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서울도심 5산(인왕산, 북한산, 백련산, 고은산, 안산)
산 행 일 : 2021. 11. 13.(토)
산행코스 : 시청역#5 ~ 광화문광장 ~ 청와대앞길 ~ 통인시장 ~ 수성동계곡 ~ 인왕산 정상 ~ 기차바위~ 홍제근린공원 ~ 유원하나A ~ 옥천암 ~ 북한산자락길 ~ 산골고개 생태통로 ~ 백련산 전망대 ~ 초록숲길 ~ 홍은사거리 ~ 고은산 ~ 고은초교 ~ 안산 자락길 ~ 연세대학교 ~ 신촌역 (17km, 7시간반 소요)
산행참석 : 22 백두
<산행지도>
지난해 11월부터 코로나19로 백두산우회 정기 산행이 중단되었다가, 최근에 전국을 대상으로 한 백신 접종률이 70%를 넘어서며 코로나19에 대한 철저한 방역망이 완화되어 '위드 코로나'로 방역정책을 변경함에 따라 백두들도 모처럼 직접 만나 야외 산행을 하기로 했다. 방역정책 변경으로 11월부터는 사적 모임의 인원 제한이 10명으로 상향됨에 따라 20명 남짓의 인원이면 2~3팀으로 나누어 진행하면 될 일이고, 뒤풀이는 않는 것으로 계획했다. 하지만 '모처럼 만나는 분들과 어떻게 소맥 한잔도 기울이지 않고 헤어질 수 있겠냐'며 김 사장님이 직접 휴가를 내어 날머리인 신촌 부근을 이잡듯이 뒤진 끝에 별도의 분리된 공간이 있는 식당에 뒷풀이 예약도 해 놓았다.
언제부터 인가 매년 백두산우회가 산행을 처음 시작한 11월 둘째 주에 주년 산행을 실시해 왔고, 주로 멀리 떨어진 지방의 명승지나 남해 다도해의 섬을 찾아 1박2일 트레킹을 즐기며 설립기념 연회를 가져왔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라19로 모임 자체가 어려운 상태라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한 근교의 코스에서 모처럼 함께 산행을 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해 보자는 취지로 추진되었다. 따라서 인파가 많이 몰리지 않고 이런저런 예기를 나누며 함께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찾아야 했고, 그래서 선택된 코스가 '시청역에서 신촌역으로의 서울도심 5산 종주'다. 본디의 계획된 코스는 1호선 시청역에서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앞길 그리고 통인시장을 거쳐 인왕산둘레길, 북한산자락길, 은평둘레길, 백련산초록숲길을 걸어 앝트막한 고은산을 넘어 안산자락길을 따라 신촌역까지로 서울도심 5개 산의 둘레길을 잇는 코스다. 하지만 카페에 산행 공지를 올리자 '강북 5산 종주'라는 거창한 이름 때문에 '불수사도북'을 떠올린 회원들의 의구심에 찬 문의가 쏟아졌으나, 전체 산행이 예닐곱 시간이면 끝날 것이라는 예기에 수긍을 하며 걱정을 떨쳐내기도 했다.
반가운 얼굴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전원이 공지된 시간에 약속 장소인 시청역 5번 출구에 모였고,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기념촬영을 하려고 지하철 출구를 나오니 시청 앞 잔디 광장은 바리케이드로 둘러져 출입이 불가능하다. 하는 수 없이 시청 옆에서 기념촬영을 남기고는 백두산우회 17주년 기념 트레킹을 시작한다.
시청역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진행을 하는데 오늘 10시부터 예정된 민노총 시위에 대비해 도로에는 버스 차벽과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고,
코로나19로 500명 이상의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노총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라는 명분으로 499명씩 무리를 나누어 2만 명이 집회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근본적으로 집회를 막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10명씩 나누어 모임을 하는 것을 그냥 조족지혈이겠다 싶다.
청계천 광장도 출입이 불가능하게 바리케이드가 둘러져 있는 것을 보며 청와대 앞길 통과가 가능할지 내심 걱정이 들기 시작하고,
<청계광장(淸溪廣場)>
서울 청계천 주변에 있는 광장.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조성한 것으로 분수와 2단 폭포 등이 있으며, 2016년 '최진실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발생한 촛불시위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청계천 복원사업(淸溪川 復元事業)>
청계천은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으로, 서울시가 서울의 역사와 문화·환경을 복원하고, 강남과 강북의 균형 발전을 위해 2003년 7월부터 2005년까지 추진한 청계천 일대의 길이 10.84km, 유역면적 59.83㎢ 규모의 복원사업이다. 서울시가 주도한 이 청계천 복원사업은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성동구 신답철교까지의 복개된 구간을 뜯어내고 원형을 회복한 대역사였다. 2003년 7월 당시 이명박 시장의 취임과 동시에 착공되어 2005년 9월에 1차 공사가 마무리되어 10월 1일 자로 통수식을 가졌다. 청계천로와 삼일로 주변을 포함한 5.84km의 사업구간을 3개로 나눠서 시행한 공사에는 당초 예상보다 373억 1,600만 원이 많은 총 3,867억 3,900만 원의 공사비가 소요됐다. 실제 공사가 시작되면서 교통체증 문제와 노점상 문제, 주변상권의 영업방해 등이 쟁점으로 비화되기도 했으나, 성공적인 복원사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청계천에 흐르는 물은 한강물을 중심으로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유지용수로, 중랑하수처리장의 처리수를 보조수로 활용했다.
우리나라 정치 문화의 중심지인 광화문사거리에서 광화문 광장을 걸어보려 하였으나, 광화문 광장의 재조성 공사가 지연되면서 재개장 시기가 당초 금년 10월에서 내년 초반으로 미뤄짐에 따라 인도를 따라 경복궁 방향으로 진행한다.
<광화문 광장>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이 출퇴근하던 육조거리가 자리했고, 1948년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했던 곳으로,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세종로사거리와 청계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로 중앙에 위치한 광장이다. 점심시간이면 인근 직장인들의 쉼터가 되고 버스킹 등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가 활발히 열리는 곳으로, 서울 광화문광장은 많은 이야기와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원래 넓은 도로였던 곳을 최초로 역사와 문화가 살아숨쉬는 광장으로 만드는 공사가 2008년 5월 27일 착공돼 2009년 7월 말 완공되었으며, 2009년 8월 1일 시민들에 개방되었다. 당시 공사를 통해 기존 16차선 도로가 상시 광장과 왕복 10차선(편도 5차선)의 예비 광장으로 조성된 바 있다.
이렇게 조성된 광화문 광장은 경복궁 역사의 존(Zone), 조망의 존, 문화의 존, 도시 광장의 존 등 4가지를 주제로 하여,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육조거리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 '한국의 대표 광장', '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 '도심 속의 광장', '청계천 연결부' 등 6개 광장으로 구성돼 있다.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에서는 광화문 앞에 복원된 해태상을, ‘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에서는 재현된 육조거리와 광화문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한국의 대표 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위치해 있으며, '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에는 안내소·기념품점 등 편의시설들이 위치한 해치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또 '도심 속의 광장'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비롯해 샤프분수(동상 좌우), 바닥분수(동상 전면) 등의 수경시설이 설치돼 있다. 여기에 세종로사거리와 청계광장 사이의 '청계천 연결부'는 청계천과 경복궁을 연결하는 보행 네트워크의 연결 축으로 조성돼 있다. 이 밖에 광장에는 지하철 경복궁역과 광화문역에서 발생하는 지하 용출수를 청계천으로 흘려보내는 '역사물길(水路)'도 조성돼 있다.
그러다가 서울시가 사람이 쉬고 걷기 편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내용의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를 2020년 11월 16일 시작한다고 밝히며, 광장 동측도로 확장 및 정비를 시작으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에 착수했다. 해당 사업은 현재 광화문광장의 문제에 대한 시민 이용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2016년 구성된 광화문 포럼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2018년 광화문시민위원회로 활동을 이어가며 시민소통이 지속됐으며, 2020년 9월 최종의 구체적 계획이 도출된 바 있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는 차량통행과 시민보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동측도로 확장·정비(2020년 11월〜2021년 2월) ▷공원 같은 광장 조성(2021년 5〜10월) 2단계로 나누어 진행돼 2021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공사는 서울 광화문광장의 서측도로(세종문화회관 쪽)는 광장에 편입해 보행로로 확장하며, 광장 동측(주한 미국대사관 앞)은 도로를 양방향 통행이 가능한 7〜9차로로 확장한다. 그리고 넓어진 광장은 총 100여 종의 크고 작은 꽃나무를 심어 도심 속 공원으로 변화시키며, 광장 동측으로 자전거도로(폭 1.5m, 길이 550m)도 조성한다. 이러한 광화문광장은 일부 공기가 지연되어 내년 상반기(1∼6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광화문사거리 교보빌딩에 있는 광화문 글판.
<광화문 글판>
광화문 글판은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광장 부근의 교보생명 사옥 외부에 내걸린 대형 글판으로, 교보생명의 창립자인 신용호의 제안으로 1991년 1월 처음 등장했다. 처음으로 걸린 글귀는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였으며, 초창기에는 불법 광고물로 간주되어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으나, IMF 위기를 겪은 직후인 1998년부터는 시민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감성적인 문구로 바뀌었다. 또한 비정기 교체에서 벗어나 계절마다 글귀를 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으나 일정한 주기 없이 바꾸는 방식이었고, 2001년부터 봄(3~5월), 여름(6~8월), 가을(9~11월), 겨울(12~2월)의 일정한 분기로 나누어 교체하는 방식으로 나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7년, 환경재단에서 선정하는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으며, 2015년에는 25주년을 맞이하여 그간의 역대 문구들을 모아 하나의 시집 형태로 제작한 기념집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가 발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100번째 글귀로 방탄소년단(BTS)이 제안한 "춤 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허락은 필요 없어"가 계시되어, 코로나19 등으로 불안과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세계인들과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춤 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허락은 필요 없어"라는 BTS가 제안한 글이 걸려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앞의 조각품으로 제목은 'I LOVE YOU'로 가족의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걷기에 열심인 백두들.
광화문 좌후방 첫번째로 올라야 할 인왕산을 바라보며 경복궁을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기 위해 광화문 앞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면,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동십자각에서 좌틀하여 계속 경복궁 돌담길을 따르고,
<동십자각(東十字閣)>
십자각(十字閣)은 말 그대로 건물 평면이 ‘열 십(十)’자인 건물을 말한다. 그런데 경복궁의 망루는 평면이 사각형이라 원칙적으로는 십자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볼 때 용마루가 ‘열 십(十)’자로 교차하는 모습이며, 망루와 맞닿은 궁장이 ‘열 십(十)’자 모양으로 교차해서 십자각이란 이름이 붙었다.
동십자각은 궁궐 안팎을 경비할 수 있도록 지어진 건축물로, 궁궐(宮闕)의 ‘궁(宮)’은 임금의 거처를 뜻하고, ‘궐(闕)’은 출입문 좌우에 설치된 망루를 뜻하며 당연히 경복궁에도 망루 역할을 하는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지은 것이다. 그래서 원래 동십자각은 경복궁 담장 안에 있었고 망루로 올라가는 계단 또한 담장 안애 있었으며 방호벽도 있었기에 전투시설로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조선박람회’가 경복궁에서 열렸고, 이때 일제는 조선총독부에서 박람회장 정문인 광화문까지의 도로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길을 확장하면서 동십자각을 에워싼 궁장을 헐었다. 그래서 동십자각은 길 한복판에 섬처럼 놓이게 되었고, 망루 위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이 때 사라졌다.
동십자각 모습.
이내 경복궁의 동쪽 문인 건춘문을 지나게 되고,
서울에는 5대 궁궐이 있는데, 지어진 순서대로 나열해 보자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의 순서다. 이 가운데 4대문을 갖추고 있는 궁궐은 경복궁이 유일하며, 경복궁의 4대문은 동,서,남,북 사방을 상징함과 동시에 4계절과 연관이 있다. 공간을 의미하는 4개의 방향과 시간을 나타내는 4계절이 연계되어 있는데, 동쪽에 있는 건춘문은 경복궁의 동쪽 문의 이름으로 '봄을 세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행의 원리로 동쪽이 봄을 상징하므로 '건춘'이라 명명했는데, 후한의 학자인 채옹이 '먼저 봄을 세우고 하늘을 받든다'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흰 솜털이 흐르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오란 은행잎이 아름다운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청와대 앞길로 진행하는데,
청와대 앞길은 민노총의 시위로 통제되어 발길을 돌려 다시 광화문 앞으로 우회하기로 한다.
걷지 못한 청와대 앞길 모습.
<청와대 앞길(靑瓦臺路)>
서울시 종로구 팔판동 162번지에서 청와대 앞을 거쳐 종로구 궁정동 98-6번지에 이르는 길이 810m, 너비 25m의 4차선 도로로, 경복궁의 북쪽 담장길과 북악산 기슭의 청와대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이다. 1988년 3월 31일 청와대 앞을 지나는 길이라는 뜻에서 ‘청와대앞길’로 이름지어졌으며, 2000년대 이후 도로명 주소가 시행되면서 '청와대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개방된 청와대 앞길은 경복궁 지하철역에서 효자로를 따라 효자 삼거리에 이르면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무궁화동산, 연무관, 대고각, 영빈관 등이 있다. 청와대 사랑채는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1층은 한국문화전시실, 기획전시실, 기념품점, 쉼터(한식홍보관, 카페)로, 2층은 청와대관, 행복누리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고각에는 신문고의 옛 얼을 담아 김영삼 대통령에게 기증된 북이 걸려 있다. 연무관은 경호실 요원들의 무술 및 체력단련장이다. 1993년 7월에 안가를 헐어내고 조성한 무궁화 동산에는 상징 우물, 자연석 성곽,휴게소 등이 있다. 무궁화 동산 바로 뒤쪽으로는 주한 로마교황청 대사관과 칠궁이 있다. 청와대 앞길로 들어서면 좌우로 울창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 나무그늘과 아름다운 꽃밭을 감상하면서 산책을 할 수가 있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맞은편에는 청와대가 있고, 청와대 앞길이 끝나는 곳에는 청와대의 기자회견장인 춘추문이 있다. 춘추문에서 경복궁 정문인 건춘문에 이르는 삼청동길에는 국제화랑, 그로리치 화랑, 갤러리 현대 등이 있으며, 효자로 쪽에는 진화랑이 있어 예술작품 감상의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청와대 앞 분수광장 전경.
혹여나 경복궁을 통과하는 길이 있을까 하고 들어가 보았던 국립민속박물관 전경.
다시 경복궁역 방향으로 이어진 지름길을 찾아 들어선 경복궁에서.
경복궁에서 경복궁역으로 이어진 도로도 차단되었다기에 원망을 가득 담아 바라본 바라본 청와대 방향.
출입이 통제된 청와대앞길을 우회하여 돌고 돌아 통인시장으로 진행하여,
전통시장인 통인시장으로 들어서면,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물건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통인시장의 모습이 새삼스럽고,
통인시장을 나와 큰길을 건너 옥인길로 들어서서 수성동계곡 방향으로 진행하면,
도로 우측에 막걸리빵으로 유명한 '토리'라는 빵집에서 막걸리빵이라는 식빵을 몇 개 사서 챙기고는,
수성동계곡으로 접어들어,
인왕산으로 오르다가 이내 나타나는 쉼터 정자에서,
따스한 커피와 막걸리빵을 나누며 모처럼의 재회를 다시금 확인한다.
이렇게 건재한 모습 다시 뵈니 반가워요~~!
인왕산을 향한 오름길로 들어서자 움츠려 들었던 몸에 열기가 배어나며 갑자기 닥친 추위에 두텁게 껴입었던 옷을 배낭에 갈무리하고는,
북악스카이웨이와 연결되는 인왕산길을 가로질서 인왕천약수터 방향으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인왕산 오름길로 들어서서,
제법 가파른 돌계단길을 올라 인왕천약수터를 지나고,
지난주에 보수공사를 마친 데크목 계단길을 따라 범바위 안부 방향으로 오르면,
울긋불긋 단풍 든 인왕산 자락 저편으로 잠시 전에 지나온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고,
그렇게 가파른 계단길을 잠시 더 오르면,
밤바위 안부 갈림길 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우틀하여 인왕산 정상 방향으로 진행한다.
인왕산 정상으로 이어진 가파른 암릉길로 들어서니,
코로나19로 갈 곳을 잃은 젊은 학생들이 인왕산 오름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인왕산 오름길에 대기 중인 백두들.
까다로운 암릉길을 지나자 산객들의 정체가 풀리며 정상으로 이어진 돌계단길이 이어지고,
돌아본 한강 방향의 서울 시가지가 희뿌연 아침 안개에 침잠해 있고,
동쪽 방향으로는 서울도심 건너편으로 아차산과 남한산성이 어른어른 가늠되며,
이내 젊은 학생들의 열기로 그득 찬 인왕산 정상에 도착한다.
<인왕산(仁王山, 338m)>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누상동·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홍제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명산으로 숭앙되었으며, 조선 초기에 도성을 세울 때 북악(北岳)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좌우 용호(龍虎)로 삼아 궁궐을 조성하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며, 조선 중기 명나라 사신이 임금을 보필한다는 의미에서 필운산(弼雲山)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연유로 필운대(弼雲臺)와 필운동(弼雲洞)의 이름이 남아있다. 필운대에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의 집터가 남아있다.(현 배화여자고등학교 교내 소재) 옥인동은 옥류동과 인왕동이 합쳐진 이름인데 계곡의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북쪽 창의문을 지나 부암동에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石坡亭)이 있다. 인왕산 국사당(仁王山 國師堂)은 원래 남산(南山)의 산신(山神)인 목멱대왕(木覓大王)을 모시는 산신당(山神堂)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신사(神士)를 지으면서 국사당을 인왕산 현재 장소로 옮겨왔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곳곳에 약수터가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서울시민들의 유원지였으나 군사상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1993년부터 개방되었다.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곳곳에 약수와 누대가 있었다. 경치가 아름다워 이를 배경으로 그린 산수가 많은데, 특히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널리 알려져 있다.
돌아본 남산 방향.
불의의 사고를 딛고 불굴의 의지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김여사님이 백두들의 박수를 받으며 오늘 인왕산 정상에 함께 올랐다.
인왕산 정상에서 본 북한산 주능선 조망.
북한산과 북악산 방향.
오늘 강북 5산 종주길에서 마지막으로 오를 안산 조망.
코로나19로 기~인 기다림을 끝내고 인왕산(338m) 정상에 함께 모인 백두들.
인왕산을 뒤로하고 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창의문 방향으로 내려서면 앞쪽으로 북악산과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멋지게 조망되고,
북악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푸른 기와집도 내려다 보이고,
창의문 방향으로 이어진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잠시 더 진행하면,
직진의 창의문 방향 성곽길을 두고 좌틀하여 기차바위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는 갈림길이 나온다.
남쪽 서울 도심 방향 조망.
돌아본 인왕산 정상 조망.
가야 할 기차바위와 북한산 주능선을 배경으로.
기차바위 방향 능선으로 접어들어 안부를 지나 오르면,
가드 로프가 인도하는 등로 옆에는 해골을 닮은 기암도 보이고,
이내 기차바위 정상부(319m)에 도착한다.
기차바위 소나무 쉼터에서 돌아본 인왕산과 안산 방향.
안산과 고은산 방향.
고은산과 백련산 방향.
기차바위는 길게 늘어진 바위 능선으로 일반적으로 서울 사람들에게 '기차바위'라고 하면 수락산의 기차바위를 떠올리는데, 이곳 인왕산의 기차바위도 못지않게 길고 멋지며 오히려 수락산의 기차바위 보다 편안함을 준다.
기차바위를 따라 북한산 주능선 방향으로 내려서는 백두들.
북한산과 북악산 자락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세검정 방향.
삼각산이라고도 불리는 북악산 방향.
기차바위를 내려서서 좌측 환희사 방향 능선 갈림길에서 우측 세검정 방향 능선으로 들어서고,
직진의 세검정 방향 능선을 두고 좌측 유원하나아파트 방향 능선으로 들어서서 내려가면,
인왕산둘레길이 지나는 사거리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갈림길 사거리의 인왕산 안내도.
능선 좌측 홍제근린공원 방향 갈림길에서 직진의 유원하나아파트 방향 능선을 따라 진행하는 게 좋지만, 점심 식사를 위해 좌측 아래의 홍제근린공원으로 이어진 가파른 사면 등로로 접어들어,
능선길을 두고 좌측 홍제근린공원 방향 등로로 들어서는 백두들.
제법 가파른 등로를 내려서면,
이내 우측으로 유원하나아파트가 보이는 지능선에 도착하는데,
지능선 좌측 아래에 점심식사를 예정한 홍제근리공원의 정자가 있다.
정자로 내려서는 백두들.
정자에서 본 홍제동 방향.
총무님이 직접 기르고 잡아서 요리한 족발이면 더 맛있었을 족발과 석여사님이 손수 마련한 떡 등등을 차려놓고 1년 만에 마주앉아 즐거운 야외 식사를 한다.
행복하게~, 사랑하며~, 아름답게 삽시다!
한 시간에 걸친 즐거운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5산 종주길에 나서,
왔던 길을 되돌아 능선 위로 올라 유원하나아파트로 내려서는데 주변의 단풍이 절정으로 타오르고 있고,
여성 회원들의 마음도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환하게 웃음을 나눈다.
유원하나아파트로 들어서서,
아파트를 통과하여 정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우틀하여 홍제천을 따라 잠시 오르면,
옥천암 못 미쳐서 북한산자락길 들머리가 나온다.
북한산자락길 안내판.
<서대문구 북한산 자락길>
서울의 북한산자락길은 성북구의 북한산자락길 1.2km 코스와 서대문구의 4.5km 코스 등 두 개가 있는데, 이곳 서대문구의 ‘북한산 자락길’은 홍제동 북한산 허리를 타고 조성된 산책길로, 실락어린이공원에서 시작하여 홍록배드민턴장과 삼하운수종점을 지나 옥천암에 이르는 총길이 4.5km의 무장애길이다. 지난 2014년부터 3년간 구간을 나누어 단계별 공사를 진행하여 2016년 11월에 완공했다. 홍은풍림1차아파트 뒤편 실락어린이공원에서 홍록배드민턴장까지는 제1구간 1.2km, 홍록배드민턴장에서 북한산둘레길 7구간(옛성길)입구까지 제2구간 1.5km, 북한산둘레길 7구간에서 옥천암까지의 제 3구간(1.8km)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약자나 휠체어 임산부 유모차 등 보행약자들을 위해 특별히 배려한 산책로이다. 전 구간을 10% 이내의 경사도를 유지하고, 전체 길이의 90%가 넘는 4.15km는 목재 데크를 깔았다. 잔여 구간에는 마사토를 깔아 편안한 흙길의 맛을 더했다. 중간중간 두터운 그늘에는 쉼터를 만들었고, 야외무대 전망대 음수대 화장실 안내판을 설치하여 시민들의 산책 편의를 높였다.
우측 옥천암과 보도각 전경.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서울 玉泉庵 磨崖菩薩坐像)>
옥천암은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북한산 끝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의 직할사찰이다. 동해 낙산 홍련암(紅蓮庵), 서해 강화도 보문사(普門寺), 남해 보리암(菩提庵)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옥천암에 있는 관음보살상 덕분으로, 공식 명칭은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이며 보물 제1820호로 지정돼 있다. 1973년 6월 7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7호 보도각 백불(普渡閣 白佛)로 지정되었으나, 2009년 6월 4일 옥천암 마애좌상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4년 1월 13일 보물 지정 예고를 거쳐, 2014년 3월 1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820호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로 승격 지정되었다. 보도각 백불(普渡閣 白佛)로도 불리는 이 관음보살은 많은 영험담이 전해 내려온다. 일찍이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도 이 석불에 기도한 일이 있고, 또 흥선대원군의 부인 민씨(閔氏)도 아들인 고종을 위해 자주 찾아와 기도했다고 한다.
북한산자락길 입구로 들어서서 지그제그로 이어진 데크길은 살짝 지겹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완만하게 이어져,
산 허리까지 올라서는 북한산 자락을 따라 길게 이어지며,
좌측으로는 잠시 전에 올랐던 인왕산이 조망되고,
들머리에서 데크길을 따라 30여 분 만에 탕춘대성암문 방향 갈림길이 있는 쉼터에 도착하여 한참의 편안한 쉼을 한다.
한참의 다리쉼을 뒤로하고 다시 데크길을 따르는데 좌후방으로 보현봉이 지켜보고 있고,
무악재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과 안산이 마주보고 있는데,
앞서가던 손점장은 등로 옆 바위에서 "까꿍!"을 시도하려다가 실기하는 사이에,
인왕산 방향 조망이 멋진 북한산 자락길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에서 본 인왕산 방향 조망.
올랐던 인왕산을 배경으로.
불굴의 의지로 불가능해 보이던 재활로 다시금 산꾼으로 우뚝 서신 김여사님도 길어지는 산행에 점점 힘들어하시고,
북한산 자락길은 단풍이 흐드러진 홍록베드민턴장을 지나,
데크길은 단풍숲으로 계속 이어지며,
사람이 많은 산길에서 가장 곤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화장실도 지나게 되고,
잠시 더 데크길을 따라 쉬엄쉬엄 걸음을 옮기면,
길게 이어온 데크길이 끝나며 은평둘레길에 접속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북한산 자락길은 능선을 따라 실락어린이공원 방향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우측 사면으로 이어진 은평둘레길로 들어서게 된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자락길을 두고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은평둘레길로 들어서면 단풍이 더욱 고웁고,
우측 아래로 녹변역 방향 갈림길이 있는 정자 쉼터에서 교통사고 후 재활 중인 김여사님 내외분께서는 녹번역으로 탈출하여 신촌의 뒤풀이 장소로 바로 가기로 하고, 나머지 분들은 5산 종주를 위해 백련산 방향으로 진행하면,
산골고개를 가로지르는 생태통로를 건너게 되고,
<산골고개>
예로부터 이 고개에서는 속칭 산골(山骨, 生骨 또는 碌磻이라고도 함)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였고, 숲이 우거지고 험준하여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서운 곳이었다. 산골은 누르스름한 빛깔을 띠기 때문에 구리로 착각하여 자연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자로는 녹번(碌磻)이라 표기하는데, 그래서 1700년대에는 이 지역을 녹번현으로 표기하였다.
산골은 뼈에 금이 간 상처에 사용되는 접골제로서 또 보혈강장제로서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지금도 이 일대에는 산골을 캐어다 약용으로 파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조선 건국 초 서울지역에 도성을 쌓을 때 노역에 동원된 인부들이 돌을 나르다가 허리를 다치거나 뼈를 다치면 "산골고개에 가서 산골을 먹고 오라"고 하였다 할 정도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아직도 산골고개(녹번이고개) 고갯마루에는 삼대째 내려오는 산골 판매소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산골짜기의 '산골'이 아닌 산골(山骨)고개를 건너는 생태통로로 백련산을 향하는 백두들.
좌측 홍은아파트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는 갈림길을 지나고,
다시 녹번역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 데크목 계단길을 따라 오르면,
북한산 방향 조망이 멋진 백련산 전망대에 도착하게 된다.
백련산 전망대에서 본 북한산 방향 파노라마.
조망 안내판.
북서쪽 은평구 구산동의 봉산 방향.
북쪽 은평구 갈현동의 앵봉산 방향.
북동쪽 북한산 방향.
동쪽 북악산 방향.
동남쪽 인왕산 방향.
북한산을 배경으로.
백련산 전망대를 뒤로하면 이내 백련산 초록숲길에 접속하게 되는데, 초록숲길 능선갈림길에서 직진의 백련산 정상 방향 등로를 두고 좌틀하여 홍은사거리 방향 능선으로 들어서면 노오란 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소나무숲길이 이어지고,
<백련산 초록숲길>
백련산은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 사이에 있는 해발 215m의 산으로 북한산과 안산 사이에 자리한 아담한 동네 뒷산이다. 백련산의 가장 큰 매력은 두 구(區) 지역을 지나는 긴 능선이다. 거칠지 않고 완만한 능선길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져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산으로, 안산의 편안함과 북한산의 산행 기분을 모두 누릴 수 있어 좋은 곳이다. 서울시와 사단법인 생명의 숲이 '초록숲길(Green Trails)'로 지정할 만한 곳이다. 산자락엔 이 산 이름을 유래한 고찰 백련사라는 절도 있다.
<백련산 초록숲길 지도>
좌우로 등로가 갈라지는 갈림길을 지나 계속 직진의 능선길을 따르면,
무악재 방향 조망의 멋진 거대한 암괴 위에 자리한 사각 정자가 나온다.
사각 정자에서 바라본 무악재 방향.
북한산 방향.
인왕산 방향.
살짝 당겨본 무악재 너머로 남산도 보인다.
무악재를 배경으로.
다시 초록숲길로 들어서서 능선 내림길을 따르는데 앞쪽으로 가야 할 고은산과 안산이 가늠되고,
이내 백련산 초록숲길 홍은사거리 날머리로 내려서게 된다.
초록숲길 홍은사거리 방향으로 내려서는 백두들.
홍은사거리에서 무악재 방향으로 도로를 횡단하여 우틀하여 진행하다가,
홍제 현대아파트 안으로 들어서고,
아파트를 통과하여 뒤쪽으로 가면 고은산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나온다.
고은산으로 오르는 호젓한 등로에는 가을이가 곱게 내려앉고 있고,
별다른 표식이 없는 고은산 정상부를 지나면,
앞쪽으로 가야 할 안산이 조망되며,
'고은정'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2층의 팔각정자에 오르면,
이제 5산 종주 중에서 마지막 남은 안산이 조망되고,
우측 홍제천 너머에는 김전무와 정여사님이 사이좋게 걷고 있을 백련산 정상부가 조망된다.
고은정을 뒤로하면 이내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고,
우측 홍제금호아파트 방향 갈림길에는 고은산 산책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잠시 도로를 따르면 서대문구 새마을회관을 지나,
이내 단풍이 고운 어린이공원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최근에 전 세계적인 유행을 타고 있는 오징어 게임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너 움직였지, 죽었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의 놀이를 구경하며 추억하는 백두들.
단풍이 고운 고은산을 내려서면 능선 앞쪽이 절개지라 좌측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갖가지 색깔과 모양의 낙엽들을 밟으며 나무계단길을 내려서면,
고은초교 옆 모래내로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고은산 날머리에 있는 능선길 안내판.
고은초교 옆 고은산 날머리로 내려서는 백두들.
이곳 모래내로가 지나는 안산과 고은산 사이의 안부에서 안산 방향 들머리는 길 건너편 홍제성원아파트로 들어서야 하고,
홍제성원아파트 뒤쪽으로 나와 안산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백두의 감초 손점장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 어디여?"
"여기 서대문구 도서관 앞을 지나고 있는데.."
"어디인지 잘 모르겠고, 대충 내려와서 택시 타고 연세대학교 정문으로 오셔!"
라는 대화를 남기고 본격적인 안산 오름길로 들어선다.
상암곡어린이공원이라는 작은 표지판을 지나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안산 자락길에 올라서서 연세대 방향은 안산 자락길을 따라 우측으로 진행해도 되지만, 안산 정상이나 메타세쿼이아 숲을 들리는 지름길로 가기 위해 좌측 방향으로 진행하면,
여심을 흔들어 놓는 화사한 단풍을 못 본듯 지나쳐,
잠시 안산 자락길을 따르다가 우측 숲길로 들어서면,
도심의 붐비는 안산에서 그나마 호젓한 산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이내 안산 정상 방향 능선 갈림길에 올라서서 좌측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가야 한다는 "안산파(두목:송**)"들의 주장을 단호히 거부하고 직진의 사면길로 내려서면,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숲이 나타나고,
이제 산행의 막바지라 뒤풀이 예약 시간도 맞추어야 해서 메타세쿼이아 숲에서 마지막 쉼을 하기로 한다.
산행 막바지에 더욱 생기가 넘치는 백두의 여전사들.
백련산 정상을 찍고 오는 김전무에게 안산 자락길 '메타세콰이아 숲 공연장'에서 만나자고 통화를 하고는, 잣나무숲을 통과하여 안산 자락길로 내려서서 연세대로 내려서는 능선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백련산 정상을 찍고 온 김전무님 일행이 안산 정상 봉수대 방향 갈림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두 분이서 백련산 정상에서 뭘 하셨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얼레꼴레리~~!" 를 외치는 백두들.
헤어졌던 분들과 조우하여 안산 자락길을 따라 연세대로 이어지는 지능선 방향으로 진행하면,
안산 자락길 메타세쿼이아숲 공연장을 지나게 되고,
가을빛이 드리워진 멋진 메타세콰이어 숲으로 이어진 안산 자락길을 따르다가,
연세대학교 방향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서 우측 숲길로 들어서고,
아래로 이어지는 연세대학교 방향의 내림길을 두고 사면으로 이어진 숲길을 따르면,
안산 정상에서 연세대학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접속하여 우측 연세대학교 방향 능선 내림길로 진행한다.
좌측 봉원사 방향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도로를 두고 우측 능선 숲길로 들어서고,
다시 봉원사 방향에서 이어오는 도로에 내려서서는 우측 도로를 따라 연세대 방향으로 진행하고,
우측 아래 연세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도로를 두고 직진의 능선 방향 숲길로 들어서면,
연세대 교정을 구분하는 울타리쯤으로 보이는 철 울타리 문을 통과하게 되고,
잠시 소나무숲길을 따라 내려서면,
연세대학교 대우관 옆을 지나는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연세대 교정으로 내려서는 백두들.
단풍으로 물든 대우관 옆 전경.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다가,
우측의 언더우드관 앞으로 진행하여,
연세대학교 창립자인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강북 5산 종주 인증을 남기고,
연세대학교 교정을 관통하는 백양로를 따라 정문으로 향한다.
그 옛날 매캐한 최루탄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연세대 교정 전경.
연세대학교 정문에 도착하여 백두산우회 17주년 기념 강북 5산 종주를 마감하고,
영식 형이 어렵게 예약한 갈빗집으로 이동하여,
1년 만의 해우를 즐기며,
"행복하게 삽시다!"를 조용히 힘주어 외쳐본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맑은 정신으로 뒤풀이를 파하고,
'위드 코로나'로 거리 공연이 펼쳐지는 신촌의 밤거리를 거닐어,
신촌역에서 모든 일정을 마감하고 후일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한다.
매년 백두산우회 생일 때면 평소 쉽게 가보기 어려운 남해나 서해의 섬을 찾아 무박 산행이 아닌 제대로 된 일박을 하면서 성대한 생일잔치를 벌여왔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일반 산행모임 조차 조심스러운 상태라, 부득이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서 간단하게나마 오랫동안 보지 못하던 동료들의 건재함을 확인하며 안부를 묻는 기회를 가졌다. 개인 사정으로 이번 기회에 뵙지 못한 분들도 조만간 모두 함께 만나 산행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리라 믿으며 그때까지 내내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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