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두륜산(703m). 전남 해남군 소재
산 행 일 : 2010. 8. 28.(토)
산행코스 :
(계획) 케이블카승강장~고계봉~오심재~노승봉~가련봉~만일재~두륜봉~도솔재~연화봉~혈망봉~오도치
~왕벗나무자생지~대흥사~집단시설지구주차장 (약 15km, 7시간 예상)
(실행) 케이블카승강장~고계봉~오심재~노승봉~가련봉~만일재~두륜봉~대흥사~주차장
(실제산행, 7시간 소요)
산행참석 : 16명.
<산행 지도>
4년 전 2006년에 덕룡산에서 주작산을 거쳐 두륜산까지의 산행에 나섰다가, 해남의 공룡능선인 주작.덕룡능선에서 젖먹은 힘까지 모두 쏟고는, 정작 백대 명산인 두륜산에는 발도 들이지 못하고 오소재에서 산행을 종료했었기에, 이번에 다시금 백대명산인 두륜산 산행을 계획했다. 지금이 8월 말이라 한여름 무더위도 살짝 지난 듯하고, 두륜산 한 곳만 종주를 하면 되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산행 출발부터 내내 심한 비바람이 몰아쳐서 두륜산 정상인 가련봉에서 대흥사로 중도 탈출하였다. 그리하여 또다시 남도의 명산인 두륜산 능선 종주의 꿈은 다시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산행을 마치고 되짚어보니, 두륜산의 암릉을 지나는 동안에 날려갈 듯이 불어오는 강풍에도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게 오히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장소, 폐쇄된 등산로, 비바람 몰아쳐서 지척조차 분간이 어려운 시야, 강풍에 노출된 암릉 등등 거의 최악의 상황들을 한꺼번에 집합해 놓은 듯한 두륜산 산행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남은 사진 몇 장을 올려놓는다.
두륜산 집단시설지구 입구에서 우측의 대흥사 방향을 두고 좌측으로 진입하여,
두륜산 케이블카 주차장에 정차한 버스에서 산행 준비를 한다.
밖에는 세찬 빗줄기가 끊이지를 않아서 나름 완벽한 우장을 갖추고 버스 문을 나선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두륜산 케이블카 승강장에는 인기척이 전혀 없는 상태이고,
우리는 폐쇄된 등산로인 큰정새미골을 따라 고개봉 정상부에 있는 케이블카 상부승강장을 향한다.
큰정새미골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예상보다 뚜렷하지만,
비가 내리는 한밤중에 등로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어서, 몇 번의 짧은 알바도 겪으며 고개봉을 향한다.
두륜산 케이블카 상부승강장에 도착하니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를 않지만 다행히 문은 열려있다.
날은 어슴프레 밝아 오지만 세찬 비바람으로 움추려든 몸과 마음을 승강장 실내에서 추스르며 여유를 찾는다.
케이블카 상부승강장을 뒤로하고 3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고개봉 정상을 향한다.
내리는 빗줄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 상부승강장을 떠나기 싫은 백두들.
케이블카 상부승강장을 뒤로하고 고개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데크목 포장 등로를 따르는 백두들.
두륜산 고개봉 정상 인증.
<두륜산(頭輪山, 703m)>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三山面) 남쪽에 있는 산으로, 남서쪽의 대둔산(大芚山, 672m)과는 자매봉을 이룬다. 흔히 대둔산 또는 대흥산(大興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산자락에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인 대흥사(일명 대둔사)가 있어서이다. 즉 대둔산은 주봉인 가련봉(迦蓮峰, 703m)을 비롯하여, 두륜봉(頭輪峰, 630m)ㆍ고계봉(高髻峰, 638m)ㆍ노승봉(능허대 685m)ㆍ도솔봉(兜率峰, 672m)ㆍ혈망봉(穴望峰, 379m)ㆍ향로봉(香爐峰, 469m)ㆍ연화봉(蓮花峰, 613m) 등 두륜산의 여덟 봉우리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1979년 12월 두륜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원래 두륜산은 대둔사(大芚寺)의 이름을 따서 대둔산이라 칭하다가 대둔사가 대흥사(大興寺)로 바뀌자 대흥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대둔산의 명칭은 산이란 뜻의 '듬'에 크다는 뜻의 관형어 '한'이 붙어 한듬→대듬→대둔으로 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과거 대둔사는 한듬절로 불리기도 했다. 두륜의 뜻은 산 모양이 둥글게 사방으로 둘러서 솟은 '둥근머리산', 또는 날카로운 산정을 이루지 못하고 둥글넓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또한 대둔사지에 의하면,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의 '륜'과 백두산의 '두'자를 딴 이름이라고도 한다.
두륜산은 국토의 남단인 해남반도에 우뚝 솟아 있어, 정상에 서면 멀리 완도와 진도를 비롯하여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바라다 보인다. 식생은 난대성 상록 활엽수와 온대성 낙엽 활엽수가 주종이며 봄의 춘백(春柏),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동백(冬柏)이 유명하다. 특히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숲과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 2㎞에 이르는 계곡이 장관이다. 또 가을이면 두륜봉과 가련봉 사이에 넓은 억새밭이 펼쳐진다. 대둔산 자락의 왕벚나무자생지는 천연기념물 173호로 지정되었다. 고찰로는 신라 진흥왕이 어머니 소지부인(昭只夫人)을 위하여 544년 아도(阿道)로 하여금 창건하게 했다는 대흥사와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草衣) 장의순(張意恂)이 40년 동안 수도 생활을 했던 일지암(一枝庵)이 있다. 이 때문에 이 일대는 예로부터 한국 고유의 차와 다도로 널리 알려졌고 유자 산지로도 유명하다.
<두륜산 고계봉(頭輪山 高髻峰, 638m)>
두륜산 8개의 높고 낮은 연봉(連峯) 중의 하나로, '높을 고(高), 상투 계(髻)' 자를 쓰는 것으로 보아 '높이 상투처럼 보이는 봉우리'라 하여 그리 이름지어진듯 하다.
'주먹'이 가위를 이겼으니 바로 두륜산 종주길에 나서잔다.
'보'를 내었으면 바로 하산할 수 있었는데..ㅉㅉ
고계봉을 뒤로하고 오심재를 향해 급경사 내림길로 들어서자 등로는 온통 계곡으로 변해 있고,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길(등로)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선다.
고계봉과 노승봉 사이의 안부인 오심재에 도착하니 널찍한 초지가 펼쳐져 있다.
어디 비를 피해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을까?
오심재 한켠의 나무 아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노승봉을 향해 밧줄에 의지해서 미끄러운 암릉길을 오르면,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을 통과하여 오르고,
잠시 더 암릉길을 오르면,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서 있기조차 힘든 노승봉 정상에 도착한다.
<노승봉(老僧峰, 685m)>
두륜산 8개 봉우리들 중 하나로 해남군 북일면과 삼산면의 경계 능선에 있으며, 정상은 넓고 편편한 암반으로 되어있다. 노승봉을 능허대(凌虛臺)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늘 높이 나른다'는 뜻으로 중국의 경승지나 건물에도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지명에도 많이 보이는데 황해도 해주, 강원도 고성, 경북 울진의 지명에서도 보인다. '허공을 가른다', '승천하다', '비상하다'란 뜻의 관용화 된 표현으로, 중국과 조선시대에 보편화되어 해변 절경지에 많이 등장하는 지명이라고 한다.
두륜산 노승봉 정상 증명.
세찬 비바람으로 노승봉에서 여유를 찾을 생각도 못하고 바로 가련봉을 향하는데,
수직의 절벽을 한가닥 쇠사슬에 의지하여 조심조심 내려선다.
수직의 암벽을 내려섰다가 다시 가파른 암릉길을 오르면,
가련봉 정상에 도착한다.
<두륜산 가련봉(迦蓮峰, 703m)>
두륜산 도립공원 중의 최고봉으로 해남군 삼산면과 북일면의 경계 능선에 있다. 두륜산은 가련봉을 비롯해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682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613m)의 8개 봉우리(두륜8봉)가 능선을 이루며 8개 암봉이 둥근 원형으로 천상(天上)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땅에서 연꽃이 솟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서산대사는 두륜산의 지세(地勢)를 말하기를 “북으로는 월출산이 있어 하늘을 괴는 기둥이 되고, 남으로는 달마산이 있어 지축이 튼튼히 연결되어 있고, 동의 천관산, 서의 선은산이 홀연히 마주 솟아있다. 바다가 둘러싸 지키고, 골짜기는 깊고 그윽하니 이곳은 만세토록 불훼의 땅이다”라고 하였다. 이 예언에 따라 산내의 고찰 대흥사와 산림은 임진왜란 때와 한국동란 때도 전화(戰禍)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폭우에도 기록을 남기려는 열정이 넘치는 종협 형도 함께!
바위 벼랑으로 어이진 등로를 밧줄에 의지하여 돌아 나와,
가파른 절벽에 설치된 데크목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다시 빗물이 폭포수처럼 흐르는 급경사 암릉을 내려서게 되고,
억새풀이 싱그러운 만일재를 지난다.
<만일재(挽日峙, 549m)>
해남군 북일면과 삼산면을 잇는 두륜산 내에 있는 고개로, 가련봉과 두륜봉 사이에 있으며 고개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과 이정표가 있다. 지명 유래는 만일암지(挽日庵址)에서 따온 듯하며, ‘해를 당겨 놓았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가을이면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 억새천국을 이루는 곳이다.
만일재를 지나 두륜봉을 향하는 백두들.
두륜봉 입구 삼거리에 도착한 백두들의 표정이..ㅉㅉ
두륜봉을 향해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사자 두 마리가 마주 보며 포효하고 있다고도 하는 구름다리 아래를 지나게 되고,
두륜봉 정상 직전의 진불암 갈림길이 나온다.
두륜봉 정상 증명.
<두륜봉(頭輪峰 630m)>
두륜산 도립공원 봉우리 중 네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지만, 두륜산의 주봉으로 대접받고 있는 봉우리다. 원래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란 뜻으로 “한듬산”으로 불리다가, 그 이후 한듬, 대듬, 대둔으로 변해 한동안 대둔산(大芚山)으로 불리다가, 백두산의 ‘두(頭)’와 중국 곤륜산의 ‘륜(輪)’을 따 두륜산(頭輪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두륜봉 정상에서 서둘러 정상 증명을 남기고 진불암 갈림길로 돌아나와, 원래 예정했던 도솔봉, 연화봉으로 산행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진불암 방향으로 하산을 할 것인지를 두고 잠시 논의를 거쳐, 비바람이 계속 몰아치고 있어서 위험할 수 있는 산행을 멈추고 하산키로 결정한다. 진불암 갈림길에서 진불암 방향의 내림길로 들어서니, 급경사의 내림길이 이어지고,
한참만에 진불암으로 이어지는 진입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진불암 경내에서.
<진불암(眞佛庵)>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頭輪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산내암자다.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1630년(인조 8) 극현(克玄)이 덕호(德浩)와 함께 중건하였고, 1693년(숙종 19) 이홍록(李弘錄)이 덕탄(德坦)과 더불어 중건하였으며, 1750년(영조 26) 온곡대사(溫谷大師)가 우일(宇一)과 함께 중수하였다. 그 뒤 1740년(영조 16)에 위일(位一)이, 1791년(정조 15)에 정능(定能)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응진당·향적당·요사 등이 있다. 응진당은 정면 3칸의 조그마한 전각이며, 그 옆으로 약 50년 전에 건립된 요사채가 있다. 응진당 안에는 조선 초기의 목조 16나한상(羅漢像)이 봉안되어 있는데, 그 조각수법이 특이하다. 원래 이 나한상은 50m 상방에 위치했던 고진불암(古眞佛庵)에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강진에 살던 어부 서씨(徐氏)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서쪽 나라의 배를 만났는데, 그 배 안에 16나한상이 실려 있었으므로 두륜산방(頭輪山房)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또한 1709년에 조성한 범종이 있었으나 암자가 폐허화될 때 대흥사 옆에 있는 청신암(淸神庵)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현재의 규모는 작으나 영곡(靈谷)·영파(影波)·만화(萬化)·운담(雲潭)·아암(兒庵) 등의 고승들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암자이다.
진불암을 뒤로하고 임도를 따라 내려서다가,
도솔재 방향 갈림길에서 잠시 쉼을 하며 배낭털이를 하는 여유도 부린다.
진불암에서 이어지는 도로를 두고, 진불암골을 따라 대흥사로 이어지는 등로로 들어서면,
많은 강우로 진불암골 계곡물이 우람한 소리를 내려 흐른다.
진불암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선 분들도 계곡을 건너 대흥사에 도착하여,
해남의 명찰 대흥사 경내를 둘러본다.
<대흥사(大興寺)>
두륜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의 창건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흥사에서는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기록을 따르고 있다. 여러 고승들에 의해 중건을 거듭하며 교종과 선종을 모두 아우르는 대 도량이 되었으며, 특히 선조 37년(1604) 1월의 어느 날,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마지막 설법을 한 청허당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처영 스님에게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해남 두륜산에 두라고 부탁했다. 불가에서 가사와 발우를 전한다는 것은 자신의 법을 전하는 것을 뜻한다. 왜 그런 외진 곳을 택하는지를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서산대사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면서, 그곳은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종통(宗通)이 돌아갈 곳”이라고 말했다. 서산대사가 입적하자 제자들은 시신을 다비한 후 묘향산 보현사와 안심사 등에 부도를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영골(靈骨)은 금강산 유점사 북쪽 바위에 봉안했으며 금란가사(金爛袈裟)와 발우는 유언대로 대둔사에 모셨다. 이리하여 서산대사의 법맥은 대둔사에서 이어지게 되었으며, 대둔사가 오늘날과 같이 큰 절로 된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둔사는 남쪽 바닷가 구석에 자리잡은 작은 절이었다.
대흥사는 풍수적으로 완벽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단 두륜산이 그렇다. 대흥사 해탈문에서 두륜산을 바라보면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특히 고계봉과 가련봉의 형상이 비로자나불의 대표적인 수인인 지권인을 닮았다. 또한 대흥사는 북쪽의 월출산, 남쪽의 달마산, 동쪽의 천관산, 서쪽의 선은산 등이 사방을 호위하는 완벽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찰을 지켜주는 사천왕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절이 들어앉은 두륜산의 옛 이름이 한듬이었으므로 절도 오랫동안 한듬절로 불렸다. 옛말에서 ‘한’이란 ‘크다’라는 뜻이고 ‘듬’이나 ‘둠’ 등은 ‘둥글다’라거나 ‘덩어리’라는 뜻을 가진다. 바닷가에 갑자기 큰 산이 솟아 있으므로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한듬은 한자와 섞여 대듬이 되었다가 다시 대둔(大芚)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절도 대듬절, 대둔사로 바뀌어 불렸다. 한편, 대둔산은 중국 곤륜산(崑崙山) 줄기가 한반도로 흘러 백두산을 이루고 계속 뻗어내려와 마지막으로 맺은 산이라 하여 다시 백두의 두(頭), 곤륜의 륜(崙)을 따서 두륜산(頭崙山)이 되었다. 두륜산 대둔사의 이름 바뀐 사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제 때 지명을 새로 표기하면서 頭崙山은 頭輪山으로 바뀌었고 대둔사는 대흥사(大興寺)로 고정되었다. 절이 두륜산 대둔사(頭崙山 大芚寺)라는 이름을 회복한 것이 겨우 1993년, 그래서 사람들은 요즘도 대흥사라는 이름에 더 익숙하다. 일주문이나 천왕문에도 대흥사라고 적혀 있다.
두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금당천을 경계로 남원 구역과 북원 구역으로 나뉘고 다시 남원 뒤편으로는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것 또한 대흥사만의 특징으로 대가람으로서의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북원 구역에는 대웅보전과 명부전, 범종각 등이 있으며, 남원 구역에는 천불전, 동국선원, 용화당 등의 강원과 승방이 있다. 표충사 구역에는 서산대사의 사당이 있으며, 대광명전 구역에는 선원으로 사용되는 대광명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경내에 걸려 있는 현판 글씨는 조선시대의 명필가들이 직접 쓴 것으로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일화로 유명하다. 제주도로 귀양가던 추사가 대흥사에 들러 원교가 쓴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리게 하였는데 제주도 귀양에서 돌아오며 다시 걸게 하고 자신이 쓴 ‘무량수전’ 현판은 내리게 하였다. 제주도 귀양에서 겸손의 미덕을 쌓은 것이다.
대흥사의 이모저모를 둘러본다.
대흥사에서 바라본 두륜산이 와불(臥佛)의 형태라는 안내판.
넓은 마당에서 대흥사가 자리한 두륜산 능선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마치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주작산, 노승봉, 가련봉, 만일재, 두륜봉, 도솔봉 등으로 이어지는 두륜산의 주요 봉우리들이 부처의 몸을 형상한다. 두륜봉이 얼굴, 노승봉과 가련봉이 손과 가슴 부분, 왼쪽 끝자락의 고계봉이 발에 해당된다고 한다. 누워 있는 얼굴 윤곽이 비교적 정확하고, 가슴 부분은 손을 모아 가슴 위에 올린 모양이다. 발은 발목에 베개를 놓고 발을 포갠 모양이라 높이 솟아 있다. 대흥사가 자리한 두륜산 전체가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대흥사(대둔사)는 서산대사가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라고 했듯이 길이 남을 길지임에 틀림이 없다고 한다.
비구름이 덮고 있는 두륜산의 와불 능선을 배경으로.
다시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대흥사를 뒤로한다.
유선여관 앞을 지난다.
해남 유선여관은 유선관이라고도 부르는데,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여관이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의 여관이다. 오래전 수도승들의 객사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지금은 숙박시설로 사용하고 있고, 안에서 막걸리와 파전 등을 즐길 수도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서편제'와 '장군의 아들' 등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몇 년 전 1박2일에서 촬영하여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미 종일토록 비를 맞은 탓인지 퍼붓는 장대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착지를 향한다.
대흥사 집단시설지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한다.
두륜산케이블카 하부승강장 옆에 있는 해남온천으로 이동하여 몸을 덥히고,
해남읍에 있는 한식당으로 이동하여,
남도의 한정식으로 뒤풀이 시간을 가진다.
두 시간여의 푸짐한 뒤풀이를 마감하고,
서울로 향하는 애마에 몸을 싣는다.
양재에서의 2차.
한국의 백대명산 중 한 곳을 찾아 멀리 반도의 남쪽 끝 해남반도의 두륜산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케이블카 개설로 산객의 발길이 끊긴 고계봉 오름길을 캄캄한 한밤중에 퍼붓는 폭우를 뚫고 올라서고,
폭우로 계곡이 되어버린 등로를 따라 내려섰다가는 비바람을 맞으며 수직의 암릉을 오르내리고,
세찬 강풍에 서 있기조차 어려운 암봉들을 오르내린 참으로 지난한 산행이었다.
여름철 산행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산행을 마친 백두들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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