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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지리산 태극유람 6차(삼각봉~벽소령) : 지리산을 찾아 시산제를 올리며 오늘과 같은 내일을 기원드린다.

by 재희다 2019. 5. 26.

산 행 지 : 지리산 태극유람 6차(삼각봉~벽소령) 경남 함안군.

산 행 일 : 2019. 05. 25.(토)

산행코스 : 음정마을 ~ 연하천 삼거리 ~ 삼각봉 갈림길 ~ 삼각봉 ~ 형제봉 ~ 벽소령 ~ 소금쟁이능선

              ~ 지리산자연휴양림 ~ 음정마을 (12km, 8시간 30분 소요)

산행참가 : 19백두.

주) 2019년 시산제를 겸한 산행.

 

<산행지도>

 

'시산제(始山祭)'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산악인들이 매년 연초에 산행을 시작하면서 지내는 산신제'다. 산들의 고향 네팔에서는 한해를 양력 사월 중순쯤에 시작하는데, 백두산우회는 한해를 매년 5월에 시작한다고 해도 될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 네팔 랑탕 트레킹 이후 처음 하는 산행이고, 시산제를 겸한 산행이라 버스를 45인승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28인승 버스에 빈자리를 넉넉히 가지고서 산행지인 지리산을 향해 양재를 줄발 한다.

 

 

어둠을 뚫고 쉼 없이 달리던 버스가 음정마을에 입구에 멈추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고,

산행 준비를 하여 버스를 나서니, 밖은 벌써 훤히 밝아오고 있다.

 

북동쪽 창암산 방향으로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다.

 

 

 

음정 마을을 가로질러 벽소령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음정(陰丁) 마을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속하는 마을로, 양정.하정 마을과 함께 삼정리에 속하는데,

마을의 위치가 음지에 취락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뜻에서 음지정제라고도 한다.

 

 

우전방으로 지리산 칠암자 중의 한 곳인 영원사가 자리한 삼장능선 영원령 방향이 조망되고,

 

도로를 두고 지름길인 숲길로 들어서니 등로 주변의 소나무가 멋지다.

 

 

벽소령 아래까지 이어지는 임도에 올라선다.

이곳은 지리산 칠암자순례산행 등 몇 차례 왔던 곳이라 주저하지 않고 차단기가 설치된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남쪽 지리산 주능선 위에는 하현달이 아쉬운 듯 떠 있고,

 

천왕봉 방향의 아침해를 잉태한 동쪽 하늘은 출산을 준비하는지 붉게 물들고 있다.

 

 

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차단기를 통과하여 임도를 따라 벽소령 방향으로 진행한다.

 

 

좌측 지리산 주능선 위로 아침해가 솟아오르고,

 

삼각봉 정상이 시산제 거행 장소로 적합한지를 확인키 위해 서둘러 진행한다.

 

 

앞쪽으로 가야 할 형제봉과 삼각봉쯤이 녹색의 두터운 이불을 덮고 있고,

 

돌아본 창암산 방향으로는 삼정리 마을이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연하천대피소 방향 갈림길 도착.

 

이곳에서 삼각봉으로 가려면 연하천대피소 방향으로 들어서서 삼정능선으로 올라야 한다.

 

갈림길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시산제 장소 탐색을 위해 서둘러 오느라 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킨다.

 

 

갈림길에서 삼정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들어서면,

가파른 돌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샘터도 못 본 채 지나친다.

 

 

출입금지 팻말이 걸린 삼성능선에 올라서니,

오늘 새벽 연하천 대피소에서 출발하였다는 산객 한 분을 만난다.

지긋한 연세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건강한 화색이 넘쳐난다.

 

 

지리산 북부능선(삼정능선)을 따라 연하천 대피소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잠시 쉼을 하고,

 

 

제법 널찍한 공터가 나오면 시산제 장소로 적합한지도 살피며,

 

호젓하고 완만한 능선길을 진행하면,

 

 

지리산 주능선에 도착하는데, 연하천 대피소는 우측으로 가야 하고,

벽소령 방향으로 가야 하는 우리는 좌틀하여 삼각봉 정상으로 향한다.

 

 

지도에는 '삼각고지'라고 표시된 삼각봉 정상에 도착하여 보니, 시산제를 지낼 수 있는 정도의 공터는 있다.

혹여 삼각봉 정상이 좁으면 연하천 대피소로 가서 시산제를 지낼 계획이었던지라,

손 총무님께 삼각봉 정상으로 오라고 연락하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삼각봉, 삼각고지(1,462m)>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마을에서 연하천으로 오르는 직등 코스 좌측에 있는 봉우리로, 6.25 동란 당시 군사요충지로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봉우리였다고 한다. 최근까지 근처에는 그 당시의 벙커 흔적과 총알을 맞은 나무도 보였다고 하며, 당시 북한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던 이현상이 사살당하기 직전까지 이 일대를 무대로 활약한 곳이었다고 한다.

 

삼각봉 정상에서 본 서쪽 명선봉 방향.

 

남쪽 백운산 방향.

 

 

 

 

삼각봉 전망바위에서 서쪽 명선봉을 배경으로.

 

남쪽 빗점골과 광양 백운산 방향 조망.

 

동쪽 촛대봉 방향.

 

 

명선봉을 배경으로.

 

 

 

한참이 지나서 도착하는 시산제 제관(祭官)들에게 찰떡을 나눠주고,

 

 

삼각봉 정상에서 제관들이 나눠 가져온 제물들을 진설하며 시산제를 준비한다.

 

시산제 제물은 백두산우회 회원들이 조금씩 나누어 준비했다고 한다.

각종 나물은 오순영님이, 떡과 김치, 소곡주는 서분덕님, 과일은 김영임님,

다양한 전은 전찬화님, 편육과 곰취 나물 등은 석경숙님이,

그리고 진도 홍주를 제주(祭酒)로 준비한 김보성님,

기타 나머지 일체는 정복순님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또한 많은 후원금으로 시산제를 빛내주신 회원님들을 포함하여

모든 회원님들의 정성으로 시산제를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지리산 삼각봉 정상에서 2019년 백두산우회 시산제를 거행한다.

 

회장님의 강신례와 초헌을 시작은 시산제가 시작되고,

 

제문을 낭독하는 창병씨의 목소리가 지리산 산정에서 울러 퍼진다.

동안 백두산우회를 보살펴 주신 산신께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백두들의 행복한 산행이 계속 이어지길 기원드린다.

 

 

 

 

 

산신께 올려졌던 제물들을 오가는 산객들은 물론 여러 제관들이 함께 나누며 아침식사를 한다.

 

 

 

 

 

지리산 삼각봉 정상에서 2019년도 시산제 기념 촬영을 하고,

 

 

명선봉을 배경으로 인증샷도 남기고는,

 

 

벽소령을 향해 삼각봉을 뒤로하니,

앞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펼쳐지며 천왕봉도 조망된다.

 

 

삼각봉 내림길 절벽을 우회하는 등로에는 데크목 길도 만들어 놓았는데,

이래서 지리산 주능선 산행이 좋다고들 이구동성이다.

 

 

우측으로 빗점골과 하동의 형제봉 그리고 광양의 백운산이 조망된다.

 

빗점골은 덕평봉과 형제봉 아래 골짜기로 이어지는 지능선들의 산세가 마치 머리를 빗는 '머리빗'과 같이 능선 사이의 골짜기가 점점이 패인 모양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빗점골은 지리산의 수많은 골짜기 중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로 6.25 동란 당시 빨치산의 최후 항전지였던 곳이라고 한다.

 

가야 할 형제봉 좌측으로 지리산 천왕봉도 조망된다.

 

 

형제봉 직전 봉우리를 좌회 하다가 멋진 바위가 있는 공터 나무 그늘에서 편안한 쉼을 즐긴다.

 

그 사이에도 산나물과 뱀을 찾아 수색에 나서는 분들도 있고,

 

오가는 산객들의 모습을 보며 옛날 젊은 시절을 떠올려 보는 분들도 있다.

 

 

봉우리를 우회하여 내림길에 들어서자 앞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전망바위가 나오고,

형제봉은 물론 벽소령에서 이어가게 될 소금쟁이능선도 조망된다.

 

북쪽 음정마을 방향 조망.

 

남쪽 빗점골과 하동 형제봉(성제봉) 방향 조망.

 

시산제를 거행했던 삼각봉 방향.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자,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아서는 형제봉에 도착한다.

 

<형제봉(兄弟峰)>
우뚝 솟은 암봉이 우애 깊은 형제와 비숫한 모습이라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한 개의 큰 석상(石象)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두 개의 석상이다. 옛날 지리산에서 두 형제가 수도하고 있을 때, 산의 요정 지리산녀의 간곡한 유혹을 받았으나 형제가 다 같이 이를 물리치고 도를 통하여 성불을 하고,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산녀의 유혹을 경계하여 도신(道身)를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 두 개의 석불이 되었다고 전한다.

일반적으로 형제봉이란 지명은 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있을 때 붙여지는 명칭인데, 이곳의 형제봉은 봉우리 아래에 두 개의 암봉이 나란히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형제바위는 10m가 넘는 두개의 바위가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입석(立石) 바위로, 여기에는 그 옛날 성불하던 두 형제가 산의 요절 지리산녀의 유혹을 경계하여 도신을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그만 몸이 굳어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배어있는 바위다.

 

형제봉(형제바위) 아래의 이정표에는 벽소령까지 1.5km라 표시하고 있다.

 

 

순회형이 채취한 '참나물' 비교.

위쪽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참나물이고, 아래쪽은 그냥 풀이라고 하는데,

언뜻 보아서는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역시 전문가의 눈은 다른 듯.

 

 

전망바위에 도착한 영식형이 지리산 천왕봉을 가리키며,

 

'저기 천왕봉에는 언제쯤 가게 되는 겨?'

"아마 2~3년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돌아본 형제봉 방향.

이곳에서 보니 형제봉이 왜 형제봉이라 불리는지를 알겠다.

 

전망바위에서 편안한 휴식을 갖는 백두들.

 

남쪽 빗점골과 광양 백운산 방향.

 

 

돌로 포장된 지리산 주능선 등로는 절벽 사이로 이어지고,

 

 

뒤쳐진 분들을 기다리는 사이에도 산나물의 행방을 쫓기에 여념이 없다.

 

 

 

좌후방으로 지리산 북부능선인 삼장능선이 조망되고,

 

 

편안한 등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니 대피소가 있는 벽소령에 도착한다.

 

<벽소령(碧宵嶺, 1,350m)>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와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사이를 잇는 지리산의 고개로, 지방도 제1023호선이 지나나 차량은 통행할 수 없다. 벽소령이라는 이름을 순우리말로 풀어쓸 경우 '푸른 하늘재'가 된다. 여기서 벽소(碧宵)라는 이름은 벽소한월(碧宵寒月)에서 유래하였는데, 의미는 '겹겹이 쌓인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띤다'라는 의미다. 이 벽소라는 단어는 《택리지》에도 나오는데, 《택리지》에서는 "지리산 북쪽은 모두 함양 땅이며 영원동, 군자사, 유점촌이 있는데, 남사고는 복지라 하였다. 또 벽소운동(碧霄雲洞)과 추성동은 다 같이 경치 좋은 곳이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벽소운동(碧霄雲洞)은 본래 골짜기를 표현한 것이지만 벽소령의 '벽소'와 상당히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19세기에 지리산을 유람했다고 알려진 하익범은 《유두류록(遊頭流錄)》이라는 책을 통해 "벽소령 냉천점(冷泉岾) 70리에 이르러서부터 비로소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바뀌었다."라고 하여 벽소령의 존재를 표현했다. 그 외에 《영남지도》와 《광여도》 등의 지도에서는 벽수령(碧愁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처럼 벽소령에서 바라보는 달 풍경은 매우 아름다워 이를 벽소명월(碧霄明月)이라고 하며 지리산 10경 중 제4경에 해당한다.

 

이 고개 정상에는 '부자(父子)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정에 인걸(仁乞)이란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매일 나무와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못에서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걸 훔쳐보던 인걸이 선녀들의 날개옷을 훔쳐서 오다가, 그중 아미(阿美)라는 선녀의 날개옷이 돌부리에 걸려 찢어져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걸은 아미 선녀를 집으로 데려왔다. 인걸은 그 후 하늘나라에서 아미 선녀와 살 것을 허락받고 두 남매를 낳아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미가 장난 삼아 보관 중이던 찢어진 날개옷을 한번 입어 보자고 했다. 인걸이 찢어진 곳을 기워서 입혀 주자, 아미는 그만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인걸과 두 남매는 아미가 내려오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내려오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친 이들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뒤 벽소령 높은 곳에 바위 셋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자바위라 칭하고, 후세 사람들은 이 계곡을 아미 선녀가 날아서 떠났다 하여 비리내계곡(비리내골)이라고 한다.

 

 

벽소령에서 소금쟁이 능선은 좌측 음정 방향으로 들어서야 한다.

 

 

벽소령대피소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쉼을 하는 백두들.

 

 

 

 

후미가 도착하자 이내 벽소령대피소를 뒤로하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벽소령에서 음정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로 내려서는 등로는 온통 초록으로 덮여 있는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벽소령을 출발한 지 10여분 만에 임도에 내려서서 좌측 음정마을 방향 임도를 두고 우틀하여 진행하면,

 

출입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임도 끝이 나오지만,

임도는 출입금지 표지판 뒤로도 앞쪽으로 보이는 소금쟁이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50만원을 벌어 볼까, 말까!

 

 

초목이 자라난 옛 임도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소금쟁이능선에 도착하여 이어지는 임도를 두고 좌측 소금쟁이능선으로 들어서면,

 

널찍한 공터가 있고 공터 건너편으로 소금쟁이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 들머리가 있다.

 

 

울창한 원시림과 조릿대가 빼곡한 소금쟁이능선으로 뚜렷한 등로가 이어져 있다.

 

 

 

조망이 트인 바위에 올라서니, 앞쪽으로 가야 할 삼정마을이 조망되고,

 

우측 오공능선 너머로 천왕봉쯤도 조망된다.

 

 

법으로 정해 놓지 않은 등로라서 그런지 숲의 모습을 자연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고,

 

키 높이로 자란 조릿대 지역조차도 그리 어렵잖게 지나며 자연과의 거리가 훨씬 좁혀진 느낌을 받는다.

 

 

숲이 우거진 능선에서 빠꼼한 공터가 나오며 걸음을 멈추자 숲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전해 온다.

 

 

쉽게 찾아보기 어렵던 연지리(連理枝) 나무들이 자주 눈에 뜨이며, 백두들의 발길을 더디게 한다.

 

 

 

 

이 나뭇가지는 서로 맞닿아 떨어지기 싫은 듯 부등켜안고 있다.

 

 

이제는 숲의 향기에 취해서 인지,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등로에 대한 우려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지리산에는 있는 이런 멋진 숲길이 반달곰 전용 도로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급경사 내림길을 한참이나 내려왔는데도,

 

능선을 덮고 있는 조릿대 지역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능선 앞쪽으로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보이는데,

 

다가가서 보니 아래 둥치의 속은 텅 비어있다.

 

 

좌측 아래로 비리내골이 내려다 보이고,

 

소금쟁이능선 날머리가 있는 지리산 자연휴양림 도로가 나온다.

 

 

날머리를 나와서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등로가 반달곰 전용 등산로였단다.

진즉에 예기했으면 사람 전용 등로를 찾아봤을 텐데..ㅉㅉ

 

 

소금쟁이능선 날머리를 벗어나,

 

지리산자연휴양림 도로를 따라 내려가게 된다.

 

 

누가 '어디서 왔냐'고 묻거들랑, 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다'라는 해답을 전해 듣고는,

 

 

휴양림 숙소동이 가끔씩 보이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우측 망바위골로 이어지는 임도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의 휴양림 경내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좌측으로 휘어지며 계곡을 건너 휴양림 정문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두고,

계곡 우측의 오솔길로 들어서서 계속 진행한다.

 

이제는 법정 등로에 있다며, 보무도 당당한 백두들.

 

 

계곡 우측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잠시 따르면, 우측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나오고,

 

이 출렁다리를 건너면 매표소가 나온단다.

 

 

좌측 아래로 면경같이 깨끗한 소가 보이자,

 

잠시 발길을 멈추고 쉬어가기로 한다.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오느라 달아오른 발을 담그니,

우리 백두들의 산행에서 이런 호사가 언제였던가 하는 탄성이 절로 난다.

 

 

 

 

 

잠시의 호사를 뒤로하니 지계곡을 건너는 철교가 나오고,

 

우측 범바위골쯤으로 보이는 골짜기를 건넌다.

 

 

깊은 산골에 잔디구장도 보이고,

 

랑탕 트레킹 때 대상포진 증세를 우려했던 손 총무님이 여전히 배낭을 앞뒤로 메고 있는 모습이 반갑다.

 

 

음정마을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니,

 

 

좌측으로 리조트와 펜션 건물들이 멋지게 보이고,

 

 

계곡 건너편 음정마을 입구에 서 있는 버스가 보인다.

 

북쪽 삼정리 방향 조망.

 

음정마을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

 

 

비리내골 계곡을 건너서,

 

 

새벽에 출발했던 음정마을 입구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친다.

 

 

 

인월에서 목감을 하고 운봉읍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지리산 흑돼지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무사한 일상이 이어지도록 산신님의 가호가 있을 것을 믿으며 서울로 향한다.

 

 

휴게소에서 본 붉게 물들고 있는 저녁노을.

 

 

네팔 랑탕히말 트레킹을 다녀온 후 2019년 시산제를 지내며 처음으로 하는 산행에서,

모두들 건강한 모습을 확인하게 되니 한결 안도가 된다.

모두들 각자가 처한 난관들을 헤치며 일상을 꾸려가는 모습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고,

모쪼록 산신님의 가호 아래 편안한 일상이 이어지길 기원 드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