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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남 호남정맥 03차(신광재~강정골재) : 멋진 말(馬) 귀(耳)를 보며 걸은 호남길

by 재희다 2008. 11. 23.

산 행 지 : 금남호남정맥 03차(신광재~강정골재) 장수군 천천면, 진안군 백운면 ~ 진안군 진안읍.

산 행 일 : 2008.  11. 22.(토)

산행코스 : 중리 + 신광재 ~ 성수산 ~ 은천이재(30번국도) ~ 마이산 ~ 강정골재 

(도상거리기준 2.2km + 15.9km, 8시간 40분)

산행참가 : 18명.

 

<산행지도>

 

 

지난주에 전국적으로 첫눈이라 할 만큼의 눈이 내렸다. 영동지방과 전라 해안지방으로는 꽤 많은 적설량을 기록했다고 하여, 이번 산행에서 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성수산 내림길이 워낙 급경사라고 하여 은근히 걱정도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애마를 고정으로 운행하던 이기사님이 집안 사정으로 못 오시고 딴 분이 애마를 끌게 되었는데, 출발할 때 목적지 도착 희망시간을 예기 했더니 덕유산 휴게소에서 한참을 쉬고, 장계 IC에서 나와서 와룡리까지 가는데 거의 한 시간쯤을 소비한 끝에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중리마을 와룡2교 근처에는 별다른 표식이 없는지라, 멋모르는 나는 거의 한 시간을 기사님 옆에서 이리저리 살피며 최종 목적지를 확인하느라 사서 고생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두 시반쯤 도착하게 두는 거였는데..ㅉㅉ

 

어찌 되었던지간에 GPS라는 문명의 이기 도움이 뒷받침되었고, 지난번에 보았던 빨간 단풍나무가 기억이 나서 와룡2교에서 차를 정차할 수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산행을 빨리 시작하자는 분들의 재촉도 있고 해서, 예정보다 빨리 즉시 산행 준비를 하고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나중에 성수산을 어둠 속에서 지나게 되어 조금은 아쉬움도 남겼다.

 

 

중리마을 앞 와룡2교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신광재 방향으로 이어진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신광재 직전 임도 갈림길에서,

좌측 임도를 따라 조금 진행하면 우측으로 성수산 방향 산행 들머리가 나온다.

 

 

 

신광치를 출발하여, 첫번째 봉우리 우회길에서 올해 처음으로 눈을 밟으며 조심조심 진행한다.

 

 

성수산 정상 도착.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 산길을 조금 더 진행하면 성수산 정상이 나온다.

 

<성수산(1,059.7m)>

성수산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가 얽혀있는 명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여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난 곳이다. 고려 때의 풍수지리에 통달한 도선국사는 이 산을 본 후, 천자를 맞이할 성지로 손색이 없다고 탄복하고, 그 후 송도로 올라가 초야에 묻혀있는 왕건에 백일기도를 권하자 왕건은 이곳에 내려와 목욕재계하고 기도드렸다. 드디어 관음의 계시가 나타나 고려 건국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계시를 받고 그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여 '환희담'이라 친필로 바위에 새기고 암자를 지어 도선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조를 건국한 이성계도 당시의 무학대사의 권고에 따라 성수산에서 기도를 드렸더니 용이 나타나 세 번이나 몸을 씻어주었다는 '발용의 대몽'을 꾸고 돌기둥에 '三淸洞(삼청동)'이라 친필로 새긴 비석을 세웠고, 등극한 후에 이 암자의 이름을 상이암으로 고치고, 이곳에 어필각을 세워 그 안에 '삼청동'이라 쓴 입석비를 안치토록 하였다. 성수산은 또한 한말에는 이석용 장군이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운 전적지로, 또는 6.25 때에는 수난을 겪은 산이기도 하다.

 

원래 산행을 4시 반쯤 시작하여 이곳에서 사방으로 트인 조망을 보며 일출을 보리라 예정했는데, 백두들의 너무 빠른 걸음 등으로 인해 아직도 어둠이 지배하는 너무 이른 시간인지라 그냥 지나치는 아쉬움을 남긴다. 남쪽 방향으로 지난 산행에서 걸었던 호남길을 따라 팔공산도 다시금 조망하고, 동으로는 덕유능선도 다시 한번 보고, 오늘 가게 될 마이산도 이곳에서 확인하고 가려고 했는데..ㅉㅉ

 

성수산 정상 증명.

선두들은 잠시 전에 출발하고, 남겨진 백두들만 인증을 남긴다.

 

 

 

성수산 헬기장을 지나 눈 쌓인 급경사 내리막을 조심조심 내려와서 아이젠을 벗고,

다시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1008봉쯤에 도착한다.

 

북서 방향 멀리로 전주쯤인듯한 불빛이 아련하다.

 

 

우전방으로 진안읍의 불빛이 계속 조망된다. 

 

서쪽 만덕산 방향.

 

 

910봉에서 잠시 쉼을 하고 있는 백두들.

 

910봉에서 돌아본 성수산 방향.

 

 

 

775봉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며 능선을 따르는데,

좌측으로 옥산동 고개가 건너다 보이며 호남능선이 끊어지는 듯이 보여, 호남길이 어디로 연결될까 궁금해진다.

 

 

709봉에 도착하여 잠시 현 위치를 확인하며 여유를 찾는다.

 

 

709봉에서 돌아본 성수산.

 

나뭇가지 사이로 마이산이 뚜렷이 드러난다.

 

 

능선 갈림길에서 뚜렸한 능선을 두고, 옥산동 고개를 향해 좌측 내림길로 들어선다.

 

 

옥산동 고개 직전 묘지에서 바라본 마이산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묘지 앞에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식사 도중 옥산동 방향의 비행기구름이 멋지다.

 

옅은 구름 속에서 그믐달이 아직도 선명하게 보인다.

 

아침식사를 하는 백두들.

 

 

음지라서 조금은 추운 듯도 하지만, 멀리 보이는 마이산이 따스함을 전해온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옥산동 고개 직전 밭에서 잠시 시야가 트이자 마이산이 다가온다.

 

마이산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한다.

 

 

 

신비롭다는 표현 조차 부족한 장면이다.

 

 

당겨본 마이산.

 

<마이산>

마이산은 별칭이 많은 산이라고 한다.

신라 때는 서쪽의 많은 산들 중 가장 아름답게 솟았다고 하여 서다산,

고려 때는 용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해서 용출산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이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고 말해 지금의 마이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여러 가지다.

봄에는 배의 돛과 같다 해서 돛대봉,

여름에는 용의 뿔을 의미하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산,

겨울에는 붓처럼 보여 문필봉으로 불린다고 한다.

 

확 당겨본 마이산의 신비로운 위용!

 

 

옥산동 고개를 지난다.

 

 

옥산동고개 지나 오름길에 돌아본 옥산동 조망.

 

산 봉우리 너머로 비추는 아침햇살과 옥산동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오고,

 

옥산동 위 하늘에 그어진 비행운이 멋지다.

 

 

등로 주위의 조림지에는 쭉쭉 잘 자란 낙엽송들이 빽빽하다.

 

 

능선 우측 솔안마을 조망.

 

 

말고개재 지나 능선 분기봉인 500봉쯤인 듯한 곳에서 잠시 행장을 여미고,

 

 

가름내고개를 향하여 완만한 능선을 따른다.

 

 

능선 좌측 편이 벌목되어 있어서 마이산 조망이 훌륭하다.

 

조금 당겨본 마이산.

 

마이산과 주변 도립공원의 올망졸망한 봉우리들.

 

당겨본 마이산이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마이산을 조망하며 호남길을 가고 있는 백두들.

 

 

가름내고개 건너편의 잘 정돈된 가족묘지가 예쁘다.

 

묘지 뒤로 보이는 마이산!

 

 

가름내고개로 내려서는 백두들.

 

가름내고개 들머리는 밭 가장자리로 이어진다.

 

잠시 전에 보았던 가족묘지에서 돌아본 가름내고개 건너편의 지나온 호남정맥 능선.

 

 

남쪽 노촌리 방향 조망.

 

전방으로 마이산이 마치 도깨비 뿔처럼 보인다.

 

 

호남능선 좌측의 가림리 쪽 산은 조림을 위해 벌목이 되어 있는데, 마치 머리를 빡빡 밀어 놓은 듯하다.

 

 

멋진 마이산 모습.

 

 

 

벌목으로 시야가 트인 능선길에서 멋진 마이산 조망은 계속 이어진다.

 

 

 

능선 우측에는 사람들이 간벌작업을 하고 있다.

 

돌아본 성수산 방향.

 

 

 

또 다른 마이산 조망.

 

 

 

 

은천이재로 내려서며 바라본 마이산.

 

 

30번 국도가 지나는 은천이재 도착.

 

우측 50m 지점에 들머리가 보인다.

 

은천이재 들머리를 들어서며 바라본 마이산.

 

 

백두들이 배낭은 어디다 팽개치고, 또 어디로 가는 걸까?

 

 

아하! 감나무에 조금 남아있는 감을 따려고..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것인디 ..ㅉㅉ

 

감서리 하는 백두들을 능선 너머에서 마이산이 지켜보고 있고,

 

이렇게 사람들도 지켜보고 있다.

 

양지바른 묘지에서 감서리 간 백두들을 기다리며 돌아본 은천이재.

 

살짝 얼은 감은 꿀맛!

 

서리해온 감.

 

 

맛난 감을 듬뿍 들고 있으니 저절로 기쁨도 듬뿍!

 

저 무거운 것을 어찌 들고 가려고..ㅉㅉ

 

 

감서리를 마치고 마이산을 향한다.  

 

 

등로 우전방으로 보이는 부귀산과 진안읍 방향.

 

어느새 다가온 숫마이봉.

좌우로 애기 둘을 데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숫마이봉을 배경으로.

 

숫마이봉을 향하는 백두들.

이렇게 숫마이봉 바로 아래까지 진행하여 봉우리로 올라야 할 텐데..ㅉㅉ

 

숫마이봉 직전에 돌아본 반원저수지 방향.

 

능선 너머 멀리로 덕유능선이 모두 가늠된다.

 

당겨본 덕유능선.

 

 

 

 

숫마이봉이 앞을 가로막아 어디로 가야할지 가늠이 안 되는데,

 

정맥길은 우측 암봉으로 이어지나,

위험할 듯하여 우리는 숫마이봉을 좌회하기로 하고, 좌측 은수사 방향으로 진행한다.

 

아래 사진의 마이산의 표면과 같은 지형을 타포니지형이라 한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하나 마이산 타포니지형은,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내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마이산은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천연 콘크리트 덩어리라 불리는 마이산의 표면은 학문적으로는 역암(자갈덩어리라 하는데, 역암은 물에 실려온 운반 물질이 굳으면서 만들어진 퇴적암의 하나이며, 마이산을 이루는 역암의 두께는 무려 15m에 이르러, 학계에서는 "마이산의 역암층"으로 불릴 정도이다이 것은 지속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특수한 기후조건 즉 신생대 제4기의 빙하기와 뒤에 온 한냉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콘크리트 같은 마이산의 표면.

 

금방이라도 돌이 떨어질 듯하다.

 

 

숫마이봉 거대한 바위 남측을 따라 은수사로 이어지는 길을 따른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바위와 돌멩이들을 걱정하며 잠시 걷다 보면,

 

 

은수사 뒤편으로 들어서게 된다.

 

은수사 뒤편에 설치된 마이산신제단.

 

 

 

 

숫마이봉의 풍화 흔적.

 

 

은수사 청실배나무.

 

 

<진안 은수사의 청실배나무>

1997 12 30 천연기념물 제386호로 지정되었다. 1그루이며 보호지역은 1,600㎡이다. 일명 아그배 또는 독배라고도 한다. 청실배나무 아래쪽에 높이 50㎝ 내외의 원형 석축단이 있고, 윗부분은 1m 너비의 시멘트로 덮여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마이산을 찾아와 기도를 마친 뒤, 기도를 원만히 마쳤다는 증표로 씨앗을 심었는데, 그 씨앗이 싹이 터 이 나무로 자라났다고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마이산의 은수사를 중심으로 태조의 업적과 명산 기도에 얽힌 전설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마이산제와 몽금척(夢金尺:일명 금척)을 시연한다. 지형과 지세의 영향으로 산 밑에서 산정을 향해 바람이 불어오면 거센 회오리바람이 되며, 이때 청실배나무의 단단한 잎을 흔들어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가 난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청실배나무 밑동 옆에 물을 담아두면 나뭇가지 끝을 향해 역()고드름이 생기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청실배는 기침·해소·천식에 효과가 있으며, 청실배나무는 낙엽활엽수로 어린 가지는 짙은 갈색이며 털이 없다. 잎은 호생(互生)이고 난원형(卵圓形) 또는 난상장타원형(卵狀長楕圓形)이며 톱니가 있다. 흰색의 꽃은 5개의 화판(花瓣)이며 장타원상피침형(長楕圓狀披針形)이다. 과실은 난상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지름 35.8, 길이 47.5㎝이고 껍질은 갈색 또는 녹색으로 가을에 노란색으로 익는다. 근원부에서 커다란 한 줄기가 위에서 네 줄기로 갈라져 윗부분을 떠받치 듯 특이한 형상을 이루다가 다시 둘은 서로 붙은 후 여러 갈래로 갈라져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펌>

 

 

은수사 무량광전.

 

마루금은 숫마이산과 암마이산 사이로 올라 암마이산에서  봉두암으로 이어지나, 암마이산 오르는 길은 2014년까지 휴식기간이라 오르지 못하므로, 탑사로 내려가서 바로 봉두암으로 오르기로 한다.

 

<마이산(馬耳山)>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남쪽 약 3㎞ 지점에 있는 두 암봉으로 된 산으로, 높이는 서봉(암마이산) 685m, 동봉(수마이산) 678m이며 동봉은 오를 수 없다. 동봉과 서봉의 모양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질은 백악기의 역암(礫岩)이다. 남쪽 비탈면에서는 섬진강 수계가 시작되고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 수계가 발원한다.

 

동봉과 서봉 사이에 448개의 층계가 있고, 동봉 중턱의 화암굴에서는 약수가 솟는다.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인 탓에 나무는 그리 많지 않으나 군데군데 관목과 침엽수·활엽수가 자란다. 4월에는 공원 입구에서 3㎞에 걸쳐 벚꽃이 만발해 진안군 주최 벚꽃축제가 열린다. 또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봄에는 안갯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馬耳峰),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화재로는 마이산탑(전북기념물 35), 마이산줄사철나무군락지(천연기념물 380)를 비롯하여 은수사(銀水寺), 금당사(金塘寺) 등의 고찰이 있다. 금당사에는 괘불탱(掛佛幀:보물 1266), 목불좌상(전북유형문화재 18), 석탑(전북문화재자료 122) 등의 문화재가 있다. 1979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펌>

 

은수사 법고. 

손지점장의 손으로 살짝 두드리니 소리가 감동이다. 

 

 

탑사로 내려가는 길에 돌아본 숫마이봉과 은수사.

 

탑사를 향하다가,

 

돌아본 은수사와 숫마이봉.

 

 

탑사가 보이고,

 

탑사 옆 암마이봉 절벽은 작은 동굴같이 움푹움푹 패어 있다.

타포니(Taffoni)라 불리는 구멍인데, 역암 속의 자갈이 빠져나가면서 생긴 구멍이다.

이런 타포니에도 작은 돌탑들을 쌓아 놓아 신비감을 더한다.

 

몇 차례 와본 탑사지만 볼 때마다 감동을 자아낸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자연이 만든 신비로움이라면, 탑사에 세워진 80여기의 돌탑은 인간이 창조한 경이로움이다. 암마이봉(686m)이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골짜기에 한두개도 아니고 80여기에 이르는 돌탑이 좁은 골짜기를 메우고 서 있으니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원래 108기를 쌓았다고 하는 탑사 돌탑은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화강암을 깎아서 만든 삼층석탑이나 오층석탑이 아니다. 전국의 명산에서 돌을 주어다가 원뿔형과 외줄형으로 쌓아 올린 탑들이다.

이갑용 처사라는 분이 1885년경부터 30여 년 동안 수도 정진하는 마음으로 쌓았다는 108개의 돌탑에는 백팔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그는 대웅전 뒤 맨 위에 가장 큰 두 기의 천지탑(天地塔)을 세우고, 그 밑으로 동·서·남·북과 중앙을 의미하는 오방탑(五方塔)을 세웠다. 그리고 대웅전 아래에 돌 하나씩을 층층이 쌓아 올린 중앙탑을 앉히고, 가장 앞부분에 일광탑(日光塔) 월광탑(月光塔)을 쌓았다. 탑사의 모든 것은 천지탑에서 시작되고, 천지탑으로 모아지는 형국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천지탑인 모양이다.

  

마이산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일찍부터 큰 뜻을 품고 있었던 이성계에게 어느 날 밤, 꿈속에 선인이 나타나 금으로 된 자를 건네주며 "이 금척(金尺·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권좌의 상징)으로 삼한강토를 헤아려 보라"고 했다훗날 고려 우왕 6(1380) 전라도 운봉 땅까지 침입한 왜구를 크게 무찌르고(황산대첩) 귀로에 오른 이성계는 마이산을 보고 깜짝 놀랐다. 꿈속에서 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았던 바로 그 산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이후 마이산은 조선 창업의 영산으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속금산(束金山)이다.

 

마이산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조선 태종 때 일이다. 태종이 이 산 아래를 지나다가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馬耳山)이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이산의 모습에 감동한 시인묵객들이 남긴 시가 적지 않다.

 

우뚝 쌍으로 솟은 마이산의 두 봉우리

구름 끝에 높이 걸린 푸른 연꽃 두 송이

어찌하면 하늘 오를 날개를 얻어

봉우리에 날아올라 한바탕 마음을 씻어내 볼까.

 

조선 성종 때 문신인 매계 조위(1454~1503)선생의 시다. 지금도 진안 사람들은 마이산의 구름 걷히는 모습을 풍자한 마이귀운(馬耳歸雲)을 진안의 아름다운 첫 번째 풍경으로 꼽는다.

 

탑사 전경.

 

사자에 올라탄 백두.

 

마이산 탑사 탐방 기념.

 

어느 관람객에게 부탁하여 촬영하였는데, 앞마당이 너무 넓게 나온 듯하다.

 

군학일봉!

 

 

 

마이산 탑사 안내도.

 

마이산 석탑의 유래.

 

 

탑사 전경.

 

탑사 앞 매점에서 뜨듯한 머묵 국물 한 사발씩!

 

동동주도 한 사발씩!

 

 

 

 

 

탑사를 뒤로하고 봉두봉으로 오르는 들머리로 들어선다.

 

들머리 이정표.

 

 

봉두봉 오름길에 본 암마이봉(서봉) 모습. 

 

봉두봉을 향하는 백두들.

 

 

암마이봉과 봉두봉 사이의 안부 갈림길.

암마이봉을 거쳐서 정통 호남길로 오게 되면 이곳 "폐쇠 등산로"라 쓰인 곳으로 나오게 된다.

 

 

봉두봉 정상 도착.

 

봉두봉 정상에서 바라본 암마이봉.

봉두봉 정상은 주위가 나무로 가려있어서 전망이 별로이고, 그냥 너른 공터이다.

 

 

봉두봉 내림길의 백두들.

 

 

540봉 오름길 전망바위에서 당겨본 성수산에는 흰 눈이 쌓여 있다.

 

살짝 당겨본 성수산 정상부.

 

 

540봉 쉼터 도착.

 

쉼터에서 앞쪽으로 펼쳐지는 경치를 감상하며 잠시 쉼을 한다.

 

 

가져온 과일도 나누며,

 

앞쪽으로 펼쳐지는 멋진 산그림을 감상한다.

남서쪽 내동산 방향.

 

 

고금당 전망대 방향.

 

당겨본 고금당 전망대 모습.

 

당겨본 나옹암 모습.

 

광대봉(좌)과 전망대 방향 조망.

 

우중앙으로 금당사가 보인다.

금당사는 신라 헌덕왕 6년(814년)에 혜감대사가 창건한 절인데, 언제 시간이 있으면 한번..ㅋ

 

남쪽 내동산 방향 조망.

 

 

532봉 직전 안부 갈림길.

이곳에서 호남길은 고금당전망대 방향과 북부주차장 방향 사이의 능선길을 따라야 한다.

 

 

532봉에서 바라본 나옹암과 고금당전망대 모습.

 

서쪽 탕금봉 방향 조망.

 

이제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마이산이 정말 말 귀처럼 보인다. 

 

흐뭇한 나머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김종협님 부부.

 

남겨진 백두들이 마이산을 배경으로.

 

 

 

암마이봉 우측으로 성수산이 조망된다.

 

말 귀!

 

 

숫마이봉 좌측으로는 덕유능선도 아련히 드러난다.

 

당겨본 덕유능선.

 

지나온 540봉 모습.

 

북쪽 부귀산 방향 조망.

 

서쪽 방향 조망.

 

당겨본 기암. 

앞쪽 암봉은 이제 가야 할 호남길의 봉우리다.

 

당겨본 부귀산과 기암.

 

 

암봉에서 바라본 서쪽 탕금봉과 광대봉 방향.

 

암봉에서 돌아본 마이산.

 

마이산 북쪽의 북부 주차장이 내려다 보인다.

 

부귀산 방향 조망.

 

익산장수간 고속도로 뒤로 다음 구간에 가야할 부귀산이 보인다.

 

다른 각도에서 본 기암.

 

 

돌아본 기암.

 

살짝 당겨본 기암.

 

당겨본 금당사 전망대.

 

서쪽 방향 조망.

 

당겨본 익산장수간 고속도로.

 

 

익산장수간 고속도로가 좌측으로 보이고,

 

 

벌목지대를 통과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전망이 잠시 트인 곳에서 돌아본 마이산이 저만치 멀어져 있다.

 

살짝 당겨본 마이산.

 

 

북동 방향.

 

묘지와 마이봉!

 

 

다시 한번 마이산을 확인하고,

 

 

29번 국도가 시원스레 뚫려 있는 강정골재에 도착한다.

 

 

 

강정골재에서 애마를 기다리는 백두들.

 

 

 

진안읍 목욕탕으로 이동하여,

 

뜨듯하게 몸을 덥히고,

 

 

진안의 명물이라는 애저(兒猪)를 맛보려 진안관이라는 식당으로 간다.

 

 

애저 전골이랑,

 

김천보님이 호미곶에서 공수한 과메기를 곁들여,

 

모처럼 과음을 시작한다.

 

 

 

 

진안관 쥔장도 "즐겁게 삽시다"를 외치며!

 

 

 

 

푸짐한 뒤풀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한다.

 

산행도 즐거웠지만, 뒤풀이가 훨씬 더 좋았다는 말이 많았다.

앞으로는 너무 많은 차수가 쌓이지 않도록...ㅋㅋ

 

 

3주 후에나 뵙겠네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