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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호남정맥 29차(참새미재~토끼재) : 지리산 주능선을 한눈에 담게 해 준 백운산 신령님께 기원드림

by 재희다 2010. 5. 9.

산 행 지 : 호남정맥 29차(참새미재~토끼재) 광양시 옥룡면, 구례군 간전면 ~ 광양시 다압면.

산 행 일 : 2010.  5.  8.(토)

산행코스 : 논실마을 + 참새미재 ~ 똬리봉 ~ 한재 ~ 백운산 ~ 1,115봉(시산재) ~ 매봉 ~ 천황재 

~ 갈미봉 ~ 쫓비산 ~ 토끼재 (도상거리기준 18km + 2.4km)

산행참가 :  15명. 

 

<산행지도>

 

 

광양 논실마을 앞에서 하차하여 산행 출발 전 몸풀기를 하고,  

 

논실마을에서 참새미재까지 오르는 도중에 고로쇠라는 안내문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이곳 백운산은 고로쇠나무가 유명한데, 고로쇠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신라와 백제의 병사들이 백운산 일대에서 자주 싸움을 벌였던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에 신라의 병사들이 싸움을 하다 보니 목이 몹시 타서 샘을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는데, 화살이 꽂힌 한 나무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물을 마셨다. 그런데 그 물은 갈증만 풀어준 것이 아니라 몸에 힘이 용솟음쳐 백제군을 무찌를 수 있었는데, 그 나무가 바로 고로쇠나무라 한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지만 광양에서는 해마다 경칩을 전후해서 고로쇠 약수축제를 연다고 한다.

 

 

논실마을을 통과하여 지난번 하산한 길을 더듬어 오르니 도솔봉과 참새미재 갈림길 삼거리가 나오고,

 

 

가팔라지는 오름길을 20여분 오르니 어느새 호남길 잇기 시작 지점인 참새미재에 도착한다.

 

잠시 쉬어가도 되련만, 똬리봉에 숨겨둔 뭔가가 있는겐지 모두들 호남길 잇기에 서둘러 나서고,

 

동남쪽 하늘의 그믐달만이 홀로 남겨진 정맥꾼더러 "너도 이제 출발하렴.." 한다. 

 

참새미재 이정표.

 

 

똬리봉을 향한 오름길에 설치된 두어 곳의 철계단을 지나노라면,

 

 

어둠이 가시기 시작한 주변으로 사물이 분간되기 시작하며,

북쪽 지리산 방향으로 만복대와 노고단 반야봉 등이 조망되기 시작하고, 

 

남쪽 옥룡면 방향으로는 도솔봉에서 남으로 이어진 지능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구간에서 지나왔던 도솔봉도 어여 가라 손짓하고,

 

서북쪽 구례 곡성 방향의 산들은 아직 깨어나기 싫은 듯 뒤척이고 있다.

 

똬리봉에서 북으로 이어진 지능선 끝에는 밤봉이 걸터앉아서 멀리 지리산의 노고단과 반야봉을 조망하고 있는 듯하다.

 

 

전망바위 올라서니 북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지리산 주능선을 실제로 한눈에 접하기는 이곳이 처음이다.

 

 

가야 할 똬리봉 방향 능선을 바라보니 커다란 범이 앉아 있는 듯한 바위도 보이고,

 

 

새벽잠에 뒤척이는 광양을 바라보고 있는 만식형님 뒤쪽으로 백운산이 "올 테면 와봐라" 하고 있다.

 

돌아본 도솔봉 쪽 호남능선 모습.

 

도솔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지능선이 우람하다.

 

남쪽 광양 방향 조망.

 

가야 할 백운산도 한눈에 들어오고,

 

 

따리봉 도착 직전에 해는 능선 위로 솟아 올라 버렸다.

 

 

따리봉에 먼저 도착한 백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일출을 바라보고 있다.

 

지나온 도솔봉 방향 호남능선.

 

 

똬리봉에서 오늘 산행 참여한 면면들을 확인하고,

 

호남정맥의 최고봉이자 종착봉인 백운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남쪽 광양 방향.

 

쬐끔 당겨본 지리산 노고단과 반야봉 모습.

 

똬리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모습.

 

좌측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지리산 천왕봉!

 

똬리봉 인증.

 

 

똬리봉을 뒤로하고 한재를 향한다.

 

 

똬리봉 내림길을 따라 가뿐하게 내려서면,

 

한재를 향한 가파른 내림길이 한참이나 이어지고,

 

한재를 향해 내려갈수록 백운산이 커져만 가더니,

 

 

한재에 도착한다.

 

이곳 한재는 남쪽 광양시 옥룡면과 북쪽 구례군 간전면을 잇는 고개로, '큰 고개'라는 뜻인 듯하다.

 

 

한재를 지나 백운산 상봉을 향하는 만식형. 

 

 

급경사를 잠시 오르면, 이내 싱그러운 새싹이 돋고 있는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고,

 

백운산 정상이 성큼 가까워진다.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똬리봉(우)과 도솔봉(좌).

 

도솔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지능선이 병풍인 양 펼쳐져 있다.

 

 

아직 정상부의 나무들은 미쳐 봄기운을 받지 못한 듯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어느새 땅에는 푸른 기운이 덮이기 시작한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백운산 정상이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에 들어오고,

 

누가 올려놓았는지 궁금해지는 공깃돌이 놓여 있는 능선길을 걸으며, 

 

남쪽 광양 방향 조망도 바라보고,

 

 

희미한 광양과 순천시를 당겨 보기도 하며, 

 

도솔봉에서 남으로 뻗은 지능선의 우람한 모습도 담아본다.

 

도솔봉에서 남으로 뻗은 지능선 모습.

 

도솔봉과 똬리봉 방향.

 

 

이곳 전망바위에서, 

 

새벽에는 선명하게 보이던 지리산 반야봉이 아쉽게도 옅은 안개에 가려지고 있다. 

 

 

가야 할 신선대에는 벌써 누군가 올라 있다.

 

 

암봉인 신선대를 올려다 보고,

 

 

암릉 사이로 이어진 흔적을 따라 올라서, 마지막 철계단을 오르면,

 

 

백운산 상봉 전위봉인 신선대에 오르게 된다. 

 

10여 미터 높이의 돌출된 바위로 이루어진 신선대에 올라서면, 지리산을 어느 곳에서 보다도 장엄하게 바라볼 수 있다. 서쪽 종석대에서 천왕봉까지 한 봉우리도 빠짐없이 조망할 수 있으며,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의 모습도 내려다 보인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백운산 상봉 모습.

상봉 우측 아랫 편에 백운산 상봉을 향해 기어오르는 형국의 거북바위가 가늠된다.

 

백운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지능선 모습.

 

남동쪽 광양시 방향.

 

돌아본 도솔봉(좌)과 따리봉(우).

 

 

지나온 똬리봉(좌측끝) 방향으로 이어진 호남능선. 

 

신선대를 뒤로하고 백운산 상봉을 향하는 백두들.

 

동북 방향 희미한 저 산 아래 어디에 섬진강이 흐르고, 그 옆 화개장터에는 봄나물 파는 시골 아낙이 앉아 있겠지!

 

당겨본 섬진강 모습.

 

백운산 동북쪽으로 섬진강 물길이 보인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경계를 만들며 흐르는 섬진강은 예로부터 모래가 곱기로 이름나서 모래가람(가람은 江의 고어),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등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고려 우왕 13년(1385년) 무렵 왜구가 강 하류에 침입했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어서 왜구를 쫓아내자 이를 기려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야 할 백운산 상봉 방향 능선에는 여러 개의 암봉들이 앉아 있다.

 

당겨본 광양제철소가 연무 속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광양만 조망. 연무가 없었으면 좋았으련만 ..ㅉㅉ 

 

 

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기암과 암봉들이 자리하고 있다.

 

 

어느새 백운산 최고봉인 상봉 정상에는 백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분 누구?

 

백운산 상봉 암릉을 밧줄에 의지해 오르면, 

 

지나온 호남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백운산 상봉(1,218m)에 도착한다.

 

 

예로부터 백운산에는 세 가지 영험한 동물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세 영험한 동물은 봉황의 정기와 여우의 정기, 그리고 돼지의 정기가 그것이다. 그래서 광양 처녀가 시집을 갔다가 아기를 출산할 때는 백운산의 정기를 받기 위해 친정인 광양에 와서 출산을 한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광양 사람들은 제 땅에 광양제철이 들어선 것은 돼지의 정기를 받았기 때문이라 여긴다고 한다. 1974년 정부에서 제철공장을 세울 것을 계획했을 때, 그 후보지에 오른 곳이 아산만, 광양만, 낙동강 하구 등 세 곳이었는데, 몇 차례의 조사를 거쳐 아산만이 최적지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여러 이유를 들어 그 후보지를 광양만으로 확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이곳 광양 사람들은 돼지의 정기를 받아서 그리되었다고들 생각한단다.

 

회장님은 벌써 상봉을 내려서서 억불봉 방향의 능선 초입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쪽 아닙니다. 빼~액!

 

상봉에서 남쪽 억불봉 방향으로 이어진 능선이 유혹한다.

 

<억불봉(億佛峰 1,008m)>

옛날 천지개벽 당시 이 산봉우리까지 물이 차올라, 바구니 하나만큼의 앉을 장소밖에 없었다 해서 바구니봉이라 불리다가, 후에 부처같이 생긴 봉이 억개나 되어 보이는 산이라 해서 억불봉이라 불리게 되었다. 희한한 것은 산 높이 1,008m가 불교에서의 백팔번뇌나 백팔배의 숫자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광양항 방향.

 

광양읍 방향.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 논실마을이 발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도솔봉에서 남쪽 백운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뻗은 지능선 아래에 논실마을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돌아본 도솔봉(좌)과 똬리봉(우중앙).

 

돌아본 신선대와 똬리봉 방향.

 

백운산 북쪽 지능선과 금천계곡 모습.

 

성제봉과 평사리 방향.

 

 

백운산 상봉에서는 증명사진 찍을 자리가 없어서 매봉 방향으로 내려서서,

 

 

백운산 상봉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남긴다.

 

 

 

가보고 싶은 억불봉 방향의 능선을 뒤로하고,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이어진 능선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827봉 정상 헬기장에서, 

백두들의 안전산행을 지켜주는 신들을 위한 제물 준비하여,

 

올해도 무탈하게 산행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드린다.

 

백두산우회 최병성 회장님께서 초헌을 올리고,

 

이어서 안전한 산행이 되게 해 주십사 기원드린다.

 

안전산행 기원문

 

단기 4343년 오월 둘째 토요일, 저희 백두산우회 회원 일동은,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그 줄기를 이어와 한반도의 곡창인 호남을 두루 거쳐고

이제 그 고단한 발걸음을 머물게 하는 호남정맥의 최고봉이자 마지막 봉우리인,

이곳 백운산에서,

이 땅의 모든 산하를 굽어보시며, 그 속의 모든 생육들을 지켜주시는

천지신명과 산신님께 경건한 마음으로 고(告)하나이다.

 

돌이켜 보면, 6년 전 백두대간 출정 이래 매달 두 번씩 산에 올라,

이제 그 오른 산의 이름만 하여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니

어찌 사람의 마음 만으로 그 뜻을 이룰 수가 있었겠나이까!

 

저희들은 그동안 명산과 산줄기를 밟으며, 몸과 마음을 수련할 수 있었고,

자연의 오묘한 진면목을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었으며,

회원 서로서로의 우의를 두터이 함은 물론, 이제는 저희 스스로 삶의 이치를

조금씩 더듬어 찾아간다고 감히 아뢸 수 있게 되었습니다.

 

2년 전 10월 넷째 주 토요일 영취산에서 출발한 호남정맥길이,

이제 스물아홉(29) 번째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아픈 역사를 함께 느끼고,

숫한 질곡의 상처를 치유하며, 이렇게 무사히 예정된 마루금을 밟아갈 수 있음은

신령님의 보살핌 없이 어찌 가능 하였겠나이까!

 

천지신명이시여!

 

오늘 이 자리에서 다지는 마음이

눈, 비 그리고 바람이 치더라도 늘 그대로 가슴에 뜨겁게 살아서,

어느 날, 어느 산에서도, 안전하고 보람 있는 산행이 되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무거운 배낭을 둘러멘 우리의 어깨가 편안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험한 산과 골짜기를 넘나드는 우리의 두 다리가 지치지 않도록 해주시며,

목이 타는 그 순간에 수통의 감로수가 떨어지지 않게 보살펴 주소서.

 

산에 들거나 날 때나 우리의 발자국마다 당신의 관용과 아량으로

봄날의 햇살처럼 늘 포근한 산행이 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길 간곡히 빕니다.

 

아울러 늘 함께하는 우리 백두산우회 회원 모든 이의 가슴에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가정의 평안함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멀리 타국으로의 원정 산행길에도

늘 신령님의 보살핌이 함께하기를 기원드립니다.

 

오늘 저희가 정성껏 준비한 술과 음식을,

우리의 기원과 함께 즐거이 거두어 주시길 바라오며,

다시 한번 절과 함께, 한 순배를 크게 올리나이다.

  

              단기 4343년 3월 25일 (양력 5월8일)

 

                   백두산우회 회원 일동

 

 

행복한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산제를 마치고,

노란 고물의 시루떡이 잠 맛있었다. 서여사님 고마워유 ~!

 

백운산 자락 양지바른 곳에서 음복과 아침식사를 맛나게 한다.

 

행복하게 삽시다!

 

 

시산제를 지냈던 1115봉 헬기장을 뒤로하고,

 

 

토끼재를 향해 호남길을 재촉한다.

 

 

1,000m가 넘는 고지라 아직도 나뭇가지는 앙상한 가운데도, 대지는 초록으로 덮이고 있다.

 

 

1016봉 헬기장을 지나고,

 

 

고도를 낮추니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고 있다.

 

 

매봉 직전 안부를 통과하고,

 

 

매봉(861m)에 도착한다.

 

매봉 헬기장에서 잠시 쉼을 하며 봄의 느낌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매봉 정상 주위에는 나무가 많아서 조망은 별무다. 이곳 매봉 북쪽의 섬진강 건너편으로 하동 평사리 앞 섬진강변 무듬이 들판이 펼쳐지는데, 평사리는 원래 지리산 남쪽 기슭의 평범한 산골 마을이었으나 1970년대 박경리 선생이 어느 날 하동의 친구집에 왔다가 넓은 들판을 보고 영감을 얻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하소설인 "토지"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헬기장 작은 나뭇가지에 매봉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걸려있다. 

 

 

 

항동마을 갈림길에서 우측 쫓비산 방향으로 호남길은 틀어져서 이어지고,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섬진강이 나란히 남해바다를 향해 가고 있다.

 

항동마을 갈림길 이정표.

 

 

고사마을 갈림길을 지나고,

 

 

나뭇가지 사이로 돌아본 백운산 상봉이 아득히 멀어져 있다.

 

 

512봉 직전에 좌회하는 길로 들어섰다가 20여분 알바를 하고, 

 

 

쓸데없는 개고생 끝에 다시 512봉으로 복귀한다.

 

막걸리 먹고 무거워진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쉽게 해 보려다가 고생했다며...ㅋㅋ

 

 

관동마을 갈림길을 지나고,

 

 

갈미봉에 도착한다.

 

갈미봉 정상 나무 그늘에서 다소간 늘어진 쉼을 한다.

 

갈미봉에서 돌아본 512봉.(알바 한 곳)

 

지나온 백운산을 돌아보니, 백운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이어온 호남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서쪽으로 억불봉이 나란히 있다.

 

동쪽 섬진강 방향 조망.

 

 

쫓비산 도착.

 

쫓비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다만 어느 산행기에서 "이곳에서 바라본 섬진강의 맑고 고운 물 색깔이 쪽빛(남색)을 띄고 있어서.."라며 그 유래를 짐작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또한 “산이 다른 산에 비해 쫏삣(뾰족)하다 해서, 쫏비산이라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름만 쫏삣 할 뿐 오히려 갈미봉이 더 쫏삣하다. 네댓 평 되는 공터에 삼각점 대리석 기둥만이 덩그러니 꽂혀 있다.

 

 

고도를 500여 미터로 낮추니, 등로 주변에는 철쭉이 만개하여 반기고 있다.

 

 

청매실 농원 갈림길.

 

<쫓비산 매화마을>

호남정맥 쫓비산 동쪽 기슭의 섬진마을은 우리나라 최고의 매화 단지로서, 흔히 “매화마을”로 불리며 매년 매화꽃 피는 봄마다 이 땅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특히 매화마을의 청매실농원은 매화나무 집단 재배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곳으로 이름 높다. 일제시대 때인 1930년쯤 김오천 선생이 심은 70여년 생 매화나무 수백 그루를 포함한 매화나무 단지가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쫓비산 언덕에 잘 가꾸어져 있다. 지금은 17세에 시집 온 후 60세가 넘은 지금까지 매화와 매실을 지키고 다듬어 온 홍쌍리 여사가 이 청매실농원을 이끌어가고 있다. 홍여사는 국가에서 지정한 “매실 명인”이란다.

 

좌측으로 청매실 농원을 내려다보며, 호젓한 호남길은 이어간다.

 

청매실농원에서 계곡을 정비해 놓은 듯하다.

 

내려다본 청매실 농원.

 

 

 

토끼재 날머리 도착.

 

토끼재에서 바라본 다음 구간 가야 할 불암산 모습.

 

여지없이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는 애마가 반갑기 그지없고,

 

다음 구간 지나야 할 들머리 입구에는 무시무시한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그래도 가야지 뭐!

 

 

하동에서 화개 가는 길로 조금 가다가 섬진강변에 자리한 미리내호텔에서,

 

깨끗이 목감을 하고, 바로 옆 식당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멋진 산행의 우아한 뒤풀이를 시작한다.

 

섬진강의 맛난 참게 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하며 산행의 희열을 조용히 갈무리한다.

 

 

산청 IC에서 일행들과 작별을 고하고 서울로 향하는 애마에서 홀로 내려,

 

서울서 내려오는 식구들을 기다리며 끝나가는 길었던 호남길을 돌이켜 본다.

 

 

거의 일 년이 넘은 기억을 되새기려니 가물가물 하다.

그렇게 한편 한편씩을 담아 가노라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보물창고가 될 것을 믿는다.

감사합니다.^^