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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영산기맥 6차(화산골재~가는고개) : 눈꽃 만개한 군유산에서 본 함평만

by 재희다 2023. 4. 13.

 
산행장소 : 영산기맥 6차(화산골재~가는고개) (전남 영광군, 함평군)
산행일시 : 2023. 01. 28.(토) 
산행코스 : 화산골재 ~ 210봉 ~ 지경재 ~ 서해안고속도로 ~ 구봉고개 ~ 구봉산(249.9) ~ 송림고개 ~ 상광암고개 ~ 283봉 ~ 금산(307.8) ~ 빗자루봉 ~ 칡재 ~ 192봉 ~ 사간재 ~ 군유산 ~ 북성이재 ~ 덜컥산 ~ 가는고개 (15.6km + 1.2km, 10시간 소요)

산행참석 : 16 백두. 

<산행지도>

 

9기맥 중에서 가장 거칠다는 영산기맥은 가급적 가시덩굴과 잡목이 말라있는 겨울철에 진행하게 되는데, 우리도 2019년 11월에 영산기맥 첫 산행을 시작하여 2020년 2월까지 다섯 번의 산행으로 불갑산을 지나 화산골재까지 진행하여 잠시 멈추었는데, 코로나19로 산행이 중단되면서 3년 만에 다시금 기맥길을 이어가게 되었다. 비록 목포의 다순금까지 남은 기맥길이 거칠다고는 하나, 부디 무탈하게 올봄까지는 영산기맥 종주를 마치고 목포에서 봄도다리를 먹을 수 있었으면 한다. 

 

1월 중순까지만 해도 유난히도 따뜻하던 겨울에 급작스런 한파가 몰아치며 전라 서해안에는 많은 눈까지 내렸다. 그래도 남쪽 지방이라 쌓인 눈이 금방 녹을 것이라며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산행을 이틀 남겨둔 수요일 저녁에서 목요일 오전까지 또다시 많은 눈이 내렸다. 혹여 겨울산행에 눈이 많이 쌓여 있을 경우 산행이 어려워질 수 있기에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단지 '남쪽 나라는 괜찮을 거야!'라는 막연한 낙관에 한동안 제대로 된 눈산행을 못한 터라 눈산행에 대한 기대도 살짝 커진다. 이런저런 상황변화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가지고 아이젠과 눈산행에 대한 준비를 카톡으로 공지하고는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선다. 

 

오늘도 전라 서해안 지방으로는 약간의 눈이 더 내린다는 예보가 있기는 하였지만, 양재에서 버스에 오를 때는 예보된 적설량이 많지 않아 눈에 대한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나나는 듯하여 눈을 떠 보니, 창밖 가로등이 있는 곳의 풍경이 온통 하얀 세상이고 많지는 않지만 아직도 눈이 계속 내리고 있다. 목적지인 함평 원산리가 가까워지면서 달리는 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진다는 게 몸으로 전해지며 무척이나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눈이 수북이 쌓인 함평군 신광면 원산1구 마을회관 앞 공터에 무사히 도착한다. 흰 눈이 수북이 쌓인 마을 앞 공터를 비추는 가로등 주변으로 아직도 내려 쌓이는 눈을 보며 산행 출발 시각까지 2시간여의 쪽잠을 더 청하다가 5시쯤에 일어나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원산1구(지초마을) 마을 앞 너른 공터에 주차한 버스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 문을 나서니, 두어 시간 전 도착할 때만 해도 내리던 눈은 그쳐있고 쌓인 눈이 발목을 넘는 상태라 오늘 산행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함께 밀려오고,  

 

아무도 밝지않는 눈 쌓인 농로를 따라 10여분 진행하여 원남제 옆 육군보병학교 훈련장 입구에 도착하니 철문이 굳게 잠겨 있다. 

 

그리 높지않은 철문이라 그냥 넘을 수도 있지만, 여성 회원들이 넘기에는 부담스러워서 우회하여 통과하기로 하 고 3년 전에 지났던 우회 통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우측으로 진행하니 역시나 철조망 울타리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통로가 나 있고,  

 

잡초와 넝쿨들이 뒤엉킨 곳에 눈까지 덮인 사면을 어렵게 진행하여 미끄러운 도로 옆 절개지로 내려서니, 

 

철문을 넘어온 김전무가 어렵게 돌아오는 사람들이 안타까운 듯 바라보며 홀로 기다리고 있다. 

 

 

어렵게 잠겨진 철문을 우회하여 발목을 넘게 쌓인 눈길을 따라 500여 미터쯤을 진행하다가 좌측 도로를 따라 오르면, 

 

<화산골재>

함평군 신광면 원산리 원남마을과 지초마을에서 영광군 불갑면 우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현재는 육군보병학교 사격장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가 지난다. 

 

3년 전 영산기맥 불갑산 구간 하산길에 보았던 화산골재 옆 커다란 육군보병학교 야외 교육장에 도착하게 되고,

 

육군보병학교 야외 교육장 앞 계단에서 아이젠을 착용하며 본격적인 영산기맥 눈산행을 준비한다. 

 

 

스페츠에 아이젠까지 착용하여 심설산행 준비를 갖추고 교육장 우측 숲길로 들어서면, 

 

군 훈련장의 각종 안내판과 표식들이 이어지는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게 되고, 

 

개념도상의 170봉쯤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군 훈련용 등로를 두고 표지기가 걸린 우측 거친 등로로 들어서면, 

 

고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쌓인 눈에 종아리까지 빠지는 거친 등로를 따라 봉우리를 넘게 되고,  

 

점점 거칠고 쌓인 눈도 더욱 깊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진행하다가, 

 

거칠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힘겹게 오르면, 

 

뚜렷한 직진길을 두고 우틀해야하는 215봉에 올라서며 앞서 직진길로 진행하던 서여사님을 불러 세워, 

 

함께 우틀하여 내림길로 들어서면 급경사 내림길 들머리에 선답자들의 표지기들이 여럿 걸려있다. 

 

급경사를 내려서다가 본 가야할 지경재 방향. 

 

 

급경사의 210봉 내림길을 내려서자 능선길은 다시금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161봉쯤을 지나자 완만한 내림길이 이어지더니,  

 

좌측으로 밭과 비닐하우수 몇 동이 있는 둥그런 안부의 외딴집을 지나게 되는데,  

 

흰 눈이 소복이 덮인 집을 지키던 백구가 모처럼 들려오는 사람 소리에 반가운 듯 꼬리 치며 맞이해 주고, 

 

쥔장의 출타를 기다리는 자동차는 흰 이불을 뒤집어쓰고 늦잠을 즐기고 있다. 

 

 

날이 밝아오며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열린 눈꽃에 탄성을 쏟으며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면, 

 

지경재 직전의 135봉쯤에 오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지경재로 내려서는 길은 직진의 좌측 능선으로 가도 되지만, 철조망과 폐 현수막으로 울타를 친 사유지 밭이라서 울타리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간다.  

 

135봉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서면 원형철조망과 폐 현수막으로 두른 사유지 울타리가 나오는데, 

 

울타리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면, 

 

돌아본 135봉쯤 방향.

 

좌측 망주석이 흰 눈꽃 모자를 쓰고 있는 묘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경재를 향해 밭을 통과하여 진행한다.

 

 

아무도 밟지않은 흰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동화속의 마을 같은 지경재를 향해 밭을 가로질러 내려가면,  

 

GS칼텍스 주유소와 그 옆으로 하여주가든이라는 식당이 있는 지경재에 도착하는데, 저곳 하여주가든 식당은 산행 중에 아침식사를 하려고 연락해 봤던 곳으로, 평일은 10시에 문을 열고 일요일은 크리스천이라 쉰다고 하여 아쉬움을 남겼던 평이 좋은 식당이다. 

 

<지경재(地境峙)>
영광군 불갑면과 함평군 신광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3번 국도가 지나가며, 고개에는 독립유공자 일강 김철(一江 金撤)선생의 숭모비와 GS 주유소, 그리고 '하여주가든'이라는 식당이 있다. 
지경(地境)이란 지명은 지역의 경계를 나타내는 단어로 낙동정맥 길의 울산, 양산, 부산 등에 많이 등장하는데 이곳도 영광과 함평의 경계라서 쓰는 모양이다. 

 

지경재에 도착하는 백두들. 

 

 

지경재 날머리 좌측의 창고 건물 앞에서 잠시 쉬려고 배낭을 내리다가 안에 있던 쥔장에게 쫓겨나,  

 

우측 영광군 불갑면 방향. 

 

좌측 함평군 신광면 방향. 

 

도로 건너편 하여주가든으로 이동하여 잠시 배낭을 내리고 따스한 모닝커피를 나눈다. 

 

 

지경재 들머리는 주유소와 하여주가든식당 사이 김철 선생 숭모비로 오르는 계단길로 올라야 하는데, 가급적 영산기맥 능선을 고수하려는 세 명만 먼저 들머리로 들어서고, 나머지 분들은 잠시 더 쉬었다가 쉽고 빠른 구봉마을을 경유하는 우회로를 따라 구봉고개로 바로 진행하기로 한다. 가시밭길과 서해안고속도로 통과라는 난코스를 피해 우회로를 택한 분들은 23번 국도를 따라 함평 방향으로 100여 미터 남짓 진행하다가, 지경재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보여리 방향(상해임시정부청사/ 일강김철기념관/ 650m)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서해안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고, 구봉마을의 김철 기념관과 상해임시정부청사를 구경한 후 구봉고개로 오르게 된다.

 

 

일강 김철선생 숭모비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 

 

일강 김철선생 숭모비(一江 金澈先生 崇慕碑)를 둘러보고 뒤쪽 숲으로 들어서면, 

 

<일강 김철선생 숭모비(一江 金澈先生 崇慕碑)> 
『독립유공자 일강 김철 선생 숭모비(獨立有功者 一江 金澈 先生 崇慕碑)
김철(金澈), 호 일강(一江), 본관 영산(永山), 1886~1934
이 비는 조국광복을 위해 몸바쳐 일하신 일강 김철 선행의 그 높고 깊은 애국의 참 뜻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선생께서는 1886년 신광면 함정리 구봉에서 출생하여, 1915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고 1919년 여운형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창립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동적인 역할을 하여 교통차장, 군무장, 재무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20년 1월 김구(金九) 등과 같이 의용단(義勇團)을 조직, 구국의 일념으로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쳐 일하시다 1934년 6월 29일 향년 48세로 운명하셨다.
그 후 1962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고 1975년 8월 15일 후생들이 선생을 추모하는 뜻에서 구봉산 기슭에 이 추모비를 건립하게 되었음.』

일강 김철 선생은 1886년 10월 15일 전남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서 김동진의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산(英山), 호는 일강(一江)이며, 어렸을 때의 이름은 영탁(永鐸)이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위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영광군 묘량(靈光郡 畝良)의 외가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8년 9월 22세의 나이로 영광 광흥학교(光興學校)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는 조찬승(曺燦承)․편용무(片容武) 등 영광인들이 뜻을 모아 관 서당․노인당․향교서당 등의 재산을 처분하여 마련된 자금으로 향교의 명륜당에 설립한 것이었다. 1년간의 속성과정으로 제1회 졸업생 35명을 배출하였는데 경술국치 이후 ‘한일합방’ 반대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계속하다 2년 만에 폐교당하였다. 
1915년 일본 메이지(明治)대학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여 고향에 은거하고 있던 김철에게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하라는 회유와 협박이 끊이지 않았다. 1917년 김철은 조국의 독립에 투신하기 위해 많은 민족운동가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던 상해(上海)를 향해 고향을 떠났다.
상해에 도착한 김철은 1918년 여운형(呂運亨)․장덕수(張德秀)․한진교(韓鎭敎)․선우혁(鮮于赫) 등과 발기인으로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결성에 참여하였다. 신한청년당은 1919년 초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보냈고, 독립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국내외로 당원들을 파견하였다. 김철은 서병호(徐丙浩)․선우혁과 국내로, 여운형은 만주와 연해주로, 장덕수는 일본으로 파견되었다. 국내로 잠입한 김철은 영광으로 가서 광흥학교 동창 조병모(曺秉模) 집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승려를 가장하여 돌아다니며 지방 유지들의 협력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고향 함평에 들러 자신의 가산을 정리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만드는 한편 당시 천도교 교주이던 손병희(孫秉熙)를 만나 3․1 운동을 협의하고 독립운동자금 지원을 약속받았으며, 기산도(奇山度) 등과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고 상하이로 돌아갔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철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고, 1975년 8월 전남 함평군 신광면 구봉산 기슭에 숭모비를 세워 그의 뜻을 기리고 있으며, 1984년 6월 서거 50주기를 맞이하여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그리고 1999년부터 전남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546-2번지 일원에 사당․동상․기념관․수양관․관리사 등을 건립하여 2003년 6월 ‘일강 김철선생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돌아본 지경재 전경. 

 

바로 널찍한 수레길이 나오는데 밭 가장자리로 이어진 수레길을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면,  

 

좌측 묵밭 건너편으로 가야할 구봉산이 아침햇살을 받아 환하게 웃고 있고,

 

잡목이 자라난 묵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희미한 기맥능선을 더듬어 거친 숲으로 들어서 보지만, 
(사실 이곳에서 숲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밭 가장자리를 따라가다가 고속도로로 내려서는 게 좋아 보임.) 

 

가시넝쿨과 잡목들이 빼곡한 데다가 눈까지 덮인 능선에서 한바탕 사투를 벌이다가, 

 

희미한 족적조차 더듬기 어려울 정도로 등로가 너무 거칠어서 좌측 서해안고속도로 갓길로 내려선다.

 

이른 시간이라 차량 통행이 뜸한 서해안고속도로 갓길로 내려서서, 중앙분리대를 넘어서 무단횡단을 해도 될 듯 하지만 우측 서울 방향 200여 미터 지점에 굴다리가 있어서 굳이 위험한 무단횡단을 할 필요가 없다.

 

서해안고속도로 갓길로 내려서는 백두들.

 

서해안고속도로 건너편 들머리 전경. 

 

 

마치 걸어서 서울까지도 갈 수 있을 듯한 기분으로 다소 한산한 서해안고속도로 갖길을 100여 미터 진행하면, 

 

'영광군'으로 들어서고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 직전 우측 수로를 따라 내려서는 게 좋은데, 

 

혹여 좀 더 좋은 통로가 있을까 하고 굴다리까지 와 봤지만 그냥 수로로 내려가는 게 가장 좋았던 듯하고,  

 

잡목과 가시덤불을 헤치고 지하 굴다리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서서, 

 

굴다리로 들어서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통과하고, 

 

고속도로 옆 농로를 따르다가 '함평군' 표지판이 있는 서해안고속도로로 다시 올라, 

 

서해안고속도로 절개지 상단 수로를 따라 오르면, 

 

서해안고속도로 건너편 잠시 전에 내려섰던 날머리 전경.(그냥 잠시 더 능선을 따랐어도 됐을 듯.)

 

절개지 상단 수로 우측으로 영산기맥 숲길 들머리가 나온다. 

 

 

비교적 뚜렷한 길흔적을 따르면 이내 두터운 솜이불을 덮고 있는 가족묘지가 나오고, 

 

두텁게 쌓인 눈으로 길흔적 찾기가 어렵지만 묘지 우측 상단에 걸린 표지기를 찾아 거친 숲길로 들어서면,

 

희미하게 이어지던 길흔적조차 깊게 쌓인 눈에 묻혀버려 나뭇가지에 열린 눈송이 아래에서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데,  

 

눈폭탄을 맞으며 잠시 더 나아가자 겨우 뚜렷한 길흔적이 나타나며 점점 더 넓어지는 등로를 따르다가, 

 

잠시 멈춰서서 흰옷으로 갈아입은 겨울나무를 배경으로 추억도 남겨보다가, 왠지 따르는 등로가 능선 좌측 아래로 내려가는 듯하여 다시금 능선으로 되돌아와 희미한 능선 숲으로 진행하니, 

 

능선 위로도 거칠지만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는데, 

 

잠시 후 수레길을 따라 좌측 아래로 진행했던 김전무가 좌측 숲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숨은 그림 찾기!)

 

봉우리 정상부를 좌측에 두고 우측 어깨쯤으로 넘어 내림길로 들어서자, 

 

앞쪽으로 빼곡한 대나무숲이 나타나며 뚫고 지나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하는 수 없이 좌측으로 우회하여 통과하기로 하고 대나무숲을 뚫고 좌측으로 내려서니, 

 

과거에 개 사육장이었던 듯한 구조물들이 있는 농가로 내려서서 통과하여 나오면, 

 

지경재에서 도로 따라 우회한 분들이 일강 김철 선생 출신지인 구봉마을을 거쳐 다시금 영산기맥으로 접속하기로 한 구봉고개가 나오는데, 우회한 분들이 벌써 이곳을 통과하였는지 많은 발자국이 구봉고개로 올라 구봉산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구봉고개(九峯峙)>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서 영광군 불갑면 우봉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 옆에는 꽤나 큰 규모의 개 사육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명 유래는 구봉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며 뒷산이 아홉 봉우리여서 마을 이름을 "구봉(九峯)"이라 하였다 한다.

최초 흥성장씨가 들어와 터를 닦은 후 최씨, 강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하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며, 그 후 영산김씨 김황이 들어와 세거하였다. 이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영광군 불갑면에서 함평군 신광면으로 편입되었다고 하며 독립유공자 김철 선생이 구봉마을 출신이다. 

 

구봉고개 이정표(↑구봉산정상 0.8km, ← 구봉마을 0.3km, 연봉마을 0.6km→ ).

 

 

거친 능선을 헤매다가 신작로인듯 잘 나있는 등로를 따라 구봉산을 향하면, 

 

눈꽃이 만발한 멋진 구봉산 오름길 등로가 이어지다가, 

 

벤치가 있는 능선에 올라 좌틀하여 다소 완만해진 능선 등로를 따르면, 

 

흰 옷으로 갈아입은 작은 돌탑을 지나게 되고, 

 

다소 가파른 오름길을 한번 더 올라서면, 

 

함평 평야를 적시는 대동댐 물의 시원지 샘물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이내 육각정자와 이정표가 있는 구봉산(249.9m) 정상에 도착하는데, 마침 우회로를 통해 먼저 도착한 분들이 정자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구봉산(九峯山, 249.9m)>
구봉산은 삼면봉으로 영광 불갑면과 군남면, 함평 신광면이 만나는 봉우리로, 산봉우리가 아홉이어서 구봉(九峯)산으로 불린다. 구봉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구봉마을은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 선생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구봉산 정상 이정표. 

 

 

구봉산 정상 정자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분들이 구봉산 내림길 들머리에서 우틀하여 진행해야 하는데, 좌측의 직진 방향 등로를 따라 진행하였다가 돌아나와 잠시 혼선을 겪고 있는 사이에, 

 

서둘러 배낭을 내리고 단촐한 아침식사를 한다. 

 

동남쪽 구봉마을 방향.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친 '기필코 기맥 고수파' 분들도 구봉산 인증을 남기고는, 

 

구봉산에서 우측 능선으로 들어서서 앞서간 분들이 만들어 놓은 눈길을 따르다가, 

 

지능선이 분기하는 240봉에서 직진의 지능선으로 들어서는 분들을 불러세워 우틀하여 진행하고, 

 

잠시 내려섯다가는 다시 210봉에 올라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서게 되는데, 이 봉에서 군남면과 불갑면을 가르며 이어온 면계 능선은 북쪽으로 보내고, 기맥길은 좌측 서향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온전히 군남면 안으로 들어서서 상광암고개로 내려서게 된다.

 

 

210봉을 뒤로하고 내림길로 접어들면 잡목이 그득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널찍한 공터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따르다가, 

 

잡목과 가시나무가 뒤엉켜 있는 187봉을 지나서 내려서면 좌우로 이어지는 넓은 수레길을 만나는데, 

 

기맥 능선은 수레길 건너 직진 방향으로 이어질 듯 보이지만 우측 임도로 내려서서 진행해야 하고, 

 

임도에 쌓인 푹신한 눈을 밟으며 편안히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시멘트 포장임도가 지나는 송림고개가 나오며 우측 도로를 따라 상광암고개로 진행한다. 

 

<송림고개>
우측에는 큰 봉분의 묘지가 여러 기 있는 광주이씨 가족묘지가 자리하고 있고, 좌측 송림마을에서 송림골을 지나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도로 옆에는 비닐하우스가 있는 농가 한 채가 보인다. 이곳에서 영산기맥은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이어질 듯 보이지만 길이 없고, 우측 포장도로를 따라 상광암고개로 진행해야 한다. 

 

좌측 송림골 방향. 

 

 

우측 상광암고개 방향 도로를 따르면 우측에 영광공설추모공원 부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우측 영광읍 방향. 

 

잠시 더 제설작업이 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2차선의 광암로가 지나는 상광암고개를 지나게 된다. 

 

<상광암고개>
영광군 군남면 대덕리 광암마을과 함평군 신광면을 연결하는 2차선의 광암로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에는 ‘송림’이라는 버스 정류장이 있으며 군남면에서 관리하는 고인돌 1기가 보인다. 고개 명칭은 좌측 아래 대덕리 광암마을에서 따온 듯한데, 광암마을은 상광암, 중광암, 하광암이 있으며, 그중에서 고개와 가장 가까운 상광암의 명칭을 따온 듯하다. 이후 마을 이름이 상광암마을에서 송림마을로 바뀌며 버스정류장 표시를 '송림'으로 표시한 듯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이 고개를 ‘모기장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상광암 마을은 조선조 선녕남씨 23대손 남우원이 함평에서 이곳으로 이주하고, 그 뒤에 평택임씨들이 이주하여 마을이 이루어졌으며, 소나무가 무성하고 바위가 많아서 송암(松岩) 또는 광암(廣岩)이라 하였는데, 그 이후에 마을이 나뉘어 상, 중, 하광암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미끄러운 눈길에도 상광암고개 송림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어르신의 걸음걸이가 사뭇 위태로워 보이고, 

 

기맥길은 상광암고개 도로에서 좌측으로 약간 이동하여 우측 신설 시멘트 포장 임도로 오르게 된다.

 

 

하얀 도화지에 발자욱을 찍으며 눈 덮인 도로를 따라 파평윤씨 가족묘원을 알리는 표석을 지나 앞쪽의 절개지를 향하다가, 

 

도로가 절개면을 따라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그냥 절개지를 치고 오르면, 

 

눈에 덮여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토사 채취장쯤의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도로에 다시 접속하여 좌측으로 진행하고, 

 

절개지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기 시작하는데, 그냥 다시 우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오르는 게 나아 보인다. 

 

 

가파른 절개지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다가 돌아본 구봉산이 저만치 멀어져 있고,  

 

절개지 가장자리 등로가 너무 거칠어서 약간 더 안쪽의 숲길을 헤쳐보지만 숲길이 훨씬 거칠고 가파른 사면이어서 미끄러지며 어렵게 올라야 한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가파른 사면으로 오르면 눈이불을 덮고 있는 묘지 1기가 나오는데, 이곳은 절개지 좌.우 어디로 오르든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지점으로, 묘지 뒤로 이어진 다소 완만한 숲길로 들어서면 뚜렷한 길흔적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희미한 길흔적은 절개지 상단 가장자리로 이어지며 우측 지나온 영산기맥 방향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지고, 

 

동쪽 3년 전에 지나온 불갑산과 구봉산 방향. 

 

오늘 지나온 구봉산 방향. 

 

남동쪽 천주봉 방향. 

 

가야 할 남서쪽 군유산 방향. 

 

 

시원한 조망을 선사받은 절개지 상단을 뒤로하고 좌측 능선을 따라 잠시 진행하면, 

 

가시나무와 잡목들이 산재한 283봉이 나오며 영산기맥은 좌측으로 휘어져 금산으로 이어진다.

 

무시무시한 가시나무가 빼곡한 283봉 정상 인증. 

 

 

잔가지들이 방해하는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우측 군남면 대덕리 방향. 

 

완만한 안부를 지나고, 

 

작은 봉우리를 지나서 오른 290봉에서는 좌측으로 휘어지며 내려서게 되고, 

 

키 작은 산죽과 잡목이 뒤섞인 안부를 지나 금산 오름길로 들어서서, 

 

꾀나 급한 경사지에 함박눈을 뒤집어쓴 산죽밭을 힘겹게 오르니, 

 

잠시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며 가빠오는 숨을 고르게 하고, 

 

다시한번 잡목들이 빼곡한 급경사를 치고 오르면, 

 

능선 분기점인 금산 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하여 영산기맥은 좌틀하여 이어지지만, 우측 50여 미터 지점의 금산 정상을 다녀오기로 한다. 

 

 

금산 갈림길에서 쉬겠다는 일행들을 두고 우측 50m 지점의 금산 정상으로 향하면, 

 

먼저 오른 김 전무님 일행들은 벌써 금산 정상을 확인하고 돌아 나오고 있고, 

 

돌아 나오던 서여사님과 함께 잡목이 그득한 금산 정상에 도착하여 인증을 남기고,  

 

<금산(307.8m)>
전남 영광군 군남면 용암리와 대덕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무지봉 또는 검산이라고도 하며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다. 옛날에 가뭄이 계속되며 무지(기우제)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산이다. 산 정상부는 잡목과 덩굴식물이 그득하고 주변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무런 조망이 없다. 

 

 

다시 금산 갈림길로 돌아나와 쉼을 하는 분들의 과일 나눔 이벤트에 동참하며 잠시 여유를 찾는다. 

 

 

금산 갈림길에서의 달콤한 쉼을 뒤로하고 내려서면, 

 

여름이라면 도저히 통과할 수 없을 듯한 잡목과 덩굴이 뒤엉킨 안부를 지나게 되고, 

 

잡목과 덩굴이 방해하는 능선길을 따라, 

 

꾀나 긴 오름길을 올라 310봉쯤을 지나고, 

 

제법 가파르게 내려서다가 시커멓게 탄 나무둥치를 지나니 능선길은 다소간 완만해지며, 

 

잡목들의 방해를 뿌리치며 눈 덮인 영산기맥 능선을 더듬어 이어가는데, 

 

어느 틈엔가 불쑥 나타나는 낯익은 표지기가 우리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위안을 갖게 하는 안부를 지나,  

 

다시금 급하지는 않지만 긴 오름길을 오르면, 

 

바위들이 멋대로 자리한 빗자루봉(229.2m)쯤을 지나게 되는데, 

 

그 유래는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는 빗자루봉을 배경으로 인증이라도 남겨 볼 뿐이고, 

 

꾀나 급한 내림길을 내려서면, 

 

좌.우로 길흔적이 뚜렷하고 성황당 흔적인 커다란 돌무덤이 있는 칡재에 내려서게 되는데, 깊게 쌓인 눈길에 지친 분들은 좌측 장전마을로 탈출하고 가야만 하는 이유를 가진 몇몇 분들만 군유산을 향해 영산길을 이어가기로 한다. 

 

<칡재>
영광군 군남면 용암리와 함평군 신광면 보여리 장전마을을 잇는 고개로, 장전마을 쪽은 비교적 길이 뚜렷하나 용암리 쪽은 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희미한 돌무더기의 흔적으로 보아 서낭당이 아닌가 싶다. 이곳 칡재에서부터 다시 남쪽은 영광군 군남면에서 함평군 신광면으로 접어든다.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장전(長田) 마을은 평산등에 있는 고인돌로 미루어 보아 마을의 역사는 선시대로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680년 경에 김해김씨가 지장골이라는 곳에 들어와서 살았다. 그 후 1750년경에 현재의 이곳으로 이동해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영광군 군남면 대덕리 3구와 경계에 있으며 송사리 사간마을과 보전마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칡재에 도착하는 백두들. 

 

본디 적설량이 많을 경우 탈출 루트로 고려했던 지점은 이곳 칡재에서 30여분 더 진행하면 나오는 사간재다. 사간재에서 좌측 임도를 따라 송사마을로 내려서면 오늘 산행의 목적지인 가는고개까지가 2km 정도로 금방 닿을 수 있는 거리이기에 사간재까지 가서 탈출을 권해 보았으나, 먼저 탈출을 얘기하신 분에게로 쏠린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잠시의 쉼을 함께한 후 많은 분들이 이곳 칡재에서 좌측 아래로 이어진 희미한 계곡길을 따라 장전마을 방향으로의 탈출길에 나서고, 기필코 영산기맥을 밟아야 하는 몇몇 분들만이 군유산을 향해 영산기맥 능선길로 들어선다. 

 

 

칡재를 뒤로하고 한바탕 급경사 오름길을 올라서면 표지기가 여럿 걸린 '칡재봉(191.4m)을 지난다. 

 

스마트폰 배터리를 충전하려고 휴대용 배터리를 연결해 보지만, 충전 짹에 습기가 있다며 충전기를 분리하라는 경고가 계속 뜬다. 아마도 상광암재에서 급경사를 오르다가 스마트폰을 떨어뜨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물기가 스며들어 그런 듯하다. 하는 수 없이 물기가 마를 동안을 기다릴 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어서 칡재 이후부터 군유산을 지나기까지는 몇 장의 사진만 겨우 건졌다. 

 

칡재봉에 도착하는 꾼!

 

 

스마트폰 충전 포트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다시 꾸준한 오름길을 올라 200봉쯤에 도착하여 꺼진 스마트폰을 켜서 위치를 확인하고,  

 

거칠지만 완만한 내림길을 내려서면 좌측의 김해김공 묘지를 지나게 되고, 

 

이어지는 묘지길을 따르는데 파란 저수조 뒤쪽 숲 너머로 가야 할 군유산 전위봉쯤이 빼곡히 고개를 내밀고 있고, 

 

이내 눈에 덮여 있기는 하지만 꾀나 넓은 임도가 지나는 사간고개를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좌측 사간마을을 지나 송계마을 방향으로 탈출을 했으면 훨씬 쉬웠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 게 사뭇 아쉽기만 하다. 

 

<사간고개(士干峙, 154m)>
함평군 신광면 보여리 사간마을에서 영광군 군남면 용암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좌측 아래에 있는 사간마을에서 지명을 따온 듯하다. 사간마을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황씨가 들어와 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고, 또한 그 후손들도 현재 거주하고 있지 않다. 

 

사간재 표지기. 

 

사간고개에서 배낭을 내리고 스마트폰에 보조배터리를 연결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충전이 되기 시작한다. 전기제품은 습기에 노출되지 않게 사용해야 한다는 전래속담을 한번 더 되뇌며, 스마트폰을 켜고 어느 정도 충전이 되기 전까지는 가급적 사용을 자제하며 영산기맥 산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사간고개에서 능선으로 이어진 수레길로 들어서면 키 큰 조릿대 숲길이 이어지다가, 

 

하얀 솜이불을 덮고 있는 묘지를 지나자, 

 

등로는 다시 빼곡한 대나무숲으로 들어서며 등로의 구분이 어지러운 능선길을 더듬게 되고, 

 

조릿대가 뒤덮은 능선을 더듬어 힘겨운 오름길을 오르면,  

 

표지기가 나부끼는 산죽밭 봉우리인 사간봉(298.3m)을 지나게 된다. 

 

 

거친 능선길을 눈이 깊게 덮고 있어서 그나마 평온하게는 보이는 능선을 더듬어, 

 

조릿대숲과 잡목지대를 번갈아 통과하며 꾸준히 고도를 높여가다가, 

 

앞쪽으로 다가서는 봉우리가 군유산이기만을 바라며 거친 오름길을 힘겹게 오르면, 

 

전망데크에 둘러진 팔각정자가 자리한 군유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군유산(君遊山, 405.4m)>
군유산은 전라남도 함평군의 신광면과 손불면, 영광군 군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함평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바위지대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산세가 부드러운 육산으로, 각종 약초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 산세가 군자의 위풍을 닮았다 해서 군자산이라고도 한다. 함평 서해에 군림한 산으로 정상에서 보면 서해의 도서군산이 눈 안에 들어온다. 영광의 군남천과 함평천이 발원하는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군니산은 현의 북쪽 3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함평)에 "군유산(君遊山)이 서쪽 30리에 있다."로 기록되어 있고, 『1872년 지방지도』(함평)에 군유산(君游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려와 조선 초기에 군니산이었다가, 조선 후기에 군유산으로 바꿔 표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함평군지』에 고려의 공민왕이 탐승래유(探勝來遊)하여 '군유산(君遊山)'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군유산의 '유'는 '유(游)', '유(遊)', '유(留)'로 혼동되어 있다. 골짜기에 마구청(馬廐廳)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군사들이 말에게 먹이를 먹인 데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왕건이 태봉국의 장수로 있을 때 이 산에 주둔했고 장군대(將軍臺)는 그가 주둔할 때 지휘소였다는 설이 있다. 실제 기왓장이 출토된 바 있는데 왕건이 고려 태조가 되었으니 그가 머문 곳인 이 산을 "군유산(君遊山), 군유산(君留山)"으로 부른 것으로 짐작케 한다. 또 다른 설은 "고려 31대 임금이었던 공민왕이 3일간 노닐다 갔다"하여 군유산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군유산은 산세가 군주의 위풍을 닮았다고 해서 군자산이라고도 불리는 함평의 진산으로 이곳에 서면 서해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군유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눠져 있는 함평군 신광면과 손불면은 백제불교의 도래지라는 설이 있으며, 마라난타 스님 생전에는 군니산(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 불렸으며 훗날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감돈다 하여 서상산(瑞像山)이라 불렸다가, 고려를 개국한 왕건이 나주 입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기마병 부대를 육성하게 되고(삼천군마설) 신광면 삼덕리에 위치한 서군교에서 군대를 이끌고 무안군 일로에 있는 파군교에서 후백제를 함락하여 나주입성의 계기가 된 산이기도 한 곳이다. 구전에 의하면  한반도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인도 간다라 출신의 마라난타( 摩羅難陀) 세존이 백제 최초의 불교 도래지로 알려진 법성포가 아닌 군유산과 가까운 손불면과 염산면 사이로 들어와 연흥사라는 절을 짓고 훗날 불갑사를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며, 함평군 손불면의 지명유래는  부처의 손자라는 뜻으로 불리고 있다. 군유산은 삼면봉(군남면, 손불면, 신광면)으로 좌측은 함평군 신광면이 이어지지만 우측은 영광군 군남면과 이별하고 함평군 손불면(孫佛面)을 만나게 된다. 

 

정상부 북쪽의 이정표. 

 

군유산 정상 팔각정자 옆에 자리한 군유산 정상석.

 

군유산 정상석 옆에는 등산로 정비사업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뒷면에는 함평 출신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의 특별지원금 2억원으로 사업을 하였다고 쓰여있다. 멀리서 찾은 산꾼들도 군유산 내림길에서는 나름 약간의 덕을 보게 될 듯하다. 

 

군유산 안내판. 

 

 

군유산에서 서해바다 쪽 강처럼 보이는 바다가 손불 앞바다인 함평만으로, 함평만에서 잡히는 뻘낙지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쳐주는 낙지라고 한다. 저 강처럼 보이는 함평만을 건너는 교량도 보이는데, 함평군 손불면과 바다 건너 해제반도의 무안군 해제면 도리포를 잇는 칠산대교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군유산 정상에 도착하여 흐린 조망으로 못내 아쉬워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바람이 불어오며 거짓말처럼 잠깐 조망이 맑아진다. 

 

북서쪽 월암산 방향. 

 

서쪽 철산대교 방향. 

 

<칠산대교(七山大橋)>
칠산대교는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과 영광군 염산면을 잇는 1.82㎞의 해상교량으로, 총 사업비 1,528억 원이 투입되어 2012년 9월에 착공, 2019년 12월 18일에 개통하였다. 교량 명칭은 이 다리가 건너는 바다를 '칠산바다'라고 칭하고 있어 칠산대교로 하기로 결정했다. 칠산대교 개통으로 영광군과 무안군의 거리가 62㎞에서 3㎞, 운행시간은 70분에서 5분으로 가까워졌으며, 다양한 축제와 유명 관광지와의 연계가 가능해져 관광산업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는 다리다.

 

남쪽 가야 할 가는고개 방향. 

 

군유산 정상 인증. 

 

 

군유산 정상 전경을 한번 더 카메라에 담고, 

 

군유산 정상 정자전망데크를 내려서면 군유산 정상 남측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널찍한 능선길을 잠시 따르면, 

 

산불감시카메라 직전 우측 사기마을 방향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게 되고, 

 

우측 사기마을 방향. 

 

<손불면 사기(沙己) 마을>
사기소 마을은 처음에 "사기소(沙器所)"라고 한문표기를 했는데, 그 이유는 조선조 때 분청자기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5년부터 마을 이름을 한자로 "四奇所(사기소)"라 표기하는데 그것은 기이한 것이 네 가지 있다는 뜻이다. 그 네 가지란 군유산 무제단, 월명산 7대봉, 장군바위, 미륵암 석불이다. 대략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폐요된 분청자기 도요지는 마을 북쪽의 산록에 있었다. 옛날에는 백제토기 잔편이 많이 뒹굴었다는 마을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백제 때부터 그릇을 구웠다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다.

 

직진의 능선길을 따라 산불감시카메라탑을 지나면 급내림길로 바뀌며 데크목 계단길이 나타나고, 

 

꾀나 긴 데크목 계단길을 내려서면 등로는 가파른 사면을 따라 지그제그로 이어지다가, 

 

좌측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마을 방향 뚜렷한 등로를 두고 직진의 거친 능선길로 들어서면,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三泉洞)>
태곳적부터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좋은 샘 세 개가 있었다 하여 삼천동(三泉洞)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고, 김유신 장군의 기마병 삼천 군사가 주둔했던 곳이라 하여 삼천동(三千洞)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52-1번지 내에 고인돌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촌락이 형성되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은 무덤을 지나게 되고, 

 

이내 김해김공 묘역을 지나는데 앞쪽으로 가야 할 덜컥산이 뾰족해 보이더니, 

 

포장도로가 지나는  북성이(차경) 고개에 내려서게 되는데, 

 

<북성이(차경)고개> 
함평군 손불면 북성리 차경마을과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을 잇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난다. 도로 옆에는 김해김씨세장산비가 서있고, 지도상에는 차경고개로 표기되어 있는데 고개 우측에 차경동 마을이 있어서 그리 불리는 듯하다.

고개 아래에 있는 차경(且京)마을은 1583년 경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수만이 정착한 이래 거의 자작일촌을 이루었고 그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그 외 다른 성씨도 몇 가구가 살고 있으며, 군유산 동쪽 밑의 옥녀채즐 형국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채경동"이라 부르다가 군유산에서 고려 공민왕이 놀다간 후 "여기가 또한 서울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해서 "차경(且京)"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공민왕의 전설은 무근한 전설이며 고려태조 왕건이 태봉국의 장수일 때 후백제군과 싸우기 위해 신광면 송사리 삼천동에서 군사 조련을 했으며, 왕건이 왕이 되었기에 서울이 되려다 말았다는 전설이 신빙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려 선 날머리 옆에는 「김해김씨감무공파세장산비」가 세워져 있고, 

 

도로 건너편 들머리 옆의 나무둥치에는 '반바지'라는 분이 걸어놓은 북성이재(170m) 표지기가 걸려있다. 

 

 

북성이재 들머리 옹벽을 올라 능선길을 5분여 따르면 좌측 송사리 방향으로 희미한 길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나게 되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0여분 올라 능선봉우리에 올라서면, 

 

다시금 거칠지만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더니 개념도상의 228봉쯤을 지나게 되고, 

 

잠시 후 '백사'라는 분이 손글씨로 230봉 표지기를 걸어놓은 봉긋한 능선봉우리를 지나 능선길을 따르면, 

 

이내 '덜컥산(242m)'이란 희미한 손글씨 흔적의 산패가 걸린 봉우리를 지나게 된다, 

 

이 봉우리는 가는고개로 내려서는 마지막 봉우리로 덜컥산이란 표시와 함께 242m로 표시하고 있는데, 인터넷 지도에는 220m 남짓의 고도가 표시된다. '백사'란 분이 걸어둔 표지판에는 ‘덜컥산’이라고 표시해 놓았는데 어느 지도나 기록에도 찾아볼 수 없는 표시로 인근 주민들이 그리 부른다면 그 유래를 알려주면 어떨까 싶다. 

 

 

'덜컥산'이라 표시된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며 내려서면 앞쪽으로 다음 구간에 걷게 될 백운봉과 노승산쯤이 조망되며, 

 

그 우측 남쪽 방향으로는 함평만 연안의 손불면이 내려다 보이고, 

 

서쪽 해제면 방향. 

 

급하지 않은 내림길을 내려서면, 

 

어린 묘목이 식재된 너른 밭을 지나 나주임씨지천(羅州林氏之阡) 비석 옆으로 내려서면, 

 

가는고개로 이어지는 임도길에 접속하게 되고,   

 

이내 우리의 애마가 기다리고 있는 가는고개를 지나는 포장도로에 내려서며 영산기맥 산행을 마무리한다. 

 

<가는고개(153m)>
함평군 신광면 송사리 해안마을에서 손불면 대전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난다. 송사리 해안마을은 옛날에  바닷물이 들어왔다 하여 "해안(海岸)"이라는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영산기맥길은 좌측 묘지로 이어지는 수레길로 가야 하는데 약 500m 정도 가다가 다시 가는고개 삼거리로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2차선 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도 한다. 

 

가는고개 날머리 전경. 

 

도로 건너편 나무둥치에 걸린 가는고개 표지기. 

 

가는고개 좌측 송사리 삼천동 방향. 

 

2주 후에 걷게 될 가는고개 들머리 전경. 

 

 

고개 우측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 

 

다음 구간 컴컴한 한밤중에 지날 가는고개 삼거리를 지나고, 

 

영규 형님의 안내로 월야면의 한새들식육식당으로 이동하여, 

 

길 건너편의 목욕탕이 문을 닫아서 목감은 생략한 채. 

 

육회와 청국장샤브샤브로 푸짐한 뒤풀이 시간을 가지고, 

 

고향의 특산물이라며 영규 형님 내외분이 준비하신 모시송편과 월야막걸리를 받아 들고, 

 

귀갓길에 올랐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 환상적인 눈산행이었다.

10여 년 전에는 허리까지 빠지는 눈산행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종아리가 빠지는 눈산행이 이리도 어려워졌다.

 

세월 탓인지 아니면 나의 체력 탓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