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산행>
산행장소 : 서울 남산둘레길.
산행일시 : 2019. 12. 28.(토) 오전 09:00 ~ 12:00
집합장소 : 지하철 서울역 10번출구 09:00
산행코스 : 서울역 ~ 백범광장 ~ 잠두봉전망대 ~ 남산(270.8m) ~ 남산둘레길 ~ 서울역
(약 12km, 3시간 소요)
※ 산행이 지체될 경우 동대입구역에서 산행 종료 예정.
◈ 이동 : 서울역 종료시 4호선 탑승 -> 사당역 2호선 환승 -> 선릉역 하차.
동대입구역 종료시 3호선 탑승 -> 교대역 2호선 환승 -> 선릉역 하차.
<송년회>
일 시 : 2019. 12. 28.(토) 14:00 ~ 16:00
장 소 : 강진수산 (선릉역 4번출구 70m, 테헤란오피스빌딩 B1)
(02-562-1155)
참가인원 : 28백두.
<송년산행 지도>
서울 남산 송년산행을 앞두고 날씨가 온화하고 맑기를 간절히 바랬고, 실제로 송년산행일 날씨는 더없이 좋았다. 늘상 그러하듯이 우리는 내일 날씨가 맑기를 기대하지만, 정말로 우리의 바람대로 맑은 날만이 계속된다면, 그곳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에서도 매일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라지만 바람대로 행복한 날만 이어지게 된다면, 그 행복은 가치를 잃고 그 삶마저 위협하게 될 것이다. 2019년 한 해는 우리의 희망을 앗아가고 화나게 하는 일들이 연속되는 와중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산행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었는데, 다가오는 새해에는 뭔가 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한해를 마감하는 산행과 묵은 때를 고스란히 털어낼 송년회를 갖게 되었다.
지난 2015년 송년산행 때, 남산~서울숲 코스를 걸으면서 서울 남산은 올랐던 곳이라서 다른 장소를 물색해 보았으나 시간적인 제약 등으로 다시 한번 남산을 올라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산둘레길을 따라 서울의 사방을 조망하며 앞으로 우리의 희망이 될만한 게 뭣이 있는지를 생각하며 걸어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주말이라 비교적 한산한 지하철에서 내리니, 앞 뒤쪽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시간에 맞추어 같은 열차에 탑승하였던 모양이다. 어느새 우리 회원들도 스마트폰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0번 출구 쪽 빵집에서 커피를 나눠먹으며 출발시간을 기다리는데, 권법사님 내외분이 약간 늦는다고 연락이 와서 창병 대장이 기다렸다가 함께 오기로 하고는, 약속한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남산둘레길 송년산행을 시작한다.
조금 쌀쌀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예년에 비해 포근하고 화창한 날씨라 겨울 산행하게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백범광장공원으로 오르는데,
앞쪽으로 남산 정상의 서울타워가 보인다.
<남산둘레길>
지난해에 완전히 개통된 남산둘레길은 모두 다섯 가지 테마로 특별한 남산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계절 사랑받는 아름다운 산책길 북측순환로.
남산 케이블카 앞 북측순환로 입구 쉼터에서 국립극장 앞 남산 순환버스정류장까지 3,420m에 이르는 길로, 차량과 자전거의 통행을 금지시켜 쾌적하게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남산둘레길 중 가장 길고 넓은 구간으로 경사도 완만하다. 사계절 내내 사랑받는 산책 명소로 벚꽃이 피는 봄과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더 가까이 남산의 자연을 만나는 길 산림숲길.
남산순환버스정류장에서 야생화원에 이르는 910m의 길로 대부분이 숲길 코스이다. 북측과 남측의 둘레길을 연결하기 위해 새로 조성되었다. 남산둘레길에서 자연과 가장 가까운 길로 나뭇잎이 옷깃을 스치고 새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남산의 산림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고 걷다 보면 숲 한가운데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야생화 가득한 자연학습장의 명소 야생화원길.
남산 야생화공원에서 야외식물원 쉼터에 이르는 880m의 길로, 꽃과 나무를 감상하며 쉬엄쉬엄 산책하기에 좋다. 야생화공원에는 다양한 나무와 초화류가 자라고 있으며 팔도소나무단지에는 전국에서 온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생태체험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공원이용지원센터와 한남유아숲체험장도 있어 자녀와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숲 속 작은 동식물들과 친구가 되는 길 자연생태길.
야외식물원 쉼터에서 소월시비 쉼터까지 이어지는 1,650m에 이르는 산책길로 다소 가파른 경사가 있는 구간이다. 무분별한 샛길로 산림이 훼손된 부분을 정비하여 산림생태계를 복원했으며 소생물서식지, 남산제비꽃 군락지 등 생태자원이 풍부하다. 남측순환로와 합류하는 구간에서는 길 양옆으로 벚나무를 볼 수 있다.
역사의 숨결이 이야기가 되는 길 역사문화길.
소월시비 쉼터에서 북측순환로 쉼터에 이르는 640m의 길로 서울역과 회현동 방면에서 남산공원으로 진입하면 백범광장을 지나 이 길과 합류한다. 남산도서관, 안중근의사기념관,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호현당, 삼순이계단 등 역사문화자원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서울한양도성길과 맞닿아 있고 중앙계단길을 이용해 남산을 오르기에 좋으며 남산서울타워까지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을 지난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안중근의사는 일제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험에 처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려 대한의 민족혼이 살아있음을 세계 만방에 알린 민족의 영웅이다. 동양평화를 위해 헌신한 안중근의사는 일제의 부당한 판결을 받고 뤼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던 중 서론과 본문의 일부만을 남긴채 1910년 3월 26일 순국하셨다. 때문에 아쉽게도 우리는 그 깊은 평화사상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조국이 광복을 이룬 후에도 한국전쟁과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안중근의사에 대해 이렇다 할 위훈을 기리지 못한 채 많은 세월을 보낸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중 1970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지시와 국민의 성금 등으로 일제시기 민족정기를 탄압하는 조선신궁이 있던 서울 남산 현 위치(회현자락)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개관하게 되었으며, 세월이 흘러 기념관이 노후·협소해짐에 따라 2004년 (사)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은 노무현대통령의 지시로 국가보훈처에서는 2010년 10월 26일 새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벌써 몇년째 한양도성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공사현장을 지나서,
남산 정상을 향한 계단길을 오른다.
앞쪽으로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라는 전망대가 보인다.
잠두봉(蠶頭峰)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강 북안 절두(切頭)산에 있는 봉우리로, '누에머리'를 닮았다 하여 잠두봉으로 불리는 봉우리인데, 왜 이곳 전망대에 잠두봉이란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곳이 누에의 머리처럼 생긴게 아닐까 짐작만 해 본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던, 이곳 '잠두봉 토포 아일랜드'는 서울 도심지와 서대문 안산, 인왕산, 도봉구 북한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전망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잠두봉 전망대에서 북악산을 배경으로.
목멱산 봉수대로 오르는 한양성곽 옆 돌계단길을 따라 오르면,
남서쪽 여의도 방향.
서쪽 강서구 방향.
평소 같았으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한산한 남산케이블카 입구를 지나게 되고,
이내 목멱산봉수대(남산봉수대) 앞 남산 정상부에 도착하게 된다.
<목멱산 봉수대(木覓山 烽燧臺)>
서울특별시 남산에 복원한 조선시대 봉수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4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후 목멱산(남산)에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전국의 봉수가 최종적으로 모두 목멱산 봉수대에 전달되도록 하였는데, 목멱산 봉수대는 중앙 봉수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목멱산에 설치된 봉수대는 갑오개혁 다음 해인 1894년까지 거의 500여 년 동안이나 사용되었다. 봉수대의 명칭은 현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木覓山) 봉수'라고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라고도 하였다. 목멱산 봉수대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5개소가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현재의 목멱산 봉수대는 《청구도》 등 관련 자료를 종합하고 고증하여 현 위치에 1개소를 복원한 것이다.
봉수란 근대적 통신수단이 발달되기 전까지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국가적 통신수단으로 사용하였던 제도이다. 변방에서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 경우 그 사실을 가까운 관아와 해당 지역에 신속하게 알려 위급한 사태에 빨리 대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여러 곳에 설치한 봉수대를 릴레이식으로 중앙에 알리는 역할도 하였다.
한국의 경우 봉수는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였다. 평상시에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경계에 접근하면 셋, 경계를 침범하면 넷, 경계에서 적과 아군이 접전 중이면 다섯을 올리도록 하였다. 서울특별시는 목멱산 봉수대 이외에도 무악동 봉수대, 아차산 봉수대를 복원하고 서울특별시 기념물 13호와 15호로 각각 지정하였다. 목면산(남산) 봉수대는 1993년 9월 20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었다.
남산 정상 전경.
<남산(南山, 265.2m)>
서울특별시 중구와 용산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駱山), 서쪽의 인왕산(仁旺山)과 함께 서울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목멱산(木覓山)·종남산(終南山)·인경산(仁慶山 또는 引慶山)·열경산(列慶山)·마뫼 등으로도 불렸으나, 주로 목멱산이라 하였다.
조선 태조가 한양(漢陽)을 도읍으로 정하였을 때 남산은 풍수지리설상으로 안산(案山) 겸 주작(朱雀)에 해당되는 중요한 산이었다. 도성(都城)도 북악산·낙산·인왕산·남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되었다. 지금도 남산 주변에는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다. 남산의 정상에는 조선 중기까지 봄·가을에 초제[醮祭 : 성신(星辰)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내던 목멱신사(木覓神祠), 즉 국사당[국사당(國祀堂), 또는 국사당(國師堂)]이 있었다. 또한 조선 시대 통신 제도의 하나인 봉수제(烽燧制)의 종점인 봉수대가 있어 국방상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전국 각지와 연결되는 남산의 봉수 중 제1은 양주 아차산(峨嵯山)에 응하는데, 이는 경기도·강원도·함경도와 연결되었으며, 제2는 광주 천천령(穿川嶺)에 응하여 경기도·충청도·경상도와 연결되었고, 제3은 무악(毋岳) 동쪽 봉우리에 응하여 경기도·황해도·평안도와 연결되었다. 제4와 5는 제1·2·3이 육로로 이어지는 데 반하여 해로로 이어지는 봉수로였고, 제4는 무악 서쪽 봉우리에 응하여 경기·황해·평안도 해안 지방과 연결되었으며, 제5는 양천현 개화산(開花山)에 응하여 경기·충청·전라도 해안 지방과 연결되었다. 지난날 통신 제도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남산은 현재 방송탑이 정상에 세워져 전망대 시설을 갖춤으로써 관광자원으로 이용된다. 또한 이와 동시에 남산은 각지로 매스미디어 전파를 발송하는 중요 기능을 하고 있다. 서울의 발달로 시가지가 확장됨에 따라 교통의 장애가 되어왔던 이 지역에 산을 둘러 일주할 수 있는 순환도로가 만들어졌고, 1·2·3호 터널이 뚫려 있어 교통의 장애를 극복하고 있다.
우리 「애국가」에 남산의 소나무들이 철갑을 두른 듯하다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남산에는 원래 소나무들이 울창하였으나 일본인들이 우리의 정신을 빼앗기 위하여 소나무를 베어내고 아카시아 등의 잡목을 심어 산의 경관을 많이 해쳤다. 또한 8·15 광복 이후 무질서한 개발로 자연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최근 들어 개발제한구역의 설치와 함께 녹화사업에 노력한 결과 사계절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남산의 동·서·북쪽의 사면 일대에는 자연공원인 남산공원이 설치되어 서울 시민의 휴식처로 제공되고 있다. 또한, 자연 학습장이 설치되어 학생들의 자연 학습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남산이 처음 시민공원으로 개발된 것은 1910년의 일로, 당시 공원 표지로 세웠던 ‘漢陽公園(한양공원)’이라는 고종의 친필 비석이 옛 통일원 청사 옆에 있다.
현재 산정에는 서울타워라 불리는 방송탑과 팔각정이 있으며, 이곳은 케이블카로 오르내릴 수 있다. 산의 서쪽 사면에는 국립과학교육원, 안중근(安重根)의사 기념관과 동상, 백범광장(白凡廣場)과 김구(金九)의 동상, 남산도서관·용산도서관·식물원, 이황(李滉)·황희(黃喜)·정약용(丁若鏞)의 동상 등이 있고, 소월시비(素月詩碑)도 있다. 북쪽 사면에는 숭의여자대학·리라초등학교가 있다. 동쪽 사면에는 동국대학교·국립극장·한국자유총연맹 등과 장충단공원이 있다. 장충단공원은 조선 시대에 도성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자리이며, 고종 때 장충단(奬忠壇)을 세운 뒤로 그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이다. 이곳에는 청계천 복개 당시 옮겨온 수표교(水標橋)가 놓여 있으며, 부근에는 리틀야구장·테니스코트·수영장 등이 있어 공원 지역과 함께 시민들의 운동 시설로 제공되고 있다.
남산 팔각정 앞에서 2020 경자년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마친 백두들.
<남산 팔각정>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우남정을 지었다가 1960년 4.19 의거 때 철폐되었다. 이후 1968년 11월 11일 다시 건립되었다. 이 팔각정은 남산 정상에 세워져 있어 서울시가지가 눈아래 펼쳐진다.
N타워 옆 전망대.
남쪽 청계산 방향.
남서쪽 여의동 방향.
남산 정상부 광장에서 본 북한산 방향.
도봉산 방향.
인왕산 방향.
남산 정상을 뒤로하고 도성길을 따라 국립극장 방향으로 내려선다.
국립극장 방향 내림길을 두고, 우측 한양도성 순성길로 들어서서,
권법사님 내외분과 함께 오는 창병씨를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리다가 많이 지체될 듯하여,
한적한 순성길을 따라 진행하면,
성곽 위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본 북한산 방향.
불암산 방향.
서울숲 방향.
앞서간 분들이 찬바람이 잦아든 양지바른 곳에서 뒤따라 오는 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계절이 겨울인지라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한 송년회에 늦지 않게 가려면 마냥 기다릴 수가 없기에...
직진의 한양도성길을 두고, 우틀하여 남산산악회 방향 사면길로 들어서면,
남산산악회 마당을 지나게 되고,
건물 좌측 편에서 다시 남산 정상부 성곽으로 오르는 숲길이 있어야 하는데...
숲길 등로를 폐쇄하였는지 들머리를 나무로 막아놓았다.
하는 수 없이 우회하여 들어서니,
한참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희미한 흔적만이 이어진다.
군데군데 나무로 등로를 막은 흔적이 역력하여 여러 사람의 일행들과 진행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험한 등로가 이어지는데, 뒤따르던 회장님이 '서울 한복판 남산에서 호랑이가 나올 정도로 울창한 숲길을 걷게 되었다'며 바늘방석 같은 분위기를 누그려 뜨려 준다.
나무로 막아놓은 등로를 가는 백두들.
막아놓은 등로를 더듬은 지 15분여 만에,
정규 등로로 제진입하여,
남성 정상부의 한양도성 성곽 외부의 호젓한 소나무숲길을 따른다.
국립극장에서 남산 정상으로 오르는 도로를 건너고,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솔숲길을 따르면,
널찍한 쉼터에 도착하여 따뜻한 차를 나누며 남산의 색다른 모습을 즐긴다.
아무리 따뜻해도 겨울은 겨울!
다시금 걸음을 내딛으며 호젓한 소나무 숲길을 잠시 따르면,
정면으로 서울 남산 N타워가 시야에 들어온다.
<남산서울타워(N Tower, 236.7m)>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에 있는 철탑으로 소유자는 YTN이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공간적 중심이자 상징적인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 남산서울타워의 타워층을 N서울타워로 개칭하며 개보수하여 새로운 개념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현재 남산서울타워는 소유자인 YTN이 사용하는 ‘서울타워플라자’와 임대자인 CJ가 사용하는 ‘N서울타워’로 구분되어 있다. 남산의 자연과 21세기 첨단기술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조화로움을 제공하는 휴식공간이자 문화복합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남산서울타워의 타워층인 N서울타워는 New Namsan을 축약해 나타낸 이니셜 ‘N’을 통해 새로워진 서울타워에 대한 기대감 및 새로움과 서울의 새로워지는 문화적 트렌드를 부각하려는 브랜드 이미지를 도입하였다. 글로벌한 트랜드에 맞추어 보다 젊어지고 새로워진 역동성을 표현하였다.
1969년 8월 동양·동아·문화방송 등 3개 민영방송국이 공동으로 종합전파시설 및 관광전망대 시설허가를 받아 1975년 8월 완공하였다. 준공 3개월 뒤 체신부가 인수하여 보안상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다가, 1980년 10월부터 공개되었다. 2000년 뉴스 전문 텔레비전 방송국 YTN이 인수한 후 2005년에 개보수하여 타워층을 “N서울타워”(정식 이름은 “YTN 서울타워”)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초에 4m로 이동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전망엘리베이터홀에 이르면, 서울 전역은 물론 동쪽으로는 양평 용문산, 서쪽으로는 인천 앞바다와 남인천항, 남쪽으로는 남한산성, 북쪽으로는 멀리 개성(開城) 송악산(松嶽山)까지 파노라마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디지털전망대에서는 최첨단 미디어 장비를 활용한 디스플레이로 서울과 남산에 관한 다양한 문화정보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그 외에도 테디베어뮤지엄, N레스토랑, N쇼핑 등의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편의시설이 갖추어졌으며,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으로 이벤트N을 통한 음악회와 러브페스티벌, 사랑의 자물쇠 행사 등이 연중무휴 기획되고 있다. 새로운 세기, 새롭게 변신한 N서울타워는 남산에 위치한 팔각정과 서울성곽, 식물원, 케이블카 등과도 산책로로 연결되어 시민과 관광객에게 서울의 자연과 문화경관을 조망하며 즐기는 휴식공간이자 문화복합공간이며 서울의 상징으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남산타워 방향 갈림길에서 좌측 사면 길로 들어서서 남시 내려서면,
서울둘레길 자연생태길 구간에 접속하게 되고,
호젓한 서울둘레길을 따라 야생화원길 방향으로 진행한다.
야자메트가 깔린 호젓한 숲길이 이어지다가,
아스팔트 포장의 '야생화원길' 구간으로 들어서는데,
창병씨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산행에 참가한 모든 백두들이 남산둘레길 야생화원길 구간을 함께 진행한다.
전국의 각 지방에서 옮겨다 심은 '팔도 소나무숲'을 지난다.
남산둘레길 북측순환로 구간에 들어서서,
국궁장인 석호정을 지나서 우측 갈림길로 접어들어 장충단 공원으로 향한다.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황학정이 조선시대의 왕들과 문무백관들이 활을 쏘던 곳이었던 것에 반해, 남산의 석호정은 민간인들이 주로 활을 쏘던 곳이었다.
원래 계획은 남산둘레길을 따라 안중근의사 기념관까지 가서 다시 서울역으로 하산하려 했으나, 2시에 예정된 송년회 일정에 맞추기 위해 장충단공원을 지나 동대입구역에서 전철을 타기로 한다.
장충단공원 방향으로 접어들어,
정자가 있는 쉼터에서 인원점검을 겸한 배낭털이를 한다.
정기산행 때와 같이 배낭에 넣어 온 먹거리를 나눈다.
잠깐의 배낭털이를 끝으로 다시금 장충단공원 방향으로 진행한다.
동대입구 도로를 건너,
장충단공원으로 들어선다.
<장충단공원(奬忠壇公園)>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는 공원으로, 을미사변과 임오군란, 갑신정변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과 충신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1984년에 근린공원이 되어 남산공원의 일부로 흡수되었다.
남산 동쪽 봉우리 종남산(終南山) 기슭 아래의 동북쪽 일대는 예로부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경치가 좋은 곳으로 유명하였다. 이 계곡에는 약 200여년 전인 영조 중엽 이래, 도성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南小營)이 있었으며, 지금의 장충단공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길과 성벽이 서로 엇갈리는 곳에는 남소문(南小門)이 있었다. 그 뒤 1900년에 고종황제가 이 자리에 장충단을 꾸미고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었을 때 순사한 궁내부대신 이경직(李耕稙)과 연대장 홍계훈(洪啓薰)을 비롯한 장졸들의 영혼을 배향하여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장충단이 사라졌으며, 1920년대 후반부터는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에 따라 장충단공원으로 명명하고, 벚꽃 수천 그루를 심은 후 연못·놀이터·산책로 등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뒤 일본인들이 이곳에 상하이사변 때 전사한 일본군인들의 동상을 세우는 등 일본색을 짙게 하였으나 광복 후에 즉각 철거하였다. 정부 수립 후 공원 경내에는 여러 가지 시설이 들어섰다. 1959년에 청계천 복개공사로 철거하게 된 수표교가 이 공원으로 이전하였다. 수표도 함께 이전하였다가 세종대왕기념관으로 다시 옮겨졌다. 1964년에는 이준(李儁)의 동상이, 1968년에는 사명대사(四溟大師)의 동상이 건립되었고, 1968년에는 아름다운 분수대도 설치되었다. 1962년 이후로 자유센터와 타워호텔·중앙공무원교육원(그 뒤 동국대학교로 양도)·재향군인회 등이 들어섰으며 그때마다 공원면적은 축소되었다. 또, 도시계획법상에 근린공원 내에 들어갈 수 있는 시설로 되어 있는 국립극장·국립국악원 등도 들어섰으나 그 뒤 일부 기관은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
1940년 처음 공원이 될 때 41만 8000㎡였던 이 공원은 이렇게 잠식·침식되어, 1984년에는 면적이 29만 7000㎡로 축소되었다. 또, 이상의 시설 이외에도 어린이야구장·테니스장·수영장 등의 체육시설도 있어 장충단 일대가 지녔던 옛날의 정취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그러므로 서울시와 건설부는 장충단공원을 독립된 근린공원으로 존속시킬 경우 더 많은 시설들이 들어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1984년 근린공원인 장충단공원 전역을 자연공원인 남산공원의 일부로 합병하였다.
공원 주변에 장충체육관·국립극장 등의 문화시설이 있고, 남산 산록의 아름다운 풍경지로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항상 소풍 및 산책하는 시민들로 성황을 이룬다. 2010년에는 장충단 자락에 남산 소나무와 산딸나무, 이팝나무 등으로 조성된 숲속 산책로가 만들어졌고, 지하철역사의 지하수를 이용한 벽천폭포와 생태연못, 실개천 등이 새로 조성됨으로써, 장충단공원은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하였다. 공원 내부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장충단비가 있으며, 비문에는 장충단공원을 세우게 된 내력이 적혀 있다. 비의 높이는 183㎝이고, 너비는 68㎝에 두께는 35㎝이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인 수표교가 있다. 이 외에 장충단공원 일대는 승정전, 관성묘, 와룡묘 등 문화재를 비롯하여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만해 한용운 시비와 유관순, 이준열사, 김용환 선생 동상 등 항일운동과 관련된 애국충정이 깃든 민족공원이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을사늑약의 무효를 알리기 위해 자결하신 이준 열사 동상.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도착.
선릉역 인근의 사우나에서 몸을 정갈하게 단장하고,
강진수산으로 이동하여 2019년 송년회를 가진다.
지난 한 해도 아무런 사고 없이 산행 일정을 마무리한 모든 백두들께 감사드린다!
흐뭇한 백두들의 얼굴에는 새해에 대한 자신감도 묻어난다.
2019년 송년회를 마감하고,
2020년 새해에 대한 희망을 찾으러 향한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유난히 태풍이 많았던 한 해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그런 태풍에도 부러지지 않을 갈대와 같은 유연함이 우리에게 필요해 보인다.
세월과 위정자들이 남겨 놓은 아집과 맹종의 습성을 고스란히 기해년과 함께 두고서,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이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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