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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호미기맥 04차(추령~성황재) : 정상석이 없는 마루금 산행

by 재희다 2024. 6. 30.


산행장소 : 호미기맥 04차(추령~성황재) 경북 경주시, 포항시. 

산행일시 : 2024. 03. 09.(토) 
산행코스 : 추령(310m) ~ 338봉(헬기장) ~ 393봉 ~ 497.3봉 ~ 506.7봉(헬기장) ~ 494.2봉 ~ 수렛재 ~ 함월산(584.0m) ~ 습지 갈림길(무장봉 갈림길) ~ 592봉(삼면봉) ~ 481.9봉 ~ 송전탑 ~ 성황재(14번 국도) ~ 성황재 휴게소 (약 13km, 7시간 소요) 

산행참석 : 18 백두.

 

<산행지도>

 

 

높이뛰기나 멀리뛰기를 할 때 도약력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일정 수준의 달림길을 달리게 되는데, 구름판이나 계측 기준점에 발을 맞추기 위해 보폭을 조절하게 된다. 백여 킬로미터의 호미기맥 종주를 각 구간별 산행난이도를 일정수준에 맞추어 진행하기 위해서, 이번 구간은 등로의 난이도가 무난함에도 불구하고 보폭을 줄여 짧은 산행을 공지했다. 등로의 많은 부분이 5년 전 운토종주길에서 걸었던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무박산행으로는 좀 짧은 거리라서 그런지, 평소 산행에서 느끼던 부담감도 없다. 

그렇게 이번 산행은 못처럼 찾아온 휴가쯤으로 여기며 산행 출발일을 맞았는데, 산행 출발일 정오 무렵에 각별한 친구 모친께서 별세하셨다는 부고가 왔다. 빈소가 경주시 안강읍이라 다른 친구들에게 조문 시간을 토욜 저녁으로 맞추자고 부탁하여 산행을 마치고 포항에서 바로 빈소가 있는 안강으로 가서 조문하기로 한다. '역시나 내겐 잠시의 느긋함도 허락되지 않는가 보다'라는 푸념을 내뱉으며 다시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배낭을 메고 양재에서 산행 버스에 오른다. 

 

 

산행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아서인지 버스가 양재를 출발하자 바로 잠이 들어 새벽 3시 반쯤에 산행 들머리인 추령에 도착하여서야 눈이 떠졌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지, 오늘 추령 아래 시부거리에서 하차하여 동대봉산을 거쳐 무장봉 억새밭에서 아침일출을 보겠다던 김전무와 유박사님도 잠에 취해서 시부거리에서 내리지 못했던 듯, 추령에 도착한 버스에서 불도 밝히지 못하고 조용히 배낭을 메고 버스를 내려 시부거리 방향으로 떠난다. 

 

 

동대봉산을 향해 떠나는 두 분을 보내고는 불꺼진 차 안에서 두 시간여를 더 뒤척이다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고서 버스문을 나서니 그나마 옛고개의 분위기를 연출하던 '백년찻집'도 불이 꺼져 고갯마루의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추령(楸嶺, 310m)>
경상북도 경주시 황룡동과 문무대왕면면 장항리를 잇는 고개다. 속칭 가내동재라고도 하는데, 순우리말 이름인 가내고개를 '가래나무 추(楸)'와 '고개 령(嶺)' 등 한자의 뜻을 따서 표기한 것이다. 또한 서낭당이 있어 서낭재라고도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경주)에는 동쪽 25리에, 『동경잡기』에는 동쪽 30리에 있다고 나온다. 『해동지도』(경주)에는 경주의 중심지에서 동해안을 연결하는 도로가 추령이 아니라 더 북쪽의 기림사 방향으로 돌아가는 고개로 묘사되어 있었다. 반면에 『대동여지도』에는 경주의 중심지와 동해안을 연결하는 중요 도로가 추령을 통과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경주시내와 동해안의 문무대왕면(양북면)·감포읍 지역을 연결하는 최단 코스이자 가장 낮은 곳이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 4번 국도가 추령을 지나가게 건설되었다. 1998년에 추령터널이 개통되면서 고개는 별로 이용되지 않게 되었다.

 

'백년찻집' 맞은편 함월산 방향 들머리 주변에는 과객들의 눈길을 기다리는 볼거리들이 널려있다.  

 

 

매섭게 추웠던 기억이 거의 없이 지낸 겨울도 이제는 막바지라서 그런지, 신새벽임에도 바깥공기가 매섭다는 느낌보다는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백년찻집 맞은편 정원 안쪽 '생태복원을 위해 출입을 금한다'라는 팻말이 걸린 금줄을 넘어, 

 

흙이 드러난 가파른 사면으로 오르며 호미기맥 네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가파른 사면길을 따라 추령 절개지 상단에 올라,

 

완만해진 능선길을 따라 콘크리트 참호와 교통호가 조성되어 있는 작은 봉우리를 지나고, 

 

성황당 흔적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있는 안부를 지나 고만고만한 능선봉이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다가, 

 

제법 가팔라지는 오름길을 막아서는 암릉을 우회하여 지나고, 

돌아본 토함산 방향
붉게 물들어 오는 동쪽 방향의 능선

 

다소 가팔라진 오름길을 오르니 역암 바위가 있는 393봉을 지나게 된다. 

좌측 모차골과 동대봉산 방향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다가 좌측 아래에 추원사가 있는 능선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며 내려서는데, 

 

우전방 능선 너머에서 아침 일출을 준비하는 동해가 붉은 불길에 휩싸인 듯 보이고,  

가야할 506봉 방향
좌측 모차골과 동대봉산 방향

 

앙상한 나뭇가지의 방해가 귀찮을 뿐인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는데,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자 가야 할 506봉 좌측 함월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모차골의 추원길이 선명하고, 

 

어둠이 밀려난 완만한 능선길을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으며 천천히 따르다가, 

 

능선 우측의 파묘 자리로 보이는 공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커피를 나누며 여장을 정비하기로 하는데, 

찬바람도 새벽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그런지, 걸음을 멈추어도 한기가 밀려들지를 않는다. 

 

 

잠시의 쉼을 뒤로하고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다가 봉토가 드러나 보이는 파평윤씨 묘지를 지나, 

 

앙상한 나무들이 서성이는 호미기맥 능선을 따르는데,  

 

동쪽 감포 방향 능선 너머의 붉은 기운이 더욱 짙어지더니, 

 

짙어지던 붉은 기운에서 마침내 2024년 3월 9일의 태양이가 태어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태양이의 탄생을 지켜보는 백두들

 

 

420고지쯤을 좌회하여 오르다가 돌아보니 토함산은 어느새 멀찍이 나앉아 있고, 

 

멧돼지의 놀이터 나무쯤을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면,  

 

동해에서 솟아오른 저 붉은 태양빛이, 

 

토함산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앉은 석굴암의 부처님 얼굴에도 훤히 비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잠시 더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가팔라진 오름길을 오르면, 

 

한때는 헬기장이었던 듯 편평한 터에 잡목이 빼곡하게 들어찬 497.3봉에 도착하여,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붉게 비춰오는 태양이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497.3봉을 내려서서 좌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면, 

 

잡목에 덮인 폐헬기장이 자리한 506.7봉을 지나게 되고, 

 

다시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자, 

 

앙상한 참나무가 빼곡한 둥그런 안부를 지나게 되는데, 따르던 등로는 좌틀하여 계곡 방향으로 이어지고 직진의 능선 방향으로는 길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기맥길은 정면의 460봉쯤을 올랐다가 좌틀하여 내려서야 하지만, 대부분의 기맥꾼들이 이곳 안부에서 좌틀하여 마치 계곡으로 내려서는 듯한 느낌이 드는 등로를 따라 진행한다. 

묘지가 있는 494.2봉 방향

 

 

계곡길 같은 느낌의 등로를 따라 내려서다가 안부를 지나, 

 

다시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다가 바위가 듬성듬성한 등로를 지나면, 

 

기맥길은 우틀하여 아래로 이어지는 494.2봉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묘지가 자리하고 있어서 널찍하니 아침식사 장소로 적당할 듯하여 좌측 30m 지점의 494.2봉으로 오르니, 

 

묘지 한켠에 삼각점이 자리한 널찍한 묘지봉인 494.2봉에 도착하는데, 인근에서 꾀나 높은 봉우리라 그런지 찬바람이 조금씩 불어서 금방 체온이 내려갈 듯하여 인증만 남기고 양지바른 아침식사 장소를 찾아 다시 기맥길을 이어간다. 

 

 

산행거리가 짧아서 느긋하게 진행한 탓에 이미 평소보다 아침식사가 많이 늦어진 상태라, 서둘러 494.2봉 갈림길로 돌아나와 수렛재를 향해 기맥길로 들어서서, 

 

494.2봉을 내려선 안부 우측 사면이 완만하고 찬바람이 불지 않는 남동사면이라 햇살도 잘 들어서, 

 

푹신한 낙엽이 깔린 양지바른 사면에서 늦어진 아침식사를 한다. 

 

 

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 되지만 평소와 같은 30여 분간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기맥길로 들어서서,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올라 참호의 흔적이 남아있는 458봉을 지나, 

돌아본 494.2봉(우) 방향

 

빼곡한 잔가지들의 방해를 뿌리치며 수랫재로 내려서는데, 

 

가야 할 함월산이 우전방으로 건너다 보이더니, 

 

각종 안내판과 금줄이 쳐진 수렛재를 지나게 되는데,

우리가 지나는 호미기맥 또는 운토종주 등로는 모두 경주국립공원 내의 출입금지 지역에 해당되는 모양이다.

 

<​수렛재>
경주시 황룡동에서 문무대왕면 호암리를 잇는 고개로, 수레가 넘어 다녔던 고개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신문왕이 모차골에서 세수방으로 넘어갔던 고개라고 하며, 이곳에서 좌측은 모차골(추원사) 방향이며, 우측은 불령봉표 방향이다. 이정표와 산행지도 그리고 지명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있는데, 안내판에 적힌 수렛재의 유래를 보면 급한 경사길에서 수레를 끌던 말들이 꼬꾸라져서 수렛길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수렛재는 '왕의 길'이 지나는 고개다. 신라 신문왕이 부왕 문무왕의 뜻을 따라 감은사를 짓기 위해 지난 길이었고, 옥대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어 왕궁으로 돌아왔던 길이기도 하였는데, 감은사에서 기림사를 지나 용연폭포, 불령봉표(佛嶺封標)를 지나 이곳 수렛재를 거쳐 추원사, 모차골, 추령을 넘어 토함산으로 이어지는 왕의 길이 등산로로 정비되었다. 

 

<모차골>
마차가 다닌 곳이라 하여 '마차골'이라 불리다가 '모차골'로 변했다고 한다.

<세수방>
신문왕이 긴 여정에 잠시 쉬며 손을 씻었던 곳이라고 한다.

 

<용연폭포>

신문왕이 받은 옥대의 용 장식 하나를 시냇물에 담그니 진짜 용이 되어 승천하고 깊은 연못과 폭포가 생겨났다고 한다.


<불령봉표석(佛領封標石)>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불령고개에 있는 조선시대 봉표석(封標石)으로 가로 1.2m, 세로 1.5m의 화강석 바위 표면에 '연경묘향탄산인계하불령봉표(延慶墓香炭山因啓下佛嶺封標)'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1831년(순조 31) 10월에 새긴 것으로, 순조의 아들 익종(翼宗:1809~1830)을 모신 연경묘의 봉제사와 그에 따른 경비를 조달하는 산이니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불령고개 주변은 조선 후기 고급 숯인 백탄(白炭)의 생산처로 알려져 있는데, 백탄을 만들기 위해선 나무가 많이 필요했으므로 벌채를 막기 위하여 봉표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펌) 

 

우측 용연폭포와 세수방 방향
지명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설명판이 있는 좌측 모차골 방향
돌아본 수렛재에서 출입금지 구역이라 주저하는 백두들

 

 

수렛재에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봉분이 낮아진 묘지를 지나고, 

 

둥글둥글한 바위 지대를 올라,  

 

잔가지가 무성한 526봉을 지나 잠시 내려서다가 다시 오르면, 

 

'549.8봉을 지나게 되는데,

운토종주 산객들은 반드시 들러가는 봉우리 좌측 사면의 형제바위 전망대를 잠시 들렀다가 가기로 한다. 

우측으로 보이는 함월산 방향
좌전방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무장봉 방향

 

 

봉우리 서쪽 바로 아래에 있는 형제바위 전망대에서 운토종주 산객들이 옛날 화랑들이 이곳에서 심신을 수련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남기는 인증사진을 우리도 남겨보기로 하고 몇 차례의 시도를 해 보았지만 모델의 포즈가 영 시원치가 않다.

산행 후반부 작은함월산에서는 제대로 된 포즈를 보여줄 듯..

 

 

무위에 그친 옛 화랑의 멋진 모습을 제연하려는 시도는 나중을 기약하고,

549.8봉으로 돌아올라 완만한 바위지대 능선을 따르다가, 

 

제법 큼직하고  둥글둥글한 바위들을 우회하여 내려서서,  

 

다시 육산의 모습으로 바뀐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다 보면 능선길 같지 않은 펑퍼짐한 곳에 'Y'자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좌측 사면 방향은 함월산 우회길로 보여 우측 함월산 정상 방향의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면, 

 

펑퍼짐 한 정상부 가운데에 나무판자 정상 표시와 새로 생긴 작은 정상석이 있는 함월산(584.0m)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기림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기맥길은 좌틀하여 진행해야 한다. 

 

<함월산(含月山, 584m)>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에 있는 산으로, '품을 함(含)'자에 '달 월(月)'자이니 '달을 머금은 산'이라 하겠다. 토함산을 태양에 비유하며 그와 마주보고 있는 함월산을 달에 비유한다. 산이 자리한 곳은 경주의 동쪽 지역으로 감포 앞바다가 시린 쪽빛으로 보이는 곳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쪽으로는 토함산과 맞닿아 있고 북쪽으로는 포항 운제산과 같은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아마 그런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세 산은 굉장히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천년 고찰과 함께 한다는 점이다. 토함산이 불국사를, 운제산이 오어사를 품고 있듯이 함월산 역시 기림사와 선무도로 유명한 골굴사라는 고색창연한 명찰을 산자락에 안고 있다. 
일설에는 천(天)의 본뜻인 '한밝'이 한박(寒朴) 혹은 함박(含朴)으로 되었으며 함월(含月), 즉 함달(含月)도 함박에서 분화된 말이라고 한다. 남쪽은 추령(楸嶺)을 지나 토함산(吐含山), 북쪽은 운제산(雲悌山)으로 이어진다. 정상 부근은 바위가 많아 험준하지만 대부분 완만한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망이 좋아 정상에 서면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적광전(보물 제833호), 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 삼신불(보물 제958호), 복장유물(보물 제959호) 등이 소장된 신라의 유서 깊은 절 기림사(祇林寺)와 암벽에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을 새겨놓은 석굴사원 골굴사(骨窟寺)가 있다.   

 

 

 

함월산 정상의 한량없는 느긋함을 뒤로하고 급좌틀하여 제법 가파른 내림길로 들어서면, 

고도가 높고 북사면이라서 그런지 잔설이 남아있고, 

 

걷기 좋은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다가 약간 올라 잡풀이 덮어버린 폐헬기장으로 보이는 파묘터를 지나면, 

 

이내 552봉 우회 갈림길이 나오는데,

20m 높이의 552봉을 올라도 별다른 조망도 없다기에 우측 우회길로 진행하면 앞쪽으로 가야 할 570봉이 보인다.

 

 

525봉을 우회하여 완만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570봉을 향한 급오름길로 들어서면 급경사의 참나무 군락지 사이로 족적이 흩어져 있어서 잘 살펴 오르면, 

 

참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봉우리 정상부를 몇그루의 소나무들이 지키고 있는 570봉을 지나게 되고, 

 

잠시 완만한 내림길 능선을 따르다가 우측으로 휘어지며 급경사 내림길로 들어서는데, 좌측으로 아래 갈림길에서 무장봉으로 향하면 오르게 되는 614봉이 건너다 보이며,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수북한 낙엽을 밟으며 내려서면, 

 

좌측 운토종주 무장봉 방향 갈림길 안부에서 호미기맥은 직진의 545봉으로 이어가게 되는데, 

 

이곳 무장봉 갈림길에서 좌측 운토종주길로 가면 무장봉과 운제산으로 연결되는 곳으로, 이곳 안부 좌측 아래의 '함월산 습지'는  경주국립공원에서 '자연 생태계 및 자연경관 보호'를 위해 출입금지 구역으로 설정 관리하고 있다. 습지에는 작은 웅덩이를 비롯한 습지가 생성되어 있고, 버드나무를 비롯한 수생 생물이 관찰된다고 한다. 

 

새벽 추령에서 시부거리로 내려가서 동대봉산과 무장봉을 다녀온 분들이 미리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 

 

 

운토종주 갈림길 안부에서 거친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 

 

별다른 특징이 없는 545봉을 지나고, 

 

펑퍼짐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는데 주변이 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완전한 평지로 능선 구분이 불가능하여, 

 

대충 우전방으로 방향을 정하고 가끔씩 나타나는 표지기를 발견하는 재미를 가지며 진행하다가, 

 

우측이 급경사 낭떠러지라 좌측으로 진행하라는 표지기의 인도를 받아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하여, 

 

그저 편평하여 길 구분이 안 되는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리쬐는 햇살에 껴입었던 외투를 벗어 배낭에 갈무리하고는 잠시 더 완만한 사면을 오르면

 

좌측 무장봉에서 오는 능선 등로에 합류하여 우측으로 한결 뚜렷해진 등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고, 

 

590봉쯤의 봉우리를 좌회하여 지나면, 

 

좌측으로 옛날 운토종주 산행에서 올랐던 무장봉이 조망되더니, 

 

<무장산>
경주시 암곡동에 있는 산으로, 1990년대만 해도 경주시민들도 잘 모르는 해발 624m의 평범한 산이었다. 이 산이 유명해진 것은 정상인 무장봉 일대에 있는 억새 군락지 덕분이다. 1970년대 초부터 동양그룹이 운영한 오리온 목장이 1980년대 비업무용 토지 강제 매각 조치에 따라 모 축산회사에 팔려 1996년까지 운영되다가 문을 닫은 뒤, 목초지에 억새 군락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면 계곡 단풍과 정상부 148만여㎡ 땅에서 억새가 흩날리는 장관이 점차 입소문을 타게 되었는데, 드라마 '선덕여왕'과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와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촬영된 곳으로 알려지면서 탐방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맑은 날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떨어진 포항 시가지와 동해도 볼 수 있다. 산 중턱에는 신라가 통일 후에 무기를 묻었다고 알려진 무장사지가 있는데, 현재 무장사지 삼층석탑과 귀부가 남아 있다고 한다.  

가야, 고려, 조선은 대략 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신라 1000년의 창대한 역사와 문화는 지금도 옛 서라벌과 그 인근 땅에 남아있다. 경주 황룡동 절골 입구 사시목에서 동대봉산 정상과 억새군락(옛 오리온농장) 있는 무장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태종 무열왕(김춘추)이 삼국을 통일한 7세기 중엽 투구와 병기를, 낮에도 음달인 암곡(暗谷) 저 깊고 가파른 골짜기 속에 갈무리하고 무장사를 지었다고 13세기말  일연선사가 쓴 삼국유사 3권 탑상(塔像)편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 편찬당시 미타전(彌陀殿)은 파괴되어 있었지만 무장사는 존재했다고 한다. 현재는 미타전 기단부 편석, 3층석탑과 절터만 있을 뿐이다. 근대(1915년)에 와서 미타전 건립사적비가 발견되어 그 비문 내용에 무장사임이 밝혀져, 이곳이 삼국유사에서 기술된 무장사 터임이 1200여 년 후에 비로소 후세에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살짝 당겨본 무장봉 억새군락지 조망

 

이내 경주시와 포항시가 만나는 591.4봉에 도착하는데, 

호미기맥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성황재를 향해 내려가게 된다. 

 

<591.4봉>

경주시를 지나온 호미기맥이 포항시를 만나는 봉우리로, 우측은 경주시 양북면이 그대로 이어지지만, 좌측이 경주시 황용동에 이어 암곡동이 직전의 무장산 방향 갈림길 지점에서 포항시 오천읍으로 바뀌는 곳이다. 북동진하던 호미기맥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성황재를 향해 급하게 내려가게 된다. 

 

 

 

나무가 둘러져 있어서 별다른 조망이 없는 591.4봉에서 우측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서다 보면, 

 

좌측으로 지능선 갈라지는 지점의 'Y'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포항시 경계 표지판이 걸려있고, 

 

좌측 포항시 오천읍 방향 산그림 속에서 동해고속도로와 오어지(吾魚池)가 살짝 보이더니, 

 

등로 좌측 아래로 깊은 산사태 절개지가 80여 미터나 이어지는 산사태지대를 조마조마하며 지나게 되는데, 

 

대규모의 지진으로 땅이 무너져내려 산의 일부가 날아간 느낌으로, 아래로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곳의 지질이 마사토로 화강암이 풍화되어 생성된 흙으로 작은 지진에도 쉽게 틈이 생기고 빗물이 쉽게 스며들어 무너져 내리기 쉽다고 한다. 

 

 

산사태 지대를 지나면 등로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이어지다가, 

 

봉우리 같지 않은 밋밋한 411봉쯤을 지나고, 

좌측으로 보이는 491.4봉에서 동쪽 오천읍 방향으로 뻗은 능선 조망

 

평탄하게 이어지는 수레길 수준의 등로를 따라 편평해진 묘지가 있는 399봉쯤을 지나서, 

 

완만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작은 봉우리를 오르면, 

 

좌측 멀리로 운제산쯤이 조망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좌측으로 지능선이 분기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다가, 

 

묘지 직전 널찍한 공터에서 배낭을 내리고 배낭에 고스란히 남겨진 떡과 과일을 나누며 배낭 무개를 줄여본다. 

 

 

쉬지 않아도 되는, 쉬는 게 오히려 부담스러운 쉼을 뒤로하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돌아본 591.4봉 방향

 

폐헬기장을 지나서, 

지나온 594.1봉 방향

 

잠시 더 완만해진 능선길을 오르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로 묵은 헬기장 나무둥치에 491.9봉 산패가 걸린 봉우리를 지나는데, 

 

이 491.9봉에서 좌측이 성황재 방향의 기맥길이고, 우측은 작은 함월산을 지나 기림사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갈라지는 지점이라, 우측 350m 지점의 '작은 함월산'을 다녀오기로 한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조금 올라 어린 소나무가 자라나는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잘록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암릉을 좌회하여 오르면, 

 

둥글둥글 바위들이 옹기종기 햇살을 쬐는 능선지대가 나오며, 

지나온 헬기장봉 방향
우측으로 보이는 지나온 호미기맥 능선 방향
지나온 함월산 방향

 

어엿한 정상석이 자리한 작은함월산 정상이 나타난다.

 

<작은 함월산(498m)>
경주시 문무대왕면 호암리의 산이다. 기림사가 있는 골짜기 건너편의 함월산(584m)에 비해 높이가 낮아서 작은 함월산이라 부르는 듯한데, 정작 함월산(584m) 정상에는 '함월산'이라 적힌 초라한 나무판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지만, 이곳 작은 함월산(498m)에는 어엿한 화강함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고, 주변에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널려있어서 북쪽 지나온 호미기맥 능선 방향으로는 조망도 시원하게 트인다. 

 

 

남서쪽 함월산과 토함산 방향.

살짝 당겨본 토함산에는 지난 산행에서 밟았던 잔설이 남아 있다.

 

함월산 오름길 형제바위 전망대에서의 포즈와 비교해서 일취월장한 교육의 성과.

 

 

교육의 성과에 흐뭇한 마음으로 491.1봉 작은함월산 갈림길로 돌아나와 우틀하여 내림길로 들어서서, 

 

등로가 깊게 파인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는데, 

 

우전방 나뭇가지 사이로 울산포항간고속도로가 보이고, 

 

이내 완만해진 능선길을 따르면,  

 

마사토 흙이 드러나 있는 평퍼짐한 441봉 헬기장에 올랐다가 좌측으로 휘어지며 내려서고, 

 

다시 등로가 깊게 파인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다가, 

 

경주 월성에서 포항으로 이이지는 송전탑 아래를 지나 완만한 수레길 수준의 등로를 따르면, 

살짝 당겨본 포항 방향

 

숨은그림 찾기 : 겨울에 나타난 도마뱀은 어디에? 

찾으셨지요!

 

좌측 포항시 오천읍 방향 조망이 시원스레 트이는 봉우리를 지나 잠시 더 내려서면, 

 

넓은 임도에 접속하여 이후 좌측 임도를 따라 성황재까지 내려서게 된다.

 

 

최근에도 차량이 다닌 흔적이 있는 넓은 임도를 따르다가, 

 

김녕김씨 문희(상서공)파 선영을 지나고, 

 

또 다른 송전탑 좌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성황재에서 도로로 나서는 날머리 철망문이 앞을 막아서는데 철망문 좌.우 어느 쪽으로 가도 우회가 가능하지만, 

 

좌측 표지기가 몇개 걸린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길흔적을 따르다가, 

 

철망펜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 가드레일을 넘어 '14번 국도 기림로'로 나서면, 

 

우측으로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성황재 고갯마루가 보이고, 

 

<성황재>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양북면)에서 포항시 오천읍을 잇는 '거제 포항선'이라고도 하는 14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다. 고개 북쪽 아래에 휴게소가 있을 정도로 붐볐던 고개였는데, 지금은 고개 밑으로 울산 - 포항 간 65번 도로인 '동해고속도로'의 '양북 5터널'이 이어지고 있어서 한산한 고개로 바뀌었다. 성황재란 명칭은 옛날 성황당이 있어서 그리 불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성황재에서 포항 방면으로 100m 정도 내려간 지점의 간이 휴게소 입구에 해병대 1사단 장병들이 1979년 완공하였다는 '영월로' 개통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성황재 간이 휴게소'가 있는 좌측으로 내려서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애마에 오르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 

'영월로' 개통기념비 앞에서 기다리는 우리의 애마
'영월로' 개통 기념비

 

<영월로(迎月路)>
울창한 나뭇가지들이 기암절벽을 껴안았던 이곳 험준한 계곡에 한가닥 생명선처럼 길고도 선명하게 트인 이 길을 이름하여 영월로! 이 길은 계곡에 흘린 녹색 제복들의 땀방울만큼이나 그 활용도가 지대하거늘 대간적전의 통로에서 지역산업화 도로로써 동맥이 될 것이며, 부처님의 전당 기림사로 들어가는 나그네들은 이 성황재에서 적삼을 풀고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땀을 식히리라. - 지은이 윤관신 서기 1979년 3월 - 

 

 

 

포항시 오천읍의 문덕온천하와이에서 땀을 닦고, 

형산강 전경

 

대구포항간고속도로 포항 IC 인근의 누리마을 감자탕에서, 

 

감자탕으로도 뒤풀이가 가능함을 새삼 깨달으며, 

 

나름 푸짐한 뒤풀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분들과 헤어져 시내버스를 타고 말없이 홀로 안강으로 향한다. 

 

 

안강의 상가집에 친구들과 만나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 후에 이어진 주제가 의대정원 확대에 따른 의사들의 집단행동 예기였다. 지난달 초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함에 따라,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에 이어 의대 학생들의 집단휴학과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최고 지성들이 이미 최고의 수익을 누리고 있는 의사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 전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협박만 일삼을 게 아니라 정부의 정책보다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의사들이 현재의 소아과 오픈런, 필수의료 부족, 응급실 문제, 지방병원 문제 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가 과학적이지 않다는 주장만으로 국민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돈 많이 버는 국민 협박범'보다는 '국민의 존경 받는 지도층'으로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편협한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