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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지리산 태극유람 04차(뱀사골~음정) : 함박골 따라 반야봉을 오르며 본 실비단폭포.묘향대.천상화원

by 재희다 2017. 9. 10.

 

산 행 지 : 지리산(전남 구례군)

산 행 일 : 2017. 09. 09.(토)

산행코스 : 반선매표소~뱀사골~함박골~실비단폭포~묘향대~반야봉~삼도봉~화개재~토끼봉~운봉무덤~명선봉

              ~연하천대피소~삼각봉갈림길~별바위등능선~음정마을 (23.6km)

산행참가 : 18백두.

 

<산행지도>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단행함으로써 확실한 핵보유를 세계에 천명했다. 이로 인해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제 논의가 시작되고 한반도 안보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증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나라의 선택지는 뭐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는 상황이다. 제래식 무기와는 달리 핵과 같은 대량살상 무기는 일순간에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대응은 오직 동시 핵보유라는 한 가지 대응책뿐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대개가 동의하는 사실임에도, 이의 실행을 놓고는 소모적인 논란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에 대한 위협을 일순간이라도 도외시하거나 외면하는 순간에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개인사익 추구라는 작은 장막으로 가려버리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핵으로 위협을 하든, 위정자들이 자기들만의 이념이나 이익에 몰두하든말든, 우리는 그 모든 상념들을 잠시 잊으려 산으로 간다.

이번 산행은 지리산 정규 등산로를 따르는 비교적 짧고 쉬운 산행이기는 하지만, 산우회 모든 분들이 지리산의 실비단폭포(이끼폭포)를 보면서 한국의 역대급 난이도를 가진 뱀사골에서 함박골을 따라 반야봉에 오르는 노정에 함께하기를 기대했었다. 혹여 너무 어려워서 탈출이 불가피한 상황에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해 놓았는데, 그리 많지 않은 참석자 중에서 절반만이 동참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산행이 되었다.

 

매번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 왔던 송 기사님 대신에 정 기사님이 운전대를 잡았는데, 지난 초여름의 피아골 산행 때 우리를 불면에 시달리게 했던 분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도 핸들의 급조작이 느껴지며 뜬눈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었고, 휴게소에서의 쉼과 졸음방지용 먹거리까지도 무용지물로 만들며 우리의 애마는 힘겹게 지리산 뱀사골 탐방 들머리가 있는 반선교 앞에 도착했다. 이미 예상보다 한 시간쯤이나 늦게 도착한지라, 서둘러 버스의 불을 밝히고 산행 준비에 들어간다.

 

 

뱀사골 산행의 들머리가 있는 반선교 앞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반선교를 건너며 산행을 시작하는데, B팀으로 산행을 하겠다고 했던 손 점장 대신에 용현 형이 '반야봉으로 오를 수 있을지?'를 묻는다.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하며 백두산우회는 한번도 뒤에 누구를 두고 간 적이 없다고 하자, 용기를 내어 B팀 산행에 합류를 하여 딱 절반의 인원이 서둘러 버스를 뒤로하고 반선교로 들어선다.

 

 

뱀사골 계곡 산행의 들머리가 있는 반선교 앞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반선교를 건너며 산행을 시작한다.

 

<뱀사골>

뱀사골은 크게 보면 만수천 계곡 전체로서 산내면의 전체라고도 할 수 있다. 산내 삼거리에서 운봉과 인월로 빠지는 남천과, 실상사를 지나 남동진 하는 남천의 일부를 제외하면, 나머지 산내면은 모두 뱀사골 내에 있을 정도로 넓다. 산내면 덕동리, 부운리. 내령리, 입석리, 장항리가 모두 뱀사골 내에 자리하고 샘이다. 구체적으로 뱀사골 하면, 반선에서 반야봉까지의 계곡 약 14㎞를 말한다고 한다. 특히 뱀사골은 완만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여름에는 기온이 낮고 수많은 폭포와 소, 반석, 절벽 등이 전설과 함께 절경을 이루어 나타나 뛰어난 경관미를 보여주는데, 소룡대, 탁룡소, 뱀소, 병풍소, 간장소, 단심폭포 등의 명소가 있다.

 

이곳 뱀사골에는 재미난 지명 유래가 있다. 뱀사골의 지명 유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정유재란 때 불타 버린 배암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계곡의 물이 뱀처럼 곡류한다고 하여 '뱀사골 20리'라고 불린다는 설, 뱀소(沼)에서 유래되어 뱀소골, 뱀사골로 부른다는 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설인 뱀이 죽은 계곡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지리산이 걸쳐 있는 경상남도 함양과 전라남도 구례, 전라북도 남원에는 이성계와 관련한 전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뱀사골의 유래」는 이성계의 개국을 반대하던 지리산 산신령이 이성계가 등극한 뒤 귀양을 가게 되면서 전개되는 신이담이면서 변신담에 속하는 이야기이다.

이성계가 왕으로 등극하려고 할 때, 다른 산신령들은 다 허락했는데 지리산 산신령만은 허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성계는 경상도에 있던 지리산을 전라도로 귀양 보냈다. 그 지리산 반선에 옛날에는 커다란 절이 있었다. 지리산의 다른 골짜기에도 절이 몇 군데 있었으나 반선의 절만 유독 번창하였다. 그런데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저녁에, 뜬금없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오더니 스님 한 명을 싸가지고 올라갔다. 스님들이 생각하기에 '우리 절이 좋으니까 신선이 돼서 올라가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듬해 또 선녀가 내려와 스님을 싸가지고 올라갔다. 그렇게 여러 해를 계속해서 스님들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데, 남은 스님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선녀에게 들려 올라간 스님들의 순서가 나이순이었다. 이제 스님들은 올해는 누가 올라가느니, 내년에는 누가 올라가느니, 나는 몇 년 남았느니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다들 신선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그러다가 한 스님의 차례가 되었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때, 이 스님은 어릴 적 동문수학했던 친구를 만나 보기로 하였다. 스님의 친구는 정승이 되어 있었다. 한양으로 올라간 스님은 정승 친구를 만나서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하고는, 이제는 자기 차례가 되었는데 떠나기 전에 친구가 보고 싶어서 왔노라고 했다. 정승 친구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장삼을 한 벌 지었다. 장삼을 지으면서 삼베 옷감에 비상을 버무렸다. 한 겹을 그렇게 하고는 또 다른 한 겹에도 비상을 버무려 중장삼을 두툼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스님이 떠날 때, 두툼하게 만든 장삼을 주면서 하늘로 들려 올라갈 때 꼭 그 장삼을 입으라고 하였다. 장삼을 받아들고 절로 내려온 스님은 섣달 그믐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그 날이 되어서 두툼한 장삼을 입고 앉아 있으니, 과연 하늘에서 서기가 내리더니 선녀가 와서 스님을 싸가지고 올라갔고, 주변의 다른 스님들은 축원을 하였다.
이튿날 뱀사골 안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산천이 다 어긋나는 것 같은 엄청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너무나 무서워서 문을 열고 나올 수 조차 없었다. 하루 저녁 하루 낮을 그렇게 하더니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하늘이 무너졌나, 산천이 무너졌나 궁금해 하며 밖으로 나와 보니, 물가에서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핏물을 따라 사람들이 올라가 보니, 뱀소 웅덩이에서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보니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 이상해서 이무기의 배를 갈라 보니 장삼을 입은 스님이 들어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는 조화를 부린 이무기였던 것이다. 이무기가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선녀로 변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무기가 지리산에서 사람을 잡아먹은 것은 지리산을 지키는 산신령이 귀양을 가고 없었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 뒤로 절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무기한테 스님들이 잡아먹혀서 스님의 수도 줄었을 뿐만 아니라,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이무기한테 잡아먹힌 것이었으니 남은 스님들도 힘이 날 리가 없었다. 하루는 대처 중이 이무기를 죽게 한 스님의 친구인 정승을 찾아갔다. 이무기가 죽은 일을 자세히 얘기하니, 정승은 절을 불로 다 태워 버리고 그 골짜기를 반선(), 즉 신선이 되지 못한 곳이라 부르라고 했다. 지금도 이 뱀사골 입구 동네를 반선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뱀사골이란 말은 뱀(이무기)이 죽었다는 데서 유래가 되었다.

 

 

뱀사골 탐방로는 유모차를 끌고 와도 될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 와운마을 갈림길이 있는 오룡대까지는 대부분의 구간이 데크목 바닥의 탐방로로 되어 있어서 비록 캄캄한 한밤중임에도 걷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오룡대를 지나면서부터는 커다란 바윗돌을 깔아 놓아서 발을 옮길 때에 조금 주의를 하여야 할 정도다.

 

어둠을 뚫고 귓가에 끊임없이 들리는 계곡물소리가 뱀사골 계곡의 비경을 떠올리기에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사이에 어느새 병소를 지난다.

 

 

우측 계곡의 조그마한 폭포를 렌턴 불을 비추고 카메라에 담아본다.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노인 두 분을 추월하며, 혹시나 우리가 함박골로 진입하는 것을 보게 되면 신고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행선지를 물어보았더니, 그냥 뱀사골 산책을 나온 탐방객들로 우리 일행 때문에 예정보다 멀리까지 들어왔단다. 병소를 조금 지나자 더 이상 따라오지를 않는듯하여 마음을 놓는다.

 

 

병풍소를 조금 지나서 뱀사골 계곡을 건너는 명선교를 건넌다.

 

 

뱀사골 계곡을 한 시간 반쯤 걸어왔는데도 아직 계곡을 건너는 다리의 길이가 꾀나 긴 것으로 보아,

뱀사골이 얼마나 큰 계곡인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계곡 우측 높은 하늘에는 밝은 달빛이 가끔씩 울창한 나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곤 한다.

 

 

제승교를 건너 잠시 오르자, 실비단 폭포가 있는 함박골 방향 등로가 있는 곳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앞서 가던 분들이 들머리를 지나쳐 가고 있기에 '빽'이라 소리쳐 불러 세웠지만, 두 분만 돌아오고 나머지 분들은 기다려도 돌아오지를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안내판 뒤쪽의 가드레일을 넘어 함박골 방향의 비법정 등로로 들어서니 바로 앞쪽으로 다시 철재 울타리가 막아선다. 뒤얽힌 족적을 더듬어 울타리를 잘 살피니, 울타리 아래쪽으로 넓은 틈이 있는 부분이 있고, 많이들 드나든 흔적이 남아 있다. 울타리 아랫부분으로 어렵사리 통과하여 들어서니, 뚜렷한 등산로가 계곡 좌측 사면 허리를 따라 이어진다.

 

 

안내판 옆 가드레일을 넘으며 합법의 길을 뒤로한다.

 

 

B팀 9명 중 4명이 나와 함께 있어야 하는데, 울타리를 통과하여 보니 두 분만이 나와 함께 있고 두 분은 보이지를 않는다. 아마도 앞서간 분들 쪽으로 간듯하여 함박골 계곡 모퉁이를 돌아서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보이지를 않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들머리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분들이 도착하고, 또 한참이 지난 후에 우측 능선 위로 올라갔던 분들이 내려와 합류한다. 우측 능선 위의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달빛을 앞서간 분들의 렌턴 불빛으로 착각하여 따라갔던 모양이다.

 

 

다행히도 20여 분 만에 모두가 다시모여, 실비단폭포를 향해 함께 함박골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묘향대로 이어지는 가파른 등로는 함박골을 좌우로 건너며 뚜렷하게 이어진다.



계곡 우측 사면을 따라 한참을 이어지던 등로가 깎아지른 절벽 옆으로 이어이며 함박골 골짜기로 내려서자,

 

계곡 우측 편에 꿈에 그리던 '실비단 폭포'가 펼쳐져 있다.

 

<실비단폭포(이끼폭포)>

미국 CNN에서 '한국에서 가볼만한 곳 TOP 50' 중에 하나로 선정된 이끼 폭포는 정말 신비롭고 아름답다.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는 한줄기 폭포수가 아닌 수십 개의 물줄기를 마치 실낱같은 폭포수로 흘러내리고, 그 암벽에는 수천 년 동안 바위에 붙어 살아온 이끼가 새파랗게 덮고 있다. 주변은 원시림의 울창함과 계곡이 가파른 협곡이어서 대낮에도 은은한 밝음이 있을 뿐이다.

신비스럽기 이를 데 없는 실비단폭포에 도착한 일행들은 하나같이 탄성을 토하며 감탄의 신음을 쏟아낸다. 우리는 이것을 보기 위해 그 험난하고 위험한 등산로를 선택했고, 비법(非法)의 울타리를 넘으며 긴장하였고, 알바라는 대가를 지불하면서 실비단폭포를 맞이한 것이다. 세상에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노력 없는 보람은 있을 수 없고, 위험 없는 성취감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국내 3대 이끼폭포를 선정해 놓았다. 이른바 지리산 뱀사골 이끼폭포, 삼척 무건리 이끼폭포, 영월 상동 이끼계곡이 그것이다. 이끼폭포(계곡)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모두 태고의 원시성이 강한 초록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폭포나 계곡으로, 이끼가 많아서 이끼폭포라 부르지만 실제 이름은 따로 있다. 지리산 뱀사골의 지계곡인 함박골에 있는 이끼폭포는 '실비단 폭포'이고, 무건리 이끼폭포는 '용소폭포'이며, 영월 상동 이끼계곡은 '칠랑이 계곡'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올여름 강수량이 적어서 그런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이끼를 타고 흘러내리는 비단 가닥의 숫자가 줄어든 느낌이기는 하지만, 자연이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작품을 대하는 느낌에는 부족함이 없다.

 

지리산 실비단폭포를 알현하려고 고난의 길을 택한 백두들.

 

기대보다 빈약한 물줄기에 살짝 실망스럽기는 하다. 이 물줄기는 심마니능선의 망바위봉(1,379m)에서 시작하여 함박골에 합류하는 지계곡의 물줄기라서 수량이 많지 않고, 말랐다 흘렀다를 반복하며 이끼도 생기고 폭포도 형성되어 특이한 경관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애고~, 얼굴에 탄력이 없어진 것으로 보아 이런 힘든 산행도 잠시겠구나!

 

실비단폭포 상류방향.

 

바위, 이끼, 풀, 물줄기!

 

실비단 폭포를 다시 한번 카메라에 담고는 묘향암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을 시작한다.

 

 

묘향암으로 오르는 등로는 계곡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폭포 반대편의 족적을 살피느라 잠시 지체한다.

 

실비단폭포를 지난 함박골 계곡의 계류.

 

 

계곡 좌측의 너덜지대를 올라서면,

 

우측 아래로 자그마한 폭포가 내려다 보이고,

 

폭포 상단의 계류가 그린 듯이 흘러간다.

 

 

잠시 후, 또 다른 폭포가 앙증스러운 웅덩이에 비단 같은 물줄기를 떨구고 있다.

 

 

함박골을 더듬어 오를수록 숨겨놓은 모습들을 하나둘 내보이고,

 

계곡의 바위들은 녹색의 이끼 옷을 걸치고 있다.

 

 

함박골은 천천히 흐르지를 않아서, 소(沼)에서 소(沼)로 이어지며 가파르게 고도를 높여간다.

 

 

실비단폭포에서 20여 분 오르니, 쉬어가기에 더없이 좋아 보이는 장소가 나타난다.

 

급하게 떨어지던 물줄기도 작은 소를 만나 쉬어가듯,

 

우리도 널찍한 바위에서 새벽의 긴장감과 실비단폭포의 감동을 누그러뜨린다.

 

쉼터 위쪽의 계류 모습.

 

 

한없이 앉아서 자연과 함께하고 싶었던 잠시의 쉼을 뒤로한다.

 

 

함박골 좌측 비탈로 이어지던 등로는 좌측 사면 방향으로 급경사 오름길을 시작하는데,

등로 우측 계곡 쪽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쌓아 놓은 듯한 돌담이 길게 이어진다.

 

 

앞서가던 창병씨가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고사목 아래에서 포즈를 취한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다가 숲 속에 둥지를 튼 바위독수리도 만나고,

 

오름길은 잠시의 숨 돌릴 틈을 주지않고 수직으로 이어지더니,

 

조그마한 지능선에 오르자 작은 숨돌릴 자리를 내어준다.

 

 

묘향암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등로는 가끔씩 쓰러진 나무들로 막혀있기도 하고,

 

녹색의 이끼 이불을 덮고 있는 바위들 사이로도 이어지며,

 

끝날 것 같지 않은 오름길이 계속되다가,

 

막다른 길에 이르러서는 한가닥 로프에 의지하여 힘겹게 올라선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족적을 따르며,

끊어질 듯 가팔라오는 숨소리도 희미해져 갈 즈음에,

 

수직의 비탈길이 조금은 뉘어지는가 싶더니,

 

동쪽 토끼봉 방향으로 조망이 트이는 지능선 위에 이르게 되고,

등로는 다시 한번 좌측으로 휘어지며 평탄한 사면길로 바뀐다.

 

 

잠시 완만한 사면길을 따르니 묘향암의 채전(菜田)이 나타나고,

 

이내 묘향암/묘향대 갈림길에 도착한다.

반야봉과 중봉 방향의 오름길은 우측의 녹색 화살표 방향이지만,

묘향암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기에 좌측 묘향암으로 들어서는 길로 내려선다.

 

 

사력을 다해 들숨과 날숨을 놓지 않은 끝에, 묘향대 아래에 자리한 묘향암에 도착한다.

 

<묘향대/묘향암>

묘향암은 1970년대에 지금의 암자 형태를 갖추었다고 하며, 반야봉 정상부 북동쪽 사면에 잇는 묘향대(바위절벽)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하여 묘향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여기서 묘향(妙香)은 불교에서 자주 쓰는 용어로 묘음(妙音), 묘지(妙智), 묘관(妙觀), 묘행(妙行), 묘심(妙心), 묘향(妙香), 묘적(妙寂), 묘유(妙有), 묘각(妙覺), 묘법(妙法) 등 묘(妙)字가 자주 쓰인다. 이때 묘(妙)는 단순히 묘하다는 뜻이 아니다. ‘가장 높고 뛰어나다. 완벽하다’에 가까운 뜻이다. 묘(妙)는 불교의 공(空) 사상에 바탕을 둔 말로,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언어를 초월한 불가사의 구족원만(具足圓滿 :다 갖춘, 상대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완전무결함)의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묘지(妙智)는 그냥 지혜가 아니라 말로써 이렇다 저렇다 표현할 수도 없고 마음으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생각할 수도 없는 지혜, 부처의 깨달음을 억지로 이름하여 묘지(妙智)라 할 뿐이다. 그래서 묘지(妙智)는 불지(佛智)라 해도 되며, 다른 단어의 묘(妙)도 불(佛)로 교체하여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유마경》 제10품『향적불품』에 “향적불(香積佛)이 있는 중향(衆香)세계는 모든 것이 향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언어나 문자 설법이 아닌 묘향(妙香)으로 삼매(三昧)에 든다.”는 말이 나온다. 《아함경》에는 “바람을 거슬러 향기를 풍기는 향”을 묘향(妙香)이라 하였다. 그래서 묘향은 갑옷 같은 세상의 논리를 뚫고 전해지는 부처님의 바른 향기(말씀)를 뜻하기도 한다. 물론 다른 불교 경전에도 묘향(妙香)은 등장한다. 반야봉(般若峯) 아래 묘향대가 있으니 묘향을 타고 깨달음의 지혜 즉 반야(般若)에 이르는 것이니 딱 맞아떨어진다고 하겠다.(펌)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지리산 '묘향대'는 반야봉 정상에서 묘시 방향에 있다 하여 묘향대라 부른다고 하며, 그 묘향대 아래 산중 암자인 '묘향암'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반야봉에서 묘시 방향은 동쪽인데 묘향대는 반야봉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묘향대의 유래는 불교용어에서 찾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 유래야 어찌 되었던, 묘향암은 지리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봉우리인 반야봉 정상부에 자리 잡고 앉아서, 뱀사골을 발아래에 둔 장엄한 풍광을 간직한 암자이다. 인근 금강대 금강굴엔 220살이 넘는 개운조사께서 아라한이 되어 지금도 상존해 계시다고 하는데, 삼독의 그늘에 있는 중생들은 금강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라면, 일반적으로 설악산 봉정암(1.224m)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리산 천왕봉 다음 두번째 높은 반야봉에 있는 지리산 묘향대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묘향대의 묘향암은 지리산 반야봉 북동 자락 해발 1,480m 고지에 위치한 은둔의 암자로서, 원래 사방 험로로 둘러싸여 있어서 인적조차 드문 곳이었지만, 지리산 명소 중 한 곳으로 가끔 찾는 산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정면에서 바라본 묘향대 아래에 자리한 묘향암 모습이다. 단촐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에 서릿발 같은 선승들의 안광이 느껴지기도 하는 묘향암. 그러나 차츰 눈에 익으니 마치 어릴 적 가까운 이웃 마을에 마실 나온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은 왜일까!

 

암자 좌측에서 옷가지를 널고 있는 수도승께 석간수 물맛을 보겠다고 청하고는,

 

묘향대 깊고 깊은 바위에서 짜여 나온 샘물을 떠서 맛을 본다.

가파른 오름길에 갈증이 심한 터이라서 그런지, 한 바가지를 훌쩍 비우고 나니 온몸에 생기가 도는 듯하다.

 

 

묘향암 마당 앞쪽 절벽 위에는 돌로 대를 쌓아서 용맹정진의 상징인 코끼리상을 올려놓았다.

마치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에서 지리능선을 달려와 묘향암을 향해 깨달음을 제촉하는 듯이!

 

코끼리상 옆에서 바라본 천왕봉과 지리능선 조망.

 

당겨본 지리산 천왕봉과 지리능선.

 

이 코끼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데,

 

 

이 암자에서 아침식사를 하자면서 앞서간 일행들은 어디에도 보이지를 않는다.

외길이어서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없는지라,

아직 중봉까지는 가파른 오름길이 남아있기에 중봉으로 올라갔을 수도 있다고 짐작하며,

 

 

묘향암 인증을 남기고 중봉 방향 오름길로 들어선다.

 

 

묘향암 갈림길로 돌아나와 중봉 방향 오름길로 들어서는데,

두규형으로부터 '중봉 오름길 도중에 식사를 하고 있다'며 전화가 온다.

잠시 후, 등로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들을 만나 서둘러 빵조각으로 허기를 달랜다.

 

 

중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등로에는 고산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어서 조망이 없던 차에, 좌측으로 가야 할 반야봉이 살짝 조망되고,

 

뒤쪽으로는 천왕봉 능선이 삼각봉과 명선봉 능선 위로 성큼 올라와 있다.

 

 

드디어 중봉 지능선 위로 올라서서 좌측 능선을 따라 오르는데,

오래된 침엽수 사이로 이어진 등로 주변에는 싱그러운 풀들이 고된 오름길의 난관을 품어 준다.

 

 

능선 우측으로는 새벽에 출발한 반선 방향으로 뻗어내린 심마니능선이 조망되고,

 

다 같이 한줄기로 연결된 지리능선인 천왕봉 쪽 능선과 토끼봉에서 명선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다른 산줄기인 듯 겹쳐 보인다.

 

조그마한 봉우리에 올라서자 가야 할 중봉 정상부도 지척으로 다가선다.

 

 

능선 위로 예리한 칼끝처럼 불쑥 솟아 앞을 가로막는 암릉을 우회하여 지나면,

 

전형적인 육산의 형태를 띤 중봉 오름 능선길이 이어지며 가지가지 야생화들을 만난다.

 

흰진교.

 

(꽃 이름 알려주시면..!)

 

?

 

 

묘향암만큼이나 어여쁜 꽃들을 담으며 차츰 완만해지는 중봉 오름길을 오른다.

 

모싯대.

 

단풍취.

 

 

모진 풍파를 견뎌낸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두 그루의 주목나무를 만난다.

 

늘 곧게 자란 주목나무만 보아오던 터라, 모진 풍상을 견뎌낸 흔적을 담은 주목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둥근이질풀.

 

?

 

 

지난 유월에 찾았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중봉에 도착한다.

 

쟁기소와 심마니능선 방향의 능선 들머리 방향.

 

역대급 난이도의 오름길을 이겨낸 용현 형님도 중봉 천상화원에 도착한다.

 

구절초와 산오이풀이 꽃밭 가득 피어난 중봉 묘지의 주인 연안김씨 정원 모습.

 

중봉 연안김씨 묘지에서 푸른 창공을 배경으로.

 

노고단을 배경으로.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방향으로 지리 주능선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오늘 용현 형 덕분에 나도 평소보다 자주 모델이 되어 본다.

천왕봉을 배경으로.

 

당겨본 천왕봉. 딴 데 가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라, 내년 초쯤에 반드시 찾아갈 것이니!

 

 

중봉을 뒤로하고 반야봉을 향한다.

 

지난번 소계방산 산행에서 보았던 과남풀(용담)이 언제 이곳으로 왔는지..ㅉㅉ

 

 

반야봉 정상에서 중봉 방향 등로를 막아 놓은 목재 차단막을 통과하면 반야봉 정상에 도착한다.

 

 

사력을 다해 반야봉 정상 인증을 남기는 기쁨을 맛본 용현 형님!

 

반야봉은 불교 경전의 반야경(般若經)에 의해 알려진 명칭으로,
반야의 뜻은 '절대 변하지 않는 완전한 지혜'를 의미한다는데,

오늘 뱀사골에서 함박골을 따라 "지리산에서 지혜를 얻는다"라는 말이 유래된 반야봉을 오르며,

'겸손'이라는 또 하나의 지혜를 체감한다.

 

 

마고할매가 반야도사를 기다리던 천왕봉이 멀리서 지켜 보고 있다.

천왕봉과 반야봉 사이의 지리 주능선이 첩첩이 이어져 있어서 마고할매가 선뜻 반야도사를 찾으려 오지 못했나 짐작해 본다.

 

돌아본 중봉 방향.

 

서쪽 성삼재 방향.

 

남쪽 왕시리봉 방향.

 

젊은 등산객에 부탁해서 반야봉 인증을 남겼는데, 가히 사진에 일가견을 가진 분이었던 듯하다.

 

 

다시 한번 지리 주능선과 천왕봉음 담아보고,

 

반야봉을 뒤로한다.

 

 

반야봉을 내려서며 바라본 노고단 방향.

 

 

반야봉 철계단을 내려서면,

 

투구꽃.

 

잠시 편안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삼신봉과 불무장등 방향.

 

삼신봉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 전라남도의 3도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로,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불무장등 능선은 좌측의 칠불암이 자리한 경상남도 목통골과,

우측의 전라남도 구례군의 피아골을 나누는 도경계가 지나는 능선이다.

 

가야 할 토끼봉 뒤로 천왕봉으로 이어진 지리 주능선도 가늠된다.

 

남동방향 파노라마.

 

남서 방향 파노라마.

 

 

노고단/삼도봉 갈림길에서 좌측 삼도봉 방향으로 들어서고,

 

잠시 후, 노루목 방향 삼거리에서 다시 좌측의 천왕봉 방향 능선으로 들어선다.

 

 

반야봉/노루목 갈림길 바로 아래에 묘향암으로 이어질듯한 갈림길을 지난다.

오늘 모든 백두들이 묘향암으로 올랐으면 묘향암에서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삼도봉에 도착하여 돌아본 반야봉 방향.

 

삼도봉 인증은 용현 형님이 홀로서 한다.

 

<삼도봉(三道峰, 1,499m)>

전라북도 남원과 전라남도 구례, 경상남도 하동을 경계하는 봉우리라 하여 삼도봉이라 불린다. 원래 삼도봉은 이곳 봉우리에서 불무장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모양이 '낫의 날'같다 하여 '낫 날봉'이라 불리다가, '날라리봉'으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삼도의 경계점에 있다 하여 '삼도봉'으로 명명되었다. 삼도봉 정상에는 석재가 아닌 황동 재질의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삼도봉에서 내려다본 목통골과 불무장등 능선.

 

 

A팀의 보성 씨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느긋한 쉼을 미루게 하여, 서둘러 삼도봉을 뒤로하고 화개재로 향한다.

 

 

삼도봉에서 화계재까지는 데크목 계단길이 이어지는데, 544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

초반에 계단 숫자를 헤다가 쉼터에서 짧은 쉼을 하는 사이에 세어온 숫자를 잊어버린다.

요즘은 몸보다 머리가 먼저 세월을 지나쳐 가는 느낌이다.

 

 

화개장의 해산물과 산내장의 내륙 물산이 거래되었다는 화개재에 도착한다.

 

<화개재(花溪峙)>

화개재는 먼 옛날 하동의 화개장터와 남원의 산내장터 봇짐장수들이 물물 교환을 했던 고갯마루를 말한다. 옛날 산내장터에서 올라온 70대의 소금장수가 이 고개를 넘다가 너무 힘들어 죽었다는 가슴아픈 전설이 서려있다.

지리산 종주코스 중 가장 고도가 낮은 지점인 화개재는 남원군 산내면과 하동군 화개면의 경계에 속하고 뱀사골 정상인데, 예로부터 양측 주민과 상인들이 물물교역을 위해 넘나들던 길목이었다. 뱀사골 계곡 상류에는 소금장수가 발을 헛디뎌 빠졌다는 간장소에 얽힌 전설도 있는 것으로 보아, 화개 장터를 거친 해산물과 소금 등이 운봉, 마천, 산내 지방의 내륙 특산물과 함께 이 길을 통해 거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화계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반선으로 가는 뱀사골 계곡이 나온다. 아마도 우리 백두 A팀들은 뱀사골을 따라 이곳에서 지리산 주능선에 들어서서 연하천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화개재 이정표.

 

화개재에서 토끼봉으로 들어서며 돌아본 삼도봉 방향.

 

 

화개재에서 토기봉으로 오르는 등로에는 야자메트도 깔려 있고,

 

바닥에 작은 돌을 깔아 놓은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토끼봉 정상 헬기장 도착.

 

<토끼봉(1,534m)>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 이름지어진 게 아니고, 반야봉에서 볼 때 24방위 가운데 정동(正東)에 해당하는 묘방(卯方)에 해당하고, 묘(卯)는 토끼를 상징하기 때문에 토끼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토끼봉 남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겨울에 한번 불을 때면 3개월간 온기가 돈다는 칠불사가 나온다. 정상에 '지보초'가 군생하고 있어서 지보등이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

 

 

예정보다 조금은 지체된 상황이라, 지친 상태에서도 쉼 없이 발걸음을 쉬지 않으며 토기봉 정상부를 지난다.

 

 

토끼봉을 뒤로하고 명선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피의 능선 조망.

 

<피의능선>

기암괴석의 암릉과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명선봉~삼각봉~형제봉~벽소령 구간의 능선은 6.25 동란 당시 빨치산과 국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어서 '피의능선'이라 불리기도 한다. 명선봉에서 남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빗점골이라는 골짜기는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토끼봉과 운봉 무덤 사이의 편평한 안부를 유유히 지난다.

 

 

운봉 무덤 오름길에 돌아본 토끼봉과 반야봉 방향.

 

 

소금장수의 무덤이라는 전설을 가진 운봉무덤(1,476m) 정상부를 지난다.

 

 

운봉무덤에서 잠시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면,

 

이내 시작되는 명선봉 오름길은 점점 더 가팔라지며,

 

급경사의 나무계단을 오르게 된다.

 

 

커다란 나무 아래 쉼터를 지나며 오름길이 다소 완만해지더니,

 

 

명선봉(明善峰, 1,586m) 정상부를 지난다.

 

명선봉에서 빗점골로 이어지는 등로가 지나는 명선봉 정상은 이제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지리산 주능선 등산로는 명선봉 정상을 좌회 하여 지나게 된다.

 

명선봉의 '명산(明善)'이란 조선시대 종친의 정 3품 당상관 품계인 '명선대부(明善大夫)'의 준말이고, 고종 때 '통정대부'로 불리게 되었다는데, 지리산의 봉우리들 중에 품계상 당상관 정도의 수준이라 그리 붙였는지, 왜 이 봉우리를 명선봉이라 하였는지는 잘 찾아지지 않는다.

 

 

명선봉 정상부를 뒤로하고 데크목 등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면,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한다.

 

<연하천(煙霞泉) 대피소>

명선봉의 북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고산지대임에도 숲 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다고 하여 연하천(煙霞泉)이라 부르게 되었다. 구례에 있는 연하반 산악회에서 명명한 이름으로, '구름 속에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연하천의 샘물은 사계절 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지역 자체가 고산지대임에도 늪지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항시 물에 흥건히 젖어 있다.

 

연하천 대피소 앞에 있는 연하천 샘물로 더해가는 갈증을 삭이고, 비어 가는 수통에도 물을 채운다.

 

 

쉬고 있는 산객들 사이에서 앞서간 백두들이 대피소에서 션한 생맥주라도 하고 있나 살펴보았지만, 낯익은 얼굴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뭣이 그리들 바쁘신지, 아마도 A팀의 지루한 기다림을 줄이려고 그런 듯하여 우리도 서둘러 인증을 남기고 연하천 대피소를 뒤로한다.

 

 

마치 습지 등산로 인듯한 느낌의 축축한 흙길을 걷다 보면,

 

우전방으로 삼각고지와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조망되고,

 

이내 음정 방향 갈림길이 있는 삼각고지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지리능선은 벽소령 방향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좌측의 음정 방향으로 들어선다.

 

<음정마을 갈림길>

음정(陰丁) 마을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속하는 마을로, 양정. 하정 마을과 함께 삼정리에 속하며, 마을의 위치가 지능선의 북쪽 사면 음지에 취락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뜻에서 음지정제라고도 한다.

마을의 전설에 의하면 음지말 남쪽 골짜기를 '비내리골'이라 하는데, 옛날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나뭇꾼과 살다가 날개옷을 찾은 뒤 남편과 자식을 두고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 남편과 아들이 하도 원통하여 눈물을 흘려서 비내리골이 만들어졌으며, 그 자리에서 바위로 변했다고 하는데 현재의 벽소령 정상에는 바위로 변한 부자(父子)바위가 서 있다고 한다. 지금은 '비내리골'이 변하여 '비린내골'로 부르고 있다.

 

 

삼각고지에서 삼정능선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울창한 숲속으로 완만한 내림길이 이어져,

지친 산꾼의 발걸음을 그나마 수월하게 한다.

 

 

능선 갈림길에 도착하여 다음 산행을 위한 인증을 남긴다.

직진의 능선은 별바위등을 지나 영원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지금은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구간이며,

우리는 좌측 급경사 내림길로 들어서서 연하천삼거리(임도갈림길)로 향한다.

 

 

연하천삼거리로 내려서는 사면길은 급경사의 돌계단길로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느라 무릎이 시큰거릴 지경이다.

 

 

작은 옹달샘이 있는 쉼터에 도착하여,

 

후덜 거리는 다리를 잠시 쉬게 한다.

몸이 지치니 식욕도 사라졌지만, 남은 산행을 위해 배낭의 빵과 사과를 꺼내어 우겨 넣는다.

 

 

급경사의 돌계단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음정마을에서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만나는 연하천삼거리에 도착하여,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음정마을로 향한다.

 

 

임도는 차량통행이 크게 어렵지 않을 정도로 널찍하며 사면을 따라 구불구불 완만하게 이어지고,

 

 

잠깐씩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며 우전방으로 하정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우 후방으로 벽소령 방향의 지리 주능선도 조망된다.

 

 

삼성능선의 영원령 동사면에 자리한 도솔암 방향으로 이어지는 샛길쯤으로 짐작되는 갈림길을 지난다.

이곳은 부처님오신날에 개방하는 도솔암 탐방을 위하여 매년 한차레씩 개방을 한다고 한다.

 

 

가끔씩 산책하는 분들과 마주치기도 하며 호젓한 임도길을 이어간다.

 

 

임도 한가운데에 똬리를 틀고 있는 한 무리의 뱀을 만난다.

떨어지는 기온 탓인지, 성스러운 짝짓기를 하는지 한무리의 뱀들이 뭉쳐서 있고,

 

주변에도 수십 마리의 뱀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아마도 겨울잠을 준비하며 짝짓기를 하고 있지 않나 싶어서 못 본 척 지나친다.

이렇게 백주대낮에 딴짓하다 땅꾼에게 걸리면 안 되는데...ㅋㅋ

 

 

벽소령 임도 차단시설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산내면이나 마천면 등에서 택시로 오면 이곳까지 데려다주는 듯하다.

 

돌아본 벽소령 임도 차단시설.

 

 

임도 차단시설물을 뒤로하자, 이내 음정마을로 향하는 산길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가도 음정마을과 양정마을로 가게 되지만, 우리는 지름길의 우측 산길 등산로로 들어선다.

 

 

산길 등산로는 쭉쭉 뻗은 소나무가 빼곡한 능선으로 이어지며 급격하게 고도를 낮춘다.

 

좌측으로는 삼정산 능선이 살짝살짝 조망된다.

다음 산행에서 저 능선을 걸어 볼 참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철재펜스가 설치되어 있고,

 

팬스 아래로 사면을 따라 구불구불 고도를 낮추는 임도가 내려다 보인다.

 

 

산길로 들어선 지 10여 분 만에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날머리가 나오고,

 

음정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서면,

 

음정마을 안으로 들어서게 되고,

 

이내 음정마을 등산로 기점에 도착한다.

 

음지말이라고도 부르는 음정(陰丁)마을은 음지정쟁(陰地停莊)이라고도 부르는데, 음지에 위치한 집단촌으로 취락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음지말 뒤쪽(남쪽) 골짜기를 비린내골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내리골'에서 변화되어 생긴 이름이라 여겨진다.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살다가 날개옷을 찾은 뒤 남편과 자식들을 두고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선녀의 남편과 아들이 하도 원통하여 바라보며 울었는데 눈물이 비처럼 내렸다고 하여 '비내리골'이라 불리게 되었고, 두 부자는 원통하여 슬피 울다가 화석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벽소령 정상에 부자(父子) 바위가 서 있다.

양지말이라고 부르는 양정(陽丁)마을은 양지정쟁(陽地停莊)이라고도 부른다. 장(莊)은 고려시대에 특수한 행정 구역인데,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찰은 농토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승려가 아닌 주민들이 전답을 소작으로 경작하여 세미를 바쳤고 어렵게 생활해 왔다. 삼정은 영원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어서 서산, 청매, 사명, 포광 등의 대사들이 수도하였던 큰 절이었다. 따라서 부자(富者) 절이었기에 절의 그늘 아래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집단촌을 양지정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랫말이라고 하는 하정(下丁)마을은 아래정쟁이라고도 부른다. 세 마을 중 아래쪽에 위치하는 장(莊)이라는 뜻이다. 이 지리산 계곡 마천면은 촌락 형성의 단계에서부터 사찰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마을이 많은 것 같다. 마을의 하천변 솔숲 속에는 선유정(仙遊亭)이 있는데, 선유정은 이 고장 사람들이 정자를 지어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고, 쌍무지개 다리를 놓아 승천한 선녀가 다시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뜻에서 선유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음정마을 등산로 이정표.

 

 

음정마을 산행기점 앞 매점에는 먼저 도착한 분들이 막걸리를 나누고 있다.

나도 션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힘들었던 산행을 접는다.

 

 

버스가 매점 옆에 있기로 했었는데,

마을 아래에 정차해 있다고 하여 음정마을 아래로 내려간다.

 

 

마을을 내려가니 음정마을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함양군에서 운영하는 마을버스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음정마을 버스 시간표.

 

 

버스정류장을 지나 조금 더 내려서니 우리의 애마가 기다리고 있다.

 

 

벽소령 방향의 비린내골 조망을 카메라에 담고, 버스에 올라 함양읍으로 향한다.

 

 

함양군 마천면에서 함양읍으로 가는 도중에 오도치를 넘으니 그린 듯이 만들어 놓은 도로가 차창 너머로 펼쳐진다.

 

 

함양읍에서 고된 산행의 흔적을 지우고, 푸짐한 쇠고기로 늦은 점심을 한다.

 

A팀은 여유로운 산행이어서 좋았고,

B팀은 잊을 수 없는 산행이어서 좋았다!

 

내 몸에 문제가 있었는지, 음식에 문제가 있었는지...

서울에 도착할 무렵쯤에 멀미가 났다.

집에 도착해서도 몇 차레 토를 하고서야 잠이 들었는데,

다행히 다음날에는 별 탈이 없었다.

모든 일을 행함에 찬찬히 살펴서 가야겠다.

 

수많은 도전과 역경을 격은 삶이라야,

인생이란 책의 페이지를 가득 채울 수 있음을 느끼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