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장소 : 영산기맥 8차(옥산고개~대곡마을) 전남 함평군, 무안군.
산행일시 : 2023. 02. 25.(토)
산행코스 : 옥산고개 ~ 중봉 ~ 86봉 ~ 흑룡마을 ~ 100봉 ~ 산음고개(815지방도) ~ 신틀봉(기산봉갈림길) ~ 신틀재 ~ 곤봉산 ~ 팔바위 ~ 제비산 ~ 작동고개(811지방도) ~ 서해안고속도로 ~ 165봉 ~ 226봉 ~ 금곡봉(230.7m) ~ 감방산 ~ 감방재 ~ 현화봉(187m) ~ 도산재(24번국도) ~ 매곡육교(광주무안고속도로) ~ 봉대지맥분기점 ~ 60번지방도 ~ 병산(상봉산) ~ 뼈바위재 ~ 평용교차로(1번국도) ~ 대곡마을(구 1번국도) (22km, 8시간 반 소요)
산행참석 : 18 백두.
<산행지도>
영산기맥도 이제 함평을 지나 무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목포의 다순금이 멀지 않았는데, 오늘 구간을 제외하면 두 구간만 남아 3월말이면 그 끝을 맺게 된다. 지난 산행이 비산비야(非山非野) 구간으로 어디가 영산기맥인지 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딱딱한 포장도로를 걸으며 많이 투덜거렸는데, 이번 구간은 더러는 잡목과 가시 구간을 통과하여야 하면서 길이 없어지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 양호한 등로가 많은 편이고, 이번에는 어엿한 정상석이 자리한 산에 올라 주변의 너른 들판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도 있어서 산행에 대한 새로운 기대가 부풀어 오르는 구간이다.
다만 겨울철이라 그런지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회원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짧지않은 산행거리 때문에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을 위해 우회로를 마련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하고는 산행일을 맞아 양제에서 산행버스에 오른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금요일 밤에 산행버스에 오르려면 걱정이 앞섰는데, 요즘 배정되는 기사님들은 거의 카레이서 수준이다. 서해안고속도로 함평 IC 부근에 있는 산행 출발지에 3시 반은 넘어야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최악의 식당으로 바뀐 영심이네백반집 마당에 도착한 버스에서 거의 두어 시간의 쪽잠을 더 청하다가 총무님의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버스가 옥산고개 부근에 있는 영심이네백반집 앞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아무리 잠을 청해도 쉬이 잠들지 못하다가 겨우 잠이들었나 싶었는데, 갑자기 울린 알람소리에도 쉬이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이다 일어나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그런데 아직 출발 예정시각인 5시까지는 아직 10여분 이상이나 남았는데도 먼저 준비를 마친 분들이 버스 밖에서 재촉하는 상황이라 대충 배낭을 메고 버스문을 나서자마자 기록사진도 남기지 못하고 바로 옥산고개 들머리를 향해 출발한다. 아마도 다른 분들도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있다가 그냥 산행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출발하자고 재촉하는 듯하다.
23번 국도변의 영심이백반 앞 주차장을 출발하여 양림교차로에서 우틀하여 주포항으로 이어지는 주포로를 따르면,
영산기맥 여덟번째 산행 들머리인 옥산고개에 도착하여 좌측 녹색 철망문이 달린 농로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하는데,
<옥산고개>
함평읍 옥산리에 있는 고개로 811번 지방도가 지난다. 고개 정상에는 허물어져가는 인동장씨 재각이 있고 ‘仁洞張氏世葬山(인동장씨세장산)’비가 서 있다. 옥산마을은 옛날에는 마을 앞에 연방죽이 있어서 '방죽안'이라 불렀으며 동쪽 300m 지점에 옥녀봉(玉女峯)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옥산동(玉山洞)'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은 김해김씨 문경공파 파조(派祖)의 9대손인 대기(大器)가 중종 29년(1534년)에 입촌 정착하였고, 현재 그 후손은 12호로 마을에서 제일 많은 씨족이다. 마을 앞 정자 옆에 조선버드나무라는 500여 년 된 고목 3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의 수령과 최초의 입촌 년대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버스 정류장의 '옥산제' 표지는 이곳에 200여 미터 떨어진 저수지 명칭이다.
'재 령(嶺)' 자가 아닌 '방죽 제(堤)' 자를 쓰는데 많은 산꾼들이 옥산재로 인식하곤 한다.
그냥 도로인듯한데 철망문까지 달려있어서 마치 남의 집으로 무단침입하는 찜찜한 기분으로 농로를 잠시 따르다가,
두번째 'ㅏ자'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려는데 산행기에서 보았던 앞쪽 모퉁이의 주택은 철거되어 잔해만 남은 상태이고,
잔해만 남은 집터 우측 밭 가장자리로 들어서서 앞쪽 숲으로 진행하면,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거칠기는 하지만 구분이 가능한 제법 뚜렷한 숲길이 이어지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자 우전방 함평읍 장교리 방향 야경 너머로 감방산쯤이 가늠되더니,
이내 작은 소나무 둥치에 '중봉(134.5m)' 산패가 걸린 중봉 정상에 도착한다.
<중봉(中峰, 134.5m)>
전남 함평군 함평읍 진양리, 옥산리, 대덕리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정상은 숲으로 덮여 있어서 별다른 조망이 없으나, 정상을 조금 벗어나면 나오는 암릉에 서면 주변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옥산고개에서 영산기맥길을 따라 오르면 직진 방향으로 뚜렷한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이 길은 중봉 동편 기슭의 고양마을로 내려서는 하산로이므로 알바에 주의해야 하고, 영산기맥길은 삼각점과 산패가 걸린 정상을 지나며 바로 직우틀하여 다소 희미한 등로를 따라 암릉길로 내려서야 한다.
중봉 정상에서 내림길 들머리를 찾느라 잠시 혼선을 겪다가, 삼각점이 있는 정상부를 지나며 우틀하는 희미한 등로를 따르면,
이내 내려서야 할 바위 암릉 위에 서게 되는데 앞쪽 옥산리 흥룡(興龍)마을 가로등 불빛 멀리로 가야 할 감방산쯤이 가늠되고,
<함평읍 옥산리 흥룡(興龍)마을>
마을 형국이 마치 '용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모양 같다' 하여 마을 이름을 '흥룡(興龍)'이라 했다고 하나, 용촌의 원명(原名)인 흥촌(興村)과 관련지어 방앗간이 흥하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짐작된다. 이 마을에는 조선 선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를 지낸 박응주가 1581년(선조14년)에 아들 대봉(大鳳), 대린(大麟) 형제를 데리고 이주 정착하였고, 현재도 그 후손이 주를 이루며 살고 있다. 대봉의 7대손 우성이 식목한 소나무 2그루가 현재 당산나무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데 둘레는 5m가 넘는다.
그리 가파르지는 않으나 어둠 속이라 매인 로프를 잡고 암릉을 내려서면,
거칠지만 비교적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너른 밭이 나오고,
밭을 가로질러 커다란 축사 뒤편 도로에 접속하여 우측 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시멘트포장도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영산기맥길은 직진 방향의 85.2봉을 올랐다가 좌틀하여 흥룡마을로 이어지게 된다.
많은 산꾼들이 이곳 갈림길에서 직진 방향의 85.2봉을 생략하고 바로 좌측 200미터 지점의 흥룡마을로 진행하여 영산기맥을 이어가게 된다. 우리도 대부분의 분들은 갈림길에서 좌측 흥룡마을로 진행하여 기다리기로 하고, 한사코 영산기맥 능선을 확인해야만 하는 네 사람만 직진 방향의 시멘트 포장농로를 따라 85.2봉으로 향한다.
영산기맥 능선을 확인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안내를 마다할 수도 없는지라 함께 포장농로를 따라 오르다가,
'Y'자 갈림길에서 좌측 시멘트포장 농로를 따라 오르다가 우측 수레길로 들어서서 묘지를 지나 오르면,
이내 표지기가 한두개 걸린 85.2봉에 도착하여 인증을 남기고,
좌틀하여 희미한 편백숲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축대를 쌓아 조성한 남양홍씨세장산 비가 있는 묘역을 통과하여 내려서고,
우측 묘지길을 따라 진행하여 포장농로에 접속하며 우측 농로를 따라 진행하면,
흥룡마을 앞 갈림길에 도착하게 되는데, 약 15분쯤 전 85.2봉 가는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지름길로 와서 기다리기로 했던 분들이 기다리지 않고 그냥 진행하였는지, 아무도 보이지를 않는다. 기맥 대신 지름길 농로를 따라오면 약 200m, 3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데, 영산기맥은 'ㄷ'자 형태로 약 950m 정도 이어져 이곳 흥룡마을을 지나게 된다.
<함평읍 옥산리 흥룡(興龍)마을>
마을 형국이 마치 '용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모양 같다' 하여 마을 이름을 '흥룡(興龍)'이라 했다고 하나, 용촌의 원명(原名)인 흥촌(興村)과 관련지어 방앗간이 흥하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짐작된다. 이 마을에는 조선 선조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를 지낸 박응주가 1581년(선조14년)에 아들 대봉(大鳳), 대린(大麟) 형제를 데리고 이주 정착하였고, 현재도 그 후손이 주를 이루며 살고 있다. 대봉의 7대손 우성이 식목한 소나무 2그루가 현재 당산나무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데 둘레는 5m가 넘는다.
좌측 지름길 농로 뒤편 어둠속으로 가늠되는 중봉의 형체.
돌아본 85.2봉 방향.
은근히 풍겨오는 축사 냄새를 맡으며 직진의 포장농로를 따르다가 2차선의 포장도로(돌머리길)에 접속하여 우틀하면,
도로 우측에 밀양박씨세척비가 세워져 있고,
도로를 따라 100여 미터 진행하다가 좌측 밭두렁으로 들어서서 진행하면,
길게 이어진 축사 울타리를 따라 진행하게 되고,
축사 앞에서 다시 도로에 접속하여 좌틀에 이은 우틀로 직진 방향의 능선 포장농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져 산기슭 아래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우측 산기슭 밭으로 들어서서 오르다가 묘지를 지나고,
잡목들의 저항이 심한 오름길을 오르면 뒤쪽으로 지난 구간에 지났던 영태산과 잠시 전에 지나온 중봉이 가늠되더니,
희미한 능선 등로조차 잡목에 묻혀 보이지 않는 101.2봉 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마침 좌측 능선에서 흥룡마을에서 기다리지않고 먼저 간 분들의 렌턴 불빛이 잡목을 헤치고 다가와 짧은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는 함께 우측 능선을 따라,
빼곡한 잡목숲 능선을 200여 미터 진행하니 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101.2봉에 도착하게 되는데, 기맥길은 이곳에서 좌틀하여 815번 지방도가 지나는 산음고개를 향해 내려서게 된다.
<101.2봉>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에 산불이 났었는지 폐산불감시초소 주변이 온통 어린 소나무와 잡목이 빼곡하다. 서쪽 함평천지휴게소 방향 아래로 장교리의 자명제(自明堤)가 내려다 보인다. 이 봉에서 직진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영산기맥 능선으로 보이나, 좌측의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는 잡목 숲으로 내려서야 한다.
직진의 남서쪽 감방산 방향.
감시초소에서 바로 좌틀하여 길이 없는 사면으로 들어서면, 잎사귀 하나하나가 바늘인 노간주나무와 잡목이 뒤섞여 지나기가 무척이나 어렵고,
가끔씩 나타나는 표지기에 용기를 얻어 철조망이 얽혀있는 지하 터널 같은 숲길을 개척하다가,
빼곡한 노간주나무 숲에 백기를 들고 좌측 사면으로 진행하여 앞쪽으로 가야 할 신틀봉이 가늠되는 임도에 내려서고, 기맥능선과 같은 방향인 우측으로 폐 임도를 잠시 따르다가,
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져 기맥능선과 멀어지는 지점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 희미한 숲길을 따르면,
우측의 대형 공장 건물과 나란히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따라 내려서게 되고,
산음고개 직전의 묘지에서 잠시 배낭을 내리고 긴장의 끈을 늦춰 본다.
오늘 최악의 난코스도 지났고 이제 날도 밝았다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밭을 가로질러 '함평군 양념채소 사업장'과 민가 사이로 진행하니,
2차선의 815번 지방도가 지나는 산음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산음고개>
함평읍 대덕리와 장교리를 잇는 2차선의 포장도로인 815번 지방도가 지난다. 고개 이름은 우측 장교1리 산음마을에서 따온 듯하고, 산음은 앞산이 해를 가려 해가 늦게 뜨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여시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장교리 산음마을>
풍수지리학상 현재의 산음은 가야금의 몸통이라 하여 금동골이었다. 이 금동골은 구전해오면서 금동굴, 금덩굴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후에 공식명을 산음(山陰)으로 표기했는데(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도 山陰으로 표기됨) 마을 바로 앞에 있는 산 그림자에 가려 해가 늦게 뜬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원래 이 마을은 경주이씨 대운(大運)이 1680년경에 개촌 했으나, 풍수지리학상 이 마을이 경주이씨 터가 아니라하여 이웃 칠언으로 이거하였고, 이어 함평이씨 유신(儒臣 1705~1752)이 1720년경에 이거 정착했으며, 그 뒤를 이어 정성화(鄭成和)가 입촌했는데 그 후손은 현재 한 집도 살지 않는다. 그 뒤를 이어 120년 전에 진주강씨 병운(炳運), 평산신씨 경국(敬國), 광산김씨 행서(行西)가 입촌했고 90년 전에 도광김씨 제옥(濟玉)이 들어와 살았다.
돌아본 산음고개 날머리에서 도로를 따라 산음마을 방향의 지름길로 멀어져 가는 백두들.
지난 구간에서 영산기맥 능선이 어디인지도 모르며 도로를 따라 우회하곤 했던 기억이 남아 있던 차에, 오늘 걸어야 하는 산행 거리도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아서인지 많은 분들이 산음고개에서 곤봉산을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 바로 작동고개로 진행하겠다며 멀어져 간다.
다수 분들이 우회길로 가고 영산기맥을 밟아야 하는 꾼들만이 산음고개 건너편의 밭을 가로질러 숲길로 들어서면,
좌측 대덕리 대천마을 방향.
<함평읍 대덕리 대천(大泉) 마을>
대천마을에는 샘이 둘 있는데 하나는 식수샘이고 또 하나는 약수샘으로 시원하기 이를 데 없는지라, 이 샘물을 마신 환자가 병이 나았다 하여 외지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고 한다. 물이 찬 샘이라 해서 한샘(寒泉, 발음 한삼)이라 했는데, 그 후(1789년 호구총수지명) 큰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대천(大泉)으로 표기되었으며, 마을 앞에 있는 한샘 방죽은 함평군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가운데 하나로 방죽 바로 앞의 밭 가운데에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데 이곳에 서현내면사무소가 있었다. 서현내면사무소는 1906년 동현내면과 서현내면이 합쳐 기성면(箕城面)이 될 때 기각리로 옮겨져 함평면이 되었다.
현재의 마을에서 500m 가량 떨어진 '꾸서기'라는 곳에 광산김씨가 살았는데, 조선 명종 때 함평이씨 영(嶺)이 해제 칠금(七琴)에서 처가살이를 와 터를 잡았다고 한다. 임진란 때 행주산성에서 전공을 세우고 순국한 이우춘(李遇春)이 이 마을 출신이며 마을에 맨 먼저 입촌(入村)한 이령(李嶺)의 아들이다.
이내 앞을 가로막는 빼곡한 시누대숲을 좌회하여 지나고,
제법 뚜렷한 능선 오름길을 따라 오르면,
새로이 전망데크가 설치된 신틀봉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기맥길은 우틀해서 내려서야 하지만 직진 100여 미터에 있는 신틀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신틀봉갈림길 이정표.
함평읍의 기산봉으로 이어지는 직진의 능선길을 따르면 바로 신틀봉 정상이 나온다.
<신틀봉(170.3m)>
전남 함평군 함평읍 대덕리, 장교리, 내교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신틀재 위에 있는 봉우리여서 신틀봉이라 부르는 듯하다. 신틀봉은 지형도에는 표기되지 않은 봉우리로 산경표에 표기된 지명이다. 봉우리 한켠 나무에는 서래야 박건석님의 코팅지가 걸려있고, 블럭으로 만든 교통호와 군참호 진지가 있다.
신틀봉 정상 인증.
신틀봉 갈림길의 전망데크에서 군유산 방향을 배경으로.
북서쪽 주포항 방향.
북쪽 새벽에 지나온 중봉 방향.
북동쪽 고산봉 방향.
모처럼 멋진 조망을 선사받은 전망데크를 뒤로하고,
신틀봉 갈림길로 복귀하여 곤봉산 방향 내림길로 들어서면,
우전방으로 가야할 감방산이 조망되고,
나무계단길을 잠시 내려서면 이정표와 설명판, 벤치가 있는 신틀재를 지난다.
<신틀재>
신틀재는 함평군 함평읍 장교리 산음마을에서 내교리 대화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미투리나 짚신을 삼을 때 박히는 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기둥에 '신틀재' 표시가 있는 이정표를 보니 곤봉산 0.7km, 기산(신틀봉) 2.1km로 표시되어 있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에서 약2.1km 거리에 있는 기산초등학교 뒷산(기산봉)을 이곳에서는 신틀봉으로 부르는가 보다.
신틀재 이정표.
이정표 옆의 '추억으로 가는 길' 안내판.
<이정표 옆의 "추억으로 가는 길" 안내판>
산음마을에서 신틀재를 거쳐 함평초ㆍ중학교를 다녔던 길로, 일제시대 때 개교된 함평초등학교는 올해로 101년이 되었으며, 많은 주민들도 이 길을 따라 5일장과 읍내 일을 보러 다녔던 추억의 길이다.
▶ 신틀재 : 짚신 삼을 때 꼴박는 것 같이 생겼다고 신틀재라고 함.
▶ 산음마을 : 산음(山蔭)이란 마을 바로 옆에 있는 산그림자에 가려 해가 늦게 뜬다는 뜻이 담겨 있음.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김소월-
그리운 마음은 쉬이 감춰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그리운 얼굴이 떠오르면 그 순간들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기에,
그래서 우리는 너나없이 그리움을 차곡차곡 쌓으며 살아갈 밖에!
신틀재를 뒤로하고 급하지 않은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이후 곤봉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완만하게 이어지며 거의 신작로처럼 잘 정비되어 있다.
좌측 함평읍 방향 멀리 산그림에 아침해가 모습을 드러내고,
곤봉산이 320m 남았다는 이정표와 벤치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 서니,
북서쪽 돌머리해수욕장 방향으로 조망이 트이고,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점점 커지는 아침해를 카메라에 가두는 사이에,
사각 정자와 체육시설이 설치된 곤봉산(192.4m) 정상에 도착한다.
<곤봉산(坤峯山, 190.4m)>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장교리, 내교리, 수호리의 경계에 자리한 산으로, 정상석과 삼각점, 사각정자, 이정표, 운동시설, 곤봉산 설명판이 잘 정비되어 있고, 이어갈 초동마을/함평골프고 방향으로 가야 할 감방산이 조망된다. 영산기맥은 올라온 방향에서 우틀하여 초동마을방향으로 이어진다.
곤봉산의 유래가 적히 정상석 뒷면.
<곤봉산의 유래>
기산으로부터 낙맥이 혹은 높게 낮게 비비꼬며 이어져 천연의 미가 수려 단아하며, 학교면 쪽에서 보면 곤봉과 기산이 “일(一)“자를 이루고 있어 가히 큰 터를 감아 싸는 명산임을 보여주고 있다. 역경에서는 건(乾)은 하늘, 곤(坤)은 땅을 이르고 이를 지명으로 함부로 쓰지 않았는데, 곤덕(坤德) 즉 대지가 만물을 생육하는 힘을 의미하는 곤(坤)을 산명(山名)으로 쓴 데는 큰 까닭이 있었을 것이나 그 유래는 전하지 않고 있다. 함평의 지기(地氣)가 이 산에 뭉쳐 있다는 풍수설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산자락의 남동쪽에 있는 대화(大化)마을 터를 함평의 이름난 터로 손꼽는 것도 이에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곤봉산 안내판.
<관련 이야기>
곤봉산 지맥 아래로 대사동이라 하고 마을 안 골짜기를 한적골 또는 대사골이라 부르는데, 이곳에 이재혁 가옥의 육모정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보름 정도를 낮에는 토굴에서 밤에는 다락방에서 기거 육모정에서 남짓 머루른 곳이라고 한다.
<서산대사 시(詩)>
踏雪夜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힌 들판을 걸을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후인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백범 김구 좌우명)
곤봉산 정상에서 본 일출.
곤봉산 정상 인증.
곤봉산 정상 이정표에서 영산기맥은 초동마을 방향으로 이어진다.
동남쪽 나주 방향.
다음구간에 가게 될 연장산 방향.
찬란한 일출을 선사받은 곤봉산을 뒤로하고 우틀하여 초동마을 방향 완만한 내림길을 따르면,
좌측 함평초고와 유모사 방향 갈림길을 지나는데 이정표 기둥에 '팔바위'라 적혀있고,
<팔바위>
곤봉산에서 완만한 일반등산로를 내려서면 유모사 갈림길 삼거리인데 이정표에 '팔바위'라고 표시되어 있다. 좌측 아래에 함평천지 CC가 내려다 보이고, 영산기맥은 계속해서 직진 초동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팔바위 이정표.
좌측 함평천지 CC.
평지 수준의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 잠시 진행하면,
뚜렷한 직진의 내림길을 두고 우측 숲으로 들어서라는 표지기가 몇 개 걸린 갈림길이 나오는데, 만약 표지기가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뻔한 알바가 잦은 지점으로, 앞서 간 김 전무도 이곳에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따라 진행한 지점인데,
등로 우측 나무둥치에 '제비산' 산패가 걸려있고 지도에도 제비산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제비산(153m)>
전남 함평군 함평읍 장교리, 수호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제비산의 지명 유래는 찾을 길이 없다.
제비산에서 우측 희미한 등로로 들어서서 잠시 내려가면 좌측 나뭇가지에 표지기가 걸려있는데, 표지기가 걸린 좌측 방향으로 뚜렷한 등로는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발자국 흔적이 이어지는데, 이곳에서 영산기맥은 다시 뚜렷한 직진의 등로를 두고 좌측 희미한 길흔적으로 들어서야 하고,
희미한 족적을 쫓아 내려서는데 뒤쪽에서 "백두~"라는 외침에 대답을 하니 이내 앞서간 분들이 잠시 전의 'Y'자 갈림길에서 직진의 우측길로 알바를 하고 왔다며 뒤에서 나타나고,
잠시 희미한 숲길을 따르니 잘 단장된 묘지로 내려서게 되고,
영산기맥은 인터넷 지도에 '작동골'로 표시된 좌측의 너른 들판을 우측 조금 높은 지대를 따라 작동고개로 이어가게 되지만,
좌측 작동고개와 곤봉산 방향.
영산기맥 능선이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서 농로에 접속하여 작동고개까지 농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포장 농로를 따르다가 영산기맥은 직진의 양파밭으로 이어지지만 굳이 경작지로 들어서야 할 필요가 없어서 농로를 따라 좌틀하여 진행하면,
앞쪽 감방산 방향에서 뛰어오던 노루가 우리를 보고 놀라 좌측 작동골 방향으로 멀어져 가고,
앞쪽 약간 높은 지대가 영산기맥으로 보이는 'T'자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계속 농로를 따르면,
811번 지방도가 지나는 작동고개 직전 삼거리의 비닐하우스에서 산음고개에서 지름길로 진행했던 분들이 아침식사를 하라고 소리쳐 부르고,
겨울철 서늘한 바람을 막아주는 최고의 장소인 비닐하우스에서 편안히 아침식사를 한다.
지름길로 왔던 분들이 식사를 마치고 기다리는 터라,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맥길 산행에서 흔치 않은 비닐하우스 식당 기념사진을 남기고는 다시금 영산기맥 잇기에 나서니,
이내 811번 지빙도로변의 작동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는 작동고개가 나오는데, 기맥능선인 버스정류장 좌측의 구릉이 경작지로 개간되어 쓰이는 상태이고 그나마도 감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호남고속도로에 막혀있어서 진행할 수가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산꾼들은 811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좀 더 진행하다가 고속도로 밑을 지나는 지하통로로 고속도로를 건너지만, 우리는 기맥능선 직전 작동마을 버스정류장 옆 마을길로 들어서서 고속도로 지하암거를 통과하여 감방산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작동고개>
함평읍 장교리에 있는 고개로 2차선의 811번 지방도가 지나며 주위는 너른 들판에 농가들이 많다. 작동마을에 대한 자료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는데, 이곳이 작동고개이고 조금 전에 지나온 마을 앞산이 제비산인 점에 비추어 볼 때, 마을 이름에 ‘까치 작(鵲)’ 자를 쓰는 점으로 보아서 제비와 관련된 지명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서해안고속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면,
앞쪽으로 보이는 함평읍 장교리 월봉마을로 진행하여 마을 입구에서 좌틀하여 마을길을 따르고,
<함평읍 장교리 월봉마을>
원래 기성면(箕城面)에 속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교리에 편입되었고, 마을의 형국이 달의 형국이라서 "월봉(月峰)"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전의 장동(長洞)마을 까지를 합해 월봉이라 한다. 1789년 호구 총수의 지명에 월봉마을이 없는 것을 보면 그 이후에 형성된 마을임을 알 수 있는데, 입향조의 내력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이 마을의 개촌자는 전주리씨 량(樑 1798~1858)으로 1810년경 신광면에서 이거 정착하였으며, 이어 경주이씨 집호(集鎬 1864년생?)가 1870년경에 칠언에서 이주 정착한 후 1876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경주이씨 족보에 집호의 생년이 1864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20대에 문과 급제했다는 전언에 비추어볼 때 1854년(甲寅)생이 갑자(甲子 1864)생으로 잘못 오기된 듯하다.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 월봉마을로 들어서는 백두들.
경작지와 가옥이 들어찬 영산기맥 능선을 넘는 도로를 따라 '월봉 참고사리 농장' 앞을 지나서 계속 도로를 따르면,
돌아본 곤봉산 방향.
청색 저수조 앞에 이정표가 있는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길(감방산 정상 3.1km)은 감방산 일반등산로로 보이고, 영산기맥은 우측의 수레길로 이어진다.
직진의 우측 수레길로 들어서 오르다가,
앞쪽 능선 방향의 거칠고 희미한 숲길로 들어 점점 가팔라지는 오름길을 오르면,
제법 뚜렷한 등로의 흔적이 있는 능선에 접속하게 되고, 좌측 능선길을 따라 영산기맥이 이어진다.
거친 사면을 헤치며 힘겹게 능선에 오르는 백두들.
영산기맥 종주자들이 이 길로 다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거친 능선길을 따르다가, 잡목이 빼곡한 능선봉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진행하여,
다시 잘 정비된 등로가 이어지는 능선에 접속하여서는 다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진행하면 바위들이 자리한 능선봉우리를 지나게 되고,
앞쪽 봉우리 뒤로 가야 할 감방산쯤이 가늠되더니,
완만한 200봉쯤을 지나면서 좌측 함평 장교리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좌측 함평읍 만흥리 방향.
우측 함평만 방향.
완만하고 잘 정비된 능선 등로를 따르면,
바위 암릉 봉우리인 225봉쯤을 지나게 되고,
우측 현화리 방향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서 암릉에 오르면,
우측 함평만 방향으로 칠산대교가 더욱 뚜렷하게 조망되고,
감방산 등산 안내도가 설치된 금곡봉을 지나게 된다.
<금곡봉(230.7m)>
함평군 현경면과 함평읍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동쪽 아래 금곡마을과 금곡제(金谷堤)에서 그 이름을 따 왔다. 감방산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감방산 정상까지 1.1km로 표시하고 있다. 또한 안내판에는 감방산의 유래가 적혀 있는데, "아련한 보라색으로 보인다" 하여 붙여진 감악산이 원래 이름이다. 함평의 서남단에 위치하여 무안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아흔아홉 골짜기가 모자라 도읍터가 못되었다는 전설이 있다"라고 적고 있다.
감방산 등산로 안내판.
금곡봉 암릉에서 본 우측 함평만과 해제반도 방향.
좌측 함평 JC 방향.
금곡봉을 뒤로하고 완만한 안부를 지나 나무계단길을 오르면,
다시금 평온한 능선길이 이어지며 바다를 솟구치려는 고래 머리 모양 바위를 지나게 되고,
산불감시카메라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인 또다른 225봉쯤을 지나면,
감방산이 600m 남았다는 이정표 우측에 멋진 조망바위가 있는데,
함평 월야가 고향인 영규 형의 할아버지가 좋은 묏자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멀리 저곳 용산머리골까지 와서 땅을 사셨다는 전설을 들려준다.
남서쪽 무안공항과 현경면 방향.
서쪽 함평만과 해제반도 방향.
225봉 아래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지능선 분기점에서 직진의 능선을 두고 좌측 사면 방향 내림길로 내려서면,
겨울임에도 녹색의 잎사귀를 달고 있는 상록수가 무성한 안부를 지나서 감방산 오름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좌측으로 잠시 전에 지나온 곤봉산 방향이 조망되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헬기장으로 쓰임 직한 넓은 공터에 특이하게 생긴 정상석이 자리한 감방산 정상에 도착한다.
<감방산(坎方山, 257.5m)>
전남 함평군 함평읍과 무안군 현경면과 무안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여지도서』(무안)에 "함평 기산에서 뻗어 나와 고을의 으뜸이 되는 산줄기를 이룬다. 관의 북쪽 5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무안군지』에 "칠현산으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서 옛 읍의 북쪽으로 십오리이다. 현경의 동쪽 끝이다. 일명 감악산(坎岳山)에서 3가지로 나누어졌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면성지(綿城誌)』에 "면의 북쪽 15리에 있으며, 곧 면성의 주산이다. 함평 군유산(君遊山)으로부터 돌아 남으로 내려와 불쑥 솟아올랐다. 산의 좌우에 기암 괴석은 범이 싸우고 새가 나는 듯 하니 세상이 말하기를 선암(仙岩)이라 한다. 동쪽으로 극락사(極樂寺) 유지(遺址)가 있고, 또 용추가 있어 깊고 검어서 헤아릴 수 없다. 남쪽에는 현천(懸泉)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에 무안읍성 북쪽 함평현의 경계에 있는 감악산에서 산줄기가 뻗어내려 남쪽으로 연징산 · 승달산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감방산의 정상에는 용굴이 있는데 용이 하늘로 오르려다 못 오르고, 그 꼬리로 감방산 꼭대기를 쳐서 무너졌으며, 용은 이무기가 되어 칠산바다로 통하는 용굴로 사라졌다."고 한다. 무너진 흙더미가 계속 칠산바다를 메워서 감방산이 낮아지게 되었고, 바다 일부가 평야가 되었는데 이 평야를 경신평야라고 부른다. 감방산 정상에 용굴과 무재샘이 있어 가뭄이 들면 함평과 무안군민이 함께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서쪽 해제반도 방향.
서북쪽 함평만과 칠산대교 방향.
감방산 정상석.
동남쪽 서해안고속도로와 무안광주간고속도로가 교차하는 함평 JC 방향.
감방산 정상 인증.
감방산 정상을 뒤로하고 이정표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는 무안 도산마을 방향의 영산기맥길로 들어서면, 지금까지 함께한 함평군과 이별하고 좌.우 모두 오롯이 무안군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감방산 등산로' 표시판이 세워진 지능선을 두고 우측 아래로 내려서는 선명한 등로를 따라야 하고,
가이드로프까지 매인 급경사의 나무계단길이 이어지다가,
서쪽 해제반도 방향 조망이 트인 가족묘지를 지나고,
다소 완만하고 널찍하게 이어지는 묘지길을 따라 내려서면,
시멘트포장 임도가 지나는 감방재에 내려서게 되는데,
<감방재>
무안읍 매곡리 도산마을에서 현경면 해운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감방산에서 내려서는 날머리에서 좌측 고갯마루로 조금 오르면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 들머리가 나온다.
감방재 날머리 전경.
감방재 고갯마루에서 우측 감방산 들머리로 들어서면,
바위너덜 같은 벌목지대 가장자리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오르게 되고,
제법 가파를 오름길로 접어들어 잠시 오르면,
편평한 능선으로 접어들며 우측 해운리 방향의 갈림길이 나오고,
바로 체육시설과 벤치가 있는 공터를 지나서,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면 뭉툭한 봉우리에 몽돌이 깔린 듯 보이는 현화봉(187.0m)을 지나게 된다.
<현화봉(187.0m)>
무안군 현경면 현화리와 무안읍 매곡리의 경계에 자리한 봉우리로, 서쪽 현화리에서 이름을 따온 듯하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현화봉 전경.
내림길인지 오름길인지조차 구분이 안 되는 편안한 능선 등로를 따르다가,
직진의 능선 등로 좌측 방향 희미한 갈림길에 표지기가 걸렸다며 앞서간 분들이 기다리고 있는 능선분기점에서 좌틀하여 사면 방향 희미한 등로로 들어서서,
기다리던 손점장이 그럴줄 알았다며 희미하고 거친 내림길을 헤치며 나아가니,
앞쪽으로 조망이 훤히 트인 무안박공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아래에서 숲으로 들어 삼지사방으로 어지러이 흩어진 족적을 더듬어 진행하니,
또다른 무안박공들 묘지를 지나서 숲으로 들어서게 되고,
빼곡한 숲으로 덮인 능선에서 어지러이 얽혀있는 족적을 따라 헤매며 능선 마루를 따르니,
정면으로 평산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묘지가 나오면 다시 좌측 소나무가 빼곡한 능선 숲길을 더듬어 진행하고,
높은 철제 울타리가 둘러지 현경정수장 절개지 위에 서게 되는데, 통과가 불가능하게 보여 좌측으로 우회하여 진행하면,
정수장과 팔각정자가 있는 현경양수장 정수시설 울타리를 따라 빼곡한 소나무조림지를 지나게 되고,
천신만고 끝에 능선으로 오르면 다시금 제법 뚜렷한 등로가 보이고,
빼곡한 해송숲 작은 공터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잠깐의 쉼을 한다.
영산기맥 분실의 불안감은 말끔히 내려놓고 제법 뚜렷한 족적을 따르면,
말끔히 단장된 묘지를 지나게 되고,
이내 2차선의 포장도로인 24번 국도가 지나는 도산재에 내려서게 되는데, 영산길은 도로 건너편 숲으로 이어지지만 이내 다시 농로로 내려서게 되므로 그냥 능선 우측의 농로를 따라 우회하여 진행하기로 한다.
<도산재(道山峙)>
무안군 무안읍 매곡2리에 있는 도산재는 24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무안읍과 현경면의 경계능선에 있다. 고개 우측에 있는 도산마을의 유래는 마을이 도를 수양하는 곳이라 하여 '도산(道山)'이라 부른다. 마을에는 예전에 배가 닿았는데 배의 닻줄을 매었다는 소나무가 있고,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가 산봉우리를 헒으로써 용굴과 금굴이 생겼다는 얘기가 전한다.
원 기맥길은 고갯마루 도로 건너편 숲으로 들어서야 하나, 잡목 가시길이 이어져 통과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하여 편하게 현경양수장 맞은편으로 이어지는 '발산마을' 진입로를 따라 진행한다.
도산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도산재 들머리 전경.
현경양수장 진입로 맞은편 도로를 따르면,
좌측 밭 가장자리의 능선숲이 영산기맥 능선이고,
처음 보는 열매가 열린 나무의 이름을 놓고 난상토론도 펼치며 도로를 따르다가,
영산기맥 능선으로 이어진 'T'자 갈림길에서 우측 도로를 따르면,
좌전방 무안읍 방향으로 다음구간에 오를 연장산쯤이 가늠되고,
이내 무안광주간고속도로를 건너는 매곡육교를 지나게 된다.
돌아본 감방산 방향.
좌측 무안광주간고속도로 광주 방향.
매곡육교를 건너면 나오는 'Y'자 갈림길에서 우측 도로로 들어서면,
우측에 효부전주이씨기행비 뒤로 납골묘지로 보이는 특이한 형태의 대형 봉분이 자리하고 있고,
덩냄새가 은근히 패부로 스며드는 마을길을 따르면,
무안읍 매곡리 양림마을 뒤편의 봉대지맥 분기봉쯤이 건너다 보이고,
좌측 무안읍 매곡리 수반마을 방향 갈림길에서 기다리던 분들과 함께 우측 축사가 늘어선 도로를 따르면,
이내 봉대지맥 분기봉 앞에 서게 되는데, 봉우리를 지나는 등로가 없어서 좌측 밭으로 좌회하여 지나기로 한다.
<봉대지맥이란?>
신산경표의 봉대지맥은 영산기맥의 감방산(259m)과 병산(133m)의 중간 수반마을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봉대산(83.8m), 검무산(104m), 이성산(124m), 봉새산(197.1m), 대월산(104.8m)을 지나 무안군 해제면에서 신안군 지도읍을 마주보는 바닷길에서 그 맥을 다하는 36.3km의 맥길이다.
돌아본 수반마을과 보평산 방향.
제대로 된 등로가 없는 작은 봉우리와 밭이 이어지는 영산기맥을 좌측 양림마을 도로를 따라 우회해도 되지만, 굳이 보리가 심어진 밭 가장자리로 들어서서,
좌측 양림마을 방향.
봉대지맥 분기봉을 좌회하여 지나면 앞쪽으로 다시 작은 봉우리가 나타나고,
이번에는 숲이 우거진 봉우리를 우회하여 밭 가장자리로 들어서 진행하면,
따르는 밭 가장자리가 우측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하는 수 없이 좌측 숲으로 들어서 논두렁으로 내려서고,
논두렁과 도로를 지나 능선에 접속하여 희미한 밭 가장자리 등로를 더듬어 진행하다가,
다시 나타나는 무안박공 묘지를 지나 뒤쪽 숲으로 들어서면,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가 줄지어 도열한 고인돌길이 내려다 보이고,
농로를 따라 2차선의 고인돌길에 접속하여 좌측 무안읍 방향으로 진행한다.
멋진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가 도열한 고인돌길을 따라,
양림.수반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무안읍 매곡리(每谷里) 양림.수반마을>
무안읍 매곡리의 수반(壽盤) 마을은 옛날 어느 학자가 부근 다섯 개 산의 이름을 인용하여 오로대반(五老對艦)이라 하여 마을명을 수반(壽盤)이라 하였고, 바로 옆에 있는 양림(陽林) 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꾀꼬리 형국으로, 꾀꼬리는 버드나무로 집짓기를 좋아한다 하여 양림(陽林)이라 부른다.
다른 설(說)로는 양림마을은 마을이 형성되던 시기에 감방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옥녀봉과 임자봉이 소반을 받은 형국이라 하여 「반곡(盤谷)」이라 불렀으나 후에 매곡리로 개칭되면서 「양림(楊林)」으로 부르고, 수반마을은 신촌 서쪽에 있고 감방산을 중심으로 옥녀봉과 임자봉이 소반을 받은 형국이라 하여 「반곡(盤谷)」으로 부르다가 후에 「수반(水盤)」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어느 이야기가 맞든지간에 한자 표기가 다르므로 현지 주민들이 나서서 마을의 유래를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매곡 양림·수반 마을 버스정류장.
가로수가 메타세콰이아에서 벚나무로 바뀐 도로를 잠시 더 따르면,
앞쪽으로 가야할 병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우측으로 60번 도로 접속로가 분기되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직진의 도로를 따라 무안 성동리 고인돌공원으로 우회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좀 더 짧은 우측 60번 도로 접속로를 따라 무안스포츠 파크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무안 성동리 고인돌(務安 城東里 支石墓)>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 안골에 위치하였는데, 서해안고속도로 공사구간 내에 포함되어 1995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하여 이곳으로 이전ㆍ복원하였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큰 돌(上石)이 땅위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는 이를 바침 받침돌(支石)과 주검(屍體)이 놓인 네모난 무덤방(墓室)이 있다. 고인돌의 형식은 무덤방이 땅 위에 있는 북방식(卓子式)과 땅 밑에 있는 남방식(基盤式)이 있다. 이곳의 고인돌은 고인돌은 지상석관형 석실구조를 한 북방식, 받침돌로 고인 남방식 그리고 판석과 지석이 고인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용 형태를 이루고 있다. 또한 묘실을 강해 주거나 묘역을 나타내주는 기능인 적설 시설도 확인되었다.
따르던 고인돌길을 두고 우측 60번 도로 접속로를 따라,
4차선의 60번 지방도 지하통로를 통과하면,
무안스포츠파크 버스정류장이 나오며,
우측으로 무안스포츠파크가 내려다 보이고,
<무안종합스포츠파크>
2009년 말 준공된 무안종합스포츠파크는 총예산 520억 원을 투자 5만평 부지에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실내수영장, 골프연습장, 청소년수련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여러가지 체육관련 대회를 개최, 운영할 수 있도록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겨울철 전지훈련장으로 적합하여 전국 각지의 스포츠팀들이 훈련장으로 이용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스포츠파크 내 수영장과 골프연습장은 군민 건강증진에 기여하고 있으며 회원제로 운영되어 군 재정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무안군은 2014년 6월 이곳에서 전남체전을 개최하였으며, 이를 통해 체육시설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고 청정무안을 홍보하는 데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무안군청 주장)
60번 지방도로 접속로를 따르다가,
무안읍 방향으로 나란히 이어지는 농로를 따르면,
우측 병산 방향 영산기맥 능선으로 이어진 임도 들머리가 나오고,
영산기맥 능선으로 이어진 임도로 들어서서 잠시 진행하다가,
우측 묘지길 공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은은히 풍겨오는 가축덩 냄새를 맡으며 쉼을 한다.
미풍에 실려오는 소덩 냄새에 못 이겨 다시 남은 영산기맥길을 줄이다가 포장임도를 만나 우측 능선 방향의 임도를 따르면,
무안의 걷기좋은 숲길이 길게 이어지더니,
따르던 임도가 좌측 사면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정면의 상봉산(병산)을 우회하는 분들은 좌측 임도로 진행하고, 영산기맥을 밟아야 하는 이유를 가진 산꾼들은 정면 숲으로 들어 본격적인 상봉산(병산) 오름길을 오르게 되는데,
보기는 멋진 숲길로 보이지만 산행 후반에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산 높이에 비해 꾀나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체육시설까지 자리한 상봉산/병산 정상에 도착한다.
<상봉산/병산(上鳳山, 130.7m)>
무안군 무안읍 교촌리와 현경면 양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도상에는 병산(炳山)으로 표기되어있어 외지 산꾼들은 혼란스럽다. 상봉산의 지명유래는 산의 형상이 마치 봉이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상봉(上鳳)이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 때 상봉(上峰)으로 바뀌었다. 정상에는 운동기구와 조망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으며 삼각점은 자그마치 2개나 있는데 이정표는 없다.
상봉산 정상의 조망안내도.
상봉산/병산 인증.
정상의 조망안내도와는 달리 나무들의 방해로 별다른 조망이 없는 상봉산 정상을 뒤로하면,
이내 상봉산 정상을 좌회하여 오는 임도에 내려서게 되고,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르다가,
상봉산을 좌회하여 간 분들과 만나 함께 능선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지도상 교촌길로 표시된 포장도로가 지나는 뼈바위재에 도착하는데,
<뼈바위재>
뼈바위재는 전남 무안군 무안읍 교촌리 방죽안골과 무안읍 신학리 벼락골 사이의 고개지점으로, 지도상 교촌로로 표시된 포장도로가 지난다.
뼈바위재 날머리에 있는 상봉산(병산) 등산로 안내판.
뼈바위재 들머리는 도로 따라 좌측으로 조금 오르다가 좌측 숲으로 이어지는 수레길로 들어야 한다.
뼈바위재 들머리로 들어서면 상봉산 내림길에 걸어온 넓은 임도와는 달리 방치되어 잡목과 풀이 무성한 좁은 수레길이 이어지며, 잡목과 꺾인 나뭇가지가 있기는 하지만 지나기에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고,
무심코 진행하다가는 알바하기 딱 좋은 수레길을 두고 좌틀하여 가족묘지로 들어서면,
지도에 샛별농장으로 표시된 축사 너머 멀리로 다음구간에 오를 봉우리들이 가늠되고,
축사 좌측의 밭둑을 따라 내려가,
샛별농장 앞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내려서서 좌틀하면,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진다는 1번 국도와 무안읍과 평용리를 잇는 창포로가 교차하는 평용교차로를 지나게 된다.
<평용교차로>
4차선의 1번 국도와 무안읍과 평용리를 잇는 창포로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평용교차로 옆에 있는 평용 마을은 마을 뒷등이 용처럼 생겼다 하여 '평용(平龍)'이라 부르며, 198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안읍 평용과 청계면 삼노동을 통합하여 평용리라 하고 무안읍에 편제하였다. 청계면 태봉·청천·청수리와 같은 달성배씨들의 터전이었으며 이 마을에서는 위의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배회가 입향조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이 마을의 입향조는 그의 후손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는다. 이 마을은 장수촌으로도 유명하여 삼노동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영산기맥은 4차선의 1번 국도 아래로 통과하여,
우틀하여 '하늘과땅', '꿈여울농원' 입간판이 세워진 도로로 우틀하여 진행하면,
좌측으로 영농법인 '하늘과땅' 입구를 지나게 되는데,
좌측 하늘과땅 영농법인 뒤로 다음구간에 오를 무안읍의 남산과 연봉들이 조망되고,
우측으로는 무안국제공항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Y'자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도 금방 다시 만나게 되지만 우측 비포장 임도를 따르다가,
좌측 이동통신기지국 직전 갈림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담을 나누다가,
이동통신기지국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서면,
잠시 전에 헤어졌던 도로와 다시 만나 포장도로를 따르게 되고,
좌측 평용교차로에서 따르던 도로 방향.
능선으로 이어지는듯 보이는 포장도를 따르는데,
좌측 무안읍 방향으로 영산기맥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남산과 그 우측의 초당대학교 건물도 가늠되고,
숲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다가,
태양광발전단지가 있는 사거리에서 좌틀하여 진행하는데,
우측으로 다음구간 영산기맥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는 연징산과 시루봉이 조망되고,
다시 농가 옆 'ㅏ'자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면,
좌측으로 파란 보리밭이 눈길을 끌고,
남한의 농촌 풍경에 넋을 잃은 남파무장공비같은 모습으로 도로를 따르다가,
'T'자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는데,
경작지로 개간이 되었거나 능선이 남아있어도 등로가 없는 영산기맥을 좌측과 우측으로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구) 1번 국도가 지나던 대곡마을로 들어서는데,
<대곡마을>
전남 무안군 무안읍 성남리(城南里) 대곡마을의 원래 이름은 대동(大洞)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남산의 능선을 따라 연징산 골짜기를 홀러내리는 골이 크다 하여 대곡(大谷)이란 이름을 붙었다. 또 연징산 주변에 동삼이 있는 골짜기가 있다 하여 삼밭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좌측에 홍백기가 게양된 집은 '수정보살' 문패를 달고 있고,
옛 1번 국도에 접속하여 영산기맥길은 좌틀하여 도로를 따라 무안실버요양원 입구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영산기맥 산행을 종료하고 우측 대곡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버스로 향한다.
구) 1번 국도의 대곡마을 버스정류장.
횡단보도를 건너,
먼지를 털고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무안읍의 마지막 남은 목욕탕에서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고,
무안국제공항 인근의 망운면 바닷가 마을인 장재마을의 국헌횟집을 찾아,
모처럼 푸짐하고 여유로운 뒤풀이 시간을 즐긴다.
국헌횟집 앞 죽도 방향 조망.
이름도 특이한 곤방산과 감방산을 지나는 영산기맥 걷기를 마치고,
맛난 음식에 기분좋은 대화를 나누다가,
그 모든 것을 또 추억주머니에 갈무리하며 귀갓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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