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중국 고도 서안, 화산 태백산 트레킹
산 행 일 : 2011년 5월 5일(목) ~ 8일(일) (3박4일)
산행참가 : 15백두.
주관 여행사 : 헤초여행사
<5월 5일(목) 제1일차 일정>
- 08:00 인천국제공항 3층 M카운터 여행사 데스크 모임.
- 10:00 인천국제공항 출발.
- 12:00 서안국제공항 도착 후 입국수속.
- 가이드 미팅 후 병마용으로 이동. (약 1시간 반소요)
- 병마용 도착 후 서안 관광.
- 흙을 구워 만든 수많은 병사, 말 등의 모형이 있는 병마용.
- 양귀비와 당나라 현종이 목욕하면서 놀던 곳 화청지.
-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제의 묘지 진시황릉(차창관광) 감상하며 화산으로 이동. (2시간 소요)
- 호텔 투숙 및 휴식 (연화산장)
<중국 서안 관광지 위치도>
<산시성(陝西省(섬서성), Shaanxi)>
약칭하여 '산[陕]' 또는 '친[秦]'이라고도 부르며, 성도(省都)는 시안(西安)이다. 황허강(黄河) 중류 지역에 있으며, 서북 지역의 각 성들 가운데 가장 동쪽에 있다. 서주(西周) 시대에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산현(陕县)인 산위안(陕原)의 서쪽에 있다 하여 '산시(陕西)'라고 이름하였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진(秦) 나라의 영토였으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뒤에는 내사(内史)와 상군(上郡), 한중군(汉中郡)이었다. 한(汉) 나라 때는 사예(司隶)와 병주(并州), 익주(益州)에 속하였고, 송(宋) 나라 초기에는 섬서로(陕西路)를 두었으며, 원(元) 나라에 이르러 섬서행성(陕西行省)이 설치되었다.
면적은 19만여㎢로 국토 총면적의 2%를 차지한다. 행정구역은 시안·셴양·바오지·한중·웨이난·옌안·퉁촨·안캉·위린·상뤄 등 10개 지급시와 3개 현급시), 80개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원에 있는 성으로 중화민족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이며, 일찍이 직립보행을 한 '란톈원인[蓝田原人]'과 초기 호모사피엔스인 '다리런'이 활동하였다. 시안의 반포에서는 6000년 전 양사오문화 시기에 활동한 고대인의 촌락 유적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관중은 BC 11세기 이래로 주(周)·진·한·당(唐) 등의 13개 왕조가 도읍을 세운 곳으로, 광대한 중국에서도 인구가 집중된 지역으로, 인구밀도가 1㎢당 900명인 적도 있다.
유구한 역사만큼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한나라의 역사가로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司马迁)이 한청 출신이고, 정치가 장건은 청구 출신이며, 당나라의 대시인 백거이는 웨이난 출신, 두목은 창안 출신, 의학자 손사모와 서예가 유공권은 모두 야오저우 출신이다. 주민 구성은 한족·후이족·만주족·몽골족[蒙古族] 등 46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수민족의 비율은 0.5%에 지나지 않는다.
인천공항 M카운터 앞에 모인 백두들.
보딩 후 출국수속.
탑승수속 완료 후 탑승대기.
중국 서안행 아시아나항공 탑승.
기내에서.
서안이 가까워지자 광대한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시안시(西安市)>
중국 산시성(陝西省)의 성도로, 중국의 고도이자 현재 북서부 개발의 중점 개발도시이다. 현재 명칭은 시안(西安, 서안)이나, 옛 이름인 장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종결한 통일국가 진의 수도가 현재 서안의 북쪽에 위치한 함양(咸阳, 셴양)이다. 현재 시안의 공항 이름이 이곳의 명칭을 따서 시안 셴양 국제공항이다. 진나라의 멸망 후 한(漢)제국도 함양을 수도로 삼으며 '장안(長安, 창안)'으로 개명, 계속 발전하였다. 송나라(북송) 시대 이전까지 낙양(洛陽, 뤄양)과 함께 중국의 양대 도시로 번창했었다. 이후 다소 쇠퇴하였고 명나라 때 서안부(西安府)로 개칭되었다가 현재 중국의 시안시로 이어지고 있다. 워낙 유명한 도시였기에 서울이나 수도(首都)를 가리키는 대명사인 '장안'도 이 장안에서 따왔다. 이 표현은 조선 후기까지도 쓰였는데, '장안의 화제가 되다'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는 설이 있지만, 성(城)의 순우리말인 '재' 또는 '잣'의 '안쪽'이라 하여 '재안' 또는 '잣안'이라 하던 것에서 변했다는 설도 유력하다. 아무튼 이 도시의 이름에서 '오래되고 큰 도시의 성 안', '수도'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서안은 중국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특히 유서깊은 곳으로, 역사에 등장한 때가 전설적인 주나라 시기이며, 그 후로 낙양과 함께 중국의 양대 수도로 번창했다. 그래서 역사가 2000년 정도 될 정도로 굉장히 오랜 도시다. 일단 지형의 조건이 상당히 특이하다. 도시와 평원을 둘러싼 산악지대가 원형의 성벽처럼 만들어져 있으며, 서쪽에는 헤이허, 북쪽에는 위수(渭河)와 경수가 흐른다. 특히나 장안을 둘러싸고 보호받는 경지면적이 의외로 넓어 관중평야는 낙양의 5배 넓이로써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고 불린 옥토의 땅이었다. 이는 만일 국가급 전쟁에서 포위당했을 때 식량을 자체적으로 대량조달하기 쉬우므로 오래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서쪽 방면의 산악지대는 대규모라서 통로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덕분에 주변지역에서 장안으로 오려면 황하를 타고 위수로 진입하든지, 아니면 동쪽 산악지대에 있는 함곡관 같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동쪽은 함곡관으로, 여기서 중원과 관중이 구별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방어하기 편리한 곳 치고는 교통사정도 좋다는 이야기다. 장안의 인근 지역을 도읍으로 삼았던 서주와 진나라를 생각하면 기원전 1122년부터 기원후 907년까지 2140년간 장안과 인근 지역은 중국의 중심이었다. 장안은 낙양(洛陽, 뤄양)에 견주어 서도(西都), 서경(西京) 또는 상도(上都)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낙양과 함께 송대 이전까지 중국의 중심 도시였다. 장안과 낙양이 고대 중국의 수도였던 것은, 당시 황하와 그 지류 유역이 중국에서 가장 농업생산력이 풍부했었고, 따라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고사에는 관중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關中者得天下)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고대사에 있어서 그야말로 핵심적인 지역이었으며, 진나라 진시황과 전한 유방은 이 장안이 포함된 관중 일대를 기반으로 천하를 얻었고, 오호십육국시대의 전진(前秦)과 후일 수나라의 전신이 되는 남북조시대의 북주(北周), 당나라 이연 역시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화북을 통일한 바가 있다. 사실상 고대 중국을 통일했던 6개 국가 중 4개의 국가가 그 시작이 관중 지방이었으니, 고대 중국에 있어서 장안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중국 서안 선양국제공항 도착.
중국 서안 선양국제공항 입국수속.
선양국제공항을 나와 관광을 위해 버스 탑승.
현지의 안내를 책임질 이봉춘 조선족 가이드.
서안시의 화력발전소 모습.
시안시를 북쪽에서 감싸며 흘러 황하로 흘러가는 황하강의 지류인 위수(渭水) 모습.
공사 중인 서안시.
한산한 고속도로 모습.
고속도로를 벗어나 화정지가 있는 린퉁구(临潼区)로 들어선다.
린퉁구(临潼区) 화청지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식사.
식당 옆에는 기념품을 파는 매점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화청지로 이동하여 본 여산 모습.
화청지 도착.
<화청지(华清地)>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이다.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 좋은 지하온천수 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이다. 화청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는데, 일찍이 서주(西周)시기, 주유왕(周幽王)이 이곳에 려궁(驪宮)을 지었으며, 후에 진시황과 한 무제도 이곳에 행궁(行宮)을 건립하였다. 특히, 당 현종 천보년간에 건설한 궁전누각이 가장 화려하며 이때 정식으로 "화청궁(華淸宮)"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당시(唐詩) 중에는 화청지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 시가 비일비재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 당시의 규모는 대단해서 마술, 축구, 닭싸움 등의 오락 장소도 있었으며 해마다 겨울에는 현종이 양귀비를 이곳에 데리고 와서 온천욕을 했다고 한다. 화청지 물은 피부병, 신경통 위장병 등에 좋다고 한다.
이 곳을 쉽게 떠올리고 싶다면 그냥 양귀비 목욕탕,
또는 장개석이 시안사변으로 붙잡혀 있던 곳 정도로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화청지 입구.
입장료가 꾀나 비싸다.
화청지 전경도.
아마도 6천년 전부터 사람들이 온천으로 사용했고, 그 후에 왕들이 휴양을 위해 궁을 지어서 규모가 커진 듯하다.
진시황, 한나라 무제도 이곳에 별궁을 두고 이용했다 하니 그 규모와 역사적 가치가 가히 짐작되는 곳이다.
표를 내고 화청지 안으로 들어서니 인공 연못 주변으로 각종 전각들이 즐비하다.
화청지란 이름은 당 현종이 이곳에 화청궁을 지으면서 나오게 되었고,
당현종과 양귀비가 연애할 당시에는 당시에는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안사의 난 후에 쇠퇴했다고 한다.
이곳은 중국 4대 공연 중 하나로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장한가'를 공연하는 무대로도 쓰인다고 한다.
화청지 기념.
이제부터는 화청지의 각종 전각들을 둘러보러 간다.
양귀비상.
보통 양귀비를 떠올리면 늘씬한 미녀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좀 통통하고 서구적으로 생겼다고 한다. 시대와 나라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시 최고의 미녀라고 하니, 실재의 그 모습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양귀비의 목욕탕인 귀비지로 들어선다.
양귀비의 목욕탕인 해당탕.
해당화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서 '해당탕'이라 한단다.
탕 속의 어여쁜 여인을 떠올리고 있을까!
이번에는 당 현종의 목욕탕인 연화탕으로 들어선다.
개인 욕탕이라기보다는 수영장 수준이다.
임금의 음식을 만드는 관원들의 목욕탕인 상식탕.
찜질방 역할을 한 곳.
일반탕.
화청지 온천수 체험.
화청지의 온천수는 수온이 43도 정도이고 풍부한 광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온천욕을 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양귀비상 앞에서.
화청지 전각들을 배경으로.
화청지 둘러보기를 마치고 출구로 향한다.
화청지를 나와 버스로 향한다.
신기한 재봉틀.
버스에 탑승하여 인근에 있는 병마용박물관으로 향한다.
화청지에서 병마용박물관까지는 금방 도착한다.
진시황 병마용박물관 입장.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일컫는 병마용은 진시황의 사후(死後)를 지키는 흙으로 만든 병사들을 가리킨다. 진시황릉으로부터 북동쪽 1.5km 떨어진 곳에서 1974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 지하 세계는 세 개의 갱으로 나누어져 있고 2호, 3호갱은 아직도 발굴이 진행중이며, 병마용의 표정과 체격, 크기들은 모두 다르며 신분에 따라 다른 복장을 하고 있다. 병마용이란 진시황이 죽은 후 대군의 일부를 순장시키는 대신에 흙을 구워 만든 인형을 묻은 것을 말하는데, 현재 3개의 대형 병마용갱이 발굴되었다. 갱이 발굴된 후에도 계속해서 현재까지 발굴하고 있으며 건물을 지어 보호하고 있다. 박물관내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있다.
입장 후 전기 카터를 타고 이동.
병마용갱 1전시관으로..
병마용갱 관람 순서는 규모가 작은 것부터 보고 큰 것을 보는,
3호갱 -> 2호갱 -> 호갱 순으로 봐야 감동이 커진다고 하는데,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로 1 -> 2 -> 3 순으로 관람한다.
병마용 1전시실 앞.
병마용 관람 기념촬영.
진시황 병마용박물관 1전시실 입장.
진시황릉 조감도.
병마용 1호갱 모습.
1호갱 병마용을 배경으로.
1호갱에서 발굴된 6,000여기의 병마용 모습.
각 병마용은 키가 180cm 이상으로 저마다 얼굴이 다르고,
갑옷과 머리 모양이며 손동작 등이 실재 사람과 아주 비슷하다고 한다.
아직 발굴 중인 곳도 있다.
마치 실재 병사들이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각기 다른 머리 모양과 얼굴들.
진시황 병마용 2호 전시실로..
얼굴과 갑옷 등에 색깔이 칠해져 있단다.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병장기와 말.
진시황 병마용 2호 전시실로..
1호갱에 비해 규모가 작은 2호갱 모습.
소년병.
미끄럼방지가 되어 있는 신발 바닥.
고위급 장군.
연락병.
병장기.
2호갱 전경.
제2전시실을 나와..
전시관 앞 매점.
병마용박물관을 나선다.
고대의 한자
왕대추 등을 파는 매점.
병마용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을 뒤로한다.
돌아본 전시관 가는 길.
병마용 IC 쯤에서 고속도로 진입.
웨이난시를 가로질러,
화산으로..
우측으로 화산이 보인다.
이제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아침에 지났던 화력발전소와는 다른 화력발전소. 많다!
우측으로는 끝없이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화산이 보인다.
저녁식사 장소인 은하주점 도착.
식당 벽에 화산 안내도가 걸려있다.
푸짐한 저녁식사.
저녁식사를 마치고 내일 오르게 될 화산을 바라보며..
숙소인 연화산장호텔 도착.
체크인을 마치고 간편복 차림으로 외출.
호텔 인근의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감한다.
(고도 서안, 2일차 화산 산행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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