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영산기맥 2구간(장성갈재~들독재/수량동고개) 전북 정읍시, 고창군, 전남 장성군.
산 행 일 : 2019. 12. 14.(토)
산행코스 : 장성갈재~변산지맥분기봉(712)~쓰리봉(733)~봉수대(725)~방장산(744)~고창고개~억새봉~벽오봉
~문너머재~갈미봉(별봉)~양고살재~솔재~검곡치~들독재(수량동고개)+금곡영화마을
(16.4km + 1.6km = 18km, 8시간 소요)
산행참가 : 19백두.
<산행지도>
이번 구간의 행정계를 살펴보면, 장성갈재를 출발할 때는 북쪽(우측)이 전북 정읍시, 남쪽(좌측)이 전남 장성군 북이면으로 전북과 전남의 도계를 가르며 서향 하다가, 쓰리봉 직전 삼군봉에서 우측이 정읍시에서 고창군 신림면으로 바뀌면서 북쪽으로 변산지맥을 분기시키고, 영산길은 남서향으로 이어진다. 다시 삼면봉인 억새봉에서 우측이 고창군 신림면에서 고창읍으로 바뀌어 남동향하고, 416.6봉에서는 좌측이 전남 장성군 북이면에서 북일면으로 바뀌어 남서향한다. 들독재로 내려서기 직전 445.8봉에서 우측이 고창읍에서 고창군 고수면으로 바뀌어 들독재 이후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번 구간의 등로 상태는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방장산을 지나는 구간이라 산행 출발점인 장성갈재에서 솔재까지는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솔재 이후부터는 잡목과 가시덤불이 발목을 잡지만 등로가 희미하게나마 이어지고,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길 안내를 해 주어 주의하면서 진행하면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오늘 구간에서 통상 생략하거나 우회하는 구간이 세군데 있는데,
첫번째는 고창고개를 지나 활공장이 있는 억새봉을 오를 때 우측의 큰솔봉(622.2m)을 생략하고 좌측으로 우회하는 구간이고,
두번째는 배넘이재에서 양고살재로 내려설 때 좌측의 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생략하고 방장사 방향 사면길로 바로 내려서는 구간이며,
세번째는 산행 막바지의 검곡치에서 들독재로 이어갈 때, 우측의 등로를 따라 진행하여 440봉으로 올라 삼면봉인 445.8m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생략하고, 바로 검곡치에서 좌측으로 임도 따라 들독재(수량동고개)로 우회하는 구간이 있는데,
세 구간 공히 우회로는 편한 길이지만 정상 등로는 잡목과 가시나무가 우거져 통과하기가 상당히 성가시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꾼들은 쉬운 우회길을 택하게 된다.
겨울철 우리나라의 날씨를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삼한사온(三寒四溫)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겨울은 삼한사온이 아닌 삼한사미(三寒四微)로 바뀌었다는 예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불과 40년쯤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배고픔과 추위였는데, 이제는 '몸에 좀 더 좋은 먹거리'와 '삶의 질'로 바뀐 것이다. 지난주 미세먼지가 짙게 드리우자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노후 경유차에게 2.5억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자랑하는 소식을 들었다. 미세먼지의 주범은 중국의 난방 가스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이 뭔가 대책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힘든 삶을 이어가는 분들의 주머니를 턴 것이다. 과태료를 부과당한 분들이 부자이거나 여유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언론에 호소하며 난리를 쳤을 터이지만 하루하루가 힘든 분들이라 아뭇소리 않고 있는 것이다. 위정자들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제대로된 대책에는 관심이 없고 우선 거머쥔 권력 유지에만 힘을 쏟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금요일 밤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서울은 자정 무렵부터 비가 오고, 산행지인 방장산은 토욜 새벽쯤에 비가 예보되어 있는데, 요즘은 일기예보가 훨씬 정확해져서 '구라청'이라는 예기는 들어본지가 한참이 되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양재에서 산행 버스에 오르는데, 내일 새벽 겨울비를 맞으며 시작하게 될 산행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우리의 무박산행 출발시간은 대부분 새벽 5시 이전이었지만, 조망이 좋은 방장산의 대부분을 깜깜한 한밤중에 지나게 되어 산행시간을 늦출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터라, 새벽의 겨울비 예보가 확실해 짐에 따라 산행 출발시간을 6시 반으로 확정한다. 예보된 강수량이 1mm로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점심식사 시간이 지체되더라고 겨울비는 가급적 피할 수 있기를 고대하며 버스에서의 곤한 잠에 빠진다.
새벽 3시쯤 장성갈재에 도착하여 주차할 때에는 땅이 말라 있었는데,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산행 준비를 하여 버스를 나서니 땅바닥이 젖어있다. 새벽 6시에 예보된 비가 성질도 급하게 벌써 내려버린 모양이라, 별다른 우장을 준비하지 않고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장성갈재(220m)>
장성갈재는 전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전남 장성군 북이면과 전북 정읍군 입암면을 연결하는 고개다. 억새가 많은 고개라 해서 노령(蘆嶺)으로도 불리는 장성갈재를 기점으로 산맥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동쪽으로는 입암산, 병풍산, 불태산 같은 험한 산줄기가 달음질하고, 서쪽으로는 방장산, 고성산, 태청산, 문수산처럼 좀 더 낮은 산들이 줄지어 이어진다.
목포에서 신의주를 연결하는 국도1호선 옛길이 지나는 이 길은 정읍과 장성을 가르는 재로써 동학혁명 당시 녹두 장군 전봉준이 정읍 고부에서 조병학의 폭정에 봉기하여 동학운동을 일으켰다가 외세 일본의 개입으로 진이 와해되자, 입암산성을 거쳐 남창계곡에서 은거하다가 내장산을 거쳐 정읍 황토현(정읍시 종성리 황토리)에서 김개남 장군과 부흥을 꿈꾸다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서 부하 김경준의 고변으로 피체되에 농민부흥운동의 꿈을 못 이룬 한맺힌 고개이기도 하다.
들머리는 고갯마루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6.15 정상회담을 기념해 만든 통일공원 맞은편, 차량진입 차단봉이 설치된 시멘트 임도 입구를 지난 우측에 있는데, 임도 차단봉 직전에서 우측 지름길로 보이는 숲길 등로로 접어들며 영산기맥 두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차량 차단기 좌측 편에는 '광산이씨세천비(光山李氏世硏碑)'가 세워져 있는데, '세천비'는 선산 입구나 선산 근처에 세워 그 문중의 선산임을 나타내며, 문중이나 문중 선조들의 치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는 비석을 말한다.
잠시 후 임도에서 이어오는 수레길 수준의 등로에 접속하여 우측 오름길을 따라 쓰리봉을 향한다.
수레길을 따라 오르는 백두들.
비로 바닥이 젖어 있어서 조망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우측 입암면 방향 야경 불빛이 쓰리봉에서의 멋진 일출과 조망에 대한 기대를 다시금 키운다.
511봉쯤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헬기장을 지나 산성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축대로 둘러진 511봉에 도착한다. 장성갈재에서 첫 봉우리인 515봉까지는 수레길 수준의 잘 정돈된 등로가 이어지는데, 경사가 무척 가파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등로가 'Z'로 이어지고 상태가 좋아서 그리 어렵잖게 올랐다.
511봉을 뒤로하고 조릿대밭 등로로 들어서니, 앞쪽으로 쓰리봉의 듬직한 윤곽이 시야에 들어온다.
앞쪽에 불쑥 나나탄 봉우리를 보고,
두규형 : 지난 산행에서 내려섯던 입암산 시루봉은 시루 같지를 않고, 쓰리봉이 시루 같다.
이대장 : 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데, 쓰리봉을 이곳까지 와서 보지를 않아서 그런 듯..
서여사 : 사람도 보는 이의 가치관에 따라 그 인생도 달리 보이는 이치와 같다!
두규형 : 내 보기에 쓰리봉은 솥뚜껑봉으로 보인다.
란 대화를 하며 새삼 서여사님의 예리한 화두 전개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올려다 뵈는 쓰리봉이 품이 넓고 웅장하며 우뚝 솟은 모습이 태산같이 듬직하여 그야말로 솥뚜껑을 닮았다.
511봉과 쓰리봉 사이의 둥그런 안부를 지나고,
안부를 지나 쓰리봉 오름길은 더욱 가팔라지며 어느새 511봉이 저만치 멀어져 있다.
쓰리봉 오름길은 암릉도 나타나며 등로조차 직선의 급경사로 이어져서 숨이 턱에 차 오른다.
우전방으로 변산지맥 분기봉이라 불리는 높다란 바위 절벽이 보이고,
잡풀이 무성한 목묘가 있는 변산지맥 갈림길에 도착하여,
영산기맥은 좌측의 오름길로 이어지지만,
우측 변산지맥 분기봉이라 불리는 전망바위를 다녀오기로 한다.
우측 작은 나뭇가지에 준.희님의 "변산지맥 분기점" 표시가 걸려있고,
앞쪽으로 보이는 입암산 방향 조망이 멋지다는 전망바위로 향한다.
<변산지맥(邊山支脈)이란 ?>
변산지맥(山支脈)은 영산기맥의 장성 갈재에서 약 1.8km 떨어져 있는 쓰리봉 직전 삼군봉(712m)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옥녀봉(349.6m) 직전 330m봉에서 북동방향으로 두승지맥을 흘려 보내고, 서향하여 옥녀봉(349.6m), 수산(235m), 배풍산(110.1m), 노승봉 (352.9m), 옥녀봉(432.7m), 세봉(433m), 신선봉(488m), 삼신산(486m), 갑남산(415m), 사투봉 (169.2m), 봉화봉(174.2m)을 거쳐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변산반도 격포항 남쪽 서해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56.8km의 산줄기다. 변산지맥 능선 왼쪽으로는 갈곡천이 흘러 곰소만으로 들거나 직접 서해로 흐르고, 오른쪽은 고부천이 되어 서해바다로 든다. 지맥의 이름 역시 호미, 고흥 등과 같이 반도의 끝을 향하는 특성에 따라 지역명을 지맥 이름으로 취했다.
<변산지맥 개략도>
변산지맥 분기점이라는 전망바위에서 본 북동쪽 전주 모악산 방향. 지금은 안 보임!
동쪽 내장산 방향.
남동쪽 백암산 가인봉 방향의 하늘이 붉게 빛나고 있다.
오늘 일출시각이 7시 38분이라 했는데, 정확히 일출시각에 맞추어 오르기는 했다.
변산지맥 분기봉에 선 오늘의 현인 서여사님!
북동쪽 정읍 방향.
동쪽 내장산국립공원 방향.
동남쪽 추월산과 장성호 방향.
변산지맥 분기점 전망바위에서 본 동쪽 내장산 방향 파노라마.
내장산 방향을 배경으로.
변산지맥 분기점 인증!
변산지맥을 가늠해 보려 했으나 나뭇가지에 가려서 보이지를 않고,
서쪽 선운산 방향의 하늘에는 둥그런 달이 아쉬운 듯 걸려있다.
고창 출신의 보성님이 이끄는 데로 변산지맥 갈림길로 돌아 나와,
영산기맥 능선길을 따라 커다란 바위 사이로 통과하여 나서면,
백암산 가인봉 옆 하늘에서 장성호로 내리비치는 빛내림이 장관이다.
백암산 방향.
거친 바위 암릉을 잠시 진행하면,
암봉 정상부 바위틈 사이에 사각 정상목(쓰리봉, 734m)이 세워져 있는 쓰리봉 정상에 도착한다.
<쓰리봉(734m)>
전남 장성군 북이면과 전북 정읍시 입암면 그리고, 고창군 신림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가 연달아 3개가 있다고 해서 쓰리봉이라고 한다는 예기는 최근 들어 호사가들이 하는 예기인 듯 보이고, 봉우리 정상은 암릉으로 되어 있다. 이곳부터 북쪽으로는 1구간부터 같이 걸어온 정읍시와 작별하고 고창군으로 접어든다. 다소 생경스러운 '쓰리봉'이란 이름은 변산지맥분기봉(삼군봉)에서부터 세개의 봉우리가 남서향으로 나란히 붙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국어사전에 '쓰리'는, 「잉어 같은 고기를 낚기 위해 얼음을 끄는 쇠꼬챙이」이고, 영어 Three는 삼(三), 일본어 '쓰리'는 소매치기를 뜻한다. 영어가 들어오기 전부터 불려진 이름이라면 우리나라 봉우리 중 흔한 이름인 「써래(써레)」와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써래」는 '소나 말이 끌면서 논 바닥을 고르거나 흙덩이를 잘게 부수는데 쓰이는 농기구'로, 긴 나무막대에 끝이 뾰족한 막대 6~10개를 빗살처럼 나란히 박은 목작(木斫)이다. 전라도 영광지방 사투리로 써래를 「써으리」라 하므로, 이 봉우리의 삐쭉삐쭉한 암릉들 모양에서 이름을 붙였을 듯하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쓰리봉 정상에서 본 일출!
보성씨, 이 사진 한장으로 복분자 술값 퉁치면 안 될까?
서쪽 가야 할 방장산 방향.
서북쪽 선운산도립공원 방향.
살짝 당겨서 다시 방장산 방향.
선운산도립공원 방향.
북쪽 곰소항과 동림저수지 방향.
내장산국립공원 방향.
남쪽 장성군 북이면 달성제 방향.
방장산 쓰리봉 인증!
내장산을 배경으로.
쓰리봉 옆 작은 공터에 세워진 쓰리봉 이정표를 뒤로하면,
쓰리봉을 내려서는 데크목 계단이 나오며,
남서쪽 가야 할 영산기맥 방향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발아래로는 장성군 북이면의 백암제와 달성제가 아찔하게 조망된다.
따스하게 햇살이 비치는 능선 남사면의 암릉길을 따르는데,
널찍한 조망바위가 나오며 호남고속도로 원덕터널 통과하는 산줄기가 멋지게 조망된다.
능선 중간쯤에 곤모봉(356m)이 있는 산줄기는 쓰리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백암리에서 남쪽 원덕리 방향으로 뻗은 산줄기로 그 너머에 호남선 백양사역이 있디.
남쪽 백암제 방향 조망.
북쪽으로 바위가 가려진 조망바위에서 아침식사를 하려다가,
바람이 스며든다며 남사면 아래로 돌아가서 아침식사를 한다.
장소가 좁아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없는 곳이 좋다며..ㅉㅉ
평소보다 늦은 아침이라 앞서 간 분들도 알아서 식사를 할 것이라 에둘러 위안하며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바라본 오늘의 종착지인 들독재/수량동고개 방향.
본디 솔재에서 중간탈출이 가능토록 버스를 주차시키려다가 전원이 들독재까지 가겠다고 하여 중간탈출을 배제하였는데, 과연 무사히 갈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분들이기에 찬찬히 진행해 볼 밖에는..
작은 봉우리 오름길에 가이드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봉우리(700m)에 올라서니 가야 할 방장산 방향 영산기맥 능선에는 지나야 할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녹색의 조릿대밭에 앙상한 나목들이 심어져 있는 내림길을 내려서는데,
아침햇살을 받고 있는 방산산 남쪽 사면이 융단을 덮어 놓은 듯 포근해 보이고,
그 너머에는 꽃무릇이 어여쁠 선운산도립공원이 가늠된다.
작은 암봉을 지나자,
키작은 조릿대가 덮인 능선길이 이어지고,
잘록한 안부를 지나 서대봉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을 오른다.
서대봉을 향한 오름길을 오르는 백두들.
멀리서 보기에는 완만해 보이던 서대봉 오름길이 실재로는 꾀나 가파르게 이어진다.
서대봉(675.9m) 정상부에서 돌아본 쓰리봉 방향.
남쪽 백암제 방향.
돌아본 쓰리봉이 솥뚜껑보다는 시루에 가깝게 보인다.
바위 암봉인 서대봉(675.9m) 정상부에서 본 방장산 방향.
가야 할 방장산 방향으로 연자봉과 봉수대가 나란히 이어져 있다.
서대봉을 뒤로하고 바위들이 나뒹구는 암릉을 내려서니,
이내 잘록한 안부를 지나게 되고,
연자봉을 향한 완만한 능선 오름길이 어어진다.
연자봉(687m) 정상부에서 본 가야할 봉수대가 뾰족이 올려다 보인다.
우측 용추폭포 방향 갈림길을 지나고,
돌아본 용추폭포 갈림길.
봉수대를 향한 능선 오름길을 이어간다.
봉수대 오름길에 돌아본 쓰리봉 방향.
시루봉과 곤모봉능선 방향.
북동쪽 두승산과 정읍 방향.
쓰리봉 방향의 방장산 능선이 거대한 용의 척추등을 보는 느낌이다.
용의 등을 타고 온 백두들.
봉수대 정상에서 돌아본 쓰리봉 방향.
곤모봉과 백양사역과 방향.
가야 할 방장산 방향.
<봉수대(烽燧臺, 715m)>
용추계곡 갈림길에서 주변의 시원스레 펼쳐지는 경치를 조망하며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치고 오르면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봉수대라는 표지목이 서 있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고창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오고, 좌측으로는 장성군과 지나온 입암산과 갓바위봉, 그 너머로 내장산과 백암산의 멋진 산그림이 실루엣처럼 넘실거린다. 그 야말로 일망무제이다. 원래는 봉수대가 방장산(742.8m) 보다 높았으나, 6.25 때 폭격을 받아 높이가 방장산보다 낮아졌다고 한다.
봉수대에서 본 주변 조망 (09:23 1:16")
북쪽 정읍의 두승산 방향.
지나온 연자봉, 서대봉, 쓰리봉 모습.
동쪽 내장산국립공원의 연봉들이 바람에 넘실거리고,
남쪽으로는 지난여름에 걸었던 불태산과 병풍산이 아득하며,
남서쪽으로는 가야 할 방장산이 듬직하니 기다리고 있다.
서북쪽 선운산도립공원 방향.
봉수대 정상에서 한가로이 조망을 즐기는 백두들.
쓰리봉에서 백양사역 방향으로 뻗은 곤모봉 능선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봉수대에서 내장산국립공원을 배경으로.
봉수대를 뒤로하고 방장산을 향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일반 산객을 만나고,
앞쪽으로 절벽이 나타나며 가야 할 방장산이 다시금 시원스레 조망된다.
방장산 오름길 조망처에 본 백암산 방향 조망이 멋지고,
막아서는 절벽을 우회하여 오르면,
방장산 전위봉쯤에 오르게 되고,
돌아 보이는 봉수대에서 쓰리봉으로 이어진 방장산 능선이 뿌듯하고,
내장산 방향의 배경 조망도 더할 나위가 없다.
모처럼 20km에 가까운 산행 완주에 도전장을 들이민 백두들.
역사는 꿈꾸고 도전하는 분들의 것이기에,
분명 백두들이 그 주역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장쾌한 산줄기와 그 너머로 펼쳐지는 끝간데없이 너른 들판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멋진 방장산에서,
함께 호흡하며 걸었던 추억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이 멋진 산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지만, 세월이 그러기를 허락지 않음을 어쩔 것이냐!
영산기맥의 최고봉인 방장산 정상에 도착한다.
<방장산(方丈山, 743m)>
전북 고창군 신림면과 전남 장성군 북이면 경계 능선에 있는 고창의 진산이다. 예전에는 이 산을 방등산 또는 반등산으로 불렀는데, 반등산은 산이 높고 장엄해서 절반밖에 오르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방등산은 '부처가 사람들에게 이익을 고루 주는 일'이라는 뜻을 가진 '방등(方等)'이라는 불교 용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하지만 조선 인조 때에 명나라를 숭상하던 조선 사대부들이 중국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을 닮았다는 이유로 방장산으로 고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방장산은 중국 삼신산의 하나에서 빌려온 이름으로 '산이 넓고 커서 백성을 감싸준다'라는 뜻이다. 한국은 중국의 삼신산을 본떠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불렀다. 호남지역에서는 방장산, 무등산, 지리산을 삼신산으로 불렀고, 전라북도에서는 일봉래로 변산을, 이방장으로 방장산을, 삼영주로 두승산을 삼신산으로 하였다.
많은 고지도에는 '반등산(半登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대동지지」(장성)에 "반등산(半登山)은 북으로 40리에 있고, 정읍본부(井邑本府) 4읍과 고창 흥덕과 교차하는 곳이다. 수도사(修道寺)가 있다."고 하였다. 「장성군읍지」에 "반등산 (半登山)은 북이면에 있고 노령에서 유래하며, 고창과의 경계를 이룬다. 일명 방장산이라고 한다. 고부의 두승산을 영주산, 부안의 변산을 봉래산이라 하여 세 산을 삼신산이라 한다. 이 줄기는 남으로 영광의 불갑사와 무안 승달산까지 달린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도 반등산 (半登山)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1872년 지방지도」(장성)에는 반등산(盤登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전형적인 산(山)의 산세를 지녔음에도 악산(岳山) 못지않은 기개와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방장산은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추앙받아온 산이다. 당당한 기세로 전남과 전북을 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호남지역의 명산이라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방장산은 산세가 크고 험한 데다가 전라남북도를 이어주는 요충지라서 백제가 신라에 멸망한 뒤 백제 유민으로 구성된 의적들의 본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도적성으로 불리는 성을 쌓고 지나는 사람들을 약탈하곤 했는데, 이런 도적질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백제 가요 '방등산곡(方登山曲:도적떼에게 장일현이란 여인이 납치되자, 남편이 구해주러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면서 불렀다는 노랫말인데, 가사는 전해오지 않는다)'의 무대가 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방장산 남쪽 백암리의 수도골에는 절이 많았다 하고, 한말에는 천주교민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동으로 헬기장봉과의 사이에 유독 흰 바위로 이루어진 절벽이 있었는데 이 바위에서 백암마을이란 이름이 유래되었고, 삼한시대의 성으로 전해오는 벽오산성(碧梧山城)이 벽오봉이란 이름을 남긴 것으로 짐작된다.
방장산으로 오르면서 멋진 조망을 즐겼기에, 방장산 정상에서는 간단한 인증만을 남긴다.
방장(方丈)이란 주지 또는 스승의 존칭으로 사용되는 불교 용어로, 유마(維摩)거사가 거처하는 방이 일장사방(一丈四方)이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방장은 원래 중국에서 고래로 청렴한 성인의 거실로 간주되었는데 이것이 유마경(維摩經)에서 설하는 유마거사의 간소한 거처와 결부되었고, 이로부터 사방으로 1장이 되는 승려의 방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방장은 단순히 간소한 거처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유마거사가 사방 1장의 협소한 방에서 3만 2,000의 좌석을 벌여놓았다는 데서 유래해, 법력(法力) 또는 도력(道力)이 특출난 스님을 의미하기도 한다. 방장이 주지나 스승의 의미로 쓰이는 것도 이런 뜻에서 나온 것이다. 근래 주로 큰 절의 주지(主持)를 가리켜서 방장화상이라 한다. 현재 한국에는 해인사의 해인총림(海印叢林), 송광사의 조계총림(曹溪叢林), 통도사의 영축총림(靈梵叢林), 수덕사의 덕숭총림(德崇叢林) 백양사의 고불총림(古弗叢林)에만 방장이 있다.
네이버 지도에도 방장산 연봉들의 표시가 엉터리고, 이름 또한 여러가지 다른 이름이 혼란스럽게 쓰인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동에서 서로 입암~노령~반등산~고사치~송현~문수사~취령산으로 이어지는데, "라는 표현이 있는데, 반등산 북쪽 골짜기는 현재에도 용추계곡이고, 고사치는 양고살재, 송현은 솔재, 취령산은 현재 문수산이나 장성군에서는 '축령산'이다. 취령산(鷲靈山)의 '취'를 '축'으로 읽은 것은 양산 통도사의 영취산(靈鷲山)이 영축산이 된 것과 같다.
현재의 지형도마다의 표기도 다르다. 최신 25000 지형도에는 두 곳(734, 640)에 '방장산' 지명표기가 되어 있고, 구 5만 지형도에는 734봉은 방장산(方丈山), 640봉은 방문산(方文山)으로 따로 표기하였다. 25000 지형도의 서쪽 640봉에 표기된 方丈山(방장산)은 方文山(방문산)의 한자가(文, 丈) 비슷한 데서 발생한 오기(誤記)로 보이지만, 정작 최고봉인 744.1봉에는 아무런 표기가 없다.
세상의 만물에게 고루 덕을 베푼다는 방장산의 의미를 되새기며 방장산을 돌아서니,
가야 할 영산기맥의 큰솔봉과 벽오봉에서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그리고 다음 구간에 가게 될 문수산도 뚜렷이 가늠된다.
잠시 능선을 따라 내려서니, 데크목 전망대가 나온다.
저기 영산기맥 벽오봉 능선 너머에 고창읍이 자리하고 있으니,
잠시 후에는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이다.
영산기맥 3구간에 가게 될 문수산 방향.
좌측에 불태산이 보이니 이 방향은 장성읍 방향쯤이다.
제법 가파른 방장산 내림길을 지그제그로 내려서면,
다소 완만하고 호젓한 능선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송전탑 아래를 지나게 되고,
우측 신평리 용추폭포 방향으로 갈림길이 있는 고창고개를 지나게 된다.
<고창고개(高昌時, 528m)>
전북 고창군 신림면과 전남 장성군 북이면을 넘나드는 고개로, 장성 쪽에는 편백나무 숲이 울창한 방장산 휴양림이 있고, 고창 쪽으로는 용추계곡으로 연결되는 고개다. 용추계곡에 있는 용추폭포는 수심이 20m나 되는 깊은 웅덩이로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고산자 선생이 쓴 대동여지도에도 용추계곡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고창고개를 지나는 백두들.
작은 봉우리를 우회하여 지나고,
좌측 사면으로 선명한 등로가 이어지고, 우측 직진 방향으로는 희미한 등로의 흔적이 있는 'Y자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 직진 방향으로 들어서면 큰솔봉(622.2m)에 오르게 되나, 오르는 등로가 잡목으로 지나기가 어려워 기맥꾼들도 통상 좌측 우회길로 통과하는 곳이라서 우리도 좌측 사면의 우회길로 들어선다.
사면길 주변은 조림목이 자라고 있고, 그 아래에는 루릅나무가 빼곡하다. 초봄에 날을 맞추어 오면..ㅉㅉ
좌측으로는 활공장으로 오르는 임도가 나란히 이어지며 방장산 자연휴양림 갈림길을 지난다.
좌측의 임도는 억새봉 정상을 향해 휘어지며 오르게 되고,
영산기맥길은 직진의 능선을 따라 바로 억새봉으로 이어진다.
옛 벽오산성의 흔적으로 보이는 너덜이 나오고,
<벽오산성지(碧梧山城址)>
전남 장성군 북이면 죽청리와 전북 고창군 신림면 반룡리에 걸쳐 있는 벽오산 정상부에 축성하였던 산성의 터이다. 벽오산성은 방장산(方丈山, 742.8m)의 남쪽 봉우리인 벽오산(碧梧山, 640m) 정상부에 쌓았던 테뫼식 산성으로, 벽오산은 벽오봉 또는 방문산, 속초봉이라고도 불린다.
등산로 표지판이 떨어져 있는 묵묘 옆 등로를 따라 오르면,
활공장으로 조성된 후 명명되었을 억새봉에 도착한다.
억새봉 정상목.
<억새봉(636m)>
평퍼짐한 봉우리에 잔디를 심어놓은 활공장 봉우리다. 삼면봉(전북 고창군 신림면, 고창읍, 전남 장성군 북이면)으로 억새봉이란 이름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억새는 보이지 않고 잔디가 봉우리 전체를 덮고 있다. 억새봉이라 표기된 활공장 정상에 서니 고창의 산하(山河)들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선운산과 곰소만 너머의 변산반도까지 아련히 가늠된다. 하지만 어느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는 않다.
벽오봉 정상에서의 조망 (10:31 48")
돌아본 방장산 방향.
서쪽 선운산도립공원 방향.
남서쪽 고창읍 방향.
남쪽 영산기맥 벽오봉 방향.
서북쪽 곰소항 방향으로 신림면의 너른 들판이 내려다 보이고,
서쪽으로는 선운산도립공원이 뚜렷하게 조망된다.
선운산은 10년도 지난 2006년 11월 11일에, 백두들이 다녀왔던 곳인데 꽃무릇이 너무나 고왔던 기억이 있는 곳인데, 석여사님께서는 얼마 전에 산악회를 따라 꽃무릇을 보려고 불갑사를 다녀왔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3대 꽃무릇 탐방지는, 첫째가 고창 선운사, 둘째가 함평 용천사, 샛째가 영광 불갑사로, 불갑사가 자리한 불갑산은 영산기맥에 있는 산이므로 내년 초쯤에 오르게 될 터이다.
남서쪽으로는 오늘 목감과 점심식사가 예정된 고창읍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고창군(高敞郡)은 삼한(三韓)시대에는 마한의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모이부곡현(牟伊部曲縣)이었고, 백제 때에는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 또는 모량현이라 불렸다. 신라 경덕왕 때 4개의 현으로 분리되면서 무송현(茂松縣), 장사현(長沙縣), 상질현(尙質縣), 고창현(高敞縣)으로 바뀌었다. 고려시대에는 장사현과 무송현은 영광군(靈光郡)에 속하였고, 고창현과 상질현은 고부군(古阜郡)에 속하였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고창현으로 바뀌고, 조선 말기에 고창군이 되었다. 지금의 고창군은 조선시대의 고창현(高敞縣), 무장현(茂長縣), 흥덕현(興德縣) 등 3개의 독립된 현이 있었던 곳이다. 대체로 지금의 고창읍과 고수면(古水面)·아산면(雅山面) 일대는 옛 고창현 지역이며, 무장(茂長)·성동(星洞)·대산(大山)·공음(孔音)·상하(上下)·해리(海里)·심원면(心元面) 일대는 옛 무장현 지역이고, 흥덕(興德)·성내(星內)·신림면(新林面) 일대는 옛 흥덕현 지역에 해당한다. 3개 현은 1895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고창군·무장군·흥덕군이 되어 전주부에 소속되었다가, 1896년의 지방제도 재개편으로 전라남도에 속했다. 이는 나주·영광 등과 지역적 연계가 많아 동일한 문화권과 생활권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로교통의 약화와 육로교통의 변화 등으로 1906년 3개 군이 전라북도로 편입되었으며, 지방구역 정리에 의해 고부군의 비입지(飛入地)인 부만면이 흥덕군에 이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3개 군 중 가장 작은 곳이었던 고창에 나머지 2군이 합병되어 고창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5년 고창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고창이라는 지명은 높고 넓은 들(보리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고창의 인물로는 녹두장군으로 불리는 전봉준과, 미당 서정주선생, 명창 동리 신재효, 그리고 동아일보를 창간한 인촌 김성수가 이곳 고창 출신이다.
남쪽 멀리로는 앞으로 이어갈 영산기맥의 봉우리들이 멋진 산그림을 그리고 있다.
선운산을 배경으로.
방장산 방향.
깃대에 꽂힌 불끈 쥔 주먹이 이채롭다.
북쪽 변산반도를 배경으로.
억새봉 한켠에는 '방장산시산제제단'과 '方登山歌碑(방등산가비)'가 세워져 있다.
<방등산가비(方登山歌碑)>
方登山 在羅州屬縣 長城之境 新羅末 盜我大起 良家子女 據此山 多被擄掠長日縣之女
방등산 재나주속현 장성지경 신라말 도적대기 량가자녀 거차산 다피로략장일현지녀
亦在基中作此歌 而諷其夫不卽來求也 - 高麗史樂志
역재기중작차가 이풍기부불측래구야 - 고려사악지
방등산(方登山)은 나주의 속현(屬縣)인 장성(長城)의 경계에 있는데, 신라 말 도적이 크게 일어나 이 산에 웅거하였다. 양가(良) 자녀들이 많이 붙잡혀 갔는데 장일현(長日縣)의 한 여인도 그 안에 있었다. 이 노래를 지어 남편이 즉시 와서 구해주지 않음을 풍자하였다.
방등산가는 신라 말에 지어진 백제 후예의 노래다.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위와 같은 내력만 전하는데, 장일현을 장성이라 추정한 옛 기록도 있다. 또한 방등산은 반등산(半登山) 또는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부르는데, 고창 고을의 진산(鎭山)이 되며 예로부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져 왔다. 이제 아스라이 천년 세월이 흘렀으나 이 노래에는 당시 고단한 삶을 살던 민초들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기에 그 태자리가 되는 이 산에 군민들의 마음을 모아 삼가 이 노래비를 세운다. 2014. 2. 28 / 고창군 고창문화원
방등산가方(登山歌)는 작자, 연대 미상이다. 「고려사」 권71, 삼국 속악조에 가사는 전하지 않고 노래의 내력만 전한다. 「고려사」에는 제목이 「방등산(方登山)」으로 되어있고, 「증보문헌비고」에는 반등산곡(方登山曲)으로 되어있다. 백제시대 5대 가사에 선운산가, 방등산가, 무등산가, 지리산가, 정읍사가 있는데, 가사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노래는 정읍사(井邑詞) 뿐으로, 정읍현(井邑縣, 현재의 전라북도 지명)에 사는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혹시 밤길에 위해(危害)를 입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나타낸 노래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의 정읍사(井邑詞)와 방장산가, 선운산가 셋 모두 남편을 그리며 우는 아낙의 노래로 백제 여인들의 님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모자람이 없었지 싶다.
억새봉을 뒤로하고 벽오봉을 향하는데,
영산기맥 벽오봉능선 좌측으로 고창 MTB 코스가 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억새봉 남쪽 언덕을 오르니 방장산 등산안내도와 돌탑, 사각의 정상목이 있는 벽오봉이다.
<벽오봉(壁梧峰, 640m)>
전북 고창군 신림면과 고창읍, 전남 장성군 북이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2010년에 제작된 지도에는 방문산(方文山)으로 표기되어있다. 이는 방문산(方文山)과 한 산줄기에 있는 방장산의 가운데 글자인 '어른 장(丈)'을 '글월 문(文)'으로 잘못 해석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본래 방문산은 벽모봉으로 불렀는데, 벽오봉의 지명유래를 살펴보면 예전에 고창 주변이 바다였을 때 오동나무를 싣고 가던 선박이 벽오봉에 부딪혀서 난파된 뒤 이곳에 오동나무가 자생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벽오봉에서 본 방장산 모습.
영산기맥 문수산 방향.
벽오봉 정상목.
방장산 등산 안내도.
서쪽 고창읍 조망.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영산기맥은 악명높은 길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여 겨울산행을 택했는데, 장성새재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능선은 남도의 인심만큼이나 후덕하고 평온한 길이다. 그렇게 능선길을 잠시 따르면,
장성갈재에서 방장산 남사면을 따라 억새봉을 들렀다가 고창읍 공설운동장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가로질러, 등산로 표시가 되어있는 영산기맥 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좌측 아래 100여 미터 지점의 방장동굴로 이어지는 희미한 갈림길을 지나고,
<방장동굴>
방장동굴은 방등산가(方登山歌)의 유래가 얽힌 동굴로서 예로부터 도적때의 소굴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구한말 병인박해를 피해 충청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노령산맥을 넘어와 신앙을 지키며 은거하기도 하였고, 6.25 때는 빨치산의 근거지가 된 곳이기도 한 동굴이란다.
잠시 더 완만한 능선길을 내려서면, 문너머재를 지나게 된다.
문너머재에서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오르면,
남사면에 오래된 묵묘가 자리한 갈미봉/별봉((579m) 정상에 도착한다.
갈미봉 정상에서 본 남쪽 정성읍 방향 조망.
문수산 방향 조망.
갈미봉 정상에 도착하는 백두들.
갈미봉 정상에서 가져온 과일을 나누며 잠시 편안한 휴식을 가진다.
갈미봉에서 잠시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는 갈미봉과 매봉 사이의 안부인 배넘이재가 나오고,
이곳에서 앞쪽으로 보이는 매봉(553m)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으로 우회하여 양고살재로 향한다.
벽오봉과 갈미봉 사이의 잠시 전에 지났던 고개가 '문너머재'이고, 이곳은 배넘이재이다. 벽오봉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 고창이 예전에 바다였다고 하니, 아마도 바닷물이 밀려와 배가 고개로 넘나들었다 하여 그리 불리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배넘이재에서 우측 사면길로 들어서는 백두들.
등로는 우측 사면 아래로 제법 급하게 고도를 낮추어,
대나무숲을 지나면,
좌측 절벽 아래에 자리한 방장사 입구를 지나게 된다.
<방장사(方丈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다. 벽오봉 절벽 아래에 자리잡은 조그만 암자로, 예전에는 임공사(臨空寺)였으나 절집이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현재의 사찰은 1965년 주지 법륜(法輪)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관세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고 보살상 뒤에 후불탱화가 있으며, 법당, 요사채, 선방이 있다.
방장사를 언제 다시 찾을지 몰라 가보고 싶지만, 일행들이 많으니 그냥 양고살재로 향한다.
이 등산로 위쪽에는 방장사가, 아래쪽에는 미소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안내도가 있다.
앞쪽에서 걸어오는 스님의 모습이 범상치 않아 보이고,
앞쪽으로 양고살재로 오르는 고창 석정온천 삼거리에서 장성 북이면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가늠된다.
낙엽이 푹신한 수레길을 따르면,
전라남.북도를 경계하는 양고살재에 도착한다.
미소사와 방장사를 안내하는 이정석과 방장산 등산안내도.
"지혜와 자비의 도량"
깊은 물과 얕은 물 그 흐름이 다르다.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를 내고 흐르지만 깊고 넓은 큰 바다의 물은 소리를 내지 않고 흐른다. 부족한 것은 시끄럽지만 가득 찬 것은 조용하다. 어리석은 사람은 반쯤 채워진 물그릇과 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가득찬 연못과 같으니라. - 숫타니파타에서 -
양고살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양고살재(楊古殺時, 300m)>
전북 고창군 석정리와 전남 장성군 북이면 죽청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15번 국지도가 지난다. 고개 정상에는 여러 개의 이정표와 널찍한 주차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인근의 미소사와 방장사를 찾는 신도들이 이용하는 곳인 듯하다.
양고살재는 병자호란 때 고창 출신 박의 장군이 누루하치의 사위인 적장 양고리(陽古利)를 척살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박의(朴義)는 1599년(선조 32년) 고창군 고수면 초내리 산양동에서 고창 입향조인 관찰사 양오공의 증손으로 태어났다. 용기가 대단하고 말을 잘 타며 총을 잘 쏘아 박포수라 불렀다. 1624년(인조 2년) 무과에 급제하고 부장(部將)이었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서울이 함락당하고 임금은 급히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는 수모를 당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었다. 전라도 병마절도사 김준용이 근위병을 거느리고 수원 근교 광교산에서 적을 만나 싸워 여러번 이기기는 하였으나, 갑자기 내린 폭설을 만나 양군이 격전을 벌인 끝에 아군이 패하게 되었다. 박의는 적군의 이동로인 방장산 입구에 매복하고 있다가 적이 나타나자 적의 대장을 초탄에 명중시켜 쓰러뜨렸다. 죽은 적의 상장은 양고리라는 만주 정황기인으로 누루하치의 사위로서 창평전투에서 58회나 승리하여 청태종의 총매를 받던 명장이었다. 이때에 예친왕 다락을 따라왔다가 박의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청나라 사기에서 보듯 청태종은 그의 죽음을 듣고 크게 통곡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무훈왕을 봉하였다 한다. 양고리가 죽은 뒤에 산에서 조급히 몸을 피하는 자가 있는 것을 보고 청군이 저 사람이 양부마를 쏜 사람이라 하니, 활을 잘 쏘는 애륵을 시켜 잡아 목을 바치었다고 한다. 박의의 묘소는 고수면 예지리 양정에 있으며, 후손은 고수면 장두리와 아산면 중월리 등에 살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명유래에는 "큰 재(峙)와 작은 재(峙) 두개가 있다고 하여 양고령이라 불렀으며, 양고령이 발음 변화로 양고살재라 부르게 되었다."라고 되어 있는데, 장성군 죽청리 마을에는 이와는 또다른 유래도 보인다.
세종실록 지리지(권제151. 16장) 장성현에 기록되기를,
長城縣 古百濟古尸伊縣 新羅改坤成都 高麗改長城郡 爲靈光任內 明宗二年壬辰置監務 本朝因之
장성현 고백제고시이현 신라개갑성군 고려개장성군 위영광임내 명종이년임진치감무 본조인지
장성현은 본래 백제의 고시이현인데 신라에서 갑성군으로 고쳤다. 고려에서 장성군으로 고쳐서 영광의 임내로 하였다가 명종 2년 임진에 감무를 두었다.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즉, 장성의 옛 이름이 고시이(古尸伊)이고, 고시이로 가는 고개라 고사치가 되고, 고사치가 고살재로, 웃고살과 아랫고살을 보태서 양고살로 변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의 표기 역시 古沙峙(고사치)이니, 누루하치의 사위 楊古(양고)를 殺(살)했다는 내용은 근거가 약해진다.(펌)
양고살재의 지명유래를 따지는 것도 유익한 일이기는 하지만,
청나라 장수를 죽인 박의 장군의 용기 또한 본받아야 할 일이라 여기며 양고살재를 뒤로하고 솔재로 향한다.
양고살재에서 우측으로 잠시 도로를 따르면 좌측 편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고,
'예향천리마실길 안내도' 옆 임도로 들어서서 솔재로 향한다.
임도 우측에는 고창읍 방향 조망이 좋은 운월정(雲月亭)이라는 정자가 있지만,
혼자가 아니니 그냥 지나칠 밖에는..
200
좌측 조림지로 갈림길이 있는 곳에서 직진의 능선길로 들어서서,
좌측에 멋진 조림숲을 두고 능선을 따라 오른다.
임도 수준의 능선길이 제법 가파르게 이어지더니,
좌측에 390봉으로 오르는 영산기맥 능선을 두고,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낙엽 수북한 사면길을 따른다.
390봉 능선으로 올라도 이내 다시 수레길로 내려서게 된다.
수레길을 5분여 따르니 다시 영산기맥 능선으로 접속하게 되고,
다시 사면의 송전탑을 지나게 된다.
후미를 기다렸다가 함께 진행하고,
우측 고창읍 방향으로 조망이 트이는 송전탑을 지난다.
아마도 양고살재에서 솔재까지의 영산기맥 길은 송전탑관리용 임도 덕분에 편안히 진행할 수 있는 듯하다.
다닌 흔적이 거의 없는 능선을 따르면,
영산기맥 우측편은 벌목이 된 곳이 나오며,
우전방으로 가야 할 솔재도 어림잡아 가늠이 된다.
중앙의 둥그런 봉우리가 검치재에서 들독재로 가기 위해 올라야 하는 440봉쯤이다.
우측 고창읍 방향.
잡목 투성이의 능선에서 우람하고 멋진 형제 나무들이 이채롭고,
411봉쯤을 오르다가 돌아본 방장산이 저만치 멀리로 보인다.
411봉쯤에 도착하여 잠시 지친 다리를 쉬게 한다.
최근 대부분의 정기산행에서 중도에 탈출을 하였는데, 오늘은 완주를 하려고 속도를 꾸준히 이어가니 무척이나 힘겨운 듯하다. 그래도 늘 그러했듯이 "놀면 누가 대신 가 주나, 한걸음이라도 내가 걸어야지!"를 되뇌며 솔재를 향한 영산길 능선을 따르면,
잡목으로 사방이 거려진 곳에 '영산기맥 416.6m'라는 '준.희'님의 표지판이 반갑고,
솔재를 향한 내림길 좌측 편에 빛바랜 고창예향천리마실길 '양고살재' 안내판이 있다. 왜 이곳에?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고,
좌측 사면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임도를 두고 직진의 능선을 따라 솔재 직전의 봉우리로 들어서면,
등로는 간데없이 사리지고 희미한 족적만이 이리저리 어지럽다.
대충의 솔재 방향으로 길없는 사면을 내려서면,
묘지를 지나게 되고,
이내 898번 지방도가 지나는 솔재에 도착한다.
<솔재(松時, 284m)>
전북 고창군 고창읍과 전남 장성군 북일면을 잇는 89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옛날에는 소나무가 많아서 송치(松時)라고 부르다가 순수 우리말인 '솔재'로 부르게 되었단다. 대동여지도에는 松峴(송현)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정상에는 쉼터와 수준점 그리고 삼각점이 있다.
솔재 고창 방향.
솔재 장성 방향.
'새마을 꽃동산'이라 새겨진 솔재 이정석이 있고,
솔재 들머리가 있는 고창 쪽으로 진행하면,
원두막이 있는 쉼터가 있고,
고창 방향 조망이 시원하다.
솔재 들머리.
원래는 이곳에 버스를 주차해 놓기로 했었는데, 오늘은 전원이 완주를 한다기에 버스를 산행 종착지인 금곡영화마을로 이동하여 대기토록 했다. 하지만 장성갈재에서 이곳까지 높은 방장산을 넘어서 6시간이나 걸어온 터라 몇몇 분은 이곳에서 산행을 마치기를 원했지만, 이곳에서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예기를 듣고서는 하는 수 없이 완주의 길에 나서게 된다. 역시 사람의 의지와 약간의 인위적인 조작이 가미되어야만 좋은 결과물이 산출됨을 다시 한번..ㅉㅉ
뭐, 쉴 것 있어! 어서 갑시다!
솔재 들머리로 들어서서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등로 우측에 동그란 4기의 묘지가 살아생전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이동통신 중계탑이 있는 333봉 주변이 벌목되어 있어서 사방으로 조망이 멋지다.
돌아본 방장산 방향.
가야 할 399.8봉 방향.
우측 고창읍 방향.
좌측 불태산 방향.
399.8봉 방향으로 영산기맥 능선을 따르는 백두들.
돌아본 방장산 방향.
우측 고창읍 월산리 방향.
월산리는 풍수지리상 지형이 '운중반월(雲中伴月)' 이라 하여 '월산'이라 부르며,
조선시대 후기에 창녕조씨와 김해김씨가 들어와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개념도의 399.8봉 능선에 올라서며 돌아본 방장산 방향.
399.8봉을 지나며 잠시 지친 다리를 쉬게 하고,
다시금 수북이 쌓인 낙엽이 덮고 있는 영산기맥 능선으로 이어진,
희미한 영산기맥꾼들의 자취를 더듬어서 따르면,
묘지를 지나 송전탑 옆으로 임도가 나오는데 북당골 안부다.
이곳은 좌측 전남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북당골과 우측 전북 고창군 고창읍 월산리를 잇는 고개다.
북당골 안부를 지나는 백두들.
북당골 안부 송전답부터는 임도 수준의 수레길이 이어지는데,
영산기맥 능선으로는 어떠한 길 흔적도 보이지 않고,
임도가 능선을 넘나들며 이어지므로 편안한 임도를 따르기로 한다.
낙엽이 수북이 덮인 임도가 편평하게 이어지며 걷기에 더없이 좋다.
작은 봉우리로 오르는 영산기맥 능선은 잡목으로 덮여 있어서 봉우리 좌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다가,
좌측 아래로 내려가는 임도를 두고 우측 사면의 묘지로 들어선다.
사실 이곳에서 좌측의 임도를 따라가면 개념도의 324봉을 우회하여 바로 검곡치로 갈 수 있다.
묘지를 지나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선답자들의 족적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사면을 잠시 오르게 되고,
영산기맥 능선 방향으로 이어진 희미한 족적을 따르면,
앞쪽으로 324봉쯤이 보이고,
봉우리를 내려서는데 준.희님의 "힘내새요"가 확신을 갖게 한다.
둥그런 안부를 지나고,
제법 가파른 까플막을 치고 오르면,
개념도의 324.8봉 정상에서 선탑자들의 표지기들이 환영해 준다.
324.8봉 인증.
324봉을 내려서면 검곡치가 나오는데, 이후의 440봉으로 올라 445봉을 거쳐 들독재로 내려서는 영산기맥길이 험하다고하니, 검곡치에서 임도를 따라 들독재로 진행하여 금곡마을로 하산하라 일러드리고는, 홀로 영산기맥 능선길의 상태를 확인하러 나선다.
역시나 검곡치로 내려서는 기맥 등로는 보이지를 않고,
대충의 방향을 잡고서 내려서니 임도가 지나는 검곡치가 나온다.
<검곡치(劍谷時, 324.8m)>
전북 고창군 고창읍 월산리에서 전남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금곡마을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 있고, 좌측 임도를 따르면 금곡마을과 들독재(수량동고개)로 바로 갈 수 있다. 아마 검곡치(劍谷時)는 금곡마을에서 딴 이름으로 보이는데, 한자표기는 그렇더라도 금곡마을과 같은 음이니 더욱 그렇다. 많은 선답자들은 이곳에서 좌측 임도를 따라서 들독재(수량동고개)까지 간다고들 하는데, 도대체 영산기맥이 험하다고 하는 이유가 뭔지를 알아보려 임도를 가로질러 440봉 오름길 능선으로 접어든다.
무릎에 문제가 있다는 권샘도 있고 다른 분들도 많이들 지친 상태라,
후미분들은 이곳 검곡치에서 임도를 따라 들독재로 향한다.
잘 단장된 묘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등로도 좋을 것으로 기대해 보지만,
등로라기 보다는 약초꾼들 족적 수준의 희미한 길이 이어진다.
앞쪽으로 올라야 할 440봉쯤이 가늠되어 다소간 안심을 하고,
뒤돌아 보이는 방장산과 벽오봉 능선이 힘내라고 응원해 준다.
묵묘를 지나 잡목숲 터널로 들어서면,
족적조차 더듬기 어려운 관목숲이 막아서지만,
그나마 가끔씩 눈에 띄는 표지기에 용기를 얻어 진행해 보지만,
무자비하게 태클을 거는 잡목과 가시들로 온 몸과 얼굴에 생채기를 남기며 진행하는데, 앞쪽에서 "백~~"이라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440봉을 먼저 올랐던 선두팀들이 진행이 어렵다며 다시 검곡치로 내려오고 있다. 도대체 어느정도 수준이기에 직진본능의 백두들을 물러나게 하였는지 확인해 봐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하여, 내려오는 백두들을 보내고는 다시금 440봉을 향해 오른다.
뒤쪽으로는 양고살재에서 이어온 영산기맥 능선이 가늠되고,
양고살재 뒤편으로 새벽에 출발했던 장성갈재도 대충 어림 잡힌다.
돌아본 장성갈재 방향.
440봉 정상은 한발짝을 때기가 어려운 수준이고,
돌아본 방장산 방향으로 오늘 걸어온 영산기맥 능선이 한눈에 가늠된다.
440봉 정상부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니 기상관측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시설 울타리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서면,
바로 편백나무숲 임도가 나오는데,
능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진행한다.
440봉에서 445봉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과 나란히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며,
돌아본 기상관측시설에서 내려선 임도 날머리.
능선에는 허기진 기맥꾼을 위한 감도 주렁주렁 열려 있건만 눈요기만 가능할 뿐이고,
가끔씩 걸려있던 표지기도 보이지 않고 영산기맥과 관련된 어떠한 표식도 없어서,
약간은 불안감이 드는 의심스러운 임도를 따르면,
우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선운산도립공원과 고창읍이 살짝 보이고,
고창의 너른 들판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이 임도를 따라 영산기맥 능선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한 의구심을 가지고,
그나마 능선과 나란히 이어지기에 임도를 따라 잠시 더 진행하면,
남서쪽 영광 방향.
서북쪽 선운산도립공원 방향.
편백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능선과 멀어지는 듯하여 임도를 두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서,
또다시 희미한 족적을 더듬으며 좌측으로 영산기맥 능선을 찾아 나선다.
밋밋한 능선 둔덕의 작은 나뭇가지에 표지기가 걸린 445봉을 찾아내고는,
다시금 영산기맥 능선에 올랐음에 안도하며,
영산기맥 445봉 인증을 남긴다!
445봉을 뒤로하고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들독재로 향하면,
오래된 원형철조망과 철울타리 옆으로 희미한 족적이 이어져 있다.
전방 축령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조망이 트이며, 멀리 불태산도 살짝 보인다.
묵묘를 만나며 희미한 족적은 훨씬 뚜렷해져 등로의 모습을 갖추고,
녹슨 철울타리 옆으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들독재로 향하는데,
능선 좌측 편은 울창한 편백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
앞쪽으로 들독재(수량동고개)로 이어지는 임도가 보이고,
시멘트 포장 임도에 내려서면,
이내 들독재(수량동고개)에 도착한다.
<들독재/수량동고개>
전남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금곡마을에서 전북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수량동으로 연결하는 고개로, 좌측인 장성 쪽에는 금곡영화마을이 있고, 우측에는 세심원이 있다. 그리고 세심원에서 조금 더 가면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문수사가 있다. 수량동고개라고도 부르는 들독재란 이름은 장성군의 청량산 안내도에 나오는 이름으로, 금곡동 윗골짜기가 들독골이라서 들독재라 하는 모양인데, 네이버 지도에도 들독재로 표시되어 있다.
좌측 장성군 북일면 금곡마을 방향.
우측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수량동 방향.
들독재 우측에 있는 축령산휴림(세심원)이라는 숙박시설 모습.
<세심원(洗心院)>
인터넷 지도에는 '축령산휴림'으로 표시되어있는 세심원(洗心院)은 한자 그대로 뜻을 풀이하자면 마음을 씻는 곳이다. 원래 장성군 민원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일찍 퇴직하신 한 분이, 축령산 자락에 그동안 소장해오던 미술 작품을 모아 미술관을 만들고 장성과 고창 중간에 세심원(洗心院)'이라는 쉼터를 열었다고 하는데 수도를 하는 곳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온갖 소음과 정신없음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배려해 놓은 곳이라고 한다.
들독재 이정목.
들독재에서 영산기맥 두번째 구간 잇기를 마치고 좌측 금곡마을로 내려선다.
"밝은 마음"
금곡마을 갈림길.
좌측은 검곡치로 이어지고 직진이 금곡마을 방향이다.
돌아본 들독재와 검곡치 방향.
금곡영화마을의 우물.
금곡영화마을은 장성군 남면이 고향인 거장 임권택 감독이 이곳에서 영화 '태백산맥'을 찍었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 '만남의 광장' 그리고 드라마 '왕초' 등이 금곡마을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축령산 편백숲 안내도.
금곡영화마을 전경.
금곡마을 전경.
기다리는 애마가 보이고,
모처럼 전원이 완주한 산행을 마감하고 버스에 올라,
고창읍의 목감탕에서 땀을 닦고,
고창의 진인 보성씨가 추천해 준 길뜨락이란 식당에서,
고창의 명주 3년 된 복분자로 산행의 피로를 잊는다.
호남의 맛이 깃든 풍성한 뒤풀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한다.
고창의 진인 김보성님이 직접 작정한 메모!
다음 새해 첫 산행에서 굴비한정식을 기대하며,
2019년도 정기산행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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