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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금남기맥 5차(수레재~칠거리재) : '고을 군(郡)'이 아닌 '무리 군(群)'자를 쓰는 군산((群山)의 산(山)

by 재희다 2021. 10. 18.

산 행 지 : 금남기맥 5차(수레재~칠거리재) 전북 군산시.
산 행 일 : 2021. 10. 09.(토)
산행코스 : 수레재~망해산~취성산~거점재~용천산~미산재~서해안고속도로(우곡2교)~대명산~창암재~망경산~다리실재~다리실육교(국도27호선)~고봉산~애잿고개~거산임도~통사동고개~백마산~지경교~옥산갈림길~용화산~칠거리재 (도상거리 약 22km, 9시간 소요)
산행참가 : 5백두.

 

<산행지도>

 

 

 

금번 금남기맥 다섯번째 산행이 예정된 10/9(토)는 본디 한글날로 공휴일이 토요일과 겹치는 날이었는데, 인기영합하는 위정자가 급작스럽게 지정한 대체공휴일로 3일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다. 여느 때 같았으면 연휴라 산행을 쉬자고 하였겠지만, 함께 산행하기로 한 모든 분들이 참석한다고 하여 예정대로 산행을 진행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위정자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기는 하지만, 자기들의 권력 유지에 초점이 맞추어진 위정자들의 포퓰리즘을 일반 국민들이 잘 구분할 줄 알아야 되는데, 그게 말처럼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모양이다. 동일한 월급을 받게 되는데 하루 더 쉰다는데 난들 뭐 싫지는 않으니 말이다.

 

지난 산행에서 익산의 미륵산에서 호남평야를 가로질러 함라산에 올랐고, 그로부터는 군산까지 구릉 정도의 능선을 따라 군산의 금강하구까지 금남기맥이 쉽게 이어질 것으로 짐작했는데, 금번 산행을 앞두고 산행을 계획하면서 군산(群山)의 한자 표기가 '고을 군(郡)'자를 쓰지않고  '무리 군(群)'자를 쓰는 군산((群山), 즉 산들이 무리지어 있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산과 능선의 등로는 전혀 정비가 되어있지 않고 다니는 사람도 많지않아서 등로가 무척이나 거칠고 또한 능선도 뚜렷하지 않아서 금남기맥 능선을 구분해 내기도 여간 까다롭지가 않아 보인다. 아무리 선답자의 산행기를 읽어봐도 뚜렷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 그냥 스마트폰만 믿고서 부딪혀 볼 수 밖에는...

 

산행지인 군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 두 분이 양재 IC로 또 두 분은 신갈정류장으로 나오겠다고 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산행지인 군산으로 향했고, 연휴의 첫날이라 조금 일찍은 5시에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가 약간의 정체를 보였지만, 예정했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산행 출발지인 군산의 수레재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새벽 5시에 출발하였으나, 서해안고속도로가 아닌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바람에 예상보다 20여분 늦게 수레재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하고,

 

<수레재>
전라북도 군산시 나포면 장상리에서 서수면 축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금강 변을 따라 개설된 지방도 706호선과 망해산 산줄기를 따라 동북쪽으로 이어져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711호선을 연결하는 간선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옥구)의 "(서수면 취동리) 수레재(차령(車嶺), 수내미재)는 흥법에서 나포면 장상리 와촌으로 넘어가는 고개. 수레같이 생겼다 함."이라는 기록에서 고개 모양에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을 찾을 수 있다. '차령(車嶺)'은 수레재의 '수레'를 훈차 혹은 훈음차한 표기다. 『군산의 지명유래』의 나포면 장상리에는 수레재의 또 다른 명칭인 '순남미재(車峙)'가 기록되어 있다.

 

바로 들머리로 들어서며 금남기맥 5번째 산행을 시작하여,

 

좌측으로는 편백나무 숲, 우측은 철망 울타리가 있는 수레길을 따르는데,

 

우측 금강 방향으로 와촌저수지와 서지마을이 조망된다.

 

 

따르던 등로는 거친 대나무숲 속으로 이어지더니,

 

좌측 흥법마을과 우측 와촌마을을 잇는 옛고개를 지나 직진의 망해산(↑2.1km) 방향으로 오르면,

 

최근에 단장된 듯 보이는 묘지를 지나서,

 

거칠어지는 등로를 따라 올라 와촌마을 뒷산인 135.8봉을 지나면,

 

커다란 2기의 무덤 사이에 작은 쉼터까지 조성되어 있는 묘지에 도착하여, 언뜻 금남기맥 능선은 우전방 묘지 뒤쪽 능선으로 이어질 듯 보이지만, 실제 금남기맥은 좌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진다.

 

묘지 사이에 조성된 쉼터에서 잠시 커피를 나누며 여장을 정비한다.

 

 

우측으로 휘어지는 능선 우측의 임도로 진행하다가,

 

'수원백씨' 납골묘 뒤쪽의 능선으로 진입하여,

 

동남쪽 모악산 방향 조망.

 

수풀이 무성하여 희미해진 등로를 더듬어 진행하면,

 

좌측 흥법마을과 우측 군둔마을을 잇는 옛고개를 지나고,

 

제법 뚜렷해지는 등로를 따라 오르면,

 

비포장 임도에 올라서게 되며,

 

이 비포장 임도는 북쪽으로 군둔마을과 봉화산을 거쳐 나포면 나포나루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망해산 산허리를 감돌아 서수면 축성산(취성산)과 내무장 저수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임도다.

 

임도 건너편의 이정표에 우측 임도 방향이 망해산 정상이라 표시되어 있지만, 금남길은 팔각정자 방향의 숲길로 이어진다.

 

 

최근에 정비한 듯 보이는 등로를 따라 잠시 오르는데,

 

좌전방으로 가야 할 축성산이 보이고,

 

이내 팔각정자가 자리한 망해산 동봉에 도착하니,

 

좌전방으로 축성산 방향의 가야할 금남기맥 능선이 가늠된다.

 

 

팔각정자를 뒤로하고 군산 '구불길'이정표를 따라 내려서니,

 

좌측으로 임도가 나 있는 안부를 지나게 되는데,

 

안부 공터 한켠에는 군산시가 조성한 걷기 길인 '구불길'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군산 구불길> 
군산시에서 지정한 도보여행길로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진 길을 여유, 자유, 풍요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도보행 길, 총 8길 11코스가 있다. 특히 군산은 전주와 더불어 전북을 대표하는 맛의 고장으로, 아귀찜·꽃게장·생선회·생선매운탕이 유명해 이를 ‘맛의 4형제’라 부른다고 하며, 구불길을 걸으며 군산 맛의 4형제도 함께 하면 좋을 듯하다.
그중 제2길인 '햇빛길'이 이곳을 통과하는데, '햇빛길'은 공주산에서 시작하여 부처가 있는 절이란 뜻의 불주사를 지나 망해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금강은 햇빛이 반사되어 비단처럼 반짝이고 그 위를 노니는 철새들로 장관을 연출한다. 그 안으로 보이는 너른 십자들에서 풍요를 선물 받고 임피향교와 채만식 생가터 등을 거쳐 인문학의 정취에 빠져들다가 이후 깐치멀 마을까지 총 15.6km, 약 300분이 소요되는 둘레길이다. 사실 이곳부터 구불길은 금남기맥의 끝지점인 동백대교까지 거의 나란히 함께 이어지게 된다.

 

망해산 정상이 0.23km 남았다는 이정표.

 

 

안부를 뒤로하고 망해산 정상으로 향하는데 우.후방으로 나포면의 봉화산과 금강이 돌아다 보이고,

 

첫번째 헬기장에 이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두번째 헬기장도 순식간에 지나면,

 

망해산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기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이어지고, 망해산 정상은 우측 30m 지점에 있다.

 

야생화가 꽃밭을 이룬 망해산 정상 헬기장.

 

<망해산(望海山, 230m)>
금강 하류인 군산시 나포면 옥곤리와 서수면 축동리에 걸쳐져 있는 산으로, 군산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동지도』에 망해사(望海寺)가 기록되어 있어 망해산이란 지명이 망해사에서 유래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으며, 산정에 서면 황해바다가 바로 보인다고 하여 망해산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여지도서』(임피)에 "불지산(佛智山)을 이루고, (중략) 불지산봉수(佛智山烽燧)는 서쪽으로 오성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서, 동쪽으로 함열현 소방산봉수에 신호를 보낸다. (중략) 불지사(佛智寺)는 취성산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임피) 주기에 망해사(望海寺)가 등재되어 있어, '망해산'이란 지명이 사찰의 명칭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대동지지』(임피)와 『대동여지도』(임피), 『1872년 지방지도』(임피)에도 표기가 변화없이 불지산과 불지산봉수대가 등재되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망해산(望海山)은 꼭대기에 오르면 바다가 바라다보임."과 불지산(佛智山)은 나포면 옥곤리와 장상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불지사가 있음."이라는 기록이 있어, 산 지명이 능선의 서로 다른 지점을 지칭하면서 분화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망해산의 물즐기는 우측은 금강, 좌측은 만경강을 통하여 서해로 흘러든다. 망해산은 '바라볼 망(望)', '바다 해(海)'자를 써서 서해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산이라는 의미이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자리잡고 있다. 망해산(望海山)은 서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망해산 정상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비단을 펼쳐 놓은 듯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굽이쳐 흐르는 금강이 다가오고, 서쪽으로는 널따란 서해바다가 눈앞을 가득 채우고 너른 들녘이 다가온다.

 

망해산 정상 이정표.

 

망해산 정상 삼각점.

 

망해산 주변은 잡목이 둘러져 있어서 조망이 가려져 있고, 서쪽 오성산 방향만 살짝 트여 있다.

 

망해산 정상 인증.

 

 

 

망해산 갈림길 삼거리로 돌아나와 축성산 방향 금남기맥 길로 들어서니,  

 

좌측으로 지난 구간 가로지른 호남평야야 미륵산이 조망되고,

 

호남평야에 오뚝하게 도드라져 보이는 미륵산 모습.

 

가야할 축성산과 이어진 금남기맥 능선이 가늠되며,  

 

우.전방으로는 부곡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최근에 정비한 듯 보이는 능선 등로를 따르는데,

 

우측 '나포들' 방향으로 서해안고속도로 금강대교가 보이고,

 

당겨본 오성산 위에는 '오성산 기상레이더'가 도드라져 보인다.

 

 

전방으로 가야할 축성산 직전에 금남기맥이 지나는 전위봉을 오를 것인지 아니면 우회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이에,

 

망해산을 휘돌아 이어온 임도에 내려서게 되는데,  

금남기맥은 앞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로 이어지는 거친 숲길로 들어서야 하지만,

 

앞서간 분들이 봉우리를 우회하는 임도를 따라 진행하는지라,

 

궁금증이 도진 나는 축성산 전위봉을 향해 거친 숲길로 들어선다.

 

돌아본 망해산 날머리와 임도 모습.

 

 

등로가 거의 보이지조차 않는 거친 오름길을 오르면,

 

뒤쪽으로 지나온 망해산 방향 능선이 가늠되고,

 

한때 헬기장이 있었음직한 공터에 잡목이 빼곡한 190봉에 올라 좌측에서 이어온 희미한 등로에 접속하여 우측으로 휘어지며 내려서니,

 

이내 잠시 전의 그 임도에 내려서서 좌측으로 들어서니,

 

바로 구불길 안내판과 이정표가 있는 임도사거리가 나오며 취성산 방향은 직진 방향 임도로 이어진다.

 

좌측에 내무장마을이, 우측에 원부곡마을이 있다는 구불길 이정표.

 

 

잠시 임도를 따르다가 우측 숲으로 들어 축성산 방향 오름길로 들어서고,

 

정비되지 않은 거친 등로를 잠시 오르면,

 

벌목된 폐목재가 성처럼 둘러싸고 있는 축성산 정상이 나오는데,

 

두텁게 쌓인 폐목재 더미를 헤치고 오르니 산불감시카메라와 초소가 있는 축성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축성산/취성산(鷲城山, 219m)>
축성산/취성산(鷲城山)은 군산시 나포면, 서수면, 임피면의 삼면에 걸쳐있는 삼면봉인데, 지금까지 좌 서수면, 우 나포면을 가르며 이어온 금남기맥길은 이 봉우리에서 좌측이 임피면으로 바뀌어 남서향 하여 이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취성산(鷲城山)은 현의 서쪽 4리(약 1.6㎞)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 『대동여지도』, 『1872년 지방지도』에도 표기의 변화 없이 취성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의 모양이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인도의 영취산(靈鷲山)과 비슷하다' 하여 취성산(鷲城山)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축성산이라 부르고, 네이버 지도에도 축성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곳도 '수리 취(鷲)'자를 쓰는 양산 통도사 뒷산인 영취산을 영축산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취성산을 축성산으로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축성산/취성산은 군산시가 조성한 구불길 2길 ‘햇빛길’ 코스에 속해 있으며, 정상까지 임도(林道)를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카메라와 감시탑이 있다. 서수면과 임피면 일대와 금강하구 및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한산면 일대를 전망할 수 있다. 멀리로는 전라북도 익산시 시가지까지 보인다는데, 지금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조망이 없다.

 

축성산 인증.

 

 

축성산에 앞서 오른 분들이 정상부 남측 축산리 방향 능선등로 입구에서 쉼을 하다가 다시 배낭을 메고 일어서는데, 뚜렷한 등로가 이어진 축산리 방향으로는 기맥 산꾼들의 알바가 잦은 곳으로 나도 별다른 주의 없이 무심히 알바길에 동참하게 된다. 

 

남쪽 축동리 방향 능선으로 알바길에 들어서니,

 

우측으로는 임피면 축산리를 지나는 서해안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전방으로는 임피면의 남산이 보이기에 알바임을 알아차리고,

앞서간 분들에게 알바임을 알리며 축성산으로 되돌아간다.

 

살짝 당겨본 임피면의 남산과 완주군의 모악산 방향.

 

 

알바 다녀온 분들도 축성산 정상으로 돌아와 인증을 남기고,

 

벌목된 나무들이 가리고 있는 거점재 방향의 금남기맥 능선길을 찾아,

 

벌목된 나뭇가지에 매달린 표지기들이 한두개 보이는 폐목재 더미를 들추며 들어서니,

 

거점재 방향의 뚜렷한 금남기맥 능선길이 나타나고,

 

완만한 능선 내림길이 이어진다.

 

 

거점재를 향한 능선길은 작은 봉우리들도 지나며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우측 나포 들판 너머로 오성산이 조망되는 묘지에서,

 

송사장님이 묘지 앞 감나무에서 따온 홍시와 감을 맛보며 잠시 쉼을 하고는,

 

다시금 배낭을 메고 안부를 지나,

 

거친 숲길을 더듬어 잠시 내려서다가,

 

임도에 접속하여 우측으로 내려서니,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거점재에 도착하여,

 

좌측 고개 너머에 있는 거점재/부곡재 들머리로 이동한다.

 

<거점재/부곡재>
거점재는 일명 부곡재로도 불리는데, 좌측 임피면 축산리와 우측 나포면 부곡리 입점마을을 잇는 11번 군도가 지난다.
부곡리(富谷里)는 장자멸, 장재멀이라고 하였는데, 본래 임피군 하북면 지역으로서 장자(부자)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에 따라 진장리, 입점리, 상주리 일부를 병합하여 부곡리라 해서 옥구군 나포면(현재 군산시 나포면)에 편입되었다.

 

거점재 들머리는 고개 좌측 임피면 축산리쪽 낙석방지용 펜스가 끝나는 지점에 있다. 

 

 

거점재 들머리의 임도로 진입하여,

 

바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산길로 들어서서 오르니,

 

제법 뚜렷한 길흔적이 있는 능선에 접속하여 능선 오름길을 따라 오르게 되고,

 

토성의 흔적을 뒤덮은 미국자리공이 산꾼의 걸음을 방해하는데,

 

<미국자리공(poke-berry)>

미국자리공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줄기는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이며 높이가 1∼1.5m이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10∼30cm의 긴 타원 또는 달걀 모양이고, 양 끝이 좁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6∼9월에 붉은빛이 도는 흰색으로 피고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달리고, 꽃받침조각은 5개이며, 수술과 암술대는 각각 10개씩이다. 열매는 장과이고 지름이 3mm이며 꽃받침이 남아 있고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으로 익으며 검은색 종자가 1개씩 들어 있다. 종자는 지름이 3mm이고 광택이 있으며, 심피가 서로 붙어 있으므로 열매가 익어도 갈라지지 않는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미상륙(美商陸)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전신이 부었을 때, 만성 신우신염, 복수가 찼을 때, 늑막염, 심장성부종에 효과가 있고, 종기와 진균에 의한 피부병에 짓찧어 붙인다.

 

밋밋한 숲속에서 용천산성으로 보이는 제방 옆 나뭇가지에 용천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이 걸려있다.

 

<용천산(龍泉山, 135.8m)>
군산시 나포면과 임피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쪽으로 망해산, 대명산, 오성산 등으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옛날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용천산이라 부른다고 하며, 용천산성 중심에 용천(龍泉)이 있어서 용천산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정상부에는 마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천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용천산성은 포곡형에 가까운 산성이라 할 수 있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예산은 진산(鎭山)으로서 형상이 봉황과 같고 옛 성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적조사자료』에는 둘레가 1,417m의 토성이며, 예산성이라고 적고 있다. 용천산성은 군산지역에서는 드문 포곡형 토성 형태로 추정된다. 성벽의 높이는 2.5~3m 정도였고, 회랑의 넓이는 1.5m 정도였다. 삭토법과 판축법을 병행한 토성이다. 용천산 봉우리에서 시작하여 새의 두 날개와 같은 양쪽 능선을 따라 흘러내려 서쪽에서 양쪽 능선이 만나는 부위에 성문이 만들어져 있는 형태이다.

 

<용천산성/예산성>
용천산성은 임피면 취산리 교동마을 앞 취산제의 서편에 자리잡은 용천산에 위치한다. 임피면 교동에서 나포면에 이르는 고개의 좌측에 자리잡은 용천산은 그 형세가 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새 모양의 몸통과 양 날개에 산성이 위치하고 있어 포곡형에 가까운 산성이라 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예산은 진산(鎭山)으로서 그 형상이 봉항과 같고 옛 성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적조사자료」에는 둘레가 1,417m의 토성이며 예산성이라고 적고 있다.
용천산성이 언제 축성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전설에 의하면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쫓기어 지금의 익산에 나라를 세운 후 준왕이 만들었다는 말이 전하는데, 산성의 모습이 익산을 등지고 금강을 방어하는 모습으로 전설이 전혀 근거 없지는 않은 듯 싶다. 주변의 임피읍성이나 남산산성보다는 축조연대도 오래되고 그 기능도 본래는 임피읍성의 외성 역할이나 진성창 방어용이었다기보다는 순수한 익산의 최전방에 자리한 금강 방어용 성이었지 않나 추측된다.
용천산성은 지리적으로 금강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오성산을 지나 금강에 적이 상륙했을 경우 이곳 용천산만 넘으면 익산에 다다를 수 있는, 서(西)로는 금강이 보이고 동(東)으로는 미륵산이 한눈에 보이는 교통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남쪽에는 고려시대 12조창(漕倉)의 한 곳인 진성창이 있었고, 동남쪽으로는 2km 전방에 임피읍성과 그 앞 1.5km 상에는 남산산성이 일렬로 줄지어 있다.
산성은 이 지역에는 드문 포곡형 토성 형태로 추정된다. 성벽의 높이는 2.5~3m 정도였고 회랑의 넓이는 1.5m 정도였으며 삭토법과 판축법을 병행한 토성으로, 용천산 봉우리에서 시작하여 재의 양 날개와 같은 양쪽 능선을 따라 흘러내려 서쪽에서 양쪽 능선이 만나고 바로 그 부위에 성문이 만들어져 있는 형태로 보인다. 40m 정도의 남쪽 평지는 논으로 개간되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나 본래는 판축양식의 성벽 혹은 목책이 성문과 함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안은 지금은 논으로 변하였는데 그 모습이 복주머니의 안쪽과 같으며 군시설과 민가가 있었으리라 추정되지만 지금은 확인할 수 없다. 성의 네 곳에 문루의 흔적이 보이고 성의 북쪽 정상 문루에는 석축의 흔적이 보이고 바로 밑에는 건물 자리의 흔적 또한 발견된다.(펌)

 

 

용천산 정상을 뒤로하고 용천산성을 따라 100여 미터 진행하다가,

뚜렷한 직진의 산성 위 등로를 두고 우틀하여 희미한 사면 숲길로 들어서면, (직진 알바 주의) 

 

빼곡한 잡목들 사이로 이리저리 얽힌 족적을 더듬어 내려서야 하고,

 

공동묘지로 보이는 곳이 나오며 묘지 앞 수레길에 접속하여 직진의 수레길을 따라 진행한다.

 

 

잠시 수레길을 따르면 좌측의 기맥능선 방향으로 희미한 갈림길이 있지만,

몇 차례 우회길을 두고 기맥능선을 따르려다가 고생을 한 상태라 그냥 뚜렷한 수레길을 따라 진행하면,

 

우측의 축사에서 풍겨오는 분뇨 냄새가 편백숲의 싱그러움을 덮어버린 편백숲을 지나게 되고,

 

'행복한농장' 입구 진입로에 접속하여 도로를 따르면,

 

미산재를 지나는 2차선의 포장도로에 접속하여 좌측 미산재 고갯마루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바로 우측으로는 성산면 대명리의 옥곡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미산재 고갯마루쯤에 도착하여,

 

<미산재>
군산시 임피면 미원리와 나포면 부곡리를 연결하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난다.

 

도로 우측 옹벽 너머에 오래된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나는 길없는 우측 숲으로 들어서고,

 

초지일관 우회길을 고집하는 분들은 30여 미터 더 진행하여 우측 도로로 진행하는데, 

 

숲으로 들어 족적조차 보이지 않는 잡목 숲을 헤치며 진행하니,

 

적기도 민망한 29봉 삼각점을 표지판을 만나는데,

 

삼각점 번호 익산407, 해발고도 29m로, 내가 오른 수많은 봉우리에서 본 최저 높이의 삼각점이다.

 

 

29봉 삼각점을 뒤로하니 이내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에 내려서게 되고,

 

농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농작물이 자라고 있어야 할 밭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우측으로는 옥곡저수지가 살짝 보인다.

 

 

용수로와 양수장을 포함 370억 규모의 대단위 관개 및 배수 공사에 의해 건설된 성산양수장 앞을 지나,

 

서해안고속도로를 '우곡2교' 아래로 통과하여,

 

계속하여 직진의 농로를 따르면,

 

창안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는 744번 지방도를 건너 직진의 농로로 진행는데,  

 

창안마을 버스정류장 옆에는 '깐치멀권역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깐치멀 권역>

깐치멀 권역이란 예전에 이곳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었는데, 꼭 섬처럼 보이면서 까치 형상을 닮아(혹은 까치가 많아서) '깐치멀'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깐치멀 권역은 창안, 상작, 작촌, 구작 등 까치와 관련 있는 4개 마을이 모여 이루어진 권역인데, 그중에서도 까치의 머리에 해당하는 동네를 상작(上鵲)이라고 하고, 꼬랑지에 해당하는 동네를 하작이라고 하였다. 옛날 할머니들는 까치를 '깐치'로 발음하였고, '멀'은 머리의 줄임 표현으로 '깐치멀'이란 '까치 머리'로 짐작된다. 

 

 

황금빛 들판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르다가 중앙으로 보이는 숲 좌.우로 갈라지지는 ㅏ자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면,

 

노오란 감이 주렁주렁 익어가는 아담한 농가를 지나고,

 

두번째 농가주택 좌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면,

 

따르던 농로는 비포장으로 바뀌며 농가 뒤쪽 대나무숲으로 들어서게 되고,

 

무성한 대나무숲 사이로 이어진 수레길을 따라 올라,

 

소나무숲 능선으로 이어진 수레길을 따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며 쉼을 한다.

 

 

이른 점심을 마치고 수레길을 따라 오르면,

 

수레길은 묘지까지만 이어져 있고 묘지 좌측 상단 능선으로 오르면,  

 

능선을 뒤덮은 잡목 사이로 희미한 족적이 이어져 있고,

 

이내 대명산 표지기가 나뭇가지에 걸인 대명산 정상에 도착한다.

 

<대명산(大明山, 128.5m)>
전북 군산시 성산면 창오리와 도암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는 잡목이 무성하고 정상을 알리는 표지기가 나뭇가지에 걸려있을 뿐이다. 거창한 이름에 비해 그저그런 구릉 정도로 보인다. 대명산은 옛날 소정방이가 전쟁에서 패할 당시 명나라 군사를 원조받기 위하여 이 산에서 기다렸다 하여 대명산이라 한다고 한다.

 

 

대명산 정상에서 급좌틀하며 이어지는 능선길을 더듬어 내려서면,

 

좌측 창오리 방향으로 임피면의 남산이 조망되고,

 

방치된 임도를 따라도 되지만 우측의 언덕으로 오르면,

 

토성의 성곽으로 보이는 능선에는 빼곡한 잡목으로 진행이 어렵고,

 

다시 방치된 임도에 내려서서 잠시 내림길을 따르면,

 

시멘트 포장 임도가 지나는 창암재에 도착하게 된다.

 

<창암재>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 창암마을과 창오리를 잇는 고개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난다. 창암에서 고개를 넘어 창오리로 간다고 하여 창암재라 한단다.

 

들머리 우측 나뭇가지에 창암재 표지기가 걸려있다.

 

좌측 창암재 고갯마루 전경.

 

 

창암재 들머리로 들어서면 선답자의 족적조차 찾기 어렵고,

 

불분명한 능선을 더듬어 오르다가 알밤이 널린 밤나무 아래에서 밤을 줍는 주민과 인사도 나누며,

 

방치된 임도에 접속하여 오르면,

 

정상 구분이 모호한 펑퍼짐한 숲속에 망경산 표지기가 걸려있다.

 

<망경산(望景山, 129m)>
전북 군산시 성산면 창오리와 고봉리, 도암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창오리에 나라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어서 이 산에서 망을 보았다 해서 망경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창오리 마을은 1724년(조선 영조) 이석장(李碩章)씨가 이룬 마울이다. 이씨는 3천석의 큰 거부였다. 조창의 망경산에서 이어 연봉을 이루고 있는 고봉산의 남쪽 기슭이다. 이씨는 가짐새나 그 위엄이 따르는 장중한 토호였다고 전한다. 특히 전라감사 이서구(李書九)씨와 각별한 교분이 있었다고 한다. 이씨터에서 북쪽 산기슭에 창안(倉雁)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진성창지(鎭城倉地)다. 고려 12조창(漕倉) 중의 하나였다. 창안(倉雁)은 원래 '창(倉)의 안쪽'이라는 이름이었던 것이 한자로 정리하면서 엉뚱하게 창안(倉雁)이라 붙은 것이다.

 

고려의 조창과 조운은 국가의 대무(大務)였고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중요한 시책이었다. 고려시대 조창제도가 완비된 것은 고려 6대 성종(11년, 992) 경으로, 개경 이남에 주(州), 현(縣)에서 받아들이는 조세미의 보관창으로 십이지 창을 두었다. 즉 개경 이남에 12곳의 조창을 두었다. 이 고장의 진성창(鎭城倉)을 임피현에 두었다.(지금의 성산면 창오리) 진성창은 지금의 전라북도 전체의 조세미를 보관, 관리하고 있었다. 금강 연변의 당시 진성창은 많은 조세미의 보관창고이기에 창고의 규모도 크고 그 수도 많았었다. 친성창이 있었던 창오리의 망경산을 주산으로 지금의 창안방죽 동쪽을 향하여 많은 창고가 있었다. 이 창고를 방어하기 위하여 출입문 외에는 토성으로 막아 보호하였다. 또 조운은 망경산 중턱에서 서쪽 반대편으로 가는 산속의 운반로를 만들었고, 망경산 서쪽 반대편까지 금강물이 드나들어 조운의 기지를 만들고 있었다. 조창의 조세미는 가까운 곳은 2월부터 4월까지, 먼 거리의 것은 5월까지 운반하였다고 한다.

 

 

망경산 정상부에서 희미한 수레길을 만나 우측 길을 따라 내려서면,

 

좌.우로 수레길이 지나는 안부를 지나게 되고,

 

편백나무가 식재된 능선 분기점에서 직진의 능선을 버리고 다리실재로 향하는 좌측 능선으로 좌틀하여 진행하게 되는데,  

 

밤 줍기에 재미가 들린 김전무를 기다리며 잠시 쉼을 하다가,

 

 

원 기맥 등로는 조금 더 진행하여 좌틀하여 내려서야 하는데, 등로가 뚜렷하지 않은 지능선을 따라 좌틀하여 다리실재로 향하는 바람에 잡목을 헤치느라 어렵게 진행하여,

 

(구) 27번 국도가 지나는 다리실재에 내려선다.

 

<다리실재>
전북 군산시 상산면 고봉리 다리실골에서 창오리 고라실골로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산의 형상이 달 모양으로 되었다'하여 다리실재라 불리다가 한자 표기로 월곡재(月谷峙)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다리실재 주변은 금강수운의 중심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내륙에서 거둔 곡물의 집산지인 진성창으로 옮기는 길목이었다.

 

길을 잘못들어 고생스럽게 다리실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우측 고갯마루를 넘으면 좌측으로 다리실재 육교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오며,

 

들머리 옆 나뭇가지에는 다리실재 표지기가 걸려있고,

 

들머리로 들어서는 백두들 뒤쪽으로 정상적인 다리실재 날머리 수레길도 보인다.

 

 

잠시 도로를 따르면 새로난 27번 국도를 넘는 다리실재 육교를 건너게 되고,

 

국도 27호선 동쪽 익산 방향.

 

우측으로 편백나무숲이 울창한 도로를 따라 오르면,

 

 

좌측으로 고봉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의 시설물이 올려다 보이고,

 

Y자 임도 갈림길에서 좌측 임도를 따라 오르면,

 

고봉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 정문이 나오며 정문 철망에 고봉산 정상 표지기들이 여럿 걸려있다.

 

<고봉산(高峰山, 153m)>
전북 군산시의 개정면 고봉리·아산리와 성산면 산곡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조선시대 고문헌과 고지도에서 관련 산 지명을 찾을 수 없어 지명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조선지형도』에 고봉산이 아산리와 산곡리 사이에 등재되어있어 기록된 역사가 길지 않은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호구총수』 방리조에 북일면 소속의 고봉리가 표기되어 있어 고봉산과 관련된 촌락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고봉:본래 임피군 북일면의 지역으로서 고봉산 밑이 되므로 고봉이라 하였는데"라는 기록이 있다. 1914년에 단행된 전국단위의 행정구역개편 결과가 수록된 『신구대조』에도 고봉리가 등재되어 있어 산 지명에서 유래된 촌락 지명이 현재까지 '고봉리'로 존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산 정상에는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이전을 했는지 군부대는 텅 비어있고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어 보기가 좋지 않다.

 

고봉산 정상 인증.

 

 

고봉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의 정문 우측으로 내려서니 헬기장을 지나온 백두들이 다가오고 있고,

 

군부대 철망 울타리를 따라 100여 미터 진행하다가,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만나 우틀하여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고봉산을 휘돌아 이어온 도로에 다시 접속하여 직진의 좌측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우측으로 군산시의 아파트 건물이 보이고,

 

Y자 갈림길인 애잿고개에서 우측의 도로로 진행한다.

 

<애잿고개>
전북 군산시 개정면 아산리 애티골과 성산면 산곡리 우대골 사이의 고개다.

 

애잿고개에서 능선 방향 도로로 들어서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수레길로 들어서면,

 

다시 등로는 거칠어지고,

 

작은 봉우리를 지난 내림길 우측에 자리한 묘지에서 10여 분간의 다리쉼을 한 후에,

 

 

거친 수레길을 따라 기맥길을 이어가면,

 

우측 아래에 지장암이 자리한 안부를 지나고,

 

작은 봉우리가 이어진 완만한 능선을 따르면,

 

높다란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144.6봉을 지나게 된다.

 

144.6봉 삼각점.

 

우측 군산시 개정면 방향.

 

 

144.6봉을 뒤로하고 수레길을 따라 내려서면 공동묘지 도로로 내려서게 되는데,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이 기맥능선으로 보이지만 금남기맥은 좌측 아래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좌틀하여 진행해야 하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면,

 

안부에 자리한 잘 가꿔진 가족묘지가 있는 능선이 금남기맥 능선이고,

 

그냥 도로를 따라 안부를 지나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의 능선 방향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금남기맥을 이어간다.

 

 

우측에 금남기맥 능선을 두고 좌측 사면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좌측으로 잘 마련된 납골묘가 자리하고 있고,

 

가끔씩 구불길 이정표와 표지기들이 나부끼는 임도를 따르다가,

 

우측 능선에 자리한 정자에 들러 잠시 쉼을 하기로 하고 우측 계단길로 들어서면,

 

바로 군산시 계정면과 만경강이 조망되는 팔각의 정자가 나타난다.

 

<만경강(萬頃江)>
전북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율치의 밤샘(또는 진틀, 657m)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황해의 새만금사업지구로 유입하는 국가 하천이다. 상류로부터 김제, 익산, 군산 등의 여러 고을이 발달하여 있다. 완주군에서는 고산천, 전주에서는 전주천과 소양천, 익산에서는 익산천, 군산시에서는 탑천 등의 여러 지류들이 이 하천에 합류한다. 하류인 군산 일대의 조석간만의 차이가 커서 만조시에는 전주천과 소양천 및 고산천이 합류하는 대천(한내 마을 삼례대교)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예로부터 관개와 주운(舟運)에 이용되어, 완주군 봉통읍의 구만리와 전주천의 추천까지 운항이 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온다. 하천의 발원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우리 람 길라잡이』에서는 전북 완주군 동상면의 막은대미재 북쪽 산록으로 표기하고 있다.
'만경(萬頃)'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하천의 하류에 입지하였던 만경현(현 김제시 만경읍)에서 유래되었다. 만경(萬頃)의 뜻은 '백만 이랑'의 의미로 넓은 들을 의미한다. 만경강의 하류에 형성되어 있는 평야는 '김제'와 '만경'의 합성 지명으로 금만평야로 불리기도 한다. 새만금방조제도 여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조선시대에 이 하천은 사수(泗水)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여지고』(김제)에 "사수(泗水)는 속칭 회연(回淵)이라고 하는데 그 아래를 율포라 일컫고 그 아래를 신창진이라 일컫는다."라는 기사가 있고, 동일 문헌의 전주조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전칭으로 불렀음을 보여 준다. 『대동여지도』에도 『여지고』에 수록된 율포, 신창진 등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한편, 고산현 남쪽의 하천에 '남천(南川)' 지명이 표기되어 있어 부분칭으로 사용하였음을 보여 준다.

 

 

10여 분간의 다리쉼을 하고는 정자를 뒤로하고,

 

임도에 접속하여 완만한 내림길을 따르면,

 

우측 거산마을과 좌측 철봉제로 갈리는 사거리 갈림길 안부를 지나게 된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워진 임도 한편에 벤치도 설치되어 있고,

 

체육시설이 설치된 곳도 지나면,

 

좌측으로 휘어지는 임도를 두고 우측 숲길로 들어서야 하고,

 

뚜렷하던 숲길이 희미해지며 거친 잡목 숲을 통과하면,

 

다시 편백숲으로 이어진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대야면 소재지의 가정집 뒤편으로 내려서서,  

 

 

26번 국도가 지나는 통사동 고개 방향으로 진행한다.

 

돌아본 날머리 방향.

 

대야면 소재지의 통사동고개를 가로지르는 26번 국도에 내려서서 들머리는 우틀하여 고갯마루로 진행해야 하나, 더위에 갈증이 난 분들이 캔맥주를 먹고 가자며 좌틀하여 마트를 찾아 대야면 소재지로 진행하여,  

 

<통사동 고개>
군산시 개정면 통사리와 대야면 신월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4차선의 26번 국도가 지난다.

 

발빠른 총무님께서 사오신 캔맥주를 마시며 쉼을 한다.

 

맥주를 마시면 10km를 더 갈 수 있다던 분들이 맥주에 취하면서 생각이 바뀌어 통사동 고개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차량을 회수하러 가겠다고 한다. 오늘 목적지인 칠거리재까지는 3km 남짓밖에 남지 않았지만, 10월임에도 내리쬐는 햇볕이 강했고 일부 산행길이 잡목으로 뒤덮여 있어서 여간 고생스럽지 않았던 탓이라 중탈을 결심한 듯하다. 그렇게 차량 회수를 위해 중탈한 분들을 남기고 예정한 금남기맥길을 마저 걷기 위해 잠시의 쉼을 털고 있어나 통사동 고갯마루로 향한다.

 

 

통사동 고갯마루로 이동하여 개정면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시멘트 포장 도로로 들어서서,

 

돌아본 통사동 고개 전경.

 

임도를 따라 올라서면 시멘트 포장 임도는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도로는 대아배수지까지 이어져 있고 대아배수지 정문에서 좌측의 수레길로 들어서서 오르면,

 

육각정자 쉼터가 있는 백마산(85.2m)에 오르게 되는데,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 조망도 별로인지라 바로 좌향 하여 내려선다.

 

<백마산(85.2m)>
개정면 통사리와 대야면 지경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마사가 있었다 하여 백마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잠시 거친 등로가 이어지다가,

 

백년초가 심겨진 밭 가장자리를 지나,

 

<부채선인장/백년초>
줄기가 납작한 부채 모양을 여러 개 이어 붙인 것처럼 생겨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손바닥선인장이라고도 불리며, 제주도에서 자생하기도 하는데 백년초라고도 한다. 줄기는 일반적인 선인장처럼 다육질로서 몇 군데가 마디처럼 잘록하며 이것을 경절(莖節)이라고 한다. 경절은 원통 모양, 공 모양, 타원 모양 등 그 모양이 여러 가지이며, 그 모양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이 경절에 헛물관이 있으며 표피 가까이에 관다발이 있다. 새순에 달리는 잎은 바늘처럼 생겼으며 육질로서 완전히 자란 다음에 떨어진다. 떡잎은 바소(한방에서, 곪은 데를 째는 데 쓰는 날이 있는 기구)꼴 또는 삼각형이며 같은 육질로서 화피와 포(변형된 잎)가 서로 다르다.
열매는 특이하게도 그 자체에서 뿌리가 나오고 열매의 윗부분에서는 부채선인장이 자라서 꽃이 핀다. 따라서 번식방법은 열매를 따서 통째로 흙에 심어놓거나 경절을 잘라 말려 땅에 심는 것이다. 대표적인 속은 부채선인장속(Opuntia)이며, 이외에 몇 가지 속이 더 있다. 부채선인장속에는 매우 많은 품종이 있으며 선인장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있다.

 

잠시 내림길을 내려서면,

 

한들고교와 옥구중 교정 울타리가 나오는데, 

보통 울타리를 따라 우측으로 우회하여 진행하게 되지만, 오늘은 휴일이라 직진하여 교정으로 들어서서,  

 

한들고교와 옥구중 교정을 통과하여 진행한다.

 

한들고교와 옥구중 교정을 지나는 백두들.

 

 

한들고교와 옥구중 정문을 나와 옛 장항선 '만자 건널목' 자리를 차지한 718번 지방도를 건너 우측으로 진행하면,

 

718번 지방도가 장항선 철길을 넘는 고가도로가 나오는데 고가도로에는 인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고가도로 좌측으로 진행하면,

 

고가도로가 장항선 철길을 건너는 곳에는 '길없음' 표지판이 가로막고 있고,

 

사람들은 좌측의 지하통로로 장항선 철길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장항선 철길을 통과하는 지하도 모습.

 

 

장항선 철길을 지하통로로 통과하여 나오면,

 

인공 관개수로를 건너는 '지경교'를 건너 지경교차로에서 우측 718번 지방도를 따라 한참을 진행하게 된다.

 

지경교에서 본 우측 수로 모습.

 

 

718번 지방도를 따라 '회현', '군산공항' 방향으로 진행하면,

 

21번 국도를 옥석육교 아래로 통과하게 되고,

 

돌아본 백마산 방향.

 

노오랗게 익은 벼를 수확하는 콤바인.

 

이어서 군산항으로 이어지는 철길도 아래로 통과하여,

 

따가운 햇살에 고스란히 노출된 718번 도로를 따라 정면으로 보이는 용화산 방향으로 대야면의 너른 들판길을 한없이 걸어간다. 

 

 

이곳부터 회현면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 ㅏ자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옥산 방향으로 들어서면,

 

좌전방으로 용화산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보이고,

 

좌측 공동묘지가 있는 곳에서 산길로 들어서며 용화산으로 오르게 된다.

 

용화산 이정표 옆에 걸린 낯익은 표지기가 반갑다.

 

 

비어가던 배낭을 알밤으로 그득 채운 김전무가 들머리에서 잠시 쉼을 하자고 하여 잠시 다리쉼을 하고는,

공동묘지로 이어지는 용화산 들머리로 들어서서 오르면,

 

지나온 백마산과 대야면 지경리의 너른 벌판이 돌아다 보이고,

 

대야면 지경리(地境里)는 바닷물과 만나는 땅 끝 마을 이름이다. 대야(大野)라는 지명은 호남평야와 맞닿은 드넓은 들녘에서 유래했다. 지경리의 옛 이름은 `배달메' 마을이다. `배달메'는 만경강 둑을 쌓기 전까지 강이 인근 백마산까지 연결되어 배가 닿았다는 뜻으로 `배닿을 메'라 했으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백월(白月) 마을이라고 했다는 지명의 유래가 있다.

 

돌아본 금남기맥 능선과 대야면 들판 조망.

 

넝쿨식물이 빼곡한 공동묘지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

 

용화산 정상으로 짐작했던 봉우리를 넘으면,

 

좌측 용화마을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안부를 지나게 되고,

 

용화마을 갈림길 이정표.

 

잠시 더 가파르지 않은 오름길을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용화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용화산(龍華山, 104m)>
군산시 옥산면 남대리와 회현면 원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정에 용굴이 있어 불을 지피면 만경강 건너 새챙이에서 연기가 난다는 전설이 있다. 용굴에서 용이 자라 하늘로 승천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용화산 정상의 산불감시초소.

 

용화산 정상 인증.

 

 

용화산을 뒤로하면 앞쪽으로 청암산(좌)과 금성산(우)이 가늠되고,

 

좌측 만경경 방향으로 회현면의 황금빛 벌판이 조망되고,

 

좌측 회현면 원우리의 원우저수지 방향 갈림길이 있는 안부를 지나,

 

갈림길 이정표.

 

호젓한 수레길 등로를 잠시 따르면,

 

우전방으로 군산 시가지의 건물들이 조망되고,

 

북쪽 개정면 방향으로 오성산이 오뚝하게 보인다.

 

살짝 당겨본 오성산 방향.

 

 

숲길을 벗어나자 전방으로 시야가 활짝 트이며 오늘의 목적지인 칠거리재도 내려다 보이고,

 

우전방으로 군산 시가지의 건물들이 한층 뚜렷이 가늠되며,

 

능선 등로를 따라 내려서니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은 전방의 공동묘지를 우회하는 길이라 좌측 직진 방향의 능선길을 따르면,

 

여러 기의 묘지들이 산재한 능선으로 이어지고,

 

이내 우회하는 임도와 다시 만나,

 

오늘 금남기맥길의 종착지인 709번 지방도 표산 버스정류소가 있는 칠거리재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친다.

 

<칠거리고개>
군산시 회현면 원우리와 군산시 옥산면 남내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칠거리재라고도 불린다. 칠거리고개라는 명칭은 『군산의 지명 유래』에 우동에서 대위로 넘어가는 고개로 기록되어 있는데, 칠거리재로도 기록되어 있다. 회현면 고사리 대위 마을 북동쪽에 포산·신당·풍촌·대위·옥산·남내·용하산의 일곱 갈래로 갈라지는 길의 명칭이 칠거리인 것을 볼 때, 칠거리고개는 ‘칠거리’라는 명칭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칠거리재 이정표.

 

칠거리재 전경.

 

 

통사리고개에서 중탈하여 차량을 회수하여 대기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 임피면 소재지의 '봉이네맛집'으로 이동하여,

 

불고기전골과 육회로 즐거운 뒤풀이 시간을 가지고는 멀고 먼 귀가길에 오른다.

 

 

오늘 '고을 군(郡)'이 아닌 '무리 군(群)'자를 쓰는 군산((群山)의 금남기맥 능선을 걸으며, 과연 군산에 산(山)이 많음을 새삼 느꼈고, 금강과 만경강 사이의 너른 벌판이 황금빛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바다와 너른 들판을 모두 가진 군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