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장소 : 영산기맥 7차(가는고개~옥산고개) 전남 함평군.
산행일시 : 2023. 02. 11.(토)
산행코스 : 가는고개 ~ 200봉 ~백운봉(186) ~ 노승산갈림길 ~ 건김재 ~ 172봉 ~ 수철리고개 ~ 옷밭골재 ~ 감적고개 ~ 153봉 ~ 144봉 ~ 석령고개 ~ 발봉산 ~ 장동고개 ~ 함평터널 ~ 149봉 ~ 함평생태공원 ~ 135봉 ~ 팔각정 ~ 3번 지방도 ~ 폐교(대신분교) ~ 23번 국도 ~ 학천마을 버스정류장 ~ 벽유마을 버스정류장 ~ 함평농공단지 ~ 금산교차로 ~ 함평고 정류장 ~ 함평IC 회차로 ~ 장년고개 ~ 영태산 ~ 옥산고개 (19.2km, 8시간 반 소요)
산행참석 : 16 백두.
<산행지도>
지난번 군유산 구간은 실로 오랜만에 경험한 심설산행이었고 무척이나 신선한 경험으로 남았기에 혹여 이번 구간에서도 눈을 밟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산행을 하는 주 후반에 비 예보가 뜨며 기온이 그리 높지않다면 산에는 눈이 내리지 않을까하는 섣부를 기대를 해 보았다. 하지만 평년보다 따뜻한 기온으로 비가 내렸는데, 등로가 젖어 있으면 먼지가 일지않아 그 또한 좋은 일이라며 전화선 저편에서 태평스런 낙관론을 펴는 분들도 있었다.
산행을 계획하며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읽어 보았는데, 이번 구간은 산길은 얼마되지 않고 들판을 가로지르거나 도로를 걷는 거리가 반 이상으로 보이고, 그나마 얼마되지 않는 산길 구간도 잡목과 넝쿨이 그득하여 무척이나 고생스러운 구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나 여러 산행기를 검토해 보아도 도무지 영산기맥 능선이 어디로 이어지는지조차 가늠이 안되는 구간도 있어서, 실제 현장에 가 보지않고는 짐작조차 안되는 구간으로 보여 무작정 걸어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해 보고 안되면 말지 뭐!" 라는 느낌이다.
산행 출발 지점인 가는고개 부근은 버스를 주차할만한 너른 공터가 없어서 지근거리의 손불면사무소 앞에 정차하였다가 산행 준비를 갖추고서 가는고개로 이동하기로 한다. 거의 3시 남짓에 손불면주민센터 앞 공터에 도착하였고, 2시간여의 쪽잠을 더 청하다가 5시에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한다.
근처에 면사무소와 주유소가 있어서 야외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호사도 누리며, 바쁠 게 없는 느긋한 손놀림으로 산행 준비를 마치고 5분 거리의 일곱 번째 영산기맥 들머리인 가는고개로 향한다.
산행 출발지인 가는고개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우측 묘지길로 들어서며 영산기맥 산행을 시작한다.
<가는고개(153m)>
함평군 손불면 대전리 가는골과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 너머들골 사이의 고개지점으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난다. 이곳에서 영산기맥길은 좌측 사면의 묘지로 이어지는 묘지길로 진행하게 되는데, 약 500m 정도 가다가 다시 가는고개 삼거리로 내려서야 하기에 그냥 2차선 도로를 따라 가는고개 삼거리로 바로 진행하기도 한다.
묘지길을 잠시 오르면 바로 김해김공 가족묘지를 지나게 되고,
묘지 우상단 능선으로 올라 잡목을 헤치며 내려서는데
밤안개 자욱한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커다란 괴목이 모두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묘지와 밭을 연이어 지나 내려서면
좌측 해안마을에서 가는고개 삼거리로 이어지는 포장도로에 내려서게 되고,
좌측 해안마을 방향.
우측 도로를 따라 50여 미터 이동하다가 가는고개 삼거리 직전 좌측 도로변 논가 길로 들어서는데,
이렇듯 밤안개까지 자욱하여 한치앞도 분간키 어려운데도 손불면소재지 방향에서 넘어온 자동차가 미심쩍기 그지없고,
좌측의 농로로 들어 전봇대가 있는 가는고개 삼거리 모서리에서 좌틀하여 농로를 따르다가 우측 과수원길로 들어,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보았던 야외 화장실 옆으로 이어지는 수레길을 따라 오르다가,
이내 수레길이 끝나는 지점에 걸린 표지기를 발견하고는 희미한 숲길로 들어선다.
등로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능선 위로 이어진 뚜렷한 족적을 따라 능선 위로 올라,
경운기가 지나다닌 듯 바퀴자국이 선명한 수레길을 따라 좌틀하여 능선길을 따르는데,
5분여의 짧은 오름길에 벌써 땀이 난다며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는 분들도 있고,
바퀴자국이 이어진 능선 등로를 따르니,
시멘트 벤치가 놓여있는 자그마한 공터봉인 202봉을 지나게 된다.
이 봉우리는 서래야 박건석님이 '백운봉상봉'이라는 산패를 걸어놓은 봉우리라는데, 어두워서 그런지 주위를 둘러보아도 산패는 보이지를 않는다.
낙엽이 푹신한 내림길을 내려서면,
지나온 202봉과 백운봉(180봉) 사이의 안부쯤인데 특이하게도 사자(死者)의 천년집이 자리하고 있고,
안부를 지나 호젓한 등로가 이어지는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봉우리 같지 않은 완만한 능선봉우리 나무둥치에 물통과 '준.희'님의 '백운봉(186m)' 산패가 걸려있다.
<백운봉(白雲峰, 186.0m)>
전남 함평군 손불면 대전리와 신광면 송사리의 경계에 자리한 능선봉우리로 정확한 유래는 찾을 길이 없다. 이곳에서 직진 방향은 노승산 가는 길이고 기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이 갈림길에서 좌 신광면 · 우 손불면으로 이어 오던 맥길은 온전히 손불면 안으로 들어서서 남향하게 된다.
<함평군 손불면(孫佛面)>
산세가 손자인 스님이 할아버지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자세(孫僧拜祖佛)라는 명당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함평에서 불교와 관계되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면이며, 함평군 서북쪽에 위치한 해안산간 평야지대로 남북으로 지방도 808호선, 동서로는 지방도 838호선이 국도 23호선과 연결 광주광역시와 영광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산물로는 뛰어난 맛과 미질을 자랑하는 간척지쌀과 함평한우, 우리 전통그대로의 비법을 재현해 만든 함평천지토속주, 입맛잃기 쉬운 여름철 식탁에서 입맛을 돋구는 엽삭젓 등이 있으며 게르마늄해수찜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효도관광지이다.
백운봉 정상 인증.
백운봉 정상에서 50여미터 진행하면 영산기맥이 우틀하여 이어지는 노승산 갈림길이 나오는데, 정밀지도를 보면 기맥은 앞쪽 봉우리로 올라 우측으로 이어지는 듯 보이지만 기맥꾼들은 이곳에서 바로 우틀하여 사면을 따라 진행하므로 우리도 편한 길을 따라 우틀하여 들어서면,
<노승산(老僧山, 262m)>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 대전리와 신광면 송사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군유산의 남동쪽 줄기로 이어지며 함평천이 발원하는 곳으로, 조선시대 사료에는 노승산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지지자료』의 손불면에 노승봉(老僧峰)이 응암리 뒤편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신광면 자료에는 노승산(老僧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해안리 동쪽에 있다고 되어 있다. 『조선지형도』(포천리)에 노승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옛날 어느 노승이 함평에서 옷밥골재를 넘어와 좋은 절터를 찾고 있던 중, 마을 뒤를 둘러싼 산의 형세가 좋아 보였으나, 자세히 지형을 살피더니 앞산마루에 화귀(火鬼)가 서려 있고, 저수지 동쪽의 뒷산 형국이 나빠 명당을 망쳤다고 탄식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노승은 노승산으로 올라가는 재에 이르러 앞산 마루를 쳐다보고 다시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울었다. 이후 이곳을 '중울음재'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사면으로 수레길 수준의 제법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이내 표지기가 여러개 걸린 영산기맥 능선에 접속하여 우측 능선을 따른다.
잡목이 빼곡한 능선길이지만 가끔씩 표지기도 보여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거친 능선길을 더듬어 진행하다가,
175봉쯤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내림길로 들어서고,
푸른 잎사귀를 달고 있는 사철나무까지 합세한 빼곡한 잡목숲 등로를 헤치며 내려서다가,
널찍한 수레길에 접속하여 좌틀하여 내려가면,
이내 보리밭 우측 가장자리로 이어진 수레길을 따르게 되고,
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 숲길로 들어 묘지를 지나 내려서면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건김재에 내려서게 된다.
<건김재>
함평군 손불면 동암리 도적골과 손불면소재지가 있는 대전리 건림재골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838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도로 좌측에는 ‘古阜李氏世葬山(고부이씨세장산)’비가 폐기물 야적장 안에 있다.
고개 이름은 우측 아래 동네인 손불면 대전리 저전(楮田) 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이 마을에는 본래 함풍이씨가 살았다고 전해오나 밝힐 자료가 없고, 1550년 경 나주임씨 임열(林悅)이 아들 첩(堞)과 함께 입향하였고, 1750년경 김해김씨(金海金氏) 김광재(金光載)가, 1790년경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중백(朴重伯)이, 1810년경 광산김씨(光山金氏) 김기채가 입촌하였다. 은곡(隱谷)과 저전(楮田) 마을로 분리되었으나 마을이 연결되어 있어 한마을이 되었으며, 지금은 "수문"이라 부르는데 "은곡(隱谷)"이 먼저 형성되었는데 '은선독서형국'이라 하며, 마을 동편에 닥나무밭이 있었기에 "동편" 또는 "저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 옆 나주임씨 선산을 풍산등이라 하는데 쥐혈이라서 자손이 번창한다고 하며, 임씨와 김씨 두 집안에서 대대로 인물이 끊이지 않고 석학을 배출시켜 외지에서는 두 성씨가 용호상박하는 실태라고 전해오며 김씨들이 건금재 밑에 「건금동천」이라는 표석을 세웠다.
건김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건김재에서 원 기맥길은 야적장 울타리를 따라 건너편 능선으로 올라 고부이씨 묘지가 있는 140봉을 돌아서 내려와야 하나, 도로 절개지의 들머리가 야적장 펜스로 막혀있어서 야적장 철문 옆으로 들어가 묘지로 가는 길을 따라서 기맥길을 이어가게 된다.
건김재 들머리로 쓰이는 야적장 철문 옆 틈새.
건김재 들머리의 「고부이씨세장산(古阜李氏世葬山)」비.
철망문 옆으로 들어서서 고부이씨 묘지길을 따르는데,
좌측으로 옛날 도적 때가 출몰했을 듯한 동암리 도적골이 내려다 보이며,
갈림길에서 우측 오름길 묘지 방향으로 진행하여 고부이씨 가족묘지 우측을 따라 위로 이어진 수레길을 따르고,
또다시 나타나는 가족묘지에서 위로 올라 숲으로 들어서면,
이내 제법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는 140봉 능선길에 접속하여 좌측 능선길을 따른다.
평지 수준의 능선길을 따르다가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면,
잡목들이 그득한 용흥봉(167.2m)쯤을 지나게 되고,
용흥봉에서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다시 올라서면,
잡목이 그득한 개념도상의 172봉에 도착하여 배낭을 내리고 착용했던 렌턴을 배낭에 갈무리한다.
야간에서 주간으로 산행모드를 바꾸어 172봉을 뒤로하면 낙엽이 수북한 평지 수준의 완만한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임도 수준의 넓은 수레길에 합류하여 우측 수레길을 따르면,
이내 공사현장인듯 황토흙이 드러난 사거리 안부인 수철리고개를 지나게 된다.
<수철리 고개>
고개 좌측은 손불면 죽장리 수철마을이고, 고개 우측은 손불면 신남리 용흥마을 지나 바로 손불면 바다다. 이곳에서부터 계속해서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기맥길을 이어가게 된다.
고개 좌측 아래의 죽장리 수철(水哲)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풍천임씨 임상문(任相文)이 입촌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1800년경에 전주이씨, 압해정씨, 광산정씨 등이 입촌하여 살고 있다. 손불면 자연마을 중 해발고도가 제일 높은 마을로, 남수철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하여 '수철동(水哲洞)'이라고 부른다는 전설이 있으나 고증할 자료는 없다. 이웃 죽장리의 죽사와 관련된 듯한 이름 모를 절터에 탑이 있었던 듯 마을 맞은편 탑골에서 기왓장과 토기 등이 발견되고 있으며, 풍수설에 전해오는 서출동유수(西出東流水)의 근원지이다.
수철리고개를 지나는 백두들.
수철리고개부터는 능선으로 이어진 비포장도로를 따르게 되는데,
도로는 주변 경작지를 오가는 농민들만 다니는지 무척이나 거칠고,
너른 양파밭 옆에 있는 간이 푸세식 화장실이 눈길을 끌며,
가뭄에 대비하여 작은 저수조도 만들어 놓았는데,
오래지않아 시비걸기 좋아하는 시민단체들이 가둬둔 물에 녹조가 발생하는지 검사하여 시위를 하게 될 듯 보이고,
이내 옷밥골재 직전의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전봇대를 끼고 우틀하여 진행하다가,
임도 좌측 숲길로 오르면,
제법 선명한 등로가 이어지는데,
능선 위로 이어진 희미한 등로를 따르다가 이동통신중계탑이 있다는 봉우리 직전의 희미한 'ㅓ'자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잡목들의 저항을 뿌리치며 내려서면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옷밥골재에 도착하게 된다.
<옷밥골재>
함평군 손불면 죽장리에서 산남리로 넘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이 고개를 한자표기로 식의동(食衣洞)이라고도 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골짜기이지만 물이 좋고 땅이 기름져 흉년이 드는 일이 없기 때문에 '옷과 밥은 걱정하지 않는다'하여 '옷밥골'이라 불리었다 한다.
특이한 이름의 옷밥골재에 도착하는 백두들.
옷밥골재 날머리 전경.
옷밥골재 도로 건너편의 옹벽 좌측 끝에서 밭 가장자리를 따라 묘지 뒤로 이어진 숲길로 오르면,
또다른 묘지를 지나 묘지 상단의 숲길로 들어서게 되고,
거칠지만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 잡목이 우거진 봉우리를 지나서,
희미한 족적이 이어진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좌측 죽장리 탑골에서 우측 산남리 진제골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에 내려서게 되고,
우측 10여 미터 지점에서 좌측 수레길로 올라,
함평군에서 설치한 손불면 수철지구 생활용수용 간이상수원취수탱크 좌측 희미한 숲길로 들어선다.
잡목과 덤불이 뒤섞인 희미한 등로를 더듬어 완만한 오름길을 따르다가,
잡목 가지에 표지기를이 여기저기 걸려있는 봉우리를 지나면,
희미하지만 잡목들의 테클이 잦아들어 걷기에 어렵지 않은 등로가 이어지며,
여름에 지난다면 그리 만만치는 않을 숲길을 겨울이라 다행이라 느끼며,
살아있는 나무와 죽은 나무들이 합작하여 만든 장애물들을 통과하는 사이에 시장끼가 몰려와,
우측 아래로 손불면 궁산리 묘동 뒷골 방향이 내려다 보이는 가족묘지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날씨가 추워서일까?, 아니면 평소보다 늦은 아침식사라서일까?
평소 30여분 소요되던 아침식사를 20여 분에 마치고, 묘지 우측 상단 숲길로 들어 영산기맥 잇기에 나서면,
이내 고개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널찍한 평지 나무둥치에 '감적고개' 표지기가 걸려있고,
<감적고개>
좌측 함평군 손불면 죽장리 성적골과 우측 함평군 손불면 궁산리 뒷골 사이의 고개지점으로 지금은 고개의 흔적이 잡목과 쌓인 나뭇잎에 묻혀버려 위치조차 가늠키 어렵다.
완만한 능선길을 잠시 더 오르면 잡목들이 빼곡한 감적봉(161.2m) 정상을 지나게 된다.
<감적봉(161.2m)>
함평군 손불면 죽장리와 궁산리 경계에 위치한 능선봉우리로, 지도에는 봉우리 명칭이 표시되지 않으나 서산 산꾼 '서래야 박건석'님이 '감적봉'이란 코팅지 표지판을 걸어 놓으면서 영산기맥 산꾼들이 감적봉으로 인식하는 봉우리다.
세상에는 본래부터 이름을 가지고 있던 봉우리는 없다. 누군가가 다른 봉우리와 구분하여 그리 부르기 시작하여 여러 사람에게 그리 인식되면 어엿한 이름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기에, 언젠가는 이 봉우리도 감적봉으로 지도에 표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감적봉에서 후미가 올라오기를 기다려 좌측으로 휘어지며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따르는데,
능선 구분이 어려운 밋밋한 숲에 안개까지 자욱하여 좌측 아래로 이어지는 족적을 따르다가 다시금 우측 능선으로 복귀하여,
낙엽 이불을 덮고 있는 묘지들 상단을 지나고,
능선 구분이 어려운 평지 수준의 편백숲에서 가끔씩 걸린 표지기에 의지하여 기맥 능선을 더듬다가,
그나마 능선 구분이 되는 완만한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표지기가 몇 개 걸린 개념도상의 144봉에 올라서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밋밋하지만 잡목이 그득한 능선길을 더듬어 진행하다가,
잡목 빼곡한 능선을 두고 좀 더 뚜렷한 족적을 쫓아 능선 좌측면을 따르는데 키 큰 노간주나무가 특이해 보이고,
완만한 내림길을 잠시 따르면,
좌.우로 옛길 흔적이 선명한 석령고개(95m)를 지나게 된다.
<석령고개(石嶺, 95m)>
좌측 전남 함평군 손불면 죽장리 죽사마을과 우측 죽암리 석령마을 사이이 고개로, 석령(石嶺) 마을은 발봉산 기슭에 있어 담골로 통하는 석현과 죽사동으로 통하는 석령재 밑에 있어 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석령(石令)이라 하였다.
손불면 죽암리 석령(石嶺)마을은 본래 박진사의 터로, 박진사는 큰 부자였으나 동학란 때 생계가 어려워지자 그 터를 광산김씨에게 팔고 이촌 했는데 그 후손의 종적을 알 길이 없다. 1790년경 양성이씨 중영(重英), 시광(始光) 부자가 죽사동에서 이주해 왔고 강릉유씨 일성(日成)이 입촌하였으며 뒤이어 광산김씨, 파평윤씨 등이 입촌하였다.
석령고개 표지기.
석령고개를 지나자 완만하던 능선길이 점점 가팔라지더니, 우측으로 벌목이 되어 편백나무가 조림된 지역으로 들어서자 등로가 잡목으로 뒤덮여 지나기가 무척이나 힘들고,
다소 완만해진 거친 벌목지대 틍선길을 따르면 우측으로는 벌목이 되어 조망이 좋을 듯한 발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발봉산(鉢峰山, 180.8m)>
함평군 손불면 죽암리와 죽장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손불면(孫佛面)인데 '바리때 발(鉢)' 자는 승가의 기물이라 하여 발봉산이라 불린다. 우측 방향이 벌목되어 조망이 트인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삼각점을 포함한 2개의 삼각점이 있지만 흔한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영산기맥 산꾼들의 산패와 표지기만 걸려있다.
이 발봉산은 산 아래 장동마을에 살았던 조선말기의 성리학자 김두삼이 고종과 마지막 왕인 순종임금이 승하했을 때 유생들을 데리고 발봉산에 올라와 망곡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장동마을에는 조선말기 성리학자인 영빈(穎濱) 김두삼(金斗三)의 강학소였던 영빈정사(穎濱精舍)가 있다.
발봉산 정상의 산패.
발봉산 정상 인증.
발봉산을 뒤로하고 등로가 좌측 장동마을 방향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우측 가드로프를 넘어 직진의 능선으로 들어서면,
안개가 끼지않았으면 조망이 좋았을 바위를 지나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게 되고,
가파르던 등로가 완만한 능선길로 바뀌더니 광산김씨들 묘지를 지나면,
빼곡한 시누대숲으로 이어진 뚜렷한 등로를 따라,
장동고개 절개지 상단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이동하여 철계단을 따라 내려서도 되지만 좌틀하는 등로를 따라 좌측 장동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면,
장동고개로 이어지는 시멘트포장 임도가 나오고,
이내 우측으로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장동고개에 도착한다.
<장동고개>
함평군 손불면 죽암리에서 죽장리 장동마을을 넘는 고개로, 200년 된 노거수 한 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으며. 발봉산으로 오르는 들머리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고개 좌측의 장동(墻洞)마을은 1960년 무렵의 전성기에는 130여 호로 손불면에서 제일 큰 마을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60여 호 되는 마을이다. 죽장리 1구를 등촌, 잿몰, 양지, 골몰로 나눌 수 있으나 통상 "담골(墻洞)"로 총칭한다. 담골은 발봉산과 계동산, 호두산, 우마산 등이 담장처럼 에워싸고 있어 담골이라 부른 듯하다. 1789년 호구총수지명을 보면 장동(墻洞), 장동양지(陽地), 장동등촌(登村)으로 표기하는 자연부락이다.
고개 좌측 장동마을 방향.
<장동(墻洞)마을>
장동(墻洞)부락에는 조선 말기 성리학자인 영빈(潁濱) 김두삼(金斗三 1844~1931)의 강학소였던 영빈정사(潁濱精舍)가 자리하고 있다. 정자의 현판을 석방(石邨) 윤용구(尹用求 1853년∼1939년. 문신·서화가)가 쓴 것으로 보아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지은 정자로 여겨진다. 정내에는 영빈정사상량문(穎濱精舍上梁文) 등이 현액되어 있다.
정자 주인 김두삼은 한말 우국지사(憂國之士)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학문적 경지와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 1887년(고종 24) 초시(初試)에는 합격하였으나, 조선 말엽의 매관매직 풍조를 개탄하며 과거를 단념하고 영빈정사(潁濱精舍)에서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몰두하며 후학양성에 전념 많은 제자를 배출하는 데 힘을 썼다. 그래서 그의 문집 영빈유고(潁濱遺稿)에서는 급변하는 세태와 병든 몸 상태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되는 우울한 느낌의 작품들이 많으며, 직접 지은 기문(記文)들이 다수 실려 있다.
<김두삼(金斗三, 1844∼1931)>
조선 말기 유학자로 자는 태겸(台兼)이고, 호는 영빈(穎濱)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장동(墻洞) 출신이다. 타고난 재주와 덕(德)을 지녔으며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적 경지가 높았다. 1887년(고종 24) 전주(全州)의 초시(初試)에 합격하였는데, 당시 매관매직(賣官賣職)의 풍조에 실망을 느껴 더 이상 과거시험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 후 영빈정사(潁濱精舍)를 짓고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몰두하며 후학양성에 힘써 많은 제자들을 길러 냈다.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昇遐)하자 산에 올라 통곡을 하였는데, 이때 병을 얻어 오래도록 앓다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문집 『영빈유고(穎濱遺稿)』는 김병찬(金秉燦)의 서문(序文)과 서규일(徐珪馹)의 발문(跋文)을 붙여 1967년 간행되었다. 문집에는 급변하는 세태와 병든 몸 상태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되는 우울한 느낌의 작품들이 많으며, 직접 지은 기문(記文)들이 다수 실려 있어 그의 문학적 자질이 뛰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록(附錄)에는 그의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銘) 및 「영빈정사상량문(穎濱精舍上梁文)」 등이 실려 있으며, 「문생록(文生錄)」은 그의 학풍 연구에 참고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김두삼의 우국충정 시(詩)>
'國喪登山望哭'
假壽長年祝難求 綴衣麻冕禮儀優 哭班士子冕沈結 誤國凶奸罪益浮
翠槿殘花千朶淚 蒼梧落日萬家愁 春秋史筆朝鮮號 鳴咽長江不盡流
'국상을 당하여 산에 올라 곡함'
오래 사시라 축수했더니 어이 그리 가셨나요
국상의 예의범절 엄숙하고 장중하네
유생들 울어울어 깊은 원한 사무치고
간흉들 죄상만은 또렷또렷 더해가네
무궁화 삼천리 집집마다 눈물이요
창오산 저문날에 만백성 수심일세
조선의 긴긴 역사 여기서 끊기다니
목메인 피눈물 한없이 흐를레라
장동고개 들머리는 우측 고갯마루를 넘어 50여 미터 이동하면 나오는 수령 200년 된 노거수 좌측 도로변에 있는데,
노거수 우측 낙석방지용 펜스가 끝나는 지점에 도로로 내려서는 또 다른 날머리인 철계단도 보이고,
수령 200년이라 적힌 팽나무 보호수 앞 도로에서 좌측 넓은 수레길을 따라 오르다가,
우측 묘지길로 들어서서 묘지 뒤쪽의 숲길로 들어서면,
등로는 빼곡한 시누대숲으로 이어지고,
다시 잡목과 잔가지가 널브러진 희미한 등로가 이어지더니,
이내 넓은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하다가,
임도가 능선 우측 산허리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임도를 두고 좌측 능선 숲길로 들어서는데,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면 함평터널 상부의 묘지까지만 이어지므로 묘지에서 잡목과 넝쿨이 그득한 거친 사면을 헤치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야 한다.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오르다가 커다란 바위지대를 올라서,
잡목과 덩굴이 뒤엉킨 함평터널 위 통신탑봉에서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앞쪽 이동통신탑 방향으로 진행하고,
이동통신중계탑 옆 울타리를 따라 앞쪽으로 나서면,
널찍한 수레길이 통신탑으로 연결되어 있고 수레길 한켠에는 조망을 즐기며 쉬어가라고 테이블까지 놓여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위 통신기지국 앞 쉼터에 도착하여 과일 노점을 펼치는 백두들.
쉼터에서 본 우측 서해안고속도로 조망.
안개로 멋진 조망을 놓친 전망쉼터를 뒤로하고 능선으로 이어지는 수레길을 따르다가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수레길을 두고 좌측 능선 숲길로 접어들어,
잡목이 그득한 완만한 능선길을 더듬어 잔돌이 깔린 130봉쯤을 지나는데,
직진 능선 방향이 기맥길처럼 느껴지지만 좌측 아래로 희미하게 이어지는 안부방향으로 좌틀하여 내려서고,
잡목과 낙엽이 수북한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다가,
좌.우호 옛길 흔적이 있는 잘록이 안부를 지나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잡목이 우거진 149봉을 지나게 되는데, 기맥길은 이곳에서 우틀하여 내려서야 한다.
이곳 149봉에서 비닐하우스 단지와 함평군 양서파충류생태공원을 지나 건너편 129.2봉으로 이어지는 기맥능선은 어느 지점이 정확한 능선인지 분간하기가 애매하다. 그래서 많은 기맥꾼들은 이곳 149봉에서 바로 우틀하여 내려서다가 좌측 계곡 비슷한 곳으로 진행하여 비닐하우스 무화과단지 안을 통과하여 23번 국도를 건너는 육교를 통해 양서파충류생태공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곳 149에서 바로 우틀하여 내려서다가 좌측 계곡 비슷한 사면을 가로지르는 산꾼들과 149봉에서 바로 좌측 능선 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는 산꾼들의 발자국이 뒤섞여서 149봉 내림길에는 뚜렷한 등로가 없고 희미한 족적만이 사방으로 얽혀있다.
우리 팀도 앞서간 일행들은 149봉에서 바로 내려서는 길로 진행했고 우리는 좌측 능선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는데,
뒤따르던 분들도 도대체 등로가 맞는지 의심스러워하고,
거친 잡목숲을 지나 편백나무숲으로 들어서서 잠시 내려서면,
앞쪽으로 비닐하우스 무화과단지와 23번 국도 건너편의 함평생태공원과 그 뒤편 129.2봉이 조망되는 양지바른 묘지로 내려서서 앞서간 분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살피며 잠시 배낭을 내리고 쉼을 하기로 한다.
따스한 겨울날의 여유를 즐겼던 묘지 쉼터를 뒤로하고 다시금 영산기맥 잇기에 나서는데,
우측 능선으로 바로 진행한 분들이 무화과단지 비닐하우스 울타리를 따라 모습을 드러내고,
비닐하우스 무화과단지 가운데로 이어진 통로로 들어서서 무화과재배단지를 통과하면,
23번 국도를 건너는 육교로 연결되는 도로에 접속하여 우측으로 진행하는데,
우리가 통과한 무화과재배단지가 새빛농원이었음을 알려주는 표석이 세워져 있고,
4차선의 23번 국도 위를 건너는 고가차도로 진행하여 함평군 양서파충류생태공원으로 들어선다.
<함평군 양서파충류생태공원>
함평군 양서파충류생태공원은 함평 일대를 비롯하여 주변 지역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을 보존하고, 또 이것을 전시, 관람케 해 놓아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설립된 생태체험장이다. 예로부터 함평에는 다양한 종류의 난이 자생하고 있는 곳으로 한국춘란의 최대 분포지역이며 나비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러한 함평의 특징들을 접목시켜 『하늘에는 나비와 잠자리, 땅에는 꽃과 난초, 물에는 수생식물과 물고기』라는 것을 주제로 다양한 생태체험 전시관들을 포함하고 있다.(펌)
함평군 양서파충류생태공원과 뒤편의 129.2봉 모습.
함평군에서는 매년 5월초 함평엑스포공원에서 펼쳐지는 「나비축제」, 10월 말~11월 초 함평엑스포공원에서 펼쳐지는 「국향대전」, 9월 중순 꽃무릇공원에서 펼쳐지는 「꽃무릇축제」 등의 축제를 개최하고 있는데, 함평자연생태공원과 양서·파충류생태공원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를 연계하고 있다.
함평군 양서·파충류생태공원 매표소 전경.
「양서·파충류생태공원」 입구에서 뱀 구조물을 배경으로.
함평 양서·파충류생태공원을 뒤로하고 능선 너머의 함평자연생태공원 방향 진입로로 들어서다가,
<함평자연생태공원>
함평자연생태공원은 함평 일대를 비롯하여 주변 지역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을 보존하고, 또 이것을 전시, 관람케 해 놓아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설립된 생태 체험장이다. 예로부터 함평에는 다양한 종류의 난이 자생하고 있는 곳으로 한국춘란의 최대 분포지역이며 나비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러한 함평의 특징들을 접목시켜 『하늘에는 나비와 잠자리, 땅에는 꽃과 난초, 물에는 수생식물과 물고기』라는 것을 주제로 다양한 생태체험 전시관들을 포함하고 있다.(펌)
돌아본 149봉이 내려설 때 어렵게 지났던 잡목숲길의 기억은 벌써 씻은 듯이 보이고,
도로변에 전시된 정크아트 조각 작품들이 눈길을 끄는데,
<정크아트 환경조각공원>
정크아트는 폐품, 쓰레기, 잡동사니를 의미하는 정크(Junk)를 활용해서 만든 미술작품으로, 엄청난 쓰레기를 양산하는 현대 도시문명의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하다. 쉽게 버리는 폐품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켜서 사회에 환원하는 경제적이면서도 대중 친화적인 예술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영산기맥 봉우리인 129.2봉은 양서·파충류생태공원 입구를 지나며 바로 좌측으로 올라야 하나, 많은 기맥꾼들이 우회하여 지나는 바람에 등로가 거칠고 봉우리를 올라도 삼각점만 있을 뿐 별다른 조망이 없다 하여 우회로인 함평자연생태공원으로 들어가는 도로 따라 오르다가,
도로 우측의 능선으로 바로 올라도 되지만, 앞에 보이는 아치형 육교를 건너 보려고 좌측 수레길로 들어서면,
절개지를 따라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게 되고,
129.2봉 능선에서 이어온 영산기맥 능선을 지나면,
함평생태공원 진입도로를 건너는 아치형 육교 들머리가 나온다.
매년 나비축제가 열리는 함평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건너는 아치형 육교를 건너,
우측 발봉산 방향.
좌측 함평자연생태공원 방향.
데크 계단을 올라 능선길을 따르면,
우전방 가야 할 영태산으로 이어지는 듯 보이는 23번 국도가 내려다 보이고,
좌.우로 수레길이 연결된 잘록이 안부인 용성고개를 지나,
<용성고개>
함평군 대동면 운교리 함평자연생태공원과 신광면 가덕리 함뱅이골 사이의 고개이다.
넓은 임도 수준의 능선길을 따르다가,
뒤돌아 본 129.2봉 아래의 생태전망대가 건너다 보이고,
좌측 아래로는 함평자연생태공원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더니,
이내 육각정자가 자리한 130봉에 오르는데,
자연생태공원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곳이라 배낭을 내리고 한담을 나누며 느긋한 쉼을 한다.
<130봉>
봉우리 정상에는 6각 정자와 널찍한 공터가 조성되어 있고, 정상에서 북동쪽 기슭에 자리한 자연생태공원으로는 데크목 계단길이 이어져 있어서 자연생태공원 전망대로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또한 자연생태공원과 남쪽으로 길게 뻗은 대동저수지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고, 영태산으로 이어진 가야 할 영산기맥이 가늠된다.
130봉으로 오르는 백두들.
북동쪽 기슭의 자연생태공원으로 이어진 데크목 계단길.
자연생태공원 우측 저수지 가운데 섬은 어린이 드라마 후토스 촬영지이고,
남쪽으로 길게 뻗은 대동저수지가 꾀나 커 보인다.
남쪽 149봉으로 이어진 영산기맥 능선 조망.
130봉 정상 전경.
포근한 겨울날의 오후를 즐기다가 130봉을 뒤로하고 다시금 영산기맥 잇기에 나서면,
노오란 갈비가 푹신한 암릉길도 지나게 되고,
덤불이 빼곡하여 길이 없어 보이는 안부를 지나 오르면,
149봉(개념도의 135봉) 직전에 우측으로 꺾어져서 내려서야 하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호기심에 이끌려 149봉(개념도의 135봉)에 올라보지만, 아무런 표식이 없어서 서여사님 얼굴 인증만 남긴다.
149봉에서 본 대동저수지 조망.
149봉에서 올라 선 방향으로 10여 미터 되돌아 내려서다가 좌측(올라 선 방향 기준 우측)으로 들어서 거칠고 희미한 등로를 더듬어 조심스럽게 내려서다가,
여름철이면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을 덤불지대를 어렵잖게 통과하고,
대규모 축사 뒤편의 신축부지로 내려서서 축사를 우회하여 내려서면,
축사 진입도로에 접속하여 우측 도로를 따라 들판 건너편의 언덕 방향으로 진행한다.
앞쪽 들판 건너편 숲으로 이어진 가야 할 영산기맥을 가늠해 보다가,
이곳부터는 영산기맥은 논밭과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어디가 물길을 가르는 능선인지 구분이 어렵고,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읽어보아도 저마다 조금씩 달리 설명하고 있어서 판단이 어렵다. 그래서 이곳의 지역 경계를 찾아보았더니 함평균 신광면과 대동면의 경계선이 영산기맥 능선과 거의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차선의 포장도로에 접속하여 우측으로 진행하다가 지나온 149봉에서 이어 온 기맥능선을 가늠해 보고,
도로 우측에 '신광면' 표지판이 보이고 나무로 된 '서정농장' 표지판이 있는 지점에서 좌틀하여 논두렁길로 접어들어,
앞쪽 언덕을 향해 논두렁을 따라 진행하여,
밭 가장자리를 지나서 2차선의 포장도로인 학동로에 접속한다.
돌아본 149봉 방향.
이곳부터 영태산 직전의 함평톨게이트 입구까지는 영산기맥이 23번 국도를 따라 이쪽저쪽으로 넘나들며 이어지는데, 기맥능선길은 잡목과 가시나무가 뒤덮고 있고 경작지를 통과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아 대부분의 산꾼들이 그냥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곳이다. 우리도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분들과, 가급적 기맥능선을 따르려는 분들을 나누어 진행하기로 한다. 물론 기맥능선을 따르려는 분들도 이곳에서 함평고교 버스정류장까지 2.5km는 학동로를 따라 이동한다.
일행들이 모두 도착하기를 기다려 도로파들과 헤어져 몇 사람만이 기맥 능선을 확인하려 먼저 길을 나서면,
도로 좌측 구릉으로 이어오던 기맥길이 좌측의 폐교에서 23번 국도 우측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위험" 표지판이 있는 폐교된 구) 대광초등학교(향교초등학교 대신분교) 앞을 지나고,
<폐교된 대동향교초등학교 대신분교>
전남 함평군 대동면 금산리의 대광초등학교는 1967년 대동국민학교 대광분교장(대광초등학교)으로 개교하여, 1997년 대광초등학교를 대동향교초등학교 대산분교로 개편하였다가, 학생수 감소로 2008년 폐교하였다.
아직도 어엿한 모습을 하고 있는 구) 대광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구) 대광초등학교를 지나 도로를 따르면 23번 국도를 통과하는 지하차도가 나오는데, 원 기맥길은 23번 국도 건너편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이내 다시 23번 국도 좌측의 116봉으로 이어지게 되므로 23번 국도 우측으로 이어지는 학동로를 두고 23번 국도 좌측의 차량 통행이 없는 옛길을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23번 국도 지하통로로 이어지는 학동로를 두고 좌틀하여 차량 통행이 없는 옛길로 들어서서,
23번 국도 좌측으로 이어진 포장도로를 따르다가,
우측 벽유마을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진 지하통로를 지나는데,
만약 23번 국도 우측의 기맥 능선을 따랐다면 우측의 지하통로를 통해 좌측의 116봉으로 진행했을 듯하고,
<벽유마을>
신광면 유천리 벽유마을은 지명유래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학천 동쪽에 있는 적당뫼(笛峰)에서 신선이 한가하게 냇가의 푸른 버들을 바라보며 피리를 불고 있다는 뜻에서 "벽유동(碧柳洞)"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은 제일 먼저 풍산홍씨 한신(漢信)이 입향 정착하였다 한다.
좌측으로 116봉 들머리쯤을 두고 계속 도로를 따르다가,
도로가 끊어진 지점에서 우측 23번 국도로 내려서서 갓길을 따라 진행하면,
좌측 116봉 날머리쯤인 폐업한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앞을 지나게 되는데,
영산기맥은 이쯤에서 다시 23번 국도를 우측으로 건너 함평농공단지로 이어지는 듯하다.
23번 국도를 잠시 더 따르다가 우측 함평농공단지 진입 신호등에서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도로를 건너,
영산기맥은 함평농공단지 가운데로 이어지지만 단지 입구에서 좌틀하여 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함평농공단지부터 영산기맥은 함평읍으로 들어서서 감방산까지 이어가게 된다.
우측 함평농공단지로 이어지는 영산기맥과 나란히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는데,
도로 우측 대나무숲에 전주이씨세장산비가 세워져 있고,
이내 도착하는 금산교차로에서 도로를 건너,
<금산리 감산(坎山)마을>
함평군 대동면 금산리 감산마을은 잠시 전에 우회하여 지난 116봉 동쪽 기슭에 자리한 마을로, 마을 뒷산인 116봉이 목마른 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그러면 116봉이 감산(坎山)이라는 이야기고, 금산리가 감산에서 유래된 듯한데 확인할 길은 없다.
금산교차로 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산행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함풍교회와 삼거리상회 모습.
23번 국도 갓길을 잠시 따르다가 우측 도로로 내려서서 진행하면,
이내 함평고 버스정류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따르던 도로를 두고 우측 마을길로 진입한다.
시멘트포장 오름길을 올라 언덕을 넘는데, 지나는 언덕이 영산기맥이 아닐까 의문이 들지만 언덕 너머의 함평읍 진양리 장시골에 떨어진 물은 좌측의 함평천으로 합류하므로 이 언덕은 영산기맥이 아니고,
혹여 이 부근 영산기맥에 대한 나의 추정이 잘못되었으면 어쩌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잠시 더 마을길을 따르면,
이내 산행기에서 언급되는 어린양기도원이 나타나며,
우측 함평농공단지를 지나온 영산기맥이 지나는 사랑고개 방향의 장사골 전경.
어린양기도원을 지나며 바로 좌측 묘지길로 들어선다.
이 능선이 영산기맥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며 파평윤씨 가족묘지를 지나고,
능선에 흩어진 묘지들과 가시덤불을 번갈아 지나서,
베어진 나무들이 어지러운 벌목지대와 잡목숲을 헤치고 진행하는데,
여전히 좌측 장사골 건너편 능선이 영산기맥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어렵고,
벌목지 봉우리 직전에 잡목과 가시나무가 자라난 능선 우측의 옛길 흔적을 따라 폐가(廢家)를 지나면,
만나는 임도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 우측 잡목숲으로 들어서고,
가시나무가 뒤섞인 빼곡한 잡목숲 능선으로 이어진 제법 뚜렷한 길흔적을 따르다가,
파릇파릇한 보리가 자라는 넓은 밭을 지나는데 앞쪽으로 가야 할 영태산이 보인다.
완만한 구릉지 잡목지대와 묘지 그리고 경작지를 번갈아 지나는데 좌전방으로 함평 TG가 보이고,
밭과 농로를 지나 목초지 우측의 가장자리로 진행하면,
목초지 우측 귀퉁이에 걸린 표지기가 낮은 둔덕 아래로 기맥꾼을 이끌고,
함평 IC 진출입로 아래로 지나는 회차로에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지하암거를 통과하여,
바로 우측 절개지 사면으로 올라 능선 숲으로 진행한다.
좌측 함평톨게이트 방향.
잡목이 빼곡한 가파른 절개지를 올라,
앞을 가로막는 시누대숲을 좌회하여 지나면,
가시나무가 뒤섞인 잡목숲 사이로 희미한 족적이 이어져 있고,
이내 임도 수준의 널찍한 수레길에 접속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 수레길을 따르다가,
주변으로 조망이 살짝살짝 트인 넓은 묘역이 자리한 봉우리(87.8m)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두규형이 꺼낸 사과를 나눈다.
좌측 돌머리와 주포항이 있는 함평만 방향.
능선으로 이어진 수레길을 따르는데,
양쪽으로 묘역들을 연이어 지나게 되고,
잠시 후 밭 가장자리를 따라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장년고개로 내려서게 된다.
<장년고개>
전남 함평군 함평읍 장년리 사이골과 진양리 웃당골의 경계 지점이다. 좌측 진양리와 우측 장년리를 잇는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며, 고개 우측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난다.
좌측 함평톨게이트가 있는 진양리 방향.
우측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는 장년리 방향.
고갯마루로 올라서 정원수 농장 도로를 따라 영태산으로 향하면,
줄지어 선 정원수 사이로 이어진 도로는 급경사 절개지로 이어지고,
절개지 상단 직전에서 우측 절개지 위로 올라,
지나온 기맥 능선을 돌아보니 아련한 연무에도 멀리 군유산을 물론 오늘 지난 발봉산과 영산기맥 능선이 가늠되고,
영태산 정상으로 이어진 정원수가 식재된 능선을 지나,
제법 가팔라지는 숲길로 들어서다가 돌아서서 지나온 영산기맥을 되짚어 보는데,
좌측 멀리 군유산에서 발봉산을 지나 우중앙의 함평고교에서 이곳으로 이어 온 영산기맥이 한눈에 가늠된다.
짧지만 가파른 잡목 숲길을 올라,
바위 암릉의 다소간 완만해진 능선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우측 다음 구간에 오를 감방산 방향으로 뻗은 서해안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더니,
입석바위 옆 암릉으로 올라서면,
서래야 박건석 님의 '작은영태산' 표지기가 있다는 135.6봉에 오르게 되는데 좌측으로 걸어온 기맥능선이 내려다 보이고,
작은영태산을 뒤로하고 기복이 없는 키작은 소나무숲 암릉 능선길을 따르면,
우측 함평읍 옥산리 방향으로 다음 구간에 걷게 될 봉우리들이 가늠되고,
남서쪽 무안군 현경면 방향.
서쪽 함평읍 석정리 방향.
살짝 당겨본 함평읍 석정리 돌머리해수욕장 방향.
이내 잡목숲에 판독이 어려운 삼각점이 자리한 영태산(137.3m) 정상에 도착한다.
<영태산(137.3m)>
함평군 함평읍 진양리에 위치한 산으로 멋진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정상 주변 암릉에서 주위의 조망을 다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이 산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태산 정상 전경.
살짝 당겨본 함평고등학교 방향.
영태산 정상 인증.
영태산을 뒤로하고 직진의 능선 내림길을 따르면,
앞쪽으로 다음 구간에 오르게 될 첫번째 봉우리인 중봉이 건너다 보이는 반석 전망바위를 지나게 되고,
중봉 우측 두번째로 오를 봉우리인 86봉 방향.
가파른 암릉에 낙엽이 덮여 미끄러지기 쉬운 내림길을 조심스레 내려서면,
좌.우로 희미한 길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나고,
노오란 갈비가 덮인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면,
예비군 훈련용 폐타이어 방어진지가 시작되는 봉우리를 지나게 되고,
금방 끝날 듯이 보이던 폐타이어 진지는 능선을 따라 한참을 이어지고서야 끝이나면,
낙엽이 수북한 능선길을 잠시 따르다가 빼곡한 시누숲을 지나게 되고,
이내 히미해지는 직진의 능선길을 두고 직우틀하여 사면 내림길로 들어서면,
앞쪽으로 다음 구간에 오르게 될 중봉이 건너다 보이고,
빼곡한 잡목숲으로 이어진 뚜렷한 족적을 따르면,
연륜이 풍기는 비석이 지키는 장성창씨 묘지로 들어서고,
묘지길로 들어서서 잠시 내려가면,
인동장씨세장산비가 지키는 옥산리고개에 도착하여 오늘 목표한 영산기맥 산행을 마감한다.
<옥산리 고개>
함평읍 옥산리에 있는 고개로 811번 지방도가 지난다. 고개 정상에는 허물어져가는 인동장씨 재각이 있고 ‘仁洞張氏世葬山(인동장씨세장산)’비가 서 있다. 옥산마을은 옛날에는 마을 앞에 연방죽이 있어서 "방죽안"이라 불렀으며 동쪽 300m 지점에 옥녀봉(玉女峯)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옥산동(玉山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은 김해김씨 문경공파 파조(派祖)의 9대손인 대기(大器)가 중종 29년(1534년)에 입촌 정착하였고 현재 그 후손은 12호로 마을에서 제일 많은 씨족이다. 이어 김해김씨가 입촌하여 현재도 그의 후손이 살고 있다. 마을 앞 정자 옆에 조선버드나무라는 500여 년 된 고목 3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의 수령과 초초의 입촌 년대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돌아본 인동장씨세장산비가 있는 옥산리고개 날머리.
옥산리고개 들머리 전경.
고개 좌측의 허물어져가는 동학농민혁명 함평집강소 터.
옥산리고개의 옥산제(저수지) 버스정류장 표지판.
다음 구간의 옥산리고개 들머리 전경.
좌측 양림교차로 방향 도로를 따라,
<양림교차로>
23번 국도가 지나는 전남 함평군 함평읍 양림마을 입구 지점으로, 양림(良林) 마을은 오랜 역사를 두고 좋은 버드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양림교차로의 식당에 도착하여,
대표 메뉴인 특) 백반정식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하는데,
너무 짜고 오래 썩힌 반찬이 배고픈 백두들 앞에서조차 쉬이 줄어들지 않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쥔장의 자태에 비해 부족한 음식솜씨에 실망스러운 백두들은,
다음번 산행의 아침식사 예정도 취소시키고는 귀갓길에 오른다.
어엿한 영산기맥 20여 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제일 높은 봉우리가 200.4봉이고 그나마 이름을 가진 산인 발봉산과 영태산도 지났는데,
참으로 전례 없이 긴~ 기맥산행에서 정상석이 없었던 산행은 오늘이 처음이었던 듯하다.
그렇게 세상 산에는 이런저런 산이 있듯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또 그런저런 일들이 있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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