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금남호남정맥 01차(영취산~수분재) 장수군 계남면, 장수읍, 함양군 서상면.
산 행 일 : 2008. 10. 25.(토)
산행코스 : 영취산 ~ 무령고개 ~ 장안산 ~ 밀목재 ~ 사두봉 ~ 수분재
(도상거리기준 20.3km)
산행참가 : 24명.
<산행지도>
지난 9월까지 근 일년여 남짓한 동안 피재에서 몰운대까지의 낙동정맥길을 걸으며 경상도의 투박하고 억세면서도 정감어린 지역색의 자취들을 더듬었고, 이제 다시금 호남정맥을 새로이 시작하여 넉넉한 호남 인심의 근간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느껴보려 한다. 본디 낙남정맥을 마져 둘러보고 호남정맥을 걸으려고 계획을 하였으나, 작금의 유가 상승에 이은 금융시장 혼란에 따른 환율 상승으로 우리 애마(버스)의 먹이 값이 비싸지는 바람에, 좀 더 적절한 방안을 궁리하다가 호남정맥을 우선 돌아보며 여유를 갖기로 했다.
선인들이 호남정맥이라 명명한 구간은 주화산에서 시작하여 호남을 두리두리 어울러서 지리산 아래 백운산까지를 이르나, 최근의 선답자들이 이를 백운산 기슭이 강으로 목감가는 섬진강 강가에 자리한 망덕포구까지로 연장하였고, 우리는 그 출발점을 대간에서 출발하는 금남호남정맥 구간을 추가하여, 영취산에서 망덕포구까지 총 525km(도상 기준)를 걸으려 한다.
호남정맥에서 만나는 지역 지명 중에는 전라도 사투리에 기인한 지명과 백두대간의 고산지역에서 만나는 고개인 령(嶺)이나 봉(峰) 대신에 높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치(峙)라는 이름을 자주 만나게 된다. 백두대간이 남성적이라면 호남정맥은 다분히 여성스러움과 숨겨진 여인의 자태로 다가올 것이다.
호남정맥 구간은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에서 온 전라도라는 행정 구역상의 이름과, 호강(湖江, 지금의 금강) 이남의 지역이라는 의미로서 물산이 풍요로운 지역이라는 이미지의 호남, 그리고 예술과 판소리, 음식문화로 대표되는 남도 문화라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또한 수많은 역사속의 인물들과의 조우도 기대해 볼 수 있는데, 황희 정승이 장수 출신이고, 윤선도는 해남, 대간과 정맥의 뿌리를 정한 산경표를 작성한 신경준은 고창,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박사는 보성 사람이며, 최근에 작고한 서편제로 유명한 소설가 이청준은 장흥사람이다. 그리고 고창은 근대사에 국무총리를 세분이나 배출한 인재의 고장이라 한다.
걸쭉한 사투리와 욕이 적절히 가미된 일상 생활어, 여기에다 삭힘이라는 절묘한 음식 문화를 구간구간 만끽하며 여유를 갖는 계기가 되면 더더욱 좋을 듯하다.
이번 첫번째 구간은 전라북도 장수(長水)군 계남면, 번암면, 장수읍 구간의 경계 지역을 지난다. 장수군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이 시작되어, 금강의 발원지 수분리가 있는 신들이 춤을 춘다는 뜻을 지닌 신무산 뜸봉샘에 이른다.
장수군은, 예로부터 ‘산은 높고 물은 길다’는 산고수장(山高水長)의 고장이다. 장수현의 백제때 이름은 우평현이고, 신라때 고택으로 고쳐서 장계군에 소속되었다가, 고려 시대에 지금의 장수로 이름이 바뀌었다.
장수에는 장수 삼절이라 하여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3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주 논개(朱論介)의 충절이다.
논개는 선조 7년 9월 3일 현재의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훈장인 아버지 주문달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에게 의탁해서 살다가, 장수현감 최경회의 후실로 들어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회는 진주병사가 되어 진주성 싸움에 투입되었는데, 진주성이 함락되자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논개는 스스로 기생이 되어 진주 촉석루 잔치에서 왜장을 남강가에 있는 바위로 유인, 그의 허리를 껴안고 남강에 빠져 순절하였다. 그때 논개의 나이 스물이었다.
수주(樹州) 변영로의 논개를 칭송하는 시를 우리는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렬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두번째 인물은 장수향교를 지킨 향교지기 정경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쳐들어오자 현감과 관속들은 모두 줄 행랑을 쳤지만, 그는 도망가지 아니하고 혼자서 향교를 지켰다. 그의 의기를 가상히 여긴 왜군들은 불을 지르지 않고 돌아갔고, 그 당시 대다수의 향교들이 불탔으나 장수 향교만 남게 되었다. 그의 충절을 지켜 장수 향교 앞에 “충복 정경손 의비”를 세웠다. 1846년의 일이다.
세번째는 천천면 장판리에 있는 노비의 충절을 기린 “타루비(墮淚碑)”이다.
주인이 꿩 때문에 놀란 말에서 떨어져 죽자, 그 마부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바위에 꿩과 알을 그려놓고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곳에 노비의 비석을 세우고 해마다 장수현감이 제사를 지냈다 한다. <펌>
양재를 출발한 버스는 새벽 2시 반쯤 산행 출발지인 무령고개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였고,
버스에서 거의 두 시간 동안의 단잠?을 뒤척이다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한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일어나려고 하니, 잠에 취해버린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다.
버스를 나와 뻑뻑해진 몸을 풀며 호남정맥 시작을 위한 몸풀기를 한다.
주차장 위에 있는 컨테이너가 놓인 공터에는 '벽계 쉼터'라는 표석만 덩그러니 서 있다.
쉼터 뒤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무작정 접어드니, 영취산 정상으로 이어질듯한 나무계단이 시작되고,
거의 영취산 꼭대기까지 나무계단길이 이어진다.
10여분 만에 영취산 정상 도착하니,
영취산 정상석 뒷면의 글귀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 호남정맥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운다.
이제는 삼년이 훌쩍 넘어버린 어느 추운 겨울날에,
대간길인 이곳을 지났던 추억을 더듬으려는 듯...
3년 전 대간길은 가던 때에는 없던 정상석이 이제는 이곳이 영취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금남호남정맥이 시작되는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은 '신령 령(靈)', '독수리 취(鷲)' 자를 쓰는데, 그 뜻은 산세가 '빼어나다', '신묘하다',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산줄기와 물줄기의 요충지인 이름에 걸맞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도상에는 영취산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2005년 1월 15일 07:41 백두대간 4차 중재에서 육십령 구간을 걸으며 남긴 추억인데,
다들 아래 젊은 청년이 누구신지 아시지여!!
2008년 10월 25일 05:05 영취산 정상에서, 호남정맥을 출발하는 백두들이 인증을 남긴다.
지리산 방향의 대간길을 따라 남쪽으로 십여분 만에 도착한 선바위고개 갈림길.
이곳에서 무령고개로 방향으로 우틀하여 본격적인 호남길로 들어선다.
무령고개에서 들머리를 찾아 잠시 에코브리지(동물이동통로) 쪽으로 헤매다가,
앞서 알바 비슷한 것을 갈려다가 돌아오는 분들을 맞이하는 후미 어르신들.
하봉을 지나 장안산을 향해 억새밭으로 들어선다.
뒤돌아 본 하봉에는 아직 몇몇 분의 백두들이 남아서 주위를 조망하고 있다.
하봉 너머의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 온다.
가야 할 장안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백운산 위로 그믐달이 누워있다.
장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덕유산 방향.
좌측이 대간길을 걸을 때, 육십령에서 추위에 쫓겨 쉬지 않고 올랐던 할미봉이고 그 오른쪽이 남덕유산 인 듯.
백두산우회의 안전한 산행을 기원드리기 위해,
장안산 정상석 앞에 백두들이 정성들여 준비한 제물들을 진설한다.
백두대간 상의 백운산이 우람한 모습으로 다가올 즈음에,
이제 기원제 준비를 마치고,
먼저 최병성 회장님께서 신령님께 잔을 올리며,
안전하고 아름다운 산행을 기원드린다!
이어서 회원들의 헌작이 이어진다.
우리 기원의 응답인 듯 백운산 너머로 붉은 태양이 솟고...
기원드리는 백두들의 정성이 더해질수록 젯상의 현금도 쌓여만 가고,
이를 바라보는 총무님의 표정이 점점 흐뭇해진다.
마지막으로 신이 보내주신 총무님도..
젯상의 제물들을 음복하고,
신령님을 대신하여 우리의 체중을 불린다.
물론 체중감소를 원하는 신령님으로부터 감사의 뜻도 전달받았다지만..ㅋㅋ
어치재 피밭재로 이어지는 남서쪽 방향 능선 들머리.
이곳으로 가면 지지리?로 빠진다고 한다.
남쪽으로는 멀리 지리산 능선도 조망된다.
좌중앙의 높은 산이 지리산 천왕봉쯤.
살짝 당겨본 지리산 천왕봉.
뚜렷해진 백운산 모습.
북동쪽으로 덕유산군의 할미봉과 남덕유산도 한층 뚜렷이 조망된다.
호남정맥 첫 구간 참석자 출석부. (장안산에서!)
장안산 정상석 뒤로난 내림길로 들어서며 수분치를 향해 장안산을 뒤로한다.
등로는 잘 정비되어 있고, 아침 기운을 받은 만추의 산은 더욱 산뜻한 느낌을 준다.
장안리 지서골 방향 갈림길을 지난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논개 생가가 나올 듯하다. 가보지 않아서 확신은 없지만..ㅉㅉ
갈림길에서 돌아본 지나온 장안산.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드러난 장안리 지서골 조망.
잘 정비된 편안한 호남길이 이어지고,
947봉 삼각점을 지난다.
지도상에는 아무런 지명 표기가 없으나 이곳을 백운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장안산에서 북서진하던 호남길은 이곳 백운산을 기점으로 남서방향으로 선회하여 수분치로 향하게 된다.
백운산(947봉)에서 남겨진 이들만의 증명을 남긴다.
고도표에 평지고개라 표기된 안부를 지난다.
평지고개를 조금 지난 편평한 곳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장안산에서 백운산 너머로 뜨는 햇빛을 받으며 지낸 기원제로 인해, 아침식사가 평소보다 좀 늦은 듯하다.
돌아본 장안산 모습.
솔내음 가득한 솔숲길을 유유히 걸으며,
만추의 추억을 또 하나 만들어 간다.
등로는 쌓인 낙엽으로 푹신할 정도이고,
너무나 편안함에 말조차 잊었다.
(사실은 서분덕님이 선두로 날라 버려서 적막해진 것이지만..)
960봉 도착.
960봉 삼각점.
나뭇가지 사이로 수몰민 이주 마을인 덕산마을이 나타나고,
밀목치로 향하는 내림길 조차도 포근하기만 하다.
덕산마을 뒤로 가야 할 호남길 능선이 뚜렷이 나타나고,
밀목치로 직전에 바라본 남쪽 지리산 방향 조망.
능선길 옆 약초밭 풍경. (사실 약초밭이 아니라 당근밭이 아닌가 한다.)
밀목치 도착.
밀목재에 도착한 백두들.
밀목치에서 잠시 쉼을 하며 누구?를 기다리는 백두들.
좌측 도로를 따라 덕산마을로 들어서는 백두들.
덕산마을 앞 전경.
마을 앞 이정표에서 수분재 방향으로 들어선다.
이정표 뒤쪽의 샘물.
물맛이 아무 맛도 없다며, 맹물 맛이라 좋은 물이라며..ㅉㅉ
오세민님 왈, 물맛이 맹물 맛이지 뭐!
마을 안쪽으로 진입하여,
계속하여 진행하면,
수몰지구 이주민들의 마을이라 그런지, 전원주택을 연상케 한다.
맨 끝집에서 기르는 개가 사납게 짖어대지만, 묶여 있어서 다행..ㅋㅋ
마을 뒤쪽으로 이어진 시멘트 포장임도 차단기에서 좌측 들머리로 오른다.
아마도 임도를 따라가도 다시 활공장에서 호남길과 만나게 되는 듯하다.
돌아본 밀목재와 덕산마을 모습.
논개 활공장 도착.
장수읍 방향 조망.
당겨본 장수읍 전경.
밀목치 방향으로 장안산이 듬직해 보인다.
남쪽으로는 지리산 천왕봉이 흐릿하게 다가온다.
대한민국 고돌이에 대한 토론.
동물고스돕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손지점장!!
"천보님 왈" 고스돕 중에서는 그래도 미륭고스돕이 최고라고...
동부고스돕도 만만치 않았는데 꿇었다고..ㅉㅉ
차고개 방향. 차고개 우측이 팔공산이다.
서쪽 팔공산 방향.
논개 활공장 안내판.
사두봉 도착.
사두봉 삼각점.
사두봉에서 남은 과일을 꺼내 보지만, 잘 팔리지 않는다.
다들 장안산에서의 시산제 음복을 과하게 했던 탓인 듯!
사두봉 정상 묘지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사두봉에서의 쉼을 뒤로하고 수분재로 향한다.
봉수대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지나고,
낙엽이 흩뿌려진 묘지도 지난다.
그렇게 걷기 좋은 편안한 호남길은 이어진다.
능선을 따르던 호남길이 우측으로 꺾여지고,
비구니봉재를 지난다.
돌아본 비구니봉재.
이곳을 지나면 능선 좌측으로 조그만 소로에 표지기가 걸려 있는데, 그 길은 우회길이 아니라 알바 길이다.
계속 능선을 따라야 한다!!!
잠시 좌측 길로 알바를 다녀오는 분들.
돌아본 사두봉.
편안한 호남길이 계속되고,
원수분 임도 삼거리에 도착한다.
지도에는 지명표시가 없으나, 당재쯤인 듯.
마지막 봉우리?를 앞두고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임도 삼거리 옆에는 전주 모막산악회의 먼저 간 악우의 명복을 비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아쉬워서 가지 않으려는 듯!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쉰다.
돌아본 사두봉(좌측 중간)과 장안산(우측).
호남길은 단풍나무밭 사이로도 이어지고,
빠알간 단풍나무를 지나 수분치를 향한 내림길이 이어지더니,
앞쪽으로 수분리가 보인다.
수분재 조망.
지도에는 아직 표시되지 않은 새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수분 교차로가 나오고,
애마가 기다리고 있는 수분재 휴게소에 도착한다.
수분재 도로 옆에는 '금강발원지'를 알리는 비석이 있지만, 실재 금강발원지인 뜬봉샘을 한참 떨어져 있다.
수분재 마을 앞 등산 안내도.
어느 산행기에 뜬봉샘이 이곳에서 500m라고 쓰인 것을 예기했더니,
선두팀들이 답사를 가려고 30여분을 갔는데도 아직 2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고 돌아왔단다.
이것을 보니 족히 5km는 되어 보인다.
죄송함다. 500m가 아니고 5km였나 봐요!
장수군 수분마을 안내판.
수분재 다음 구간 들머리 모습.
수분령 풍경.
장수 사과가 달다고 한봉다리씩!!
장수군청이 있는 장수읍에는 목욕탕이 없어서 장계읍으로 이동하여 목감을 하고,
장계 버스터미널 앞이 있는,
청록회관이라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목감탕을 들어가며 예약을 했었는데,
소주 세병과 맥주 두병만 당그라니 준비되어 있다..ㅋㅋ
쥔장 아주머니 혼자서 시장 봐와서 음식 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에,
팔 걷어붙이고 주방으로 뛰어든 백두들의 노력이 보태어져서,
어느새 모습을 잡아가는 뒤풀이 밥상!
식당의 모든 반찬을 거덜을 내가며..ㅋㅋ
맛난 김치를 반찬으로 전주비빔밥을 한 그릇씩 뚝딱!!
뭐 혹시 더 나올 게 없나 하고 주방을 바라보지만..ㅉㅉ
시간이 되어야만 해결이 되는 진리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간길과 정맥길을 걸을 때, 시간이 되어야 끝나는 것처럼
맛난 음식을 위해 소쩍새는 그리도 울었나 보다..ㅋㅋ
산에서 주방에서 너무나 수고가 많았습니다.
혼자서 25명 단체손님를 예약받은 간 큰? 식당 여사장님(가운데). 오늘 혼났지요!!
다음부터 미리미리 예약 않으면, 주~우~거!!!
회장님의 너그러운 위로까지 더해지고,
우리 백두산우회는 날씨도 바꾸고, 직업도 바꾸고, 고민들도 바꾸며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지요.
뒤풀이를 마치고 버스로!
장계면 소재지 전경.
육해공을 겸비해야 된다고,
오늘의 육해공은 돼지두루치기(육), 붕어빵(해), 닭튀김(공)
서분덕님의 붕어를 배급받고, 그렇게 서울로 향했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꾸는 백두회원이 더욱 확인되는 산행이었지 싶네요.
새로이 시작하는 호남길! 모든 분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길이 되었으면 좋겠고,
늘 생각하지만 멀지 않습니다. 천천히 가야 오래도록 즐겁습니다.
건강하십시요!
'200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남 호남정맥 02차(수분재~신광재) : 멋진 산그림을 보며 힘겹게 걸은 팔공산과 시루봉 구간 (0) | 2008.11.09 |
---|---|
인제 가리봉 답사산행 (0) | 2008.11.02 |
설악산 서북능선 종주 : 십이선녀와 함께 키운 가리봉 산행의 꿈! (0) | 2008.10.12 |
낙동정맥 22차(개금고개~몰운대) : 멋진 부산항 조망을 즐기며 걸은 낙동정 마지막길 (0) | 2008.09.28 |
도락산 특별산행 (0) | 2008.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