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년

몽골 고비사막 7일차(8/2) : 울란바토르에서 본 전통공연

by 재희다 2024. 1. 22.

 
여 행 지 : 오보르항가이(Ovorkhangai), 울란바토르.
여 행 일 : 2023. 08. 02.(화)
여행코스 : 하르허린(카라코룸) ~ 남근석(Kharkhorin Rock / Phallic rock statue) ~ Elsen Tasarkhai (Sand Dune Mini Gobi) ~ Urkhan Lun 휴게소(점심) ~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국립박물관 ~ 복드 칸 궁전 박물관 ~ 국영백화점 ~ Chinggis Khaan Hotel (378km, 14시간 소요) 
여행참석 : 20 백두.
 
<여행 지도>

 

 
오늘은 몽골의 옛 도읍지 카라코룸에서 현재의 도읍지인 울란바토르로 이동하여 칭기즈칸 박물관과 복드칸 겨울궁전 등을 둘러보고 민속공연을 관람하며 몽골 여행을 정리하는 날이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둘째 날 일정에서 누락했던 칭기즈칸 마동상도 가 보고 싶지만, 가이드가 쇼핑 일정을 빼지는 않을 듯하고 그간 하루도 일정을 빼먹지 않은 날이 없었으므로 오히려 오늘 일정에서도 몇몇 곳은 생략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밤 낙뢰로 인한 단전으로 씻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이 되어서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샤워는커녕 물티슈로 외출 준비를 하고는, 비상용 발전기를 가동하여 아침식사를 준비한 식당에서 나쁘지 않은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의 전등 스위치를 켜 보아도 반응이 없다. 지난밤 낙뢰로 인한 단전을 아직까지 수리하지 못한 듯하다. 어느새 훤히 밝아오는 게르 밖으로 나오니 비가 그친 숙소 앞 카라코룸/하르허린 방향이 온통 푸른빛으로 산뜻한 느낌이고,  

 

전기가 끊어진 상태라 비상발전기를 가동하여 식수와 요리만 준비하여 촛불을 밝힌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씻을 수도 없어서 집떠날 준비에 시간이 걸릴 것도 없는지라 렌턴을 밝혀 짐만 꾸리고는, 

 

하룻밤을 묵었던 뭉크 텡게르 게르 캠프를 뒤로하고 울란바토르로 향한다. 

 

돌아본 뭉크 텡게르 게르 캠프 방향. 

 

 

어제 저녁식사를 하면서 가이드인 세나에게 일정표에 있는 남근석과 지도탑에 대해 물었었는데, 그 때문인지는 물라도 카라코룸을 떠나기 전에 남근석을 보러 간다고 하더니,  

 

어제 갔던 거북받침석이 있는 에르덴죠 사원이 내려다 보이는 나지막한 봉우리 중덕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에 있는 남근석을 보러 잠시 걸어서 들어가면,  

 

여자의 음부를 닮은 계곡을 향한 위치에 남근 모양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남근석이 자리하고 있다. 

 

<남근석(Kharkhorin Rock / Phallic rock statue)>
에르덴죠사원에서 마주 보이는 언덕에 있는 남근석으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계곡이 여자의 음부를 닮아 에르덴죠 사원에서 수행하는 승려들이 여근곡을 바라보며 수행심이 흐려질까 염려하여 설치했다고 한다. 

 

민망스러운 남근석. 

 

에르덴조 사원 방향. 

 

남근석이 바라보고 있는 여근곡 방향. 

 

 

그다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도, 볼만한 것도 아니어서 약간은 실망스런 느낌으로 주차장으로 돌아 나와,  

 

카라코룸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울란바토르를 향한다. 

 

녹색평원에 자리한 노란 유채밭 조망. 

 

 

카라코룸/하르허린 환영게이트를 빠져나가 오보르항가이 방향 갈림길 삼거리에서 좌틀하여 울란바토르를 향하면,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2차선의 포장도로가 끝간데 없는 초원으로 이어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몽골 초원 풍경. 

 

 

울란바토르에서 오브르항가이 주의 주도 아르바이헤르로 이어지는 도로에 접속하여 좌틀하여 수도 울란바토르로 진행한다.

 

최근에 내린 비로 만들어진 물웅덩이 모습.

 

초원만 보이던 곳에 눈길을 끄는 가로수쯤으로 보이는 조림지. 

 

 

카라코룸을 출반 한 지 1시간여 만에 도로 좌측 초원에 조성된 메밀밭에 들러 사진도 찍으며 잠시 쉼을 한다. 

 

 

잠깐의 쉼을 뒤로하고 다시 차에 올라 울란바토르로 향하는데, 차에 탄 4명이 모두 연세 지긋한 남자들이라 깊은 사색에 잠겨 그져 스쳐지나가는 초원의 풍경을 주시할 뿐 별다른 말이 없고, 

 

우측 초원 멀리로 보이는 사행천은 첫날 테를지로 이동하며 건넜던 툴강의 하류. 

 

툴강 건너편으로 꾀나 커 보이는 마을이 보이더니, 툴강 직전 Urkhan Lun 휴게소에 들러 점심식사를 한다. 

 

Urkhan Lun 휴게소 전경. 

 

휴게소 앞 도로 전경. 

 

 

식당은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과 비슷하게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이곳도 음식 구매보다는 먹을 자리를 잡는 게 먼저다. 한국의 볶음밥 비슷한 메뉴를 선택했는데 휴게소 음식치고는 썩 괜찮은 편이고 가성비도 좋아 한국에 있었다면 자주 찾았음직한 휴게소 식당이다. 

 

툴강 조망. 

 

 

만족스런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금 차에 올라 울란바토르를 향해 구름이 밀려와 하늘을 뒤덮은 초원을 달리다가, 

 

울란바토르에서 멀지 않은 Bayantsogt 마을을 지나는데 소낙비가 쏟아졌는지 길 주변으로는 온통 흙탕물이 흥건하고,  

 

울란바토르로 접어들자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대비가 쏟아진다. 

 

 

장대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심한 정체를 빚고 있는 울란바토로 시가지를 겨우 지나, 몽골 3대 캐시미어 브랜드의 하나인 고비 캐시미어(Gobi Cashmere) 매장에 도착하여 몽골의 명품 캐시미어 제품을 둘러볼 기회를 갖는다. 

 

<몽골의 고품질 캐시미어>
몽골의 백화점, 면세점 등에서 가장 많이 취급하는 상품의 종류는 바로 캐시미어이다. 캐시미어가 몽골 대표 상품인 이유는 세계 최고 품질의 캐시미어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몽골에는 캐시미어의 재료가 되는 실을 얻을 수 있는 염소가 많은데, 몽골 인구가 330만 명에 비해 염소는 약 3,000만 마리가 넘는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어디에서든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몽골에 겨울이 찾아오면 염소들의 거친 털 사이로 부드러운 털이 자라나고, 봄에 털갈이를 할 때 이것들을 채취하여 캐시미어를 만든다. 이때,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몽골의 혹독한 추위와 일교차는 캐시미어의 밀도를 더욱 높게 만든다.
이런 연유로 몽골은 질 좋은 캐시미어를 생산하는 국가로 명성을 쌓았으며 연간 약 2,500톤의 캐시미어를 생산하고 있다. 몽골산 캐시미어는 길이와 울 섬유의 신축성 및 강도로 보았을 때 고품질로 평가받고 있다. 몽골산 캐시미어의 50~60%는 흰색, 20~30%는 회색을 띠고 있다.

 

고비 캐시미어 매장 전경. 

 

 

고비 캐시미어에서 쇼핑을 마치고 복드 칸 (겨울)궁전으로 향하는데, 심한 차량정체를 빚고 있는 도로가 온통 물바다로 변해있는데, 이곳 울란바토르는 연간 강수량이 작고 폭우가 내리는 경우도 적어 도로의 배수시설이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차도와 인도 사이에 있어야 할 우수관로가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고비 캐시미어 매장에서 복드 칸 궁전까지는 4km 정도인데 차량 정체로 40여분만에야 입구인 작은 게르 앞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복드 칸 겨울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이 궁전은 몽골의 마지막 칸인 복드 칸이 겨울에 기거했다는 궁전이다. 

복드칸 겨울궁전 조감도

 

<복드칸 (겨울) 궁전>

몽골의 마지막 칸인 젭춘담바 후툭투 8세(Жавзандамба хутагт VIII) 복드 칸의 궁전으로, 1893년부터 1903년 사이에 지었고 20여 년 간 칸이 거주하는 궁궐로 사용되었다. 몽골의 지도자였던 젭춘담바 후툭투 8세는 칸이자 몽골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여서 궁전 대부분이 티베트 불교 사원 건물이다.
몽골에는 칸이 살았던 4곳(봄, 여름, 가을, 겨울)의 거주지(궁전)가 있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공산주의정권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남은 곳이 겨울궁전이다. 파괴되지 않은 이유가 겨울 궁전 건물에 러시아 양식의 건물들이 있어 보존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파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금·원·청 등 유목민족 국가의 지도자들은 동날발(冬捺鉢), 하날발(夏捺鉢)이라고 하여 여름과 겨울마다 거처를 옮겼다. 원나라의 경우 여름은 상도에서 보내고 겨울은 대도에서 보냈다. 청나라의 경우 북경의 자금성은 황제가 겨울에 거처하는 궁전이고, 여름에는 피서산장으로 옮겨서 집무를 봤다.

복드칸 겨울 궁전 건물은 6채의 라마 사원과 3개의 문, 칸과 왕비가 기거했던 2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궁전의 정문은 ‘평화의 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고, 복드 칸의 즉위를 기념하여 1912년~1919년 사이에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어진 것으로 유명하다.(비극적으로 다 지어지자마자 중화민국에 의해 칸의 지위를 다시 빼앗긴다) 문은 3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 문은 오직 칸만이 지나갈 수 있다 한다. 문마다 미술 그림이 있는데 화려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여행객들을 위해 오른쪽 문을 열어 놓는다. 
겨울 궁전의 남쪽 5시 방향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 바로 우측에 보이는 2층 벽돌 건물에는 당시 칸과 왕비가 살았던 침실, 거실, 식당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의복과 생활용품을 포함하여 마차, 가구 등 실제 사용했던 물건도 함께 볼 수 있다. 복드칸이 세계의 여러 왕에게 받은 선물(러시아 황제가 선물한 황금 부츠도 있다)과 왕의 수집품, 박제동물도 눈에 띈다.(복드칸이 동물을 좋아했다고 하며, 칸 즉위식 때 박제 선물을 많이 받았다고 하고, 직접 개인 동물원의 동물들을 박제한 것도 있다) 선물로 받은 150마리 표범 가죽으로 만든 호화로운 게르도 전시되어 있다. 18~19세기 티베트 지역에서 활약했던 작가들의 불교 작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복드칸(Bogd Khan / Богд хан)>
1869년 10월 13일 ~ 1924년 5월 20일.
본명 : 악왕롭상초이지냠단잔왕축(Agvaanluvsanchoijinyamdanzanvanchüg)
외몽골의 지도자 대칸(황제)

 

< 젭춘담바 후툭투(Jebtsundamba Khutuktu / Жавзандамба хутагт)>
몽골의 티베트 불교 정치 지도자를 일컫는 말이다. 티베트 불교 지도자를 달라이 라마라고 하는데, 몽골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것이다. 북원이 멸망 후 청나라 지배 기간 실질적인 몽골의 지도자 역할을 했으나 현재는 몽골의 티벳 불교 지도자 역할만 한다. 달라이 라마와 같이 환생으로 계승되어 이어지는데, 이는 1대부터 계속 같은 사람이 육체와 혈통과는 상관없이 계속 환생하면서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1대 젭춘담바 후툭투는 칭기즈 칸의 후예인 할하 몽골의 수장 압타이 샌 칸의 아들인 자나 바자르였다. 보살의 화신으로서 몽골의 모든 중생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열반으로 이끌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금 태어난다는 개념으로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처럼 환생을 통해 계승했는데 1, 2대 이후 젭춘담바 후툭투들은 9대까지 모두 티베트 출신이었다. 어차피 같은 티베트 불교권에 청나라의 관할 하였으므로 긴밀한 관계에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8대 젭춘담바 후툭투(복드 칸)는 청나라가 멸망하자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 추대되어 복드 칸국을 성립했으나 쉬수정의 외몽골 출병으로 자치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를 끌어들여 반격했고 이후 담딘 수흐바타르와 허를러깅 처이발상에 의해 몽골이 공산화되자 복위하였으나 모든 실권은 공산당에 뺏긴 후였고 그가 1924년이 입적하자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새로 세워진 몽골 인민 공화국은 일단 살아 있던 8대 젭춘담바 후툭투(복드 칸)는 그 명성을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가 죽은 후 티베트 불교에 대한 대숙청에 들어갔다. 1926년에 소집된 제3기 대후랄은 9대 젭춘담바 후툭투의 환생에 대한 공인을 하지 않을 것으로 천명했으며 어떠한 종류의 활불의 환생도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복드 칸의 죽음과 동시에 후랄과 정부의 모든 종교 대표들은 축출되었고 허를러깅 처이발상이 집권하면서 불교에 대한 숙청은 절정에 달했다.

9대 젭춘담바 후툭투는 1932년생으로 공산화를 피해 인도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생활하다가 몽골이 민주화되고 나서 귀국해 인정받고 자신이 몽골의 어린이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하고 2012년 입적했다. 비슷한 처지였던 달라이 라마가 언제 티베트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인 데 비해 이쪽은 민주화되고 종교 탄압도 더 이상 없는 조국에서 독실한 불교도 국민들의 존중을 받으며 자리를 잡아 고난은 끝난 거나 다름없게 되었다.

젭춘담바 후툭투 10세는 2016년 11월 23일 달라이 라마 14세가 기자회견에서 몽골에서 이미 태어났지만 너무 어려서 정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7년이 지난 2023년 3월 8일 인도 다람살라에서 열린 법회에 참석한 것이 포착되었다.

 

 

'원나라'가 망하고 그 세력이 초원지역으로 올라와 '북원'을 건국하였다가 망하는 등 몽골 초원으로 퇴각하고 나서 이 세력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내부 갈등도 있고 단합하기 어려운 이런 상황 속에서 몽골 지배자들은 민중들을 단합하고 자신들이 지도자로서 권위를 부여받을 정신적 지주가 필요했는데, 거기에 딱 걸맞은 것이 '티베트 불교' 였다고 한다.

사실 '달라이라마' 시스템은 티베트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몽골제국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16세기에 알탄칸(Altan khan, 1507-1582, 북원의 군주)이 티베트의 불교 겔루파 수장인 소남갸초(1543~1588, 초대 '달라이라마')를 만나서 정신적인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청해'에서 회담을 하는데 알탄칸이 소남갸초에게 아주 존경스러운 이름인 '달라이라마', '바다 같은 스승'이라는 존호를 하사해 주고, 소남갸초는  알탄칸에게 '전륜성왕'이라는 칭호를 주는데서 비롯됐고, 그것이 바로 '달라이라마' 시스템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몽골 지역을 외몽골이라 하고, 남쪽 고비사막 부분에 몽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 지역을 내몽골이라 한다.(중국 내몽골 자치구 인구가 약 2,500만 명인데 이중 약 400만 명이 몽골족이다. 현재 몽골 외몽골은 약 320만 명) 원나라 몽골족들은 명나라 건국으로 몽골지역으로 돌아와 북원을 건국하여 지내 오다가 모두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멸망하여 청나라 영토가 되어 지내 왔었는데, 현재 중국 영토인 내몽골은 청 전신인 후금이 건국할 당시부터 합류하여 홍타이지에게 북원이 멸망할 때 원나라 옥새를 후금 칸에게 바치고 대칸으로 옹립했고, 현재 몽골 영토인 외몽골은 준가르나라에 흡수되어 청에 대항하다가 18세기 중반 청나라에 준가르도 정복당했다. 하지만 내몽골과는 다르게 현재 몽골의 외몽골은 종교지도자 잡증담바 후툭투를 중심으로 청의 지배하이지만 청의 관리 파견자도 없었고 청에 조공만 바치며 지역별 왕공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고, 독립을 항상 갈망하였다. 그러다가 1911년 7월 청나라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외몽골의 왕공들은 회의를 열어 독립하기로 하고 1911년 12월 29일 잡증담바 후툭투 8세를 대칸으로 추대하여 복드칸국이 세워진다.(내몽골은 이때도 중화민국으로 합류하여 독립하지 않았다)

 


<공산국가 설립으로 인한 마지막 대칸>
복드칸국을 설립한 복드칸은 얼마 지나지 않아 1917년 몽골을 지원하던 제정 러시아가 러시아 혁명으로 붕괴하자 중화민국은 1919년 10월 쉬수정의 변방군이 복드칸국으로 출병하여 다시 중화민국으로 복속되어 중화민국 대총통 쉬스창의 사진에 절하는 수모도 겪는다.

이에 담딩 수흐바타르와 허를러깅 처이발상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인민혁명당을 창설하여 1919년 12월 29일부터 몽골 국가원수로 재임하면서 독립운동을 한다. 이때 1920년 9월 일본군의 지원을 받는 러시아 적백 내전에서 쫓기던 백군 잔당 운게른 슈테른베르크 남작(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몽골의 공산주의자들을 처형할 때 이태준열사도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형했다.)이 몽골의 독립을 돕겠다고 하여 합작을 결정하고 1921년 2월 몽골 수도를 점령했다.(복드칸의 지위가 복귀되지 않고 운게른 슈테른베르크가 몽골을 통치한다)
그러나 공산주의자였던 담딩 수흐바타르와 허를러깅 처이발상은 몽골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몽골인민당을 창설하여 소련 적군의 지원을 받아 중국군 잔당을 소탕하고 운게른 슈테른베르크를 격파하여 1921년 7월 수도를 탈환한다. 이후 공산국가의 군주제의 군주는 일반적으로 폐위되거나 처형당한 것과 달리 몽골 독립에 기여하고 몽골 민중의 존경을 받아 1921년 12월 29일부터 1924년 5월 20일 병사할 때까지 몽골 국가 주석을 역임하고 복드칸 겨울 궁전에서 생활했다. 물론 실권은 공산당의 담딩 수흐바타르와 허를러깅 처이발상에게 있었다.(같은 해에 담딩 수흐바타르도 병사하고 소련 스탈린의 도움을 받아 허를러깅 처이발상이 몽골인민공화국을 만들고 실권을 잡고 1952년 병사할 때까지 독재정권을 유지했다.)

복드 칸 궁전으로 들어가는 '개선문'과 '평화의 문' 모습. 

 

 

개선문 정면에는 모든 방향으로부터의 위험이나 사악한 기운을 막아준다는 '얌파이'라는 수호문이 있는데, 벽돌로 만든 벽 양쪽으로 쌍용이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희롱하고 있는 모양이 양각되어 있다.

 

 

궁전의 정문 격인 '평화의 문'으로 들어가 전에 있는 개선문으로, 중국치하에 있다가 신해혁명을 개기로 독립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문이라 한다. 

 

"무한한 우주의 선한 기운이 영원히 평화롭게 이어지길 기원합니다"라는 의미의 몽골 문자 비석.

 

앞면에는 부처님과 두 제자가, 뒷면에는 얽혀 있는 한 쌍의 용이 새겨진 석상. 

 

궁전의 정문인 '평화의 문'. (세 개의 개방형 파빌리온 문 안내판)

 

사천왕상이 지키는 문.

 

사천왕상의 모습이 섬세하며, 피부 색깔이 희고, 붉고, 검고, 노랗고 지닌 악기와 무기도 각각 다르다.

 

보수공사 중이라 관람이 불가한 본당 전각. 

 

아풀리케 사원이란 안내판이 있는 좌측 부속 전각.

 

지그트 나암리 미술 / 아플리케 사원 안내판.

 

탕가스 사원이란 이름의 우측 부속 전각. 

 

탕카스 사원 안내판.

 

 

우측 부속건물 뒤로 돌아서 들어가니 복드칸이 실제 기거했던 궁전 (Winter Palace) 건물이 나오는데, 지금은 박물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서 당시 칸과 왕비가 살았던 침실, 거실, 식당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의복과 생활용품을 포함하여 마차, 가구 등 실제 사용했던 물건도 함께 볼 수 있다.

 

러시아풍 겨울궁전 안내판. 

 

칸이 외국에서 받은 선물들이 많다. 

 

복드 칸이 150마리의 표범가죽으로 만들었다는 게르는 보통의 게르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호화로워 보인다.

 

 

박물관을 끝으로 복드칸 궁전 관람을 마치고 몽골 전통공연을 관람하러 간다. 

 

 

몽골 전통음악과 무용 등을 관람하기 위해 Ganzam Palace(간잠 공연예술극장)에 도착하여 가이드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입구로 들어서니 몽골 전통복장의 무용수가 직접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데, 

 

벽에는 역대 몽골 지도자들 사진이 걸려 있고, 

 

은은한 몽골 전통음악이 로비에 흐르고 있다. 

 

<Ganzam Palace의 몽골 민속공연>
몽골 전통 음악, 춤, 마두금, 후미, 탈춤 등 몽골 유목 생활에서 만들어진 문화 및 전통공연뿐만 아니라 몽골 여러 민족의 색갈이 담긴 몽골 전통 옷, 캐시미어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연이다. 공연은 약 80분 정도 진행되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몽골 존경의 무용 (몽골 옛 귀족들의 인사, 존경 예의나 예절을 주제로 한 무용)
2. 몽골 전통 장가 (몽골 백성이 많이 존경하는 노래의 종류)
3. 마두금 (두 현악기로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몽골인들이 많이 존경하는 몽골의 대표적인 악기)
4. 후미 (입 또는 목소리로 연주하는 예술의 종류)
5. 탈춤 (몽골 불교의 전통 민속 무용)
6. 컨토션 (몽골 컨토션은 세계 서키스 묘기의 일부로 아주 유명)
7. 몽골 여왕들의 전통 옷 및 캐시미어 옷으로 구성된 패션쇼.
8. 샤먼 춤 (하늘과 땅, 자연 숭배를 주제로 한 춤)
9. 찬미 (자연을 찬미하여 노래하는 몽골인들이 아주 존경하는 구비문학의 한 종류)
10. 전통 민요 및 음악
11. 비엘게 춤 (서몽골인들 중에 퍼진 아주 옛날 전통 춤)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가운데쯤의 좋은 좌석을 잡았는데, 금세 넓은 공연장이 한국인 여행객들로 매워지더니 몽골 전통민속공연이 시작된다. 

 

마지막에는 공연을 펼친 전 단원이 나와 아리랑을 연주해 주어 이곳을 찾은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더 큰 기쁨과 감동을 안겨준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도 그들의 정성과 배려에 부응하기 위해 연신 '브라보'를 외치며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큰 기대를 안 했지만 1시간 20분이 금세 지나가버렸다. 의상도 예쁘고, 전통 춤 동작도 경쾌하고 인상적이었으며, 전통 노래도 특이하고 악기들의 소리도 아름다웠다. 활달하고 여유가 있는 몽골 유목민들의 전통적인 정서와 느낌을 경험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유익하고 좋은 시간을 가졌다. 

간잠 궁전(Ganzam palace)

 

 

민속 공연을 보고 나니 저녁식사 시간이다. 그런데 내일 새벽에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환전해 온 투그릭을 소비할 시간이 없다며 몽골 국영백화점을 들른 후 늦은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다.  

몽골 국영백화점(Ulaanbaatar State Department Store)

 

<몽골 국영백화점(Ulaanbaatar State Department Store)>
몽골 국영백화점은 울란바토르의 중심 거리인 피스 애비뉴(Peace Ave)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1920년대 세워진 몽골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5층으로 이루어진 국영백화점에서는 다양한 나라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한국 제품이 다수를 차지한다. 5층에는 관광객을 위한 토산품점이 있고, 1층에는 슈퍼마켓이 있다.
주요 쇼핑 아이템으로는, 고비사막을 대표하는 낙타인형과 양, 염소, 낙타 등의 몽골 동물이 담긴 마그네틱 기념품. 그리고 유목민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 등이 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캐시미어와 보드카가 인기 있다. 

 

 

국영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니 우리나라 대도시 백화점과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데, 한국 여행객들이 꼭 사야 할 품목은 딱히 눈에 띄지 않아 가진 투그릭으로 보드카 두 병을 샀다. 

 

 

Harley's grill and lounge에서 썩 훌륭한 저녁식사를 하며 몽골 고비사막 여행을 마무리한다. 

 

 

몽골 여행을 마무리하는 두 시간여의 긴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 10시간 넘어서야 Chinggis Khaan Hotel에 체크인하여 몽골에서의 마지막 잠자리에 든다. 

 

 

몽골어로 '고비'라는 말은 '황무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삼천리 금수강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두고 굳이 황무지인 고비사막을 찾은 이유라면, 

호기심이라는 근원적인 욕구도 있었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란 어떤 것인지를 맛보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다.

만약 이번 여행의 목적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경험하기 위함이었다면 충분히 그 목적을 이룬 듯하다.

 

이제 몇시간 후에는 생존을 위해서는 뭔가를 해야만 하는 세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제부터 바쁜 일상에 다시 적응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짧은 시간의 꿀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그 첫 번째를 시작한다.

 

 

 

*** 귀국 일정 모습 ***

 

잠깐의 쪽잠이나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자고는, 칭기즈칸 공항에서 아침 08:40에 출발하는 인천행 비행기 탑승을 위해 일어나 부리나케 준비를 하여 호텔 로비로 내려오니 부지런한 분들이 벌써 대기하고 있는 차에 짐을 싣고는 기다리고 있다.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호텔을 뒤로하고 50km 정도 거리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을 향해 달리는데, 몽골도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지 새벽을 밝히는 불빛이 발전하는 몽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그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는, 

 

거의 대부분이 한국인 여행객인 인파에 뒤섞여 출국 수속을 진행한다. 

 

우리가 타고 갈 몽골항공 여객기. 

 

 

탑승 수속을 1시간 정도에 마치고 탑승구 앞에서 2시간여를 대기하다가 몽골항공에 탑승하여, 

 

몽골 칭기즈칸 국제공항을 이륙하여 인천으로 향한다. 

 

 

그리 오래라는 느낌도 없이 서해에 떠 있는 덕적도가 내려다 보이더니,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몽골 고비사막 여행 일정을 마감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뒤풀이를 하려 간다는 일행들과 헤어져, 

일주일 넘게 밀린 일을 정리하러 일터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는다. 

 

 

금번 몽골 여행에서 드넓은 초원에서 벌어지는 '나담축제'를 보고, 

황량한 고비사막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내 삶에서 경쟁과 도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한번 더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