문이 어린아이에게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라는 질문만큼이나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걸 안다. 보통 설악산은 바위가 많고 험준하여 아버지의 이미지에 비유되고, 반대로 지리산은 육산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비유되곤 한다. 웅장한 바위 그리고 갖가지의 형태를 한 기암괴석과 험준한 산세, 시원한 폭포수, 여기저기 위험 요소가 산재하고 있는 곳이 바로 설악산이다. 아버지의 손처럼 거칠고, 아버지의 팔뚝처럼 울퉁불퉁하고, 아버지의 주름살만큼이나 골이 깊은 곳이 설악산이라면, 지리산은 골이 깊되 조용하고, 산은 웅장하지만 기암괴석이나 바위는 드물고,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급경사 길이 없어 유유자적 여유를 갖고 산행하는 산이다. 보고 즐기려는 분께는 설악산을 추천하고 싶고, 사색을 하거나 무언가 새로운 영감을 얻고 싶다면 지리산을 추천하고 싶다.

최근 지리산의 여러 지능선들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다가 오늘 설악산에 들어보니, 확연히 다른 두 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걷는 이곳은 지리산의 이미지와 많이 닮은 듯도 하다. 저항령계곡을 따라 저항령에 올랐다가, 길골을 따라 내려서면서 잠시 나타나는 너덜지대를 빼고는 암릉구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급경사의 험준한 길도 없고, 계단이나 난간 심지어 밧줄조차도 하나 없는 것이 지리산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고개를 들어 좌우를 보면 지리산이 아니고 설악산이구나를 실감하지만!

 

 

후미와의 간격이 멀어지는 듯하여, 잠시 기다리는 사이에 예쁜 투구꽃을 담아 본다.

 

 

황새골 입구를 조금 지나는 위치의 등로 모습인데, 길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작은 돌이 두 개 포개어져 있거나, 자연스럽지 않게 세워진 돌이 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일 뿐이다.

 

 

문바위골 입구 직전쯤으로 없는 듯이 흐르는 맑은 물이 가득한 여울가에서,

 

따스한 햇살을 쬐며 속삭이듯 들려오는 물소리를 감상하며 아침식사를 한다.

 

쌀쌀한 날씨에도 완만한 계곡 오름길이 이어져서 그런지, 한기를 느끼지 않고 느긋한 아침식사를 즐긴다.

 

 

식사를 마치고 계곡 좌측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가끔씩 나타나는 돌탑 표시를 따라 좌측 사면으로 오르다가, 경사가 다소 가팔라지며 계곡과 멀어진다는 느낌에 핸드폰 오프라인 지도를 꺼내 보니 좌측의 세존봉 방향으로 오르고 있다. 되돌아 내려갈까 하다가, 우측 저항령계곡 방향 사면으로 트레버스를 시작한다.

 

 

세존봉 방향에서 흘러내린 한두 개의 지계곡을 지나고,

 

우측 방향으로 사면을 따라 한참을 트레버스하여 진행한 끝에,

 

다시금 저항령계곡 범잔바위골 입구 쯤에 선다.

 

범잔바위골 입구 저항령계곡 하류 방향.

 

맑은 계류가 바위를 타고 수많은 폭포수들을 만들며 흘러내리고 있다.

 

 

계곡을 우측으로 건너니 다시금 희미한 족적이 이어지고,

 

길 흔적을 다시 찾은 안도감에 잠시 쉼을 하며 여유를 찾는다.

 

 

작은 돌을 포개어 놓은 흔적을 쫓아서 계곡을 따라 오르면,

 

앞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저항봉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저항령계곡의 상류 부분인 용사태골이 시작되는 위치쯤인 듯하다.

 

우측 저항봉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의 암봉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혹자는 저 봉우리를 걸레봉이라 부르는데 아마도 마등령에서 저항령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의 수많은 암봉과 암릉을 지나면서 걸레가 된다고 하여 그리 부르는 듯하다.

 

늘 말없이 미소만 보내시는 석 여사님.

 

'인생은 도전이다'를 몸소 실천하시는 김 여사님.

 

급할 것 없는 산행인지라 편안한 쉼을 하며 주변 절경에 젖어 본다.

 

 

회장님의 대문사진 바꾸자는 제안에 모두들 '백두!'를 힘차게 외쳐 본다.

 

배경도 인물도 모두 최고다!

 

 

느긋한 쉼을 뒤로하고 커다란 바위들을 넘고 넘어 저항령으로 향한다.

 

 

쓰러지는 거대한 나무에 맞아서 바위가 둘로 갈라졌다.

설악산의 나무들은 바위도 부숴버릴 정도로 강한가 보다!

 

 

벼락을 맞아 쓰러지는 거대한 나무가 주변의 비슷한 크기의 다른 나무를 정통으로 내려쳤다.

고의로 만들려고 해도 절대로 이렇게 되지는 않을 듯한데, 참으로 자연은 상상도 못 할 일을 저질러 놓았다.

 

 

설악산에 거인이 살았었는지, 거대한 바위돌로 제방을 쌓아 놓았다.

 

 

이정표 역할을 하는 포개진 돌 앞에서 잠시 쉼을 하며 후미를 기다려서 함께 출발한다.

 

 

'엇 ~~ ㅎㅇㅠ !'

앞서 가던 권법사님이 밟은 돌이 구르는 바람에 계곡으로 굴렀는데,

다행히 매고 있던 배낭이 머리가 바위에 부딪치는 것을 막아줘서 별다른 부상은 없다.

뒤따르던 천보형이 '백두산우회 운빨은 권형님이 모두 사용하신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고래는 물에 빠져 죽고,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산꾼들은 산에서 죽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세상일은 모두 시와 때가 있는 법.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서두르지 말자.

 

지금 같은 비탐구간을 가다가 국공파와 마주치면,

지갑 속의 권력으로 해결하면 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사고는

그 무엇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세월은 지금도 빠르게 흐르고,

그 세월의 빠른 흐름에 우리네 몸도 조금씩 뜯겨져 나갈 것이다.

늘 도전은 하되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세월에 뜯겨져 나간 우리네 몸을 살피고 또 살펴서,

때가 될 때까지 꼭 꼭 잘 간수하자!

 

 

희미한 족적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어서 한참 동안을 무리없이 진행한다.

 

 

우측 황철봉 쪽의 올려다본 암봉 모습.

 

저항봉과 백두대간 능선.

 

살짝 당겨본 좌측 저항봉(걸레봉) 모습.

 

백두대간 능선의 암봉들 모습.

 

당겨본 대간 능선의 암봉들.

 

 

우측 황철봉 쪽의 암봉이 단풍 사이로 보인다.

 

이제 주변의 나뭇잎들은 온통 형형색색의 물감을 뒤집어쓰고 있다.

 

흙으로 돌아가는 고사목의 저항을 넘고 있는 창병씨.

 

저항령골 상단부인 용사태골로 접어들자 아래쪽과는 다르게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드디어 마의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사실 저항령계곡 전체가 너덜지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지니만, 저항령계곡의 바위는 그나마 둥글둥글한 모양인데 반해 너덜지대의 바위는 스치기만 해도 상처를 입을 정도로 날카로워서 조심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렇다 할 등산로는 없었다. 잠시 길인가 싶으면 금방 없어지곤 한다. 이럴 때는 지도를 보며 방향을 찾아 직감으로 올라가는 것이 더 정확하고 몸도 편하다. 이곳부터 나타나는 두어 군데의 너덜지대를 더 지나면 저항령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평소 산행에서 너덜지대를 만나면 마음이 편치를 않았는데, 오늘은 저항령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너덜지대가 반갑기만 하다.

 

너덜지대를 오르는 백두들.

 

뒤쪽으로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 너덜지대에서 돌아본 화채봉 방향.

 

 

너덜지대에서 설악산의 조망을 즐기며 쉼을 하는 백두들.

 

누구는 지난해 다녀온 이탈리아의 돌로미테 보다 좋다고 하고,

누구는 올여름 다녀온 남미의 파타고니아 보다 좋다고 하고,

누구는 몇 해 전 다녀온 캐나다의 로키 보다 좋다고 했다!

 

 

돌아본 저항령계곡 조망.

 

저항봉 너덜지대를 배경으로.

 

저항령계곡이 동해 바다까지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다.

 

황철봉 방향의 암봉 모습.

 

저항령계곡 너덜지대를 지나오는 백두들.

 

풍광에 정신을 빼앗기면 바위 너덜에 몸을 빼앗기는디!

 

 

이정표 역할을 하는 커다란 돌탑 옆에서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최고의 조망을 감상할 준비를 한다.

 

모처럼 회장님의 모습도 담아본다.

 

 

너덜에서 하염없이 조망을 즐기던 백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저항령을 향한다.

 

너덜지대 바위틈에서 전선이 연결된 스티로폼 상자를 발견하고는 바짝 긴장을 하지만!

 

 

잠시 전에 쉬었던 너덜지대에서 위쪽으로 올랐어야 하는데 주계곡을 벗어나는 듯하여 좌측 너덜지대로 사력을 다해 건너왔다. 숲속은 미역줄기 덩굴이 엉켜있어서 죽을 고생을 하며 건너왔건만, 판단 미스였다.

 

그래도 황철봉 쪽 암봉들의 장쾌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헛수고는 아니었던 듯.

 

 

동해를 향해 곧장 뻗어있는 계곡을 보니 설악동 소공원에서 올려다보던 곳이 여기였구나 싶다!

 

 

양쪽 너덜지대 사이의 숲으로 돌아 나오니 황철봉으로 오르는 뚜렷한 등로가 이어진다.

이제 다 왔다며 안도의 숨을 돌리자 주변의 단풍들이 눈에 들어오며 뒤따르던 박 점장님이 단풍 추억도 남긴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숲을 지나 저항령에 도착하는 백두들.

 

 

이곳 저항령은 마등령과 미시령 사이에 위치해 있다. 마등령에서 미시령 구간은 1/3 이상이 너덜지대로 이루어져 산행하기가 무척 어려우며, 특히 겨울철에는 돌이 미끄럽고, 돌과 돌 사이에 발이 빠져 크게 다칠 수도 있어서 날카로운 너덜지대의 바위는 여간 위험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저향령계곡을 통해 저항령으로 오르는 길의 너덜지대는 그리 크지 않아 30~50m 크기의 너덜지대를 몇 곳만 지나면 된다. 저항령 계곡은 기암괴석과 같은 빼어난 볼거리는 없지만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태양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원시림이 있어 좋은 곳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의 유일한 어려움은 길 찾기다. 길은 계곡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가며 나있고, 길이라고 해 보았자 아주 희미하여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는 길을 가면서도 그것이 길인지조차도 모를 정도다. 몇 곳의 너덜지대에서는 길 찾기가 더 어렵다. 돌 위에서는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너덜지대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곳은 바로 옆을 몇 번씩 지나쳐도 길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중간중간 고비마다 돌을 몇 개씩 쌓아 만들어 놓은 표시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신을 집중해서 계곡을 놓치지 않으며 돌탑 표식을 찾아 진행하면 그리 위험한 코스는 아니지 않나 생각된다.

사실 저항령계곡은 길은 있지만 길을 찾기 어렵다는 산행기의 충고를 새겨 들었고, 실제로 저항령계곡을 오르면서 거의 대부분을 길도 없는 곳을 헤매었던 것 같다. 대충 지도를 보고 계곡만 따라가면 저항령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인지, 길이 아니라고 해도 별로 당황스럽지 않았고, 굳이 길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던 듯하다. 다만 후답자를 위해 한마디만 한다면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산행하기를 권하고 싶다. 어두워지면 전혀 엉뚱한 지계곡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정식으로 제작된 지도에 적힌 소공원에서 저항령까지의 4시간을 완전히 무시하고, 6시간 만에 도착했다. 길 찾기의 어려움과 마음껏 여유를 부린 덕이다. 백두산우회 산행(생일 산행과 송년산행을 모두 포함)에서 이처럼 여유로운 산행은 처음이었던 듯하다. 앞으로의 우리 산행이 이렇게 진화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여기서의 진화는 발전이 아닌 적응이다)

 

 

'백두대간 저항령'이라는 표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마등령과 미시령 방향의 대간길은 예나 지금이나 뚜렷이 뚫려 있다.

 

저항령(低項嶺)은 설악산의 주능선인 북주능선(北主稜線)에 있는 해발 1100m의 고개이다. 북주능선은 주봉인 대청봉에서 북쪽으로 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신선봉~진부령으로 이어진다. 명칭은 원래 '길게 늘어진 고개'를 뜻하는 '늘으목' 또는 '늘목'에서 유래한 '늘목령'이라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표기해서 장항령(獐項嶺)이라 표기되었고, 변음되어 저항령이 되었다고 한다. 동쪽으로는 무명용사비가 있는 정고평(丁庫坪)에 닿아있고, 서쪽으로는 길골(路洞)을 거쳐 백담사로 이어진다.

 

저항령에 도착하는 전 여사님.

맘 졸이며 올라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저항령계곡에는 몸뚱이 하나 뉠만한 평지가 없었는데, 저항령에 올라서니 널찍한 평지가 자리하고 있다.

 

어느 산행기에서 본 기억으로는, 저항령의 정상은 수백 명이 모여서 밥을 먹어도 될 정도로 넓다고 표현했지만, 옛날 대간길에서 보았던 저항령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있다. 그때는 그저 상대적으로 평평해 보이는 풀숲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맨땅이 널찍하게 보일 정도로 쉼터로서의 역할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아무리 비탐구역이라지만 대간꾼들을 어찌 막을 수 있었겠는가. 이쯤에서 전 백두대간을 법정탐방로로 지정함이 옳지 않을까 묻고 싶다. 탈원전도 공론에 붙여 대충 억지춘양으로 결정하는데, 대간꾼들 몇 명을 패널로 모아서 결정하심이 어떨는지..ㅉㅉ

 

 

저항령에서도 마음껏 여유를 부리며,

 

배낭털이에 전념해 본다.

 

 

저항령에서 길골을 따라 백담사로 가는 길은 줄곳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내림길이며, 비교적 비탐구역임에도 등로가 뚜렷하다고 한다. 다만 길골이 설악산 단풍의 최고를 자랑한다고 알려져 있기에 혹여 있을지 모르는 국공파와의 단체 조우를 피하기 위해, 보성씨와 둘이서 먼저 출발하여 내려가기도 한다.

 

 

가뭄에도 잘 마르지 않는다는 저항샘을 지난다.

저항령과 가까워서 대간꾼이나 저항령 비박꾼들이 요긴하게 이용하는 곳이라 한다.

 

 

길골로 들어서니 울긋불긋 물든 단풍숲 사이로 등로가 뚜렷이 이어져 있고,

저항령계곡과는 달리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이고 경사도 완만하게 이어진다.

 

 

단풍과 햇살이 만들어낸 환상정인 그림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붉게 물든 단풍나무 잎사귀들이 숲을 불테우고 있다.

 

 

천천히 내려오기로 했던 본팀이 어느새 따라붙었다.

여유 있는 단풍놀이란 백두들에게는 맞지 않는 단어였던가 보다.

 

 

파아란 하늘 캔버스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며,

 

또한 원시의 숲에 가을이 오면 이런 풍경이구나를 절절히 느끼며,

 

길골 단풍의 이모저모를 카메라에 담고 또 담아본다.

 

 

사람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사람들의 산행 행태도 바꾸기가 어려워서 평소의 산행 속도를 늦추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닌 모양이다.

평소의 선두팀 몇 분을 먼저 내려보내고, 나는 본팀으로 합류하여 천천히 진행하기 한다.

 

길골은 반대쪽의 저항령골과는 많이 다르다. 계곡의 크기가 저항령골 보다 작고 수량도 적어 계곡가에 앉아서 발 담그고 도시락 까먹기에 참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길도 제법 뚜렷하고 경사도 완만하여 산행이 그리 어렵지 않다. 저항령계곡을 등산 코스로 정한 이유가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이유였다면, 길골을 하산 코스로 정한 이유는 원시림의 울창한 숲이 단풍으로 물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절정을 향해 달리는 길골의 단풍을 마음껏 즐기자는 예기는 울창한 길골의 원시림 속으로 사라지고, 목적지만을 향하는 백두들의 산행은 평소와 다름없이 이어진다.

 

햇살이 그려 놓은 길골 단풍 그림.

 

이 그림을 보려고 백두들은 그리도 그립게 울었나 보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몇 명의 산꾼들과 국공파 유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사이에,

뒤쪽에서 '엇~!'하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뒤따르던 오여사님이 미끄러져서 넘어지며 손목을 겹질렀다.

바닥이 닳은 등산화가 원인 인듯하지만,

잠시의 방심도 놓치지 않는 사고란 놈이 참으로 무섭다.

서여사님표 파스로 대충의 응급처리를 하고는 조심조심 산행을 이어간다.

 

 

단풍이 절정으로 치달으며 벌써 떨구어진 낙업들이 등로를 덮고 있어서 무척이나 미끄럽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길골의 수량도 늘어나며, 예쁜 물길이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소(沼)도 지난다.

 

 

큰나무와 어린나무가 함께 어울려진 원시의 숲을 언제 또 올까 싶어서, 숲의 모습을 담고 또 담는다.

 

단풍이 하나둘 흩날리는 길골 등로를 따라 내려서는 백두들.

 

 

떨어지는 낙엽이 되는 것을 마다치 않음은 진토로 변해 나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니,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듯 등로 주변의 쓰러진 나무와 낙엽들이 흙이 되어 새 생명을 키우는

자연의 섭리를 떠올리며 '지금'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뇌어 본다.

 

 

길골의 계류는 서두르지 않고 단풍으로 물든 숲과 어울려서 우리를 맞고 있다.

 

 

평소보다 잦은 쉼을 계속해 보지만, 아무래도 재사보다는 잿밥이 먼저다.

 

 

아래로 향할수록 단풍의 빛깔은 옅어지고,

 

길골을 흐르는 계류는 되려 제대로의 모양새를 갖춰 간다.

 

 

가끔씩 귀엽기만 한 작은 폭포들도 만나며,

 

길골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우리의 산행도 이어진다.

 

 

저항령계곡의 물도 없는 듯 맑았는데,

이곳 길골의 물도 본디의 무색을 유감없이 뽐낸다.

 

길골의 물길을 좌우로 넘나들며 계곡과 하나 되어 흐르는 백두들.

 

 

손목을 겹질린 오여사님은 계곡을 건너 다니는 게 조금은 부담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자그마한 폭포가 만들어 놓은 소에 몸을 담그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며,

 

길골의 유순한 물길을 따라 내려선다.

 

 

쓰러진 나무들이 등로를 막기도 하지만,

 

길골 등로는 걷기에 참으로 좋은 길이다!

 

 

덩굴이 휘감은 나무가 이채로웠던지 손 점장이 포즈를 잡아 본다.

 

 

삶의 흔적인지 격전의 흔적인지 모를 돌담도 지나고,

 

단풍숲이 덮고 있는 길골 계류로 내려서서,

 

마지막 쉼을 하며 배낭을 비운다.

 

산행 모습을 담느라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용현 형님도 잠시 카메라를 두고 여유를 즐긴다.

 

 

이제 백담사계곡이 가까워졌으니 국공파의 눈도 피해야겠고, 지도에서 다른 길을 찾아보지만 딱히 대안은 없다.

그냥 정면 도전하는 방법밖에는!

 

마지막 쉼을 뒤로하고 깊숙이 쌓이는 낙엽을 밟으며 길골 입구를 향한다.

 

 

길골 입구가 가까워지면서 주변이 평평한 평지로 바뀌며,

 

마지막으로 계류를 한번 더 건너고,

 

앞서간 창병씨의 'OK' 문자를 확인하고는,

 

길골 입구를 막아놓은 목책을 돌아나오며,

 

백담사 계곡 정규 등산로에 들어선다.

 

 

가을이 찾아들기 시작한 백담사 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계곡의 수많은 돌탑들이 백담사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수많은 행락객들과 섞여서 백담사로 내려선다.

 

 

백담사 탐방안내소 직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완전한 행락객의 면모를 과시한다.

 

백담사 탐방안내소를 지나는 백두들.

 

 

좌측 계곡 건너편으로 백담사가 보인다.

 

백담사로 내려서는 백두들.

 

 

계곡 건너편의 백담사를 둘러볼까 잠시 망설이다가,

 

멀찍이서 백담사의 외양 그림만 담고서는,

 

백담사에서 용대리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는데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몰라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정류장에는 용대리로 내려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계곡의 돌탑만큼이나 많다.

 

길게 늘어선 줄의 끝부분을 찾아가 줄을 서는데, 금새 뒤쪽으로 줄이 길게 이어진다.

 

거의 한 시간쯤을 기다려서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좁고 위험해 보이는 도로를 무섭게 내달리는 버스에서 가슴을 졸이다가,

용대리에 도착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인제군 원통에서 목감을 하고는 군인 전용 족발집에서,

 

 

아기자기한 족발보쌈 한상을 받아서,

 

올 가을 단풍산행의 기억을 소맥 한잔에 풀어서 들이킨다.

 

도전하는 백두들이 자랑스럽다.

우리의 도전이 오래오래 계속될 수 있도록

늘 준비하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