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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강기맥 08차(구목령~먼드래재) : 꽃길보다 좋았던 숲길과 운무산에서의 멋진 조망이 함께한 산행

by 재희다 2018. 6. 24.

산 행 지 : 한강기맥 08차(구목령~먼드래재) 강원도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

산 행 일 : 2018. 06. 23.(토)

산행코스 : 생곡2리 + 구목령~삼계봉~덕고산~봉복산 갈림길~원넘이재~운무산~먼드래재

              (7km(어프로치) + 16km(한강기맥) = 23km, 10시간 남짓)

산행참가 : 19백두.

 

<산행지도>

 

최근의 세상이 전례 없이 급변하고 있다. 지난해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야 기실 우리네 민초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었던 일이었다면, 최근의 급변하는 대북관계와 트럼프에 의해 주도되는 미국우선 보호무역 정책은 어찌보면 가까운 시일에 직접적으로 우리내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지도자들은 남일인 듯 모른척하고 지내는 것 같다. 물론 가치관의 차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민초들에게는 정의보다는 빵이 먼저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요즘 경제가 잘 돌아가느니 그렇지 않으니 말이 많지만, 사실 '경제'라는 용어보다 '정치경제'란 용어를 쓰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경제란 재화의 획득과 관련이 있고, 정치란 재화의 나눔(분배)과 관련이 있어서,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단순한 이론의 문제일 뿐이니 말이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경쟁이다. 따라서 누가 더 낮은 비용으로 재화를 생산하는가가 핵심이다. 재화의 생산을 위해서는 노동, 토지, 자본이라는 3가지 요소가 투입되는데, 최근 들어 지가(地價)가 오르고, 국제정치를 쥐락펴락하는 트럼프의 의중데로 에너지 가격도 오르고, 국내에서는 노동 가격도 올려 놓았다. 그러면 자본으로 대별되는 신기술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네 지도자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는 듯 보인다. 나도 매월 급여를 받는 몸이라 내 급여가 오르면 좋기야 하겠지만, 나의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의 급여가 오르면 종내에는 내 급여의 실질가치가 떨어질게 자명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우리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그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강한 힘을 가져야만, 우리의 생존과 자유를 담보할 수 있지 않을까 곱씹어 볼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의 산행이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도 버스에 몸을 싣고 산행길에 나선다. 최근들어 기온이 오르고, 이번 한강기맥 산행의 후반부에 운무산을 올라야 하는 부담으로, 생곡리에서 구목령까지의 어프로치는 트럭을 타고 오르기로 한 터라, 버스로 생곡리 마을까지 들어가지 않고 생곡2리 사무소 앞에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한다. 오늘 버스는 한때 제로쿨에서 우리 애마를 끌었던 박상춘 기사님 왔다. 다른 회사로 옮겼는데, 마침 그 회사의 버스를 대차하면서 오게 된 것이다. 모처럼 만이라 반갑기도 했고, 옛날보다 운전 실력이 한결 늘은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생곡저수지 아래 생곡2리 사무소 앞에서 산행 준비를 하는 백두들.

 

 

예약해 놓았던 트럭이 도착하자, 한분씩 차곡차곡? 트럭에 탄다.

소형 트럭이라 한 뼘의 공간도 남기지 않고 채워야 19명이 탈 수 있다.

손 점장은 구목령까지 걸어가겠다고 너즈레를 떨어 보는데..,

다들 그거 좋은 생각이라며 갈채를 보내지만..ㅋㅋ

 

 

운전석에 기사포함 4명, 짐칸에 16명, 총 20명이 탑승했다.

1톤 트럭에 중량 초과가 분명하지만, 가파른 언덕길도 무리 없이 올라간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짐칸에 탄 분들은 다리에 쥐가 나고 삭신이 저려오지만,

구목령까지에는 흔한 휴게소도 없어서 발 한번 뻗지 못하고 쉼 없이 올라간다.

 

 

딱 50분 만에 구목령에 도착하여, 저려오는 다리를 펴고 트럭에서 내린다.

다들 트럭 기사님께 감사를 표하는데, 손 점장은 걸어왔어야 된다면서, 늘 하던 너즈레로 분위기를 띄운다.

 

<구목령(九木嶺, 943m)>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평창군 봉평면, 횡성군 청일면을 넘나드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오래된 고목 아홉 그루가 있었다 해서 구목령이라 불리며, 구나무재라고도 한다.

 

구목령 고갯마루에서 움츠렸던 몸을 풀며 본격적인 한강기맥 산행 준비를 하고,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서며 한강기맥 산행을 시작한다.

 

 

풀과 잡목들이 웃자란 능선 숲으로 이어진 한강기맥 등로를 따른다.

 

괴목 1.

능선을 뒤덮은 나무들로 조망은 전혀 기대할 수 없고,

주변에 널브러진 괴목 감상을 낙으로 삼으며 산행을 이어간다.

 

 

500m 간격으로 산림청에서 이정목을 설치해 놓아서 그나마 심심함을 덜어 준다.

 

 

작은 봉우리 오름길에 돌아보니, 지난 구간의 최고봉인 1191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가늠된다.

 

 

1031봉 정상을 지난다.

 

 

구목령에서 덕고산까지는 고도차가 100여 미터 남짓이어서 거의 둘레길 수준이지만,

웃자란 잡목들이 등로를 덮고 있어서 산행 속도는 평소와 비슷할 정도로 더디다.

 

 

그다지 가팔라 보이지 않은 오름길에 로프를 메어 놓았다.

등로가 뚜렷하지 않은 곳이라 겨울철 눈이 왔을 때나 도움이 될 듯하다.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새벽에 출발한 생곡저수지가 보이고,

 

 

아침 안개가 차양인 듯 드리워진 산그림도 당겨 본다.

 

괴목 2.

 

괴목 3.

 

괴목 4.

서로 경쟁을 해야 잘 자란다는 이치를 말해 주는 듯하다.

 

 

등로는 조릿대 지역으로 이어지며, 등로의 흔적조차 쫓기 힘들 정도다.

 

 

키 높이로 자란 조릿대 지역이 한참동안 이어지더니,

 

 

1082봉쯤에서 잠시 쉼을 하며 권 법사님이 지고 온 수박을 나눈다.

무거운 과일을 가져와 나눈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진대, 고령에 최근 건강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고맙기 그지없다.

 

 

산죽들의 키가 작아지면서 등로가 그림처럼 그려지고,

 

걷기도 한결 수월해지면서, 아침 기운이 물씬 풍기는 숲길을 유유자적 따른다.

 

 

가끔씩 쓰러진 나무들이 등로를 막은 곳 조차도 걷는 재미를 더욱더 배가시키고,

 

그렇게 편안한 등로는 끝없이 이어질 듯 보인다.

 

 

우측에서 오는 갈림길과 만나, 좌틀하여 삼계봉을 향한다.

우측에서 올라오는 등로는 청량리에서 지골을 거처 지능선을 타고 삼계봉으로 오르는 등로인데, 경사가 급하고 거칠어서 매우 험하다고 한다. 훗날 삼계봉에서 분기하는 영월지맥을 걸으려고 검토해 보았는데, 네이버 지도에 표시된 등로라서 쉬울 것으로 생각하면 큰일 나겠다고 접은 등로다.

 

 

갈림길을 지나자 이내 태기산 방향의 영월지맥이 분기하는 삼계봉에 도착한다.

 

<삼계봉(三界峰, 1,105m)>
평창군 봉평면과 횡성군 청일면,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삼계봉(三界峰)이란 명칭은 고시 지명은 아니고, 신산경표의 저자인 박성태가 초창기에 한강기맥을 답사하고 명명했다고 한다. 삼계봉은 홍천, 평창, 횡성군 등 3개 군이 만나고, 홍천강, 평창강, 섬강등 세 강이 갈리는 곳이지만, 이름이 없어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가 셋의 경계가 되는 곳이라라는 뜻으로 삼계봉으로 부르기로 했다 한다.
이곳 삼계봉에서 우측 태기산 쪽으로 영월지맥이 분기되며, 청량봉까지 한강기맥과 영춘지맥이 함께 가며, 청량봉에서 춘천지맥이 분기하고 한강기맥은 불발현으로 이어진다. 청량봉에서 갈라지는 춘천지맥과 이곳 삼계봉에서 분기하는 영월지맥을 한강기맥 삼계봉, 구목령, 청량봉을 이어 영춘지맥이라 부른다.
이정목에 적힌 위도가 37도 37분 36초이다. 도.분.초 모두를 '37' 망통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ㅋㅋ

 

<영월지맥>

삼계봉(1065m)에서 분기한 영월지맥은, 남동쪽으로 태기산(1261m), 덕고산(705m), 봉화산(670m), 풍취산(699m), 매화산(1085m), 치악산 비로봉(1288m), 향로봉(1043m), 남대봉(1182m), 감악산(954m), 감악봉(886m), 석기암(906m), 용두산(871m), 왕박산(598m), 가창산(820m), 삼태산(876m), 국지산(626m), 영월의 태화산(1027m)을 거쳐 남한강에서 맥을 다하는 약 13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곳 삼계봉에서 태기산 방향의 영월지맥이 분기한다는 표지기가 걸려 있다.

 

언젠가 영월지맥도 걸어 보리라 다짐하며 인증을 남긴다.

 

 

삼계봉에서 덕고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도 편안하기 이를 데 없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며 모처럼 근엄한 표정의 손 점장 사진을 한 장 건진다.

 

 

1123봉을 지나는데, 좌후방 나뭇가지 사이로 태기산 정상이 보인다.

당겨본 태기산 정상부 모습.

 

 

전형적인 육산 능선에서 이채로운 바위가 나타나고,

 

괴목 5.

 

괴목 6.

 

 

등로 주변의 괴목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암릉을 좌회 하여 덕고산 오름길을 오르면,

 

 

이내 덕고산 정상에 도착한다.

앞서가던 백두들이 덕고산 정상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덕고산(德高山, 1,125m)>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오늘 산행길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는 어느 산악회에서 걸어둔 깨진 표지판만 있고 정상석은 없다. 동쪽으로 성골계곡을 사이에 두고 태기산과 서쪽으로 한남대계곡을 사이에 두고 봉복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삼한시대 말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새로 일어나는 신라군에 쫓겨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군과 싸웠다는 전설이 있다.
산경표에서는 태치산(泰峙山, 또는 덕고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덕고산(德高山)과 태기치(泰岐峙)로 표기되어 있다. 덕고산은 그 산자락에 천년고찰 봉복사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봉복사에는 '덕고산 봉복사(德高山 鳳腹寺)'란 편액이 걸려있어 덕고산이라 불리고 있단다.

 

북쪽 청량리 지골 방향 산그림.

 

 

후미도 도착하여 모두들 함께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를 일찍 마무리한 백두들은 먼저 출발하고,

남겨진 분들을 불러 모아 오늘 산행 중 최고봉인 덕고산 정상 인증을 남긴다.

 

 

덕고산을 뒤로하는데, 고사목 둥치에 소보로빵 모양의 버섯이 이채롭다.

 

괴목 7.

 

 

좌측 한남대계곡 방향으로 뚜렷한 갈림길을 만나 우측 능선길을 따르면,

 

 

이내 로프가 메어진 급경사 내림길이 이어지고,

 

 

앞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가야 할 한강기맥 봉우리들이 조망된다.

 

 

메어진 밧줄을 잡고 조심조심 암릉을 내려선다.

 

영식 형도 조심조심!

 

 

안부를 지나 1094봉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작은 암릉을 우회하여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금 호젓한 등로가 이어지고,

 

 

이내 삼각점과 이정표가 있는 1094봉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 한켠의 나뭇가지에는 덕고산 방향을 알려주는 등산로 표지판이 걸려 있고, 주변은 잡목들이 조망을 가리고 있다.

 

 

1094봉 정상에서 운무산 방향으로 들어서자, 좌측 한남대계곡 방향의 갈림길이 나온다.

 

<한남대계곡>
1094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횡성군 청일면 신대리로 이어지는 한남대 계곡이다. 봉복사 들머리에 있는 한남대는 대학교가 아니라 마을 이름으로, 신라시대 봉복사에 '한남대'라는 스님이 처음으로 이곳을 개척하여 살았다고 하여, 스님의 법명을 따와 지명이 한남대가 되었다고 한다. 한남대가 있는 신대리는 주변 산기슭에 산죽이 많이 자라고 있어서 예로부터 복조리 산지로 유명하며, 신대리의 지명 유래도 산죽과 복조리와 관련된 이름이라고 한다.

 

괴목 8.

 

 

덕고산을 뒤로하고, 밧줄이 메어진 급경사 구간을 지나는데,

 

전방으로 가야 할 운무산이 조망된다.

살짝 당겨본 운무산 모습.

 

괴목 9.

 

괴목 10.

 

괴목 11.

 

괴목 12.

 

 

괴목들을 카메라에 담는 사이에 고사목에 붙은 버섯이 눈길을 끈다.

덕현 형이 왔으면 뭔 버섯인지 곰방 알 수 있을 텐데...ㅉㅉ

 

 

봉복산 갈림봉 오름길에 돌아본 지나온 한강기맥 능선이 우람해 보인다.

 

 

좌측 봉복산 방향 갈림길이 뚜렷한 봉복산 갈림봉에 도착한다.

 

<봉복산(鳳腹山, 1,022m)>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세가 봉황을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사계절 명성이 자자한 횡성의 명산이다. 특히 겨울철 눈(雪)산행지로 설경이 아름다워, 산악인들이 하산을 잊게 할 정도로 환상적인 산이라고 한다.
산 아래에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봉복사가 있다. 설악산에서 여주 봉미산에 이르는 120km에 이르는 산줄기가 한 마리의 큰 봉황이 누워있는 형상이라 한다. 봉황의 배(腹)에 해당하는 곳이 이곳 봉복산이다. 그래서 봉황의 머리를 뜻하는 소청에는 봉정암(鳳頂菴)이, 배를 뜻하는 봉복산에는 자장율사가 창건한 봉복사(鳳腹寺)가 있다. 꼬리를 뜻하는 봉미산에는 나옹선사의 부도가 있는 신륵사가 있다.

 

 

봉복산까지는 1.2km로 그리 멀지는 않아 혼자라면 봉복산에 다녀왔을 텐데,

봉복산 방향을 한번 흘낏 째려보고, 봉복산 방향으로 인증만 남긴다.

 

괴목 13.

 

 

원넘이재를 향해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따르는데, 우측으로 빼곡한 숲과 산죽이 신비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느 산행기에는 이곳을 봉막재라고 표시해 놓고,

좌측으로 난 희미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면 청일면 속실리 봉막 마을로 이어진단다.

 

괴목 15.

 

괴목 16.

 

괴목 17.

우측에서 봐야 카메라에 담은 이유를 알 수 있는데..ㅉㅉ

 

괴목 18.

 

괴목 19.

 

괴목 20.

 

 

이건 또 뭔 버섯인고?

덕현 형!

집 빨리 짓고, 후딱 오세요!!!

 

 

산죽과 나무들이 만드어 내는 그림에 흠뻑 빠져든다.

 

 

등로는 괴목들이 즐비한 숲속으로 정처 없이 이어진다.

 

괴목 22.

 

괴목 23.

 

괴목 24.

나무둥치 구멍 안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낙엽이 그득한 등로에 흔적을 남기며 걸어 보기도 하며,

 

괴목 25.

찡그린 이유는 뭘까?

 

 

싸리꽃도 담으며..,

유유자적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가 보다.

 

 

지난 구간에 지났던 1191봉 방향도 돌아보고,

 

 

이정목이 있는 810봉을 지나 고도를 계속 낮추어 가면,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삼년대 마을에 있는 청량저수지가 살짝 보이더니,

 

 

삼년대 마을 방향 갈림길이 있는 안부에 도착한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청량저수지를 지나 삼년대 마을로 이어지고,

좌측은 횡성군 황장곡으로 이어진다고 표시되어 있다.

 

<삼년대 마을>
삼년대 마을은 안부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에 있는데, 어느 원님이 원넘이재를 넘어와서 삼년대 마을에서 삼년을 기거하였다 하여 삼년대 마을이라고 불렀단다.

 

 

742 암봉 오름길에 꽃망울을 피어내고 있는 우산나물을 담고,

 

 

742봉을 지나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니, 앞쪽으로 커다란 암봉 두 개가 나란히 나타난다.

다행히 등로는 암봉을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이어진다.

 

 

암봉을 우회하니, 우측 지능선으로 뚜렷한 족적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다행이 갈림길에 이정목이 있어서 알바는 않겠지만, 운무산 방향 표지목이 떨어져 있어서 주의해야 할 듯 보인다.

 

 

등로는 암봉 옆으로 이어지더니, 이내 두개의 암봉을 우회한 지점 능선으로 이어진다.

 

 

잠시 암릉길을 올라서면 표지기가 몇 개 걸려있는 777봉 우회길에 서게 되고,

 

 

777봉을 좌측으로 우회하는 제법 거친 사면길을 지나면 지능선 분기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운무산은 우틀하여 급하게 내려서서 사면을 잠시 따르면,

 

 

777봉을 좌회하여 다시 주능선에 이르서는 좌틀하여 능선을 따라 원넘이재로 내려서게 된다.

 

올려다본 777봉 방향.

 

 

데크목 벤치와 이정표가 있는 원넘이재 도착.

 

<원넘이재(698m)>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에서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 삼년대 마을로 넘나드는 고개로, 원님이 넘었다 하여 원넘이재라고 부른다.
옛날 난리(전쟁) 시절 원님과 애기라는 기생, 그리고 중이 함께 피난을 가다가, 원님은 눈물고개에서 피난길이 한스러워 눈물을 흘렸으며, 중소에서 중이 빠져 죽었다고 한다. 애기소에 이르러 원님이 기생 애기를 놔두고 가려고 이 소(沼)를 건너면 데리고 가고 그렇지 못하면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하자, 애기는 따라가고 싶은 마음에 뛰어 건너다 빠져 죽었다고 한다. 이후 원님은 성골에서 3일을 머물다가 원넘이재를 넘어 삼년대로 갔다고 전하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원넘이재 이정표.

 

 

원넘이재에서 운무산 정상까지는 300여 미터쯤 고도를 높여야 하는데,

오름길은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인공지물인 통나무 계단으로 시작한다.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자,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치악산쯤이 시야에 들어온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자, 앞쪽으로 운무산 정상부 암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어른거린다.

 

 

운무산이 740m 밖에 남지 않았다고 쉽게 생각했는데, 이제부터 마의 운무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니 암봉(전망바위)이 앞을 가로막고,

 

 

암봉에서 쏟아져 내린 바위들이 나뒹구는 사면을 따라 암봉을 좌회하여 오른다.

 

좌회하며 올려다본 암봉.

 

 

서 있기 조차 힘든 가파른 오름길을 밧줄에 의지해 오르다 보면,

 

절벽 옆으로 아침에 지나온 한강기맥 능선이 살짝 보인다.

 

당겨본 한강기맥 능선 너머로, 태기산 풍력발전기들도 보인다.

 

 

암봉을 좌회하여 능선에 올라서면 전망바위 갈림길이 나오는데,

 

운무산은 좌틀하여 능선으로 이어지고, 전망바위는 반대쪽 우측 10여 미터 지점에 있다.

 

 

오늘 산행에서 제대로 된 전망을 보지 못한 터라, 우측 10여 미터에 있는 전망바위로 간다.

 

북쪽 석화산과 방태산 방향.

 

지난 구간의 최고봉이었던 1191봉 방향.

 

오늘 걸어온 덕고산 방향.

 

남남서쪽 치악산 방향.

 

살짝 당겨본 치악산 방향 산그림.

 

전망바위에서 보이는 동쪽 방향 파노라마.

 

전망바위에서 올려다본 운무산 전위봉.

 

 

다시 한번 석화산 뒤쪽에 있을 방태산을 찾아보지만, 이곳의 고도가 낮아서 그런지 방태산은 보이지 않는다.

 

당겨본 석화산 모습.

 

 

우측 아래로 청량리가 내려다 보인다.

 

 

전망바위에서 돌아나와 운무산 오름길로 들어서자 가파른 돌계단길이 이어지더니,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바위 슬랩 구간이 나온다.

로프를 잡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발 디딜 곳이 많아서 어렵잖게 오른다.

 

돌아본 바위 슬랩 구간.

 

 

바위 슬랩을 올라서자, 지나온 한강기맥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한강기맥 능선이 시원스레 가늠된다.

 

남쪽 치악산 방향도 시원하게 산그림을 펼치고 있다.

 

북쪽 석화산 방향.

 

당겨본 석화산 방향.

 

지나온 한강기맥 방향 파노라마.

 

 

슬랩 구간을 올라서니 '위험' 표지판이 나온다.

앞서간 창병씨로부터 운무산 정상이라고 연락이 온다.

나도 300미터쯤 전이니 10분 남짓이면 도착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우측으로 다음 구간 가게 될 수리봉도 시야에 들어온다.

 

좌측 치악산 방향 산그림을 한번 더 카메라에 담고,

 

지나온 한강기맥 능선도 담아 둔다.

 

당겨본 한강기맥 능선 너머로 태기산 능선의 풍력발전기들이 가늠된다.

 

 

운무산 전위봉을 뒤로하고 잠시 잘록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밧줄이 메어진 암릉을 올라서면,

 

 

운무산 정상에 도착하는데, 아무도 없다.

앞서간 분들과 불과 잠시 전에 통화했었는데...ㅉㅉ

원넘이재에서 운무산 정상까지는 1km도 되지 않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후미들이 거리만 생각하며 오르다가 고생할 것 같아, 걱정이 되어 후미를 기다리기로 한다.

 

<운무산(雲霧山, 980.3m)>
홍천군 서석면과 횡성군 청일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 항상 구름과 안개가 끼여 있는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율무성'이라고도 하는데 세종대왕의 신하들이 피신했다는 설이 내려오며 임금바위, 말뚝바위 등 사방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한다. 옛날 삼한 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가 신라의 박혁거세와 세력다툼을 하다가 태기산 전투에서 패하여 운무산으로 철수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산이다.

 

운무산 오름길에 전망 좋은 곳이 많아서 정상에 서면 더 좋을 것이라 기대했는데..ㅉㅉ

역시나 건초는 해가 날 때 말리는 게 정답이다.

운무산 정상부 남쪽 나뭇가지를 젖히니 치악산 방향은 시야에 들어온다.

 

후미를 기다리며 혼자놀기!

 

 

후미들도 원넘이재에서 탈출을 하지 않고, 속속 운무산 정상에 도착하여, 가져온 과일을 나눈다.

 

다시 한번 치악산 방향의 산그림을 카메라에 담고,

 

 

남겨진 백두들이 운무산 정상 인증을 남긴다.

 

 

운무산을 뒤로하고 먼드래재를 향한다.

먼드래재까지 5km 남짓이니 두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으리라 예상했는데..ㅉㅉ

 

 

예쁘게 만들어진 이정표를 지난다.

이런 정도의 능선길이면 1시간 반이면 먼드래재에 도착할 듯하다.

원래 예정은 먼드래재에 12시 반쯤에 도착하려 했는데, 계획은 이미 틀린 것이 되었고,

그래도 점심을 제대로 먹으려면 가급적 빨리 내려가야 한다.

 

 

875봉 헬기장을 지난다.

우측으로 청량리 새대기마을로 이어지는 등로가 있고, 한강기맥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875봉 내림길에 앞쪽으로 시야가 트이며,

가야 할 먼드래재 방향의 능선길에 암봉들이 있음을 확인하며 남은 길도 쉽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다음 구간 가게 될 수리봉 방향.

 

 

안부에 내려서서 후미를 기다리며 편한 쉼을 하는데도 마음은 영 개운치가 않다.

기온은 점점 올라가 더워지는데 우짤까나..ㅉㅉ

 

 

길을 재촉하자 이내 암봉을 만나 좌회 하여 오르고,

 

 

원넘이재 전까지 심심풀이로 찍었던 괴목들도 이제는 그냥 지나친다.

 

 

암봉을 좌회 하여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좌측 852봉 방향 지능선 갈림길에 도착한다.

먼드래재 방향의 한강기맥은 우틀하여 사면으로 이어지고, 좌측 능선은 852봉으로 이어진다.

 

백두의 젊은 일꾼 보성씨도 모처럼 편안한 포즈를 취해 준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후미를 기다리며 지나간 옛 시절의 예기들을 나눈다.

 

드디어 후미들이 도착하는데, 곰방 갈 것 같던 먼드래재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있다.

 

물 없이 더운 날씨에 쉬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중얼거림에,

다시금 기운을 내여 먼드래재로 향한다.

 

 

잠시 후 '길 아님' 표지목이 세워져 있는 851봉 방향의 능선 갈림길을 지나면,

 

 

전망바위봉 직전에서 우틀하여 급경사 사면으로 내려서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전망대를 들리라고 소리쳐도, 이제는 전망도 뭐도 다 싫다며 우측 사면 내림길로 들어서고,

홀로 전망바위로 간다.

 

 

서쪽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방향.

 

가야 할 먼드래재 방향.

 

홍성군 서석면의 동막산 방향.

 

북쪽 아미산 방향.

 

북동쪽 운무산 방향.

 

전망바위에서 본 북서쪽 방향 파노라마.

 

 

뒤에서 오던 손 점장과 보성씨가 인기척을 듣고 전망바위로 올랐다.

 

오늘 걸었던 최고 높이의 덕고산과, 최고 난이도의 운무산을 배경으로.

그래 우리도 자네들처럼 젊었을 때는 이 정도 산행은 식은 죽 먹듯이 했었어!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급경사 사면 내림길로 들어선다.

 

오늘 이런 괴목들을 수없이 보았는데,

운무산으로 들어서면서 조망에 시선을 빼앗겨 괴목 주워 담기를 잊고 있었다.

 

 

바위암릉 날등에서 돌아본 운무산.

 

 

능현사 갈림길을 지난다.

 

능현사 갈림길 이정표.

 

 

암릉길이 연이어 나타나자, 소장파를 자처하는 손 점장도 더위에 누더기가 되어 간다.

 

 

통과가 어려운 암릉은 우회하여 지나기도 하고,

 

 

그렇게 전망바위가 있는 760봉에 도착하니 지난 전망바위에서 앞서 갔던 백두들이 쉼을 하고 있다.

다들 체력은 충분하데, 더위로 사용이 쉽지 않아 보인다.

 

 

760봉을 뒤로하면 급경사 내림길이 이어지고,

 

 

좌우로 희미한 족적의 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난다.

아마도 이쯤이 내촌고개가 아닐까 짐작한다.

 

<내촌고개>

우측 청량리 병목골과 좌측 속실리 내촌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 내촌고개에서 우측으로 가면 삼근암이라는 바위가 있다고 한다. 삼근암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는데, 이 커다란 바위의 무게가 무거울 것 같아서 달아보았으나 세근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하여 삼근암 또는 서근바위라 불리고 있다.

 

 

짧은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이내 낙엽이 수북한 등로가 이어진다.

 

 

작은 봉우리에서 잠시 기다리니, 후미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기맥길이 직진방향의 봉우리를 두고, 좌측으로 휘어지며 편안하게 이어진다.

 

 

오늘 숲은 글자 그대로 "綠陰芳草 勝花時(녹음방초 승화시)
"푸르른 나뭇잎, 우거진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꽃 보다 낫다"는
왕안석의 初夏卽事(초하즉사,초여름 감흥 따라)의 한 귀절이 딱 어울린다.
푸르른 나뭇잎과 향기로운 풀, 간간이 눈에 띄는 야생화 까지...

 

산행 종반이고 기온이 오르며 몸은 무거워지지만,

푸르른 숲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기분 좋은 산행을 이어간다.

 

 

701봉 방향 능선 갈림봉 직전에서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으로 진행한다.

이곳에서 마루금을 고집하며 봉우리로 올랐다가는 701봉 방향으로의 알바가 필연이 된다는 곳이다.

 

 

먼드래재 방향 표지판이 떨어진 이정목을 지나면 통나무 계단길을 따라 내려서게 되고,

 

 

이내 다시 편안한 숲길이 이어진다.

 

 

이제 먼드래재까지의 거리가 1km 안쪽으로 줄어든 이정표가 반갑고,

 

 

낡아 찢어진 현수막이 걸려 있고 밴치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면,

 

 

통나무 계단으로 이어진 내림길을 따라 고도를 낮추어 간다.

 

 

다시 밴치가 있는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

 

 

이내 거대한 절개지가 불쑥 앞을 가로막아 서는 먼드래재에 도착한다.

 

 

절개지 상단에서 좌측면을 따라 이어진 나무계단으로 들어서면,

먼드래재 고갯마루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반갑고,

 

 

이내 먼드래재 날머리에 도착한다.

 

<먼드래재(466m)>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와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를 잇는 고개로 19번 국도가 지난다. 홍천군에서는 옛날 이 고개에 고을의 원님이 3년간 계시다가 넘어가신 고개라 하여 원령(阮嶺)이라 불렀다고 한다. 횡성군에서는 홍천군 서석으로 넘어갈 때, 제일 멀리 있는 고개(머언고개)라는 뜻에서 그리 불려졌다고 하며, 원령(遠嶺), 원등령(遠登嶺) 또는 먼드래재라고 부른다.

 

돌아본 먼드래재 날머리 모습.

 

 

먼드래재에서 기다리던 버스를 우리의 점심이 기다리는 홍성으로 가기 위해 돌려서 오라고 부탁하고,

 

 

뒤이어 도착하는 후미들의 환호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도착한 후미와 함께 먼드래재 고갯마루를 넘어,

 

 

청량리 운무산 임도 입구로 이동하여 버스를 기다린다.

 

 

19번 국도 건너편에는 서석면의 정정을 모아 백두들의 무사 종주를 환영하는 정원이 꾸며져 있다.

 

 

이윽고 도착한 버스에 오르며 한강기맥 여덟 번째 산행을 마무리한다.

 

 

홍천읍에서 목감을 하고,

청국장으로 유명한 '샘터골'이라는 식당으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간다.

 

직원들이 2시 반에 퇴근하므로 좀 일찍 와 달라는 부탁에 부지런히 걸어서 4시 반에야 도착했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특별한 안주 없이도 맛난 뒤풀이가 이어진다.

 

친절한 안주인의 정성이 배어나는 정식 한상!

 

 

평소보다 늦은 시간임에도 즐거운 뒤풀이가 이어지더니,

 

 

서울 선릉역 뒷골목 생맥주 파티까지 이어지고 나서야,

 

 

백두들의 일정이 마루리 된다.

 

기온이 높은 여름철 산행은 힘이 드는데, 더구나 운무산은 예상보다 난이도가 높은 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 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친 백두들에게 감사드린다.

 

산행 초반은 편평한 숲길이 이어지며 괴목 감상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후반부 운무산 구간으로 접어들면서 시원한 조망에 넋을 놓았던 산행이었다.

 

이제 7월과 8월 산행은 가급적 부담 없는 산행이 되도록 잔머리 잔뜩 굴려 봐야겠는데,

당장 다음 산행이 명지산으로 예정되어 있다.

살짝 걱정이 앞서지만 천천히 되는대로 해 보는 수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