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설악산(1,708m) 강원도 양양군, 인제군 소재.
산 행 일 : 2010. 10. 09.(토)
산행코스 : 오색매표소~대청봉(1,708m)~소청봉(1,550m)~봉정암~쌍운동계곡~수렴동계곡~수렴동대피소
~백담계곡~백담사 (10시간 소요)
산행참석 : 20명.
<산행코스>
지난해 가을 두타.청옥산 단풍산행을 갔었기에 올해도 단풍산행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끊이지를 않아서 설악산 단풍산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설악산이야 어느 능선, 어느 계곡을 들어도 최고의 단풍을 즐길 수 있겠지만, 새벽 일찍 오색에서 대청으로 올랐다가 소청을 거쳐 구곡담계곡과 수렴동계곡으로 내려오면서 설악산의 멋진 단풍을 감상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오색~대청봉 코스는 4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고지대 코스 중에서 가장 빠르게 대청봉에 오를 수 있다. 남설악 탐방지원센터에서부터 시작되는 돌계단과 가파른 경사 길은 힘이 들기는 하지만 굽이굽이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의 길을 오르며 몸과 마음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서는 대청봉에 서게 된다. 대청봉에서 중청을 거처 소청까지는 설악의 모든 능선과 골짜기를 굽어보며 편안히 걸을 수 있고, 이후 봉정암을 거처 백담사까지는 그야말로 단풍으로 채색된 설악의 진면목을 목도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설악산(雪嶽山, 1,708m)>
강원도 속초시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양양군·인제군에 걸쳐있는 산이다. 지명은 중추(中秋)부터 눈이 내려 그 이듬해 여름에야 녹으므로 설악 또는 설산(雪山), 설봉산(雪峰山), 설화산(雪華山)이라고도 불렸으며, 금강산을 서리뫼(霜嶽)라고 불렀듯, 설악산을 설뫼(雪嶽)라고도 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외설악 쪽만을 설악이라 했고, 내설악 쪽은 따로 한계산(寒溪山)이라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에서는 설악을 영산이라 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적혀 있으니, 신라 때부터 설악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양양도호부」에 "명산(名山)은 설악(雪嶽)이다."는 기록이 처음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산천조에 "설악(雪岳) 부 서북쪽 50리에 있는 진산이며 매우 높고 가파르다. 8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으로 이렇게 이름 지었다."는 기록에서 설악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여지도서』에 "이 산은 회양 금강산 남쪽 기슭에서 분기되어 용산리의 후룡(後龍)인 회전령(檜田嶺)에 이르러 다시 갈라져 고성(高城) 탄둔령(炭屯嶺)을 이룬다. 설악산에서 뻗어나온 줄기는 한계산(寒溪山)을 이루고 한계산에서 뻗어 나온 줄기는 오색령(五色嶺)을 이루며, 오색령에서 뻗어와 기린(麒麟) 박달령(朴達嶺)을 이루고 박달령에서 뻗어와 춘천 기린 방태산(方胎山)을 이루며, 방태산에서 뻗어와 인제의 안산(案山)이 되는데 이름은 남산(南山)으로 미륵천(彌勒川)에 이르러 그친다. (중략) 또 건이치에서 나뉘어 갈라져 거꾸로 30리를 뻗어가 마노역(馬奴驛)에 이르러 봉황대(鳳凰臺)를 이루고 주추(蛛湫)에 이르러 그친다."는 기록이 있다. 일명 '대청봉(大靑峰)'이라고도 하는데,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는 "멀리서 보면 아득하게 푸르게 보이므로 그 봉우리를 가리켜서 청봉(靑峰)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청봉은 설악산의 주봉우리로 북서쪽에 중청봉(中靑峰, 1,676m)이 있고, 중청봉 북쪽에 소청봉(小靑峰)이 있다. 『해동지도』에는 신흥사(神興寺)만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지도』이후에 만들어진 고지도에는 설악산과 신흥사가 모두 표현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설악산이 양양군 서면 오색리(五色里)에 위치한 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고봉인 대청봉을 중심으로 북북서쪽의 마등령(馬等嶺) · 미시령(彌矢嶺), 서쪽의 한계령(寒溪嶺)으로 이어지는 설악산맥, 서쪽의 귀때기청 · 대승령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북북동쪽의 화채봉 · 칠성봉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 등 3개의 주능선으로 나뉘어진다. 이들 능선을 경계로 그 서쪽은 내설악, 동쪽은 외설악, 남쪽은 남설악으로 각각 불리는데, 남설악에는 오색지구를 추가하기도 한다. 내설악에는 미시령·대청봉·한계령을 수원지로 하여 소양강·북한강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발달했다. 내설악의 명승지로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1)에 창건된 고찰 백담사(百潭寺)를 비롯해 대승(大勝)·와룡(臥龍)·유달·쌍폭(雙瀑) 등의 폭포, 수렴동(水簾洞)·가야동(伽倻洞)·구곡담(九曲潭) 등의 계곡과 옥녀탕(玉女湯) 등 이름난 곳이 많다. 외설악은 대청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경계로 북외설악과 남외설악으로 나뉜다. 관모산(冠帽山:874m)·천불동계곡·울산바위·권금성(權金城)·금강굴 외에 비룡폭포·토왕성폭포·귀면암(鬼面巖)·와선대(臥仙臺)·비선대(飛仙臺) 등 기암괴석과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이렇듯 설악산은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雪山)·설봉산(雪峰山)·설화산(雪華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고, 금강산(1,638m)을 서리뫼[霜嶽]라고 한 것과 관련해 우리말로 설뫼[雪嶽]라고도 하였다.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향로봉(1,293m)·금강산, 남쪽으로는 점봉산(點鳳山, 1,424m)·오대산(1,563m)과 마주한다.
식생 분포도 다양해 온대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원시림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대청봉에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눈잣나무와 눈주목은 남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북방계 고산식물이다. 그 밖에 소나무·벚나무·개박달나무·신갈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눈측백·금강초롱꽃·금강분취 등 총 882종의 관다발식물이 분포하며 이 가운데 65종이 특산식물, 56종이 희귀식물이다. 동물은 사향노루·산양·곰·하늘다람쥐·여우·수달 등 희귀종을 포함하여 총 39종의 포유류와 62종의 조류 및 각종 파충류·양서류·어류·곤충 등이 서식한다. 1965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1982년 8월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보존지역·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대한민국의 단풍나드리에 나선 모든 분들이 한계령을 넘어서 오색으로 밀려든 듯, 오색리의 모든 주차장에는 단풍객을 싣고 온 버스들로 꽉 들어차 있다. 우리는 오색온천 주자장에 겨우 자리한 버스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 문을 나선다.
서울의 명동거리 만큼이나 길을 메우며 지나가는 단풍객들의 물결에 휩쓸려 오색매표소 앞에 도착하였고,
우리 회원들의 인원파악도 제대로 못한 채 오색남설악 매표소를 들어서며 설악산 단풍산행을 시작한다.
<오색리(五色里)>
양양군지에 따르면 "본래 명칭은 가라목(加羅木)이 많음으로 '가라피리'라고 하였으나 행정수복 후에 오색1리로 편입되었다. 옛날 주민들은 갈대와 가라목피로서 짚신, 삿갓, 갈자리 등을 만드는 수공업으로 생업을 삼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오색'이란 말은 오색약수(五色藥水)에서 따온 말인 듯한데, 오색약수는 16세기 성국사의 한 스님이 발견했다고 한다. 오색약수라는 이름은 성국사 뒤뜰의 오색화에서 기인한다고 하는데, 오색화는 5가지 색의 꽃이 피는 신비한 나무라고만 되어 있는데 더 이상 알 길은 없다. 또한 5가지 맛이 난다고 오색약수라 불렀다고도 한다.
오색매표소를 들어서서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데크목 등로를 따르는데,
대청으로 향하는 단풍객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며 천천히 진행하고 있다.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가파른 비탈길을 미끄러지며 오르느라 힘들었던 등로가
이제는 정비가 되어 한결 수월하게 진행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대청으로 이어지는 인파에 석여서 돌계단과 사면 오름길을 오르고 또 오르다가,
설악폭포 인근의 쉼터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쉼을 한다.
첫번째 쉼을 위해서는 2시간을 걸었는데, 두번째는 30분 만에 대청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서 다시 쉼을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예기가 있듯이 모든 일이 한번 시작을 하게 되면 그냥 그러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다.
대청으로 이어지는 능선 오름길을 따르다가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점봉산 방향.
한계령과 가리산 방향.
조침령 방향.
점차 날이 밝아오며 주변의 나무들이 단풍을 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돌아본 조침령 방향.
동남쪽 양양 방향.
드디어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 정상부 이정표가 나타나고,
대청봉 정상에는 산객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바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대청봉(大靑峰, 1,707.9m)>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예전에는 청봉(靑峰)·봉정(鳳頂)이라 했는데, 청봉은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공룡릉·화채릉·서북릉 등 설악산의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계곡·가야동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 곳에서 발원한다. 인근에 중청봉·소청봉이 있다. 정상은 일출과 낙조로 유명하며, 기상 변화가 심하고 강한 바람과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융단처럼 낮게 자라 국립공원 전체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눈으로 덮여 있고, 6, 7월이면 진달래·철쭉·벚꽃으로 뒤덮이며, '요산요수'라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와 대청봉 표지석이 있다. 정상까지 오색 방면, 백담사 방면, 설악동 방면, 한계령 방면의 코스가 있는데, 오색에서 설악폭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5.3㎞(약 4시간 소요)가 최단거리 코스이다.
대청봉 정상석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겨우 기회를 잡아 대청봉 정상 기념촬영을 한다.
자랑스러운 얼굴들!
서쪽 한계령과 가리봉산 방향 파노라마.
서남쪽 인제군 내린천 방향.
서북능선과 중청봉 방향.
살짝 당겨본 가리봉산 방향.
확 당겨본 가리봉산과 주억봉 모습.
온통 구름바다를 이루고 있는 북동쪽 속초 방향.
대청봉을 중심으로 북쪽과 동쪽은 운해가 덮고 있고, 남쪽과 서쪽으로만 조망이 트여 있다.
아마도 우리가 다음 산행으로 가리봉산을 예정하고 있어서 미리 그쪽 방향의 조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남남서쪽 점봉산 너머 멀리로 방태산 줄기도 가늠된다.
남서쪽 만경대 너머 내린천쯤도 구름호수가 만들어져 있다.
서서남쪽 서북능선 방향.
서북능선을 가렸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멀리 안산도 뾰족이 드러나고 있다.
대청봉 정상에서 조망이 트인 가리봉산 방향으로 셔터를 누르고 있는 산객들.
만경대와 가리봉산 방향.
귀때기청봉 방향.
중청봉도 이제 구름모자를 벗었다.
한번 더 당겨본 가리봉산과 주억봉 모습.
이제 대청봉을 뒤로하고 중청대피소를 향한다.
울긋불긋 단풍이 흩뿌려진 폭포골 모습.
대청봉을 내려서는 산객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대청봉과 중청봉 사이의 안부에 자리한 중청대피소가 단풍 불꽃에 둘러싸여 있다.
돌아본 대청봉 모습.
발 디딜 틈이 없이 단풍객들로 붐벼는 중청대피소를 지나 바로 소청봉으로 향한다.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중청대피소와 대청봉 모습.
기상레이더가 있는 중청봉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중청봉(中靑峰, 1,676m)>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방면의 설악산에 있는 봉우리로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과 소청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다. 소청봉에서 약 20분 거리, 대청봉에서 약 30분 거리이며, 대청봉과 사이에 중청대피소(설악산장)가 있다. 원래는 외설악에서 바라보면 쌍봉처럼 보이는 2개의 묏부리를 대청봉과 소청봉으로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이들을 대청봉과 중청봉으로 부르고 내설악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를 소청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비선대~귀면암~희운각~소청봉~중청봉~대청봉~설악폭포~오색지구에 이르는 대청봉 코스는 16㎞ 거리에 약 10시간 20분이 소요된다.
끝청갈림길 삼거리에서 소청봉으로 진행한다.
돌아본 대청봉 방향.
중청봉을 우회하여 소청봉으로 향하다가 돌아본 대청봉 모습.
중청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출입금지 팻말이 걸려 있다.
중청봉에서 소청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에도 단풍객들이 인산인해다.
귀때기청봉과 서북능선에는 아직도 구름이 걸려 있고,
서쪽 안산과 인제 방향의 내설악은 운해에 덮여 있다.
가리봉산과 귀때기청봉 방향.
당겨본 가리봉산과 주억봉 모습.
돌아본 대청봉과 중청봉 모습.
내설악의 멋진 단풍을 기대하며 소청봉으로 이어진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면,
희운각 방향 갈림길이 있는 소청봉 정상을 지나게 된다.
<소청봉(小靑峰, 1,550m)>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방면의 설악산에 있는 봉우리로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과 중청봉에 인접한 봉우리다. 원래는 외설악에서 바라보면 쌍봉처럼 보이는 2개의 묏부리를 대청봉과 소청봉으로 불렀는데, 언제부터인지 이들을 대청봉과 중청봉으로 부르고 내설악에서 보이는 이 봉우리를 소청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속초시 설악동 방면에서 시작되는 천불동계곡 등산로와 인제군 용대리에서 시작되는 백담계곡 등산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으며, 여기서 중청봉을 거쳐 대청봉까지는 약 50분 거리이다.
소청봉에서 좌측의 봉정암 방향 내림길로 들어서면,
급경사의 돌계단길이 이어지며,
이내 소청산장에 도착한다.
서늘한 안개가 들어찬 소청산장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소청산장 전경.
그래도 단풍놀이 산행이라 뜨듯한 라면국물을 마련할 여유도 가진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소청산장을 뒤로하고,
봉정암으로 향한다.
봉정암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면,
등로 주변의 단풍 색깔이 더욱 짙어지고,
봉정암 뒤편의 바위들이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암봉들 아래에 자리한 봉정암이 시야에 들어온다.
좌측 구담계곡 방향 조망.
봉정암 도착.
<봉정암(鳳頂庵)>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雪嶽山. 1,708m) 소청봉 북서쪽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 성지인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대청봉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데, 해발고도 1,244m 지점에 있어 백담사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기 위한 산행은 매우 힘겹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현존하는 전당은 법당과 요사뿐이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층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다른 사찰의 여느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백담사 부속암자로서 선덕여왕 12년인 643년 자장율사가 중국 당(唐)나라 청량산에서 구해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려고 창건했다는 게 정설이다. 자장율사는 찬란한 오색빛과 함께 날아온 봉황새가 인도하는 곳에서 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했고 작은 암자를 세웠다. 봉황이 부처님 이마로 사라졌다는 봉정암(鳳頂庵) 이름의 유래이기도 하다. 적멸보궁이라 법당에 불상이 없다. 산정의 5층 석탑에 불사리가 봉안돼 있어서다. 5층 석탑은 부처님 뇌사리를 봉안했다고 해서 불뇌보탑(佛腦寶塔) 또는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이라 불린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 17) 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6·25전쟁 때 화재로 자칫하면 명맥이 끊어질 뻔하였다.
무너져 내릴듯한 바위 절벽 아래에 있는 봉정암을 둘러보러 경내로 들어선다.
봉정암에서 사리탑과 용아장성릉 들머리를 둘러보러 윤장대가 있는 오세암 방향으로 들어서면,
산령각 앞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진 돌계단 오름길을 오르면,
봉정암의 하이라이트, 부처님의 뇌사리가 모셔진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이 나온다.
봉정암 뒤편의 바위들이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 사리탑은 봉황의 가장 중요한 목과 입부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바로 그곳에 세운 사리탑에는 부처님의 뇌사리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 이 탑은 보물 1832호로 중요 문화재이기도 하다.
5층석탑이라고도 불리는 부처님의 뇌사리가 모셔진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 모습.
사리탑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서니 용(龍)의 이빨을 닮았다는 용아장성릉이 앞쪽으로 펼쳐진다.
<설악산 용아장성(雪嶽山 龍牙長城)>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방면의 설악산에 있는 능선으로, 2013년 3월 11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02호로 지정되었다. 내설악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봉정암 사리탑을 기점으로, 동으로는 가야동계곡과 만경대, 공룡능선을 거느리고 서로는 수렴동계곡, 구곡담계곡을 끼고 서북 주릉이 장대하고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공룡능선과 함께 설악산의 대표적 암봉 능선으로 꼽힌다.
수렴동 대피소 근처의 옥녀봉에서 시작하여 작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바위지대를 통과하면 뜀바위·작은바위·개구멍바위 등이 자리한다. 북쪽의 가야동계곡 끝 지점으로는 내설악에서 경치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로 알려진 내설악 만경대가 있다. 용아장성은 운해가 암봉들을 휘감을 때면 마치 신선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운 비경을 자랑한다. 가을철이 되면 주변의 계곡이 붉은 단풍으로 물들면서 용아장성의 모습이 더욱 도드라진다. 봉정암 사리탑 동쪽으로는 가야동계곡을 비롯하여 만경대와 공룡능선이 펼쳐지며, 서쪽으로는 수렴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을 끼고 서북능선이 장대하고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명칭은 용의 이빨(龍牙)처럼 날카로운 20여 개의 크고 작은 암봉들이 용의 송곳니처럼 솟아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 쳐져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가을이면 수렴동과 가야동이 붉은 단풍바다를 이루는 등 절경을 이루는 곳이지만, 바위로 이루어진 산세가 험난하여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수렴동대피소가 있는 옥녀봉까지 이어진 용아장성릉 모습.
용아장성릉 우측의 골짜기가 가야동 계곡이다.
용아장성릉을 배경으로.
우측 공룡능선은 아직도 구름모자를 쓰고 있다.
이 능선을 넘어 가야동 계곡을 건너고 공룡능선 서쪽 사면을 따라 이어진 등로를 따르면 오세암이 나오는데,
오세암 방향의 순례길로 들어서는 만식형을 불러 세워,
다시 봉정암으로 돌아나간다.
봉정암으로 돌아 나와 본 건너편 능선이 단풍으로 불타고 있고,
앞서 내려간 백두들을 따라잡으려 서둘러 봉정암을 뒤로하고 가파른 내림길로 들어선다.
앞서 내려단 백두들이 단풍으로 불타는 등로를 따라 구곡담계곡으로 내려서고 있다.
좌측 암봉쯤에 사자바위가 있을 듯 하지만 찾아볼 여유도 없이,
서둘러 내림길을 내려서다가,
철계단 앞에서 외투를 벗어서 배낭에 갈무리한다.
앞서 내려간 백두들과의 간격이 40분이나 벌어져 있다.
설악산의 단풍이 이런 것이구나!
구곡담계곡에서 봉정암까지를 깔딱고개라고 하는데,
깔딱고개를 내려서니 봉정골에서 흘러내리는 계류가 나오고,
구곡담 계곡을 좌우로 넘나들며 단풍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단풍을 즐겨 흘러내리던 옥류가 작은 폭포를 만들며 옥색의 연못을 만들고 있다.
단풍숲을 뚫고 솟은 암봉이 눈길을 끈다.
살짝 당겨본 암봉 모습.
쌍폭을 지나 잠시 내려서니 구곡담 계곡을 우에서 좌로 건너는 다리가 단풍 사이로 보이고,
구곡담 계곡을 좌측으로 건넌다,
다리를 건너는데, 위쪽으로 극락세계로 오르는 사다리 같은 형상의 관음폭포가 보인다.
'관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폭포는 설악산 외에도 더러 있다고 하나 그래도 가장 유명한 것은 설악산의 관음폭포이다. 폭포의 형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데, 장마철 비가 내려 젊잖은 이 관음폭포도 에너지를 받아 엄청난 양과 압도적인 넓이로 바위 절벽을 뛰어내린다. 지금은 청명한 가을이라 물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아 의젓한 폭포의 형상을 띠고 있다.
관음폭포 위쪽의 폭포가 쌍룡폭포인데,
쌍용 폭포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왼쪽 폭포와 오른쪽 폭포의 두 갈래로 되어 있단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폭포는 힘차게 물이 흘러 남폭이라고도 하고 왼쪽의 폭포는 여인의 치맛자락에 떨어지는 듯하다고 해서 여폭이라고도 한다.
단풍에 취하여 10여분 더 내려서니 굵은 동아줄 같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동아폭포가 보인다.
눈길이 흰 물거품을 일으키며 내려가는 동아폭포를 따르다가 멈추는 곳에는 맑은 소(沼)도 만들어 놓았다.
계곡 우측의 용아장성릉 모습.
구곡담 계곡이 놓인 다리를 건너 다니며 울긋불긋 먼진 단풍을 즐기고,
바위를 다듬으며 흐르는 옥류가 만들어 놓은 폭포와 소도 감상한다.
혹자는 이 폭포를 용소폭포라 부르기도 한다.
아래에서 본 용소폭포 모습.
지나온 용소폭포쯤을 배경으로.
그렇게 구담계곡을 따라 단풍을 즐기며 한참을 내려서는데,
앞서 갔던 백두들이 쉼을 하고 있다.
앞서 가시던 권법사님 내외분이 예쁜 단풍나무 앞에서 포즈를 잡아주시고,
아래 아래에는 하늘에나 있을 법한 예쁜 소(沼) 자리하고 있다.
구곡담계곡의 넓은 반석이 산객들을 유혹하고,
서북능선 한계령삼거리 방향에서 흘러내리는 백운동계곡이 구곡담계곡에 합류하는 지점을 지난다.
단풍 든 설악의 구곡담계곡을 흘러가는 백두들.
사람이 만든 시설물 조차 단풍든 계곡과 하나되는 풍경에 젖어들며,
설악의 가을빛에 녹여진다.
단풍!
단풍 든 계곡!
대청봉에서 가야 할 백담사까지 딱 절반인 지점이다.
가을이 짙어지는 설악산 단풍에 취해,
맑은 계곡물도 비췻빛으로 물들었다.
용아장성릉의 마지막 봉우리인 옥녀봉 아래에 있는 수렴동대피소를 지난다.
탐방로가 패쇄되어 있는 가야동계곡 모습.
이제는 한결 넓어진 계곡을 따르면,
오세암 갈림길 삼거리를 지나게 되고,
잠시 후 영시암도 지난다.
마등령에서 흘러내리는 곰골도 지나고,
가을이 스며들고 있는 널찍한 등로를 따라 백담사로 향한다.
백담사 앞 계곡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있고,
백담사 앞 맑은 계곡물에 먼지 묻은 손을 깨끗이 하고,
백담사 경내를 휘~이 둘러본다.
<백담사(百潭寺)>
강원도 인제군 북면(北面) 용대2리 설악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 1) 자장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한계령 부근의 한계리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라고 하였다. 690년(신문왕 10년)에 불타버려 719년(성덕왕 18)에 재건하였는데, 《백담사사적기》에 이때의 중건과 관련된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낭천현(지금의 화천군)에 비금사가 있었는데 주위의 산에 짐승이 많아 사냥꾼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이 때문에 산수가 매우 부정해졌는데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다. 더러움을 싫어한 산신령은 하룻밤 사이에 절을 설악산 대승폭포 아래의 옛 한계사터로 옮겼다. 승려와 과객들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비금사는 틀림없었지만 기암괴석이 좌우에 늘어서고 앞뒤에 쏟아지는 폭포가 있는 산이 이전과 달라 그 까닭을 몰라할 때 갑자기 관음청조가 날아가면서 “낭천의 비금사를 옛 한계사터로 옮겼노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 전설은 그대로 전해지며, 이 지방 사람들은 춘천시 부근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 등의 지명이 절을 옮길 때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려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구전으로 미루어 보면 한계사를 중창할 때 비금사를 옮겨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790년에 한계사터 아래 30리 지점으로 옮겨서 중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984년(성종 3)에 다시 불타버려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로 개명하였다. 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다가 1432년 4번째 화재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그 뒤 2년 만에 심원사지 아래 30리쯤 되는 곳에 법당과 요사채를 세우고 선구사라 하였으나 1443년에 불타버렸고, 1447년 옛 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워 영축사라 하였다. 그러나 1455년 6번째 화재로 불에 타고 이듬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으로 옮겨 중건하여 백담사라 하였다. 1772년(영조 51) 다시 불타버리자 1775년 최붕, 태현, 태수 등이 초암을 짓고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 등의 건물을 중건하고 심원사라 하였다가 1783년(정조 7년)에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바꾸었다. 근대에 이르러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을 집필하였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봉정암, 오세암, 원명암 등이 있다.
내설악의 명찰인 백담사(百潭寺)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만해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 집필로 더욱 유명하다. 창건 이래 지금의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1783년까지 무려 일곱 차례에 걸친 화재를 만났는데 그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이사 도중, 떨어뜨린 청동화로와 절구가 춘성군 절구골과 한계리 청동골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주지스님의 꿈에 나타난 백발노인이 일러준 대로 대청봉에서 절까지 물웅덩이(潭)를 세어 백번째가 되는 현재의 자리에 절을 세우고 '백담사(百潭寺)'라 이름 지은 후부터 좀처럼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백담사 대웅보전 전경.
백담사 샘물로 수통을 다시 채우고,
백담사를 뒤로한다.
자리 잡고 기다리던 분들 틈에 끼여서 용대리행 버스에 올라,
용대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설악산 단풍산행 일정을 마무리한다.
인제에 있는 목욕탕에서 먼지를 닦고,
인근의 식당에서,
뒤풀이 시간을 가진다.
알콜이 가져다준 객기!
멋진 단풍에 취하고, 맛난 음식과 알콜에 한번 더 취해서,
집으로 향한다.
카페의 기록들을 정리하느라 10여 년이 지난 산행의 모습들을 다시금 기록으로 남기려니, 새삼 사람의 기억이란 게 그다지 믿을 게 못된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어떤 기록보다 뇌리에 담아둔 기억이 확실할 것으로 믿었었는데..ㅉㅉ.
먼 훗날 언제 어느 분이 옛 추억을 더듬다가 찾을지도 모를 일이고, 혹여 세월이 더 흘러서 산행을 못하게 될 때쯤에는 컴퓨터를 켜고 옛날의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짓는 날이 있을지 몰라서 우리의 발자취를 더듬어서 정리해 놓는다. 혹여 잘못된 부분이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댓글로 남겨두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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