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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예천 회룡포 비룡산 : 강으로 둘러싸인 육지의 섬

by 재희다 2022. 3. 26.

 

산 행 지 : 회룡포, 비룡산.  (경북 예천군 용궁면)

산 행 일 : 2022. 02. 20.(일)

산행코스 : 뿅뿅다리 주차장 ~ 용주시비 ~ 장안사 쉼터(장안사 왕복) ~ 제1전망대(회룡대) ~ 봉수대 ~ 제2전망대(용포대) ~ 범등/삼강앞봉 ~ 비룡교 제1전망대 왕복 ~ 야외무대 광장 ~ 의자봉 ~ 적석봉 ~ 사림봉 왕복 ~ 사림재 ~ 용포마을 ~ 제2뿅뿅다리 ~ 회룡포 ~ 제1뿅뿅다리 ~ 뿅뿅다리 주차장 (10km, 원점회 4시간 반 소요)
산행참석 : 둘.


<산행지도>


경상북도 예천의 회룡포(回龍浦)는 낙동강(洛東江)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용(龍)이 비상(飛翔)하듯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 190m의 비룡산(飛龍山)을 350° 되돌아서 흘러나가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실제 섬은 아니지만 육지와 이어진 길목이 좁고 낮아 폭우로 강물이 넘치면 섬으로 변한다고 한다. 평지에선 보이지 않지만, 비룡산 정상에 서면 포구와 산의 이름처럼 용이 꿈틀대며 날아오르는 듯한 장관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정감록'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난리를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곳)'의 하나로 꼽은 명승이다.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조망할 수 있는 비룡산에는 숲속 등산로와 산책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다. 비룡산에는 신라시대의 천년고찰인 장안사(長安寺)가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비룡산(飛龍山)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洛東江), 내성천(乃城川), 금천(錦川)이 합쳐지는 삼강(三江)이 보이는데, 깎아지른 듯한 이곳에는 삼한시대(三韓時代)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일명 용주성)이 있다. 천혜의 요새로 토석혼축으로 된 성(城) 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縫燈臺)가 남아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마한(馬韓) 최후의 보루인 이곳 원산성(圓山城)을 점령한 후 백제(百濟)를 세웠다고도 전해지며, 원산성이 위치한 용궁면일대는 근초고왕 25년(370)에 백제 영토가 되었다가 512년 고구려 문자왕이 점령하여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그 후 진흥왕 26년(565)에 신라의 땅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러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원산성은 4세기 말부터 6세기 말까지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각축장이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 지명에서도 나타나 있는데, 전사한 병사의 피가 강물을 따라 흘러 맞은편 언덕에 엉키어 붙었다 하여 『피묻끝』이라 부르고 통곡소리가 먼 마을까지 들렸다 하여 강 건너 마을을 달읍(達泣)이라 부르고 있다. 인근에는 용궁향교, 하마비, 황목근, 무이서당, 삼강주막, 산택지, 청원정 등이 있으며, 천혜의 자연경관과 역사적 정취가 살아 숨쉬는 이곳 회룡포 마을에는 야영(野營)과 민박(民泊)이 가능하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마을은 예천군으로부터 약 17km 서쪽에 위치하며 문경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금천이 남쪽과 서쪽으로 흐르고 비옥한 농경지가 잘 형성되어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회룡포마을, 봉수대, 원산성, 회룡대, 장안사 등의 많은 관광자원이 있으며 용궁향교, 황목근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되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인만큼 토마토, 포도, 땅콩, 사과 등의 농산물이 있다.(예천군)

 

 

시골 부모님댁에 갔다가 추운 날씨로 일찍 귀갓길에 오르는 바람에 시간적 여유가 생겨 부근에 위치한 회룡포와 비봉산 둘러보기에 나섰다. 원래는 원산성과 범등 그리고 낙동강 비룡교를 건너 삼강주막에서 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사림봉을 다녀오는 13km 코스를 계획했으나 날씨가 너무 차고 칼바람까지 불어서 원산성과 삼강주막 탐방은 제외하고 단축하여 진행했다. 

 

 

육지속의 섬으로 불리는 회룡포 마을은 내성천 물길이 휘감아 돌아나가는 곳이라 자동차로 가려면 예천군 개포면 방향으로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회룡포와 비룡산 탐방은 접근이 용이한 제1뿅뿅다리 주차장에서 시작하게 되며 네비에는 '회룡포 주자장'으로 검색되어 나온다. 

 

회룡포 주차장에서 비룡산 들머리로 향하는데,

매서운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탐방에 나서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고, 

 

회룡포마을과 제1뿅뿅다리 방향. 

 

주차장 옆 비룡산 방향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며 트레킹을 시작한다.

 

 

비룡산 등산로로 들어서면 받침석 4면에 각각 두 수씩을 새겨 용주팔경 여덟 수 전부를 세긴 용주팔경시비(龍州八景詩碑)가 자리하고 있다. 

 

'용주팔경(龍州八景)'은 조선 말기 학자 김영락(金英洛·1831~1906)이 고향인 용주(용궁면)의 아름다운 산수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한 총 여덟 수로 이루어진 한시다.

 

용주팔경(龍州八景)
1. 抱琴明月(포금명월) 포금산(용궁중학교 뒷산)의 밝은 달. 
2. 武夷淸風(무이청풍) 무이(무이리 뒷산)의 맑은 바람. 
3. 遏雲樵歌(알운초가) 알원산(알운산, 우망리 뒷산)의 나무꾼 노래. 
4. 喧坪稻畵(훤평도화) 훤이들(살미 앞들)의 벼꽃. 
5. 飛龍歸雲(비룡귀운) 비룡산(향석리 앞산)에 걸친 구름. 
6. 天竺疎鐘(천축소종) 천축산(향석리 뒷산) 저녁 종소리. 
7. 錦江漁火(금강어화) 금강(금천)의 고기 잡는 불빛. 
8. 臥生落照(와우낙조) 와우산(용궁초교 뒷산)의 낙조.

 

 소나무숲으로 이어진 가파르지 않은 등로를 따라 오르면, 

 

좌측으로는 회룡포마을을 휘감아도는 내성천이 내려다 보이고, 

 

밴치가 있는 작은 봉우리를 지나서 내려서면, 

 

좌측 용포마을 제2뿅뿅다리 방향 갈림길이 있는 안부를 지나게 된다.  

 

 

용포마을 방향 갈림길 안부를 지나 약간 가팔라진 오름길을 오르는데, 

 

좌후방으로 회룡포주차장과 회룡포마을을 잇는 내성천의 제1뿅뿅다리가 내려다보이더니, 

 

이내 밴치가 있는 소나무 쉼터를 지나서,  

 

안전시설이 설치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등로는 벤치가 있는 능선분기점에서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커다란 석가여래좌상과 용왕각, 정자쉼터 등이 있는 장안사쉼터에 도착하는데,

정자 우측으로 장안사 경내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좌측 회룡마을과 하트산 방향.

 

살짝 당겨본 하트산 방향.

 

 

직진의 나무계단이 가야 할 회룡대 방향이지만 우측 아래의 장안사로 연결된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비룡산 정상 아래에 자리한 천년고찰 장안사(長安寺)가 나온다. 

 

<장안사(長安寺)>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비룡산(飛龍山) 정상 가까이에 자리한 직지사의 말사(末寺)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 그리고 국토의 중간인 이곳 용궁면 용궁리 비룡산 장안사가 그 하나이다. 13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고찰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장안사(長安寺)는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진 쇠락한 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타(頭咤) 스님이라는 분이 젊은 나이로 전국을 행각하던 중 이곳 장안사의 빼어난 산세를 보고 들어오셨다. 혼자 괭이로 산길을 내고 우마차로 들보를 옮기며 새롭게 가람을 중수하셨다. 기와를 머리에 이고 흙을 지고 나르는 스님의 모습에 마을 주민들도 감복해서 스님을 도와 불사를 거들었다. 모두의 간절한 원력으로 마침내 장안사가 옛 모습을 보이고 다시 신도들이 찾아들자 두타(頭咤) 스님은 말없이 절을 떠나셨다. 오실 때의 모습 그대로 걸망 하나만 매고 조용히 떠난 스님은 출가 때 세운 서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 태백산 어디선가 공부만 하고 계신다고 전한다.

장안사와 더불어 장안사 뒷산에서 내려다보이는 회룡포는 잘 알려진 경승지다. 장안사 뒷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장안사에서 세운 회룡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비경은 눈을 의심할 만큼 신비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팔각정 안에는 고려시대의 문관이며 재상으로 국문학사상 최초의 서사시인 '동명왕편'을 쓴 고려의 대시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장안사에 머물면서 장안사에 대해 쓴 시가 걸려있다. 이규보는 이곳 장안사에 오래 머물면서 글을 지었으며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했다. 또한, 이 지역의 많은 인물들이 이 장안사 도량에서 원(願)을 성취하고 밖으로 역량을 발휘했다고 한다.

 

장안사 앞쪽으로 보이는 향석리 조망.

 

장안사 전경.

 

 

장안사를 뒤로하고 용왕각이 있는 장안사쉼터로 돌아나가면, 

 

용왕각과 용바위가 나란히 자리한 장안사쉼터로 돌아나와 우틀하여 나무계단을 따라 회룡대로 향한다.

 

<용왕각과 용바위>
장안사(長安寺)의 용왕각과 용바위는 신령스런 영험 기도도량이다. 용이 휘감아 도는 물 이름은 회룡포(回龍浦)요, 용이 웅비하는 형상의 산은 비룡산이며, 승천하여 구름에 노니는 용의 형상은 용바위에 있으니 가히 용궁(龍宮)이라 할만하다. 용왕신은 산신, 칠성님과 더불어 우리 조상님들 고유의 민속신앙이며 또한 옛 천축국(天竺國)의 고대신앙으로서 모두 불교에 수용된 후 불볍(佛法)을 수호하는 신중(神衆)으로 모셔져 왔다. 
장안사 뒷산인 비룡산에 오르면, 저 멀리 태백산과 학가산을 거쳐 힘차게 뻗쳐오고, 소백산이 주흘산을 거쳐 회룡포를 감싸고 펼쳐지면, 오른편을 보면 낙동강 건너 팔공산이 북쪽으로 달려 비봉산(飛鳳山)을 이루니 천하의 삼산이 모여들고,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서로 휘돌아 삼강을 이루어 모여드니 삼룡득수형국(三龍得水形局)의 천하의 명당이다. 전설에 의하면, 태백산, 청룡과 소백산 황룡이 여기서 만나 여의주를 몰고 승천했다 하여 비룡산, 회룡포라 하니 국가 명승 제16호이다. [안내문]

 

장안사 쉼터의 이정표. 

 

 

회룡대로 이어진 220여 개의 '행운의 계단'을 오르며, 

 

목판에 적힌 시구(詩)에도 눈길을 주는 사이에, 

 

회룡포 마을과 하트산이 조망되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사랑의 산(하트) 안내판.

 

<사랑의 산(하트) 유래>
비룡산은 백두대간에서 문수지맥으로 힘차게 뻗어내려 학가산과 검무산을 지나 내성천과 더불어 회룡포 물도리로 이어져 있으며, 이곳은 신령스런 용(龍)이 승천하는 듯한 형국으로 천하명당이다. 
비룡지릉에는 태고적부터 사랑의 상징인 하트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풍수로 보면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는 삼각형 산줄기는 총각산이고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여궁곡 형상의 산줄기는 처녀산을 상징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젊은 연인들이 비룡산의 정기를 받아 인연을 맺으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여 훌륭한 자녀를 낳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안내문)

 

전망대에서 바라본 '사랑의 산(하트)' 조망.

 

 

나무로 가려진 전망데크 바로 아래에 회룡대(回龍臺)가 자리하고 있다.

 

<회룡대(回龍臺)>
장안사에서 세운 회룡대는 내성천이 휘감아 도는 회룡포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비룡산 정상부에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비경은 눈을 의심할 만큼 신비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팔각정 안에는 고려시대의 문관이며 재상으로 국문학사상 최초의 서사시인 '동명왕편'을 쓴 고려의 대시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장안사에 머물면서 장안사에 대해 쓴 시가 걸려있다. 
회룡포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는 모두 세 곳이 있는데, 제1전망대라고도 하는 이곳 회룡대가 최고의 전망대로 꼽히고 있으며, 이곳 말고 제2전망대는 봉수대에서 사림재로 이어진 능선에 자리한 용포대이고, 또다른 전망대는 남쪽 사림봉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회룡대 앞 전망데크에서 본 회룡포 조망.

 

2005년 8월 23일 명승 제16호로 지정된 회룡포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비상하듯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이름붙여진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내성천 줄기가 마을 주위를 350도 휘감아 돌아나가서 마을 주위에 고운 모래밭이 펼쳐지며 산과 강이 태극모양의 조화를 이룬다.

 

지금의 회룡포는 원래는 '의성포'로 불리었는데 이웃한 의성군에 속하는 지명으로 착각할 것을 우려해 회룡포로 바꿨다고 한다. 의성포의 유래는 곡류하는 내성천에 의해 기묘하게 이루어진 지형이 의로운 자연환경을 이루었다 해서 "의" 자와 내성천의 "성" 자를 따서 "의성"이라 하고, 삼면이 강변이나 개천에 면해 있다 해서 "물가"를 의미하는 "포" 자를 합해 "의성포"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또다른 설은 회룡포에 정착한 경주김씨들이 의성에서 이주하여 왔기에 '의성포'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회룡포는 2000년도 KSB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이며, 2009년도 KSB 2TV 인기프로 1박2일 촬영으로 전 국민이 알게 되어 연간 20만 명 정도의 관광객이 다녀가기도 했다. 2008년 국토해양부에서 '전국 강변이 아름다운 마을 최우수'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여행작가 100여 분이 선정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1위로 두차례나 오르기도 한 곳이다. 

 

회룡포 내에는 경주김씨 9세대 20여 명 내외가 거주하고 있으며, 농경지가 66,000여 평이고 수자원이 풍부하여 가뭄 피해가 없는 부자마을이다. 

 

회룡포 조망.

 

 

회룡대 아래에는 내성천변으로 연결된 회룡포 탐방로가 있지만, 

 

회룡대를 뒤로하고 다시 능선 등로로 돌아나와, 

 

잠시 능선 등로를 따라 공터와 벤치가 있는 무제봉도 지나면, 

 

이내 비룡산 정상의 봉수대에 도착한다. 

 

<비룡산 봉수대(飛龍山 烽燧臺, 240m)>
봉수(烽燧)는 옛날에 통신수단의 하나로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여 국방상의 중요한 임무를 도성에 신속히 전달하였다. 봉수는 홰수에 따라 1홰 평상시, 2홰 적 출현, 3홰 국경 접근, 4홰 국경 침범, 5홰 적군 교전으로 구분하여 알렸다. 비룡산봉수는 동쪽으로 예천의 서암산, 서쪽은 다인의 소이산, 북쪽은 산양의 가불산봉수와 연락하였으며, 설치년도는 고려 의종 3년(1149)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1895년 봉수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없어진 것을 최근에 예천군에서 사방 3.7m, 높이 2.7m의 정방형 규모로 복원하였다. 

 

 

 

봉수대를 뒤로하고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능선을 따르면,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용궁면 향석리의 너른 들판이 내려다 보이고, 

 

이내 우측 원산성 방향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는데, 원래는 좌측 300여 미터 거리의 용포대 전망대를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우측 원산성 방향으로 진행하려 하였으나, 바람이 너무 차서 원산성 탐방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좌측 능선을 따라 용포대를 거쳐 범등(삼강앞봉)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원산성(圓山成)>
예천군 용궁면 향산리 비룡산에 위치한 원산성(原山成)은 옛날 삼국의 격전지였으며, 성벽의 둘레가 1,000미터에 성벽 높이는 지형에 따라 1.5~3m로 축조된 토석(土石) 혼성이었다 한다. '따뷔성'으로 불리는 이 성은 군지(郡誌)에는 용비산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한시대의 마한(馬韓)이 이성을 지키기 위해 전투를 벌이다가 백제에게 패망하였다 하며, 그 후 신라, 백재, 고구려의 접경지대로 잦은 격전이 있었다 한다. - 원산성 안내판 -

 

원산성 갈림길 삼거리 이정표.

 

 

좌측 능선을 따라 용포대 전망대 탐방 후 가게 될 우측 범등 방향 갈림길을 지나면, 

 

이내 제2전망대인 용포대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산행기에서 보았던 2층의 팔각정자인 용포대(龍浦臺)는 자취를 감추고 전망데크만 남아있다. 

 

이곳에 있었던 용포대(龍浦臺)라는 정자는 2020년 8월 장마로 인한 지반약화로 붕괴되었다는 설명판.

 

제2전망대(용포대)에서 본 회룡포 마을 조망.

 

 

용포대를 뒤로하고 범등 방향 갈림길로 돌아나와 문수지맥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앞쪽으로 낙동강을 건너 삼강주막으로 이어진 비룡교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용궁면 소재지쯤도 가늠되더니, 

 

이내 삼강앞봉이라고도 하는 범등에 도착한다.  

 

낙동강 건너편 삼강주막 방향.

 

<삼강주막(三江酒幕)>
삼강주막은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낙동강 본류의 남안에 위치해 있는 옛 주막,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옛 주막을 현대식으로 복원한 관광지이다. 이곳 삼강리는 금천과 내성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곳으로, 낙동강을 건너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던 삼강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조선 시대 주요 교통로였던 영남대로 구간은 아니지만, 1900년대까지 장날이면 하루에 30번 이상 나룻배가 다녔던 교통의 요지였다. 이곳에는 보부상과 사공들의 숙소가 있었고, 주막도 하나 있었으나, 1934년 대홍수로 주막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이 모두 떠내려갔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과거 삼강주막 사진을 볼 수 있다. 슬레이트 지붕에 흙벽으로 된 3칸 집 툇마루에 앉아 담뱃대를 물고 있는 마지막 주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속 500년 된 회화나무를 그 사진에서도 볼 수 있으므로 복원된 회화나무 아래 주막은 원래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현재 삼강나루터 자리에는 59번 국도의 4차선 삼강교가 지나고 있으며 이 사진은 그 다리 위에서 촬영한 것이다. 복원된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색함은 차치하고, 흩어져 있는 청색 플라스틱 의자는 봐주기 힘들다. 삼강주막에서 삼강교 다리를 지나 용궁면 소재지를 거쳐 회룡포로 갈 수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 있을 낙동강 상류 방향. 

 

 

나무가 앞을 가려 별반 조망이 없는 범등 전망대를 뒤로하고 좌측 비룡교 방향으로 내려서면, 

 

등로는 낙동강을 건너 삼강주막으로 이어진 비룡교가 보이는 낙동강변으로 이어져,  

 

낙동강을 건너는 비룡교에 올라서게 되는데, 원래의 계획은 비룡교를 건너 삼강주막에서 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나와 의자봉 방향으로 진행하려 하였으나, 날씨가 매섭고 칼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비룡교 제1전망대까지만 다녀오기로 한다.  

 

 

이 비룡교는 회룡포에서 용포마을 뒤편 사림재를 넘어 삼강주막을 연결하여 관광활성화를 위해 56억 원을 들여 길이 280m, 폭 5m로 2012년 8월에 준공한 다리로, 

 

비룡교에는 두 개의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앞쪽의 제1전망대를 잠깐 올라보기로 한다.

 

비룡교 제1전망대에서 본 낙동강 상류 하회마을 방향.

 

하류 방향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앞쪽으로 보이는 삼강교가 지나는 지점에서 회룡포를 휘감아 돌아오는 내성천이 합류하는데, 내성천은 낙동강에 합류하기 직전 문경의 대미산에서 발원하여 산양면을 경유하여 흘러온 금천을 합하여 낙동강에 합류하게 된다.

 

범등/삼강앞봉 방향.

 

사림골과 의자봉 방향.

 

삼강주막 방향.

 

 

'비룡교 제1전망대'를 뒤로하고 사림골 입구로 돌아나오니 문수지맥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사림재로 이어지는 사림골 방향의 등로를 두고 우측 강변으로 이어진 등로를 따르면, 

 

의자봉으로 이어지는 등로 들머리가 나온다. 

 

 

의자봉을 향해 데크목 계단길을 오르면, 

 

등로는 우측에 낙동강을 두고 절벽 위로 이어져, 

 

남쪽 방향 능선이라 그런지 칼바람이 잦아든 능선길을 오르게 되고, 

 

이내 '의자'가 있다고 의자봉이라 부르는지도 모를 의자봉에 도착한다. 

 

근처에 마을도 없는데 이런 작은 봉우리에 '의자봉'이란 어엿한 이름이 붙은 것은 아마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봉우리에 벤치를 만들고서 '의자봉'이란 명칭을 붙이지 않았나 짐작해 볼 뿐이다.

 

의자봉 의자에서 내려다본 낙동강과 삼강주막 방향.

 

 

의자봉을 뒤로하고 울창한 송림숲길을 따라 내려서면, 

 

안부로 이어진 등로는 바로 앞쪽 봉우리로 이어지지 않고 우측 사면으로 이어져, 

 

우측 골짜기로 내려서는가 싶더니, 

 

바로 빼곡한 소나무숲 능선 오름길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오르면, 

 

돌탑을 쌓아 놓은 봉우리라서 '적석봉'인지 유래를 알 수 없는 적석봉(積石峰, 256m)에 도착하는데,

적석봉은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 낙동강과 내성천 사이에 자리한 봉우리다. 

 

 

적석봉을 뒤로하고 잠시 내려서면, 

 

사림봉 갈림길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은 하산길에 가게 될 용포마을 방향이고 사림봉은 우측으로 가야한다. 

 

 

갈림길 삼거리에서 우측 사림봉 방향으로 접어들면, 

 

좌측 내성천과 회룡포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쉼터가 있고, 

 

호젓한 능선 오름길을 오르면, 

 

전망대와 작은 정상석이 있는 사림봉 정상에 도착한다. 

 

<사림봉(士林峰, 256.2m)>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에 있는 산으로, 정상부의 전망대에서는 내성천이 휘감아 도는 회룡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내성천 상류 방향으로는 조망이 빼어난 학가산이 조망된다. 

 

사림봉 정상 전경.

 

회룡포가 시원하게 조망되는 세번째 전망대인 사림봉 정상부의 전망데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회룡포와 내성천 조망.

 

 

사림봉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서면, 

 

적석봉 갈림길 삼거리에서 우측 용포마을 방향으로 들어서고, 

 

급경사의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등로는 울창한 송림숲으로 이어지더니, 

 

편평한 안부를 지나 제법 널찍한 수레길 수준의 완만한 등로가 이어지고, 

 

이내 좌측 삼강리와 우측 회룡포를 잇는 고개인 사림재에 도착하여 우틀하여 용포마을로 내려간다. 

 

 

용포마을 방향 급경사의 임도로 들어서면,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내성천이 내려다 보이고, 

 

임도를 두고 우측의 지름길로 들어서서 내려서면, 

 

용포마을 뒤편으로 내려서서 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용포동(龍浦洞)>
본래는 구읍면(舊邑面)에 속하였던 마을이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지보면 마산리(知保面 馬山里)에 편입된 마을이다. 삼용득수형국(三龍得水形局)이라는 이 마을 뒷산이 비룡산(龍飛山)이니 용궁현(龍宮縣)의 용비산(龍飛山) 아래 있는 용포동(龍浦洞)이다.

 

용포마을 뒤편 이정표.

 

마을 우물.

 

오지 마을인 용포마을에 전기를 끌어들인 장석도선생공적기념비.

 

제2뿅뿅다리 안내판. 

 

<뿅뿅다리>
기존에 놓여 있던 노후된 외나무다리 대신 1997년 예천군에서 강관과 철발판을 이용해서 다리를 놓았다. 그 후 마을주민들이 이 다리를 이용하면서 발판 구멍에 물이 퐁퐁 솟는다 하여 '퐁퐁다리'라 불렀으나 98년도 신문 및 방송에 '뿅뿅'으로 잘못 보도가 되었고, 이 이름이 더 많이 알려져 지금의 뿅뿅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용포마을 앞 이정표.

 

회룡포 마을 조망.

 

내성천 상류 방향.

 

제2뿅뿅다리가 있는 내성천 하류 방향.

 

 

용포마을 앞 제방에서 내성천을 건너는 제2뿅뿅다리로 진행하면, 

 

옛날 섭다리 형태의 좁은 다리로 들어서서 맑은 물이 흐르는 내성천을 건너게 되고, 

 

옛날에는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건너기도 하고 물이 불어나면 나룻배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그 후 외나무다리나 섶다리를 만들어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돌아본 용포마을. 

 

내성천이 휘감아 돌아나가는 회룡포 마을로 들어선다. 

 

우측 회룡포마을 뒤편 산책로 방향.

 

좌측 회룡포마을 앞쪽 강변 산책로 방향.

 

 

오늘은 회룡포 마을 초행길이라 마을 안쪽을 통과하며 들러보기로 하고 마을길로 들어서서, 

 

회룡포 마을을 통과하면 다시 내성천을 건너는 제1뿅뽕다리 입구에 도착한다.

 

제1뿅뿅다리가 놓인 내성천 건너편 회룡포 주차장 방향.

 

 

회룡포 마을을 뒤로하고 제1뿅뽕다리를 건너, 

 

내성천 상류 비룡산 방향.

 

내성천 하류 방향.

 

내성천 상류 방향.

 

돌아본 회룡포마을 방향.

 

강둑을 올라서니 차를 주차해 놓은 회룡포 주차장이 보이고, 

 

회룡포 주차장에 도착하여 회룡포와 비봉산 트레킹을 마친다.

 

 

용궁면의 유명 원조 식당은 아니지만 현지분의 추천을 받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귀갓길에 오른다.

 

회룡포를 다녀온 어느 분의 산행기를 읽고 부담 없이 설렁설렁 걸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걸어보니 국내외 어느 트레킹 코스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매서운 날씨의 방해로 원산성과 삼강나루를 둘러보지 못했고, 주변 경관과 자연을 음미하고 느끼며 걷지도 못했다. 훗날 꽃피는 시절이나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는 시절에 다시한번 걸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