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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강기맥 12차(발귀현~신당고개) : 멋진 조망을 즐겨 걸은 한강기맥 갈기산 구간.

by 재희다 2019. 6. 9.

산 행 지 : 한강기맥 12차(발귀현~신당고개) 강원도 홍천군, 횡성군, 양평군.

산 행 일 : 2019. 06. 08.(토)

산행코스 : 유현리 ~ 성지봉 ~ 금물산 ~ 시루봉 ~ 발귀현 ~ 578봉 ~ 597봉 ~갈기산

              ~ 용화사갈림길 ~ 신당고개 (7.5km + 8.7km = 16.2km, 8시간 예상)

산행참가 : 19백두.

 

<산행지도>

 

지난해 초겨울 한강기맥 삼마치에서 신당고개까지 예정했던 산행 도중, 금물산쯤에서 폭설이 내려 부득이 발귀현에서 산행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그때 가지 못한 갈기산을 이번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발귀현에서 출발하여 팥배고개까지 가려고 하니 신당고개를 지나는 44번 국도가 6차선에 중앙분리대까지 세워져 있어서 3km 정도를 우회해야 하기에, 산행 출발지를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로 하여 성지지맥 구간 일부를 코스에 포함시켜 신당고개에서 산행을 마무리하도록 계획했다.

 

양재에서 유현리치안센터를 목적지로 입력하고 출발한 버스에서 곤한 잠에 빠졌다가, 얼추 도착할 시간쯤에 눈을 뜨고 지도앱을 켜 보니, 벌써 목적지를 지나쳐 횡성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기사분에게 목적지를 지나쳤음을 알려 유턴을 하게 하여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지체하여 산행들머리가 있는 유현치안센터에 도착했다. 버스의 시동이 꺼지니 귀에 익은 엔진 소리 대신에 사람들의 숨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려와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두어 시간 정도를 더 뒤척이다 일어나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산행 들머리로 예정된 유현리치안센터 앞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리니,

서늘한 공기가 청량감을 더하며 지난겨울에서 봄 동안에 미세먼지로 고생한 폐부를 앃어내는 듯하다.

 

6번 국도 건너편 남쪽으로는 매봉산(좌) 능선이 멋지고,

 

6번 국도 풍수원 방향으로는 강원도 산골 답지 않은 포근한 시골마을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

저 도로를 따라 서울 방향으로 조금 가면 한국인에 의해 최초로 건립된 성당인 풍수원 성당이 있다.

 

<풍수원성당(豊水院聖堂)>
풍수원성당은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에 있는 천주교 원주교구의 성당이다. 한국에서 4번째로 지어진 성당이고, 강원도에서 세워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유서 깊은 절충식 고딕 양식 건축물이라는 특징이 있다.

풍수원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또는 1803년 무렵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40여 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으로,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교우촌이다. 이후 풍수원 교우촌에서는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 왔으며, 1866년(고종 3년, 병인년) 교회 대박해(병인박해)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은 곳이라 사방으로 연락하여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는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프랑스인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대주교가 1888년 6월 20일 이곳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프랑스 출신 르메르(Le Merre) 신부가 부임하여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당시 풍수원 성당은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 간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고종 33년(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티노, 1893∼1943) 신부가 부임하여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 진 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건축 양식은 고딕 양식으로,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을 깔았고, 내부에는 기둥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이게끔 줄눈을 그려 넣었다.

풍수원 성당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체 현양 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제1회 성체 대회가 1920년에 실시된 이래 한국전쟁으로 인해 건너뛴 3년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왔다. 풍수원은 신앙의 요람터요 신앙 선조들의 얼이 담겨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30여 명에 달하는 한국인 사제들이 탄생하였다.

 

 

유현 1리 버스정류장 우측 농노로 접어들며 산행을 시작한다.

 

 

농노로 접어들어 100m쯤 가면, 좌측 계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가 나오고,

비포장 임도로 들어서면 이내 앞쪽으로 인가가 나오는데,

인가 직전에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오른다.

 

 

임도를 따라 잠시 오르면 임도는 우측 능선 방향으로 휘어지며 이어지고,

네이버 지도의 등로는 좌측 골짜기로 표시되어 있는데, 좌측 골짜기 방향에는 등로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좌측 골짜기에서 헤메다가 우측 능선으로 올랐다는 선답자의 산행기를 떠올리고는,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오르면,

 

 

가족 묘지가 꾸며져 있는 능선이 나오고,

뒤쪽으로는 출발지인 유현리 마을과 건너편 매봉산 자락의 옥스필드 CC가 조망된다.

 

 

좌후방 풍수원 방향 조망.

 

 

가족묘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숲으로 들어서면, 등로의 흔적이 희미해지며 빼곡한 관목숲이 잠시 이어지다가,

 

이내 뚜렷한 능선길이 나타난다.

 

돌아본 매봉산 방향.

 

 

뚜렷한 등로를 따라 잠시 오르자 널찍한 파묘터가 나오고,

제대로 된 등로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잠시 목을 축이며 쉼을 한다.

 

 

사람들의 지나다닌 흔적이 거의 없는 가파른 능선 오름길을 따르는데,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밝은 햇살이 비춰온다.

 

 

능선에 커다란 바위들도 보이기 시작하더니,

 

 

암릉구간도 지나게 되며,

 

좌측으로 성지지맥의 성지봉과, 그 너머 멀리로는 용문산도 가늠된다.

 

<성지봉(聖地峰, 791m)>
성지봉은 산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천주교와 관계가 깊은 곳이다. 조선 순조 원년(1801년) 신유박해와 고종 3년(1866년) 병인양요, 고종 8년(1871년) 신미양요 등으로 극심하게 탄압받았던 천주교 신도들이 이곳 성지봉 아래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금물산의 최고봉인 성지봉은 금물산 정상에서 서남으로 뻗은 성지지맥에 있다.

 

 

앞을 가로막아서는 암릉을 우회하여 오르면,

 

 

 

관목이 빼곡히 자란 폐헬기장 봉우리를 지나게 된다.

 

 

폐헬기장봉을 지나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쉼을 하고,

 

 

가파른 내림길로 들어선다.

 

 

 

동쪽 어답산 방향 산그림이 나뭇가지 사이로 멋지다.

 

 

 

안부를 지나 다시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좌후방으로 산행 출발지였던 유현리 앞에 있던 옥스필드 CC가 다시 조망된다.

 

매봉산 방향.

 

거친 능선길에서 잠깐씩 보이는 조망에 탄성을 하는 백두들.

 

 

좌측 성지지맥 능선이 가까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오늘 가야할 한강기맥의 갈기산도 조망된다.

 

성지봉(우)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은 성지지맥 조망.

 

 

성지지맥 갈림길 직전 봉우리를 내려서는 백두들.

 

 

돌아본 암릉.

저 암릉에 올라서면 조망이 멋질 텐데, 홀로하는 산행이 아니니..ㅉㅉ

 

 

안부를 지나니,

 

우측으로 한강기맥의 금물산이 보인다.

오늘 저 금물산 정상을 찍고 한강기맥길을 이어가게 된다.

 

 

안부를 지나 성지지맥갈림길이 있는 783봉으로 오르는 백두들.

 

암릉을 우회하는데,

암릉 위의 바위가 미끄러져 내릴 듯이 보인다.

 

 

성지지맥 783봉 갈림길 도착.

시간 여유가 있으면 400m 거리에 있는 성지봉을 다녀올 예정이었지만,

홀로 하는 산행이 아닌지라 우틀하여 한강기맥 방향으로 진행한다.

 

성지봉 방향을 물끄러미 보면서 발은 금물산 방향으로 향한다.

 

 

금경사를 잠시 내려서면 직진의 능선길을 두고, 좌틀하여 사면처럼 보이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무심코 직진을 하면 우측 지능선으로 내려가게 된다.

 

 

완만한 내림의 숲길을 따르다가,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고,

 

 

우후방으로 방금 전에 지나온 성지지맥 갈림길이 있던 783봉(좌)과 성지봉(우)이 지척으로 보이고,

 

우측 멀리로는 용문산도 조망된다.

 

 

한강기맥 성지지맥 갈림봉 직전의 암봉에 올라서니,

 

오늘 가야 할 갈기산과 용문산 방향의 운해가 장관이다.

 

북서쪽 갈기산과 매화산 방향 조망.

 

살짝 당겨본 매화산.

 

가야할 한강기맥 갈기산 방향 운해.

 

서쪽 용문산과 갈기산 방향.

 

남쪽으로 보이는 성지봉 모습.

 

건강한 가족의 나들이 모습.

 

 

 

 

 

 

전망바위에서 본 갈기산 방향 운해 (동영상 41")

 

멋진 운해 조망을 선사하는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금물산을 향한다.

 

 

돌아본 783봉과 성지봉 방향.

 

 

성지지맥 분기점을 지나 지난해 초겨울에 올랐던 금물산으로 향한다.

 

 

한강기맥 금물산 정상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한다.

 

<금물산(今勿山, 776m)>
강원도 홍천군 남면. 횡성군 서원면.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금물산(今勿山)은 금은산(今銀山)이라고도 불린다. 마을에서 전하는 이야기로 이 산에서 금과 은을 캐어 금은산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산의 모양이 그물을 친 것 같다고 하여 그물산이라 불렀단다. 금물산은 금물산면이라는 조선 시대 행정지명에 반영되기도 했다.

 

금물산 정상에서 본 갈기산 모습.

 

 

갈기산 정상을 알려주던 이정목의 밑동이 썩어 있어서 하마터면 다칠 수도 있다며 옆으로 치워두었다.

홍천군에서 멋진 금물산 정상석을 세워주길 바라며..ㅉㅉ

 

 

 

식사를 하는 사이에 운해가 걷히며 갈기산 방향으로 이어진 한강기맥 능선이 드러나 보인다.

 

 

지난해 초겨울 폭설로 금물산 정상 인증을 못했었는데,

오늘 금물산 정상 인증을 남기고 한강기맥 잇기에 나선다.

 

 

금물산을 뒤로하고 성지지맥 분기봉으로 돌아 나와,

우측 한강기맥 능선으로 들어서니,

 

성지지맥은 한강기맥 상의 금물산에서 서남쪽으로 분기하여 성지봉(791m), 삼각산, 성주봉, 뚜갈봉, 자산(246m)을 거쳐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56km의 산줄기다.

 

가야 할 갈기산 방향으로 이어진 한강기맥 능선이 시원스레 가늠되고,

 

갈기산 좌후방 멀리로 용문산도 뚜렷하다.

 

 

지난해 초겨울 폭설이 내려서 미끄러운 암릉길을 아이젠도 없이 내려설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암릉인데,

이제는 녹색의 나뭇잎에 둘러싸여 있다.

 

 

좌측으로 조망으로 트이는 암릉길이 나오며 좌측의 성지지맥 능선이 조망되고,

 

남서쪽 양평군 청운면 방향 산그림이 멋지다.

 

녹색의 융단은 덮고 있는 듯도 하고,

녹색의 바다에 파도가 일렁이는 듯도 한 산하 모습.

 

서쪽 용문산 방향.

 

 

전망바위에 올라 금물산 방향을 조망하는 두규형.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북동쪽 상창고개 방향.

 

금물산과 성지봉 방향 조망.

 

남쪽 성지봉과 성지지맥 방향 조망.

 

 

좌측으로 절벽이 나오며, 앞쪽 용문산 방향 조망이 시원스레 트인다.


따님의 신발끈을 고쳐 메어 주는 엄마!

 

 

잠시 후미를 기다리며 걸음을 멈춘 백두들.

 

금물산에서 발귀현까지의 구간에 송충이가 유독 많이 보인다.

 

 

금물산을 출발한 지 한 시간여 만에 시루봉 정상에 도착한다.

 

<시루봉(504m)>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도원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멀리서 보면 떡시루를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시루봉이라 하였단다. 시루봉 정상에는 삼각점과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스테인리스 표지판이 있다.

 

시루봉 정상에서 본 갈기산과 용문산 방향.

 

 

시루봉을 뒤로하고 발귀현을 향하는데,

한강기맥능선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표지기도 잘 보이지 않으므로 주의해서 진행해야 한다.

 

 

폐 임도로 내려섰다가,

 

 

이내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백두산우회 표지기?

 

 

뚜렷하지 않은 능선을 관목들이 덮고 있어서 좌측 지능선 방향으로 잠시 알바도 다녀오고,

 

 

관목과 덩굴이 우거져서 진행이 쉽지 않다.

 

 

작은 봉우리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쉼을 하고,

 

 

지난해 초겨울 폭설로 힘겨운 산행을 이어가다가 쉼을 했던 장소도 지나고,

 

 

관목들이 빼곡한 등로를 잠시 따르면,

 

 

발귀현으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임도를 따라 발귀현으로 진행하는 백두들.

 

 

계속 임도를 따라도 발귀현까지 갈 수 있지만,

한강기맥 능선을 따르려고 우측 능선을 기웃거려 보는데 이곳은 아니고,

 

 

국기게양대가 있는 이곳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야 한다.

 

계양대 옆으로 들머리를 알리는 표지기도 한두 개 보인다.

 

 

임도를 두고 한강기맥 능선으로 들어서는 백두들.

 

 

좌측 아래로 임도가 나란히 이어지고,

 

능선 위로는 작은 오솔길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우측 아래로 예쁜 전원주택이 보이고,

건너편으로는 망덕산도 지척으로 보인다.

 

 

 

거대한 엄나무가 있는 발귀현에 도착한다.

고목이 된 엄나무에는 가시가 없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발귀현으로 내려서는 백두들.

 

 

<발귀현(發歸峴, 285m)>
발귀너미고개, 발귀고개, 새터고개라고도 부른다. 홍천군지에 의하면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와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리를 잇는 도계(道界) 역할을 하는 고개다. 고려말 왕씨(王氏)들이 신대리 동가른 다리로 피난 와 살면서, 고려의 옛 도읍 송도가 그리워질 때마다 이 고개까지 왔다가 저녁이면 되돌아갔다고 한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발귀현 고갯마루에서 과일 파티를 하며 여유로운 쉼을 즐긴다.

 

 

발귀현 고개에서 갈기산 방향 들머리는 좌측 10여 미터 지점에 있다.

 

 

가파른 절개지를 올라서서,

 

 

작은 소나무 숲에 관목들이 등로를 덮고 있는 완만한 능선을 오르면,

 

 

거대한 송전탑 아래를 지나게 되고,

 

 

 

송전탑을 지나면 임도길이 이어지고, 곧바로 우측 숲으로 들어 오름길을 따른다.

 

 

 

439봉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이 길게 이어진다.

 

송충이 털이!

 

 

애고 더운 날씨에 뭔 고생이람!

 

 

439봉 정상에 올라 한참의 쉼을 한다.

 

 

 

439봉을 뒤로하면 260번 송전탑이 나오며 갈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서너 개의 넘어야 할 봉우리들이 가야 할 길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고,

 

우측으로는 신대리가 내려다 보이고, 건너편으로는 매봉산과 가끈봉이 조망된다.

 

 

다시 임도길에 내려서고,

 

 

임도길로 5분 정도 진행하다가 우측 능선 숲길로 들어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데,

회장님과 총무님은 계속 임도를 따르고 있어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오라 외쳐 부른다.

 

 

돌아본 망덕산(좌)과 금물산(우) 방향.

 

 

지능선 갈림길을 지난다.

아마도 임도를 따르던 분들은 진행방향 좌측의 지능선으로 올라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한고비를 올랐다 싶으면 다시 또 가파른 오름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면 578봉 정상에 도착하고,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했던가,

서 여사님의 따님이 어려운 산행을 가뿐히 이어가고 있다.

 

578봉 정상부에서 서 여사님이 준비해온 산딸기와 각자의 배낭에서 꺼낸 과일로 풍성한 과일 파티가 벌어지며,

 

임도로 갔던 회장님도 도착하여 여유 있는 쉼을 한다.

 

 

 

 

한참의 쉼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금 갈기산을 향한다.

 

 

연이어 나타나는 작은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이 있어서 다행스럽고,

 

 

 

안부를 지나 다시 봉우리를 오르는가 싶으면,

 

다행스럽게도 또다시 593봉을 우회하는 우회길이 있다.

 

 

다시 둥그런 안부를 지나면,

 

 

거대한 송전탑이 있는 597봉을 지나게 되고,

 

앞쪽으로 갈기산 정상이 지척으로 보인다.

 

 

갈기산 정상 직전의 마지막 안부를 지나 오르면,

 

 

좌측 지능선 방향으로 신대(새터)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나게 된다.

신대(新垈, 새터)는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 웃고론 동북쪽의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신대(새터)라고 부른다고 한다.

근방에는 홍천군 신대리와 양평군 청운면 신대(새터)가 있는데, 이곳은 청운면 신대(새터) 마을로 이어지는 등로다.

 

 

거대한 암봉이 앞을 막아서는데,

 

 

암봉을 좌회 하여 암릉길을 오르면,

 

 

'절벽바위'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의 표지판이 나오는데,

 

절벽바위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에 비해,

뭐 그다지 큰 절벽도 아닌 작고 앙증맞은 절벽이 앞을 가로막지만,

 

 

절벽바위를 좌측으로 우회해서 어렵잖게 올라가게 된다.

 

 

그렇게 절벽바위를 좌회하여 오르면 이번에는 '부부바위'라는 표지판이 나오는데,

앞쪽으로 아무리 찾아봐도 부부 비슷한 모양의 바위는 보이 지를 않는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뒤돌아 보니,

등로 우측으로 부부처럼 나란히 서 있는 바위가 보인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바위라는데,

내보기엔 그냥 그저 그래 보인다.

 

 

부부바위를 지나 밧줄에 의지하여 바위길을 조심스럽게 올라서면,

 

 

 

갈기산 정상 직전의 조망바위가 나오는데,

지나온 한강기맥이 시원스러운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동쪽 오음산 방향 조망.

 

멀이 오음산은 물론이고 오늘 지나온 성지지맥과 금물산, 그리고 이어온 한강기맥 능선이 한눈에 가늠된다.

 

북동쪽 매화산 방향.

 

동쪽 상창고개 방향.

 

동남쪽 금물산 방향.

 

성지봉 방향.

 

 

살짝 끌어 본 오음산 방향.

 

금물산에서 이어온 한강기맥 능선을 가늠할 수 있다.

 

 

금물산 방향 조망.

 

 

 

갈기산 정상 도착.

 

<갈기산(葛基山, 685m)>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과 강원도 홍천군 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동지도"에서 갈기산으로 짐작되는 '갈기리산(乫基里山)이 동북쪽에서 산세를 뚜렷이 하며'라는 표현이 있으며, 『광여도』에는 홍천과의 경계에 있는 신당현 아래 갈기리산이 묘사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 상북면 산명에는 갈기산(葛基山)으로 신당리에 수록되어 있다.
옛 기록에는 감물악(甘勿岳)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악(岳) 자가 들어있는 산은 거칠고 신령스러워 누구에게나 정상을 쉽게 내 보이는 산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이후 갈기산은 부동산(不動山)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갈기산이라고 부른 이후에도 일어날 기(起) 자를 썼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갈기산 정상에는 정상석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최근 만들어진 정상석이고, 하나는 정사각 대리석으로 만들어 세운 것으로 갈기산 표기 옆에 '부동산'이라는 표기를 동시에 해 놓았다.

 

갈기산 등산 안내도

 

북쪽 금학산(654) 방향 조망.

뒤쪽 멀리로 한북정맥능선쯤으로 보이는 능선이 가물가물 하다.

 

백두들 뒤쪽의 화강암 정상석에는 '갈기산'과 '부동산'을 병기해 놓았다.

 

 

마침 갈기산 정상에 도착하는 산객에게 부탁하여 인증을 남기고,

 

 

신당고개를 향해 갈기산 정상을 뒤로하니 커다란 돌탑 2개가 연이어 나타나고,

 

용문산(우)이 나뭇가지 위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좌측으로 회미골길(새터마을)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우측 용화사 방향으로 진행하면,

 

 

좌측 양평군 청운면의 산그림이 멋지고,

 

좌전방으로는 다다음 구간에 지나게 될 한강기맥길의 용문산도 듬직하게 조망된다.

 

 

 

좌측으로 청운면 신론리와, 세 성인을 모신 신당이 있어서 이름 지어진 삼성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야 할 신당고개 방향으로 용문산으로 이어진 한강기맥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밧줄이 메어진 암릉구간을 내려서고,

 

 

다시 암릉을 우회하여 내려선다.

 

 

신당고개를 향한 내림길 능선에서 468봉을 향한 짧고 완만한 오름길도 나타나고,

 

 

468봉 정상을 지나니, 우측 유목골 건너편으로 지능선 봉우리가 듬직하고,

 

우전방 홍천군 서면 유목정리 방향으로 조망이 트인다.

 

 

전망바위가 나오며 좌전방으로 청운면 방향 조망이 가슴을 트이게 한다.

 

용문산 방향.

 

 

우측 유목골에는 금물산에서부터 보이던 송전선로가 대형 송전탑에 이어져 있다.

 

 

삼성리에서 올라오는 널찍한 임도에 내려서고,

 

 

 

이내 용화사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한강기맥길은 삼성리 등산로 입구 방향 숲으로 이어지지만,

 

우측의 한강기맥 능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도 된다.

 

 

기온이 올라가며 계속되는 힘든 산행길에서,

정통 백두들이 한강기맥 능선으로 갈 것인지 우측의 임도를 따라 우회를 할 것인지 논란을 벌이다가,

 

우측의 편안한 임도로 들어선다.

 

 

임도로 들어서니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진 백두들.

 

 

길가에 핀 싸리꽃이 어여쁜 임도를 따르면,

 

 

기맥 능선이 다시 임도로 내려서는 임도 삼거리가 나오는데,

 

한강기맥길은 우측의 숲으로 이어지지만,

직진의 삼성리 등산로입구 방향 임도를 계속 따라도 된다.

 

임도 삼거리에 도착하는 백두들.

양쪽 임도 사이의 능선이 한강기맥 능선이다.

 

 

우측의 한강기맥 능선을 두고 나란히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는 백두들.

 

 

임도길은 몇 차례 능선과 겹쳐지기도 하며 송전탑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진다.

 

 

 

한강기맥길은 임도 좌전방으로 보이는 송전탑을 지나면서 우측 숲길로 들어야 하지만,

 

 

신당고개 휴게소로 바로 내려서기 위해서 송전탑이 보이는 지점에서 임도를 두고 우측 지능선으로 들어서면,

 

신당고개에서 홍천으로 이어지는 44번 국도가 내려다 보이고,

 

신당고개 건너편으로는 다음 구간에서 이어가게 될 한강기맥 능선이 보인다.

 

 

뚜렷한 등로를 따라 신당고개 휴게소로 내려서는 백두들.

 

 

휴게소 뒤편으로 이어지는 내림길 등로를 따르면,

 

 

버려진 통나무 오두막을 지나고,

 

 

신당고개에 있는 휴게소에 도착하게 된다.

 

<신당고개(神堂峙, 225m)>
강원도 홍천군 남면 양덕원리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삼성리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양평에서 설악산 한계령으로 가는 44번 국도가 넘는다. 신당(新堂)이라는 고개 이름은 이 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인 삼성리의 유래가 세 성인을 모신 신당이 있다고 하여 삼성리라 하였는데, 그 신당에서 유래한 고개 이름이다.
삼성리(三聖里)는 원래 지평군 상북의 지역인데, 1908년에 양평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지방 행정구역 통폐합 조치에 따라 유곡리.신당리.고론리를 합쳐 성인을 모신 신당(神堂)이 있으므로 삼성리라 불렀다. 지금은 양평군 청운면에 편입된 곳이다. 삼성리의 유래가 서.박.남 세 성씨만 살았던 곳이라 그리 불린다고도 한다.

 

 

문을 닫아 잡초가 자라고 있는 홍천휴게소 모습.

한때 서울에서 속초나 설악산을 오가는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휴게소로,

그 규모가 고속도로의 여느 휴게소만큼이나 컸지만, 지금은 서울~춘천간 고속도로에 밀려 폐업을 한 상태다.

 

 

신당고개에 도착하여 한강기맥 열두 번째 산행을 마감하고,

홍천휴게소 앞에서 기다리는 버스에 올라 용문면에 있는 목감탕으로 향한다.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운요천 온천에서 땀을 닦고,

 

 

용문역 앞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올여름을 거뜬히 보내기 위해 오리백숙을 시켜놓고,

 

 

한강기맥 12번째 산행 마무리를 한다.

 

 

 

 

늘 그렇듯이 최종 마무리는 강남역 뒷골목의 호프집에서!

 

 

 

 

신부장님 앞으로 자주 뵈요!!!

 

이번 한강기맥 산행이 쉽지 않은 산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지리산 삼각봉에서 지낸 시산제에 신령님이 흡족하였던지,

좋은 날씨를 만들어 준 덕분에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몇 해 전 홍천군 내면에 있는 오대산 두로봉을 출발한 한강기맥길은,

벌써 12차에 걸쳐 125km 이상을 이어왔는데도 아직까지 홍천군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늘 이 산행을 마쳐도 내일 또 올라야 할 산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도 그러하다.

오늘 이 고난을 딛고 일어나 봐도 내일은 또 내일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그저 앞에 닥친 고난을 즐길 수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