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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호남정맥 05차(모래재~슬재) : 벗이 준비한 어묵 국물로 엄동설한을 녹인 호남길

by 재희다 2009. 1. 11.

산 행 지 : 호남정맥 05차(모래재~슬재) 진안군 부귀면, 완주군 소양면, 임실군 관촌면, 완주군 상관면.

산 행 일 : 2009. 01. 10.(토)

산행코스 : 모래재 ~ 곰재 ~ 오두재 ~ 만덕산삼거리 ~ 마치 ~ 북치 ~ 슬재

(도상거리기준 22.4km, 10시간)

산행참가 : 18명.

 

<산행지도>

 

 

2009년 첫 산행을 주화산 조약봉에서 분기하여 호남의 넉넉한 들판을 두리두리 지나 섬진강 어귀까지 이어지는 호남정맥으로 시작을 하게 된 것에 어떤 의미를 두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녹색성장에 담겨진 의미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자는데 있다면, 가히 한반도의 곡창이라 할 수 있는 호남의 너른 들판을 어떻게 개발하고 들판에 생명을 불어넣는 젖줄인 강물은 또한 어찌 이용하는게 좋은지, 그리고 그 강물이 샘솟는 호남정맥의 산들을 둘러보며 가끔씩은 내가 아닌 우리 또는 후손을 위한 생각도 해 보면서, 호남정맥을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양재에서 출발하여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남으로 진행을 하자, 조금씩 눈발이 비치더니 익산~장수간 고속도로를 벗어나 모래재 오름길로 접어들면서는 한층 눈발이 짙어져, 버스가 모래재 휴게소에 도착하자 함박눈으로 변했다. 고갯마루에서 다시 꼬불꼬불 내려갈 길을 걱정하는 버스 기사님의 한숨 소리에, 더 이상 쌓이기 전에 서둘러 버스를 출발시키고 휴게소 마당에서 산행 준비를 한다.

 

 

모래재 휴게소 마당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지난번 모래재로 하산했던 들머리를 찾아 산행을 시작한다.

 

 

적천재에 도착하니, 1989년에 대한광업진흥공사에서 세운 콘크리트 표지석이 있다.

아마도 능선 우측의 소양면 쪽에 신보활석광산이 있었다는데, 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직 눈이 많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가파른 경사로에서는 자꾸 미끄러지며 산행을 힘들게 하여 아이젠으로 무장하고,

 

 

571봉 쯤에서 능선 좌측 세동리 방향으로 분기되는 지능선으로 약 30여분 알바를 다녀온 후,

어렵게 다시 호남길로 복귀한다.

 

 

곰재 안내판이 있는 안부를 지난다.

 

곰재 안내판이 있는 안부에서 607봉을 향해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 백두들.

 

 

곰재 웅치전적비 도착.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이곳 곰재에서 산화한 선령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찾아 읽지도 못하고,

다녀간 흔적만을 겨운 남긴다.

 

눈보라 치는 웅치전적비에서 여장을 단돌이하는 백두들.

 

<웅치전적지(熊峙戰勣地)>

- 전라북도 기념물 제25호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소재 -

임진왜란때 왜군은 해로를 통해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장악하려 하였으나, 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해로가 막히 무주, 금산, 진안 등지에서 선조 25(1592) 7 8일~9일에 웅치로 쳐들어왔다. 김제 군수 정담(鄭湛), 나주 판관 이복남(李福南), 의병장 황박(黃璞)등이 왜적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였다. 그러나 왜군도 많은 사상자를 내고 전주성을 함락하지 못하였고, 우리 군의 충성심과 용맹함에 감탄하여 우리 병사의 시신을 묻고 추모하는 뜻을 담아 <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고 푯말을 세웠다. <펌>

 

(좀 더 자세히)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조선 7도를 유린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바닷길을 지키고 있어 오직 호남만을 넘보지 못하고 있던 차에, 당시 전라도 공략 책임자인 일본군 승장(僧將) 안고꾸찌가 지휘하는 제6 15,700명이 금산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1만여 명을 주공(主攻)으로 하여 금산~진주~전주로, 2천여 명을 조공(助攻)으로 하여 금산~진산~전주로 이어지는 전주선 협공작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웅치에는 전주성을 지키기 위해 전진 배치된 조선의 의병장 황박과 나주판관 이복남, 김제군수 정담, 해남현감 변응정 등의 연합군이 침공해오는 일본군을 맞아 1592 8 14~15일 양일간에 걸쳐 이곳 웅치 지역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조선연합군은 용전분투하였으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이곳에서 대부분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때에 이 지방 사천인 김수(1542~1592)와 그 동생 김정(1544~1592)도 의병으로 참전하여 큰 전공을 올리고 형제가 동시에 순절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주력도 이곳 전투에서 전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어 전주성 근교까지 진격하였으나 전주성을 공략할 여력이 없어 퇴각하고 말아 웅치전이 호남을 방어하는 데에 결정적 공헌을 한 사실은 알 수 있다. 이 전투가 벌어진 날은 우연히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한산도에서 대첩을 이룬 날이기도 하며, 이 양대 전투가 임진왜란 때에 전세를 조선 쪽으로 역전시키는 결정적인 전기가 되게 하였다. 이 재(웅치) 부근과 연결되는 능선 곳곳에서는 당시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합장한 듯한 돌무덤이 산재한다. (2001 12진안문화원)

 

왼쪽 덕봉마을에서 올라오는 역사의 함성들이 진치골, 송장골, 피난골, 먹덤골의 아픈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1592년의 여름밤을 실어 나른다. 지도상으로 여인네 자궁혈 같은 남쪽의 관촌마을을 지나는 슬재를 통해서 전주성으로 침공하기엔 너무나 위험부담이 컸던 탓이었을까, 진주성을 지난 왜병들은 육십령을 넘어 전주성으로 향하는 허리 재인 이곳 곰티재를 택하여 그 힘든 전투를 벌인 모양이다. 결국 그들의 힘을 지치게 할 만큼 사력을 다한 이 곳 능선 곳곳에 산재된 채 돌무덤으로 합장된 병사들의 원혼들만 이 밤에도 조국의 안녕을 빌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을 덮어버리듯이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잊혀져 가는 역사의 교훈들이 다시 살아 오른다. 눈보라 흩날리는 춥고 어두운 웅치에서 선인들의 뜻을 자세히 살필 겨을도 없이, 살아 움직이는 우리들은 만덕산을 향해 곰재 들머리를 찾아서 발길을 돌린다.

 

 

수많은 영령들의 울부짖음을 뒤로하고 곰재에서 들머리를 찾아 길을 떠난다.

 

 

오두재 전경.

곰재에서 몇개의 봉우리를 정신없이 지나며

다시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할 즈음에 옛날 인삼밭이 있었다는 오두재가 나온다.

 

 

오두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호남길은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 우측으로 이어진다.

 

 

오두재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자, 우측으로 익산 장수간 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어느새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 할 만덕산이 다가와 있다.

 

미륵사 갈림길 직전 봉우리를 내려서는 백두들.

 

 

능선 우측 아래에 있는 미륵사 갈림길.

 

이곳에서 미륵사는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고, 원불교 만덕산성지는 좌측에 있다.

 

 

원불교 수련원에서 붙여놓은 수행어.

 

원불교수련원에서 '초선성지' 팻말과 함께 붙여놓은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라는 문구가 등로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호남능선 우측에서는 만덕산 북사면에 자리한 미륵사가 있다. 본디 불교 이전의 민속 기도처로 금강암이라 불리던 암자에서 조선시대 진묵대사 일옥(一玉)의 모전석탑 전설을 남긴 채 1928년 원불교의 초기 성지로 결의를 보인 후 오늘날 만덕산 '초선성지(初禪聖地)'의 명예로운 기도처로 자리 잡았다. 여러 토속종교들의 시샘을 뒤로하고 비교적 순탄하게 뿌리내린 원불교의 정신이 배어나는 글귀인가 보다.

 

 

제2쉼터 (아마도 원불교 수련원에서 설치해 놓은 듯..)

 

 

약간의 암릉구간을 오르면,

 

 

전망바위에 오르게 되고,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지나온 호남정맥.

우측 뒤쪽으로 보이는 봉우리에서 능선을 타고 오다가, 오두재(사진의 중앙 부근)에서 앞쪽 능선으로 이어왔다.

 

 

능선 우측 신촌리 방향으로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올라야 할 만덕산도 확인하고,

 

만덕산 오름길을 이어간다.

 

 

좌측 성수면 상달길 방향 조망.

 

 

 

만덕산 정상 도착.

 

 

만덕산(萬德山 762m)전주지방의 근교 산행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산의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으로 임진왜란, 6.25 동란 같은 큰 전란을 겪으면서도 이 산 주변 주민들은 피해를 입지 않고 지나갔다고 한다. 이곳 갈림길은 행정적으로도 갈림길인데, 완주군 소양면, 상관면, 진안군 성수면 등 3개 면의 꼭짓점이다. 흩날리는 진눈깨비로 인해 주위 조망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아쉬움을 남긴 채 남으로 이어진 호남길을 재촉한다.

 

 

만덕산 정상 증명.

 

 

 

만덕산을 뒤로하고 호남길에 들어서니,

 

관음봉으로 이어진 눈 덮인 능선이 구름에 희미하고,

 

 

원불교 수련원과 정수사 방향 갈림길 삼거리를 지난다.

 

선답자의 흔적들도 나무에 얼어붙어 있고,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는 백두들.

 

 

 

희미하게 보이는 관음봉을 향해 병풍바위능선을 걷는 백두의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어휴~, 손 시려!!

 

 

올라야 할 관음봉의 모습이 우뚝하다.

 

 

위험하고 미끄러운 관음봉 오름길을 조심조심 오르는 백두들.

 

우측 마치리 방향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관음봉에서 돌아본 지나온 능선.

 

한 명이 겨우 지날듯한 바위 날등을 조심스레 지나니,

 

가야 할 호남길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내려다본 우측 마치리 방향은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우측 완주군 상관면 정수리 방향의 계곡 모습.

 

 

관음봉 급경사 암릉 내림길로 들어서는 백두들.

 

우측 아래로 보이는 바위 봉우리가 마치 공룡의 머리를 닮았다.

 

가야 할 호남길을 배경으로.

 

내려다본 좌측의 진안군 성수면 상달길 모습.

 

맑은 날에는 이곳에서 마이산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주의의 조망이 무척 훌륭하다고 하였는데 눈 내리는 오늘은 온통 희뿌연 모습만이 자리하고 있다.

 

 

미끄러운 관음봉 암릉 내림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는 백두들.

 

관음봉 내림길은 급경사의 암릉 구간인데, 더욱이나 눈으로 덮여서 무척이나 아슬아슬해 보인다.

 

미끄러운 암릉 내림길을 내려서는 백두들.

 

로프를 잡고 내려와야 하는 곳도 있고,

 

가야 할 호남정맥 능선은 선명하게 이어지나, 한 치 앞은 천 길 낭떠러지!

 

 

가야 할 호남능선이 뚜렸하고, 우중앙 봉우리에서 좌측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분기한다.

 

국사봉 방향 능선 분기봉에서 이어지는 호남길 능선.

 

 

 

관음봉을 암릉을 내려와 바위 절벽 아래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살짝 덮인 눈을 치우자 푹신한 낙엽이 그나마 그럴싸한 식사 장소의 모습을 갖추고,

 

찬바람을 피한 바위 절벽 아래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백두들.

 

 

 

추위에 아침식사를 후딱 마치고, 호남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제5쉼터가 나타나고,

 

제5쉼터의 이정표가 현재의 위치를 가늠케 한다.

 

 

잠시 후 또 다른 정수사 갈림길을 지난다.

 

 

국사봉 방향 지능선 갈림 봉우리에서 돌아본 만덕산.

 

지나온 암봉을 당겨보니 아찔하게 다가온다.

 

국사봉 방향 지능선 분기봉을 우회하여 지나는 백두들.

 

 

조그만 봉우리를 하나 넘으니,

 

완만한 육산 능선이 이어지고,

 

 

우측 상관면 방향으로 다음 구간에 가야 할 경각산쯤의 봉우리가 우뚝하다.

 

 

하얀 눈으로 덮인 묘지를 지나는데,

 

가야 할 호남길의 봉우리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올망졸망하다.

 

 

595봉을 넘자 벌목지역이 나타나고 시야가 트이며 가야 할 호남능선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좌측 회봉리 방향 조망.

 

마치고개 너머의 가야 할 봉우리.

 

 

돌아본 마치고개.

말 마(), 고개 치()를 쓰는 이곳은 옛날 진안 마령 사람들이 말을 타고 넘던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치고개 지난 봉우리에서 돌아본 만덕산 방향의 지나온 능선이 아득하다.

 

 

좌측으로 벌목이 되어있어서 조망이 트이며,

 

좌측으로 용포리(좌)와 상월리(우)를 가르는 지능선이 조망된다.

 

 

580봉쯤인 듯한 봉우리에서 잠시 쉼을 한다.

 

여기가 어디고?

 

580봉에 도착하는 영식형.

 

 

가야 할 호남정맥 능선이 얌전해 보이고,

 

능선 우측으로 상관면 방향의 지능선이 분기되어 이어지고,

 

우측으로 상관저수지도 하얗게 드러나 보인다.

 

 

호남정맥은 잡목숲 속으로 이어진다.

 

당겨본 능선 우측의 상관저수지.

 

 

백두들이 지난 길이 선명하고,

 

 

11:19 호남길은 잡목 지역을 벗어나 시야가 탁 트인 벌목지역으로 이어진다.

 

벌목지대로 들어서는 백두들.

 

돌아본 상관면 방향으로 뻗은 지능선 우후방으로 응봉산(475)의 모습이 선명하고,

 

우전방으로는 경각산과 모악산이 가늠된다.

 

 

능선 좌측의 벌목지역이 마치 생선뼈 모양으로 보인다.

 

 

 

지나온 능선(좌측)과 상원리 방향 조망.

 

얌전한 능선이 벌목까지 되어 있어서 걷기에 부담이 없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서 돌아본 지나온 능선이 편안하게 보인다.

 

별 특징이 없는 능선이 이어지며 이곳이 어디쯤인지 쉬 분간이 어렵지만 대충 슬치쯤이 아닌가 짐작해 보며,

 

잠시 목을 축이며 쉼을 한다.

 

 

11:54 벌목지역도 지나고 밭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 나온다.

 

좌측 상월리 방향 조망.

 

눈 덮인 밭이 동심을 자극하고,

 

상월리 마을이 제법 커 보인다.

 

 

 

 

삼각점이 있는 416봉쯤을 지나고,

 

 

능선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17번 국도가 지나는 모습도 보인다.

 

 

별 특징 없는 능선에서 잠시 여유를 찾는다.

 

 

12:29 483봉쯤을 지나고,

 

483봉에서 내려다본 좌측 관촌면 신전리 방향 조망.

 

 

12:53 이름 모를 봉우리를 또 이렇게 지나고,

 

 

13:04 앞쪽으로 밭이 보이며 황산재가 가까워진다.

 

 

황산재를 지난다.

 

황산재에서 마중 나온 삽사리들이 반갑기는 한데,

 

눈 덮인 밭을 지키는 삽사리들의 보금자리가 빈약함에 가슴이 아려온다.

 

황산재 전경.

 

돌보는 이가 언제쯤 올지도 모르는 곳에서 마냥 사람이 반가운 삽사리!

 

 

13:13 황산재에 조성된 밭 울타리를 따라 진행한다.

 

울타리를 따라 이어지는 호남길.

 

 

황산재를 지난 봉우리에서 잠시 쉼을 한다.

 

 

13:40 밤나무밭을 지나고,

 

 

이어서 임도길이 이어진다.

 

 

농사용 비닐이 그대로 남겨진 밭도 지나고,

 

 

능선 마루에 닦인 임도를 따르다가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좌측 임도길은 방현리 방향으로 갈라져 가고,

 

 

호남길은 우측의 비포장 수레길로 이어진다.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며 눈이 녹자, 차고 있던 아이젠을 벗어서 갈무리한다.

 

 

갈림길에서 좌측 길을 따르면 시멘트 포장임도가 편안히 이어지고,

 

가야 할 박뫼이산이 보인다.

 

 

박뫼이산으로 오르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 길로 들어서면,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오늘의 목적지인 슬재가 내려다 보인다.

 

 

슬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14:20 슬재 도착.

 

슬재 버스 정거장.

 

돌아본 슬재 모습.

호남정맥은 모텔이 점령하고 있어서 남측 도로를 따라 우회하여 왔다.

 

 

슬치 마을회관 우측 비닐하우스에서 김만식님의 친구분인 김명권님이 따뜻한 어묵을 준비하여 기다린다고 하여,

 

슬치에서 기다리던 우리의 애마에 배낭을 벗어두고,

 

 

슬치마을 민가 앞마당의 비닐하우스로 가니 김명권님이 준비해 놓은 어묵 잔치상이 마련되어 있다.

 

엄동설한에 따뜻한 음식이 있는 시골 잔치집에 들른듯한 백두들.

 

김만식님과 친구분인 김명권님.

 

 

 

 

이런 잔치상을 산행 날머리에서 받아보긴 처음인 듯.

 

등산 고수의 저력이 배어나는 휘발유 버너 3개가 받치고 있는 찜통에는,

엄동설한을 따뜻하게 데워준 벗의 우정이 담겨 있다!

 

 

추운 날씨에 불구하고 과분한 정성을 베풀어 주신 김명권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다정한?

 

 

전주시내 아크로파크에서 땀을 씻고, 전주의 명물 전주비빔밥을 먹으러 찾은 이곳에서,

 

한국 최고의 전주비빔밥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기축년 신년 첫 산행을 호남정맥 첫 구간으로 시작함은 하늘의 뜻이었을 듯!

지난해 모래재로 마중 나오셨던 김명권님께서 준비해 주신 슬재에서의 잔치상은,

아마도 우리 백두산우회원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